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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들_sex trade work 관련

 

 대충 적어놓지 않으면 완전 잊어버릴 것 같아 우선 그냥...

 사실 이 주제는 열심히 생각한다고 더 알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생각하기가 영 쉽게 되지 않는다.

 

 (나누리 활동 제안서 영어로 만들어야 하는데, 하기 싫어서 딴짓이다. ㅠㅠ)

 

1. 성노동자!

 

 예전에 내가 무지 좋아하라는 금자씨와 세미나 할때, 내가 생각한 가장 확실한 근거는 "자기 스스로 노동자라고 말하는데 너는 노동자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도대체 어디서 나온다는게냐"라는 점이었다. 이른바 노동자를 규정하는 여타 이론들이 있고 노동자성을 규정한 여러 조건들을 추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쨌든 자기가 일해서 먹고 살고, 그래서 노동자라고 자기 스스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너는 아니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론이나 전제 조건 등은 없다고 생각한다. 톰슨이 보여준 게, 그거 아닌가, 노동자 혹은 집단으로서 노동계급이 말 그대로 '형성'되어왔다는 점 말이다.  

 금자씨는 여튼 다 제쳐두고 그래도 세상에 팔지 않으면 좋은거, 팔지 않아도 되는게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이야기에 정말 공감했다. 무조건 다 자유롭게 판다고 좋은 게 아니라는 거 요새 참으로 실감하는 때인데, 내 몸, 내 피, 내 난자, 내 눈알, 내 신장 같은 거는 좀 안팔아도 되게, 팔지 못하게 해야 하는게 "옳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저번에 팟퐁에 갔을 때, 캐나다 활동가인 에린은 장기를 파는 것과 성을 파는 것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했다. 이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고, 소유권을 이전하는 것, 즉 판매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아, 이야기도 맞다.  아, 그렇구나.

 팟퐁에서 이른바 라이브 쇼를 본 후 내가 느낀 것 역시 이건 정말 노동이라는 거다. 자기 능력 혹은 자기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파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데, 이건 그것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2. 논리적 연관 관계를 아직 잘 세우지는 못하겠지만..

 

 이전에 태국에서 공부하는 선배에게 '창녀'라는 말을 막 쓰는 건 너무 한게 아니냐며 눈을 흡뜨고 덤벼서, 이 마음씨 좋은 아저씨의 하트에 완전 스크래치를 낸 적이 있는데, (나중에는 참으로 미안했다.) 그 때 이 아저씨가 한 이야기가 만약에 저 길거리에서 무서운 조직 폭력배 아저씨들이 '창녀'어쩌고 하는 말을 할 때도 그렇게 덤벼들 수 있겠냐는 거였다. 아이쿠. 그렇구나. 이말도 완전 맞다. 권력 관계라는 게 말 그대로 상황이라는 게 확 느껴지면서 나도 머리통에 스크래치가 나는 것 같았다.

 

 이때 생각이 든 것은 성 노동자 혹은 성 판매 여성이라는 '중립적' - 누군가에게는 전혀 중립적이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용어가 실제 상황들이 포함한 여러 문제들을 오히려 간소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편으로 느낀 건, 여러 불편한 용어들이 비록 성 차별적이거나 모멸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어떤 때는 날 것 그대로의 현상, 실제로 처하게 되는 억압적 힘들의 면모를 더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A라고 불리는 걸 B라고 부르기 시작하는게, A의 존재에 변화를 주는 건 확실하지만 그러렇다고 A라고 불리는 상황이 완전히 없어지는 게 아니다. B라고만 부르다 보면 여전히 A라고 불리는 상황의 구체성을 자꾸 잊어먹는 것 같다.) 

