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실린 기사입니다.

 

 

'우골탑'도 무색한 대학등록금 천만원 시대…해법은?
 
  '등록금 동결과 무상교육 실현 위한 토론회' 열띤 논의 
 
  2006-03-23 오전 11:54:49    
 
 
 
 
 
  대학 등록금 천만 원 시대가 코 앞이다. 올해 이화여대 의과대학의 일년 등록금이 990만 원, 고려대 의과대학은 982만 원이다. 실습비용이 많이 드는 의과대학만 등록금이 비싼 게 아니다.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저렴한 인문사회 계열도 이화여대 652만 원, 고려대 626만 원 등으로 대부분 600만 원 안팎이다.
 
  올해 사립대학들은 평균 10% 가량 등록금을 인상했다. 국공립대는 한술 더 떴다. 부산대는 올해 등록금을 지난해보다 30% 가량 올렸다. 역시 국립대학인 한국해양대의 등록금 인상률은 무려 53.4%에 달한다.
 
  '우골탑'도 옛말 됐다
 
  2003년 이후 국공립대 등록금 책정이 대학 자율에 맡겨지면서 국공립대 등록금 인상률이 사립대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게다가 교육부는 국공립대 회계를 독립채산제로 바꾸는 내용의 국립대 발전계획안을 발표했다. 국공립대는 학비가 싸다는 것도 지난 시절의 이야기가 된 셈이다.
 
  과거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직장인들의 정년이 앞당겨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십대 초반의 자식을 둔 사오십대 가장의 평균적인 교육비 부담이 크게 늘었다. 현재 소 한 마리의 가격이 350만 원 안팎이다. 소 판 돈으로 자식을 대학에 보내던 시절 생겨난 '우골탑'이라는 말이 무색해졌다.
 
  십년 전의 '교육재정 확보' 외침, 여전히 유효
 
  22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노수석 열사 10주기 추모와 등록금 동결, 무상교육 실현을 위한 정책토론회'가 민주노동당, 범국민교육연대, 노수석 열사 10주기 준비위원회(노수석10주기위원회) 등의 공동 주최로 열렸다.
 
  이날 행사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96년 3월 29일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와 교육재정 확보를 요구하며 벌어진 집회에서 한 학생이 숨졌다. 경찰이 시위진압 도중에 휘두른 폭력에 의해 당시 연세대 2학년에 재학 중이던 노수석 학생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날의 토론회를 준비한 이들은 10년 전에 노 군이 외쳤던 '교육재정 확보'라는 구호가 대학 등록금 천만 원 시대를 코 앞에 둔 지금 더욱 절실해졌다는 데 뜻을 같이한 것이다.
 
  사립대학, 지출예산은 늘려 잡고 수입예산은 줄여 잡고
 
  이날 토론회에 참가한 한국대학교육연구소 황희란 연구원은 대학 등록금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방 직후 미군정이 제시한 수익자 부담 원칙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부담이 돼야 할 대학교육 비용을 개인에게 떠맡기게 된 계기가 미군정의 교육정책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역사적 연원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황 연구원은 대학 측의 주먹구구식 예산편성을 등록금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했다.
 
  해마다 다음 해 예산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거의 모든 대학이 예상 지출은 부풀리고 예상 수입은 줄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예산을 근거로 등록금을 올린다.
 
  황 연구원은 2004년 151개 사립대학(산업대 포함)의 예산과 결산을 비교한 결과, 지출 예산은 당해년도 말의 지출 결산에 비해 1조133억 원 초과편성됐었고, 수입 예산은 당해년도 말 수입 결산에 비해 120억 원 과소편성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즉 예산에 잡아 놓은 금액에 비해 실제로는 더 많이 거둬들이고, 더 적게 썼다는 것이다. 그 결과 2004년 사립대학의 예결산 차액은 총 1조253억 원에 이른다.
 
  하지만 2003년 대비 2004년 실제 등록금 증가액은 4324억 원이었다. 예결산 차액이 등록금 증가액의 2.4배에 달했다. 결국 예결산 차액만으로도 2004년의 사립대 운영이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등록금을 인상할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처럼 예결산 차액이 등록금 인상분을 상회하는 대학은 137곳으로 전체 조사대상 대학의 90.7%에 달한다. 인상된 등록금은 이월 및 적립금의 증가로 이어진다.
 
  부실한 사립대학, 등록금 외에는 기댈 구석 없어
 
  그런데 이같은 주먹구구식 예산편성이 단지 대학 측의 무능함 때문일까? 범국민교육연대 배태섭 사무처장의 발제에 따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배 사무처장은 부실한 사립대학들이 난립한 것과 대학 구조조정이 임박한 것을 주요한 원인으로 꼽았다.
 
  부실한 사립대학의 난립은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등록금에만 의존하게 만든다. 실제로 최근 3년 간 4년제 사립대학의 운영수입 총계 중 등록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달한다. 반면 재단 전입금의 비율은 8.7%에 불과하다. 전문대학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등록금 비중이 82.7%인 데 비해 전입금 수입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이처럼 부실한 사립대학이 난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배 사무처장은 대학 진학이 학문의 탐구가 아닌 사회적 계층이동의 기회로 받아들여지는 풍토에서 비롯된 과도한 대학진학 수요에 대해 정부가 잘못 대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역대 정부가 고졸자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는 것을 통해 대학진학 수요를 조절하기보다 대학정원을 늘리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사립대학의 설립을 무분별하게 인가하면서 재정적으로 열악한 사립대학들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인구의 감소, 대학의 존폐위기
 
  하지만 최근의 등록금 급등은 이런 이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학들이 이미 상당한 규모의 적립금을 쌓아두고 있기 때문이다.
 
