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굳바이 창전동

굳바이 창전동

캠프 주위에 주정뱅이들 숙소 겸 생활 공동체 실험을 해보겠다고 창전동에 방을 구한지 어느새 10년이 지났네요. 

이사 올 때부터 얘기가 있었던 창전동 일대 재건축이 11월부터 시작된다고 하여, 급하게 전세방을 구합니다. 

쫒겨나는 철거민 신세가 되어 30대를 함께 보낸 집/동네를 떠날 때가 되니 새삼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이번 기회에 도시를 벗어난다거나 점점 숨이 막히는 헬조선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불쑥불쑥 들지만...


무엇보다 오래된 골목길과 낡은 집들도 좋았고, 커튼을 달지 않은 널찍한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한가득 쏟아지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른 아침 새 소리와 옥천사의 목탁 소리, 한낮의 매미 소리, 새벽의 귀뚜라미 소리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와우산이 바로 뒤편에 있고,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이런저런 나무들이 많았던 것도 좋았습니다. 

하루 종일 뒹굴거릴 수 있는 따뜻한 방바닥과 변기에 앉아 샤워를 할 수 있는 화장실도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없는 형편에 무리한 요구인 줄 잘 알지만,

가능하면 나무가 많은 낡은 골목길의 주택가에 10평~15평 투룸/전세 정도로, 

자전거로 캠프를 오갈 수 있는 거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위에 좋은 방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술도 사고 복비도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제목: 결정적 계기 (2005.9)

지금 생각해봐도 소위 '결정적 계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이번에도 역시 '공동(체) 생활에 대한 실험' 이런 측면이 있었던 것 같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가족과의 관계, 히토리구라시에 대한 향수(?), 택시비 절약-_-, 
짧은 인생 열심히! 등의 이유도 있었을 테고,
어쩌면 그저 [경성 트로이카]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집과 회사에는 '출퇴근이 불편해서' 라고 해두었지만,
물론 그건 거짓말. 
개인적으로는 출퇴근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결정적 계기라는 것이 가끔은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것이기도 하고,
가끔은 운명적인 반짝거림이나 뭔가 단단한 신념같은 것이기도 한데,
이번의 경우는 그런 특별한 하나의 무엇이 아니라
이런저런 것들의 종적/횡적 복합덩어리였던 것 같다.

'아니 고등학교 정도 졸업하면 독립해야 하는 것 아냐?'
로 부터도 이미 10년 이상 지났고,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라 넓고 깨끗한 공간을 마련할 수는 없었지만
모쪼록 그런 물리적인 조건보다 그 안을 채울 실천적인 활동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재밌는 실험들을 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하숙을 했을 때,
그전과는 다른 세계와 삶에 대해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고민하고 실천하고 싸우고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쟁.

--------------

제목: wo?  (2005.9)


0.

그렇다면, 어디에?

발품을 파는 만큼 좋은 집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만,
왠지 설레임이랄까 의욕이 생기지 않아 충분히 많이 알아보지는 못했다.


1.

처음엔 집과 회사와 홍대, 트라이앵글의 가운데 지점인
신도림 근처가 어떨까? 하고.

8월 중순(광복절이었나?), 어느 휴일 오후 느즈막히 집을 나섰다가 아직 약속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신도림에서 2호선을 갈아타지 않고 그대로 출구로 나가 발길 닿는대로 걸었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s도 할겸 어느 새로 생긴 커다란 주상복합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소나기는 곧 오오아메로.

건물 내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사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바라보다가 
한 캔을 다 마실 때까지 비가 멈추지 않아 편의점 옆에 있던 부동산에 들어갔다. 
무엇보다 새건물이라 깨끗하고 잘 디자인 되어있었지만,
전세는 거의 없고 월세인데다 꽤 비쌌다. 10평전세6000정도.
창문을 닫지 않아 빗물이 방으로 들이닥친 어느 회사원의 방을 수건으로 닦으면서,
'역시, 셋 다 어중간한 것보다 차라리 한곳에 집중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 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집/회사쪽은 아닐테니, 홍대/신촌쪽으로!

부동산 아주머니가 "비가 그치면 역근처에 다세대 괜찮은게 나왔으니까 가보자"고 했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2.

대학교+대학원 6년 동안, 
서강대 앞 철길 근처 하숙촌이나 연대 창천초등학교 근처, 
이대 녹색극장 뒷편, 서강대 후문 영화나라 뒷편에 하숙이나 각종 신세를 경험한 터라 
뭔가 익숙하고 반가운 느낌이랄까. '아 오랜만이야'의 기분이 들었다.

수첩에 의하면, 8월24일(수) 도곡동 IBM 교육과 두번째 벽화회의가 있었으니까 
아마 그 사이의 시간에 신수동~창전동까지의 부동산들을 서너군데 들렀던 것 같다.

대개 10~15평정도의 빌트인 원룸이었는데, 뭔가 선뜻 마음이 동하지 않았고,
그 특유의 자취방 냄새가 약간의 절망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져서 새로 생긴 도로를 따라 산울림 소극장으로 가는 언덕 쪽으로 걷다가
오늘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삼성아파트 입구 옆 A부동산에 들어갔다.


3.

그러고보니 이때도 비가 내렸다.
부동산 아줌마가 크고 튼튼한 우산을 건네주며(+1점), 
최근에 도배도 새로했고 살림살이도 다 있으니까 그냥 몸만 들어가면 된다고.

이전 세입자인, 뒷편 삼성아파트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도 
자기 할머니가 오신다고 해서 새로 꾸민 집인데, 
할머니가 서울로 안오시고 캐나다에 있는 오빠 집으로 가게되었다며
정말 좋은 집이니까 놓치지 말라고 사람 좋은 표정으로 말씀해 주셨다.

뭔가 썩 내키진 않았지만, 
왠지 안방의 커다란 창문이 예뻐보였고 뭔가 지금까지 알아본 집들 중에는
제일 제대로 된 집이었으니까, 현재순위 1위.


4.

우이도에서 돌아오던 날 저녁, 
다시한번 가족이라는 (두가지 의미에서의) '벽'에 대해 통감하면서,
아무래도 이번주 내에 어디로든 나갈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날 합정동 근처를 둘러보고(반지하에 꽤 넓은 방2개가 있었지만 왠지 날림),
그 다음날 '만사귀찮'의 심정으로 위에서 말한 부동산 A에서 계약을 했다.
TV, 식탁, 냉장고, 접시, 커튼 등등 살림살이는 다 사라지고(물총비데는 남아있었다-_-)
화장실 세면대는 더욱 주저앉아 있었다.

아마 할머니는 돌아가셨을지도 모르고
캐나다로 가는 건 아마 세입자의 가족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 쓸쓸한 어른들의 세상..


어쨌든, 이리하야 창전동 라잎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불이 없어서 잘 수 없던 때;


--------------

제목: 引越し  (2005.10)


1. 첫번째 이사: 2005.9.3.sat

9월1일 목요일 오후 늦게 용인 HIT에서 인천으로 돌아와 
보험을 해약하고 돈을 환급받아 신촌으로 계약을 하러 갔다.
요꼬하마/미츠자와카미쵸의 레오팔라스나 런던/핀칠리 방을 계약할 때 보다도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

그리고 그주 토요일, (이 세상 최고의 친구) 똥개의 차로 첫번째 이사를 했다.

아침 늦게 일어나 똥개가 집에 도착한 다음에야 느릿느릿 짐을 챙겼다. 
한번에 끝내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우선 좋아하는 책 몇권과 PC 정도만.. 
물론 맑스-엥겔스의 꼼선언 액자도.
아빠는 여전히 못마땅해 하셨고 엄마는 조금이라도 더 챙겨주시려고 안달이었다.

수원에서 신촌으로 가면서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국민학교 친구들 근황을 물어보거나 핸드폰을 어떻게 사는 게 좋으냐,
‘친구 잘못 만나 매번 고생이 많다’ 등등의 말을 했던 것 같다.
(사소한 집안 일이나 인천공항에 갈 때도 똥개의 신세를 진 적이 종종 있었다.)

여튼 신촌에 도착해서 짐을 나르는 것도 똥개의 몫이었고,
ㅇㅈ가 도와주러 와서 잠깐 맥주한잔+담배한모금을 한 뒤,
다시 수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똥개의 몫이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이 날은 똥개를 안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똥개가 여자친구를 부른 날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술값은 나의 몫!


2. 두번째 이사: 2005.9.10.sat

그리고 나서 다시 일주일 뒤 두번째 이사를 했다.
이번엔 용달아저씨를 불러서.

그 전날 일기예보님께서 토요일에 비가 올 것 같다고 해서 
A 용달아저씨와 서너차례 예약을 했다가 취소를 했다가 하다가 결국 A 아저씨가 
‘야, 이 씨발놈아!”라고 친히 깨우쳐 주셔서 결국은 B 용달 아저씨와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일은 '일과 삶을 구분하지 않는' 대한민국과 같은 나라에서 종종 발생하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비록 고객/손님에게는 황당한 일이지만, 
노동자 개인에게는 인격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줄 뿐만 아니라 
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시켜 주는 순작용도 있으므로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의 경우로, 언제나 웃어야 하는 일본의 서비스업 종사자들을 생각해 보라.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범죄이다!)

여튼, 이번에도 역시 허둥지둥 짐을 꾸린 뒤 금곡동에서 고등동으로 이동,
창고형 서재로 쓰던 방에 있던 대우 마제스타 오디오 셋과 스피커 등을 챙겨야 했다.

