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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도시의 경계, 인간과 늑대 사이

인랑(人狼:1999)은 도시에 관한 영화다. 허나 화면은 도시의 양지를 비추지 않는다. 패전 후 고도 경제성장과 더불어 그 부작용으로 버림받은 이들의 저항에 부딪치게 된 일본 사회의 단면이 정지된 사진과 나레이션으로 깔린다. 음지를 포착하며 전개되는 이야기 자체는 가상의 역사지만, 여기서 한때 일본을 뒤흔들었던 전공투 세대를 떠올리는 건 무리가 아니다. 아마 이 작품이 70, 80년대에 상영되었다면 공전의 흥행을 기록했을 것이다. 음울한 색조를 띠는 영상과 함께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과 회의감에 깊게 빠져든다. 늑대의 삶을 강요하는 도시의 비인간성, 가려진 그림자를 비추는 잔혹한 동화다.

 

자치경의 능력으로는 저항세력을 제압할 수 없게 된 정부는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한 준 군사집단 '특기대'를 창설한다. 2차 대전 당시의 독일군의 것과 비슷한 철모나 MG42 중기관총, 정부의 개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특기대의 별명 '케르베로스'는 파시스트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저항세력의 힘이 시민들의 지원과 참여에 힘입어 치안 유지에 혼선을 일으켰을 때 '특기대'의 유용성은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시위 조직이 온건한 조치로 해체되고 숙적인 소수의 정예 '섹트'만이 남자 그토록 필요했던 '특기대'의 존재의의도 의심받는다. 경제 발전의 국물에 안정을 찾은 시민들은 '섹트'와 '특기대'양쪽을 사라져야할 '비정상'으로 규정한다. 양쪽 모두 도시의 어둠으로 고립되어가는 시점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데모대와 자치경의 무력 충돌이다. 화염병과 돌이 날아들고 곳곳에 부상자들이 속출한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한 소녀가 길을 재촉하고 있다. 선물이라며 동료인 듯한 남자에게 가방을 건네준다. 남자는 진압대 앞으로 가방을 던지고 가방은 강렬한 폭염을 일으키며 폭발한다. 진압대의 최루탄 발사와 동시에 본격적인 시위대 검거가 시작되고 소녀는 다시 누군가에게서 가방을 받아 들고는 어둠속을 걷는다. 우리는 예쁜 소녀가 '섹트'의 멤버임을 충분히 짐작하게 된다. 하수도를 통해 이동하는 섹트의 멤버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듯이 만난 특기대의 화력에 산산이 박살나고 만다. 하수도 저편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은 소녀는 불안감에 차 길을 달린다. 잠시 숨을 돌리려는 사이, 한 명의 특기대원이 기관총을 들이댄다. 놀란 소녀는 가방에 든 폭탄의 뇌관을 조금씩 당긴다.

 

 

'왜?' 특기대원이 묻는다. 전투복이 얼굴을 가려 인간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움에도 이 '왜?'라는 말이 주는 인간적인 진폭은 크다. '어째서? 나이 어린 네가 스스로를 그렇게 죽음으로 몰아세우려는 이유는 대체 뭐지?'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조에도 떨리는 기색도 있는 듯이 느껴진다. 다른 대원들이 발포를 독촉함에도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소녀는 끝내 자폭한다. 도시는 정전되고 거리에서 한창이던 시위대와 진압대의 싸움도 멈춘다. 이 영화는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부르짖는 프로파간다 영화가 아니다. 어디에도 이념적 선전성의 자취는 없다. 탄압을 받으며 동정심을 자아내는 시위대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후세 카즈키 경사. 소녀를 쏘지 못했던 특기대원의 이름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죽은 소녀의 이름은 아가와 나나미, 암호명 '단발 머리'. 초반부에 죽음을 맞이한  단발 머리 소녀의 환영은 이제 살아있는 '긴 머리' 케이의 모습과 겹치며 영화 곳곳에 비치게 될 것이다. 군사 재판에 회부된 후세는 신병양성소에서의 재훈련 처분을 받는다. 급히 엎드려 경미한 부상만 입은 그는 훈련을 거듭하는 나날을 보낸다. 죄책감에 소녀의 유골이 놓인 납골당을 찾는 후세, 그곳에는 소녀의 언니라 하는 케이가 와있다. 후세와 만난 케이는 당신의 잘못은 아니라며 한 권의 책을 선물한다. '빨간 두건 이야기',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이 동화가 새삼 낮설게 느껴진다. 이 동화는 이제 슬픈 사랑 이야기의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자 이야기의 플롯으로 작용할 것이다. 점차 후세의 목소리는 늑대의 목소리, 케이의 목소리는 소녀의 목소리로 바뀌며 현실과 동화가 교차한다. 

