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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6/09
    기부입학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3)
    바람들
  2. 2011/06/06
    정태인씨 반값등록금 반대, 아쉽다(2)
    바람들
  3. 2011/04/05
    카이스트 개혁의 빛과 그림자(2)
    바람들

기부입학제?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학생들이 등록금을 낮출 것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총리라는 사람이 기부입학제를 도입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도덕 관념이 얼마나 없으면 이러한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기부입학제는 학생의 능력과 사회의 필요를 생각해야 할 입시에서 돈이 변수가 되게 하는, 사실상의 뇌물 제도이다. 돈을 내면 입학시켜준다는 제도가 존재한다는 것은 돈으로 졸업장을 살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학교인가?

일부 사람들은 기부입학제가 선진국에서 일반적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거짓말이다. 미국에서 기부입학에 가까운 제도가 Legacy Preference라는 제도인데, 동문 자녀를 우대하는 제도이지 기부하면 입학시켜주는 제도가 아니다. 동문의 기부를 늘리려는 의도가 어느 정도 깔려 있기는 하지만, 미국 대학들도 기부와 입학을 직접 연결시킬 정도로 뻔뻔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제도는 미국에서도 논란이 있으며, 2004년의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75%가 이 제도에 반대한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동문이나 기부자가 보이지 않는 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놓고 기부입학을 하지는 않으며, 그 밖의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가 기부입학이다. 오히려 더 다양한 사람들, 소외되었던 사람들이 대학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에 가깝다. 사실 기부입학이 그렇게 널리 퍼져 있었다면 한국 부자 자녀들은 벌써 선진국 대학에 열심히 기부입학을 했을 것이다. 그게 어려우니까 한국에서 하려는 것이 아닌가?

기부입학을 통해 어려운 학생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다는 것도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기부입학제가 도입되면 거액 기부가 쏟아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해 균형 가격이 정해지게 된다. 그 가격은 등록금보다는 비싸겠지만 학생들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 정도로 비싸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극소수의 학생들만 혜택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도 최상위 몇몇 대학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고, 나머지 대학들은 기부입학제 자체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부입학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얼마를 기부해야 합격을 시켜줄지, 몇명이나 합격을 시켜줄지,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기부입학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학교를 그들만의 잔치판으로 만드려는 것이다. 미국에서 Legacy Preference 제도가 있는 학교의 동문 기부금은 이 제도가 없는 학교보다 많았지만, 그 주된 이유는 동문이 부자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Legacy Preference 제도가 있는 학교는 학력의 대물림이 가능한, 부자들을 위한 학교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그나마 미국은 동문 자녀 우대 제도인데, 우리는 그냥 돈으로 해결할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입학사정관 제도도 공정하기가 어렵고 부정부패의 위험이 있는데, 기부입학은 부정부패 그 자체인 제도이다. 사교육으로 해 보다가, 잘 되지 않으면 정보력을 바탕으로 입학사정관을 공략하고, 그것도 안되면 그냥 돈으로 때우겠다는 것 아닌가? 거짓말 하지 말고 지킬 것은 지키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Legacy Preference에 관한 부분은 Kahlenberg씨의 글을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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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인씨 반값등록금 반대, 아쉽다

최근 정태인씨가 반값등록금에 관한 글을 썼는데, 읽어보니 아쉽다. 반값등록금보다 우선 순위가 높은 일들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바람직한 소통 방법은 아닌 듯하다. 등록금만 내려가면 양극화가 심해진다, 대학교 안 나와도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공감이 되지는 않는다. 박사까지 받고 교수까지 하는 분이, 등록금이 비싸다고 힘들게 일어선 학생들 앞에서 하는 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는 말을 "너 줄 돈은 없어"라는 뜻으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기에 그렇기도 하다. 반값등록금을 안하면 최저임금이 올라가고 임금격차가 줄어드나? 그랬다면 학생들이 이러지도 않았을 것이다.

 

등록금을 낮추면 사교육이 늘어난다는 주장에는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정태인씨 주장이 맞다면 그동안 등록금이 빠른 속도로 늘어났으므로 사교육비는 줄어들었어야 했다. 과연 그러한가? 첫째의 등록금 때문에 둘째의 사교육비가 줄어들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사교육의 주된 목표는 대학 졸업장이고, 이를 위해 "모든" 자원을 투입한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회적인 개입이 없으면 등록금은 학생이 감당할 수 있는 극한까지 치솟게 된다. 결국 가난한 사람은 학원만 못 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교 자체를 갈 수 없게 된다.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학생들은 대학에 오지 않으면 "천민"이 되고, 대학에 와도 결국 등록금의 "노예"가 되는 현실을 거부하고 있다. 착취의 구조를 깨뜨려야 한다는 글의 주제는 그래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아르바이트 하라"고 대답하는 글은, "장학금을 받으라"는 각하의 말 만큼이나 와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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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개혁의 빛과 그림자

