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한 번 돌아볼 때는 꼭 이런 때다. 학생들에게는 반성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은 반성하지 못하는 경우. 반성은 말 그대로 자신을 외적인 객체로서 대상화시켜보는 것인데, 신체와 의식이 분리되어 있지 않으니 이게 어디 쉬운가.

나이를 먹으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자주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가 많아진다. 어, 나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아, 나도 이럴 때가 있구나, 하는 건데, 이건 사태가 부정적이지 않을 경우에나 그렇다. 아주 골치 아픈 건 이런 경우다. 지난 주 금요일 그동안 사용하던 usb메모리 카드를 또 잃어버렸는데,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거다. 아주 잠깐 사이, 30분이 채 안 되는 그 순간이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9월에는 겨우 1년 정도 사용한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난생 처음으로 비싼 돈을 주고 구입한 신형 폰이었는데 그만 내 주머니에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는 말처럼 전화를 걸고 주머니에 넣고 다시 전화를 걸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주머니에 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마술사였던가? 아니, 폰을 주머니에 넣긴 넣었나? 옆 사람의 폰을 빌려 아무리 눌러도 어디에서도 윙윙 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단 15분, 그 짧은 순간 누가 나의 기억을 훔쳐간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폰뿐만 아니라 그 15분 동안 무얼 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차안을 다 뒤지고 가방을 까뒤집고, 주머니를 아무리 만지작거려도 폰을 발견할 수 없다.

내 머릿속에 "X-files" 시리즈에서 멀더가 숲이 우거진 지방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차를 세우고 스컬리를 멍하니 쳐다보며, “우린 방금 15분을 도둑맞았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멀더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한번 쓱 보더니 트렁크에서 흰색 락카(lacquer)를 꺼내 도로에 X 표시를 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지점에 X 표를 그어 놓아야 하나? 내 곁에도 스컬리가 있었다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봐요, 스컬리. 전 방금 15분을 도둑맞았어요. 그리고 지난달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군요." 그러면 스컬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두 손을 앞으로 내밀고는 눈을 위로 올려 뜨고 하늘을 쳐다보는 시늉을 할 것이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생각하며 살지 않는다. 꼭 생각할 거리가 생겨야 겨우 생각이라는 걸 해 보는 거다. "생각 좀 하고 살자"고 하면서도 생각 없이 말하고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한다. "음, 그렇지 직감이 얼마나 중요한데." 아, 하지만 내 곁에는 스컬리가 없고 나는 멀더가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멀더와 같은 행운을 누리지는 못하리라.

어디 이런 경우가 한두번인가? 누군가에게 메일을 보내기 위해 웹브라우저를 열어놓고는 엉뚱한 곳을 검색하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어서 웹을 열었다는 걸 깨닫고는 그게 뭐였을까 생각해보지만 전혀 알 수가 없다. 어디서 들었는지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신체 세포는 마흔이 되면 더 이상 재생되지 않지만, 뇌 세포는 계속 사용하면 죽지 않고 재생된다고 한다. 나는, "사실 나만큼 뇌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이렇게 항변했다. 그러자 모씨 왈, "니는 뇌를 혹사시키고 있는 거야." 뭐 공부를 열심히 해서 혹사시키는 거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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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8 20:33 2012/01/08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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