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당 의제 토론 - 강령의 해석을 시도하며 2 -상품물신성의 의미

 

2. 물신성과 소외의 문제

오늘은 물신주의 혹은 물신성에 대한 부분을 본격적으로 검토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물신주의'라는 표현은 맑스가 [자본]에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발생하는 인간소외의 본질을 파헤치기 위해 상품과 화폐분석을 통해 이끌어낸 개념입니다. 그래서 물신주의라는 표현은 자본주의 상품생산 체제의 핵심이 담겨있는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 다음 두 글을 인용하면서 시작하도록 하지요. 한국에는 『소비의 사회』와 『시뮬라시옹』이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장 보드리야르라는 프랑스 사회학자와 시몬느 베이유라는 여성 철학자의 글입니다.

"소비과정은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의해 흡수되는 과정이다. 기호의 발신과 수신만이 있을 뿐이며 개인으로서의 존재는 기호의 조작과 계산속에서 소멸한다. 소비시대의 인간은 자기 노동의 생산물뿐만 아니라 자기 욕구조차도 직시하는 일이 없으며 자신의 모습과 마주 대하는 일도 없다. 그는 자신이 늘어놓은 기호들 속에 내재할 뿐이다." (장 보드리야르, 『소비의 사회』)

"오늘날 생산물만이 중시되고 그것을 만들어 낸 노동이 등한시된다는 것은 단지 상점이나 시장, 무역의 경우에 한하는 것은 아니다. 근대적인 공장 안에서도 노동자의 경우에는 사정이 전적으로 동일하다. 작업상의 협력이나 이해, 상호평가란 그야말로 고위층의 권한에 속할 뿐이다. 노동자 계층에 있어서 여러 부서와 여러 직무 사이에 형성된 관계란 다만 사물간의 관계일 뿐 인간 상호간의 관계는 아니다. 부품은 명칭과 형태, 원료가 기입된 쪽지가 붙여져 유통된다. 이 부품이야말로 바로 인간이며, 노동자는 다만 교환 가능한 부품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부품은 제조 명세서를 갖는다. 또 몇 개의 큰 공장의 경우처럼 노동자가 출근시에 죄수같이 가슴에 번호를 단 사진이 붙어있는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 그 신분 확인 절차는 가슴을 찌르며 고통을 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사물이 인간의 역할을 하고 인간이 사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다." (시몬느 베이유, 『시몬느 베이유 노동일기』)

인용을 좀 길게 했습니다만, 장 보드리야르와 시몬느 베이유의 이 글들은 맑스가 [자본]에서 분석한 인간소외와 물신주의의 문제를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드리야르의 핵심은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맑스가 [자본]에서 분석한 것처럼 사용가치가 우위에 있지 않다는 겁니다. 보드리야르는 상품은 하나의 기호이며, 기호가치를 가진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소비과정은 기호를 흡수하고 기호에 흡수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더는 어떤 상품이 가지고 있는 쓸모있음, 즉 유용성을 잣대로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거지요. 사실 자동차는 이동수단일 뿐인데 많은 사람들은 더 크고 더 비싼 자동차를 선호하지 않습니까? 자동차는 보드리야르의 표현으로 보자면 '탈것', '이동수단'으로서 사용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부의 상징이라는 '기호가치'를 가지는 겁니다.

궁극적으로 보드리야르가 이 글에서 제시하는 것은 현대소비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의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정식화하면 이런 명제가 되겠지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다."

