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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토)
첫 휴일. 밀린 편지를 쓸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가 짧아보이기만 하다. '국조'의 작업도 이젠 대충 다 알겠다. 개근하고 12사 갔다가 돌아와 상차리고 밥먹고 치우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청소 하고 걸레 빨로 좀 쉬면서 화장실 다녀오고 국 짬 버리고 다시 식간 깔고 국여분 버리고, 식수 받고 상 차리고 밥먹고 개근하고 설거지 하고 김치 개근 하면 점심 쉬는 시간. 이때 손빨래를 하고 구매장 쓰고. 전업을 언제 나갈지 기대 말고 일단 두 달 꼬막 채운다 생각해야 겠다.
오후 운동 30분 동안 담벼락 안 운동장을 걸으며 현민과 대화를 나눴다. 내 징역의 전망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과의 경쟁 관계 때문에 내가 관용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낮아보인다는 것이 현민의 전망이었다. 이떻게 될지. 훈련생 신청을 다시 해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생각 중인데, 이번엔 여러 말 안 돌게 잘 넣을 수 있을지 걱정, 불안, 초조, 두렵긴 하다. 그래도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겠지.
5월 22일(일)
일요일. 이상하게 몸도 무겁고 허리, 꼬리뼈 통증이 심했다. 차기 조장이 저녁 설거지를 대신 해주는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 고마운데 자꾸 그 이면에 뭐가 있진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욕구 차원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겠다. 주임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들어서 내일 분류과 면담 신청 얘기를 할지 말지 모르겠다. 그냥 여기서 계속 일할까 싶기도 하고. 그나저나 얼른 허리가 괜찮아져야 할텐데.
지난 주부터 일요일에 <나는 가수다>를 보여준다. 지난 주엔 작업장에 있는 시간이라 볼 수가 없었는데, 오늘은 7시 넘어서 보여주니 기쁘다. 지금은 김연우가 "여전히 아름다운지"를 부르는 중. 여기서 이런 노래를 들을 수 있다니, 감동이다.
5월 23일(월)
끝이 있는 고통은 견딜 힘을 준다.(예측가능성). 이 고통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때 이 고통을 왜 겪어야 하는가 회의가 들면서 괴로워지기 시작한다. 심리에 따라 같은 상황도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분류과 면담을 신청했다. "아직 서른도 안 된 사람이 허리 아프다고 힘들다고 하면 안 되지. 군대 훈련소 왔다 생각하고 해야지. 여긴 강제로 노동을 하는 거잖아. 강제로 하는 데서 못 이겨내면 밖에서 자유로울 때는 어떻게 이겨내겠어. 분류과 면담은 시켜줄게. 시켜는 주겠지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해." 작업장 주임의 말이다. 이걸 확 물어버리고 싶긴 한데 일단은 좀 더 간을 보는 중이다. 국가인권위에도 내고 국민신문고에도 내고. (존중) 계산기를 좀 두드려봐야겠다.
5월 25일(수) - 햄 접견
오늘이 벌써 25일이라니. 곧 있으면 6월이네. 뜨거운 물을 페트에 받아와서 등허리를 좀 지졌다. 오늘은 기온이 꽤 높았던 것 같다. 여름을 어떻게 날지 모르겠다. 엄마에게 급히 편지를 썼다.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일면 예상이 되면서도 투정을 좀 부리고 싶었다. 이러나 가족 접견에 엄마가 안 와버리면 어쩌나 싶다.ㅎㅎㅎ 내일도 접견이 있다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전없세 CO노트 원고 청탁 받았는데...쩝. 무슨 말을 써서 보낼지 모르겠다.
5월 26일 - 혜란, 염 접견
오늘 무슨 종합선물세트처럼 무수한 편지를 받았다. 2009년 초 런던에서 Turning the Tide 트레이닝 때 만난 분들이 지지의 엽서를 보내주었는데 완전 감동이다. 아침이 보내준 손편지 세트도. 아까 작업장에서 얼핏 받았을 땐 햄 편지가 분명 있었던 것 같은데 방에 돌아와 보니 보이지가 않는다.ㅠㅠ 허리보호대를 하니 좀 더 괜찮아진 것 같다. 아프다 생각하면 더 아픈 것 같아서 돌봄 관심 존재감 평탄함의 욕구는 윶하면서도 안 아플 수 있게 내 몸을 잘 보살펴야겠다.
5월 27일(금)
관료 조직, 군대의 위계서열과 근대 학교 교육이 가정하는 교사-학생 관계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가르치는자-배우는 자가 이미 결정이 되어 있고 그에 따른 권력 그리고 심지어 인격적 우열까지 정해지기도 한다는 것. 개인차가 있겠지만 학생-낮은 지위의 사람은 배우는 자이기에 의심을 받는 존재 혹은 부족한 존재로 전제가 된다.
5월 28일(토)
드디어 내일 휴일이다. 1년 전 이때, 교생 마지막 날 아이들과 헤어져 마로니에 공원에서 인권영화제에 앉아 있으며 현지를 기다렸던, 그리고 밥을 먹고 성곽길에 올라간 기억이 난다. 그리고선 부천 집으로 먼 귀가 길에 올랐지. 아까 작업 마치고 사동으로 돌아오는데 아직 밝은 저녁 햇볕을 보며 캔맥주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읽을 책이 적당히 밀려 있다는 사실이 주는 긴장감이 마음에 든다. 꾸역꾸역 산다는 생각을 없애주고 하루하루가 아깝단 생각을 들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일 밀린 편지도 쓰고 카페에 보낼 글도 쓰고. 시와의 "여신이시여" 노래가 떠오른다.
5월 30일(월)
뭔가 긴 하루였다. 약 9시간 전 엄마와 햄을 만나 손을 잡고 포옹을 한 게 잘 믿겨지지가 않는다. 떡, 초콜렛, 과일, 밥, 나물, 다 더먹고 싶었는데..중간에 울컥 울음이 나왔는데 엄마도 역시나 우는 모습을 보며 슬프고 착잡하고 미안하고. 나를 지긋히 바라봐주던 햄이 고마웠다. "신입 오면 좀 더 편해질거야." "야 너가 엄살이 심한거지." 자극이 되는 말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5월 31일(화)
선규 형이 취장으로 왔다. 정말 기묘한 인연. 반가움이 컸다. 비가 왔다가 날이 맑아졌다 다시 소나기 후 지금은 그냥 살짝 우중충. 과거의 기억들이 자꾸 떠오른다. 3년전 이날 런던으로 출국했지. 편지에 더 집착하게 되는데, 기대하지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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