카이스트에 서남표 총장이 취임한것은 2006년 7월의 일이다. 그 후 카이스트에서는 전면적인 개혁이 강력하게 실시되었는데, 돌이켜 살펴보면 긍정적인 결과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결과도 상당히 많았다. 최근 들어 문제점들이 여기저기에서 지적되고 있고, 앞으로도 꽤 많은 문제점들이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 개혁에서 가장 중심이 된 것은 아무래도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으니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취지에서 경쟁을 강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도입되었다. 정년 심사를 강화하여 실제로 상당수 교수들이 심사에 탈락하게 하였고, 학생도 B학점부터 등록금을 징수하여 C학점인 학생은 한 학기에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납부하도록 하였다. 학교에서 지정한 기한 안에 졸업을 하지 못해도 고액 등록금을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를 도입한 결과 구성원이 압박감을 느꼈고, 어느 정도 더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하게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경쟁을 강화하면서 학생들이 획일화되는 문제점이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너댓명 중에서 한 명 정도가 수백만원의 등록금을 내는 상황이다 보니, 다른 학과 과목이나 어려운 과목을 들을 때 더 고민을 하게 되고, 시행 착오를 최대한 줄이는 안전한 선택을 획일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사회와 자신의 장기적인 미래를 고민하는 대신 당장 몇달 뒤의 학점, 몇주 뒤의 시험에만 매달리게 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학교의 다른 정책들도 이러한 획일화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이러한 정책의 대표적인 예가 전면 영어 강의이다. 영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지만, 한국에서 살아갈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이 없는 교육을 받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 새내기 디자인이라는 과목을 새로 도입하여 모든 학생이 필수로 듣게 하였는데, 과목 자체는 괜찮은 편이지만 모든 학생이 반드시 듣게 할 필요가 있었을지는 의심스럽다.

결과적으로 카이스트는 다양하게 선발한 다음 철저하게 평가해서 살아남는 사람과 함께가는 학교가 되어 가고 있다. 교수도 비교적 파격적으로 임용하고 있고,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면서 학생도 더욱 다양하게 선발하고 있다. 외국인 학생도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하지만 선발된 학생들은 예전보다 획일적으로 교육받고, 학기 단위로 평가받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고액 등록금을 납부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나는데, 이렇게 고생해서 살아남는 사람들도 대부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다른 종류의 기회를 얻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도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등록금은 늘었는데, 학생들이 궁극적으로 얻는 것은 줄어들었으니 불만이 없을 수가 없다. 진정으로 사회를 선도하는 집단이라면 이러한 문제 상황의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노력을 해야 하지만,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카이스트는 이러한 문제를 무시하는 선택을 하였다.

카이스트의 홍보 전략도 문제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경쟁을 강화하면서 노는 교수, 노는 학생을 응징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결과적으로 카이스트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노는 사람은 놀아서 나쁘고, 다른 사람들은 노는 사람을 내버려 두기 때문에 나쁜 사람이 된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다들 훌륭한 분들이지만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말과 같이 탈락자를 어느 정도 배려해 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예의이고 전략이며, 현 상황에서는 진실에도 가깝다. 입학할 때에는 한국 최고의 인재라고 하면서 B학점을 넘지 못하면 세금 도둑이라고 부르는 홍보로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저항을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었지만, 과연 이처럼 매정한 집단에 학생들이나 교수들이 소속감이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서남표 총장은 모든 결정에 앞서서 "이것이 카이스트에 좋은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여기에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카이스트에 좋은 것이 구성원 모두에게 좋은 것인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것인지도 함께 고민해 보았다면 꽤 많은 문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서남표 총장의 노력으로 기부금이 늘었고 건물도 늘었지만 등록금도 늘었고 연구과제에서 걷어가는 금액도 늘었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지만, 졸업 후 얻는 것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아직도 불확실하다. 이러한 상황이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도 알 수 없다.

2002년에 입학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비교적 즐겁게 학교를 다녔다. 거의 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학과와 상관 없이 자유롭게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카이스트의 매력이라고 생각했고, 다른 학교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최근 몇년간의 변화로 카이스트가 다니고 싶은 대학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교육 기관의 정도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교 정책을 조금 더 장기적으로 보면서 결정했으면, 그리고 조금 더 다양한 소리를 듣는 방법으로 결정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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