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 /이오덕

좋은글 2012/02/19 15:09
애국가
/이오덕

얼마 전 어느 자리에 나갔다가 '국민의례'가 있어 애국가를 부르게 되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목청을 가다듬어 부르는데, 그날 따라 나는 벙어리가 되었다. 애국가를 부를 마음이 안 났던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부르는 애국가를 들으면서, 이제부터 내 입으로 이 애국가를 부를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국민이면 어린아이들도 누구나 부르는 애국가, 나 자신이 50년도 넘게 불러온 애국가를 왜 부르지 않겠다고 생각했나?

그 까닭은 이렇다. 바로 그 며칠 전에 어느 일간신문에서, 애국가 노랫말을 지은 사람이 윤치호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 신문은 윤치호 자신이 지은 애국가를 손수 붓으로 써서 '윤치호 작사'라 해 놓은 것을 사진으로 공개했다. 이래서 지금까지 누가 지었는지 확실히 몰랐던 애국가 작사자가 윤치호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윤치호라면 세상이 다 아는 친일파로 우리 민족을 배반한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부를 노래가 없어서 하필이면 민족을 팔아먹은 반역자가 지은 노래를 의식 때마다 불러야 하나? 지금까지는 몰라서 불렀지만, 그 사실을 안 다음에는 부를 수가 없었다. 그런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내 감정과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나는 전부터 우리 애국가를 별로 신통찮게 여겨 온 터이다. 노랫말도 그렇고, 곡도 좋게 안 보였다. 우리 애국가 노랫말이 일본 제국의 국가인 '기미가요'를 닮았다고 하는 말은 진작부터 있었다. 일본의 '기미가요'를 우리말로 옮겨 보자. '우리 천황 거룩한 세상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조그만 돌이 큰바위 되어/ 이끼가 낄 때까지(영원하리라)'

이 일본의 국가는 '조그만 돌이 큰 바위 되어…' 했는데, 우리는 반대로 그 넓고 커다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했으니 더욱 좋지 않다는 말도 가끔 들었다. 아무튼 우리 애국가는 국민들의 정서에서 자연스럽게 안겨 들거나 가슴을 찡하게 울려 주는 것이 없는, 다만 머리로 만들어 낸 말로 되어 있는 것만은 동등하다.

다음은 곡이 또 문제가 된다. 이 곡은 우선 크고 무거운 느낌을 주어서 점잖고 엄숙한 몸가짐으로 부르게 된다. 우리가 부르고 들어온 의식 노래는 일제시대부터 '기미가요'를 비롯해서 으레 사람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거나 굳어지게 하는 것이었기에 애국가도 당연히 그래야만 된다고 여길 것 같다. 그러나 그런 노래와는 반대로 사람의 마음을 활짝 열어 주고 피어나게 하는 노래, 따뜻하고 기쁘게 해주는 노래, 또는 가슴에서 저절로 터져 나오는 듯한 노래는 애국가나 국가로 될 수 없을까? 민주주의로 살아가는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부르는 노래라면 당연히 이런 노래라야 참된 나라 사랑의 노래가 되고, 땅 사랑, 사람 사랑의 노래가 될 것 아닌가? 나는 세계의 다른 많은 나라의 노래를 그다지 알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처럼 꼿꼿하게 '차려'를 해서 한결같이 굳은 표정으로 애국가나 국가를 부르는 사람은 우리 말고는 일본 사람들밖에 없는 줄 안다.

무슨 일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 먼저 애국가를 부르고 나면 그만 자리가 아주 차가워지고 흥이 나지 않아서 그 일이 제대로 안 되는 수가 많다. 의논을 할 때는 딱딱한 말, 형식으로 꾸민 말, 겉도는 말부터 나온다. 초등학교 학생들이 교실에서 어린이회나 학급회 회의를 할 때 먼저 애국가를 부르고 나면 그만 아이들 마음이 얼어붙어서 말이 잘 안 나온다. 선생님이 언제나 지시하는 말을 흉내내고 되풀이하다가 끝내기가 보통이다. 이것이 애국가의 효용성이다.

좋은 애국가를 새로 만들 수는 없는가?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참된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마음을 일으키려 한다면 차라리 '아리랑'이니 '고향의 봄'을 부르는 것이 좋지 않겠나 싶다. 이런 노래라면 부르는 사람 모두가 저마다 가슴속에서 조국과 고향을 생각하는 뜨거운 마음이 터져 나와, 그 자리가 모든 사람을 하나로 이어 주는 참으로 바람직한 자리가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의 애국가와 국가를 견주어 보면 두 나라가 어떤 점에서 아주 닮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며칠 전 신문 <아침 햇살>에 쓴 논설주간의 글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 글의 중간 제목이 '한·일, 비겁한 동반자'로 되어 있는데, 마지막에 맺은 말이 다음과 같다.

'반세기가 지나도록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은 일본과, 식민지 청산을 주도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혈손이 정신적 후손이 강고히 권력을 붙잡고 있는 한국은 사실 정신적으로 동반자 관계에 있다. 그 비겁한 관계를 이제껏 지속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뒤에도 군사 정권의 잔재가 여전히 활개를 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착잡해지는 것은, 그 연유가 어제오늘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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