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과 같은 흄의 인용,
정의의 규칙은 그 보편성과 절대적 불변성으로 인해 자연(본성)으로부터 도출될 수 없으며, 자연적 경향이나 동기로부터 직접 창조될 수 없다.(62)
도덕적인 것이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우리의 본성 속에 있는 것이 우리의 도덕이라(57)는 말은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선을 상정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단지 공감능력을 통해 세계와 관계한다는 것이다. 공감은 우리의 본성에 의해 제한을 받을 뿐만 아니라 편파적이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가 아니라 나의 가족, 나의 친지, 동료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관대함이 본성에 의해 제한되어 있다"(56)면 이런 한정된 범위를 어떻게 세계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가능한가? 흄은 <우리에게 생생한 충격을 주는 현재의 어떤 정황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전쟁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미디어의 이미지가 우리를 자극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자연과 문화는 하나의 전체나 복합체를 형성한다. 흄 역시 정의를 포함해 모든 것을 자연에 부여하는 주장, 의미와 덕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정치와 교육에 부여하는 주장을 모두 거부한다. 전자는 문화를 잊은 채 자연의 일그러진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시하며, 후자는 자연을 잊고 문화를 왜곡한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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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15 2019/05/26 21:15

훌륭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우리는 어떤 사람을 훌륭한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그 사람의 성품이나 소질, 어떤 행동이 대단히 좋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여러 면모를 잘 모르더라도 그 사람의 행동이 대단히 좋은 경우에도 그를 훌륭하다고 한다. 
 
나는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군가를 훌륭하다고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생각해 본적이 있던가?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 사람의 인품이, 그 사람의 언행이, 그 사람의 어떤 면이 훌륭하다고 평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은 있는가? 
 
나 자신은 어떤가? 나는 어떤 면에서 훌륭하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가? 나의 성품과 언행과 다른 어떤 면이 사람들에게 훌륭하다고 평가될만 한가? 나는 누군가에게 '참 훌륭합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가?
 
물론 나는 누군가를 드러내 놓고 훌륭하다고 말하거나 하지 않더라도 분명 그런 사람을 보았으며 마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도 나를 보고 나의 어떤 언행을 훌륭하다고 평가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나는 참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군 모양이다. 칭찬 한 마디 하는 게 큰 일도 아닌데 말이다. 항상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관대하게 대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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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12 2019/05/26 21:12

<부자되기 특강>

이 과목은 부산대에서 개설되는 교양과목 중 경영학과에서 개설한 과목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 과목에 시선이 자꾸 끌린다. 

 

강의계획서에 제시하고 있는 교수목표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이 과목은 바람직한 부자가 되기 위한 비전과 전략적 사고 및 이론적, 실무적 구현방법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교수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주별 강의계획을 보면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들이 몇 가지 나열되어 있다. "재테크의 방법들", "부의 도구들: 주식, 채권, 부동산, 은행의 저축상품, 보험, 파생상품" ...

 

나는 생각해 보았다. "바람직한 부자"란 어떤 걸 말하는 걸까? 바람직한 부자라 ... 나는 생각을 좀 해봤는데, 나는 아마 여태껏 '바람직하다'는 말을 '좋다'는 말과 동의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찾아 보니 "바람직하다"는 말은 중립적이거나 어떤 가치를 담고 있다기보다 주관적인 바람을 나타내는 말이다. 국어사전에는 '바라는 대로 되기를 원하거나 기대할 만하다'는 뜻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까 바람직한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이란 딴 데 한눈팔지 말고 정주행으로 니가 원하는 것을 얻어라는 말이 분명하다. 

 

나는 한 번도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부자란 돈(과 부동산)이 많은 사람을 일러 하는 말인데, 나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좁은 월세집에 살게 되면서 겨우 좀 넓은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요즘 나는 생각을  많이 바꿨다.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아늑한 소파, 넓은 탁자와 책상, 좋은 소리가 나는 스피커, 책을 잘 정돈해서 꽂아 둘만 한 큰 책꽂이, 하양이와 알롱이를 위한 높고 튼튼한 캣타워, 요리하기 편하고 설겆이 하기에 넉넉하게 큰 싱크대를 갖춘 부엌 ... 아마 이런 것들을 다 갖추려면 넓고 좋은 집이 필요할 것 같다. 

 

오늘은 토요일이니 복권을 한 장 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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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11 2019/05/26 2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