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담장너머

18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7/02/02
    7월 3일-7월 6일
    나르맹
  2. 2016/09/03
    6월 28일-7월 2일
    나르맹
  3. 2016/01/03
    6월 20일-6월 27일
    나르맹
  4. 2013/09/22
    6월 18일
    나르맹
  5. 2013/09/20
    6월 11일-16일
    나르맹
  6. 2013/09/19
    6월 1일-10일
    나르맹
  7. 2013/09/19
    5월 21일-31일
    나르맹
  8. 2013/08/31
    5월 14일 - 20일
    나르맹
  9. 2013/07/30
    5월 9일-13일
    나르맹
  10. 2013/07/23
    5월 1일-8일
    나르맹

7월 3일-7월 6일

7/3(일) MP

눈을 뜨면 "15명이 우글우글"하는 공간이 보이지만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는 순간 나는 어느새 중재 워크숍이 열리던 공간에 앉아있다. 정말 대단한 마법이다. 일요일 오전 6시. 하루 더 쉬면서 책보고 편지를 쓸 수 있다니 기분이 좋다. 편지 쓰는 것이 '일'처럼 느껴질 법도 한데, 아직은 돌아올 답장을 생각하면 힘이 불끈 솟는다. 문장을 짧게 쓰는 연습을 신경써서 해야겠다. 일기장에 쓰는 글씨도 좀 더 알아보게 쓰고.

7/4(월) MP

파리의 거리가 떠올랐다. 르네 아저씨 집도 생각이 났고. 하루하루 어떤 새로운 일이 펼쳐질까 기대하고 설레던 기분이 좋았다. 동시에 옆에 의지하고 같이 즐길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 오른쪽만 안 굽혀지던 손가락이 이젠 왼쪽도 안 굽혀진다. 좀 쉬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15명이 씻는 아침시간. 내가 씻을 타임. 화장실에 갈 시간을 잘 찾아야겠다. 곧 익숙해지겠지. 월요일이다! 꼭 첫 출근하는 기분이다. 약간의 긴장 약간의 설레임.

7/4

쿠사리. '꼽산다'는 말.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긴 하다. 이럴 땐 '아직도'다. 아직도 1년 남았는데 앞으로 좀 더 무던해져야겠다. 햄 생일, 기념일을 앞두고, 갇혀있는 처지가 주는 무기력감일까. 힘이 잘 안 난다.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

7/5(화) MP - 햄, 엄마 접견

나를 돌보는 것, 돌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유, 그리고 옆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벨기에 브뤼주를 떠올리고 있었다. 호스텔에 현지랑 남아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다독이던 시간들이었다. 하루하루 리듬이 잡히기 시작하는 것 같다. XP 활용에 대한 교육, 진도를 나가고 있다. 어떻게 공부를 할지 조금씩 감이 잡힐 듯 말듯, 아직은 여전히 간을 보는 중이다. 사생활이 없는 곳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실감이 난다. 날 자꾸 만지는 이에게 어떻게 관계를 악화하지 않으면서 잘 표현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난 아직 구속된지 100일도 안 된 '싱싱한' 존재이다. 10년을 예사로 산 사람들 앞에서 말이다.

7/6(수) MP

1년의 절반이 지났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제 절반 더 보내면 내년이 된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도 그 순간만 지나고 스트레칭하면 많이 개운해지는 것 같다. 몸이 편해져서인지 갑자기 남은 시간이 길단 생각이 들었다. 참 간사하다. 편지가 더 많이 오면 좋겠다. 그럼 그때 충족되는 욕구는?

7/6

기다리던 햄의 전자서신이 오긴 왔다. 그런데 내가 보낸 등기는 못 받았다고 한다. 헐, 했다. 등기영수증도 받아 확인을 해봤다. 자세히 보니 익일특급으로 처리가 안 된 것이다. 짜증, 당황스러움, 무기력함. 억울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치워주세요"라는 지시에 누군가 "징역에 불필요한 게 어딨어. 다 필요하니까 이ㅣㅆ는 것데 불필요한게 아니라 못 쓰게 하는거지". 무릎을 딱 쳤다. 이곳의 규율에 어느새 적응해서 뭐 걸릴 건 없다 내 스스로 검열을 하던 프로세스에 시선한 충격을 준 말이었다. 자조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28일-7월 2일

6/13 나동 접견

 

6/28(화)

쌀 300가마를 드디어 끝냈다. 40kg쯤이야 이제 거뜬히 나를 수 있는 요령이 생긴 것 같다. 4시에 입방을 했기에 혼자 짐 정리를 좀 했다. 책 권수가 생각보다 많아서 얼른 택배로 내보내야겠다. 왜 갑자기 런던 떠나던 날 준비하며 택배를 부치러 가던 장면이 떠오르는 것일까.

딱 1년 전, 햄과 나는 홍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만나 걷고 저녁을 먹고 술 한잔 하고 홍대 앞 놀이터에서 데이트를 했었지. 휴우-

 

6/29(수)

드디어 내일 이 취장을 떠난다. 영치로는 같이 있던 형제 분이 역시나 내일 옮긴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되니 좀 만 더 기다리고 참아볼 걸 하는 아쉬움도 남지만, 그래도 지난 주 내 정신 상태를 떠올려보면 지푸라기라도 잡고픈 마음이었기에, 예측가능성을 원했기에 내 최선의 선택이었다 위로를 하고 있다. 갑을관계에 얽메이지 않고 자격증도 따고 자기표현 더 알아보고 판단할 걸 하는 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난 너무 막막했었다. 현민과 마지막 만남이었던 어제까지도 제대로 된 인사 못 나누고 고작 어디로 옮길지 하는 얘기나 나눈게 미안하고 민망하고 아쉽다. 편지나 한통 보내야지-.

내일, 어떤 사람들을 새로 만나게 될지 궁금, 설렘. 위계질서가 좀 낫긴 할까. 아니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든다.

6월 27일 엄마 동생 접견.

6월 김정연 홍수봉 접견

 

6/30(목)

6월의 끝, 여자친구, 뭐 이런 농담을 던질 수 있을 만큼 지금 기분은 매우 편안하고 여유롭다. MT촌 단체 방에 온 것 같기도 하고, 술이 없고 서로 아직 잘 모르기에 각자 일을 하거나 옆사람과만 조용히 얘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배낭여행 다닐 때 묵었던 유스호스텔 생각이 나기도 한다. 기분이 참 묘하다.

늘 편지 쓴다고 빠듯하던 시간에서 벗어나 이젠 오히려 시간이 남는 게 오히려 낯설고 뭔가 불안하기도 하다. 졸지에 '소지'란 역할을 맡았다. 징역이 풀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민이 나갔다. 나가고 나니 이제야 12시 운동 시간에 관용부 출역수들과 함께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참.

