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2

여행 2012/02/29 20:42

부쩍 성격이 까칠해지고 있는 자신을 의식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줄어드는 머리카락을 걱정하는 것처럼 자신이 점점 못난 인간이 되어가는 걸 걱정하는 건 그렇게 좋은 일이 아니다. 잘 살고 있지 못하다는 소리에 다름 아닌가! 옹졸하고 고집쟁이 늙은이, 마치 스크루지 영감처럼 늙어가고 있다는 우려는 단지 생각으로만 그치지 않을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물론 알고 있었다. 그래도 혼자 사는 것 만큼 편한 일이 어디 있더냐? 나 만큼 혼자 잘 살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던가? 다들 그 점은 인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책갈피 사이에서 바삭바삭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윤기도 없고 생기도 없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난2월 초 성판악에서 정상으로 오르면서 나는 다른 동료들을 제치고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과 체력을 부러워했지만 전날부터 배가 더부룩하고 소화가 안 되는 걸로 보아 이번 제주도 여행은 꽝이라고 생각하던 터였는데 말이다. 견딜 수 없는 열망도 없이 미칠듯이 소리칠 수 있는 열정도 없이, 미련을 버리듯 묵은 찌꺼기같은 감정을 탈탈 털면서 자조하듯, 내리는 눈을 한탄하며 '내가 이 망할놈의 산에 올라가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중얼거리면서도 나는 앞서 가는 사람들을 헤치며 올랐던 것이다.

그 때 내 머리에 온다 리쿠의 소설이 떠올랐다. 터무니없이, 논리적인 맥락도 없이 나는 다루마 산을 오르는 야스히코가 생각났던 것이다. 나는 두고 온 아내도 없는데, 야스히코처럼 함께 살다 떠난 파트너는 이미 오래 전 떠나고 기억도 사라지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온다 리쿠의 소설이 강렬하게 떠 올랐던 이유를 모르겠다. 아마 외로워서였을까, 여전히 혼자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결국 정상을 포기하고 사라오름으로 발길을 돌려 전망대로 향했다. 전망대는 허허하게 눈발만 날리는 쓸쓸한 풍경이었다. 우연인지 원래 그곳에 사는 놈들인지 까마귀 두 마리가 눈 속을 날아 오르더니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나무들 사이로 사라졌다. 내가 떠 올렸던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산을 뒤덮은 억새 잎사귀가 바람에 사각거리지만 나는 오로지 두고 온 아내 생각뿐.

재미없고 꽉 막힌 사람. 줄곧 그렇게 믿었던 아버지의 유품에서 두고두고 읽은 태가 나는 고전 가요집과 시집을 발견하고 야스히코는 놀랐다. 특히 <만요슈>가 너덜너덜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노래에는 밑줄까지 여러 줄 그어져 있었다. 오랜 세월 함께 살았던 파트너가 나가버려, 기분전환 삼아 집 안을 청소하면서 아버지 책에 쌓인 먼지를 털었다. 그것이 20년 만에 이 산을 올라볼 생각이 든 계기일지도 모른다.

 나도 야스히코의 아버지처럼 이 소설의 한 구절에 진하게 밑줄을 그은 적이 있다. 좀체 소설에는 밑줄을 긋지 않는데도 말이다.

"숨이 막힐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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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9 20:42 2012/02/29 20:42

농촌 예산은 농민에게 쓰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경향신문

‘발틱해운지수’라는 게 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을 비롯하여 설탕, 철강제품, 비료, 목재, 시멘트 등 산적(散積) 화물을 운반하는 부정기 외항선의 운임 동향에 관해 런던의 해운관계기관에서 매일 발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세계경제가 몇 달 혹은 몇 년 뒤 어떻게 될지 미리 알려주는 경기 선행 지수가 될 수 있다. 화물선 운임 결정 요인은 기본적으로 세계 전체의 산업활동 상황에 달려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 등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료이다. 당연히 산업이 활발하면 원료를 운반하는 선박의 운임이 높아지고, 저조하면 선박의 운임이 낮아진다.

