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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4월 한 달간 독일의 평화운동단체인 ‘커넥션’의 초대를 받아 한국의 병역거부운동을 주제로 강연을 다녀왔어요. ‘전쟁없는세상’이 함께 기획한 총 석 달의 강연투어 중 첫 한 달 일정에 제가 결합했고, 6월 말까지 예정된 일정에 다른 활동가들 그리고 현재 프랑스에 망명해 살고 있는 병역거부자 이예다 씨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권교육’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업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다른 상임활동가들이 흔쾌히 다녀오라고 얘기를 해줘서 한편엔 고마운 마음 한가득(다른 한편엔 뭔가 결과물을 들고 오리란 부담?ㅎㅎㅎ)을 안고서 다녀왔지요. 근데 또 그런 부담감 갖지 말고 다녀오라고 얘기해주기도 해서 세상에 들 같은 조직이 어디 또 있을까 다시 한 번 생각을 했다지요.^^;; 암튼 들 회원들과 독일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8월 중에 정식으로 가질 예정이니, 여기선 대략의 느낌 정도 나누는 것으로 적어볼게요.
커넥션에서 애를 많이 써준 덕분에 독일 각지에서 강연요청이 들어왔고, 하루에 한군데씩 돌며 강연을 다녔어요. 예를 들면 월요일 아침에 기차를 타고 그 주 첫 강연지로 출발, 역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 곳 담당자를 만나 인사 나누고, 그날 밤 묵을 숙소에 짐을 풀고, 컨디션 괜찮으면 1-2시간 강연장 근처를 걷다가 저녁 먹고 강연을 하는.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그 다음 강연이 있는 도시로 다시 기차를 타고 떠나는 식의 일정을 소화했는데, 어느 순간엔 매일 잠자리도 바뀌고,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사하고 비슷한 패턴의 대화를 하는 일들에 진이 빠져서 내일 하루만 더 하면 주말이다 이런 마음으로 버티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람들이 북한이 아닌 남한에서 자기 신념으로 군대를 거부해서 감옥에 갇힌 이들이 700명이 있다는 걸 알고선 자신들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물어와 줄 때 그리고 그곳 활동가들이 자기 지역에서 해온 운동 이야기를 해줄 때 힘을 얻기도 했다지요.
강연을 다니던 때 마침 철도파업이 있었어요. 듣기로 독일 철도회사인 ‘디반(DB)'에 있는 두 개의 노조 중 작은 쪽 노조가 자신들도 제1노조와 같은 권리를 주장하며 72시간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라 했어요. 미리 예고된 파업이었고 열차가 아예 안 다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일정에 따라 기차를 타야했던 상황에서는 예측불가능함에 스트레스가 되긴 했어요. 그런데 제가 독일어를 못 알아들어서일 수도 있지만 한국의 철도역에서처럼 “금번 노조의 불법파업으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습니다. 고객님들께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처럼 노조 탓 하는 재수없는 방송은 나오지 않았고, 다만 독일 사람들은 다른 이동수단을 미리 찾거나 지연된 시간표에 따라 자기 일정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러한 철도 파업 관련 얘기를 해준 분은 에큐메니컬(교회일치운동) 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님이었는데요. 마침 자기도 그 주말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교회 세미나가 있어서 기차 타고 가려고 했는데 파업이 어떻게 끝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얘기해준 게 하나 더 있어요. 공교롭게도 이번 교회 세미나의 주제 중 하나가 교회에 고용된 이들의 파업권을 인정할지 여부였대요. 그런데 어쨌든 교회 사람들 중에는 그 세미나가 상당히 진보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신을 위해 봉사하는 일’과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연결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이 철도 파업과 같은 특정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도 아예 언급을 피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하네요. 암튼 한국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에 들어가는 교단 중에는 보수적인 곳이 더 많은 것 같던데, 독일에서 한국의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진 종교그룹은 동아시아선교회(DOAM)나 이엠에스(EMS, Evangelical Mission in Solidarity)처럼 에큐메니컬 배경으로 일하는 이들이 많더라고요.
