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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1일(토) - 지환, 미란, 영선 접견
반가운 얼굴들이 접견을 와주었다. 그런데 접견실을 나와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접견실에 흐르던 묘하게 무거운 기운을 바꿔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다. 내가 즐거운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내 걱정을 안 해줄거란 두려움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관심, 돌봄에 대한 내 욕구를 확인한다. 한편으론 먼 길 와준 분들이 우울한 기분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배려를 하고 싶은 욕구 또한 있다는 것을 보았다. 역에 내가 갇혀 있는 게 국가의 탓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택해 온 길이니, 나 때문에 마음 아파할 분들을 떠올리면 미안해지는 마음이 절로 든다. 그렇기에 그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내가 밝은 모습을 보일 수 있어야겠다. 연기하면 힘들테니 실제로도 잘 지내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다. 출소했을 때 온 기운이 빠져 쓰러지지 않으려면 지금부터 내 마음 돌봄을 잘 해야겠다.
지금 TV에 영화 <글러브>를 보여주고 있다. 올 1월 인천 전교조 연수에 연미 쌤과 함께 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른 것보다 채식에 대한 배려를 받았던 기억이 크게 떠오르는 걸 보면 역서 채식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있긴 있나보다. 연미 쌤한테도 편지 한통 보내야 할텐데. 다음 주에 아침과 함께 면회를 오면 좋으련만.
"집합"이란 말은 사회에 나가면 들을 일이 없으면 좋겠다. 불신의 존재가 되는 것. 언제든 혼날 준비가 되는 것. 그 위축된 기분이 불쾌하고 싫다.
6월 12일(일)
사람들에 치이다보니 가끔은 내 편은 커녕 주변 모두가 적으로 보일 때가 있다. 내 마음은 꽁꽁 닫혀 있어서, 얼굴은 웃으려 하지만 초췌하다는 말을 듣기 일쑤이고 작은 자극에도 날카로워지거나 혹은 모든 감정을 삭제한 채 멍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씩 예기치 못한 호의를 한번씩 받고 나면 이내 곧 마음이 눈 녹듯 풀려서 여름 하늘 구름 한번 올려다보며 심호흡 한번 고르기도 한다. 경직된 내 몸 곳곳의 근육들에 호흡을 불어 넣어주면서 몸을 편하게 이완시켜 주는 것이다. 날 힘들게 했던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을 떠올리며 그 상대의 말과 행동 이면에서 비극적으로 표출된 아름다운 욕구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가져본다. 뒷골이 땡기고 목 두, 어깨가 경직될 때마다 이제 습관처럼 존중 받는 것, 자기 보호, 따뜻함, 자기 표현 이런 욕구들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쌍욕을 아침 7시부터 들었던 긴 하루도 드디어 저물어간다. 조출을 나가 간마네 형광등 불빛 방해 없이 동틀녁 사위를 볼 수 있었다. 괜히 더 황홀해지는 기분이었다. 생매장한 살인마. 이러니까 그가 괜히 더 악마처럼 보인다. 존중 (받는 것). 자기표현. 나는 과연 그와 인간으로 연결될 수 있을까. 연결하고 싶은 걸까? 그냥 피하고 싶은게 솔직한 심정이다.
6월 13일(월) - 나동 접견
나동이 다녀갔다. 마치 엊그제 만나고 다시 만난 것처럼 익숙한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덤덤히 얘기를 나누는 기분이 좋았다. 내 말을 온전히 다 하는 것 같으면서 동시에 간지러운 부분을 적시에 얘기해주는 나동만의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마침 오늘 보라 생일이라고 오후에 접견 마치고 이제 보라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맥주 한 잔. 캬. 내일은 특별접견이 있다고, 오늘 들어온 여옥 전자서신으로 들었다. 매일 접견만 있어도 징역 살만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아카펠라 공연에 갔다가 정말 우연히 현민을 만났다. 이 무슨 기묘한 상황인지. 일을 뺄 수 있단 생각에 그리고 갔다가 겪은 일로 글 쓸 거리가 생길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라이브 공연의 맛을 느껴보려고 갔었다. 국민체조를 시키는 부분에선 뜨악하기도 했지만, 마음껏 소리지르고 하니 스트레스는 풀리는 기분이었다. 현민은 어찌 느꼈는지 모르겠다. 나가면 홍대 클럽 공연도 바로 가야겠다. 어제 오늘 달리기를 쉬었으니 내일부터 다시 뛰어봐야겠다. 태양볕이 뜨겁긴 하다.
6월 14일(화)
부은 손이 갈수록 심해진다. 그런데 나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반질'크림 구매를 했다. 손발의 굳은 살, 주부습진을 위한 연고라고 한다. 오늘 승호씨, 케이티, 여옥이 특별접견을 와주었다. 무지 반가웠다. 내 징역에 몇 라운드까지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 접견까지 마치고 나니 한 고비를 또 지난 기분이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험한 말들이긴 하지만 그냥 이 상태를 받아들인달까. 내일은 햄이랑 통화를 또 할 수 있으니, 그러고 나면 이번 한주도 훌쩍 흘러있겠구나.
6월 15일(수)
1시 살짝 전에 전화 불려가서, 햄이 씻고 있었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쉽지만 아침과 통화를 한 것으로 만족. 엄마 편지(장접 일정 관련) 받고 살짝 또 울컥하려고 하는데, 워워. 느낌에 어제 앰네스티 접견 덕에 담당 주임이 나를 '잡범'과 구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기분이 썩 나쁘진 않은 게 학창시절 교사들의 관심을 받으며 누리던 눈에 보이지 않는 권력이 떠올랐다. '존중'을 가장 큰 욕구라 생각했는데, 오늘 주임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돌봄, 관심, 보살핌도 큰 욕구였다는 걸 깨달았다. 기다리던 수감자 우편물이 들어온 날. 카페에 올릴 글 하나 보내야겠다.
6월 16일(목)
어제부터 신호가 오던 오른 발목이 오늘 더 아파와서 얘기를 하고 1시 입방을 했다. 꾀병 소리를 듣는게 힘들긴 하지만 - 있는 그대로 보이는 것. 이해. 돌봄의 욕구- 그래도 쉬고 싶었다. 내가 빠져서 일을 더 할 분들에 대한 배려도 중요한데 여기는 "배려를 배려로 받지 않고 이용해 먹는" 불신의 공간이기에 나도 그냥 다른 사람의 시선을 무시하고 내 몸을 챙긴건 아닌지 모르겠다. 오전에 양파, 오이, 당근, 양배추, 배추, 감자, 대파, 애호박 등등 식재료들 오후엔 냉동 닭, 돈육, 돈불(고기) 등의 고기가 들어오기에 일을 하고 있다가도 "물건" 외침과 함께 달려나가 물건들을 수시로 나른다. 물건을 나르는 사람, 물건 나르는 직원과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엄격히 구분된 이곳에서 처음엔 괜한 욕 안 들으려고 그리고 내가 더 들면 남이 덜 고생하리란 생각에 남들만큼의 양을 들고 날랐지만 오늘은 기운이 없어서 남들이 2개, 3개씩 들 때 1개를 들었더니 바로 "야 넌 왜 한 개만 들어, 장난해?"라는 소리를 들었다. 여기가 힘자랑 하는 곳도 아니고 딱 한번 그렇게 들었는데 바로 '쿠사리'를 먹는 이곳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를 느끼는 건 나의 과도한 예민 반응인 것일까. 다같이 똑같이 들어야 평등하단 그의 마음. 결국 '이해'의 문제란 생각.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데 이해받지 못했을 때 그는 '버럭'했지만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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