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올라오다 게시판에 수배 전단이 붙어 있기에 자세히 들려다 보았다. 수배 전단을 모방한 무슨 광고 전단이겠거니 했는데, 경찰청에서 제작한 진짜 수배 전단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수배자의 복장이나 얼굴 스타일에 따라 스님풍, 노동자풍 이라는 문구가 게시되어있었다. 스님풍이라는 사기범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얼굴이 둥글고 크며 삭발한 상태여서 "스님풍"이라고 덧붙인 모양이다.

내 눈길을 끈 것은 "노동자풍"이라고 덧붙여 놓은 특수강도범의 스타일이었다. 허름하고 낡은 겉옷을 입고 있었는데, 거친 얼굴에 고생한 흔적이 역력해 보였다. 폭력이란 그 사회의 모순이 논리적으로 드러난 것에 다름 아니라는 정의는 여기서도 정확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고많은 스타일이 있을 터인데, 굳이 "노동자풍"이란 딱지를 붙였을까? 이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노동은 인간의 신체와 분리되어 작용하지 않는다. 남자건 여자건, 신체 노동자건 정신 노동자건 노동력은 신체의 능력이 외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노동력이란 자신의 능력을 외화시키는 능력이 아닌가? 노동력을 구매할 수 있는 자본과 생산수단을 가진 자본가나 자본가에게 이자를 받고 화폐를 빌려주는 금리 생활자가 아니라면 모두 자신의 신체를 자본가가 요구하는 특정한 공간에, 특정한 시간에 내맡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모두 노동자라 부른다.

이명박 씨가 대통령 후보였을 때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한다. 다음은 한겨레신문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서울파이낸스포럼의 초청강연에서 “(지난달 인도의 소프트웨어업체 ‘위프로’를 방문해 보니) 소위 대학 출신 종업원들이 ‘우리는 노동자가 아니다’며 평시에 오버타임(초과근무)을 해도 수당을 안 받는다고 하더라”며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에 노조도 만들지 않는다던데, 만들 수 없어서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 수 있는데도 스스로 프라이드(자부심)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이명박 씨는 이외에도 노동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수도 없이 했는데, 그 중에 내가 생각하는 베스트 발언은 두 가지가 더 있다. 하나는, 대학교수가 노동조합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충격을 받았어요. 도대체 대학교수라는 사람들이 노조를 만들겠다니..." 나머지 하나는 이런 거다. "서울시 오케스트라가 민주노총에 가입돼 있었어요. 그것도 전에는 금속노조에 가 있었어요. 아마 바이올린 줄이 금속이라서 그랬나봐."

대학교수가 노동자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이 이명박 씨의 견해에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하긴 일주일에 많아야 6시간에서 15시간 정도 수업하고 출퇴근 시간이 완전히 자유로우며, 업무 특성상 특정 전문 분야를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내 놓아야함에도 직무를 방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학교수도 대학에 고용되어 월급을 받고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니 당연히 노동자들이다.

대학교수가 노동자냐 아니냐의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진짜 문제는 대학교수가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답게 행동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물론 대학교수만 그런 게 아니다. 자신이 노동자이면서도 노동자이길 부정하고 노동자로서 긍지를 가지고 같은 노동자들과 연대하지 않는 많은 노동자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진정한 노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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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09 13:36 2012/01/0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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