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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11일~

징역 첫날 밤을 보내다. 6시 30분에 일어나, 청소를 하고 밥을 먹고, 막힌 화장실을 옆에 두고 싱크대에서 물만으로 세수를 했다. 이따 엄마와 햄이 오기 전에 머리는 감고 나가야 말끔해 보일텐데.

이 펜은 어젯 밤 한 방을 같이 쓰신 분이 빌려주셨다. 1급을 달아 독거방을 쓰고 계신 분이었는데 어제 직입소방으로 옮기셨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덕분에 식수도 얻고, 치약도 얻었다. 펜으로 무언가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아침엔 1시간 정도 라디오가 나온다. SBS 라디오이다. 57분 교통정보를 들으니 기분이 참 묘하다. 감정의 과잉이 되려한다. 이따 접견 나가서 또 울면 어떡하지.

어제는 3시에 공덕역에서 햄을 만났다. 마지막 체온을 느끼며 손을 꼭 잡고 있었다. 학원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데 햄이 학원으로 가지 않았다. 나도 좀 더 있고 싶었다. 4시에는 예의 그 뚜레주르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거기 알바와 친해진 듯 하다. 경수, 아침, 햄, 여옥, 의민, 승덕, 정현, 성민, 염. 떠나기 전 함께 해 준 친구들이 고맙다.

검찰 직원은 생각보다 젊었다. 나에게 "어떻게 되는지 다 아시죠? 한 1년 4개월이면 나올 거에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될 거에요"라고 말했다. 저녁 먹였냐고 하면서 차가 8시쯤 출발할테니 저녁을 시켜준다고 하였다. 내가 채식을 해서 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더니 "중국집 밖에 없는데 어떡하지? 아, 짬뽕이 있네. 거긴 고기는 없고 물고기만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6시가 되자 직원과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아까 친구들과 헤어진 곳을 옆으로 바라보았다. 혹시나 아까 친구들이 아직 있을까 했지만 역시나 찾을 수는 없었다. 1층 당직실로 함께 들어가자 다들 나를 쳐다보았다. 나와 동행한 직원은 작은 목소리로 뭐라 설명을 했고, 당직실 끝에 있는 독립된 방으로 안내했다. 아무 것도 없는, 두루마리 휴지 하나가 있는 방이었다. 왜 하필 휴지 하나가 있을까 했는데, 나중에 배달된 짬뽕을 먹으면서 무릎을 쳤다. 손에 묻은 짬뽕 국물을 닦는데 유용했던 것이다. 난 직원과 같이 저녁을 먹을 줄 알았더니, 난 독립된 그 방 안에서 홀로 방바닥에 앉아 짬뽕을 먹었다. 그 직원은 문을 닫으며 "그렇게 힘들진 않을 겁니다. 수형생활 잘 하시고요."라고 말했다. 창 밖으로는 좀 전까지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뚜레주르와 대로의 파란 버스들이 보였다. 눈을 감고 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많이 안정이 되었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의 남은 페이지 100여쪽을 단숨에 읽었다. 몇구절 눈물나게 하는 구절들이 있었다.

8시가 되자 나를 데려갈 검찰 직원이 왔다. "규정상 이걸 하셔야 합니다" 하면서 두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채우고 나선 "손 사용 자유롭죠?"라고 물어봐주었다. 나름 배려를 해주신 것 같다.

그 검찰 직원이 승용차 뒷문을 열어 주었다. 앞에 정복을 한 직원 두명, 내 옆자리에는 차를 얻어타고 마포역에서 내릴 사람이 함께 탔다. 그 분들은 '자전거 출퇴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는 직원이 300만원 짜ㅣ 자전거를 사와서 자랑하는 이야기를 했다.

마포대교를 지나고, 여의도 공원을 지나 영등포로 넘어갔다.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을 수갑찬 채로 지나가는 것도 새로운 기분이었다. 

직원이 라디오를 틀었다. 처음 방송에선 뉴스가 나왔다. 채널을 돌린 다음 방송에선 배철수 흉내를 낸 시사 논평이 나오고 있었다. 무한 경쟁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었다. 카이스트가 아니라 까이스트라면서.

그 다음 방송에선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마침 공교롭게도 "힘을 내 여기까지 달려왔잖아"라는 가사의 익숙한 멜로디였다. 제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디어 교도소 정문을 통과했다. 철문을 통과하여 걷는데 "여기 오는 걸 선택한 거에요?"라고 그가 물었다. 수갑을 풀어주면서 검찰 직원은 "수형생활 잘 하라"는 인사를 해주었다. 내 앞에는 노역으로 들어온 분들이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앞에 분들이 다들 지문을 찍길래 나는 어떡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다 찍기로 했다. 교도관들이 반말해도 그냥 다 네네 하면서 들었다. 들고 간 짐을 설명하면서 현민에게서 들었다고 얘기를 했더니 어이없어 하면서도 대부분 다 그대로 들고 들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 병역거부, 종교인지 물어보고 아니라고 하면 그럼 무엇인지, 그 다음은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나왔는지 물어봤다.

 

막힌 변기를 뚫었더니 속이 다 편하다. 바깥 창으로는 운동장과 그 담벼락 위로 아파트가 보인다. 마치 밀집한 주택가에서만 보이는 불투명 외관이 집집마다 교도소쪽 각도를 향해 덧대어져 있었다. 아직도 아침 9시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제 구매물을 요일별로 짜볼려고 한다. 일단 세면도구는 뒤로 하더라도 펜이 필요하다. 머리도 감을까 말까 고민중.

 

여행을 다니면서 가장 간소하게 다니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옷, 여권, 돈, 음식, 빨래? 필기구, 거기에 카메라 정도? 참, 물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감옥엔 무엇이 갖춰져 있는가. 옷이 있고, 밥이 나온다. 그리고 샤워기는 없지만 어쨌든 씻을 수는 있다. 싱크대에서 빨래도 할 수 있다. 펜도 있고. 이 정도면 충분한 것 아닌가 싶다.

 

*규율화의 방법

규율. 내가 기획하지 않은 시간표에 내 몸을 적응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시간표를 보며 지금 몇 시인지 확인해야 하는 것. 혼자 있으니 처음이라 모른다는 핑계가 통한다. 순시, 점검. 옷은 항상 입고 있어야 한단다. 점검 때는 방문을 향하여 앉아 있어야 하는. 난 처음이라 글 쓴다고 계속 집중을 하고 있어서 돌아보질 않았더니 지적을 받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베란다에 무릎을 꿇고 앉은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작은 나무야, 늑대별(시리우스. 겨울 하늘에 가장 맑게 빛나는 항성) 알지? 저녁에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보이는 별 말이야. 어디에 있든지간에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이면 꼭 그 별을 쳐다보도록 해라. 할아버지와 나도 그 별을 볼테니까 잊어버리지 마라."(278쪽)

 

고아원에서는 저녁 어둠이 깔릴 무렵에 채플 예배를 보았다. 그것이 끝나고 나면 곧이어 저녁식사 시간이었다. 나는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식사 시간에도 빠졌다. 덕분에 나는 저녁마다 늑대별을 바라볼 수 있었다. 내 침대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창문이 있었는데, 나는 그 창문으로 늑대별이 반짝이는 것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그 별은 저녁 어스름이 내리기 시작하면 창백한 얼굴로 빛을 비추다가 밤이 어두워질수록 점점 더 밝은 빛을 토해냈다. (...) 처음 그 별을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는, 그 별을 보며 떠올릴 일들을 낮동안에 미리 생각해두려고 애썼다. 하지만 나는 얼마 안 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에게 추억들을 보내주셨다. (2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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