[한겨레] 원색의 화려한 교과서가 어린 학생들의 눈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안과 전문의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내년부터 초·중등 교과서를 모두 원색으로 인쇄하기로 하고, 인쇄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과서 용지를 더 하얗고 반질반질한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교육부의 ‘교과서 외형 개선방안’을 보면 새 교과서 용지는 기존 용지보다 흰 정도를 나타내는 ‘백색도’는 10% 가량, 종이에 빛이 반사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광택도’는 50% 가량 높아진다.
판형 자율화와 디자인 강화 등까지 포함한 교과서 외형 개선에는 학부모들의 직접 부담분 75억여원과 교육부 예산을 합해 모두 150억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돈은 좀 들지만, 원색이 잘 재현된 교과서가 학생들의 학습효과를 높여줄 것이라고 교육부는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안과 전문의들은 인쇄용지의 백색도와 광택도가 증가하면 인쇄 효과만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빛 반사율과 대비감도도 높아져 인쇄물을 읽는 눈의 피로도를 증가시킨다고 말한다.
이동호(41·서울 상계동 빛사랑안과 원장) 대한검안학회 학술이사는 “최근 아토피나 알러지가 원인이 된 결막염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이 많다”며 “이들은 눈으로 반사돼 들어가는 광선의 양이 조금만 많아져도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고, 특히 근시 증세가 있을 경우 근시 진행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지난해 학생 신체검사 결과 자료를 보면 초·중·고생 가운데 근시 학생의 비율은 40%가 넘는다.
교과서 교체가 학습효과를 높일 것이라는 교육부의 설명은 맞을까? 서울 역삼동 좋은사람들 성모안과의 박성진 원장(40)은 “종이의 백색도와 광택도가 높을수록
대부분의 교실에 설치된 형광등 불빛이 잘 산란돼 학생들의 눈에 눈부심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며 “이는 시력 약화의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집중력을 떨어뜨려 오히려 학습능률을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전문가들의 의견은 교육부의 교과서 외형 기준 변경과정에서 개진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교과서 용지와 눈 건강과의 관련성은 아예 검토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외형 기준 변경이 공청회 등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없이 결정된 탓이기도 하다.
기준 변경 실무자인 정민택 교육부 교육과정정책과 사무관은 “용지를 바꿔도 학생들의 눈 건강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면서 “교과서 용지 개선방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눈 건강과 관련해 검토한 근거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자녀 둘을 둔 신홍철(41·서울 강동구 성내동 438)씨는 “지금 교과서의 컬러인쇄 품질도 나쁘지는 않은데, 섬세한 색깔 재현이 필요한 미술책이라면 몰라도 모든 교과서의 용지를 다 바꾸는 것은 돈을 들여 아이들 눈을 버리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정명신(49)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회장은 “교과서 종이를 바꾼다고 학습효과가 얼마나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그것과 학생들의 눈 건강에 끼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할지 의문”이라며 “교육부는 용지 교체를 시행하기에 앞서 좀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수 기자 js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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