그냥 산업도로-사당-국립묘지 쪽으로 갔으면 훨씬 금방 갔을텐데, 
괜히 교통방송 듣고 분당쪽으로 갔다가 톨비도 내고 시간도 늦게 신촌에 도착.
나는 가벼운 것만 나르고 친절한 B 용달 아저씨가 무거운 것을 모두 옮겨주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듯이 ㅇㅇ, ㅇㅈ, ㅇㄴ이 도착했다-_-

어쨌든, 이것으로 공식적인 이사는 완료!
급한대로 CDP에 스피커를 연결해서 Fishmans가 울려퍼지게 하고, 조촐한 건배! 
왠지 맑스-엥겔스 액자에 관한 옛날이야기로 후끈 달아올라져 버려서-_- 
가볍게 한잔 한다는 것이 캠프로 까지 이어졌다.
(아마 이날 바에 앉아 있던 태정+유꼬씨에게 엄청난 양의 주정을 쏟아 부었던 듯.)

아침에 눈을 떠보니 생전 처음 보는 방에 누워있어서 몹시 어리둥절 했던,
창전동에서의 첫날밤이었다. 

어떻게 실려왔는지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_-


(출처: GO GO ROUND THIS WORLD - "창전동 프로젝트" 게시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D+1095

Home - Y + 3

 

0.

2011년 8월 4일

밑창이 떨어진 낡은 구두와 쌍팔년도 조폭들이 입을 법한 오래된 F/W 정장을 입고, 

침탈당한 마리에 들러 경ㅅㅅ에게 비타500 두 박스를 건넨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물론, 경ㅅㅅ는 예의 그 쿨씩한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1.

1999년 3월 3일

첫 회사는 H 뭐시기 정보통신회사였다.

1999년 2월 대학원 졸업 후, 현역입대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급 진로를 변경했다.

광전송장비, ADSL/VDSL, CDMA 단말기의 s/w를 개발하는 일이었다.

양재동에 있던 연구소를 성남 상대원동 구석의 공장으로 이전하니 직원들이 알아서 퇴사를 했다.

그렇게 시작된 구조조정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특례였던 관계로 거의 막판까지 공장을 지켰다.

입사한 해에 한국시리즈 우승 기념으로 주석잔 받았는데,

퇴사한 해에는 공장 사무실에서 김ㅂㅎ의 월드시리즈 원맨쇼를 보며 낄낄 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락실 주인집 아들) ㄷㅎ형과 함께 걸었던 양재천 점심 산책 길도 생각난다.

다 때려치고 군대나 가자 했을 때, 똥밭에서 굴러도 이승이 낫다며, 

마사루+주성치 사이트나 만들자고 토닥여주던 딸기에게도 큰 빚을 졌다.

마지막 출근날, 혼자 양재천을 한바퀴 돌고, 여의도에 있던 두번째 회사에 가서 첫 출근을 했다.


2.

2001년 12월 10일

두번째 회사는 닛산자동차의 구조조정으로 분사한 J 뭐시기 자동변속기 제조업체였다.

여기에 오면 일본에 주재원으로 갈 수 있다는 말이 결정적 떡밥이 되었다.

사토 신지의 묘지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이직의 유일한 이유였다.

여전히 특례였기 때문에 외국에 가는 게 쉽진 않았는데,

'해외선진기술이전'이라는 명목으로 정확히 365일 동안 일본의 관동지방에서 인생을 허비할 수 있었다.

대체로 외로웠지만,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만끽했다.

일본 노동자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의미있었고,

가끔씩 새로운 무언가와 마주치거나 반가운 친구들이 놀러왔던 것도 좋았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대학 3학년 배낭여행의 기분으로 

(95년 여름,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에서 독일 트리어의 고향집까지 M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유령처럼 배회했다) 

256과 여의도를 한바퀴 돌거나, 요코하마~시부야~시모키타~키티죠지를 돌아다녔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주재원에 목을 메나 했더니 월급이 두 군데서 나왔다.

일본에서 받은 돈은 술-공연-음반의 악순환에 모두 사라지고,

한국에서 받은 돈은 귀국 후 오프라인 공중캠프를 만드는 데 탕진했다.

딱히 다음 스텝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특례만료일(2월28일) 다음 날짜로 사표를 냈다.

회사에서는 어차피 3월1일은 휴일인데, 왜 3월2일이 아니냐고 의아해했다.


3.

우등상은 못타도 개근상은 타자는 가훈에 따라,

국딩6+중딩3+고딩3+대딩4+원딩2+특례5=23년 동안 개근을 했기 때문에,

1년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한겨레21에 세계여행 관련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중략))

과테말라에서 도난당한 ㅆㅌ카드를 재발급받으러 갔다가,

2005년 4월 11일, 뜻하지 않게 세번째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ㅎㅁ은행을 잡아먹고 막 전산 통합을 하고 있던 터라 사람이 급히 필요했던 것 같다.

여튼, 메인프레임이라는 옵티머스 프라임 냉장고를 여기서 처음 만났는데, 

그 믿음직한 모습에 첫눈에 반해버렸다.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쓰잘데기 없는 환상이 없었다면,

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모하고 대책없는 생각만 하지 않았다면,

그 K 씨뱅이가 환갑 드립만 치지 않았으면,

추석 연휴 전날 날씨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면,

아직도 구월동 중앙공원에서 코알과 캐치볼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24-365 콜대기 상태가 점점 스트레스가 되었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자주했던 것 같다. 

여튼, 그 와중에 k#이 재건되었고, 창전동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4.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두번째 대학원은 패스.

한 가지 기록해 두고 싶은 것은,

첫번째 대학원 때는 세미나 시간에 근대철학 얘기를 하다가 졸다 깬 교수한테 욕을 바가지로 먹었는데,

두번째 대학원 때는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설명하다가 교수한테 정신나간놈 취급을 당했다.

첫번째 대학원 때는 IMF 덕분에 제때 독일 비자를 받지 못해 대공분실 체험을 할 수 있었다면,

두번째 대학원 때는 서브프라임 덕분에 경제적/인격적 파국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첫번째 대학원 때는 컴퓨터라는 closed world에서 자기 학습/조직화를 하는 intelligent multi-agent system에 대한 논문을,

두번째 대학원에서는 real world에서의 self organization, 소위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의 사례와 구현 방법, 한계와 딜레마 등)에 대한 논문을 쓰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둘 다 똥 망했다.)

매일 아침 각종 빚독촉 모닝콜로 잠에서 깨어, 하루 한끼 김밥을 먹고 남은 김치를 싸달라고 하던 때,

그나마 받은 알바비를 의료보험공단에 몽땅 털리고 난 뒤, 백기를 들고 다시 이력서를 썼다.

이번에도 역시, 이전 경력과도, 개인적인 관심이나 흥미와도 전혀 상관없는 롤이었지만,

물불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아 이번엔 역삼동인건가......'

그로부터 어느새 3년이 지났다.

무엇보다 먼지처럼 쌓여있던 각종 빚덩어리들을 청산할 수 있어 다행이다.

(신세진 분들께 다시한번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얼마 전에는 9년만에 ㅊㅈㄷ 집 청소를 하기도 했다.

(몇번이나 쓰레기통을 뒤졌다. 버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아직 진행형이기 때문에 이 곳에 대해서는 언젠가 다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5.

우연인지 무의식의 의지인지,

자본론의 챕터처럼 제조, 금융, 유통 관련 업종과

한국계, 일본계, 미국계, 영국계 회사를 두루두루 다녔다.

특별한 오브젝티브나 비젼 없이, 그저 회사 일은 회사 일로, 

적어도 맡은 일로 크게 민폐는 끼치지 않으면서,

최소한 서로 얼굴 붉히거나 마음 상하는 일 없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참여관찰 하듯 지내온 것 같다.

모두 사려깊게 배려해 준 동료들 덕분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여전하지만, 하루하루 제때 퇴근하고, 한달한달 월급 받으며,

퇴근 후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한 셈이다.

나이/숫자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지만, 올해는 30대의 마지막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39는 '상큐'로 읽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 생활을 계속할지,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모쪼록 괴물이 되지 않는 선에서, 신념을 배반하거나 영혼을 깨드리는 일은 없길 바란다.

6시다. 퇴근하자.

 

2014.8.4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청룡과 최동원

'국민'학교 때, 아주 잠깐 야구부를 했었다.

 

육상부를 먼저 했는지, 축구부를 먼저 했는지 가물가물 하지만, 교내 체육대회 때, 반에서 나갈 사람이 없어 무심코 던진 공(당시에는 돌로 만든 수류탄을 던졌다)이 60m인지 70m인지를 넘기면서 야구부 선생이 찾아왔던 것 같다.

 

당시 국딩 남자애들은 프로야구에 열광했다(여자애들은 양배추 인형을 좋아했다). 수원의 4대문 밖 변두리 남자애들은 대부분 서울 연고의 베어즈(박철순!)나 청룡(김재박,백인천)을 좋아했던 것 같다. 마땅한 적수가 없었던 무등산 호랑이를 좋아하는 애들도 있었다. MBC청룡의 좌익수 이종도와 2루수 김인식에 왠지 정이 갔지만, 청룡을 좋아하는 애들 중에 좀 재수없는 애들이 있어서 가끔 좀더 쎄 보이는 타이거즈를 좋아한다고 했던 것도 같다.

 

이종도 하면 사람들은 대개 프로야구 개막전 10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기억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아직도 1인칭이 어색해서 '저는/나는'이라는 단어를 차마 못쓰겠다) 외야 깊숙한 곳에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김인식의 경우는, (그를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사용되는 키워드인) 깡다구, 데드볼왕, 연속출장, 노삼진 등과 같은 기록 보다 심판한테 엄청 게기다가도 금방 생글생글 웃는 까무잡잡한 얼굴이 친근해 보였다. 평생 딱 한번 가입했던 어린이 회원 생일 선물도 김인식의 사진과 사인을 받아 우표집에 꽂아 두었다.