욕망은 우리가 생존을 위해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과정에서 표현되는 개인의 특정한 의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배가 고프면 된장찌개를 먹든 라면을 끓여 먹으면 되는데 굳이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해서 돈까스를 먹고 싶다고 욕망하는 거지요. 어떤 것에 대한 욕망은 개인적 의지의 표현인데 그 욕망이 실현되는 과정이 사회적이라는 측면에서 욕망은 사적 존재로서 개인과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이라는 이중적 측면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욕망이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라는 말은 결국 개인의 의지를 사회적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라고 읽을 수도 있겠지요. 욕망은 사회적 차원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욕망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자에게 이런 말을 듣고자 하는 겁니다. "난 당신이 너무 부럽다. 나도 당신처럼 되고 싶다." 이런 거지요. 아파트 광고에서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이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그리고 친구가 어떻게 지내느냐는 물음에 '그랜저로 답했다'는 광고가 바로 이 명제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물체/대상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점에서 물신주의는 언제나 매개를 통해서 작동합니다. 시몬느 베이유의 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물이 인간의 역할을 하고 인간이 사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다."는 말이 그렇습니다. 시몬느 베이유의 [노동일기]는 교사직을 그만둔 그녀가 1934에서 1935년 공장에서 노동을 하며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일기입니다. 보드리야르가 눈부신 현대소비사회를 살았다면 시몬느 베이유는 대공황의 시대 공장에서 노동자로서 인간소외의 현실을 경험하고 목도한 거지요.

시몬느 베이유가 말하는 핵심은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공장의 부품과 같은 존재라는 거지요. 욕망하는 존재가 아니라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교체가능한 대상으로 전락했다는 겁니다. 현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지요. 공장에서 신체노동을 하는 노동자든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든 일터에서는 언제나 한 개인으로서 개성이나 인품이 아니라 그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노동능력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래서 총무과 김과장이라 불리든 김대리라 불리든 그 사람은 그저 김대리이거나 김과장일 뿐이지요. 시몬느 베이유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구체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단지 언제든지 교체가능한 부품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물이 인간의 역할을 하고 인간이 사물의 역할을 하는 것이야말로 악의 근원"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런 거지요. 회사가 비용절감을 이유로 가장 쉽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노동자가 아닙니까? 기업의 구조조정이란 바로 비용에 불과한 인간을 비용이 더 낮거나 비용이 들지 않는 다른 대상으로 교체하는 걸 일컫는 말이구요.

앞서의 보드리야르나 시몬느 베이유의 글은 동일한 하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사람 자신이 아니라 다른 어떤 것으로, 또는 다른 어떤 것을 통해서만 드러난다는 겁니다. 그것이 욕망의 대상인 상품이든 노동력이라는 상품이든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는 상품으로, 상품을 통해서만 존재가 표현된다는 겁니다.

맑스는 이런 현상을 상품물신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음... 역시 길군요. 곧 이어서 연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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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12:17 2012/05/29 12:17

[얼마전부터 녹색당 홈 페이지에 당 강령에 대한 해석을 나름대로 시도했다. 강령에 대한 해석이라기보다 사실 맑스의 [자본]에서 상품물신성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강의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성격의 글이다. 녹색의 이념이 현실에서 어떤 형식으로 현상하든 녹색의 이념이 자본의 지배를 용인하면서 실현될 수는 없을 터, 녹색당의 강령이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기는 하나 강력하게 자본주의 극복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강령의 의미를 더욱 공고히 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녹색당 의제 토론 - 강령의 해석을 시도하며

총선이 끝나면 한 번 녹색당의 강령에 대해 해석을 해보려고 했습니다. 물론 해설이 아니라 해석이니 주관적일 수 밖에 없겠지요. 이런 과정을 통해 강령이 새롭게 읽히고 당원들 사이에 활발하게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에 게시판에 올린 것처럼 강령이란 당의 이념이며 당의 정책과 정치활동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추상적일 수 있는 당의 강령을 구체적이고 풍부하면서도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지침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의 당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막연히 녹색이라는 말의 의미에서 녹색당의 정치활동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당의 강령을 통해 당의 정치활동을 자신의 구체적인 활동으로 내면화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강령 해석이라고 그럴듯하게 제목을 붙였지만 아무래도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으니 제게 끌리는 것부터 시작하도록 하지요.

