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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15일

[MP-모닝페이지]

호흡. 욕구 명상. 내 몸 돌보기.

오늘 하루도 의미있게 보낼 수 있길. 배움, 성장, 소통.

무슨 일이 벌어질까 기대도 되는.

 

오후 1시15분.

앞으로 살 날짜의 무게가 천근만근처럼 느껴질 때, 작년 이맘때, 재작년 이맘때는 무엇을 했나 떠올려본다. 2009년 4월 11일, 나는 인천공항으로 돌아왔다. 버스운전사의 난폭한 운전을 보면서 내가 한국에 오긴 왔구나 싶어서 피식 웃었었는데. 나 그래도 외국물 먹은 사람이야 스스로 생각하면서. 출소하고 나가서 그렇게 쿨한 웃음 한번 날려줄 수 있도록 잘 살다 나가야지.

 

30분 운동을 하고 돌아왔더니 기분이 좀 개운하다. 어제 그제 고무신 신고 뛰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사이즈가 안 맞아 발뒤꿈치가 까이길래 달리기는 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그냥 전력질주를 해서 한쪽 벽에서 다른 한쪽 벽까지 뛰었다. 마치 벽을 뚫고 나갈 것처럼. 그렇게 뛰니 속은 좀 시원해졌지만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내가 왜 이렇게 갇혀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병역거부 선언 이후로 그리고 요 며칠 계속 내가 울컥했던 이유도 좀 명확해진 셈이다. 슬픈 것과 억울한 것 중에 내가 왜 이렇게 있어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어서 억울한 마음이 먼저고 그 다음 따라오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는 슬픔의 감정인 것 같다. 운동화가 들어오면 정말 원없이 뛰어야겠다.

 

저녁 메뉴. 쫄면 채소 무침. 여기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대했던 메뉴였는데 이게 웬걸. 팅팅 불고 마른 면에 색깔은 빨간 물이 들긴 했는데 소면 맛 외에는 심지어 쫄면의 향조차 잘 느껴지지 않았다. 괜한 기대는 하지 말아야겠단 좋은 학습을 했다. 이곳에 들어온 이후로 모든 욕구를 최소한으로 낮추었기 때문에 그런지 아직까지는 특별히 뭐 먹고 싶은게 떠오른다거나 하고 싶은 것이 떠오르진 않는다. 긴장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삶의 방식에서 내 스스로를 돌보며 지치지 않고 남은 징역 생활 잘 마칠 수 있을지 스스로에게 궁금해지는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유치장 48시간만큼의 시간은 넘겼으니 이제부턴 순풍에 돛단 듯 시간이 흘러갈 수 있기를!

 

 밤 10시 반을 넘긴 시간. 담장 너머 비행기 소리가 유독 더 잦아진 것 같다. 바깥으로 오토바이 소리도 들린다.

지금 내 얼굴 모습을 보고싶다. 거울이 없다.

순시를 하는 교도관을 향해 인사해주기. 보는 자와 보이는 자라는 관계를 무화시켜서 그 역시 나에 의해 관찰된다는 식으로. 그게 아니면 정말 동물원에 사육되는 동물들 같아질테니.

 

4월 15일

[MP]

드디어 금요일이다. 시간이 가긴 가는구나. 아침에 일어나면 바라보는 창밖 날씨가 오늘은 좀 찌뿌둥하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좀 꿀꿀해지는 것 같다. 어젯밤 <7년의밤>에 포옥 빠져 읽다가 11시가 넘어 잠이 든 것 같다. 수면시간의 길고 짧음이 수면의 질과 연결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기본이 지켜지는 아름다운 생활"이란 가사로 아침 기상시간을 알리는 방송을 듣고 다같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이왕 일어나는 거 개운한 몸 상태로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다. 어제부터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하고 자기연결을 위한 호흡을 하는데, 108배도 함께 해주어야 하는 건가 싶다.

 

3상3방으로 옮겼다. 같이 방을 쓰던 정XX씨와 함께 옮겨왔다. 다들 좋은 사람들이다. 4명이 한방을 쓰는데 넉넉하다. 신승훈 <미소속에 비친 그대>노래를 점심 교정국 라디오로 들었다. "나는 울고 싶지 않아 웃고 싶어지면 미소속에 비친 그대 모습 생각하면서" 이런 가사였던 것 같다. 햄한테 써줘야겠다.

