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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 하는 경험

 

 

 이틀새 공개적인 공간에서 처음으로 여성과 남성의 그것들을 차례로 보았다.

 

 순서를 뒤바꾸어서 이야기를 하면,

 

 저녁에 통역해주실 분과 약속이 잡혀 있었는데, 어깨도 아프고 조사 노트 정리하기가 싫어 두어시간 일찍 나왔다, 원래 마사지라도 받으려고 했는데, 찾을 수가 없어서 지난 번에 점심 먹은 곳 옆에 있는 극장에 갔다. 영화표가 50바트 밖에 하지 않아서 아아, 역시 허름한 극장은 싸구나 하면서 들어갔다. 지난번에 그 극장을 슬쩍 보았을 때, 태국 왕에 관련된 영화를 하고 있어서 여기가 무언가 요상한 곳은 아닐꺼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것만!

 

 영화는 호러 영화같은 거 였는데, 영어 자막이 있어 겨우겨우 참으면서 볼 수 있었다. 사실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이 보고 싶은 거였으니까 영화는 큰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극장 안이 영 소란스럽고, 삐그덕 거리는 소리는 자꾸 들리고, 자꾸 사람들이 일어섰다 나갔다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뭐, 그럴 수도 있지 뭐, 인도 사람들은 영화 보면서 노래도 부르는데 뭐, 하면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웬 아저씨가 갑자기 내 옆옆 자리에 앉더니, 무언라고 태국말로 이야기한다.

 나는 단호히 태국말을 못알아듣는다 이야기했더니, 내 옆자리로 옮겨오더니 사탕을 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싫다고 했더니, 다시 옆 옆자리로 옮겨가더니, 무언가, 어디를 자꾸 긁는 것이 아닌가.

 

 설마 하는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점점 움직임이 격해지고 있었다. 아, 이런

 아저씨는 내 옆 옆 자리에서 마스터 베이션에 열중하기 시작한 거다. 어어, 당신 이래도 되는거야. 극장에서 디디알이라니, 더구나 이 영화는 디디알에 그닥 적당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아아. 흘끗 보았을 때 처음으로 가까이서, 그것도 오픈된 공간에서 난생 처음 보는 남자의 ... 아앗. 내참. (어두워서 확실하지는 않다. 아, 다행이다.)

 

상황 판단이 잘 안되었으나, 왠지 좀 무서우면서도, 우스운 기분이 들었다. 너무 냉큼 도망가면 혹시나 따라올까봐 약간 머뭇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혹시나 내가 착각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사운드가 점점 심각해짐에 따라 벌떡 일어나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 극장에서 어린 아이들도 영화를 보고 있었는데 말이다.

 휴일 낮에 극장에서 혼자 자기 위안을 하는 남자라니, 지금 생각하니 아저씨는 딱히 나한테 무슨 뉘앙스를 주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받은 느낌은 그 사람이 그저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였으니까.

 

영 징그럽다는 생각을 지우기는 어렵지만, 그것 참. 이런 일을 겪으니 사람의 삶이, 기쁨이 너무 눅눅하고 초라하다.

 

여성 편이 궁금하다면

 

 



 

 그 전날에는 사실 팟퐁이라는 태국의 유명한 거리에서 empower라는 성 노동자 단체와 미팅이 있었다.

 우연히 알게된 캐나다 활동가가 잡은 약속에 묻어가는 거라 겨우 시간을 맞추어서 갔는데,  이 분은 무려 두 시간이나 지나서 오셨다.