먼저 저는 강령의 [전문]에서 "우리는 공동체의 돌봄과 살림경제, 협동과 연대의 경제 속에서 대안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성장과 물신주의, 경제 지상주의를 넘어서는 정당"이라는 말이 가지는 의미가 참 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살림경제'가 어떤 원리를 가지고 작동하는 체계인지 모르겠으나 이 두 문장은 전반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극복한다는 의지가 나타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의 강령 해석은 맑스의 [자본]의 1편 "상품과 화폐"를 중심으로 나름의 해석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물론 해석이라고 말을 던졌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맑스의 [자본]에서 "상품과 화폐"를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1. 해석에 앞서

만약 우리가 현재의 경제체제를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면 앞서 강령의 전문에서 제시하고 있는 "공동체의 돌봄과 살림경제, 협동과 연대의 경제 "는 맑스가 [자본]에서 제시하고 있는 "자유인들의 결사체"라는 표현을 연상시키는 듯 합니다. 맑스는 [자본]에서 상품에서 화폐 분석으로 나아가 화폐의 본질을 파헤친 후 "상품의 물신적 성격과 그 비밀"이라는 절에서 이렇게 덧붙입니다.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 마지막으로, 공동의 생산수단으로 노동하면서 자신들의 많은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서 자각적으로 지출하는 자유인들의 결사체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맑스가 "기분을 전환시키기 위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의도적이라고 보는데 아마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극복한 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어떤 전형적인 도식으로 굳어지는 것을 걱정한 모양입니다. 맑스는 다른 글에서도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공동체의 이미지를 문학적으로, 당연히 수사적인 표현을 통해 제시합니다.

맑스가 제시하고 있는 "자유인들의 결사체"는, 제가 생각할 때 어슐르 르귄이 [빼앗긴 자들]이라는 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는 공동체의 이미지와 많이 겹칩니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이 소설에서 자본가 정부에 맞서 사회주의와 아나키스트 공동체를 위해 싸웠던 사회주의자들과 아나키스트들은 투쟁에 실패하였으나 체제의 전복을 원하지 않았던 자본가 정부의 제안으로 그들의 달, 아나레스로 이주하여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갑니다.

새로운 삶을 선택하여 아나레스에 정착한 수백만의 영혼들은 그들만의 공동체, 아나키스트들의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그 곳에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호협력이라는 원칙 외에는 어떤 법률도 없으며 자유로운 연대라는 원칙 외에는 어떤 정부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주식시장이나 광고, 비밀경찰도 없고, 성직자도 없으며, 무기제조업자도 없는 곳이지만, 동시에 다른 많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소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나누는 자들이기 때문이기 때문이지요.

** 너무 길면 읽기 쉽지 않을 듯하여 며칠 후 다시 계속하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용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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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9 12:09 2012/05/29 12:09

탄 원 서

1. 22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된 노동해방실천연대(준)(이하 해방연대) 소속 회원 4명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어 현재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2. 재판장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이들 4명을 구속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국가보안법은 전세계가 가장 반민주적이고 반인권적인 악법으로 폐기를 권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권위는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국가보안법 관련 사범 문제를 해결할 것”을 명시한 바 있습니다. 작년 6월에는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 및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이 한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습니다. 이렇게 구시대의 반인권, 반민주 악법으로 해방연대 회원 4명을 처벌하고자 하고 이를 위해 인신구속하는 것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며 국제적인 망신임을 인식하시어 신중한 판단을 해주시길 바랍니다.

3. 아울러, 한국사회가 법, 제도적으로 국민의 사상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자 한다면, 당연히 한국사회의 가장 큰 병폐인 자본주의의 문제를 거론하고 이에 대해서 대안을 제시하고자 하는 사회주의 정치활동의 자유 역시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체제로 인한 각종 문제들이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본주의가 지닌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자연스러운 상황입니다. 더 나아가 사회주의정당건설 등 사회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활동을 전개하여 국민들에게 인정받는 정치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4. 해방연대는 2005년 6월 결성하여 7년 동안 사회주의 정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사회주의 정치활동을 벌여 왔습니다. 대부분의 자료는 인터넷과 인쇄물로 공개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연행된 4명에 대해서 구속수사를 할 명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울러 7년여 동안을 공개적인 활동을 한 단체에 대해 국가보안법 상의 공소시효가 20일 남은 시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을 말하며 처벌하려고 드는 것은, 어느 누구도 납득할 수 없으며, 무리한 법적용임이 명백합니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2012년 5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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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4 17:56 2012/05/24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