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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24일

4월 21일(목)

[MP]

어젯밤 꿈에는 양치를 하는데 칫솔모가 잇몸과 이 사이에 끼어서 나오지가 않았다. 칫솔을 뺐더니 칫솔모가 잘린 길이만큼 줄어있었다. 해몽을 어찌할지 궁금하다. 오늘 아침 자기 공감에선 낙산 바다의 일출이 떠올랐다. 목 뒤부터 머리 끝까지 소름으로 곤두서는 게 느껴졌다. 자기 연결하는데 자꾸 잡생각이 올라오길래 다른 때는 바로 코의 호흡에 집중했는데 오늘은 그 잡생각들을 쫓아가보았다. 파이어폭스 생각이 났다. 메일함과 페북, 후원클럽, 야구기사. 평소에 가던 곳들. 재미, 유대, 편안함, 친밀함, 관심과 돌봄. 사랑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이제 방 모든 사람들이 "명진이"라는 호칭을 쓰기 시작한다. 느낌이 묘하다. 느낌과 욕구를 찾아보기. 하루만 더 기다리면 접견이다!

 

"넷째로 재판 집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권한을 갖습니다. 범죄자를 처벌해 달라고 기소하면 이를 받아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법원이지만, 그 집행은 다시 검사의 몫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사형집행할 때도 반드시 검사가 입회를 해야합니다."

-김두식 <헌법의 풍경> 180쪽.

 

4월 22일

[MP]

나와 동갑이지만 '사회경제적 지위' 측면에서 극과 극에 있는 그 아이. 무엇이 나와 그를 지금의 위치로 오게끔, 지금의 차이를 불러온 것일까에 대한 의문, 고민. 자꾸만 그 아이를 평가하게 되는 걸 피하고자 노력 중.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기 위해 그 아이에게 배울 점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그제부턴가 자기공감을 할 때마다 낙산의 일출이 떠오른다. 오늘은 그와 동시에 그 전날 내렸던 정동진역이 떠올랐다. 이유가 뭔진 모르겠으나 햄과 데면데면하고 있었던 그 때. 후회의 감정들이 몰려왔다. 자기를 잘 돌보고 있다는 기특한 마음도 들지만, 한편으론 나도 돌봄을 받고 싶다는 욕구가 떠올랐다. 애도를 하기엔 아직은 좀 이르지 않은가 싶다.

 

4월 23일

[MP]

토요일이다. 날짜를 적고보니 작년 이 맘쯤에는 아니 정확히 작년 오늘에는 무얼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마 이쯤에서 햄을 만난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비가 갠 맑은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다. 밤에 불이 꺼져 있으면 동이 터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다. 어제 본 햄의 모습이 눈에 아른아른거린다. 주말, 편지 많이 쓰며 잘 보내야겠다.

 

4월 24일

[MP]

몸이 찌뿌둥하다. 요 며칠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좀 찌뿌둥한듯. 이를 가는 아이 때문에 밤마다 깨곤한다. 귀마개 주문을 해야겠다. 오늘은 책을 좀 많이 읽어야겠다. 편지는 햄에게 한통...또...오리한테는 우표가 들어와서 넉넉해지면 그때 써야겠다. 108배를 어떻게 언제 할지 고민 해봐야겠다. 일주일에 영화 한편 보는 생활, 나쁘지 않다. 내일 아침 자기공감 때는 뭔가 통찰이 오면 좋겠다.

 

4월 24일

드디어 좀 해볼만한 도전이 찾아왔다. 변태스러울진 모르겠지만 지금 내게 찾아온 갈등, 스트레스를 반갑게 환영하고자 한다. 다 내 경험이려니 하는 마음으로. 상시적으로 '관찰'을 잘 기억해 두려고 하지만, 막상 이렇게 적어보려면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관찰을 하고 싶지 않을만큼 화가 올라 있을 때, 일부러라도 관찰을 떠올리려고 하는 것 만으로 일단 흥분된 상태는 어느 정도 가라 앉는 것 같다. "밥 좀 먹어" "국 거기 올려놓으라구" 라는 말에 쌓여있던 짜증이 툭하고 분출되었다. "왜 그렇게 무섭게 말해"라고. 그 아이는 "아 짜증날라 그래"라고 말했다. (이렇게 상황을 복기하니 가장 자극이 되는 말이 찾아진다. 빙고~) 난 "짜증나? 어떤 말이 짜증나?"라고 했던 것 같다. 그 아이는 "니 자꾸 그렇게 말하지 마라"고 했고 난 말하기를 멈췄다. 나도 짜증난다고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이럴 때 자기만의 공감, 혼자 조용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건 비극이다. 그렇게 싫던 TV가 이럴 땐 오히려 도움이 되기도 한다. TV의 요란한 소리가 없었다면 방안에 가득 흐르는 미묘한 기운을 맨 몸 그대로 맞닥뜨려야 하는 난감하고 불편한 상황이 됐을 것이다.

'관찰'로 적기엔 힘든 방 사람들의 말들, 예컨대 여성의 외모에 대한 평가들, 교도관들과 사동 소지에 대한 '평가' 말들, 말을 시작하는 것을 알리는 것처럼 나오는 욕설들. 바깥에서라면 아예 피하면 되지만, 24시간 붙어 생활해야 하기에 스트레스로 내가 지치지 않으려고 선택한 전략은 그냥 그들의 방식과 수준을 준중해주는 것. 다 내 성장의 자원으로 삼아야겠다 생각하지만, 왜 굳이 내가 이렇게 감옥까지 와서 고생해야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슬프고 억울하다. 편하게 지내면 좋겠지만. 가끔은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때도 있다. 편지도 쓸 수 있지만 지금 당장은 나 혼자 오롯이 견뎌야 하는 비애(?). 지금 같은 방 동료들 역시 결국은 홀로 자신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용쓰고 있겠지. 웃음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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