 

 일찍 도착한 나는 그곳에서 진행 중인 영어 수업을 함께 했다. 내가 누군지, 왜 왔는지 소개하기는 했으나 수업을 듣는 여성들에게 제대로 전달된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는 같이 arm, murcle, calve, ankle 같은 단어를 공부하고, 마사지를 받으러 왔을 경우에 따른 대화를 같이 읽었다. 웃음이 많이 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치 중학생이 된 것처럼 옆 자리의 여성에게 은근슬쩍 답을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영어를 배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내가 모르는 단어가 좀 있었다. ㅠㅠ)

 

 그리고는 캐나다 활동가가 느즈막히 헐레벌떡 와서 상근자 분께 단체 관련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가 관심있어 했던 에이즈 관련 문제들은 사실 기대와는 많이 어긋나는 것이었다. 팟퐁 거리에 있는 바에서 (이때까지는 이게 어떤 바인지 모르는 상태였다) 일하는 모든 여성들은 삼 개월에 한번씩 에이즈 검사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감염 사실이 알려지면 해당 여성의 사진을 바 입구에 붙이고 더이상 거기서 일할 수 없게 된다는 거였다. 이렇게 되면 다른 지역이나 거리로 옮겨가거나, 수큼빗과 같은 거리에서 혼자 독자적으로 일할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사실 나는 태국에서 성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예방과 검진이 한국의 강제 검진보다는 좀더 나은 형태로 진행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참, 예상한 것과는 다른 방식이라 실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여러 이야기를 묻고 싶었으나, 약속 시간에 늦게 온 탓에 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거리에 나오니 주변이 어느새 시장도 서고, 가게 간판에 불도 켜지며 영 달라져 있었다. 캐나다 활동가가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가 어떤지 더 알아야 하지 않겠냐며 바에 직접 가보자고 하였다. 우리가 계획한 건 바에서 일하는 여성들로부터 이야기도 더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지금 생각해보니 나이브하기 이를데 없는 생각이었다.

 

 한참 시간을 떼우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삐끼 아저씨들에게 이끌려 이른바 pussy show라는 걸 하는데 가게 되었다. 나는 도대체 무얼 할지 예상을 못하고 갔었는데, 무대 위에 스테이지에서 발가벗은 여성이 성기에 매직펜을 끼워서 글씨를 쓰고 있었다. 앗, 흘끗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눈을 얼른 감았다. 도대체, 이게,

 

 캐나다 활동가는 케겔(?) 근육의 운동을 통해 이런 활동들을 할 수 있다며, 보는 것처럼 아프거나 위험한 것만은 아니라고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무언가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풍선, 트럼펫, 계란, 긴 끈과 같은 것들이 등장했고, 그것들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트립 바와는 분명 다른 것들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는 건, 섹시함도 흥분도 아니라 지루함이라는 것이다. 쇼를 하는 사람도, 쇼를 보는 사람도 모두들 지루해하고 있었다. 가슴을 훤히 드러내고 춤을 추는 사람들은 그저 기운없이 다리를 움직일 뿐이었고, 맨 처음 보았을 때 눈을 질끈 감게 만들었던 성기로 하는 여타의 활동들도 그저 기운없이, 아무런 뉘앙스도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뉘앙스 없음이야말로 이 모든 행위들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그저 어떤 활동이었다. 사람 몸으로 하는 활동, 그리고 그 반복되는 활동들은 점점 더 지루하기만 할 뿐이었다.  

 

 캐나다 활동가는 이건 마치 자기 재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talent show와 다름 없다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신체 부위들에 대한 위계가 순간 없어지고 나니, 사람 몸은 그냥 몸이고, 몸은 움직이고, 움직임의 반복은 지루하고, 힘이 들고, 피곤하다.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팟퐁의 고고바에 간 일이 과연 필요한 일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책으로, 이야기로 성 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수업을 함께 받은 언니들과 에이즈 이야기를 하려고 연락처를 교환하기는 했지만, 오늘은 그닥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

 

 질문이 무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도대체 누가 이런 것들을 처음 생각해낸 걸까. 도대체,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처음 이런 걸 생각해낸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던걸까? 영, 아무것도 모르겠는 느낌이다.

 

 아, 기운이 없다. 이게 말 그대로 사서 고생이지 싶다. 참, 아무리 생각해도 피곤한 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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