 

그러고보면 야구뿐만 아니라 농구에서는 강정수(중대), 탤런트 중에는 강남길이나 임현식 같은, 좀 가난하고 불쌍(?)해 보이면서도 성실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닌 촌스런 아저씨 스타일을 좋아했는데(물론 대학 후에는 아저씨라는 단어 자체가 싫어졌지만..), 이건 아마 국민학교 입학 전부터 (아빠가 다니던) 담배공장 목욕탕에서 선한 표정의 노동자 아저씨들과 친해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여튼, 5, 6학년 때는 평소 학교에 갈 때나 자연농원/민속촌으로 소풍을 가는 특별한 날에도, 노랑과 파랑이 적당히 섞여있던 청룡 잠바와 검정과 빨강의 타이거즈 모자를 자주 입고/쓰고 다녔다. 어린이 회원 무료입장 이벤트 때는 친구하고 짜고 친구 엄마한테 생일이라고 뻥치고 그 돈으로 생전 처음 잠실 구장에 갔다가, 다음 날 담임한테 개박살 났던 적도 있다. 방과 후에는 동네 공터나 ㅅㅇ여고 운동장에서 변변치 못한 비닐 글러브와 나무 방망이를 들고 밤늦게까지 야구를 하곤 했다. 공부 잘하고 앞에 앉는 애들팀은 버팔로, 운동부 소속(5, 6학년때 담임이 체육선생이었는데, 육상부와 씨름부가 2년 동안 같은 반에 다녔다)의 뒤에 앉는 애들팀은 맘모스였는데, 물론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끔 근처 ㅅㅇ국민학교 애들하고도 티격태격 원정경기를 했던 것 같다. 주 포지션은 포수-유격수, 공은 주로 테니스볼을 사용했다. 

 

그런데, 정작 야구부에 들어가서는, 제대로 연습 한 번 못하고 그만 두었는데, 어린이 회원 가입비가 없어 곤란해 하던 엄마한테(당시 장남인 아빠와 (재래시장에서 통닭장사를 하던) 엄마가 시골에서 올라온 11명의 가족을 부양하고 있었다) 유니폼 살 돈을 달라는 말을 못했기 때문이다. 선생한테는 돈이 없다는 말은 못하고, "축구가 더 좋아서요"라고 했던 것 같다. 정확하진 않지만, 학교 야구부 자체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금방 해체를 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근처 국민학교에 야구부가 있었기 때문에 뭔가 윗선에서 압력이 있었거나 경쟁력이 없다는 의사결정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며칠 전 언니오빠 운동회의 여운도 있고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그로부터 어언 27년만에 처음 야구 유니폼(이라기 보다는 달랑 티사쓰 한장이지만)이라는 것을 장만했다. 블루윙즈 서포터즈나 ㄱㅈㅅ 팬클럽으로 한참 축구장에 다닐 때부터도 어언 14년만이다. 작년에 두어번, 올들어 서너번 동네친구들과 야구장 음주가무를 즐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때보다 공도 더 못던지고 더 빨리 달리지도 못하지만..

 

어렵지 않게 공구 사이트를 찾아 청룡 유니폼을 주문했는데, 문제는 백넘버였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김인식(4)"으로 하려고 했지만, 주위에서, "엥? 왠 김인식 감독?"이라고 물을 경우, "아 그 사람 말고, 어쩌구저쩌구..." 매번 같은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 귀찮아,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했다. 그렇다고 이종도나 백인천, 이해창 등을 적는 건 그들에 대해 아는 게 너무 없기 때문에,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티셔츠에 넣을 이름으로는 뭔가 좀 부족했다.

 

물론 축구 유니폼이라면 대학 축구'반'에서부터 회사 동호회 등등 새로운 유니폼을 만들 때마다, 이미 너무 확실한 one solution - "윤정환"이 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야구는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사토신지를 넣는 것도 좀 거시기 하고, (사실 마사루의 샤론(캐서린)이나 마츠모토 타이요의 "하나오",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에 나오는 인물 등도 떠올려 보기는 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결국, 공구 마감 마지막 날, 신청한 이름이 바로 "최동원(11)"이다. 혹시 고인이나 자이언츠/청룡 팬들에 대한 실례가 아닐까 조심스럽긴 했지만. 그 티셔츠가 한달이 훨씬 넘어 지난 목동 직관+즉석만남-_- 다음 날(5/25(토)) 도착했다. 물론, 1984년 한국시리즈 4승이나 87년 5월 16일 선동렬과의 전설적인 명승부 등 한 야구 천재에 대한 오마주의 의미도 있지만, 그 보다는 아래 글과 같은 선수협 활동에 대한 연대감/respect의 의미가 훨씬 크다.

 

오늘 드디어 (트윈즈와 자이언트의 시합에) 이 유니폼을 입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덧붙여, (제일 밑에 옮긴 댓글에 동의하며) 앞으로 프로야구/스포츠 관련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기업명은 생략하겠습니다.)


--------------------------------------------

[김형민/산하의 오역]

 

1987년 5월 16일 퍼펙트 게임 그 후 

 

 

조승우와 양동근이 최동원과 선동열 역을 맡은 영화 "퍼펙트 게임"은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조승우와 양동근 두 연기파 배우의 열연도 훌륭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조승우의 연기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조승우는 故 최동원을 많이 연구한 것 같다. 고인의 와인드업 시 보여주었던 다이나믹한 킥킹 (한창 때는 거의 이마까지 올라가던)을 거의 근사치까지 흉내를 냈고, 부산 사투리도 거의 흠잡을 데가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감동했던 것은 최동원을 그린 듯이 닮은 미소였다. 때로 활짝 웃기도 하지만, 대개는 입이 우선 오무려진 뒤 조금씩 이를 보이며 그려가던 최동원 특유의 수줍은 미소. 그걸 조승우가 스크린상에서 선보일 때는 아까운 나이에 하늘로 간 최동원이 돌아온 것 같은 착각에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수십만이 알다시피 이 영화는 1987년 5월 16일, 불세출의 두 투수가 벌인 그야말로 '영웅적인' 투수전을 소재로 한 것이다. 그때까지 1승씩을 주고받았던 두 사람은 나란히 선발투수로 사직운동장 마운드를 밟았고 그때부터 징하도록 긴 명승부를 조율해 나간다. 82년 세계 선수권 대회 때 그랬듯 초반 난조를 종종 보이던 선동열이 먼저 2점을 내 줬지만 해태 타선도 최동원에게 그 정도의 점수를 낼 능력은 있었다. 2대2. 그러나 롯데와 해태 양팀 타선 모두에게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았다.
 

마치 용의 뱃속에서 뿜어나오는 불같은 강속구로 거의 혼자 힘으로 롯데를 우승시켰던 중천의 해 최동원과, 고려대 시절부터 그때까지 부동의 에이스로 상대팀의 공포의 대상이던 떠오르는 해 선동렬은 그야말로 공 하나 공 하나에 자신들의 명예를 실어 던지는 듯 했고, 투수전은 재미없다는 말은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몰매도 모자랄 망언으로 화한다.
 

가끔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배트로 의자를 부숴 버리던 카리스마짱 김응룡 감독도, 롯데의 성기영 감독도 감히 마운드에 올라가 공을 달라고 요구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타자들은 본의 아니게 조역이 되어 갔다. 9회를 넘어서도 더욱 쌩쌩해지는 둘의 공은 관중들을 무아지경으로 몰아넣었다. 나이 서른의 최동원은 던질수록 젊어지는 듯 했고, 대주자 작전을 쓰느라 포수 자원을 다 써 버려서 직구만 겨우 포구 가능한 내야수 백인호에게 마스크를 맡긴 선동열은 직구로 롯데 타선을 농락했다. (이 대목은 영화에서 만년 후보 포수 박만수의 인생역전 스토리로 각색된다)
 

경남고 연세대를 나와 부산에 연고지를 둔 제과회사 롯데의 수호신이었던 최동원과 광주일고 고려대를 나와 광주에 둥지를 튼 제과회사 해태의 간판이었던 선동렬은 각각 2백개가 넘는 공을 던지며 격렬하게 맞섰다. 장엄하기까지 한 승부였다. 또 그때 그 시절이니만큼 가능한 승부였다. 요즘이라면 2백개 이상의 공을 뿌려대는 1:1 승부란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기 때문이다. 희대의 명승부는 선동렬이 15회말 롯데 타자 3명을 내리 삼진으로 잡아내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1승 1무 1패를 마지막으로 둘의 맞대결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보자면 선동렬을 떠오르는 태양이었고 최동원은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긴 했지만 지는 해였다. 선동렬은 더욱 승승장구하여 일본에서도 '쥬니치의 태양'으로 군림했고, 선수 뿐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행운을 누렸지만, 최동원은 그 뒤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은퇴한 뒤 야구계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얻지 못하는 '야구계의 야인'(野人)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정적 계기는 88년 "선수상호간의 친목과 복지"를 내세운 선수협의회 결성 시도였다.

 

최동원은 그 선봉장이었다. 인척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하고, 체육부, 노동부 등에 적법성을 문의하고 선수들을 설득하는 그 까칠하고 귀찮은 일을 도맡아 했다. 당시 최동원의 코멘트는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조승우가 멋지게 내뱉던 대사, "게임은 최동원이 끝냅니다. 이겨도 내가 끝내고 져도 내가 끝냅니다!"만큼이나 사람을 울컥하게 만든다.
 

"누군가가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입니다. 사실 제 생각만 한다면 선수회 만들 일 없습니다. 어려운 동료, 불우한 후배들을 돕자는 취지에서 저같이 연봉 많이 받고 여유있는 선수들이 앞장선 거죠."
 