 

3. 성매매 영역에서의 에이즈 강제검진

 

 에린과 나는 콘돔 사용의 여파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에린이 이게 이른바 협상력이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큰 힘, 능력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에이즈 예방 교육이 이들에게 자기 건강을 지킬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콘돔 사용하게 요구할 수 있는 힘은 여타 다른 힘들 (하기 싫은 다른 일을 억지로 하게 하거나, 노동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지게 하거나, 해고 등에 항의할 수 없고, 안정적인 고용을 불가능하게 하는) 그런 것들에 비하면 너무 쬐그만 능력이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협상력이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이게 엄청 크고 중요한 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게 진짜 힘으로 작동하려면 다른 힘들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에이즈 감염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전반적인 노동 과정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어느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이 사이의 관계가 정말 존재한다면, 영향을 끼친다면 이건 정말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에이즈에 걸리면 직장에서 쫓겨나니까 정도의 연결 말고 더 구체적인 것 말이다.  

 

 성 노동자들이 에이즈 강제 검진을 받지 않게 된다면 어떤 힘을, 어떤 변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이걸 설득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제 검진이 유지될 때 부여되는 힘, 능력, 자격과 강제 검진이 없어질때 생겨되는 힘, 능력, 자격 등을 가늠할 수 있다면 무언가 더 이야기할 꺼리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강제 검진을 철폐하면 에이즈에 대한 낙인이 완화된다 뭐 그런 좀 덜 직접적인 변화말고 , 실제 검사를 받는 이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힘의 변화가 과연 생겨날 수 있을까? 강제로 에이즈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면 과연 신체의 자기 결정권에 어떤 변화가 생겨날까?   

 

흐음... 더 고민할 수 있을 시간이, 더 공들여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거만, 더워서 더 게을러지고 있다.

 

 

더 관계없는 얘기>

 

 쏭끌란 휴가 동안 버닝한 L-word에서 정말 인상적인 장면은 백만 장자에서 하룻밤에 백조가 된 헬레나가 도박빚 때문에 이른바 한번 자주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그 친구들의 반응이다.

 

 헬레나 "나는 이제 매춘부whore이 되는 거야"

 쉐인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누구나 한번쯤은 다 하는 일이야. 그 한번이 니가 누구인지를 결정하지는 않아"

 제니 "맞아, 누구나 한번쯤 다 할 수 있는  일이라니까"

 킷 "그래, 나는 코카인 한 줄 얻으려고 호른 주자에게 블로우 잡도 해주었는 걸"

 누군가 "그래서?"

 킷 "기분 좋았지 (?)"

 쉐인 "나도 돈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내가 팬티만 입은 모습을 보게 했는 걸. 이것도 별 다를 바 없어"

 

 이 친구들의 쿨한 반응은 나에게 김기덕 아저씨를 강력하게 떠오르게 했다. 누구나 한번쯤 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과 모든 여자는 혹은 너는 본질적으로 "창녀"다라고 주장하는 것 사이의 엄청난 차이 말이다.  납치 후 성매매 여성이 되서 환상이고 현실에서고 끝도 없이 그것만 한다는 그 폭력적 순환론과 이 언니들의 수다는 아유, 차이가 나도 너무 난다. 누군가 자기의 성적 능력이나 성적 서비스를 화폐로 전환시킨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누군가의 모든 것을 도대체 결정할 수가 없다. 즉, 이러한 trad가 한 존재의 전인격적 그 무언가를 규정할 수도 없을 뿐더러 그것말고도 여타 많은 상황이 구구절절이 잔뜩이고 남아 있다는 것이다. (sex slave와 sex trade worker는 엄연히 다르다는 거 말이다.)

 성적 서비스의 교역을 무언가 "엄청나게" 특별한 것, 나쁜 것, 절망적인 것, 폭력적인 것, 비도덕적인,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모략들이 이 행위보다 더 음흉하다.  인터넷에서 가슴 보여주는 학생이 착취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슴 안 보여주는 학생과 무언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점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이야기의 판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이게 과연 도움이 되는 관점일까? 