 

7/1(금)

와. 7월이다. 이게 얼마만에 써보는 MP인가. 감격스럽다. 아침마다 잘 굽혀지지 않는 오른 손가락도 한 일주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아침에 일어나 씻고, 다른 사람들이 씻는 동안 난 자기명상 공감을 하고 이렇게 노트를 하고 심지어 책도 잠깐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 소지로서 생활이 시작된다. 커피 타는 일. '을'이 안 되면 '교육생'으로 있을 땐 커피 타는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뭐 '존중' '공평함' 이런 욕구들이 아쉽지만, '유대' '친밀함' 인정, 평탄함을 위해서 선택하고자 한다. 드디어 영배씨와 수다를 떨 수 있겠구나. 와. 비가 안 와야 할텐데.

(-이번 주말에 편지 보낼 곳:)

낮에 영배씨와 감격적인 해후를 맞았다. 40분 남짓. 운동장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는데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더라. 낮에 고무 장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있을 수 있다니 이거 뭐 하루아침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기분이다. 햄 생일 선물을 뭘 해줄 수 있을까. 그림을 못 그리는 게 한이다.

겹겹이 놓여있는 장벽들- 유리창, 철창, 철조망, 담벼락, 촘촘한 구멍으로 시야를 가로막으려 애쓰는 철제 슬레이트 틈 사이로 정차하는 버스 소리가 들려온다. 녹색칠이 된 구로05번 마을버스. 금요일 밤 9시 30분. 이 시간에 마을버스를 타고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려나. 일주일의 노동을 마무리 하며, 다가오는 주말을 떠올리며. 열심히 돌아가는 선풍기 소리. 각자의 형 종료일을 향해 다시 또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

 

7/2(토) MP

아침에 깨어 차분히 명상을 할 수 있는 시간에 감사하다. 여러 통찰들이 생긴다. 내 어깨가 취장은 벗어났지만 여전히 경직되어 있구나. 햄 생일. 기념일을 앞두고 신경이 쓰여서 뒷골이 무거웠구나. 어떡하면 햄에게 내 사랑을 표현할까 고민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내가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가 보였다. 그동안 했던 일 리스트, 앞으로 할, 하고싶은 리스트를 만들어서 보내볼까 싶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20일-6월 27일

"새집을 구할 때까지 선릉역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호텔에 거처를 마련했다. 주변을 산책하기에도 그만인 곳이다. 한 변호사와 출소 기념으로 일식식사를 하고 호텔에 짐을 풀었다. 가슴이 뛰었다. 하얀 시트 위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있었다. 그리고 시트가 흥건하게 젖을만큰 눈물을 흘렸다. 슬퍼서도 아니었고 기뻐서도 아니었다. 그냥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샤워를 하고는 그리웠던 편의점으로 가서 신선한 우유를 벌컥거리며 마셨다. 거리는 현란한 불빛과 건물들과 빠르게 움직이는 차들로 현기증이 났다. 나는 작은 방에 갇혀 1년 6개월을 보낸 후유증을 그렇게 겪고 있었다." - 신정아 <4001) 401쪽.

그냥 괜히 공감이 되었다. 내가 출소하는 날, 집에 돌아가면 나도 가슴 깊은 곳에서 치미는 눈물을 흘릴까?

"일년을 죽어라 먹던 '꿀꽈배기'와 '야채크래커' '빠다코코넛'이 사라지고 '맛동산'과 '홈런볼'이 들어오자 나는 기쁨에 겨워 정신없이 먹어댔다. 심지어 나갈 때가 되어 가는데 그제서야 '홈런볼'이 들어오는 것이 아쉽기만 했다. '홈런볼' 때문에 안 나갈 수도 없는데 그토록 아쉬움이 들었으니, 나는 스스로도 엽기적으로 느껴졌다."

*13일 소인이 찍힌, 18일에 받아본 염 편지에 적힌 글귀. 수하가 염에게 보내주었던 메모라고.

"팔이 하나 남아 있고 눈이 하나 남아있다. 그러니까 아직 괜찮다."

"마음이 사막의 모래알처럼 빠짝 말라가는 삭막함 속에서도 마음 한켬에서는 풍성함과 고요함을 유지하는 오아시스를 키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니까 아직 괜찮다 부터 쭈욱 빨간 줄을 그어놓았더라)

 

6/20(월)

덥다.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이틀 쉬고 다시 일 시작한 날. 위드 자격증 교육생 신청을 했다. 조출을 해서 새벽달을 본 감동이 남아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다시 잡힌 조출. 일주일 뒤 달은 좀 더 하늘 높이 떠있겠지? 그믐달 정도는 아닐테고 .16시간을 깨어있다. 피곤하긴 하다. 이번주엔 휴일이 없네. 이번 주말이 취장에서 보내는 마지막 주말이면 좋겠단 심리적 마지노선이 만들어지고 있다.

6/21(화)

또 긴 하루가 이렇게 끝이 났다. 어제 아침 쌀 푸다가 찧은 왼쪽 무릎의 멍이 시퍼렇게 보인다. 내게 선택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내일 본다는 정보화교육생 선발 시험에 합격해도 괜시리 영치과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걸린다. 약속-영치에서 일하고 싶다는-을 지키는 것, 배려, 평탄함도 중요한데 정보화 교육생 신청을 한 것은 눈 앞에 더 확실하게 보이는 평탄함 예측가능성 때문이리라. 아, 이런 고민들이 피곤하다. 확실한 정보,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필요하다.

6/22(수)

"정보화교육생" 선발시험을 보고 왓다. 금요일에 발표가 된단다. 분류과에 가서 물어보고 싶긴 한데 귀찮기도 하고. 결과 나온 다음에 가서 물어볼까나. <경제성장이~> 다읽었다. 독서의 속도를 높여야겠다.

6/23(목) (햄 접견)

어느 새 6월도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남았다.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는 햄 말대로 오늘도 이렇게 일기를 쓴다. 고마워도 모자랄 판인데 오늘은 햄의 말에 서운함을 느꼈다. 내 처지를 좀 더 이해받는 것, 물론 햄만큼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도 없겠지. 그렇다면 그 걱정해주는 마음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것 같다. 오죽했으면 내가 "그럼 정보화 교육생 신청 취소할까요?"라고 물었을까. 지금 드는 생각이지만 햄도 내게 서운하거나 섭섭한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 방금 햄에게 쓴 편지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 같은 방 진**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씨이 행동에 뜻하지 않은 큰 자극을 받았다. "파스 갖고 계신 분?"이라는 다른 이의 질문에 나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그의 모습을 곁눈으로 본 것이다. 난 편지를 쓰다가 그 질문에 대답하려던 찰나였다. 얄밉고 좀 짜증이 나기도 했다. 욕구가 안 찾아져서 자칼쇼, 자칼 인아웃을 해보니 그나마 욕구 찾는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찾았다고 보니 사실 그리 큰 건 아니었다.