1988년 9월 30일 마침내 계룡산에서 선수협 대의원 총회가 개최되던 날. 물론 방해 공작은 간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지경이었다. '노조 없는 기업'의 대명사 삼성은 담당 이사가 직접 설득에 나서는 한편, 박승호, 장효조, 김시진 등 해당선수의 부인을 협박해서 남편의 행동을 저지하도록 했다. (아 삼성......) 해태는 새벽부터 구단직원들을 선수들의 집 앞에 대기시켜 거머리처럼 물고 늘어졌고, 태평양은 선수 전원을 구단사무실에 집결시켜 일일이 포기 각서를 받아냈다. 롯데의 경우도 선수들을 소집하여 오후 6시까지 잡아놓은 뒤 이제는 못 가겠지하고 풀어 줬는데 롯데 소속 대의원들, 김용철 유두열 김민호 한영준 김용운 윤학길 (아아 내 추억 속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 등은 나는 듯이 계룡산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어렵게 모였지만 정족수는 미달됐고, 구단들의 압박은 더욱 강화되면서 끝내 선수협은 와해되고 만다. 그리고 선수협의 주동 최동원은 롯데 유니폼을 벗는다.
 

선수들의 참여가 가장 두드러졌던 롯데의 경우 선수들에게 "선수협 포기 각서"를 요구한다. 이 치졸한 요구에 견결히 불응했던 이가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 최동원의 앙숙으로 등장하는 김용철이었다. "안한다 캤으면 됐지 각서까지 낼 이유가 뭐꼬?" 예나 지금이나 속 좁기로는 롯데껌 껌종이만도 못한 롯데 구단은 김용철의 훈련 참가를 불허한다. 선수단은 이 구단의 조처를 두고 단체 행동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투표에 부치지만 "롯데의 최동원"이 한칼에 날아가는 것을 지켜봤던 선수들은 단체 행동에 반대하고 김용철은 여기에 분통을 터뜨린다. "우째 자~들이 내 동료란 말이고. 자들 믿고 무슨 야구하겠노." 롯데에 정나미가 떨어진 김용철은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롯데 구단은 얼씨구나 그마저 롯데에서 쫓아내 버렸다.

 

영화 <퍼펙트 게임>의 주연과 감칠맛 나는 조연은 그렇게 '롯데 자이안츠'에서의 야구 인생을 마감했다. 뒷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삼 영화의 장면들과 1987년 5월 16일 실제로 벌어졌던 야구 영웅들의 혈투가 머리 속을 감아든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던 장엄한 승부. 그러나 그 주인공들 중 한 켠은 치졸하고 추악한 구단들의 횡포 속에 쓸쓸하고 씁쓸한 뒤안길로 퇴장해야 했다. 그 전말은 정말로 '퍼펙트'한 분노를 불러일으킨다. 다시 한 번 최동원 선수. "코리안 시리즈 네 번을 다 나갈 수 있겠나?"라는 감독의 어이없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질문에 "해 보입시다 마."를 부르짖었던 불굴의 투수, "내가 안하모 누가 하겠능교?"라고 금테 안경을 쓸어올리며 선수협의 필요성을 주장하던 용감했던 사람, 고 최동원 선수의 명복을 빈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559087687469754&set=a.210233439021849.59837.100001055837349&type=1

 

-------------------

(위 글의 댓글 중 전재성 님의 좋은 글이 있어 같이 옮깁니다.)

 

선수협이 기어이 태어났을 당시, 송진우 회장을 비롯 심정수, 박충식등 선수협 결성에 앞장섰던 이들을 방출하겠다는 협박에 맞서 팬들이 강남역 인근에 모인 일이 있습니다. 당시 롯데 응원단장이라고 소개하셨던 분의 말을 여지껏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모이셨는데 다들 좋아하는 팀은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다들 야구를 좋아하는 분들이고 우리 선수들의 편에 서있는 분이라는 것, 그것은 확실하시죠?(환호) 저는 원레 롯데를 싫어합니다. 아마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입니다. 저는 롯데팬이 아이고 자이언츠팬입니다. " 그 날 그 곳에는 기업을 좋아하는 이들이 아닌 호랑이팬, 거인팬, 곰팬, 독수리팬, 사자팬, 비룡팬, 쌍둥이팬들만 모여 있었습니다. 저 역시 곰팬으로 그 자리에 있었음을 아직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밑줄] 코르푸스

 

코르푸스

몸, 가장 멀리서 오는 지금 여기

장-뤽 낭시/ 김예령2006 Editions Metailie / 2012 문학과 지성사

 

 

코르푸스

오크 에스트 에님 코르푸스 메움Hoc est enim corpus meum…… (옮긴이 – 이것은 진정 나의 몸이니) 우리 서구 문명은 이 제례 문구로부터 발원하였다. (7)

 

밖-갗으로의 노출Expeausition

몸들은, 추락이든 이탈이든 분리든, 어떤 움직임의 임박성 하에 언제나 출발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공간의 열림, 혹은 이 같은 출발이야말로 몸의 내밀성 그 자체이자 몸이 행하는 자기 절단의(다른 표현을 쓴다면 그것의 변별성이나 개별성의, 나아가 그것의 주체성의) 맨 끝부분이다. 몸은 그것이 떠난다는 한에서, 바로 여기에서 여기로부터 이탈한다는 점에서, 출발에 듦으로써 자아가 된다. … 출발로서의 자기 분리l'ápart soi en tant que départ가 거기서 드러난다.

이 현기증 나는 자아로부터의de soi 절삭이야말로 자기까지jusqu’ à soi 이르는 잘라냄의 무한함을열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몸은 이같이 자기로부터 자기에 이르는 출발이다. (36-37)

 

자리의 실재성

그런 이유에서 몸에 관한'사유'는 굳이 그 어원을 따지든 그렇지 않든 간에 실제적인 무게 달기pesée(옮긴이- 프랑스어 ‘생각하다penser’는 ‘무게가 나가다’ 혹은 ‘무게를 측정하다’라는 뜻의peser와 어원이 같다) 될 수밖에 없고, 그런 이유에서 자리의 실재성, 아레알리테aréalité에 의거하여 굽혀지면서-펼쳐지는 하나의 접촉이다. (46)

 

무게달기

접촉의 코르푸스를 열거해보자. 살짝 닿다, 스치다, 압박하다, 박다, 조이다, 매끈하게 하다, 긁다, 비비다, 쓰다듬다, 톡톡 두드리다, 더듬다, 주무르다, 마사지하다, 껴안다, 포옹하다, 치다, 꼬집다, 물다, 빨다, 적시다, 잡다, 놓아주다, 핥다, 뒤흔들다, 바라보다, 듣다, 냄새 맡다, 맛보다, 피하다, 입 맞추다, 어르다, 안다, 살랑살랑 흔들다, 무게를 달다…

그런데 굳이 종합하지 않아도 결국 모든 것은 무게 달기la pesée와 통한다. … 몸은 곧 하나의 무게이다. … 모든 몸은 다른 몸들 위로, 다른 몸들을 대고 누른다.

몸들은 가볍게 무겁다. … 따라서 사실을 말하자면 그것의 원칙과 예측은 내리누름peser이 아니라 달아 올림être pesée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내리누르는 것은 단 하나의 지지대 위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하나의 우주를 조립montage하는 것을 가정한다. 그러나 무게를 달아 올리는 것은 또 다른 몸의 협력을 필요로 하며, 따라서 한 세계의 펼쳐짐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는 더 이상 전제의 영역이 아니라 도래의 영역이다. 몸들은 서로서로 누르면서 온다. 바로 그것이 세계다. 세계가 아닌 것immonde, 그것은 모든 것이 미리 놓여버린 것, 즉 전제pré-supposé를 뜻한다. (92-93)

 

노동, 자본

몸들은 먼저 어디에 있는가? 그것들은 우선 일터에 있다. 몸들은 우선 노동이라는 수고에 처한다. 몸들은 우선 교통수단을 타고 일터로 가거나 일을 끝내고 돌아오고, 휴식을 기다리고, 휴식을 취했다가 이내 그것을 포기하고, 일하고, 상품 속에 병합되어 상품 그 자체가 되고, 노동력이 되고, 축적되고 축적하는 자본 시장에서 축적할 수 없되 팔거나 소진시킬 수 있는 자본을 형성한다. 창조하는 테크네는 공장과 공방과 건설 현장과 사무실의 몸들을 창조한다. 부분이 다른 부분의 바깥이 되게끔 형상과 움직임을 시스템 전체와 연계하여 부품, 레버, 연동장치, 케이스, 나사, 마개, 프레이즈반, 전기회로 분리, 도금, 굴종의 체계, 체계의 굴종, 저장, 관리, 하역, 파기, 통제, 수송, 타이어, 연료, 다이오드, 커플링, 갈퀴, 크랭크암, 회로, 디스켓, 복사, 계표기, 고온 가열, 살포, 굴착, 배선, 도선, 그리고 오직 스스로의 힘이 화폐로 전환되는 쪽으로만, 거기에 모여 집적되는 자본의 최대치로만 유도되는 몸을 구성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식의 담론이 이젠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지 말자.