 

(헉, 뭔 소리냐? 뭘 이야기할려는 게냐? --+)

 

 

- 도대체 정리가 안되는 걸 과연 포스팅 할지 고민이 막 드나,

 "이 글은 나만 볼래요."라는 멘트가 넘 쑥쓰러 그냥 올려야겠다. ㅠㅠ

 

아, 강제 검진 이야기를 하려고 시작한 건데, 그건 다음 번에 다시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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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끌란, 물의 축제와 게으름뱅이들의 춤.

 
 
 
 

하루 종일 게으름뱅이처럼 굴었다. 오후에 점심을 사러 갈 때, 동네 뒷길을 걸을 때는 마음이 편안했다. 늦은 오후의 햇빛아래 우렁우렁 자라나는 나무들, 진한 빛깔의 튼튼한 여름 꽃들. 늘어져 자는 게으른 개와 마당을 가득 메우며 자라나는 선인장들. 잎사귀가 두껍고 가시가 뾰족한 식물들이 나무집 앞 마당이 꽉 차게 자라난다. 비닐 봉다리에 식은 밥 한 덩어리를 사가지고 돌아오며, 고요한 오후가 사랑스러워 마음이 가득 기뻤다.   

 여름 저녁, 해질 무렵처럼 아름다운 때가 있을까. 하늘이 자꾸 낮아지고, 마지막 햇빛은 열기 없이 빛깔만 가득해. 크고 높은 나무들 사이로 꼬리가 넓은 새가 하루의 마지막 날개짓을 하고, 빨간 꽃 너머로 음영이 드리워지기 시작한다. 해 넘어 가는 순간, 아름다운 때는 어찌나 금새 지나가는지, 어느새 하늘 빛이 남빛으로 변했다. 저녁, 빈 골목에 금새 어둠이 차고 나는 두려울 것도 없이 그리운 이들도 지금은 없이, 나 혼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느껴져 고요했다. 멀리 두고 온 당신이, 내 마음의 어둠이, 저녁, 이제 막 내린 어둠에 묻혀 지금은 구별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골목을 걷는 동안 나는 편안했다.  

사방이 온통 조용한 줄만 알았는데, 대로변에서는 젊은 남자아이들이 물을 뿌리고, 춤을 추고 있었다. 어둠이 가만히 내리는 여름 저녁에 웃통을 벗어제낀 젊은 총각들이 추는 춤이 즐거워만 보였다. 지나가는 버스에 호스로 물을 뿌리며, 사내애들이 춤을 춘다. 한 바가지의 물 맞아 주어도 될껄, 한 걸음 비켜나 한 손에 든 저녁 거리를 보여주자 웃자란 소년이 예의 바르게 비켜주었다. 거리가 온통 축축히 젖고, 툭툭 의자마다 희뿌연 횟가루투성이다. 물의 날, 축제의 밤. 모두가 즐거운 때, 나는 발꿈치에 날개가 달린 것마냥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멀리 있는 이들, 안녕,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나를 나는 오늘 그냥 봐주기로 했다.  

 

* 쏭끌란은 태국 새해 명절이랍니다.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다들 휴가에요. 축복의 의미로 사람들에게 물을 뿌리고, 얼굴에 회칠을 한답니다. 이 기간 동안 밖에 나가면 길에서 다들 서로 물을 뿌려요. 쏭끌란 축제가 제일 멋지다는 치앙마이에 다녀오려고 하였으나 급격한 체력 저하로 이 기간 동안 방콕에서 방콕하고 있을 예정입니다. 아앗,  초방 30 바이트, 최악의 인터넷 상황에서 영화를 다운 받으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크흐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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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반성!