 

 

'옛날 한 소녀가 있었는데 7년간 엄마와 떨어져 살았어요. 소녀는 쇠 옷을 입은 채 늘 이런 말을 들었더랬죠. 옷이 다 닳으면 엄마를 보러 갈 수 있단다. 소녀는 열심히 벽에 옷을 문질러 닳게 했어요.'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의 훈련. 감시 카메라가 주변을 탐색하는 모습이 잡힌다. 미셀 푸코의 말처럼 전근대적 사회에서 집행되던 직접적인 죽음의 권력은 거기에 수반되는 저항에 의해 사라졌지만 근대 국가는 이를 감시와 규제라는 수단으로 대체했다. 정해진 길에서 이탈하지 못하도록 끝없이 감시하고 규제한다. 이 무언의 폭력, 실체가 보이지 않는 압력 아래에서는 반항할 수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도 없다. 파놉티콘(원형 감옥)은 거미줄같이 촘촘히 짜여져 수감된 먹이감은 빠져나올 수 없다. 빠져나온다 해도 그 안에서의 역할을 잃음으로 인해 존재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훈련 도중 벽을 부수고 상대를 제압할 기회를 잡은 후세의 눈에 케이의 얼굴이 비친다. 순간 당황스러움에 역으로 제압당한 후세. 훈련이 끝나고 교관들은 특수복 사용 수칙을 지킬 것을 강요하며 악을 쓴다.

 

멀리서 지켜보는 두 사람이 있다. 교관인 '한다'와 후세의 특기대 동기였지만 공안부로 전직한 '헨미'다. '총 맞는 것보다 쏘는게 낫다', '알때까지 훈련시켜야지'라는 말에서 근대 인간의 운명을 보는 듯한 착잡한 사념에 잡히게 된다. 조직의 일원이 된 이상, 개체의 존재 의의는 소속집단의 성격에 따라 규정되며 행동양식 역시 거기에 따라 결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기대에 들어온 이상 특기대의 훈련 방식을 몸에 박히도록 익혀야 한다. 약해진 짐승은 오래 살 수 없다. '인간과 인연을 맺은 짐승의 이야기는 반드시 불행한 결말로 끝나지, 짐승에겐 짐승만의 이야기가 있어.'

 

 

거리를 돌아다니며 함께 시간을 보내는 후세와 케이. 철거되는 건물과 바뀐 주변 풍경에서 케이는 자신의 위태로운 삶을 예감한다. 도시에서 필요를 잃은, 가치를 잃은 건 폐기된다. 유원지에서 케이는 철조망 저편의 풍경을 응시하며 말한다. '꽤 멀리까지 보이죠? 여기 이렇게 서 있으면, 나도 언젠가 여길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딘가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는 거죠.' 그리고 후세에게 묻는다. '당신은 왜 특기대가 됐어요?' 후세는 답한다. '설명하긴 힘들지만 내가 있을 곳을 찾은 것 같아.' 뛰놀던 아이가 손에 든 풍선을 놓치자 풍선은 하늘 높이 떠오른다. 후세는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서 갈 풍선을 바라본다. 케이는 무언가의 안에서 속박받는 자신의 처지를 두려워하고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에 반해 후세는 자기 무리의 늑대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케이를 따라 인간의 편으로 갈 것인가를 두고 딜레마에 빠진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 것인가?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집단을 떠나 어디로?

 

 

