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학기 강의 1

일상 2016/09/10 20:55
2016년 2학기 첫 강의. 강좌의 비공개 명칭은 SF영화와 철학이다. 이 강의는 8편의 SF영화와 4편의 SF애니메이션을 통해 “동일성과 타자성”이라는 큰 주제에서 개별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전 학기와 달리 강의를 좀 실험적으로 할 계획을 세웠다. 75분 강의 시간 중 30분은 영화보고 15분 선생이 강의하고 나머지 30분은 학생들이 돌아가며 소감이나 영화에서 토론할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했다. 강의는 단 15분, 얼마나 멋진 계획인가? 문제는 학생들이 강의 전에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하는데 지난 경험으로 미루어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화에 큰 흥미를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강의 전에 미리 영화를 보고 오지 않는다. 전혀 없지는 않다. 10명 중 2명은 그래도 보고 온다. 학생들은 영화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이런 강좌를 신청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강좌명에 영상/영화가 붙으면 왠지 좀 헐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무 헐렁하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 장치를 하나 설치했다. 기말시험은 강의와 관련해서 자신이 스스로 문제를 내고 문제에 답을 쓰는 것으로. 학생들이 웅성거렸지만 이게 바로 진정한 학습이 아니겠는가? 시험문제는 두 문제, 100점 만점에 문제 50점, 답 50점. 음.... 처음 해보는 실험이니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실험은 실험.

강의에 대해 대충 소개하고 학생 한명에게 이렇게 물었다.
“만약, 이건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침에 학생 방에서 눈을 떴을 때 학생은 깨달은 거야. 학생은 원래 지구인이 아니라 수십 년 전에 켄타우리 항성계의 어느 행성에서 지구를 관찰하는 임무를 띠고 많은 연구원들과 지구로 오는 도중 어떤 사고로 지구에 불시착했다. 고향 행성에 도움을 요청하고 다른 우주선이 올 때까지 DNA에 어떤 조작을 해서 기억을 봉인하고 지구인처럼 살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오늘 아침 눈을 떴을 때 기억이 돌아 온 거지. 그래서 문을 열고 나가서 엄마 아빠에게, 물론 엄마 아빠도 마찬가지로 기억을 봉인했어, 켄타우리 고향어로 막 이야기하는 거야. 드디어 기억이 돌아왔다고. 그런데 엄마 아빠는 못 알아 듣는 거야. 엄마가, 얘 어제 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오더니 맛이 갔나보다 이러는 거야. 그래서 학생은 우리말로 학생과 엄마 아빠가 다른 동료들과 켄타우리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이야길 하니까, 아빠가 여보 재 좀 돌았나 보다. 어쩌지? 이러는 거야. 엄마 아빠는 무슨 이유인지 기억이 안 돌아온 거지. 그럼 학생은 이제 어떻게 할거야?

나는 학생이 내가 예상하고 생각했던 말을 할 줄 알았고 그러길 기대했다.
학생 : (씩 웃더니) 그냥 살래요.
나: 엉? 뭐?
학생: 그냥 지구인으로 살래요.
나: .... 음..
다른 학생을 지목하며, 학생은 어떻게 할 거야? 그러자 그 학생은 이런다. “아마 지구보다 굉장히 과학이 발달했을 테니 그 기술을 떠올려 돈을 많이 벌 거 같애요.” 나는 또 다른 학생을 지목하고 똑 같이 물었다. 그 학생도 그냥 지구인으로 계속 살거란다. 또 다른 학생도 그냥 모른척 하고 지구인으로 살겠단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 봐 학생아 굉장히 중요한 임무를 띠고 먼 지구까지 왔으니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임무를 수행해야지? 또 다른 학생 역시 그냥 지구인으로 평소처럼 지내겠다는 대답을 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한국 교육의 본보기로군.”

사실 나는 학생들이 어떻게 할까 막 고민하고 엄마 아버지를 설득하고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고 다른 동료들도 있을 테니 찾아야 하는데 어떻게 찾을까 고민하고 이런 식으로 이야기할 줄 알았다. 그러길 기대했다. 내가 뭘 잘못 물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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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20:55 2016/09/10 20:55

다른 세계

일상 2016/09/10 20:51

내가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곳이 매번 일어나던 나의 집이 아니라 다른 곳이라면 어떨까? 물론 다른 곳은 다른 세계를 말한다. 사람들은 이런 꿈을 꾼다. 나도 이런 꿈을 꾼다. 공상에 그칠 수도 있고 진짜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구나 여기가 아니라 저기 먼 곳으로 떠나길 꿈꾼다.

천상에서 노닐던 천사들이 어떻게 그만 지상으로 떨어졌다. 눈을 뜬 천사는 자신이 인간이라는 갑옷을 입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놀란 천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아니 인간의 갑옷 속에 갇혀 있다는 걸 깨달은 천사가 해야만 하는 일은 무엇일까? 모든 걸 잊고 그냥 인간으로 살 것인가? 천상의 기술을 되살려 지상에서 비싼 값으로 팔아먹으면서 살 것인가?