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발틱해운지수’가 지금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1985년에 지수 1000으로 시작하여 2008년 5월에 12000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몇 달 뒤 월스트리트 금융파산 상황에서 660으로 뚝 떨어졌다가 얼마 후 약간의 회복세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다시 하락하여 마침내 최근에는 2008년 말 수준으로 추락하고 있다. 이 추세는 본질적으로 현재 세계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금융위기, 나아가 전반적 경제위기에 직결된 사태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지금 자본주의 종말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떻든 세계경제의 전망이 어두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현재 그리스가 겪는 비참한 상황은 예외적인 게 아니라 곧 세계 전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세계 자본주의 위기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온 핵심요인들이 사라져 가고 있는 데에 주된 원인이 있음이 확실하다. 즉, 석유를 비롯한 값싼 자원과 값싼 식량, 값싼 노동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특히 석유라는 ‘마법의 물질’은 결정적이다.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의 경제성장은 기본적으로 값싼 석유 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석유는 에너지 이외에 산업사회의 존속에 불가결한 온갖 재료와 원료의 원천이다. 그 때문에 고갈돼 가는 석유 확보를 둘러싸고 산업국가간에 갈수록 피나는 경쟁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석유가 재생불가능한 자원인 이상, 석유의 대량소비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탈각하지 않고 석유확보 경쟁에만 매달린다면 설령 일시적인 성공이 있다 하더라도 결국은 공멸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식량위기도 심히 위협적인 문제이다. 금융투기꾼에 의한 국제식량가격 조작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계의 농토가 급격히 축소되거나 사막화되고 있다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지난 몇십년간 화학비료와 농약의 대량 투입으로 엄청난 곡물증산이 가능해졌으나 동시에 토양침식과 토질악화라는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났다. 게다가 식량생산에 이용되어야 할 양질의 광대한 땅이 공장식 축산 사료와 생물연료를 위해서 허비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산업사회의 종말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뚜렷한 징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에게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를 확대·반복해 온 산업경제 방식과는 질적으로 다른 방식, 즉 지역 중심의 자립적·자급적 생활방식을 조금이라도 많이 확보하려는 시도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것은 농사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이다. 인류사회에 미래가 있다면, 싫든 좋든 그것은 새로운 농경시대일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사회에는 지금 온갖 공약과 계획, 제안이 난무하고 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러한 숱한 계획 속에 경제성장이 멈춘 상황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전무하다는 사실이다. 무슨 근거인지 모르지만, 계속적인 성장을 암묵적인 전제로 하는 한, 그 모든 제안은 공허한 것으로 끝날 공산이 매우 높다.

지금은 재벌이 동네의 골목시장에까지 들어와서 서민들의 생계수단을 위협하는 시대이다. 재벌의 탐욕을 비난하기 전에 이게 무엇을 뜻하는 현상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재벌도 이제는 벼랑 끝에 몰려있다는 명백한 증좌인 것이다. 그러나 노골적인 약육강식의 길로 가서는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유일한 활로는 공생의 원리를 익히고, 공생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삶의 양식인 ‘순환경제’를 실천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사멸 직전에 있는 농업, 농촌, 농민을 살리는 일이다.

최근 일본정부는 농사를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연간 150만엔을 7년간 지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주로 노인들밖에 남아있지 않은 농촌 상황이 이대로 간다면 농사를 계승할 세대가 단절될 것이라는 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이렇듯 중대한 결단이 정부 차원에서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은 그래도 합리적인 사고력이 아직 남아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판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최소한의 위기의식조차 없다. 국내의 농사를 보호하는 것보다 ‘해외농지’를 확보하거나 “농지가 아니라 곡물딜러를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 나라 권력 엘리트들의 뿌리깊은 사고방식이다.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앙의 주요기관 지방이전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복잡한 방법이 필요 없다. 일본처럼 농사를 지으려는 젊은이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도 좋지만, 나는 농사일을 하는 사람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매월 정액을 일률적으로 평생 지급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는다. 이른바 농촌대책용 국가예산을 진정으로 농민을 위해서 쓴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재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정치적 의지이다. 물론 시대착오적인 ‘자유무역협정’ 따위를 밀어붙이는 정치상황에서 이것은 불가능하다. 합리적인 사고, 양질의 정치가 통하는 사회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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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6 20:57 2012/02/26 20:57

그래 나도 보수다

일상 2012/02/19 20:04

어제 늦은 밤 앤서니와 맥주를 마시면서 푸념하듯이, "한국 여성들은 연애의 목적이 결혼이야" 이렇게 말했더니 앤서니는 미국 여성들도 그렇다고 말한다. 36살인 앤서니는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물론 학원에서.

