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기억

일상 2011/10/04 15:20

어제 신문을 왜 오늘 읽었을까?
경향신문의 [여적]은 이슈가 되고 있는 주제나 논쟁을 짧고 간소한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좋은 글이 많다. 매번 읽지는 못하지만 나는 경향신문의 [여적]을 아주 좋아한다.

오늘의 [여적]은 이렇다.


침 대신 시를 뱉다 /유병선 논설위원

몇 해 전부터 찬바람이 몰아치는 응달진 거리에 낯익은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약속이나 한 듯 유명 상표의 검은색 바람막이 외투를 교복처럼 걸친 10대들이 웅성거린다. 두꺼운 털옷으로 몸을 감싼 행인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홑겹의 외투로 찬바람을 맞는 아이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시쳇말로 ‘간지’(옷맵시) 때문일까? 따뜻함에 익숙한 ‘범생이’가 아니라는 시위일까? 한 공고생은 시 ‘노스 패딩’에서 이렇게 읊는다. “비싼 노스(상표명) 안에 내 몸을 숨기고/무엇이라도 된 듯하게 당당하게 거리를 걷는다/한겨울엔 노스만 입어도 무서울 게 없다.”

유명 상표의 얇은 외투에 몸을 숨긴 아이들은 정말 무서울 게 없을까. 바깥의 찬바람이야 젊음으로 견딘다지만, 외투 안에서 뿜어지는 한기(寒氣)에 이들은 떨고 있다. 시 ‘웃음’은 “웃고 또 웃고 또 웃는다/사람들이 욕을 해도 웃는다/사람들이 바보라 하지만 나는 웃는다/내 감정을 드러내기 싫어서 웃는다”며 세상을 냉소한다. 시 ‘시간의 중요성’은 “멍하니/판타지 책만 보며/살아왔다/그러다/정신 차려 보니/주위 사람은 다 사라졌더라/과거로 갈 수 있다면/공부라는 걸 해 볼 테다/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좀 더 바른 선택을 해 볼 테다”라면서도 “하나…/이미…”라는 자학으로 끝맺는다.

서울의 한 실업계 고교 국어교사 3인이 3년간 지도한 시 쓰기 수업의 시들을 가려 학생 시집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를 펴냈다. 퇴학과 전학으로 “한 달이 지날 때마다 한 명씩 사라지는 학교”(‘우리 학교’)에서 “어떤 학생은 자고 있고/어떤 학생은 떠들고 있고/어떤 학생은 딴짓을 한다”(‘수업 시간’)는 망가진 수업에 교사들은 시를 끌어들였다. 시는 묘했다. 아이들은 마음을 시로 풀어냈다. 침을 뱉던 학생들이 자신의 삶을 82편의 시로 토해냈다. 시를 잘 쓴다는 교사들의 격려에 아이들은 “우리가 겪은 것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답했다고 한다.

마하트마 간디와 더불어 나이탈림(신교육) 운동을 벌였던 비노바 바베(1895~1982)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삶이 끔찍하고 따분한 투쟁이라면, 우리는 아이들에게 이것을 알려주지 말아야 하고, 우리들 자신도 그만 살아야 합니다. 반대로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아이들은 반드시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교생 시집은 우리의 교육이 과연 삶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인지를 되묻고 있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또는 차를 몰다 곡예운전을 하면서 지나가는 배달 오토바이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지하철 역 구석에서 아이들이 너댓명 모여 바갇에 침을 맽고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고 서로에게 욕설을 하며 눈을 치뜨는 모습을 보면 애써 그런 모습을 피하려고 한다. 그런 모습은 한 때 길을 잃었던 나의 청년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할 수 없듯이 그런 기억을 지울 수도 없다. 가슴이 아프다고 울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이 있는 법이다. 저 아이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어제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의 내용 중 일부를 옮긴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0030250585&code=940401


“난 오늘도 어김없이 배달을 한다/ 또 시작된 딸배/ 돈을 벌겠다고 시작한 알바가 직장이 되었다/ 배달을 가면서/ 이리저리 곡예를 부리며/ 차들을 제낀다/ 위험한 인생이다/ 그래도 난 돈을 벌 것이다/ 그것이 살 길이다”(김모군의 ‘딸배(배달)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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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04 15:20 2011/10/0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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