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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8일(토) - 아침, 조짱 접견
오른 발목 통증이 나아질만하면 또 아파와서 의무과에 휴역증을 끊어왔다. 휴식을 얻어 오랜만에 주말 이틀 온전히 쉴 수 있다는 안도감도 들지만, 작업장 다른 재소자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몸이 아픈 것 자체보다는 나의 아픔이 있는 그대로 보여지지 않고 걱정이나 돌봄보다는 오히려 의심과 불신을 받아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더 아프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왜 그렇게 타인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못 마땅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일까.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한다, 너가 일을 쉬면 내 할 일이 많아진다는 생각. 그렇다면 시스템의 문제인데, 보통은 시스템이 아닌 해당 개인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군 가산점에 흥분하는 예비역들. 귀족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파업을 비난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별 다르지 않다. 소수자에 대한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이득이 된다는 것을 연결시키지 못하는 것.
이곳에서 통용되는 언설들이 있다. 징역에서 아무도 믿어선 안 된다거나 그렇기에 징역살이는 결국 혼자 견뎌야 한다는 그리고 이곳에선 타인에 대한 배려나 착함이 오히려 이용당하는 곳이라는 말들이다.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나 적자생존의 정글을 떠올리게 하는 익숙한 말들이다. 혼자 이겨내야 한다는 말은 일면 자신이 처한 역경을 현명하게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에서 유용한 생활방식일 수도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욕구는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보편성을 갖지만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방법은 각자 살아온 환경, 가치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이 택하게 되는 방식은 남을 믿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먼저 따져보는 것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다고 쉬 말하긴 어렵다. 이 때 개인을 비난하기보다는 개인을 그렇게 환대와 상생이 불가능한 곳으로 내모는 사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자본주의의 발달이 자급자족의 공동체를 붕괴시켜 농민들을 임금노동자로 전락시키고 근대적 빈곤을 만들어내면서 두려움(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늙어서 고생할거야라는 식의)과 경쟁이 지배하는 시대정신을 탄생시킨 것처럼 한국의 교정 현실 즉 이 징역도 결국은 자기 몸을 건사하기 위해선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만드는 정신을 심어주고 이로써 사회 복귀한 자들이 체제에 자발적으로 순응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징병제를 유지함으로써 순응적 노동자를 양산한다는 박노자 선생의 지적처럼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교정'은 개별 교도관들의 인성이나 성품과 무관하게 인간에 대한 불신, 시스템에 대한 무기력(문제가 있는 건 알지만 어차피 혼자 나서봐야 자기만 손해야)을 학습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명제를 이 곳에서 증명하려는 이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내면화한 이들이라는 평가를 내렸지만 이 역시 나의 '평가'일 뿐 한 사람 한 사람 대화를 나누면 분명 그들이 가진 인간성(예컨대 '좋은 아빠') 또한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모든 생각들로부터 일단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말아야겠다. 힘이 약하고 아픈 것도 '죄'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 곳의 현실이 원망스럽고 분하기도 하지만, 몸이 제 상태가 아니면 생각의 흐름도 건강하지 못하고 나 역시 타인에 대한 증오를 은연 중에 키우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단 경각심이 든다.
(일기를 보니 색깔 펜으로 쓰고 지우며 많이 고쳐놨던데, 이렇게 정리해서 밖에 써보냈나보다. 문단 별로 번호를 매긴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직 손으로 직접 쓰는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았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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