그는 영치금을 안 쓰고 나는 쓰는 상황에 대해 인정(표현) 받는 것? 공평함은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그를 좀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는 다만 파스가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혹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그런 손가락질을 한 것일까? 평소에 쌓인 이미지들, 쉽게 자각하지 못하지만, 특정 행동에 자극을 크게 받는다면 그건 그에 대한 이미지, 평가가 무의식 중에 있는 것이다.

6/24(금)

여기서 배우는 것, 일희일비하지 않는 초연함? 정보화교육생 담당 주임이 왔다갔다. 분류과에 월요일에 가기로 했다. 뭐 결과가 어찌되든 이 예측불가능성에 대해 초연해지려는 평정심을 유지해야겠다. 취장에 남으면 남는대로 떠나면 떠나는대로.

편지를 먼저 쓰고 일기를 쓰니 필력, 기운이 달린다. 주말 이불 빨래 할 수 있는 날씨였음 좋겠다. 장마의 한가운데에서.

6/25(토)

출근. 아침 6시 20분.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냐며, 기억해야 하는 날이라는 상투적 말을 하는 담당주임. 그치, 기억해야겠지. 얼마나 많은 민간인들이 군인에 의해 살해되었는지. 한겨레21, 씨네21 정기구독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답답해서인가? 분류과와의 면담. 어떻게 될지. 이거 스트레스다. 머리 숱이 좀 빠진 것 같기도 하고. 이 비는 언제쯤 그치려나.

6/26(일)

비가 좀 개어가는 듯 보이는 하늘의 모습이다. 비 갠 뒤, 비 갠 오후의 하늘의 구름들이 참 예쁘다. 비갠 뒤 불어오는 습하지 않은 바람도 선선하니 좋다.

<나는 가수다>에서 한영애 "조율"을 JK김동욱이 부른다. 원곡이 아쉽지만 아쉬운대로 반갑다. <오늘의 교육>에 괜찮은 글, 레퍼선스가 많아서 자극이 된다. 즐, 온정에게 감사 인사를 다시 표현해야겠다.

6/27(월) (엄마, 문창 접견)

휴. 긴 하루였다. 조출을 해서인지 지금, 노곤하다. 우여곡절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뭔가 내가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는 것만 같은데 어쨌든 정보화 교육생에 선발이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 기록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없어질 정도로 아직은 정리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 같다. 민망함. 수많을 것 같은 느낌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이다. 몸이 으슬으슬하다. 

(이젠 다 극복했다고, 들춰보기 멋쩍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타이핑을 해나가는데, 취장 벗어났다고 좋아하기엔 또다른 인간관계와 부딪혀야 하는 긴장과 대기상태의 팽팽함이 5년이 지난 나의 몸에 다시 되찾아오는 기분이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18일

6월 18일(토) - 아침, 조짱 접견

오른 발목 통증이 나아질만하면 또 아파와서 의무과에 휴역증을 끊어왔다. 휴식을 얻어 오랜만에 주말 이틀 온전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작업장 다른 재소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몸이 아픈 것 자체보다는 나의 아픔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 않고 걱정이나 돌봄보다는 오히려 의심과 불신을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왜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못 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일까.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한다, 너가 일을 쉬면 내 할 일이 많아진다는 생각. 그렇다면 시스템의 문제인데, 보통은 시스템이 아닌 해당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군 가산점에 흥분하는 예비역들. 귀족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다.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 

이곳에서 통용되는 언설들이 있다. 징역에서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다거나 그렇기에 징역살이는 결국 혼자 견뎌야 한다는 그리고 이곳에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착함이 오히려 이용당하는 곳이라는 말들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적자생존의 정글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말들이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말은 일면 자신이 처한 역경을 현명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유용한 생활방식일 수도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성을 갖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방법은 각자 살아온 환경,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이 택하게 되는 방식은 남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따져보는 것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다고 쉬 말하긴 어렵다. 이 때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개인을 그렇게 환대와 상생이 불가능한 곳으로 내모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본주의의 발달이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붕괴시켜 농민들을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키고 근대적 빈곤을 만들어내면서 두려움(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늙어서 고생할거야라는 식의)과 경쟁이 지배하는 시대정신을 탄생시킨 것처럼 한국의 교정 현실 즉 이 징역도 결국은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선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정신을 심어주고 이로써 사회 복귀한 자들이 체제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징병제를 유지함으로써 순응적 노동자를 양산한다는 박노자 선생의 지적처럼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정'은 개별 교도관들의 인성이나 성품과 무관하게 인간에 대한 불신, 시스템에 대한 무기력(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어차피 혼자 나서봐야 자기만 손해야)을 학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명제를 이 곳에서 증명하려는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내면화한 이들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이 역시 나의 '평가'일 뿐 한 사람 한 사람 대화를 나누면 분명 그들이 가진 인간성(예컨대 '좋은 아빠') 또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생각들로부터 일단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말아야겠다. 힘이 약하고 아픈 것도 '죄'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 곳의 현실이 원망스럽고 분하기도 하지만, 몸이 제 상태가 아니면 생각의 흐름도 건강하지 못하고 나 역시 타인에 대한 증오를 은연 중에 키우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단 경각심이 든다.

우리의 선한 인간성을 믿으며

(일기를 보니 색깔 펜으로 쓰고 지우며 많이 고쳐놨던데, 이렇게 정리해서 밖에 써보냈나보다. 문단 별로 번호를 매긴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직 손으로 직접 쓰는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았었나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11일-16일

6월 11일(토) - 지환, 미란, 영선 접견

반가운 얼굴들이 접견을 와주었다. 그런데 접견실을 나와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접견실에 흐르던 묘하게 무거운 기운을 바꿔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즐거운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내 걱정을 안 해줄거란 두려움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관심, 돌봄에 대한 내 욕구를 확인한다. 한편으론 먼 길 와준 분들이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싶은 욕구 또한 있다는 것을 보았다. 역에 내가 갇혀 있는 게 국가의 탓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택해 온 길이니,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분들을 떠올리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렇기에 그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내가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겠다. 연기하면 힘들테니 실제로도 잘 지내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다. 출소했을 때 온 기운이 빠져 쓰러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내 마음 돌봄을 잘 해야겠다.

지금 TV에 영화 <글러브>를 보여주고 있다. 올 1월 인천 전교조 연수에 연미 쌤과 함께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것보다 채식에 대한 배려를 받았던 기억이 크게 떠오르는 걸 보면 역서 채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긴 있나보다. 연미 쌤한테도 편지 한통 보내야 할텐데. 다음 주에 아침과 함께 면회를 오면 좋으련만.