플라톤은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천사는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플라톤은 한때 어느 날 꿈에서 깼을 때 쇠사슬에 묶여 있는 자신의 발목을 보기도 했던 사람이다. 플라톤에게는 천상을 상기하고 되돌아가야한다는 것은 일종의 명령이다. 플라톤은 이런 우화를 반복하고 변주했다. 사실 플라톤이 쓴 모든 글은 이런 우화의 반복적인 변주에 불과한 건지도 모른다.

우리 존재의 근원이 곧 진리의 근원이라는 이 우화는 서양 문학과 연극, 영화의 마스터 플롯이다. 할리우드는 플라톤의 우화를 닳고 닳도록 써 먹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실증을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언제나 잠시라도 이곳 지상이 아니라 저편 어딘가를 회고하듯 향수에 젖어 있길 바라는 모양이다. 이건 문학이나 영화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플라톤의 말처럼 그곳은 진리의 근원(철학)이자 우리가 돌아가야만 할 고향(역사)이기 때문이다.

영화 <인셉션>에는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이 된 상황에 놓여 있는 불행한 여자가 등장한다. 이 여자 이름은 “맬”인데 맬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결국 영원한 꿈속으로 돌진한다. 만약 내가 꿈에서 한 여자와 아이를 낳고 수십 년간 행복하게 살았는데,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서 보니 내가 현실의 내방에 누워있다는 걸 깨닫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무엇을 하려고 할까? 나는 다시 꿈을 꾸려고 할 게 분명하다. 나는 지금도 가끔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주는 별로 좋지 않지만 가끔 좋은 일도 생기는 그런 꿈.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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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20:51 2016/09/10 20:51

우리 여기 있오!

2016/09/10 16:40

[책과 삶]“지구를 소개합니다”…우주로 쏘아올린 ‘메시지’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9091941015&code=960205#csidx58df5e8ba73e02baf1d5d8c3229f48e 

 

이 책의 서평을 읽고 나니 언젠가 본 영화가 생각난다. 지구에서 외계로 "우리 여기 있오!" 하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는 늘 있어왔다. 찬성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그 의도와 무관하게 신호를 접수할 외계인이 있을까 하는 의문은 해소되지 않는다. 설령 수십년, 또는 수백년 후 지구의 신호를 접수한 외계 존재가 있다하더라고 그들이 신호가 전달되는 속도만큼 속력을 낼 수 있는 우주선을 가지고 있을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진리라면 수백년, 수십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지구를 침략할 만큼 호전적인 우주인이 문명을 유지할 수 있을까? 스티브 호킹은 문명은 스스로를 파괴하기 때문에 영원한 문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했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2012년에 개봉한 <배틀쉽(Battleship)>이라는 영화는 우주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 메시지를 접수한 우주인이 지구로 침략해 온다는 내용이다. 물론 영화의 구성이나 연기나 주제는 천박하고 우습지만 인상적인 장면이 아주 짧게 두 번 나온다.

하나는 우주인의 우주선은 미국 해군 함정이 자신을 공격하려고 무기를 장착하고 공격하려는 의도를 보일 때만
미해군 함정을 공격을 한다는 거다. <우주전쟁>(2005)에서 미리 지구에 숨어있던 화성인들이 어느 날 벌떡 솟구쳐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것과 달리 이 우주인들은 미리 공격하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하게 방어적으로만 공격한다. 그리고 도시로 침입한 무인공격기는 도로와 자동차 등 (기계)문명의 요소가 되는 것들은 공격하지만 사람은 공격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미해군에게 붙잡힌 우주인은 턱밑에 딱딱한 수염을 달고 있다는 것 외에는 인간과 닮았다는 거다. 두 눈과 하나의 코, 하나의 입을 가진 얼굴과 두 팔과 두 다리, 직립보행을 하고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이들이 인간과 동일한 지적 문명을 형성하고 있고 무기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보면 인간과 유사한 진화를 거쳤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아주 잠깐 동안 이 우주인의 회상 장면을 인서트로 보여주는데, 행성에 전쟁이 발생하고 행성의 대기에서 핵폭발과 같은 폭발을 보여준다. 몇 초되지 않는 짧은 장면이지만 이들의 행성에 (지구인들이 가장 우려하는) 핵전쟁과 같은 전쟁이 발생했다는 것을 암시한다.

어쨌든 <배틀쉽(Battleship)>에서 우주인들은 지구를 침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구에 온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의적으로 지구에 착륙하여 방어막을 전개하고 지구의 군함을 공격하고 자신들의 메시지를 모선/행성에 연락하기 위해 지구의 시설에 침입하고 장악한다. 이 영화에서 그들이 왜 지구에 왔는가 하는 이유는 모호하고, 또 중요하지도 않다. 분명한 것은 이들이 지구를 무단으로 침입했고 이러한 침입자를 막고 지구를 방어하기 위해 미군과 일본 자위대가 용맹하게 싸워 물리친다는 거다. 물론 이런 류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거창한 철학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고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을 거라고 기대할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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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0 16:40 2016/09/10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