자본이란 이것이다. 몸이 상품화되고, 수송되고, 이동되고, 재배치되고, 대치되고, 하나의 자리와 자세에 처하는 그 과정을 마모될 때까지, 결국 실업의 상태에 빠져 기아에 이를 때까지 계속 밟는 것. 도쿄의 오토바이 위에 올라앉은 벵골인의 굽은 몸, 베를린 참호 속 터키인의 몸, 하얀 소포 꾸러미들을 짊어진 쉬렌이나 샌프란시스코의 검은 몸…… 따라서 자본은 몸들의 초-기호 작용 체계système de sur-sifnification를 의미하기도 한다. 계급이나 노고, 그리고 계급 간의 투쟁만큼 기표/기의적인 것도 없다. 각종 힘에 의해, 근육과 뼈와 신경의 뒤틀림에 의해 겪게 되는 노력만큼 기호학의 망을 피하지 못하는 것도 없다. 저들의 손에 앉은 굳은살과 딱지를 보라. 저 허파들을, 척추 뼈들을 보라. 더러워지며 일당을 받는 몸들. 기호 작용의 환環을 완벽히 아물리는 더러움saletè과 보수salaire.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가 문학이다.

철학의 종말. 특히 노동의 철학 전체의 동의어로서 몸의 철학 전체의 끝. 점점 더 조여들고 새되고 날카로워져만 가는 시간 안에 자본이 집적하고 과잉 투여한 몸을 해방하고 공간을 재개진하는 일. 시간으로 만들어 진 몸corps made in time. 하지만 창조는 영원한 것이다. 영원, 그것은 펼져진 것, 태양과 섞인 바다, 그리고 창조된 몸들의 반발과 반항이란 의미에서, 간극의 창출이다. (107-108)

 

영혼에 관하여

그러니가 제가 피하고자 한 것은 닫히거나 종결된 것의 효과입니다.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닫힌 것, 종결된 것과 정반대되는 것에 대해 말하는 셈이니까요. 몸에 관해 말하는 것은 열려 있고 무한한 것에 대해서, 다시 말해 닫힌 것 그 자체의 열림과 유한한 것 그 자체의 무한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서 전개해보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도 따지고 보면 ‘몸은 열림이다’라는 것입니다. 열림이 있으려면 무언가 닫힌 게 있어야 하겠지요. 닫힌 것을 감지할 수 있어야 열리는 것도 가능합니다. 닫혀 있는 것에 접촉하는 것, 그것은 벌써 여는 것입니다. 하나의 접촉이나 건드림이 없다면 열림도 결코 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여는 것, 다시 말해 접촉하는 것은 찢거나 사지를 분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닙니다. (121)

 

몸에 관한58개의 지표

9. 몸은 가시적이나 영혼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몸이 마비된 사람이 자신의 한쪽 다리를 알맞은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은 잘 보지만, 심술궂은 사람이 자기 영혼을 좋은 쪽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우리는 그의 심술궂음이 영혼이 마비된 탓이라는 점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같은 영혼의 마비에 대항하여 싸워 그것을 굴복시켜야 한다. 이것이 바로 윤리의 기초다, 친애하는 니코마코스. (164-165)

 

10. 영혼에게 몸은 또한 일종의 감옥이기도 하다. 영혼은 이 몸이라는 감옥 속에서 비록 그 성질을 간파하기 어려우나 매우 심각했음에 틀림없는 고통을 씻어내야 한다. 몸이 영혼에게 그토록 무겁고 불편한 것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몸은 먹은 것을 소화해야 하고, 자야 하고, 배설해야 하고, 땀 흘려야 하고, 스스로를 더럽혀야 하고, 상처를 입어야 하고, 병에 걸려야만 한다. (165)

 

11. 치아는 감옥의 채광창에 설치된 철책이다. 영혼은 입으로부터 말이 되어 빠져나간다. 그러나 말 또한 여전히 몸에서 비롯하는 방출물이자 발산물, 몸에 의해 데워져 허파에서 솟아나는 공기의 가벼운 주름들이다. (165)

 

23. 머리는 몸에서 따로 분리된다. 그러기 위해서 참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머리는 그 자체가 스스로 분리되고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이다. 몸은 하나의 전체로 서로 연관되고, 구성되고, 조직된다. 머리는 단지 구멍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구멍들의 텅 빈 중심은 점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무한한 집중인 정신을 매우 훌륭하게 표상한다. 동공, 콧구멍, 입, 귀, 이런 것들은 다 구멍이자, 공동空洞이 되어 몸 바깥으로 도주하는 것들이다. 다른 구멍들, 즉 하체의 구멍들을 제외하면, 이러한 공동들의 집중은 가늘고 부서지기 쉬운 통로, 즉 골수 및 부풀거나 끊어질 준비가 되어 있는 기타의 경로가 지나가는 목에 의해 몸에 부착된다. 복합적인 몸을 구부려 단순한 머리에 연결시키는 가냘픈 부착점. 근육을 지니지 않은 머리에는 다만 힘줄과 뼈,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무른 회색의 실질, 순환 회로와 시냅스가 있을 뿐이다. (167-168)

 

28. 몸. 즉 매끈하거나 주름진, 기름지거나 마른, 털이 없거나 많은 영혼. 혹이 났거나 상처가 난 영혼. 춤추거나 잠겨드는, 굳은살이 박였거나 축축하거나 땅바닥에 넘어지는 영혼…… (169)

 

36. 코르푸스. 몸은 온갖 부분과 조각들, 사지, 지대와 상태, 기능의 총집합체이다. 머리, 손, 연골, 화상, 감미로움, 분출, 졸음, 소화, 격분, 흥분, 호흡, 자기 재생산, 자기 갱신, 타액, 관절액, 비틀기, 경련, 그리고 미인점. 집합체들의 집합체, 곧corpus corporum이 몸이다. 그러나 이러한 몸의 일치는 일치 자체에도 하나의 의문으로 남는다. 심지어 기관 없는 몸의 자격으로 고려될 때조차도 몸은 어쨌든 백 가지 기관을 지니며, 그 기관들은 전체를 저마다 제 편으로 당겨 탈조직화한다. 그럼으로써 전체는 더 이상 스스로를 총체화하는 데 도달하지 못한다. (171)

 

37. ‘이 포도주는 얼마간의 몸을 지닌다.’ 포도주는 입 안에 일종의 두께, 맛에 동반되는 어떤 견고성을 남긴다. 포도주는 양 볼 사이와 입천장 아래에서 혀에 감기며 그 혀가 저를 접촉하고 더듬도록 내버려둔다. 포도주는 위장에 유입되는 정도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어서, 입 안에 얇은 껍질 같은 것, 다시 말해 제 향취와 원기로 이루어진 섬세한 막 또는 침전물을 깔아놓을 것이다. 우리는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이 몸은 얼마간의 포도주를 지닌다.’ 포도주는 머리로 올라가고, 정신을 매혹하고 마비시키는 증기를 발산한다. 정신을 건드리라고, 그것과 접촉하여 전율하라고 부추기고 선동한다. (171-172)

 

38. 어떤 몸이 우리에게 감각적이고 에로틱하며 정감적인 방출을 초래한다는 것처럼 기이한 사실도 없다. (역으로 또 다른 몸은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몸의 어떤 생김새, 마르기의 유형, 머리색, 자태, 눈을 뜨는 방식, 어깨나 턱, 손가락의 어떤 움직임이나 특유의 형태….. 거의 아무것도 아닌, 그저 하나의 억양, 주름, 다른 것과 바꿀 수 없는 선….. 이런 것들은 한 몸의 영혼이 아니라 정신이다. 정신의 뾰족점, 정신의 서명, 정신의 냄새. (172)

 

42. 몸은 무의식이다. 세포 속에 배열된 조상들의 유전자, 무기염의 섭취, 연체동물 쓰다듬기, 불쏘시개와 땅 밑의 시신이 된 몸을 먹는 벌레들, 혹은 그 몸을 태우는 불꽃, 그 불꽃에서 비롯하는 재, 손대서는 안 될 재가 된 몸, 몸이 스치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들, 식물들, 그리고 동물들, 먼 옛날 유모들의 전설, 허물어져 지의地衣류로 뒤덮인 유적들, 공장의 거대한 터빈들이 몸을 위해 가공해내는 전대미문의 합금 – 그것으로 만든 의치와 그 의치에 혀가 닿으면서 만들어내는 말의 소음, 거칠거나 스스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되어버리는 음소들, 비석에 새겨진 법문들, 그리고 살해나 불사를 꿈꾸는 은밀한 욕망들. 몸은 뼈마디가 불거진 제 손가락들로 비밀스러운 끝 전체를 건드린다. 그리고 몸을 형성하는 것으로, 그리하여 세계의 마지막 날을 종결하는 빛의 세필 아래 모여들어 격렬히 춤추는 먼지들의 코르푸스에 다다르는 것으로 끝난다. (173-174)

 

44. 영혼, 몸, 정신. 영혼은 몸의 형태이고 정신은 영혼을 생산하는 힘이다. 몸은 따라서 정신의 표현 형태la forme expressive이다. 몸은 정신을 표현한다. 다시 말해 정신이 바깥으로 솟아오르도록 하고, 그것의 즙액을 짜고, 그것의 땀을 빼고, 그것의 불똥을 뽑아내어 공간 속에 송두리째 투척한다. 몸은 급작스러운 폭발과도 같다. (174)

 

47. 몸의 외부성과 이타성altérité은 마침내 견딜 수 없을 지경에까지 다다른다. 배설물, 오물, 혐오스러운 배출물은 여전히 몸의 일부를 이루고 몸의 실질에 포함되며, 무엇보다도 몸의 활동에 속한다. 몸은 그것들을 추방해야 하고, 그것은 결코 사소한 직무가 아니다. 배설물에서부터 자라나는 손톱이나 털, 온갖 종류의 사마귀나 화농성의 뾰루지에 이르기까지, 몸은 흡수 과정이 남긴 찌꺼기와 여분, 즉 자기 생명의 잉여분을 저 자신으로부터 분리해 바깥으로 떼어내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도, 보거나 느끼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몸은 그 사실에 관해 수치심과 온갖 종류의 일상적인 불편함과 곤혹감을 느낀다. 영혼은 몸의 어떤 일부에 대해서는 – 저 자신이 그것의 고유한 형태인데도 – 깡그리 침묵하기로 한다. (175)

