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무엇일까? 나에게 활력을 주고 나를 위안하고 나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것들. 뭐 몇 가지가 있겠지만 영감을 얻고 어떤 좋은 느낌을 받기 위해 나는 온천탕에 간다

 

내가 자주 가는 온천장 금천탕은 1시 전후가 가장 좋다. 물도 좋고 사람들도 별로 없다. 금천탕은 시사저널이나 주간경향, 때로는 주간조선까지 주간지 기사를 오려 코팅해서 탕에 놓아 둔다. 매번 주간지를 찾아서 읽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좋은 배려다.

 

따뜻한 탕에 들어가 기사 하나를 다 읽으면 나와서 쉬고 또 들어가서 읽고 다시 나오기를 서너 번 반복하면 1시간이 그냥 간다. 중국이 만들고 있는 남중국해의 인공섬이 미국의 심기를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지, 금세기에 화성에 1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스페이스 X의 계획,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 비법, 화학주(소주)가 미치는 해악 등. 일주일에 두 번 가면 국제, 경제, 북핵, 문화, 건강, 심지어 육아까지 다 챙길 수 있다.

 

이렇게 자주 온천탕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그냥 쉬러 가는 것이다. 목욕탕에서 쉰다는 말이 좀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데는 온천이 제일이다. 이렇게 쉬면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온천이 나에게는 일종의 삶의 위안인 셈이다. 위안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며칠 전 우연히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을 또 보았는데, 이 영화는 나에게 좀 특이한 인연이 있는 영화다.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부산매일신문>에 비평을 썼다. 당시 학부 학생이었던 내게 비평을 쓸 생각이 있느냐 물었던 사람은 시간강사였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신문에는 내 이름이 이니라 이 선생님 이름으로 글이 실렸다. 이 분은 내게 신문사에서 학생은 안 되고 영화평론가만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간 되고 없는 신문사인데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 꼬시다고 생각했다.

 

여튼 그때 보고 그 사이 또 한 번 봤으니 며칠 전 본 게 세 번째인 모양이다. 지금 그 글을 찾을 수도 없고 그때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나는 어떤 글을 쓴 것일까? 다시 이 영화의 비평을 쓴다면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

한 참을 생각하다 겨우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삶을 위안할 수 있는 어떤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도대체 어떤 삶일까?” 그래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고 옷에 달라붙은 오래된 껌처럼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고 더 지저분하게 변색되는 그런 오물 같은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이런 일상을 감내할 이유가 있을까? <비밀과 거짓말>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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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36 2019/05/26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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