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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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바람이 선선한 10월에 이 글을 옮기니 말 그대로 감회가 새롭다.

새벽에 내린 봄비를 기억하며


봄날은 간다
(경향신문 입력: 2008년 04월 21일 17:55:53)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들던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불멸의 봄노래 ‘봄날은 간다’는 갈수록 부를수록 아프다. 1953년 백설희가 처음 불렀으니 그 후 쉰 다섯 번의 봄을 적셨다. 한영애, 심수봉, 조용필, 장사익 등도 이 노래를 불렀다. 누가 불러도 몸에 감겨든다. 절창이다. 꽃은 남쪽에서 피어 올라왔으니 다시 남쪽에서부터 진다. 꽃이 피어올라온 속도로 봄은 그렇게 가고 있다. 마침 빛고을(광주시립미술관)에서 ‘봄날은 간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박영숙의 사진작품 앞에 발걸음이 멎는다. 부엌에서 고등어를 토막내던 중년의 여인이 갑자기 칼질을 멈추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칼을 든 채 흡사 넋이 나간 듯. 밖에서는 아마 꽃잎이 흩날리고 있을 것이다. 사진 속의 여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 청춘은 지나갔단 말이지. 이렇게 고등어를 썰고 있는데 봄은 가고 있단 말이지.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야. 꽃향기 는 사라지고, 비린내만 남아있단 말이지. 어머머 어머머, 기가 막혀.’ 작품사진의 제목은 ‘미친년’이다. 그래 이 봄은 많은 사람들을 미치게 하고, 미쳐서 다시 가슴 뛰게 한다.

‘봄날은 간다’는 노랫말이 가슴으로 절절하게 스며들어올 때는 이미 우리 삶은 봄날이 아니다. 사랑도 우정도 정점을 지나가야 가슴에 절절함이 박힌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떠나 보내고 떠나 와야 한다. 머물러 있는 것들은 언젠가 흐르게 마련이다. 우리는 서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늙는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니 중늙은이 하나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젊은 날의 나’가 나를 떠났음이다. 이 노랫말 속의 연분홍 치마, 옷고름, 산제비, 성황당도 우리 곁을 떠난 것들이다. ‘알뜰한 그 맹세’만 가슴에서 가슴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 살아있는 동안 몇 번의 봄을 맞을 것인가. 또 한 걸음 멀어진 내 청춘은 어디에 있는가. 누구나 지난 날은 눈물에 젖어있으니, 눈물이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흘려보내야 하리. 그러나 어쩌겠는가. 가는 봄이 서러워 다시 눈물이 나오는 것을. 오늘 저 비에 눈물 보태는 것을. 〈 김택근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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