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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_자전거

 

 

 

 오늘 자전거를 타고 짝두짝 시장에서 라마 5세 기념탑까지 다녀왔다. FTA 반대 집회를 "자전거 타기"로 하기로 한 것. 평소 미친듯이 막히는 방콕 시내와 광폭한 버스 기사 아저씨들을 생각하면, 방콕 시내 라이딩은 영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올망졸망한 아이들 녀석들까지 다량 합류하여 애초 대여한 자전거 100대가 넘게 다 같이 출발하게 되었다.

 

 어제 인터뷰가 잘 안되어서, 무거운 마음으로 괜히 고민하느라 카메라 충전을 못해서, 사진이 없다. 아, 그치만 사진 찍을 생각을 안 하니 자전거 타기가 어찌나 즐겁던지.

 

 자전거가 부족하여 출발할 때는 붐이 내 뒤에 타고 있었는데, 요새 실연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터라 뒤에 앉아 있는 그녀가 영 안쓰럽기만 했다. 늦게 가서 집회 내용도 잘 못 듣고, 또 새벽 같이 자전거에 몸을 실으니 뭐 이것저것 묻기에 기운이 없어서 정말 자전거만 집중해서 탄 듯하다.

 

 매일 버스를 타고 다니던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도시가 쨍하게 아름다웠다. 나무가 많은 도시를 눈높이를 낮추어 달리니, 바람에 떨어지는 꽃, 푸른 잎사귀가 햇볕에 촘촘히 걸린다. 차선 하나를 자전거로 꽉 채워 놓으니  매번 꽉 막혀있던 시야가 확 트이는게, 도시가 전혀 다른 모양새였다. 고가며, 스카이 트레인 같은 콘크리트 구조물들 때문에 영 흉측해 보이기만 하던 방콕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니, 영 멋스럽기만 하다. 고가 아래의 컴컴한 그늘을 지나, 자전거들이 천천히 햇빛 속으로 빠져 나간다.

 

 나는 요새 영 마음이 무거웠었는데, 아무 생각 없이 페달을 열심히 밟으니 참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전 기념탑이 주변까지 와서 조그마한 언덕배기를 넘어 도로로 굴러내려가다 보니 시내가 한 눈에 들어왔다. 주말이라 한결 한가로운 도로에 자전거 100대가 평화롭게 달리고 있었다.

 

 한쪽 눈이 거의 안보이시는데도 자전거를 타며 열심히 FTA 관련 팜플렛을 나눠주시는 빼 아저씨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늘 커다란 셔츠를 입으시는데, 워낙 마르셔서 자전거가 달려 나갈 때나마다 셔츠가 붕 부풀어 올랐다. 나는 아저씨 등판만 바라보면 한참을 달렸다.

 

 날이 조금 흐려지고, 우리는 두 시간을 넘게 달려 옛 국회 의사당 앞에까지 왔다.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는 모르겠지만 흐린 날 다 같이 자전거를 한 바퀴 신나게 타고,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 앉아 늦은 점심을 먹고, 다시 터벅터벅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동안에, 그 헐렁 헐렁한 발걸음 속에 무언가 달라졌을 거라고 믿기로 했다.

 

 오늘 하루 즐거웠지? 더럽고 정신없는 도시도, 자전거에 올라타니 모험의 나라인 것만 같았지? 아, 서울에 내 자전거도 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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