 

48. 몸의 정확성은 바로 그것이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의 끝에, 흉골의 아래쪽에, 유두에, 오른쪽에, 왼쪽에, 위에, 아래에, 깊숙이, 표면에, 희미하게 퍼져서, 혹은 점적으로 분명하게. 고통이거나 쾌이거나, 자판의 접촉면에서 내 손가락들의 표피로 옮겨가는 움직임이 그런 것처럼 그저 단순한 기계적 전달. 심지어 희미하게 번지는 두루뭉술한 감각에 의해 기술되는 것마저도, 매번 아주 명확한 방식으로 빛을 발하는 이 ‘희미함’의 정확성을 주시하는 것이다. 정신의 구체적 정확성이 수학의 영역에 든다면 영혼의 구체적 적확성은 물리의 질서에 속해서, 그램과 밀리미터의 단위로, 분출에 대한 대기로, 침전화의 속도로, 호흡 계수로 드러난다. 정신론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과 달리, 해부에는 단순화 기제réducteur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극도로 정밀 정확하게 영혼을 드러내는 것이다. (175-176)

 

49. 몸의 비정확성은 또한 이러하다. 여기 대략 사십대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있다. 왠지 냉정하고 신경질적인 태도, 수심에 차 있으며 어쩐지 약간 사람을 회피하는 듯한 표정. 그는 좀 뻣뻣한 자세로 걷는다. 어쩌면 그는 교수나 의사일 수도 있다. 아니면 판사이거나 행정가. 옷차림에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닌 듯.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으며 안색이 가무잡잡한 걸로 보아 지중해 지역 출신일 수 있겠다. 어쨌든 북방계는 아니다. 게다가 그는 지극히 평균적인 키를 갖고 있으니까. 그가 좀 어색해 하고 있다는 것이 감지된다. 권위와 결정권을 가진 사람인지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지도 좀 의심스럽다…… 이런 유의 장부는 한참 더 작성해나갈 수 있다. 그만큼 무수한 징표들이 하나의 동일한 몸 위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많은 점에서 틀리리란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어쩌면 전부 다 틀릴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가 절대적으로 오류를 범할 리는 없다. … 우리는 어디서 개별성이 시작되며 어디서 유형이 끝나는지 결코 말할 수 없다.(176-177)

 

51. 미인점. 피부 위에 아주 살짝 돌출되어 간간이(어떤 이의 경우에는 번번히) 포인트나 마크, 표징 노릇을 하는 갈색이나 검은색의 입자들을 프랑스어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 따라서 그 시대의 여인들은 이 벨벳으로 만든 ‘파리’를 필요에 따라 대로는 뺨에, 가슴에 붙이곤 했다. … 그것은 피부를 강조해주고 피부의 확장에 측량표들을 세워 그 윤곽을 선명하게 만든다. 그리고 보는 이의 시선을 인도하며 일종의 욕망의 지표처럼 작용한다. 조금 더 욕심 부려 표현하자면 미인점은 욕망의 싹이자 강도의 아주 미소한 융기이고, 젖꼭지가 그런 것처럼 그 짙은 색깔 안에 몸 전체의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미립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177-178)

 

54. 몸. 그리고 살갗. 그 나머지는 전부 해부학이나 생리학 또는 의학 차원의 문학이다. 근육, 힘줄, 신경과 뼈, 체액, 샘과 장기들은 인지적 허구, 또는 기능주의에 입각한 형식주의에 속한다. 진실은 살갗이다. 진실은 살갗 속에 있으며 살갗을 이룬다. 꾸루룩 소리와 퀴퀴한 냄새로 가득 찬 ‘안’을 감싸는 동시에 전적으로 바깥을 향해 노출된, 진정으로 확장된 것. 살갗은 접촉하고 접촉된다. 살갗은 쓰다듬고 어루만지거나, 상처 입고 쓸리고 긁힌다. 살갗은 곧잘 자극을 받거나 흥분한다. 또는 태양과 추위와 열기, 바람, 비를 받아들이고 주름과 점, 사마귀, 찰과상 따위의 안의 흔적들이나 바깥은 징표들(때때로 그것들은 안의 흔적과 동일한 것들이다). 나아가 균열이나 상처, 화상, 자상들을 아로새긴다.(178-179)

 

58. 어째서 쉰여덟 개의 징표들인가? 왜냐하면5+8=몸의 주요 구성 요소, 즉 두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에 몸의 여덟 가지 부위, 즉 등, 배, 두개골, 얼굴, 엉덩이, 성기, 항문, 목구멍을 더한 수이므로. 또는5+8=13이고, 13은1&3인즉, 1은 일치(하나의 몸)에 해당하고3은 몸의 물질과 영혼과 정신 사이에서 순환하고 분할하며 촉발되는 끊임없는 동요와 변형에 해당하기 때문에. 또는 타로 카드의 열세번째 비밀은 죽음을 가리키며, 죽음은 몸을 진흙과 화학주기, 그리고 열과 별의 섬광으로 이루어진 결코 소진되지 않는 범우주적 몸과 합체시키기 때문에……(179)

 

59. 따라서 잉여적이고 초과적인 쉰아홉번째의 징표가 나타나니, 그것은 바로 성le secuel이다. … 몸은 다른 성을 가진 몸과 관련된다. 섹스를 통해 스스로의 경계에 접촉하는 것으로서의 몸의 육체성이 이 관계의 핵심이다. 몸의 육체성은 즐긴다. 바꿔 말하면 몸은 저 자신의 바깥에서 요동한다. 몸의 각 지대는 저 스스로를 위해 즐기는 가운데 바깥을 향해 동일한 섬광을 방출한다. 그것의 이름이 영혼이다.(179)

 

옮긴이의 말 – 몸의 사유, 바깥은 접촉

그러나 몸에 대해, 다시 말해 몸이라는 시니피앙에 대해 사유하는 것 말고 ‘몸을’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가. 아예 ‘몸의’ 사유라는 것은 또한 어떤 것이겠는가. … 몸의 사유란 몸의 있음 그 자체다. 동시에 저의 있음을 느끼는 몸, 제가 있다고 느끼는 사유이기도 하다. 스스로 펼쳐지면서 그 펼쳐짐을 느끼는 것. 저이면서 또한 저의 바깥으로 작동하는 감각과 의식의 움직임. 요컨대 핵심은 이 분리 불가능한 이중의 움직임과 함께 시작되는 일, 곧 있음의 ‘있음’에 있다.(181-182)

빠르게 서술하자면 『코르푸스』에서 낭시가 시도하는 모색과 실험은 다음과 같다. 앎의 불가능성과의 접촉을 통해 비로소 열리는 어떤 사유의 가능성(에고 숨!), 저 자신의 한계에 닿아 열림과 파열로써 개진되는 글쓰기, 그리고 언어의 경계와 얼개를 끊는 그 글쓰기의 파열을 통해 저 자신과의 결렬이라는 낯선 경험으로서만 스스로를 드러내는 ‘있음’의 섬광(실존). 바꿔 말해 이 에세이는 글쓰기=존재론=몸의 도래(창조)의 테크네라는 등식이 어떻게 성립하는가에 대한 면밀한 성찰이자 그 등식을 몸소 입증하기 위한 형성 기술의 적용물이다.(182)

그러나 이 접촉은 단순하지 않다. 말의 질서와 물의 질서가 만나지 않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의 분류에 따르면 렉톤, 즉 몸이 아닌 것incorporel의 질서에 속하는 말은 본질적으로 몸을 가진 것corporel의 질서로 뚫고 들어갈 수 없다. … 낭시에 따르면 의미sens의 질서와 피sang의 질서가 서로 침투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그 간극을 타고 세계가 도래하며, 의미가 중단되는 그 사이로부터 ‘있음’(의 감각sens)이 발생한다. 그러니까 그럴 때 몸은 흔히 생각하듯이 영혼과 대비되는 단순한 매스나 실질(즉 덩어리나 점적인 집중)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리로서의 실재서altérité, 다수(몸=몸들), 또는 있음이라는 강도와 밀도가 매번 하나의 실존의 테두리 말단부까지 활짝 펼쳐지는 움직임에 해당한다. 따라서 몸은 곧 영혼이다. … 말이 자신의 경계선을 이어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몸은 동일한 궤적을 타고 그 경계선의 외변으로 작용하며 바깥 – 낭시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의 ‘또 다른 고유-경계’ – 을 구성한다. … 낭시가 접촉의 경험을 천착하면서 그것이 발생하는 자리로 현상학의 살chair 개념에 반해 살갗peur이라는 표면장을 지목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결코 섞이지 않는 질서들이 서로의 바깥이 되는 자리가 낭시에게는 그것들이 닿는 자리고 그럼으로써 몸이 드러나는 자리다. (182-184)