  배 사무처장은 임박한 대학 구조조정을 또 하나의 이유로 들었다. 고교 졸업자의 수가 해마다 줄어들면서 입학정원을 채우지 못 하는 대학이 늘어가고 있다. 일부 지방대학의 경우는 교수들이 나서서 고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신입생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인해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 점점 심화될 것이다.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돼 온 대학들은 심각한 존폐의 위기를 맞게 됐다. 정부의 지원 없이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교육부, 지원사업비 칼자루 쥐고 대학을 요리한다
 
  정부 역시 대학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정부가 취하고 있는 원칙은 '선택과 집중'이며, 정부가 사용하는 카드는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지원이다.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는 예산은 시설설비, 실습기자재, 학자금 지원, 장학금 지원 등의 일반지원사업비와 대학원 연구중심대학 육성(BK21), 국립대 구조조정, 지방대 특성화 등의 특수목적지원사업비로 크게 나뉜다.
 
  배 사무처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비중이 계속 늘어 왔다고 말한다. 정부가 학부제 실시, 산학협력 강화 등의 조건을 내걸고 이 조건을 충족하는 대학에 재정지원을 하는 방식을 취하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대학은 정부가 내건 조건을 군말없이 따를 수밖에 없다.
 
  2004년의 경우 특수목적지원사업비의 집행내역은 수도권대학 특성화 지원(600억 원), BK21(1800억 원), 지방대학 혁신역량 강화사업(NURI사업, 2200억 원), 학교기업 육성(100억 원), 산학협력 중심대학 지원(200억 원), 전문대 특성화 지원사업(1680억 원) 등으로 돼 있다.
 
  '선택과 집중', 그러나 대학교육의 질은 더 열악해져
 
  사업비의 명목만 살펴봐도, 교육부가 지향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배 사무처장은 일부 명문대학을 선별해 지원을 집중하고, 그 외의 대학은 기업과의 연계가 이루어지는 분야에 대해서만 지원하는 게 교육부가 지향하는 '선택과 집중'의 방향이라고 말했다.
 
  대학들이 적립금을 쌓아두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부의 '선택과 집중' 방침에 따른 지원사업금을 타내기 위해서는 예산의 건전성을 높이고 시설투자를 확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 사무처장은 단지 지원사업금을 타내기 위한 시설투자는 교육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적립금이 쌓이고 시설투자는 늘었지만, 정작 전체 대학 교원 중 시간강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해마다 높아져 왔다.
 
  1990년에 46.5%이던 대학 교원 중 시간강사의 비율이 2004년에는 54.6%로 상승했다. 대학교육의 질과 실질적인 연관이 있는 분야의 내실은 계속 악화돼 온 것이다.
 
  배 사무처장은 교육부가 대학의 열악한 재정현실을 빌미로 대학을 통제하는 데만 급급했을 뿐 대학교육의 실질적인 개선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그는 교육부가 취하고 있는 '선택과 집중'의 원칙은 '차별과 배제'에 다름아니며 이 과정에서 대학의 서열화만 더 심화되었다고 일침을 놓았다.
 
  등록금 후불제 도입 절실
 
  교육부의 방침에 기대를 걸 수 없다면, 계속 치솟기는 대학등록금을 보며 한숨만 쉬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교수노조 기획실장을 맡고 있는 박정원 상지대 교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외국에서는 수강신청과 등록을 먼저 하고 수업료는 나중에 내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수강신청이 아닌 등록금 납부 여부에 의해 학생 자격을 결정하는 한국의 대학제도는 반사회적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는 졸업 시점에 그 간의 수업료를 한꺼번에 납부할 것인지, 취업한 뒤에 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스코틀랜드 대학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등록금 납부 시기를 유연하게 정하는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는 것만으로도 등록금 때문에 답답해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 근본적 해법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이들은 대학 등록금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늘리는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10년 전 노수석 군이 거리에서 외친 '교육재정 확보' 구호를 다시 떠올린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박정원 교수는 한국의 경우 전체 고등교육비 중 공공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14.9%에 불과하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인 78.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이같은 현실인식에는 모두 동의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정부와 대학을 압박하여 교육재정을 확보하고 등록금 부담을 줄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노수석 군이 숨진 1996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을 지내며 등록금 인하 투쟁을 이끌었던 박병언 씨가 이날 토론회에 참가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생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대학을 압박하여 실질적인 등록금 인하 성과를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성과가 쌓이면서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대응 여부에 따라 등록금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대해 민주노동당 등록금특별위원회에서 활동하는 조성주 씨는 구체적인 성과에 매달리느라 처음부터 너무 낮은 목표를 세우면 아무런 성과도 남기지 못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씨는 대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투쟁은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투쟁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으며 보다 비타협적인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대학 등록금이 계속 올라가는 원인을 분석할 때는 치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그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논의하는 단계에 이르자 논리와 치밀성이 다소 느슨해지는 듯했다. 원인 분석의 정교함에 걸맞은 실천적 대안을 찾고 그 대안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집요하게 모색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로 남았다. 
   
 
 
  성현석/기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9/04 12:11 2007/09/04 12:11
태그 :
트랙백 주소 : http://blog.jinbo.net/girongi/trackback/5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