 

 

 

 

 여기 온지도 벌써 3주가 넘어간다. 태국말이 좀 늘어서 다들 삼 주 치고는 (사실 2주 반이라고 거짓말했다. ^^;;;) 잘하네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겨우 "무슨 일 하십니까?" 정도 주워 삼길 수 있는 정도이다. 아, 태국말 잘하고 싶다! ㅠㅠ

 

 요즘 정말 반성하는 건, 내가 에이즈라는 병에 대해서 정말 잘 모른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서 혼자 에이즈 관련 논문을 읽을 때는 '아, 이 분야는 내가 전문가지'라는 지금 생각하면 씨알도 안 먹히는 이야기를 대 놓고 하기도 하고, 나누리 회의에서는 잘 모르는 게 있어도 아는 척 고개를 끄덕 끄덕 하고는 했었다. 근데, 알고보니, 정말! 나는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이를테면, HIV 감염인들이 ARV 약을 시간맞춰 먹는 게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나는 태국에 와서야, 매우 최근에야 알았다. 아, 나는 정말 몰랐다. 뭐, 그 약이라는 게 시간 맞춰 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냥 약 먹는 게 많아서 힘이 들겠지, 남들이 무슨 약이라고 물으면 곤란하겠지 정도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이 약 꼭 시간 맞춰 먹어야 한다.

 

 근데, 더 생각해보니 나는 한국에서 한번도 에이즈 관련 집회고 회의에서 누군가 약을 먹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약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 이건 내가 집회에 잘 안가서, 그래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아유, 다른 활동가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나만 몰랐던거면... 젠장.... 조낸 챙피한거다...ㅠㅠ)  근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각 약마다 부작용이 각기 다르고, 또 섞어 먹으면 안되는 약의 조합도 다양하다고 한다. (에이즈 치료제는 보통 세 가지를 섞어서 복용하는데, 이때 함께 먹어서는 안되는 약들이 있다고 한다. 의사들이 종종 이 사실을 모르고 잘못 처방하는 경우가 있어서, 태국에서는 치료제 관련 교육에서 이 부분에 관한 정보를 여러번 숙지시킨다) 근데, 난 사실 칵테일 요법이라는 말만 알았다. 약이야 뭐, 의사가 알아서 주겠지 하고 있었던거다.

 

 도대체 우리 활동가들은, 행사 때 오시던 그 분들은 언제, 어디서 약을 먹었던 걸까?

 

 여기와서 보니, 사람들이 약을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집회에서도 약을 먹고, 회의하다가도 약을 먹는다. 집회하러 갈 때 진행 스태프들은 약 가방을 챙겨가는데, 혹시나 회원들 중 약을 두고 오거나 잊은 사람이 있을까봐 꼭 가지고 간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일이 중요할 거라는 사실을 진짜,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에이즈는 고혈압이나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야라고 말로만 알았지 그게 의미하는 게 뭔지, 매일 시간맞춰 약 먹어야 하는 게 어떤 건지 나는 사실 생각해보지도,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그냥 그런거보다 머리로만, 말로만 알고 있었던 거다.

 

 에이즈 감염인들과 함께 하는 운동, 나도 거들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는 암것도 모르고 그냥 왔다갔다만 한거였다. 혹시나 이야기하다 말실수나 하지 않을까 눈치만 봤지 도대체 모르고 있었다. 어려움이 뭔지,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 말이다. 누군가 어떤게 사는지 상상해 볼 여지도 없이, 자기 사는 모습 보여줄 틈 없이 해왔다면, 그건 내가 그닥 도움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람이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시간들, 눈치 보지 않구 숨기지 않아도 되는 때, 아마도 여기에서부터 더 큰 변화들이 시작할텐데, 이런거 이제껏 눈 꾹 감고 알려고도 안했다.  

 

 그리고 몰랐다는 건 순 핑계에 거짓부렁이다. 의약품 접근권 목소리만 높였지 알고보니 나 역시 약 못먹게 방해하는 그 누군가 중의 하나였다. 치료제 가격 올리는 제약 회사만큼이나 이미 있는 약 먹지 못하게 하는 그 순간들, 몰래 먹거나 그냥 약 안 먹고 건너 뛰게 하는 그 상황들  역시 큰 장애물이었다는 거 이제야 알았으니 말이다.  

