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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바이 창전동

굳바이 창전동

캠프 주위에 주정뱅이들 숙소 겸 생활 공동체 실험을 해보겠다고 창전동에 방을 구한지 어느새 10년이 지났네요. 

이사 올 때부터 얘기가 있었던 창전동 일대 재건축이 11월부터 시작된다고 하여, 급하게 전세방을 구합니다. 

쫒겨나는 철거민 신세가 되어 30대를 함께 보낸 집/동네를 떠날 때가 되니 새삼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도시를 벗어난다거나 점점 숨이 막히는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불쑥불쑥 들지만...


무엇보다 오래된 골목길과 낡은 집들도 좋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널찍한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한가득 쏟아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른 아침 새 소리와 옥천사의 목탁 소리, 한낮의 매미 소리, 새벽의 귀뚜라미 소리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와우산이 바로 뒤편에 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이런저런 나무들이 많았던 것도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뒹굴거릴 수 있는 따뜻한 방바닥과 변기에 앉아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없는 형편에 무리한 요구인 줄 잘 알지만,

가능하면 나무가 많은 낡은 골목길의 주택가에 10평~15평 투룸/전세 정도로, 

자전거로 캠프를 오갈 수 있는 거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위에 좋은 방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술도 사고 복비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제목: 결정적 계기 (2005.9)

지금 생각해봐도 소위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도 역시 '공동(체) 생활에 대한 실험' 이런 측면이 있었던 것 같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가족과의 관계, 히토리구라시에 대한 향수(?), 택시비 절약-_-, 
짧은 인생 열심히! 등의 이유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그저 [경성 트로이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집과 회사에는 '출퇴근이 불편해서' 라고 해두었지만,
물론 그건 거짓말. 
개인적으로는 출퇴근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 가끔은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것이기도 하고,
가끔은 운명적인 반짝거림이나 뭔가 단단한 신념같은 것이기도 한데,
이번의 경우는 그런 특별한 하나의 무엇이 아니라
이런저런 것들의 종적/횡적 복합덩어리였던 것 같다.

'아니 고등학교 정도 졸업하면 독립해야 하는 것 아냐?'
로 부터도 이미 10년 이상 지났고,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넓고 깨끗한 공간을 마련할 수는 없었지만
모쪼록 그런 물리적인 조건보다 그 안을 채울 실천적인 활동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재밌는 실험들을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하숙을 했을 때,
그전과는 다른 세계와 삶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고민하고 실천하고 싸우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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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wo?  (2005.9)


0.

그렇다면, 어디에?

발품을 파는 만큼 좋은 집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왠지 설레임이랄까 의욕이 생기지 않아 충분히 많이 알아보지는 못했다.


1.

처음엔 집과 회사와 홍대, 트라이앵글의 가운데 지점인
신도림 근처가 어떨까? 하고.

8월 중순(광복절이었나?), 어느 휴일 오후 느즈막히 집을 나섰다가 아직 약속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타지 않고 그대로 출구로 나가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s도 할겸 어느 새로 생긴 커다란 주상복합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나기는 곧 오오아메로.

건물 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한 캔을 다 마실 때까지 비가 멈추지 않아 편의점 옆에 있던 부동산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새건물이라 깨끗하고 잘 디자인 되어있었지만,
전세는 거의 없고 월세인데다 꽤 비쌌다. 10평전세6000정도.
창문을 닫지 않아 빗물이 방으로 들이닥친 어느 회사원의 방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역시, 셋 다 어중간한 것보다 차라리 한곳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집/회사쪽은 아닐테니, 홍대/신촌쪽으로!

부동산 아주머니가 "비가 그치면 역근처에 다세대 괜찮은게 나왔으니까 가보자"고 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2.

대학교+대학원 6년 동안, 
서강대 앞 철길 근처 하숙촌이나 연대 창천초등학교 근처, 
이대 녹색극장 뒷편, 서강대 후문 영화나라 뒷편에 하숙이나 각종 신세를 경험한 터라 
뭔가 익숙하고 반가운 느낌이랄까. '아 오랜만이야'의 기분이 들었다.

수첩에 의하면, 8월24일(수) 도곡동 IBM 교육과 두번째 벽화회의가 있었으니까 
아마 그 사이의 시간에 신수동~창전동까지의 부동산들을 서너군데 들렀던 것 같다.

대개 10~15평정도의 빌트인 원룸이었는데, 뭔가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그 특유의 자취방 냄새가 약간의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서 새로 생긴 도로를 따라 산울림 소극장으로 가는 언덕 쪽으로 걷다가
오늘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삼성아파트 입구 옆 A부동산에 들어갔다.


3.

그러고보니 이때도 비가 내렸다.
부동산 아줌마가 크고 튼튼한 우산을 건네주며(+1점), 
최근에 도배도 새로했고 살림살이도 다 있으니까 그냥 몸만 들어가면 된다고.

