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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 지음·이욱연 옮김 | 문학동네 

꿈도 균형을 잃고 ‘빈익빈 부익부’ 고도 성장 중국은 치료가 필요해
황경상 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1990년대 후반 중국중앙방송(CCTV)은 어린이날을 맞아 각지의 아이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무엇인지 물었다. 베이징의 한 사내아이는 장난감 비행기가 아닌 ‘진짜’ 보잉 비행기를 받고 싶다고 했다. 시베이(西北) 지방의 여자아이는 ‘흰 운동화를 갖고 싶다’고 수줍게 말했다.

 

중국 작가 위화(余華)는 이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한다. “모든 것을 잃어도 꿈만 있으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꿈조차 균형을 잃었다. (…) 같은 시대의 아이들이지만, 한 아이는 오늘날의 유럽에 살고, 다른 아이는 400년 전의 유럽에 사는 것처럼 어리둥절하게 느껴진다.”

 

이런 이야기는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불쑥 우리를 찌른다. 우리가 믿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진짜’일까. 작가는 뾰족한 사유를 툭툭 던진다. “어떤 사람들에겐 현실을 주시한다는 것이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고 가까스로 아는 것임을 발견했다. <허삼관 매혈기>가 출판되고 2년이 지나서야 허베이(河北)의 에이즈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었다. 내가 쓴 매혈은 중국에서 벌써 반세기 동안 존재했다.”

 

저자는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다. 그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고 말한다. 자신 또한 ‘한 사람의 환자’라고 자처하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치료법을 찾는 사람”이라고도 말한다. ‘문학 외에는 관심 없다’는 일부 문학계 사람들의 편협함을 질타하면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다. “오늘을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전혀 모르는 사람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자신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본인의 치장에만 여념이 없다. 중국의 아파트들은 끊임없이 인테리어를 바꿔 작가가 사는 곳까지 소음으로 시끄럽다. 크게 보면 중국 전체가 건국 60주년 준비로 톈안먼 광장을 단장하고 ‘위풍당당한’ 열병식 준비로 바쁘다. 그러나 작가에게 “60주년이란 59주년보다 한 해가 늘었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위층의 전기 드릴 소리가 멈추자 비로소 “정상적인 생활”이 돌아올 뿐이다. 중국의 고도성장이란 것도 결국 감춰진 많은 희생 위에 있다는, 그래서 “100위안을 지불하고 10위안을 받는”것이 아니었느냐는 반성도 내놓는다.


서구 사회도 다를 바 없다. 작년에 동료 작가에게 온통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에 대해서만 질문하던 노르웨이 기자들은 올해 잔뜩 긴장하고 준비했던 위화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티베트 문제에도 맹목적으로 한쪽 편만 들기보다 역사와 맥락에 대해 더 공부할 것을 주문한다. 미국 노턴 출판사 이사장의 말을 빌려 서구 언론과 대중에 대한 냉소도 던진다. “당신 손가락이 화상을 입었을 때 언론이 보도를 하면 그것은 진짜고, 언론이 보도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가짜지요.”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작품의 창작일기에서부터 작가지망생 시절 이야기, 영화와 독서 편력, 미국 프로농구(NBA)를 보러 직접 미국에 건너간 ‘광팬’의 면모까지 소탈하게 털어놓는다. <인생> <허삼관 매혈기> 등으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작가가 내놓은 산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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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1 20:53 2016/05/21 20:53

블로그에 글쓰기

일상 2016/05/17 21:11

블로그에 글쓰기를 안 한지 꽤 되었다. 이유는 글쓰기가 싫었던 것인지 모른다. 트윗터에도 글을 잘 올리지 않고 페이스북에도 잘 쓰지 않는다. 마치 일기처럼 글을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좀 신기하기도 하다.

예전과 비교하면 여유가 없어서 글을 자주 올리지 않는다고 하는 게 더 낫겠다. 여유가 없다는 것은 어떤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관해 나름 심사숙고하여 글을 작성해야 하는데, 심사숙고하기가 싫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여튼 글을 쓰기 위해서는 생각도 하고 뭐 삶이 요구하는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정신력도 요구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게 분명하다. 

다시 블로그에 일기라도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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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17 21:11 2016/05/17 21:11

[여적]여의도 벙커
신동호 논설위원
입력 : 2015-07-27 21:39:49수정 : 2015-07-27 21:41:16

그것은 1999년 10월 동베를린 중심가 공사 현장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히틀러가 최후를 마친 곳으로 유명한 ‘히틀러 벙커’ 얘기다. 히틀러는 연합군의 공습에 대비해 옛 제국집정실 건물 정원 지하에 천장 2.8m, 외벽 2.2m 두께의 콘크리트로 지하 요새를 구축했다. 약 450㎡의 면적에 자신과 핵심 측근이 사용할 12개의 방을 설치했다. 그는 1945년 1월16일부터 이 벙커에 은신하다가 그해 4월29일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날 함께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히틀러 벙커는 아무리 철옹성을 쌓아도 독재자의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뒷날 소련군과 동독 정부는 나치 망령을 제거하기 위해 히틀러 벙커의 폭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외벽 일부만 손상됐을 뿐 파괴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주인을 파멸시키고도 건재하던 독재자의 흔적을 지운 것은 오히려 세월이었다. 독일 통일 후 잊혀져가던 히틀러 벙커에 대한 발굴 논의가 일었다. 독일 정부는 신나치의 성소가 될 것을 우려하며 반대하다 2006년에야 그 자리에 겨우 작은 표지판 하나 세웠다.

‘우연히’ 발견되기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여의도 벙커’도 마찬가지다. 2005년 4월 서울시가 대중교통 환승센터를 만들려고 현장조사를 하다 확인한 여의도 벙커는 규모 면에서 히틀러 벙커를 능가한다. 철문과 계단으로 연결된 160평 규모의 공간에 지휘대와 화장실, 기계실이 있고, 이 방과 복도로 이어진 20평 남짓한 작은 방에는 소파와 화장실, 샤워실이 있다고 한다. 180평이면 594㎡로 히틀러 벙커의 약 1.3배 넓이다.
 

여의도 벙커 미스터리는 그것이 서울시나 수도방위사령부 기록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 시설물이라는 점이다. 서울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국군의 날’ 여의도 열병식 참관 때 유사시 대피할 방공호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한 사람, 이용한 사람이 살아 있을 텐데 나서서 설명하는 이가 없으니 이상하다. 아무 근거와 기록이 없는데 건설 비용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서울시는 여의도 벙커를 지난 2월 보전해야 할 미래 유산으로 선정한 데 이어 최근 일반 개방 방침을 발표했다. 기록은 없는데 현물이 보존되고 증언하니 그나마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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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7/30 14:04 2015/07/30 1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