 

 이제는 약 먹는 시간이 중요한 줄 알지만, 그래도 서울에 돌아가면 어떻게 사람들이 숨어서 약 먹지 않는 때를 만들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도대체 답을 모르겠지만. 그치만, 우선은 오늘은 반성한다. 엄마 말대로 헛똑똑이 짓 안하게, 입으로 말고 생활로 알게, 그럴 수 있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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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하는 경험

 

 

 이틀새 공개적인 공간에서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의 그것들을 차례로 보았다.

 

 순서를 뒤바꾸어서 이야기를 하면,

 

 저녁에 통역해주실 분과 약속이 잡혀 있었는데, 어깨도 아프고 조사 노트 정리하기가 싫어 두어시간 일찍 나왔다, 원래 마사지라도 받으려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지난 번에 점심 먹은 곳 옆에 있는 극장에 갔다. 영화표가 50바트 밖에 하지 않아서 아아, 역시 허름한 극장은 싸구나 하면서 들어갔다. 지난번에 그 극장을 슬쩍 보았을 때, 태국 왕에 관련된 영화를 하고 있어서 여기가 무언가 요상한 곳은 아닐꺼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것만!

 

 영화는 호러 영화같은 거 였는데, 영어 자막이 있어 겨우겨우 참으면서 볼 수 있었다. 사실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이 보고 싶은 거였으니까 영화는 큰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극장 안이 영 소란스럽고, 삐그덕 거리는 소리는 자꾸 들리고, 자꾸 사람들이 일어섰다 나갔다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인도 사람들은 영화 보면서 노래도 부르는데 뭐, 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갑자기 내 옆옆 자리에 앉더니, 무언라고 태국말로 이야기한다.

 나는 단호히 태국말을 못알아듣는다 이야기했더니, 내 옆자리로 옮겨오더니 사탕을 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싫다고 했더니, 다시 옆 옆자리로 옮겨가더니, 무언가, 어디를 자꾸 긁는 것이 아닌가.

 

 설마 하는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점점 움직임이 격해지고 있었다. 아, 이런

 아저씨는 내 옆 옆 자리에서 마스터 베이션에 열중하기 시작한 거다. 어어, 당신 이래도 되는거야. 극장에서 디디알이라니, 더구나 이 영화는 디디알에 그닥 적당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아. 흘끗 보았을 때 처음으로 가까이서, 그것도 오픈된 공간에서 난생 처음 보는 남자의 ... 아앗. 내참. (어두워서 확실하지는 않다. 아, 다행이다.)

 

상황 판단이 잘 안되었으나, 왠지 좀 무서우면서도,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너무 냉큼 도망가면 혹시나 따라올까봐 약간 머뭇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내가 착각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사운드가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벌떡 일어나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 극장에서 어린 아이들도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휴일 낮에 극장에서 혼자 자기 위안을 하는 남자라니, 지금 생각하니 아저씨는 딱히 나한테 무슨 뉘앙스를 주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받은 느낌은 그 사람이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였으니까.

 

영 징그럽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렵지만, 그것 참. 이런 일을 겪으니 사람의 삶이, 기쁨이 너무 눅눅하고 초라하다.

 

여성 편이 궁금하다면

 

 



 

 그 전날에는 사실 팟퐁이라는 태국의 유명한 거리에서 empower라는 성 노동자 단체와 미팅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된 캐나다 활동가가 잡은 약속에 묻어가는 거라 겨우 시간을 맞추어서 갔는데,  이 분은 무려 두 시간이나 지나서 오셨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그곳에서 진행 중인 영어 수업을 함께 했다. 내가 누군지, 왜 왔는지 소개하기는 했으나 수업을 듣는 여성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같이 arm, murcle, calve, ankle 같은 단어를 공부하고, 마사지를 받으러 왔을 경우에 따른 대화를 같이 읽었다. 웃음이 많이 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치 중학생이 된 것처럼 옆 자리의 여성에게 은근슬쩍 답을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영어를 배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모르는 단어가 좀 있었다. ㅠㅠ)