이전 세입자인, 뒷편 삼성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도 
자기 할머니가 오신다고 해서 새로 꾸민 집인데, 
할머니가 서울로 안오시고 캐나다에 있는 오빠 집으로 가게되었다며
정말 좋은 집이니까 놓치지 말라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말씀해 주셨다.

뭔가 썩 내키진 않았지만, 
왠지 안방의 커다란 창문이 예뻐보였고 뭔가 지금까지 알아본 집들 중에는
제일 제대로 된 집이었으니까, 현재순위 1위.


4.

우이도에서 돌아오던 날 저녁, 
다시한번 가족이라는 (두가지 의미에서의) '벽'에 대해 통감하면서,
아무래도 이번주 내에 어디로든 나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합정동 근처를 둘러보고(반지하에 꽤 넓은 방2개가 있었지만 왠지 날림),
그 다음날 '만사귀찮'의 심정으로 위에서 말한 부동산 A에서 계약을 했다.
TV, 식탁, 냉장고, 접시, 커튼 등등 살림살이는 다 사라지고(물총비데는 남아있었다-_-)
화장실 세면대는 더욱 주저앉아 있었다.

아마 할머니는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고
캐나다로 가는 건 아마 세입자의 가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쓸쓸한 어른들의 세상..


어쨌든, 이리하야 창전동 라잎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불이 없어서 잘 수 없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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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引越し  (2005.10)


1. 첫번째 이사: 2005.9.3.sat

9월1일 목요일 오후 늦게 용인 HIT에서 인천으로 돌아와 
보험을 해약하고 돈을 환급받아 신촌으로 계약을 하러 갔다.
요꼬하마/미츠자와카미쵸의 레오팔라스나 런던/핀칠리 방을 계약할 때 보다도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

그리고 그주 토요일, (이 세상 최고의 친구) 똥개의 차로 첫번째 이사를 했다.

아침 늦게 일어나 똥개가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느릿느릿 짐을 챙겼다. 
한번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우선 좋아하는 책 몇권과 PC 정도만.. 
물론 맑스-엥겔스의 꼼선언 액자도.
아빠는 여전히 못마땅해 하셨고 엄마는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안달이었다.

수원에서 신촌으로 가면서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교 친구들 근황을 물어보거나 핸드폰을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친구 잘못 만나 매번 고생이 많다’ 등등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사소한 집안 일이나 인천공항에 갈 때도 똥개의 신세를 진 적이 종종 있었다.)

여튼 신촌에 도착해서 짐을 나르는 것도 똥개의 몫이었고,
ㅇㅈ가 도와주러 와서 잠깐 맥주한잔+담배한모금을 한 뒤,
다시 수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똥개의 몫이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이 날은 똥개를 안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똥개가 여자친구를 부른 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술값은 나의 몫!


2. 두번째 이사: 2005.9.10.sat

그리고 나서 다시 일주일 뒤 두번째 이사를 했다.
이번엔 용달아저씨를 불러서.

그 전날 일기예보님께서 토요일에 비가 올 것 같다고 해서 
A 용달아저씨와 서너차례 예약을 했다가 취소를 했다가 하다가 결국 A 아저씨가 
‘야, 이 씨발놈아!”라고 친히 깨우쳐 주셔서 결국은 B 용달 아저씨와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은 '일과 삶을 구분하지 않는'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비록 고객/손님에게는 황당한 일이지만, 
노동자 개인에게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순작용도 있으므로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로, 언제나 웃어야 하는 일본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범죄이다!)

여튼, 이번에도 역시 허둥지둥 짐을 꾸린 뒤 금곡동에서 고등동으로 이동,
창고형 서재로 쓰던 방에 있던 대우 마제스타 오디오 셋과 스피커 등을 챙겨야 했다.

그냥 산업도로-사당-국립묘지 쪽으로 갔으면 훨씬 금방 갔을텐데, 
괜히 교통방송 듣고 분당쪽으로 갔다가 톨비도 내고 시간도 늦게 신촌에 도착.
나는 가벼운 것만 나르고 친절한 B 용달 아저씨가 무거운 것을 모두 옮겨주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이 ㅇㅇ, ㅇㅈ, ㅇㄴ이 도착했다-_-

어쨌든, 이것으로 공식적인 이사는 완료!
급한대로 CDP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Fishmans가 울려퍼지게 하고, 조촐한 건배! 
왠지 맑스-엥겔스 액자에 관한 옛날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라져 버려서-_- 
가볍게 한잔 한다는 것이 캠프로 까지 이어졌다.
(아마 이날 바에 앉아 있던 태정+유꼬씨에게 엄청난 양의 주정을 쏟아 부었던 듯.)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생전 처음 보는 방에 누워있어서 몹시 어리둥절 했던,
창전동에서의 첫날밤이었다. 

어떻게 실려왔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_-


(출처: GO GO ROUND THIS WORLD - "창전동 프로젝트"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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