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4월 25일-30일

4월 25일

[MP]
자기공감을 시도하는데 집중이 안 되었다. 잡생각이 너무 많았다. 어제부터 시작된 그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동시에 그 아이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자극을 받아서 그렇다. 일어난지 얼마 안 되어 점검 준비를 하기 전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데 "명진아 상 치워야지"라고 했을 때, 한 방씩 점검자가 다가오고 있는데 내 무릎을 칠 때, 나보고 긴장해라, 준비해라 이 뜻인데 처음 한두번은 고마웠지만 그게 계속 반복되니 이제 짜증이 나려고 한다.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내가 어제 꽂아둔 편지와 보고전들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이제 내가 그냥 그때 그때 직접 편지를 내버릴까 싶다. 나에 대한 존중? 시어머니같은 그이. 규율화가 잘 된 인간. 자꾸 가르치고 싶어 안달인. 난 왜 내 얘기를 표현을 못할까. 난 왜 이렇게 순하게 굴까. 코어자칼 생각이 잘 안 난다.ㅠㅠ

<농담의 위력>

편지 많이 받은 거 답장 다시 다 하려면 노트북이 필요하겠다는 방 사람들의 말. BBK의 의혹을 우리도 알아내려면 아이패드 정도면 되겠다는 말. 전원이 없으니 밧데리 좋은 거랑 전원 줄이 긴 걸로 추가 주문을. 웃을 때 내가 진지하게 쥐어잡고 고민하던 것들의 무게가 사르르 사라진다. 2평이 안 되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던 나의 시야와 사고의 벽이 무너지면서 지금 여기서의 삶이 살아볼 만한 것같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기운을 다시 내봐야겠다는.

4월 26일

[MP]

모닝페이지보다 더 값진 경험을 한 날. 오늘 아침도 자꾸 말을 걸길래 오늘은 며칠 연습하던 말을 건냈다. 나름 차분하게. 근데 그 아이의 반응은 바로 미안해하면서 나를 안는 것이었다. 표현을 해서 좀 후련하긴 한데 그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좀 찝찝하기도 하다. 이 버라이어티 스펙타클한 징역의 일상이란!

<교도관을 대하는 우리의 방식>

까마귀라고 불리는 그들. 옛날처럼 교도관이 재소자를 두드려 팰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래도 기본 수용된 자-감시하는 자라는 구도가 변하진 않았다. 우리가 보기에 교도관이 이유없이 짜증을 내더라도 일단은 다 들어줘야 한다. '인권'이라는 우리의 무기가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일상으로 느껴지는 교도관이 가진 권력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더러워서 피한다지만 이곳은 피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존댓말과 반말을 묘하게 섞어쓰는 그들은 재소자들이 할 수 있는 문제제기를 교묘하게 피해갈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한 자들이다. '인권침해'라는 기소에 걸려들지 않으면서 여전히 효과적으로 재소자들을 관리, 통제, 지배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그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대응은 "저 사람 그릇이 그것밖에 안 되는데 우리가 넘어가야지"라거나 "밖에 나가면 쥐뿔도 없는 사람이니 이런데서 이런 일이나 하는 거지"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결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도 않고 궁극적으로 인간 대 인가느로 연결을 하는데 별 도움이 되진 않지만, 수평적일 수 없는 관계에서 약자의 위치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기보호 전략이라 생각됩니다.

<수세미 미스터리>

<부활절>

부활절 찬양 미사에 다녀왔다. 먹을 것과 편지쓸 시간 중에 고민을 하다가 집회가 있는 강당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담벼락 없는 하늘 생각이 나자 주저없이 집회를 선택했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부활절 미사를 볼 기회가 있으랴 싶은 생각도 있었다. 기도를 드리는 중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이게 다 내 탓이오"하고 따라하다가 눈물이 울컥 나오려고 했다. 기도중에 "우리의 죄" 이런 말이 나오는데 감옥 안에 있는 내 처지가 와락 느껴진 것이다.

라이브 음악을 듣는 즐거움이 있었다. 함께 기도하는 동안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도 좋았다. 무엇보다 노래를 부르며 "할렐루야,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데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마지막에 부른 노래 제목은 <내입술로>와 <기뻐하며 왕께>. 끝나고 돌아오는데 먹을 것들로 가득찬 선물꾸러미를 받았다. 방에 들어와 꾸러미를 푸는 순간 모두의 입에서 환호가 나왔다. 초콜렛, 모찌떡, 곡물바, 카라멜, 녹차양갱. 모두 이 곳에선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내년 부활절에서 난 이곳에 있겠구나. 출소날이 성큼 다가와있겠지.

4월 27일

<MP>

5시에 빗소리에 눈이 떠졌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 소리라 생각하니 듣기 좋았다. 살이 1킬로 정도 쪘다는 걸 어제 목욕 때 확인했다. 최근 입맛이 돌아서 많이 먹긴 했다. 저녁, 아침엔 속이 좀 더부룩할 때가 많다. 관리를 좀 해야겠다. 벌써 수요일. 이틀만 더 있으면 접견이다. 오늘은 이발을 해보려고 한다.

<인사>

4월 28일

<MP>

어젯밤 급작스럽게 새로 한분이 오셨다. 무면허운전으로 6월형 받으셨고 집에서 약주하시다 오셨다고 한다. 새로운 분의 등장에 낯섬과 정적, 내가 신입으로 들어오던 날 기분이 떠올랐다. 다시 시작된 하루, 새로운 동료의 등장이 요 며칠 안정적으로 지속된 방분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다. 재밌는건, 새로운 사람(외부인)의 등장이 기존 사람들과의 유대를 강화 혹은 강화된 것처럼 믿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제 신입분 데려오던 교도관, 내가 첫날 만났던 분을 반갑게 만났다.

4월 29일

[MP] 접견 - 용석, 정현, 아규, 성민, 슈와

뭔가 자극이 많았던 어제. 오전에 의무과 검진을 다녀온 것이다. 장티푸스 검사와 흉부엑스레이 촬영은 사실상 취장에 가기 전 단계라고 했다. 지금 불쑥 떠오른 생각인데, 초짜처럼 보이는 의사(공중보건의)를 보면서 이 검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물어보지 못한게 후회된다. 자기표현. 요 며칠 계속 쥐고 있는 욕구이다. 취장에 가게 될지 아닐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것. 설령 취장에 가더라도 배려, 인간적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혹은 받고 싶은 마음. 돌봄을 받고싶고, 밖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중요(필요)하다는 것을 방금 자기공감 하면서 찾았다. 욕구와 연결되면 수단방법은 자연스레 나온다는데, 두고 볼 일이다.

어젯 밤엔 양쪽에서 코고는 소리와 이 가는 소리에 자는 도중 몇번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아침, 햄, 클럽, 여옥, 비대칭, 오리, 재진, 안지환씨, 즐, NVC센터, 성민, 빈가게, 상우.

4월 30일

[MP]

어젯 밤에는 천둥, 번개 소리에 잠이 여러번 깼다. 지금도 내리는 비. 빗소리와 비냄새-아마도 비에 젖은 흙 냄새가 좋다. HELC에서 공부를 마치고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떠올랐다. 투벅투벅 걸으며 나만의 시간들-무얼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의무나 타인으로부터의 시선, 평가로부터 자유로운 나만의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는 여유가 그리운 것 같다. 오늘 운동은 비 때문에 틀렸지만, 편지를 열심히 써야겠다. 밍크 담요의 단점은 먼지가 많아서 아침이 되면 코가 막혀있다는 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