에고의 연속성과 주체의 고유성의 형성에 불가피하며 그와 동일선상에서 일치된 움직임을 그리되, 그러나 결코 그것들에 섞여들지 않는 불연속과 비고유성의 영역으로서의 바깥, 주체sujet에 대해 주체의 배설rejet du sujet로 작동하는 바깥이다. 주체가 보기에 그 바깥은 자기가 아니며, 따라서 배척해야 할 부끄러운 배설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주체가 바로 그렇게 깨끗함과 고유함의 더없는 증표로 자기를 출현시키기 위해 모르면서 작동시키는 스스로의 형성 원리 그 자체다. 배설로서의 주체, 주체의 배설과 함께 오고 드러나는 더럽고 이질적인 바깥으로서의 세계. 낭시는 이렇게 정리한다. 코기토의 사유 행위cogitatio는 그래서 모르는 것, 낯선 것과 마주치고 닿을 때 그 경계에서 경계로서 일어나는 세계와 나의 공동의 동요co-agitation이다. … 그것은 우리가 주체의 문제에서 공동체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도록 길목을 튼다. 머리와 꼬리 사이에 끊임없이 미세한 간극을 벌리고 우회와 우발의 위험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전제를 전제하지 않기에 함께 오는 세계와 나, 또는 몸을 나눈다는 것의 현대적,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는 일은 요약과 함축이라는 빠르거나 뻔한 길보다는 앞서 언급했듯이 모색과 실험으로 점철된, 아니 그 자체가 모색과 실험인 긴 탐사를 요구한다. 마치 우주를 바라보기 위해서 필요한 건 현미경이야, 라고 말하는 듯한 낭시의 텍스트를 읽는 일이 커다란 인내심과 숙고를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184-185)

사유에게 몸이란 사유의 박탈dé-pense, 그러나 역설적으로 저 자신이 작동하기 위해 치를 수밖에 없는 비용이고 지출dépense이다. 있음의 무게. … 주체 따로 대상 따로 나뉘지 않는, 주체도 대상도 아닌 채 저마다에 고유한 무게이자 저 자신의 정확한 측정으로서 저울의 양팔처럼 펼쳐지는 몸-사유의 균형. 분별되되 분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상호 작용하는 이 저울 또는 시소의 이미지가 몸(의) 사유의 진실, ‘나는 있다’라는 확장에 관해 낭시가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예증이리라. (18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년 1학기 문화와 경제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서동진 수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9년 1학기 벤야민

비교문학협동과정

김항 수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년 겨울방학 철콘 세미나

2008년 겨울방학 철콘 세미나

http://club.filltong.net/tekkon

 

 

 

1. 철콘 세미나 #1

 

일시: 2009년 1월 13일(화) 20:30~24:00

장소: 공중캠프

참석자: 혜진, 고엄마, 곧은, 한소, 쟝자끄, 보리, 미민, 민훈, 기호, 제인, 설하, 이윰, 재홍

 

사회학, 홍대 문화, 국문학, 대안공간, 빅뱅,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선사 유적지, 지역 축제, 문화, 혜택, 지역성, 전통적 로컬 문화, 현대 문화, 국적, 역사, 공간,

계급의식, 재생산, 상업화, 신자유주의, 하위문화, 서태지, 벤야민, 사운드 홀릭, 파스텔, 해피로봇,

밴드를 키운다, 문화 상품, 홍대앞 4대얼짱, 장기하, 인디 문화, 클럽 문화, 공간, 양사장, 아이돌, 기획사,

노예계약, 메커니즘, 미디어, 탑 자살미수, 빅뱅 에세이, 대중 문화, 소녀시대 Gee, 대안, 수용자,

고급 인디문화, 취향으로 쟁취하기, 자연스럽게 소비, 근대(성), 시드니 예술가 마을, 행정 권력의 개입,

자기증식, 기획, 론리 플래닛, 꿈의 도시 구리찌바, 강남 좌파, 아파트 공화국, 철콘 등

 

 

2. 철콘 세미나 #2 <철콘 근크리트>

 

일시: 2009년 1월 16일 금요일 19:0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철콘 근크리트> 읽고 글써오기

2. <철콘 근크리트> 애니메이션 감상

3. <아파트 공화국> 책 배부 (지난 출석자 & 당일 출석자에 한함)

4. 다음 커리 정하기

 

 

3. 철콘 세미나 #3 <아파트 공화국>

 

일시: 2009년 1월 21일 수요일 19:3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아파트 공화국> 읽고 글써오기

2. 다음 커리 정하기

 

[발제] 1-2장: 한소, 3-4장: 미민, 5-6장: 이갈, 7-8장: 장쟈끄 

 

 

4. 철콘 세미나 #4

 

일시: 2009년 1월 28일 수요일 19:3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읽고 글써오기
(발제: 맑스-거품, 엥겔스-재홍, 벤야민-원석, 르페브르-제인, 드보르-수연, 카스텔-혜진, 하비-정수, 버먼-이윰, 기타 등등?)
2. 다음 커리 정하기

* 1/21(수)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 중에 맑스, 엥겔스, 버먼을 발제(뒷조사)하실 분은 밑에 답글 남겨주세요. 발제 맡아주셨던 분들도 변경 가능합니다.

* 책에서 다루지 않은 사상가들(예컨대, 세넷, 사센, 레비나스, 요시미 순야, 비릴리오, 세르토 등)에 대해서 발제를 하셔도 됩니다. 물론, 사상가들이 아니라 관심있는 구체적인 사례/사건이나 공간/장소에 대해 준비해오셔도 됩니다.

* 해당 텍스트(Metromarxism(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는 각자 공중캠프에서 찾아가 주세요. 소파와 창고 사이 책꽂이 제일 윗칸에 꽂아두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텍스트에 관심이 있고 다음 세미나에 참석하실 수 있는 분에 한해 자율적으로 가져가시고, 찾아가신 분은 밑에 답글 남겨주세요. 남거나 모자르는 경우, 반품 혹은 추가 주문할 예정입니다.

* 이번 세미나부터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지각/결석에 대한 벌금을 받아 책값/술값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각: 1,000원/10분, 무단결석: 10,000원) 이것도 역시 스스로 양심껏 내주세요.

 

 

5. 철콘 세미나 #5

 

일시: 2009년 2월 4일 수요일 19:3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읽고 글써오기
(발제: 르페브르-제인, 카스텔-혜진, 재홍, 하비-정수, 버먼-이윰, 기타 등등?)

2. 2/18(수) 이후 커리 정하기

* 1/28(수) 참석하지 못하신 분들 중에 책에서 다루지 않은 사상가들(예컨대, 세넷, 사센, 레비나스, 요시미 순야, 비릴리오, 세르토 등)에 대해서 발제를 하셔도 됩니다. 물론, 사상가들이 아니라 관심있는 구체적인 사례/사건이나 공간/장소에 대해 준비해오셔도 됩니다.

* 해당 텍스트(Metromarxism(매혹의 도시, 맑스주의를 만나다))가 필요하신 분들은 말씀해 주세요. 원서를 추가 제본할 예정입니다.

* 2/11(수) 텍스트(데이비드 하비 - 희망의 공간)는 이번 주 토요일(1/31) 이후에 캠프 책꽂이에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가져 가신 분들은 답글 남겨주세요.

*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지각/결석에 대한 벌금을 받아 책값/술값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각: 1,000원/10분, 무단결석: 10,000원) 이것도 역시 스스로 양심껏 내주세요. 참석이 어려우신 분은 미리 답글을 달아주세요.

 

 

6. 철콘 세미나 #6 <희망의 공간(spaces of hope)>

 

일시: 2009년 2월 11일 수요일 18:3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희망의 공간(spaces of hope)> 읽고 글써오기
(발제: 1장-보리, 2~3장-고엄마, 4~5장-이갈, 6~7장-수연, 8~9장-서영, 10장-이윰, 11~12장-미민, 부록-민훈 )

2. 2/18(수) 이후 커리 정하기

1안) 런던, 파리, 뉴욕, 동경 등 세계의 대도시([도꾜 스터디즈] 등)

2안) 한국의 도시들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 광역시의 정체성을 찾아서] 등)

3안) 슬럼 ([슬럼, 지구를 뒤덮다] 등)

4안) 각자 관심있는 지역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동대문, 홍대 앞, 이태원, 시모키타자와, 브라질리아, 꾸리찌바, 요하네스버그 등)

-> 기타 의견이나 같이 보고 싶은 책/논문/기사 등 추천해 주세요.

 

* 해당 텍스트(데이비드 하비 - 희망의 공간)는 캠프 책꽂이에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가져 가신 분들은 답글 남겨주세요.

* 발제문은 토론 내용을 덧붙여서 자료실에 올려주세요. 

*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지각/결석에 대한 벌금을 받아 책값/술값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각: 1,000원/10분, 무단결석: 10,000원) 이것도 역시 스스로 양심껏 내주세요. 참석이 어려우신 분은 미리 답글을 달아주세요.

 

 

7. 철콘 세미나 #7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 (Cities in a world economy )>

 

일시: 2009년 2월 18일 수요일 18:3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사스키아 사센,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위기 (Cities in a world economy )> 읽고 글써오기

 

[발제]

1. 세계 경제에서의 장소와 생산 (서영)
2. 경제의 세계화와 도시의 변화  (제인)
3. 도시 간의 새로운 불균등 (이갈)
4. 새로운 도시 경제 (민훈)
5. 새로운 도시 경제의 논제와 사례 (고엄마)
6. 도시 내의 새로운 불평등 (곧은)
7. 중심과 주변의 새로운 지리학 (미민)

 

* 4장과 6장은 오늘 안오신 분들 중에 골라주세요!

 

2. 2/25(수) 이후 커리 정하기

1안) 런던, 파리, 뉴욕, 동경 등 세계의 대도시([도꾜 스터디즈] 등)

2안) 한국의 도시들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 광역시의 정체성을 찾아서] 등)

3안) 슬럼 ([슬럼, 지구를 뒤덮다] 등)

4안) 각자 관심있는 지역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동대문, 홍대 앞, 이태원, 시모키타자와, 브라질리아, 꾸리찌바, 요하네스버그 등)

-> 기타 의견이나 같이 보고 싶은 책/논문/기사 등 추천해 주세요.

 

* 해당 텍스트는 캠프 책꽂이에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가져 가신 분들은 답글 남겨주세요.

* 발제문은 토론 내용을 덧붙여서 자료실에 올려주세요. 