"집합"이란 말은 사회에 나가면 들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 불신의 존재가 되는 것. 언제든 혼날 준비가 되는 것. 그 위축된 기분이 불쾌하고 싫다.

6월 12일(일)

사람들에 치이다보니 가끔은 내 편은 커녕 주변 모두가 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내 마음은 꽁꽁 닫혀 있어서, 얼굴은 웃으려 하지만 초췌하다는 말을 듣기 일쑤이고 작은 자극에도 날카로워지거나 혹은 모든 감정을 삭제한 채 멍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씩 예기치 못한 호의를 한번씩 받고 나면 이내 곧 마음이 눈 녹듯 풀려서 여름 하늘 구름 한번 올려다보며 심호흡 한번 고르기도 한다. 경직된 내 몸 곳곳의 근육들에 호흡을 불어 넣어주면서 몸을 편하게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날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그 상대의 말과 행동 이면에서 비극적으로 표출된 아름다운 욕구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가져본다. 뒷골이 땡기고 목 두, 어깨가 경직될 때마다 이제 습관처럼 존중 받는 것, 자기 보호, 따뜻함, 자기 표현 이런 욕구들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쌍욕을 아침 7시부터 들었던 긴 하루도 드디어 저물어간다. 조출을 나가 간마네 형광등 불빛 방해 없이 동틀녁 사위를 볼 수 있었다. 괜히 더 황홀해지는 기분이었다. 생매장한 살인마. 이러니까 그가 괜히 더 악마처럼 보인다. 존중 (받는 것). 자기표현. 나는 과연 그와 인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연결하고 싶은 걸까? 그냥 피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6월 13일(월) - 나동 접견

나동이 다녀갔다. 마치 엊그제 만나고 다시 만난 것처럼 익숙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덤덤히 얘기를 나누는 기분이 좋았다. 내 말을 온전히 다 하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간지러운 부분을 적시에 얘기해주는 나동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마침 오늘 보라 생일이라고 오후에 접견 마치고 이제 보라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맥주 한 잔. 캬. 내일은 특별접견이 있다고, 오늘 들어온 여옥 전자서신으로 들었다. 매일 접견만 있어도 징역 살만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카펠라 공연에 갔다가 정말 우연히 현민을 만났다. 이 무슨 기묘한 상황인지. 일을 뺄 수 있단 생각에 그리고 갔다가 겪은 일로 글 쓸 거리가 생길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라이브 공연의 맛을 느껴보려고 갔었다. 국민체조를 시키는 부분에선 뜨악하기도 했지만, 마음껏 소리지르고 하니 스트레스는 풀리는 기분이었다. 현민은 어찌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가면 홍대 클럽 공연도 바로 가야겠다. 어제 오늘 달리기를 쉬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뛰어봐야겠다. 태양볕이 뜨겁긴 하다.

6월 14일(화)

부은 손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반질'크림 구매를 했다. 손발의 굳은 살, 주부습진을 위한 연고라고 한다. 오늘 승호씨, 케이티, 여옥이 특별접견을 와주었다. 무지 반가웠다. 내 징역에 몇 라운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 접견까지 마치고 나니 한 고비를 또 지난 기분이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험한 말들이긴 하지만 그냥 이 상태를 받아들인달까. 내일은 햄이랑 통화를 또 할 수 있으니, 그러고 나면 이번 한주도 훌쩍 흘러있겠구나.

6월 15일(수)

1시 살짝 전에 전화 불려가서, 햄이 씻고 있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쉽지만 아침과 통화를 한 것으로 만족. 엄마 편지(장접 일정 관련) 받고 살짝 또 울컥하려고 하는데, 워워. 느낌에 어제 앰네스티 접견 덕에 담당 주임이 나를 '잡범'과 구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은 게 학창시절 교사들의 관심을 받으며 누리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떠올랐다. '존중'을 가장 큰 욕구라 생각했는데, 오늘 주임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돌봄, 관심, 보살핌도 큰 욕구였다는 걸 깨달았다. 기다리던 수감자 우편물이 들어온 날. 카페에 올릴 글 하나 보내야겠다.

6월 16일(목)

어제부터 신호가 오던 오른 발목이 오늘 더 아파와서 얘기를 하고 1시 입방을 했다. 꾀병 소리를 듣는게 힘들긴 하지만 -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이해. 돌봄의 욕구- 그래도 쉬고 싶었다. 내가 빠져서 일을 더 할 분들에 대한 배려도 중요한데 여기는 "배려를 배려로 받지 않고 이용해 먹는" 불신의 공간이기에 나도 그냥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고 내 몸을 챙긴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전에 양파, 오이, 당근, 양배추, 배추, 감자, 대파, 애호박 등등 식재료들 오후엔 냉동 닭, 돈육, 돈불(고기) 등의 고기가 들어오기에 일을 하고 있다가도 "물건" 외침과 함께 달려나가 물건들을 수시로 나른다. 물건을 나르는 사람, 물건 나르는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된 이곳에서 처음엔 괜한 욕 안 들으려고 그리고 내가 더 들면 남이 덜 고생하리란 생각에 남들만큼의 양을 들고 날랐지만 오늘은 기운이 없어서 남들이 2개, 3개씩 들 때 1개를 들었더니 바로 "야 넌 왜 한 개만 들어, 장난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가 힘자랑 하는 곳도 아니고 딱 한번 그렇게 들었는데 바로 '쿠사리'를 먹는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건 나의 과도한 예민 반응인 것일까. 다같이 똑같이 들어야 평등하단 그의 마음. 결국 '이해'의 문제란 생각.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이해받지 못했을 때 그는 '버럭'했지만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6월 1일-10일

6월 1일(수)

드디어 6월이다. 유난히 길게 느껴지던 5월 마지막 날. 6월 첫 날. 일도 평소보다 많았다. 한 사람의 실수 아닌 실수를 재수없게 소장이 발견했고 보안과에서 취장 주임에게 연락을 한다. 주임은 반장을 부르고 반장은 다시 조장들, 조장은 다시 작업원들을 소집한다. 이 연쇄고리. '처벌'은 '장급'들이 받는다. 이 무슨 파시즘도 아니고. 내가 아는 '책임'의 의미와 이 곳에서 '책임을 진다'의 의미가 많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난 덕분에 5일간 설거지를 쉴 수 있게 되었다. 하루, 이렇게 고비 넘겼으니 남은 6월은 후딱 가면 좋겠다. 6월 말 난 여전히 취장에 있으려나-

6월 2일(목)

어느 새 목요일이라니. 냄새에 민감한 내게 어느 덧 취장 곳곳의 조금씩 다른 냄새, 방 안의 냄새가 익숙해진 것 같다. 여전히 불쑥불쑥 낯섬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며칠 만에, 근 1주 아니 10일 만에 뛰었더니 기분이 좋았다. 뛰기 힘들어도 걷기는 계속 해야겠다 최소한. 오이미역냉국의 시원함. 고기가 간간이 들어있는 하이라이스와 밥. 찐감자. 이불 빨고 싶단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여기 생활에 정착해야겠단 마음을 갖고 있나보다. 조출. 설거지 없는 이번 주 말까지의 시간을 즐겨야지.