 

상대공감과 자기공감. 자기고감이 먼저 안되면 상대공감이 안 되지만, 거꾸로 나를 보호하기 위해(=울지 않기 위해) 상대 공감에 에너지를 때려 넣을 수 있다. 검찰 승용차, 앞좌석 직원이 자전거 얘기를 할 때. 접견실 유리벽 너머에 엄마가 울고 있을 때. 엄마가 슬프구나, 내가 잘 지냈으면 하는구나 하는 엄마의 상태에 집중을 하면 내 울음을 참을 수 있었다. 내가 선택한 방식.

 

저녁 7:00

시즌2까지는 아니고, 게임으로 치면 1탄을 깨고 2탄에 돌입한 기분이다. 5일만에 바뀐 새로운 환경. 내가 그동안 들어왔던 징역 생활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느낌이랄까. 물론 여전히 내가 상상한 최악의 시나리오를 대비해 아껴둔 내 에너지(내공)는 아직 충분한 편이다. 중학생 때 많이 하던 펌프에서는 떨어지는 미션들을 잘 수행하면 내 에너지를 꽉 채운 상태로 클리어할 수 있었듯이, 지난 5일간은 'S'수준은 아니어도 'A' 정도로 무사히 마치고 에너지 게이지를 가득 채운채로 2탄에 돌입한 것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시간 TV를 보는 지금, 게이지에 살짝 손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렇게 책상을 펴고 편하게 일기를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여기 생활에서 내가 붙들고 있는 양대 욕구는 '존중(->평탄함)'과 '자기표현' 사이의 밸런스(->일치)라는 생각이 든다. 상시적인 노출과 감시라는 이곳의 기본적인 질서를 내가 선택해서 감수하고 왔기에 내게 반말을 하는 교도관이나 나이 많은 아저씨들의 반말 정도는 큰 자극이 되지 않았다. 그 다음 부딪히는 것은 방 사람들이 하는 대화의 주제. 예상은 했지만 "여자"가 주제가 될 때 나는 대화에 끼기가 힘들다. 맞장구를 치기도 그렇고. 이것도 이사람들의 수준이니 어쨌든 최소한의 존중을 해줘야겠다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표현"의 욕구가 올라온다.

또 하나 찾은 욕구는 "소속감"이었다.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면? 좀 더 편하게 생활을 할 수 있겠지. 나와 동갑인 분이 있다. 고기도 자꾸 먹으라 하고, 콜라도 커피도 내가 사양하면 꼭 한번씩 더 권한다. 내가 거절을 했을 때 그 친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고 신경이 쓰였다. "내가 쓰러질까봐 걱정되세요?"라고 물었더니 "한밤중에 무슨 일 날까봐 그런거죠"라는 답이 돌아왔다. 콜라 따라주는 걸 내가 거절했더니 "예수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 개털인데 그럼 과자나 많이 시켜주세요"라고 했다.

지금도 3명이 얘기하는 와중에 켜져 있는 TV 바로 아래서 혼자 책상을 피고 이 글을 쓰는게 확실히 집중력이 떨어지긴 한다. 두세문장씩 미리 생각하며 쓰고 싶은데 집중력이 떨어지면 그 다음 문장을 자꾸 까먹게 된다.

"그래도 여기는 규율이 없는 편이여. 구치소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여 천국."

확실히 이 정도면 살만하다, 라고 생각을 계속 되뇌인다. 방 안에서도 적당히 나만의 최소한의 거리와 공간을 만들었다.

참, 오늘 석영, 나영, 엄마한테 전자서신을 받았다. 즐이 한겨레 기사를 넣어줬는데 유엔자유권위원회 개인통보 구제신청한 병역거부자들 편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488명 중에 일단 100명분만 심의했단다. 난 이렇게 감옥에 있는데, 그런 소식을 들으니 그런갑다 싶다가도 내가 왜 여기에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기사를 넣어준 즐에게 고맙다. 주말동안 열심히 편지를 써야겠다.

인간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데, 사람이 늘고 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내게 집중해서 글을 쓸 시간을 궁리하다보면 오히려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나면서 결과적으로 하루가 금방 끝나 아쉽다는 마음마저 갖게 된다. 달력을 보면 아득하지만 하루를 끝내는 건 금방이다. 이 정도면 바깥에서의 일상과 싱크로율이 크게 떨어지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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