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11/04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1/04/12
    요즘 알게 된 것
    바람들
  2. 2011/04/12
    카이스트 문제, 이어서
    바람들
  3. 2011/04/05
    카이스트 개혁의 빛과 그림자(2)
    바람들

요즘 알게 된 것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왜 체르노빌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살지 못하는지 예전부터 궁금했었다. 얼마 전에 우석균 칼럼에 서 답을 얻었다. 방사성물질이 체르노빌에서 훨씬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경 30km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넓은 땅인데, 우리나라에서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광역시 한두 개가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지, 위험을 줄이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카이스트 문제, 이어서

요즘 카이스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사람이 몇 명씩 죽어나가는데도 "이 세상 그 무엇도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분이 총장이고, "10%를 위해 개혁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분이 기획처장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분들 주변에 이런 말을 말리는 사람이 없다는 것도 함께 알 수 있었다. 일단은 총장과의 대화를 열었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대책을 모르는 상황이 아니고 알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상황이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에도 총장과의 대화가 있었지만, 늦은 밤이 되자 총장은 퇴장하였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총장과 주변 사람들을 바꾸지 않고서는 개혁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더 충격적인 것은 "미국의 명문대는 자살률이 더 높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사실이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기는데,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2001년 미국에서 나온 자료를 보면 10만명을 기준으로 볼 때 MIT에서 10.2명, 하버드에서 7.4명, 존스 홉킨스에서 6.9명이 자살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자 MIT에서는 높은 남학생 비율 등을 반영하지 않은 통계에 문제가 있다는 반박을 하면서도 정신 건강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그런데 미국에서 문제가 되었던 이 수치들은 모두 한국 평균 자살률보다도 낮은 수치이다. 매일같이 미국의 명문대를 따라한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상황조차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교육을 할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학교 총장이 꼭 인격자일 필요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윤리는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맹자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명문대학을 위해 학생 몇 명 정도는 죽어도 괜찮다는, 그러한 생각이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학내 민주화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총장에게 많은 권한을 준 제도가 추진력이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견제가 없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번에 무리한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이사회에 학생이나 교수, 직원 대표가 있었다면 이 정도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규정만 따지면 이사회에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와 기획재정부 관계자를 믿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도 이사회장은 "총장은 학교 개혁을 열심히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 있고, 그나마 교육과학기술부가 "우리는 이의를 제기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카이스트 개혁의 빛과 그림자

카이스트에 서남표 총장이 취임한것은 2006년 7월의 일이다. 그 후 카이스트에서는 전면적인 개혁이 강력하게 실시되었는데, 돌이켜 살펴보면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결과도 상당히 많았다. 최근 들어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에서 지적되고 있고, 앞으로도 꽤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 개혁에서 가장 중심이 된 것은 아무래도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으니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경쟁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었다. 정년 심사를 강화하여 실제로 상당수 교수들이 심사에 탈락하게 하였고, 학생도 B학점부터 등록금을 징수하여 C학점인 학생은 한 학기에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납부하도록 하였다. 학교에서 지정한 기한 안에 졸업을 하지 못해도 고액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결과 구성원이 압박감을 느꼈고, 어느 정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쟁을 강화하면서 학생들이 획일화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너댓명 중에서 한 명 정도가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는 상황이다 보니, 다른 학과 과목이나 어려운 과목을 들을 때 더 고민을 하게 되고, 시행 착오를 최대한 줄이는 안전한 선택을 획일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사회와 자신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대신 당장 몇달 뒤의 학점, 몇주 뒤의 시험에만 매달리게 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학교의 다른 정책들도 이러한 획일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예가 전면 영어 강의이다.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한국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이 없는 교육을 받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새내기 디자인이라는 과목을 새로 도입하여 모든 학생이 필수로 듣게 하였는데, 과목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모든 학생이 반드시 듣게 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의심스럽다.

결과적으로 카이스트는 다양하게 선발한 다음 철저하게 평가해서 살아남는 사람과 함께가는 학교가 되어 가고 있다. 교수도 비교적 파격적으로 임용하고 있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학생도 더욱 다양하게 선발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선발된 학생들은 예전보다 획일적으로 교육받고, 학기 단위로 평가받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고액 등록금을 납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고생해서 살아남는 사람들도 대부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다른 종류의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등록금은 늘었는데, 학생들이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줄어들었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진정으로 사회를 선도하는 집단이라면 이러한 문제 상황의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만,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카이스트는 이러한 문제를 무시하는 선택을 하였다.

카이스트의 홍보 전략도 문제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강화하면서 노는 교수, 노는 학생을 응징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결과적으로 카이스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노는 사람은 놀아서 나쁘고, 다른 사람들은 노는 사람을 내버려 두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된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다들 훌륭한 분들이지만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과 같이 탈락자를 어느 정도 배려해 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예의이고 전략이며, 현 상황에서는 진실에도 가깝다. 입학할 때에는 한국 최고의 인재라고 하면서 B학점을 넘지 못하면 세금 도둑이라고 부르는 홍보로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저항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과연 이처럼 매정한 집단에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소속감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서남표 총장은 모든 결정에 앞서서 "이것이 카이스트에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여기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카이스트에 좋은 것이 구성원 모두에게 좋은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 보았다면 꽤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서남표 총장의 노력으로 기부금이 늘었고 건물도 늘었지만 등록금도 늘었고 연구과제에서 걷어가는 금액도 늘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지만, 졸업 후 얻는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2002년에 입학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비교적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거의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학과와 상관 없이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카이스트의 매력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학교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최근 몇년간의 변화로 카이스트가 다니고 싶은 대학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교육 기관의 정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정책을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보면서 결정했으면, 그리고 조금 더 다양한 소리를 듣는 방법으로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