앤서니는 대학에서 International relationship을 전공했다. 세부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아르헨티나의 수입과 수출 모형을 공부했단다. 그래서 내가 한국과 일본의 유사성에 대해, 그리고 한국과 아르헨티나와 공통점으로 오랜 기간의 군부독재를 언급했더니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좀 설명해주었더니 내가 너무 정치적이란다. 미국인들은 대체적으로 정치적으로 보수적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다른 사회체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가 만난 젊은) 미국인들은 대체로 '사회주의=독재, 자본주의=민주주의'라는 도식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그들의 반사회주의적 성향이 때론 거북하기도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한국인보다 훨씬 더 열린 자세를 가지고 있다. 이성관계에서는 물론이고 동성애에 대해서 우리의 보수성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에서 만난 이들은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동양계나 흑인들과 자유롭고 편하게 잘 지내는 걸 보면 내가 어느 정도 편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들 사이의 교류나 관계는 인종적 틈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다른 면에서도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나는 내가 가진 협소한 시각과 편견과 마주치면서 깜짝 놀란다.

 

저녁 먹으면서 우연히 읽었는데 포스팅하려고 한겨레신문 웹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져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다른 칼럼이나 기사들은 굵은 글씨와 헤드라인으로 크게 장식되어 있는데 이 글은 어디 귀퉁이에 살짝 숨겨둔 모양이다. 이렇게 뒤져서라도 찾은 까닭은 '글이 읽기가 참 좋았다'고 말 할 수 있어서다.

 


나는 보수다, 겁쟁이다
/한겨레신문

내가 몸담고 있는 학과의 젊은 교수들의 정치적 성향은 제각각이다. 월가 시위에 동조하는 지역 시위가 내가 사는 동네에서 열릴 때, 나는 목마른 사슴이 우물을 찾듯이 카메라를 둘러메고 학생들과 쏘다니며 모처럼 흥에 겨웠지만 의외로 동료 교수들 반응은 썰렁했다. 공화당 티파티랑 뭐가 다르냐며 못마땅해하는 축도 있었고 그래 봤자 소용없을 거라고, 세상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냉소주의자도 있었다. 정치적 외향만을 따져볼 때 동료들 가운데 나는 분명 진보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러나 가족과 사적 영역으로 들어가 보면 나는 여전히 고루한 보수, 혹은 겁쟁이 소시민에 가깝다.

내 동료 중 한명은 아이 셋 딸린 이혼녀와 결혼했다. 그에게는 초혼이었다. 2남1녀 중 딸아이는 지적 장애를 가졌다. 좋은 대학에서 박사학위 받은 총각 교수가 아이 셋 딸린 이혼녀랑 결혼을 하는 건 한국에선 매우 이례적인,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설정 아닌가. 가족을 동반한 식사모임에서 그가 딸아이랑 즉석에서 지은 노래를 흥얼흥얼 부르는 걸 들었다. 사뭇 감동적이었다. “넌 정말 훌륭한 아빠다” 했더니 “아빠가 다 그렇지 뭐. 특별할 게 있나” 하는데 내 얼굴이 달아올랐다. 분명 내 감동의 코드는 “자기가 낳은 자식도 아닌데…”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왔을 터. 그는 딸아이를 돌보기 위해 모든 수업을 오전에 마치고 오후 두시에는 칼같이 퇴근을 한다. 목요일 저녁은 가족과 텔레비전 보는 날이라며 약속도 잡지 않는다.

또다른 동료 교수는 일벌레다. 매달 논문 한 편씩을 써낼 만큼 부지런하고 재기 넘치는 젊은 연구자인데 유대인인 그는 동네 바에서 노래하는 흑인여성과 결혼했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하니 있을 법한 일이긴 하지만 밤무대 흑인가수와 백인 대학교수의 조합이 여전히 낯설다. 요즘엔 딸 쌍둥이를 낳고 돌보느라 코빼기 보기도 힘들다. 나보다 두 해 먼저 부임한 여자 동료도 있다. 인형처럼 또릿또릿한 외모에 누구에게나 다정다감해서 여자인 내가 봐도 단박에 반할 만큼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는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 아빠하고는 한집에 같이 살면서 아이를 키우지만 결혼은 안 하고 산다. 다른 이에게 소개를 할 때도 호칭은 “남편”이 아니라 “파트너”다. 사생활에 대해선 묻지 않는 게 예의기도 하지만 난 내 속에 웅크린 완고한 고정관념을 들킬까 겁나 자세한 얘기를 묻지 못한다.

내가 이십대에 배운 진보에는 빠져 있던 무언가가 그들에겐 있다. 패싸움과 체벌과 소지품검사를 학창시절의 아련한 추억으로 간직한 중년세대는 일찌감치 거세당한 자유주의의 상상력. 인습과 체면의 허식에 번번이 진저리를 치면서도 못 이기는 척 적당히 타협하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탓일까. 내 자식만큼은 나와 다르게 자라게 하고 싶은데 어쩜 그 걸림돌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진순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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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9 20:04 2012/02/19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