*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지각/결석에 대한 벌금을 받아 책값/술값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각: 1,000원/10분, 무단결석: 10,000원) 이것도 역시 스스로 양심껏 내주세요. 참석이 어려우신 분은 미리 답글을 달아주세요.

 

 

8. 철콘 세미나 #8 <도쿄 스터디즈(Tokyo Studies)>

 

일시: 2009년 2월 25일 수요일 18:30
장소: 공중캠프
할일:
1. 요시미 슌야, 와카바야시 미키오 편저, <도쿄 스터디즈(Tokyo Studies)> 읽고 글써오기

 

[발제]

1. 임해부도심:여백화하는 도시 공간-오다이바, 혹은 ‘나약함’의 승리 (고엄마)
2. 록본기:미로와 조감-디지털한 도시의 상상력 (제인)
3. 에스닉 스폿:도시에 스며드는 아시아 (수연)
4. 신종교의 건축:이웃한 유토피아 (유미)
5. 노숙자:홈리스의 공간 (곧은)
6. 미군기지:베이스와 비치-쇼난의 기억
7. 스트리트:신주쿠 스트리트 스케이트보딩-도시 하위문화의 일상성 (민훈)
8. 하이킹:변용하는 도보 공간-‘로망스 코스’의 빛과 그늘 (곧은)
9. 교외:교외에서 산다는 것-공허함 속의 과잉 (원석)
10. 문학:교외를 갈기갈기 찢는 문학 (유미)
11. 영화:영화 속의 도쿄 (수연)
12. 대중음악:탈지명의 가사 세계 속에서 (민훈)
13. TV드라마:도시 드라마와 1990년대의 심상풍경 (미민)
14. 대만:‘벌거벗은 도쿄’를 만나다-일본 붐의 전후
15. 교통:도쿄 트레인즈-어느 폴란드인 사회학자가 본 도쿄 (미민)
16. 정보지:'시티로드'와 1970년대적인 것의 패배 (유미)
17. 1980년대 이후:무대로서의 도시 / 산일하는 시선 (고엄마)
18. 아키하바라:‘오타쿠’의 성지는 예언한다 (원석)
19. 섹슈얼리티:도쿄의 ‘성’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제인)
20. 황거/마루노우치:점령지로서의 황거

 

- 6장, 14장, 20장은 오늘 안오신 분들 중에 골라주세요!

 

2. 2/27(금) 저녁 이태원 클럽 필드워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날짜는 변경가능합니다.

 

3. 3월 이후 스터디 커리에 대한 논의

 

1안) 런던, 파리, 뉴욕, 동경 등 세계의 대도시([도꾜 스터디즈] 등)

2안) 한국의 도시들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 광역시의 정체성을 찾아서] 등)

3안) 슬럼 ([슬럼, 지구를 뒤덮다] 등)

4안) 각자 관심있는 지역에 대한 케이스 스터디(동대문, 홍대 앞, 이태원, 시모키타자와, 브라질리아, 꾸리찌바, 요하네스버그 등)

 

* 해당 텍스트는 2월20일(금) 이후 캠프 책꽂이에서 가져가시면 됩니다. 가져 가신 분들은 답글 남겨주세요.

* 발제문은 토론 내용을 덧붙여서 자료실에 올려주세요. 

* 서로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서 지각/결석에 대한 벌금을 받아 책값/술값에 보태기로 했습니다. (지각: 1,000원/10분, 무단결석: 10,000원) 이것도 역시 스스로 양심껏 내주세요. 참석이 어려우신 분은 미리 답글을 달아주세요.

 

 

9. 철콘 세미나 #9 이태원 탐방학습

 

어제 세미나에서 결정된 현장학습(?)에 관해서 말씀드립니다!

 

일시 : 2월 27일 금요일

장소 : 저녁 6시까지 명동 스폰지하우스

계획 : 6시 30분에 지아장커의 <24city> 관람 -> 저녁식사 -> 이태원 이슬람사원 등 구경 -> 클럽문화체험

 

일단 이런 계획-_-;으로 이태원 탐방학습을 갑니다.

2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을 함께 마무리해보아요~

 

탐방학습 참가자 : 고엄마, 곧은, 미민, 수연, 이윰, 제인, 민훈(공연때문에 늦게 참석)

참석하실 분들 연락 주세요!

 

 

+ 2009년 1학기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전규찬 - 공간 수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본론 세미나

2008년 여름방학 자본론 세미나

http://schaum.springnote.com/pages/1521020

 

1. 7월14일 세미나 제안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말하게 내버려 두어라."
- <자본(론)> 서문 중에서


안녕하세요.

지난주 만리포 MT 때,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론 강좌'를 중심으로 세미나를 해보자는 의견이 있어 우선 첫모임을 아래와 같이 하려고 합니다.

* 일시: 2008년 7월 21일(월) 오후 3시
* 장소: 연세대 백양관 문화학 협동과정 연구실
* 할일: 세미나 방식 및 일정 확정
* 숙제:
1. 데이비드 하비 자본론 강좌 Class1 - introduction (http://davidharvey.org/2008/06/marxs-capital-class-01/ ) 보고 듣기(가능하다면 스크립트 작성도...)
2. 향후 세미나 진행 방식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오기
3. 아직 맑스의 자본(론)을 읽어보지 못한 사람은 간단한 자본(론) 해설서 읽어 오기(예: 강신중, <자본>의 이해, 1999 - 절판되었지만 동네 헌책방 및 연대 도서관에 한권, 서강대 도서관(상호대차 가능)에 3권 있음)

* 기타: 세미나 후에 뒷풀이가 있을 예정입니다.
* 관련 사이트:
- 데이비드 하비 자본론 강좌 : http://davidharvey.org/
- 데이비드 하비 자본론 강좌 Discussion Space : http://readingcapital.org/

혹시, 같이 참여하고 싶으시거나 '자본' 이외에 다른 주제의 세미나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전체 답장 (혹은 문화학 협동과정 홈페이지 - 내부 게시판)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쪼록, 관심있으신 분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연세대 문화학 협동과정 즐거운 생활 기획단(준)-_-
 
2. 첫번째 세미나는 7월 21일(월) 오후 3시, 문화학과 사무실에서 있었습니다. 추후 세미나 방식과 일정 등에 대해서 논의하였습니다. http://ycgs.yonsei.ac.kr/bbs/bbs/board.php?bo_table=in&wr_id=714&page=2 (뒷풀이는 캠프. 부대행사로 단체 타로체험이 있었습니다. w/4인+깔마, 씩씩, 연주, 미나, 휘림 등등)
 

3. 두번째 세미나는 7월 30일(수) 오후 4시, 문화학과 사무실에서 있었습니다. 범위는 1권의 1편 상품과 화폐(고엄마), 2편 화페의 자본으로서의 전화(생강), 3편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거품), 4편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짱가) 이었습니다. http://ycgs.yonsei.ac.kr/bbs/bbs/board.php?bo_table=in&wr_id=756 (뒷풀이는 택시타고 레게치킨-캠프 w/4인+이갈)
 

4. 세번째 세미나는 8월 7일(목) 오후 3시, 문화학과 사무실입니다. 범위는 5편 절대적.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 6편 임금, 7편 자본의 축적과정입니다. (뒷풀이: 배트맨! w/4인+Maja, 남친(이름이 뭐였더라), 로리, 씩씩, 연주, 진철 등)
 

5. 네번째 세미나는 8월 13일(수) 오후 3시, 문화학과 사무실입니다. 범위는 2권 1편 자본의 형태변환과 그 순환(짱가), 2편 자본의 회전 7장~ 14장(생강), 15장~17장(씩씩), 3편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과 유통 18장 ~ 20장 8절(거품), 9절~ 21장(고엄마)입니다. 맞죠? (뒷풀이: 닭갈비-태(케익). w/4인+씩씩, 연주)
 

6. 다섯번째 세미나는 8월 20일(수) 오후 4시, 젠더연구소입니다. 범위는 3권 1편 잉여가치의 이윤으로의 전형 및 잉여가치율의 이윤율로의 전형(거품), 2편 이윤의 평균 이윤으로의 전형(짱가), 3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생강), 4편 상품자본 및 화폐자본의 상품거래자본 및 화폐거래자본(상인자본)으로의 전화(고엄마)입니다. (뒷풀이: 오리엔탈 브런치-캠프-통골뱅이 w/4인+정수,기호,재각)
 

7. 여섯번째 세미나는 8월 25일(월) 오후 3시, 과사무실입니다. 범위는 3권 5편 이자 및 기업가 수익으로의 이윤의 분할. 이자 낳는 자본(계속) 21장~28장(생강), 29장~36장(고엄마), 6편 초과이윤의 지대로의 전화(짱가), 7편 수입과 그 원천(거품)입니다. 가능한 짧게 정리하고 방학동안 즐겁게 달려온 세미나 쫑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많이 참석해 주세요~
 

 

+ 2008년 2학기 비교문학협동과정 - 이경덕 맑스 수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witter + facebook

 

id: walkingintherhyth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ふちがみとふなと - 泣く女

泣く女

/ふちがみとふなと


その日は 涙からコトバが溢れてきた
私の涙から コトバが溢れてきた
誰からも見られない 誰からも知られない
誰にも邪魔されない涙が コトバをさそう

いっぱい出てくる いっぱい出てくる いっぱい出てくる いっぱいね
いっぱい出てくる いっぱい出てくる いっぱい 目に涙 *

その日は 涙から怒りが溢れてきた
私の涙から 怒りが溢れてきた
誰からも見られない 誰からも知られない
誰にも邪魔されない涙が 怒りをさそう

 *

その日は 涙から笑いが滲んできた
私の涙から 笑いが滲んできた
誰からも見られない 誰からも知られない
誰にも邪魔されない涙が 笑いにかわ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