 

 그리고는 캐나다 활동가가 느즈막히 헐레벌떡 와서 상근자 분께 단체 관련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관심있어 했던 에이즈 관련 문제들은 사실 기대와는 많이 어긋나는 것이었다. 팟퐁 거리에 있는 바에서 (이때까지는 이게 어떤 바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일하는 모든 여성들은 삼 개월에 한번씩 에이즈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 여성의 사진을 바 입구에 붙이고 더이상 거기서 일할 수 없게 된다는 거였다. 이렇게 되면 다른 지역이나 거리로 옮겨가거나, 수큼빗과 같은 거리에서 혼자 독자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태국에서 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과 검진이 한국의 강제 검진보다는 좀더 나은 형태로 진행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참, 예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이라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여러 이야기를 묻고 싶었으나, 약속 시간에 늦게 온 탓에 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거리에 나오니 주변이 어느새 시장도 서고, 가게 간판에 불도 켜지며 영 달라져 있었다. 캐나다 활동가가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가 어떤지 더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바에 직접 가보자고 하였다. 우리가 계획한 건 바에서 일하는 여성들로부터 이야기도 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금 생각해보니 나이브하기 이를데 없는 생각이었다.

 

 한참 시간을 떼우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삐끼 아저씨들에게 이끌려 이른바 pussy show라는 걸 하는데 가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무얼 할지 예상을 못하고 갔었는데, 무대 위에 스테이지에서 발가벗은 여성이 성기에 매직펜을 끼워서 글씨를 쓰고 있었다. 앗, 흘끗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얼른 감았다. 도대체, 이게,

 

 캐나다 활동가는 케겔(?) 근육의 운동을 통해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다며, 보는 것처럼 아프거나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무언가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풍선, 트럼펫, 계란, 긴 끈과 같은 것들이 등장했고, 그것들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트립 바와는 분명 다른 것들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섹시함도 흥분도 아니라 지루함이라는 것이다. 쇼를 하는 사람도, 쇼를 보는 사람도 모두들 지루해하고 있었다.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그저 기운없이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고, 맨 처음 보았을 때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던 성기로 하는 여타의 활동들도 그저 기운없이, 아무런 뉘앙스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뉘앙스 없음이야말로 이 모든 행위들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저 어떤 활동이었다. 사람 몸으로 하는 활동, 그리고 그 반복되는 활동들은 점점 더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캐나다 활동가는 이건 마치 자기 재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talent show와 다름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신체 부위들에 대한 위계가 순간 없어지고 나니, 사람 몸은 그냥 몸이고, 몸은 움직이고, 움직임의 반복은 지루하고, 힘이 들고, 피곤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팟퐁의 고고바에 간 일이 과연 필요한 일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으로, 이야기로 성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수업을 함께 받은 언니들과 에이즈 이야기를 하려고 연락처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그닥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질문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도대체 누가 이런 것들을 처음 생각해낸 걸까. 도대체,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처음 이런 걸 생각해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영, 아무것도 모르겠는 느낌이다.

 

 아, 기운이 없다. 이게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이지 싶다. 참, 아무리 생각해도 피곤한 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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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도 넘게 진보넷을 열었다 닫았다.

 

 

 인터넷 연결이 안 좋아서 창이 하나 열리는 데 적어도 2분은 걸리는 듯하다.

 진보넷을 열었다, 닫았다, 네이버를 열였다, 닫았다 했다. 어깨가 너무 아파서 피곤한데, 인터넷 창을 열였다 닫았다하는 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누군가 하얗게 불탄 사람 몸을, 종아리가 팔뚝만틈 졸아든 몸을, 여기서도 보지 않을 수 없게,

 환하게 올려두었다.

 불타기 전의 아저씨 모습은 묵묵해 보였다.