6월 3일(금)

<그날이 오면>에서 보내준 책을 받았다. 고마울 따름이다. 주말에 답장이라도 한통 보내야겠다. 즐에게 온 편지를 통해 서울대 본부 농성 분위기를 들었다. 역시나 KBS 뉴스나 신문으로 접하는 것과는 또 다른 분위기라 반갑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2005년 농성 때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취장에 와서 네번째 맞는 주말이다. "이 곳에 오지 않았으면 접해보지 못했을 사람들"이란 표현을 머리로 들었을 때와 여기 막상 지내면서 증인 분에게 듣고 나니 기분이 또 새롭다. 보편적 인간성에 대한 믿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차이 역시 섣불리 동질화하려고 하지 않는 것. 둘 사이에 발란스를 맞추는 것.

6월 4일(토)

벽에 걸어둔 가방에서 편지지를 꺼내다가 사라졌거나 혹은 내가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햄의 편지를 우연히 발견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 25일자 전자서신. 햄이 접견와준 날 써준 서신이다. 이번 주는 햄의 손을 잡아보긴 했지만 편지가 없어서 내심 불안해하던 차였다. 합동접견 때 엄마 옆에 앉지 말고 햄 옆에 앉아서 손도 잡고 껴안기도 할 걸 하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온다. 에효. 내일도 이빠이 편지를 써보아야겠다.

6월 5일(일) 

아직 아침 9시가 안 된 시간. 어젯 밤에는 내가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는 시간을 두고 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졸려서 생각 정리를 하다가 잠들었는데, "형은 너무 내성적이야. 아직 세상 사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애." 이 말이 자극이 되는 것 같다. 나도 내 딴에선 신경 많이 쓰고 배려를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하는 욕구가 가장 큰 욕구인 듯 하다. 그 아이도 배려받고 이해받고 싶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자극에서 시작된 생각들이 이제는 나는 앞으로 어떤 사람들,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나의 선택은 어디로 이런 생각들로 이어졌다. 예컨대 비폭력대화가 전제하는 보편적인 욕구의 그 보편적 인간성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경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에 전제된 서로의 차이들에 대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져 있는 것인가 하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분명 차이가 있는데 거기서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을까 뭐 이런 질문인걸까. 아직 명확히 정리는 안 된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 읽었다. 고통 속에서조차 의미를 찾아 내는 것. 삶에 물을 것이 아니라 삶이 내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을 찾을 것.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어떻게든 참고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타고난 유머감각으로 자기 자신에게 초연해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특별히 사용해야만 한다. 자기 자신에게서 분리될 수 있는 인간의 이 기본적인 능력은 로고테라피 치료 테크닉에서 말하는 역설적 의도가 작용될 때마다 실현된다. 그와 동시에 환자는 자신의 신경증 증세로부터 자신을 떼어놓을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고든 W. 울포트 교수의 말과도 일치한다. (...) "신경증 환자가 자신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된다면 그는 이제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며 아마 치료되고 있는 중일 것이다."

6월 7일(화)

기대했던 챔의 편지가 없었다. 네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도 어딘가 허전하다. 과대망상에 빠졌다가 내일 온다고 지난 월요일에 얘기한 햄의 말도 믿지 않고 있다가 불쑥 햄이 오고 나면 민망해질테니 오늘은 이 정도에서 적절히 감정을 통제해야겠다. 이번 주 일요일 드뎌 첫 조출을 한다. 시뮬레이션을 했더니 불안함이 좀 주는 것 같다. 4시에 출근해본다는 경험에 대한 은근한 설레임도 있고. 징역보살. 징역이 보살이라는 그 표현이 와닿는다.

5시 입장인데 4시에 들어와보니 그 한시간 차이가 주는 여유, 혼자 있는 시간이 좋았다. 오늘 축구 중계를 생중계로 해준단다. 사회의 광고를 실시간으로 본다니 어떤 기분일까. 소설 봐야겠다. 햄이 넣어준 학술서는 잘 읽히지가 않는다.ㅠㅠ

6월 8일(수) - 햄 접견

햄이 와주었다. 전자서신과 손편지까지 3종 세트를 받은 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오늘 15분 뛰었다. 당분간 15분씩 꼬박 뛰어야겠다. 군사주의 문화와 계급과는 관련이 없다는 깨달음. 이곳이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사는 사람들이라서 좋은 경험한다고 생각하라는 말에 대한, 당분간 화두로 붙잡고 고민해봐야겠다.

6월 9일(목)

또 하루가 갔다. 아침에 눈 뜨고 몸이 찌뿌둥할 때 햄과 함께 봤던 일출. 낙산사 산책길. 그리고 미래에 함께 걸을 길들을 떠올리면 기운이 불끈! 난다. 고마운 햄.

6월 10일(금)

오늘은 좀 몸이 찌뿌둥한게 다른 날보다 더 피곤한 것 같다. 현지 편지를 받고 답장을 열심히 썼다. 아무래도 6월 말까지는 꼼짝없이 취장에 붙어있어야겠다는 생각을 오늘 만난 영배씨, 현민과의 대화에서 들었다. 아 피곤하다. 좀 자야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21일-31일

5월 21일(토)

첫 휴일. 밀린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가 짧아보이기만 하다. '국조'의 작업도 이젠 대충 다 알겠다. 개근하고 12사 갔다가 돌아와 상차리고 밥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청소 하고 걸레 빨로 좀 쉬면서 화장실 다녀오고 국 짬 버리고 다시 식간 깔고 국여분 버리고, 식수 받고 상 차리고 밥먹고 개근하고 설거지 하고 김치 개근 하면 점심 쉬는 시간. 이때 손빨래를 하고 구매장 쓰고. 전업을 언제 나갈지 기대 말고 일단 두 달 꼬막 채운다 생각해야 겠다.

오후 운동 30분 동안 담벼락 안 운동장을 걸으며 현민과 대화를 나눴다. 내 징역의 전망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과의 경쟁 관계 때문에 내가 관용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것이 현민의 전망이었다. 이떻게 될지. 훈련생 신청을 다시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 중인데, 이번엔 여러 말 안 돌게 잘 넣을 수 있을지 걱정, 불안, 초조, 두렵긴 하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겠지.

5월 22일(일)

일요일. 이상하게 몸도 무겁고 허리, 꼬리뼈 통증이 심했다. 차기 조장이 저녁 설거지를 대신 해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고마운데 자꾸 그 이면에 뭐가 있진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욕구 차원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겠다. 주임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들어서 내일 분류과 면담 신청 얘기를 할지 말지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계속 일할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얼른 허리가 괜찮아져야 할텐데.