이 사진은 슈투트가르트로 가던 중 파업의 영향으로 예정과 다르게 기차가 멈춰섰던 역에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며 찍었던 사진이에요. 이 역의 이름이 비블리스인데요, 나중에 듣고 보니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폐쇄된 핵발전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대요. 독일에선 핵발전소에 반대하는 운동이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후쿠시마 사고 터지고 나서는 무려 25만명 정도가 원전 폐지 데모에 참여했다네요. 일본에서 사고가 난게 3월 11일인데 3월 30일에 독일 총리가 2022년까지 원전을 다 폐기하겠다고 발표했으니 오랜 운동의 역사에 비하면 순식간에 결정이 나온 것이기도 하죠.
후쿠시마 이후에도 원전 비즈니스 어쩌니 하며 나서던 한국 정부에 비하면 독일 정부가 그래도 더 나은건가 싶기도 한데, 한편으론 한국에서 한창 황사와 미세먼지 신경쓰다가 독일에 도착해서는 너무나 상쾌한 공기를 경험하면서 했던 생각들, 가령 제1세계에 있던 공장들을 다 제3세계로 내보내고 자기들만 ‘친환경’을 누리는 것처럼 원전폐지도 그렇게 사고한 결과인건가 얄궂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부활절 평화 집회 때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적은 세월호 피켓을 들고. (독일) |
우크라이나 분쟁 규탄 시위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설명하느라 애쓰던. (핀란드) |
세월호 1주기가 겹치는 때이기도 해서 들고갔던 <금요일엔 돌아오렴> 책을 그 쪽 단체 활동가들에게 전하고, 집회 때 “진실을 인양하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기도 했는데요. 처음엔 저의 짧은 영어 때문에 사
람들이 이 사건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섬으로 가는 페리가 중간에 침몰했는데, 수학여행가던 고등학생을 비롯한 300여명이 죽었고, 구조된 이는 한명도 없었다. 지금도 물 속에 10명이 있고, 유가족들은 이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다고 하는데 국가는 시위대를 진압만 하고 있다.” 나중에 돌아서 생각해보니 사고가 났을 때 국가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상식이 있는데, 제가 설명한 내용으론 한국 정부가 하는 짓이 그 ‘상식’밖의 이야기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차라리 활동가들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말의 허상을 알기에 서울에서 세월호 문제로 5만명씩 모여 집회를 했다고 해도 바로 알아들었고요. 최근에 세월호 인권선언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했는데요, 독일 사람들을 만나고 나서 더 느꼈던 건 결국 무엇이 존엄한 삶인지 그 기준에 대한 공통의 감각이랄까 이런 것들이 사회마다 다를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계기였던 것 같아요. 그곳 사람들과 우연히 실업급여 얘기가 나왔을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요. 한국에선 실업급여나 일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에 대해 ‘복지병’이니 ‘공짜점심’이니 하며 여전히 논쟁이 되는데, 독일에서 그런 논쟁은 이미 사회적으로 종결이 된 논쟁이고 아무리 보수정권이 들어서도 ‘복지가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식으론 감히 말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이들은 오히려 지금의 복지혜택으론 그럴 듯한(decent) 일상을 꾸리지 못하기에 복지를 더 확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부럽기도 했어요. 한국에서도 열심히 싸워나가야겠죠.
아래 사진은 커넥션 사무실이자 이번 사업을 코디한 상근자 ‘루디’가 사는 집이기도 한 건물의 정원 모습입니다. 90년대 초에 만들어진 단체이고, 활동은 80년대부터 같이 해오면서 지금은 다들 50대 초중반에 접어든 이들인데요, 그들의 관계 사이에서도 많은 굴곡들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20년 넘게 한 활동을 같이 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떠올려보기도 했어요. 거기도 단체들 재정이 상근자를 여러 명 둘 정도가 안 되기도 해서 1명을 제외하곤 다들 각자의 생업을 가진 상태로 활동을 하는 점이나 남아있는 여성 활동가의 숫자가 극소수라는 점, 최근 10년간 조직에 새로 들어온 활동가가 없다는 점들은 또 다른 생각 거리들을 던져주지만, 적어도 동네 이웃으로 지내며 같은 지향을 가지고 고민을 나누며 행동으로 이어나가는 모습은 좋아보였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누렸던, 정원을 바라보며 앉아 커피 한잔 하며 잠시 숨 돌릴 수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독일 다녀온 이야기는 여기서 일단 마치도록 할게요. 더 궁금한 게 있는 분은 8월에 있을 회원모임에 놀러들 오세요. 조만간 일시와 장소를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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