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네치고 뒷산이 없는 마을이 없다. 마을마다 뒷산이 하나씩은 있는 법인데, 우리 동네 뒷산은 필봉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내가 2년 다닌 초등학교 교가의 첫 구절이 “필봉산 정기아래~”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한번도 필봉산 꼭대기에 올라가본 적이 없는데, 이 필봉산 꼭대기에는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마을에서 올려다 보면 꼭대기는 바위인데 소나무 한 그루가 유일하게 삐죽 솟아 있는 모양이다.
어릴 때 들은 전설이 하나 있다. 서양으로 치면 일종의 신화인 셈인데, 마을 처녀들이 봄에 산나물을 캐러 도시락을 싸고 보자기를 매고 필봉산으로 갔다고 한다. 즐겁게 산나물을 캐고 있는데,검은 먹구름이 몰려오고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 피할 곳을 찾다 큰 바위 아래 동굴을 발견하고 들어갔다고 한다.
동굴에는 예쁜 고양이 두 마리 놀고 있길래 가져온 점심을 먹으면서 나눠주고 안아주고 하면서 놀았다고 한다. 그때 기척이 있어 돌아보니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입을 벌리고 있더란다. 마을 처녀들이 놀라 냅다 뛰어 산을 내려왔는데, 얼마나 정신 없이 내달렸는지 신발도 벗겨져 온데간데없고 도시락이고 산나물 보자기고 할 것 없이 모두 동굴에 두고 왔는지 없더란다.
다음 날 마을에 기이한 일이 일어났는데, 산에 나물 캐러 갔던 처녀들의 집 문간에 도시락과 나물 보자기와 신발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고 한다. 새끼들에게 먹이도 주고 귀여워 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할까? 이게 호랑이의 보은이라고 할 만한 그런 전설이다.
친박, 친미, 친일, 친북. 이 친(親)에 대 생각좀 해보자.
<친>은 '친하다'는 뜻이다. 친구가 뭔가? 친구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사귄 사람을 말한다. 어제 처음 만난 사람인데 말이 통해 술 한 잔 하면서 친하게 지냈다고 바로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이명박은 "친박"도 싫고 한자어 "친"보다 영어가 더 좋았는지 정책 모토를 "친기업", "친자본가"라는 말을 쓰지 않고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라고 불렀는데, 중앙일보는 이걸 "기업 친화적"이라고 해석했다. 기업 친화적이란 말은 모든 정책의 근본이 자본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친박"은 "친미"나 "친일", "친북"과 좀 다르다. 친박은 박근혜와 친하다는 거지만 친일이나 친미, 친북은 누구와 친하다는 말일까? 아마 미국 사람들이나 일본 사람들, 북한 사람들과 친하다는 말이 아닌 건 분명한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친"은 도대체 친한 대상이 누구라는 말인가?
당연히 친미와 친일, 친북에서 친한 대상은 모두 미국의 지배자들, 일본의 지배자들, 북한의 지배자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미국과 일본과 북한의 대, 내외 정책과 친하다는 말이다. 박사모가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저들에게 미국은 곧 부시였고 클린턴이었으며 오바마였고 이제는 트럼프다.
이참에 친북단체나 북한과 친한 사람들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종북이든 친북이든 신념과 사상의 문젠데 누가 친북이든 종북이든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단지 이들이 친하다고 하는 그 대상이 북한 민중이 아니고 북한의 지배자들이고 그들의 대, 내외 정책이라면 한 번 스스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단체를 <진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궁금해서 그렇다.
[책과 삶]본심 감춘 인민들의 ‘무대’ 북한을 고발한 그,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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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2172045015&code=960205#csidxc378fbcea43ae8b8704a0efd0a57b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