 

 도대체 뭘 반대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국에 오기전 집회에서 사람들이 두드려 맞는다는 이야기를 아침 일찍 학교가는 버스에서 들었다. 손석희 아저씨가 경찰 청장에게 "기자에게만 사과하신다면 일반 시민에게는 사과하지 않으시겠다는 겁니까? 시민들에 대한 폭력은 문제가 없다는 겁니까?"라고 다그치는 동안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혼이 났다. 학교 버스에서 괜히 밖을 노려보았다. 화가 나서 버스를 내리는데, 뉴스는 저 멀리 버스와 함께 가고, 나는 아직 아무도 없는 교정에서 씩씩 화가 나서 눈물을 꾹 참았다.

 서로 때리면서 그래야 할까, 누군가 블로그에 오늘 의경들 좀 두드려 맞겠네 하는 이야기를 써 놓은 것을 보고도 괜히 화가 났다. 내 동생 용원이 친구, 철기 같은 애들이 철모를 뺐기고 두들겨 맞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팠다. 어린 친구들, 우리 집에서 맥주 마시고 들어눕던 녀석들이 줄 세워서 두들겨 맞을 때, 이 친구들도 얼마나 힘이 들까. 왜 맞는지도 모르고, 맞는 일 피할 수도 없게, 얼마나 가슴이 답답할까.

 

 태국에서 처음 간 집회는 태국-일본 자유 무역 반대 집회였다. 에이즈 감염인 단체에서도 한 목소리를 내고, 경찰도 예의 바르게 대해주어서, 사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야지 생각했다.

 쿠테타가 일어난 나라에서도 집회의 자유는 있어요, 경찰들이 우리 이야기를 듣고 박수를 치기도 했어요. 서로 예의 바르게 대하고 있어요 하고 말이다.

 그치만 다시 생각해보면 여기 상황도 만만하지는 않다. 사남루앙에서 사람들이 죽던 기억이 있던 곳 역시 태국이다.

 

 조사 노트를 한참이고 정리하다가, 불 탄 사람을 보고 눈을 훕 뜨다가. 다시 조사 노트를 정리하다가, 만화를 찾아 보기도 했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고, 울고 싶기도 하고, 남의 일 어서 잊어 버리고 싶기도 했다.

 

 무얼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아프지 않게, 튼튼하던 허벅지가 불타 졸아붙지 않게,

 사실 나는 한국에서 연애 한다며, 공부 한다며, 집회에 오라는 정숙씨 말도 헤헤 웃으며 바빠요 하고는 했다. 나는. 오늘 무척 아팠을 그 아저씨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아프지 않게, 아프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사람들이 11시에도 청와대 앞을 줄달음치고 있다고 했다. 나는 수박을 먹고, 알아들을 수 없는 라디오를 들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 긴 밤을 보낼까. 무얼 바램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 크던 사람이 졸아붙었는데,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게 두렵다. 무엇으로 우리 살아야 하는 걸까? 누군가 이렇게, 이렇게 아픈데 말이다. 앞으로 열심히 싸워야하지 하면 되는걸까? 오늘 밤, 이 슬픔 잊지 말아야지. 나중에 나이가 들어도, 혹시나 남아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게 되어도, 이 갑갑함 마음을 잊지 말아야하지 하면 되는걸까?

 

 몸 아프지 않게, 마음 아프지 않게, 너무 힘들이지 말고, 마음의 불이 온 몸으로 번지지 않게,

 그러니까 남의 맘에 불씨 던지지 말고, 아아, 생 목숨 괴롭히지 않게, 안 아프게,

 

 저기 누군가, 저 너머에 누군가 있다면 말이에요. 당신.

 좀 도와주세요. 좀 덜 아프게요. 한 사람 삶이 이렇게 절망적이면, 그러면 안되는거 아니에요? 우리 이렇게 살면 안되는 거잖아요. 네? 누군가 이렇게 아프면 안되는 거잖아요. 남이 이렇게 아픈데, 그냥 내버려 두는 거, 이러는 거,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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