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은 없다

(소나타) 

- 파블로 네루다


만일 내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그렇게 됐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난 돌멩이들이 어둠을 드리우는 땅바닥에 대해,

흘러가며 부서지는 강에 대해 얘기해야 하리라.

내가 아는 거라곤 새들이 잃어버리는 사물들,

뒤에 남겨진 바다, 혹은 울고 있는 내 누이뿐,

왜 하 많은 지역들이 있는 걸까, 왜 하루는

다른 하루와 합쳐지는 걸까? 왜 검은 밤이

입 속에 쌓이는가? 주검들은 왜?

만일 어디서 왔냐고 내게 묻는다면, 난 얘기를 나눠야 한다, 부서진 사물들과,

너무나 가슴 아픈 연장들과,

흔히 썩어 있는 덩치 큰 짐승들과

그리고 쓰라린 내 가슴과,


엇갈린 건 추억도

망각 속에 잠자는 누런 비둘기도 아니다.

그건 눈물 젖은 얼굴,

목구멍 속의 손가락,

그리고 나뭇잎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

흘러간 하루의,

우리의 슬픈 피를 먹고 자란 하루의 어둠,


여기에 제비꽃이, 제비가 있다.

시간과 감미로움이 거니는

긴 꼬리의 달콤한 엽서에

나오는 우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그 이빨 너머로 뚫고 들어가지는 말자,

침묵이 쌓아가는 껍질을 물어뜯지 말자,

난 뭐라 답해야 할지 모르니까,

수많은 주검이 있다.

붉은 태양이 무너뜨리는 무수한 제방들이,

뱃전을 때리는 수많은 머리들이,

입맞춤을 가두고 있는 무수한 손들이,

그리고 내가 잊고 싶은 하 많은 것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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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5 01:29 2005/06/05 01:29
Posted by 흐린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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