지난 주부터 일요일에 <나는 가수다>를 보여준다. 지난 주엔 작업장에 있는 시간이라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7시 넘어서 보여주니 기쁘다. 지금은 김연우가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르는 중. 여기서 이런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감동이다.

5월 23일(월)

끝이 있는 고통은 견딜 힘을 준다.(예측가능성).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때 이 고통을 왜 겪어야 하는가 회의가 들면서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심리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분류과 면담을 신청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사람이 허리 아프다고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 군대 훈련소 왔다 생각하고 해야지. 여긴 강제로 노동을 하는 거잖아. 강제로 하는 데서 못 이겨내면 밖에서 자유로울 때는 어떻게 이겨내겠어. 분류과 면담은 시켜줄게. 시켜는 주겠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작업장 주임의 말이다. 이걸 확 물어버리고 싶긴 한데 일단은 좀 더 간을 보는 중이다. 국가인권위에도 내고 국민신문고에도 내고. (존중) 계산기를 좀 두드려봐야겠다.

5월 25일(수) - 햄 접견

오늘이 벌써 25일이라니. 곧 있으면 6월이네. 뜨거운 물을 페트에 받아와서 등허리를 좀 지졌다. 오늘은 기온이 꽤 높았던 것 같다. 여름을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급히 편지를 썼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일면 예상이 되면서도 투정을 좀 부리고 싶었다. 이러나 가족 접견에 엄마가 안 와버리면 어쩌나 싶다.ㅎㅎㅎ 내일도 접견이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전없세 CO노트 원고 청탁 받았는데...쩝. 무슨 말을 써서 보낼지 모르겠다.

5월 26일 - 혜란, 염 접견

오늘 무슨 종합선물세트처럼 무수한 편지를 받았다. 2009년 초 런던에서 Turning the Tide 트레이닝 때 만난 분들이 지지의 엽서를 보내주었는데 완전 감동이다. 아침이 보내준 손편지 세트도. 아까 작업장에서 얼핏 받았을 땐 햄 편지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방에 돌아와 보니 보이지가 않는다.ㅠㅠ 허리보호대를 하니 좀 더 괜찮아진 것 같다. 아프다 생각하면 더 아픈 것 같아서 돌봄 관심 존재감 평탄함의 욕구는 윶하면서도 안 아플 수 있게 내 몸을 잘 보살펴야겠다.

5월 27일(금)

관료 조직, 군대의 위계서열과 근대 학교 교육이 가정하는 교사-학생 관계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가르치는자-배우는 자가 이미 결정이 되어 있고 그에 따른 권력 그리고 심지어 인격적 우열까지 정해지기도 한다는 것. 개인차가 있겠지만 학생-낮은 지위의 사람은 배우는 자이기에 의심을 받는 존재 혹은 부족한 존재로 전제가 된다.

5월 28일(토)

드디어 내일 휴일이다. 1년 전 이때, 교생 마지막 날 아이들과 헤어져 마로니에 공원에서 인권영화제에 앉아 있으며 현지를 기다렸던, 그리고 밥을 먹고 성곽길에 올라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선 부천 집으로 먼 귀가 길에 올랐지. 아까 작업 마치고 사동으로 돌아오는데 아직 밝은 저녁 햇볕을 보며 캔맥주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읽을 책이 적당히 밀려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긴장감이 마음에 든다. 꾸역꾸역 산다는 생각을 없애주고 하루하루가 아깝단 생각을 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일 밀린 편지도 쓰고 카페에 보낼 글도 쓰고. 시와의 "여신이시여" 노래가 떠오른다.

5월 30일(월)

뭔가 긴 하루였다. 약 9시간 전 엄마와 햄을 만나 손을 잡고 포옹을 한 게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떡, 초콜렛, 과일, 밥, 나물, 다 더먹고 싶었는데..중간에 울컥 울음이 나왔는데 엄마도 역시나 우는 모습을 보며 슬프고 착잡하고 미안하고. 나를 지긋히 바라봐주던 햄이 고마웠다. "신입 오면 좀 더 편해질거야." "야 너가 엄살이 심한거지." 자극이 되는 말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5월 31일(화)

선규 형이 취장으로 왔다. 정말 기묘한 인연. 반가움이 컸다. 비가 왔다가 날이 맑아졌다 다시 소나기 후 지금은 그냥 살짝 우중충.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 떠오른다. 3년전 이날 런던으로 출국했지. 편지에 더 집착하게 되는데, 기대하지 말아야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14일 - 20일

5월 14일

오늘 아침엔 타이밍을 못 잡아서 자기연결할 시간을 놓치고, 처음으로 풀타임 일을 한 뒤 돌아와 TV(해리포터)를 눈앞에 두고 호흡을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그동안 한달을 했으니, 하루쯤 못해도 괜찮겠지 생각 중이다. '식깡' 외우는 게 일이긴 한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말고, 여기 나 잡아 먹는 사람 없고 결국 다들 각자의 징역을 사는 사람들이니, 쿠사리 주는 혹은 까칠한 사람은 그 정도의 인격밖에 안된다 생각하며 내 할일 최선을 다해서 하면 곧 적응해서 '평탄'한 시간이 오리라 믿어야겠다. 많이 긴장한 상태란 걸 부정할 순 없을 것 같고, 다만 내 사고가 이 곳에 매몰되지 않도록 수시로 스스로 깨우쳐줘야 할 것 같다. 급한대로 편지 쓸 시간도 있을 것 같고 뭐 나쁘지 않다.ㅎ 일단은 6월 말까지 꾸욱 참고. 그럼 이제 딱 1년 남은 셈이다.

5월 15일

"On Air"- 딱 듣고 난 이제 저녁 설거지할 거리들이 들어온다는 소린 줄 알고 급 긴장을(?). 긴장까진 아니고 준비를 했는데, 알고 보니 오늘부터 일요일 저녁 5시 25분(잘 기억이ㅠ)부터 해주는 "나는 가수다"방송 얘기였다. 참, 취장 휴게실에는 벽걸이 평면 TV가 있다. 만화책도 많고. 참, 사동 방 화장실에선 바깥의 네온사인까지 보여서 기분이 참 묘하다. 징역이란 생각이 안 들고 그냥 '노동'하는 기분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니. 저녁 식깡 설거지가 끝나고 나서 흘린 땀. 곧이어 이어지는 샤워. 그 개운한 기분. 하루가 끝났다는. 일종의 성취감마저 든다. 그 시간만 기다리며 하루하루 보내야지. 1시간 운동시간도 마음에 든다. 슬슬 리듬도 잡혀가고 있다. 나의 적응력이란.ㅋ

5월 16일

훈련생 신청을 했다. 서울대라는 학벌이 주는 후광이 크다. "선생님"소리를 듣다니. 허허. 얼른 햄에게 편지쓰고 자야겠다. 내일 하루도 무사히 마쳐야할텐데. 시간 잘 간다.ㅎ

5월 17일

운동시간에 운동을 안 하고 누워서 혼자 울었다. 복창을 안 한다고 지적을 받고 기분이 급 다운되었다. 관찰로 다시 적고 싶지가 않다. 계속 드는 생각이지만 서로 같은 '존중'의 욕구를 갖고 있지만 그게 비극적으로 표현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어렸을 적 싸우다가도 불리해지거나 혼자 힘으로 안 될때 아빠한테 달려가면 해결이 되던. 지금은 그 누구도 이 상황을 해결해 줄 순 없다는 사실이 날 울게 만든 것 같다. 결국 내가 이 상황을 온전히 혼자 견디고 헤쳐나가야 한다는 막막함. 지원, 따뜻한 돌봄이 필요하다. 축 쳐져 있는 기분이 오후에 작업장 찾아온 현민을 보고, 5시 입방하며 만난 영배씨를 만나 좀 회복이 되었다. 아침엔 재리 반장이 나 보고 이발 배워볼 생각이 있냐고 해서, 바로 훈련생 신청 포기를 했다. 알고보니 전업에 2달 이상 걸린다는 말에 바로 후회를 해서 기분이 더 안 좋았다. 에휴. 영배씨 얘기 들으면서 다시 희망이 생기긴 했지만, 이런게 희망이라고 하는 것도 웃기고. 취장에서 눌러 앉아야지 생각해야겠다 싶지만, 그래도 이 곳의 문화에서 버틸 자신이 없다. 결국은 각자 징역이고, 역할극을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이 잘 안보이고 인격에 대한 비난으로 들리는 상황이 힘들다.

5월 18일 - 햄 접견

긴 하루의 끝. 재진이, 수봉, 아침한테 온 편지를 읽으며 하루를 정리해본다. 내가 훈련생 신청했다 취소하고 다시 재리 가볼까 한다는 말이 돌아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너 재리 간다매?"하는 소리를 들었다. 봉사원(서열 1위를 봉사원이라고 칭하는 게 아이러닉하긴 하다)한테도 한 소리 듣고 데미지가 컸다. 접견 온 햄을 만나 내내 울었다. 안 울려고 했는데. 걱정할텐데. 접견 마치고 돌아가는 햄의 마음은 어땠을까. "형만이형"을 알아 다행이다. 내가 그토록 싫어 했던 "목포"라는 공통점 덕분에 큰 지원군을 얻었다. '아빠'가 생긴 셈이다. 지금 이 시간들이 날 괴롭히는 시간이 아니라 내게 뭔가 의미를 남겨줄 선물이란 생각을 해야겠다. 여기서 적응하면 남은 징역은 껌처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5월 19일 - 햄 통화

ㅁㅅ. 햄에게 편지 한통씩 쓰고 나니 어느새 잘 시간이다. 에효. 허리가 조금씩 아픈데 적응이 되겠지 싶다. 내일만 일하면 이제 휴일이다. 밀린 편지를 누구부터 써야할지 모르겠다. (...) 카페에도 한통 써야할텐데. 쓸 여력이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책 읽는 시간보단 편지 한통이 더 힘이 많이 된다.

5월 20일 - 엄마 접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9일-13일

5월 9일 월요일

[MP]

오늘로 딱 한달, 이라고 할랬더니 딱 4주를 보내고 5주차에 접어드는 날이다. 월요일. 지금 갑자기 비가 내린다. 이따 운동을 나가야 하는데. 런던에서 햄스테드히스 갔던 일요일을 떠올렸다. 거기서 내려다 보이던 런던 시내의 모습. 집에 돌아오는 길에 펑펑 내리기 시작하던 눈. 그 다음 날 아침 온 교통이 마비된 런던. 어젯밤 꿈에는 편지를 내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서 못 내고 내일은 또 쉬는 날이니 못 내는 그런 꿈을 꿨다. 이번 주엔 출역장에 나갈 수 있으려나. 우중충한 월요일 아침이다. 내 옆에서 주무시는 사장님이 얼른 나가시면 좋겠다. 그냥 아저씨들은 뭘해도 아빠, 나이 많은 사람 이미지가 겹쳐져서 싫다.

5월 10일 화요일

[MP]

어제 좀 더 많은 편지를 기대했지만, 아침, 햄한테 온 게 전부였다. 내 기대가 너무 컸다. 슬슬 나 혼자 잘 살 수 있는 준비를 해야지. 오늘이야말로 딱 한달이다. 어젯 밤에 (...)

에딘버러로 떠나는 날 오전 런던에 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와, 두렵고 설레는 그 기분. 휴일, 햄한테 편지쓰고 글 하나 써보든지 해야겠다. 지난 토요일에 엄마가 넣어준 책을 비롯한 물품들이 안 들어와서, 수요일까지 좀 더 기다려봐야겠다.

<병역거부자의 날에 부쳐>

5월 11일

[MP]

신기하고 재미있는 꿈을 꾸었다. 기억나지 않은 누군가와 (아마도 J?) 함께 출소를 했는데 방콕 공항이랑 연결이 되어있는 것이다. 곧바로 출국심사대가 나왔고 그곳에서 우리는 수의를 벗은 뒤 엑스레이를 통과한 후 다시 수의를 입고, 따로 출감절차도 없었다. 나올 때 티켓을 받았는데, 웃긴 건 탑승시간과 게이트번호는 있었는데 목적지가 어디인지 안 적혀 있는 것이다. J는 그냥 게이트로 달려갔고 나는 직원에게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직원도 금시초문이란 표정이었고, 처음에 난 서울만 가면 된다였는데, 그 티켓으로 아무데나 갈 수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 자기연결. 상상의 나래. 헤이스팅스에서 출발한 기차는 해변을 따라 런던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우왕. 빅토리아역 도착 후 걸어서 하이드파크로 갔다. 그 고요함, 상쾌함. 기분이 좋아진다. 그제부터 계속 내리는 비. 오늘도 비에 젖은 풀내음 한번 맡아봤으면!

+ 스트레스를 받으면 입에 뭔가를 넣고 먹어야 하는 습관은 아직 '교정'되지 않았다. 분류과 직원이 다녀간 후 잠시 내 평정이 흔들려서 비상식량으로 나온 건빵으 우적우적.

5월 12일

[MP]

자기연결을 안(못) 하고 잡생각이 떠오른다. 짧은 시간안에 집중해서 해야하는 건데. 한달 했다고 이제 아무 때나 자기연결을 해서인지 아니면 잡생각이 정말 많아져서인지 모르겠다. 어제 분류과 직원이 왔다갔다. 관용부로 출역해야지 하는 것이다. 내일쯤 방을 옮기게 되려나. 모르겠다. 휴. 햄과 아침, 엄마한테 총 7통 편지를 받았다. 오늘도 그 세명한테만 오려나.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 배고프다.ㅋ

5월 13일 저녁 -아침 접견

어제 아침에 취장으로 옮겼다. 설마 했지만 예상을 못 한것도 아니어서. '글쓰기의 시차'란 표현에 꽂혀 있는데 이제 이틀 일하고 이곳에서의 경험을 적는 것에 대한 생각도 든다. 생각보단 덜 힘들다. 정신없긴 하다. 얼굴근육이 굳어지지 않게 하려고 노력 중. "일할 땐 웃지 말랬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 뒤의 기린 or 자칼(의 심장)이 보여서 그렇게 자극이 되진 않는다. 결국은 너도 나도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고 싶은데 수단방법이 다르단 생각이 든다.

쿠사리 먹고 싶지 않은 내 생각 뒤에는 일을 잘해서 인정, 존중받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평탄함, 여유를 갖는 것이겠지. 접견을 와준 아침에게 고마울 따름. 눈물이 나는데, 돌폼, 따뜻함에 대한 욕구였을까. 진사장님, 너무 고맙다. 이 악물고 6월 말까지는 해봐야지. 너무 진지하진 않게, 유쾌함, 가벼움 잃지 않으면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5월 1일-8일

5월 1일

[MP]

악마와 싸우다가 악마가 되지는 말기. 사소한 자극에 툭 말을 내뱉지 않기. 항상 한번 더 숨 고르고. 오늘 아침 몸 상태는 요 며칠 드물게 허기가 느껴진다. 적당히 묵직한 아랫배도 느껴지면서. 호흡할 때 복식호흡이 잘 안된다. 그래서인지 아니면 그새 감옥에 찌들어서인지 나를 웃음짓게 하는 곳의 장면이 잘 선명하게 불러와지지가 않는다. 드디어 5워. 괜히 기분이 좋다-가도 마음 한 구석 출역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구석도 있다. 비가 그쳐서 좋다!

5월 2일

[MP]

월요일 아침. 주말을 견딘 뒤 월요일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냥 설레인다. 뭐든 잘 할 수 있다는 나에 대한 신뢰. 해이스팅스, 런던에서의 시간들, 홀로 돌아다니던 그때의 시간들, 홈스테이 가족들의 따뜻함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내게 어떤 시간이 닥쳐도 잘 끝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든다. 타인을 내가 먼저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때 내 마음도 편해진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 총 10통의 편지를 내보냈다. 연결된 느낌을 간직하면서,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잊지 말자.

5월 3일

[MP]

남산3호터널 입구에서 정장에 넥타이를 맨 내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나도 계산하지 않고 마음껏 사랑을 베풀수 있다는 벅차오르는 마음. 내가 받는 사랑을 재보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믿음, 편안함. 수업 준비하며 떨리긴 하지만 뭔가 나의 것을 펼쳐본다는 기대. 결과를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들뜨는, 생기가 들게 만드는. 이 기억으로 징역의 칙칙함을 이겨보리라.

5월 4일

[MP]

날짜를 적고 보니 5년전 대추리 생각이 난다. 이 곳에선 꿈을 많이 꾸게 되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래도 아직 감옥 꿈을 꾸는 것 같진 않다. 따뜻한 말, 돌봄에 대한 그리움. 맨날 '네 귀'만 하고 살 순 없으니깐. 자기연결하는 중간에 영기가 나보고 싱크대 옆 이불에 물 튀지 말라고 베개에서 썩은 내가 난다고 말을 걸어서, 그것도 한 2번 이상 반복을 해서 잠시 평온이 깨졌다.

5월 5일

[MP]

쉬는 날. 목요일 아침이다. 자꾸 어제 분류심사 장면이 떠오른다. 보소로 지원하라던 직원의 말을 그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취장에 못 간다는 말은 확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평탄함에 대한 욕구가 아쉬운 걸까. 동전뒤집기를 해서 하나가 나왔지만 여전히 아쉬운 그런 마음이다. 결국은 취장에 안 갔으면 하는 마음이 더 컸던 것이다.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았달까.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물론 내가 보소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당장 내일 방을 옮길 수도 있으니 오늘 편지를 또 많이 써야겠다.

5월 6일

[MP]

런던의 자전거 행진 Bicycle Mass가 생각났다. 하비엘과 함께 달리던. 금요일 밤 런던거리를 헤집고 다니던 때 생각이 난다. 웨스트민스터 다리를 건너며 보이던 하늘에 걸려있던 달 생각도 나고. 확실히 휴일 다음날 아침은 몸이 찌뿌둥하다. 오늘 나를 부르려나.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 어젯밤에도 꿈을 꿨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양 옆의 사람들과 안 부딪히려고 이불을 침낭처럼 돌돌 말아잤다.

분류심사를 하는데, 가족의 화목 정도를 물어보더라. 정신적 스트레스도. '화목'이라고 적었는데 직원이 어떻게 화목하냐면서 '스트레스 심함'으로 고쳐적었다. 그 직원에 의해 우리 집은 화목하지 않은 것으로 나온 것이다.

5월 7일

[MP]

꿈 속에선 뭔가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고작 하루가 지나 다음날 해가 떠있을 뿐이라 좀 허망하다. 꿈에서 출역을 나갔는데 그게 취장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 감옥 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엄마와 동생이 접견을 온다. 어제 엄마가 보내준 전자서신을 받고 생각이 많아졌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 잘 노력해봐야겠다. 편지 적당히 쓰고 책 읽던거 마무리 해야겠다. 이번 주말엔 <나를 운디드니에 묻어주오>, <진심의 탐닉>.

5월 8일

[MP]

일요일. 오늘은 식수 이후 배식이 바로 와서 이거 적을 시간이 여의치 않다. 자기연결하며 작년 교생때 갔던 북한산 소풍을 떠올렸다. 빵셔틀. 143번 버스. 산에서 먹던 맛있는 점심. 푸핫. 맛있는게 먹고 싶나보다. 방 안에서의 생활이 서로의 생활에 배려를 하는 것이라지만 먼저 있던 자의 방식이 곧 그 방의 질서일 확률이 높고, 그 사람의 방식에 맞지 않으면 쿠사리를 맞는데 그 논리는 "넌 아직 빵에 적응이 안 됐어"이다. 24시간 갇힌 시간 잘 견디자. 이 시간들을 모두 견딘 후, 여권을 만들어 떠날 수 있단 생각을 하니 불끈 기운이 난다. 어디부터 가볼까. 일본? 영국? 라오스? 아님 일단 제주도부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