순간 보이는 환상. '단발 머리' 소녀는 후세에게 '당신은 올 수 없어요'라 내밷으며 달아난다. 소녀를 따라가는 후세. 뒤에 한 두 마리씩 늑대들이 따른다.'기다려! 묻고 싶은게 있어!' 하수도 길을 달려 이른 막다른 곳엔 창살로 된 문이 경계를 이룬다.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바로 경계다. 경계는 철조망과 벽, 철문의 형태로 나타나 변주를 거듭한다. 비정상의 경계를 넘어 '정상'의 양지로 나갈 수 없었던 이들의 외로운 이야기는 이렇게 경계를 사이에 두는 추격전의 양상을 이룬다. 나가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 사이의 경계. 문의 저편에서 멈추고 돌아보는 소녀는 어느새 케이로 바뀌어 있다. '당신은 올 수 없어요. 오면 안돼요' 문이 열리고 케이에게 달려드는 늑대들. 영화 전체를 통해 차마 보기 괴로운 장면이 이어愎? '멈춰!'라는 후세의 말에도 늑대들은 케이의 살을 뜯고 피를 핧는다. 자신의 총에 난자당하는 또 다른 케이의 모습이 여기에 겹치고, 달리던 하수도는 눈 보라치는 설원으로 변한다. 늑대 무리 한 가운데 앉은 후세. 그는 늑대 무리의 일원이기 때문에 인간의 편으로, 양지로 나갈 수 없다. 짐승이 된 이상 무리를 떠날 수 없다.

 

 

도심에서 떨어진 외곽의 쓰레기 처리장. 도시에서 양산되는 쓰레기들은 중심부에서 효용성을 잃고 축출된다. 페기물들을 처리하는 인적없는 장소에서 특기대 제거를 노리는 모종의 음모가 꾸며진다. 공안부의 무로토와 헨미를 비롯한 이들의 계략은 특기대 대원을 표적으로 한 스캔들을 일으켜 특기대 해체의 명분을 만드는 것이다. '단발 머리'의 언니라 믿어졌던 케이도 사실은 공안부의 각본에 따라 계획적으로 후세에게 접근한 일종의 첩자였다. '섹트의 멤버와 내통한 특기대 대원'을 구속하기 위한 행동이 전개되고 케이의 전화에 후세가 달려온다. 동물들의 박제를 전시해놓은 박물관에서 매복조를 먼저 처리한 후세는 차를 탈취해 케이와 어디론가를 향한다.

 

'이젠 어디에 가나요?', '어두운 숲', '어두운 숲을 지나면 어디로 가죠?', '누군가가 기다리는 집으로', '누가 기다려요?', '엄마, 할머니 아니면...' 어두운 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깔려진 레일을 따라가는 전차, 길거리의 취객과 단속하는 경관들, 좁은 골목에 드러누운 노숙자들. 도시의 뒷편, 쓸쓸한 풍경이다. 로고스적 분류표에 의해 '정상'이 아닌 '비정상'이라 분류된 것들은 규제와 소외의 대상이다. 전에 왔었던 유원지에서 케이는 후세에게 사실과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자신이 '빨간 두건' 섹트의 일원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공안부에 가담한 일과 함께, 위태로운 자신의 삶에 보이는 희미한 희망을 말한다. 도시에서, 자신들이 속한 조직에서, 그것들이 주는 억압에서 빠져나가는 것. 유원지에서 말했던 그 얘기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면, 속박의 고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일 특기대를 그만 둔다면 특기대원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필요성이 없어질 것이기에 후세는 주저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입을 맞춘다. 억압를 뿌리치려는 몸부림과 망설이는 몸부림의 결합.

 

 

결말을 향해가는 극의 무대는 다시 하수도로 옮겨간다. 후세와 케이가 서 있는 곳을 향해 한 둘씩 누군가가 모여든다. 훈련교관인 '한다'를 중심으로 한 비밀 속의 반첩보기구 '인랑'의 조직원들이다. 후세는 신병 시절부터 '인랑'의 조직원이었고 이미 공안부의 계략을 눈치채고 있던 '한다'는 케이를 역이용해 공안부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다. 첩보전은 먼저 내다보는 놈이 이긴다. 주저앉는 케이는 싸우러 가는 후세의 뒤에서 울부짖는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었어요'라고... 케이의 가방 속에 단 추적장치를 따라 '헨미'가 이끄는 공안부 요원들이 돌입해온다. 철저히 대비해 두었던 반첩보부대 '인랑'. 암흑 속에서 한 바탕의 총격전이 벌어진다. 총격전의 사실적인 묘사는 극의 잔인한 분위기를 더욱 실감케 해준다. 공안부의 요원들은 후세의 총에 살코기처럼 난자당한다. 도망치다 막다른 곳에 이른 '헨미'는 친구인 후세에게 '너도 인간이잖아!'라는 말과 함께 유탄을 겨누지만 불발로 그치고 사살된다.

 

도심 외곽의 페허. 날이 밝아오고 '인랑'의 조직원들은 상황을 수습해 돌아갈 채비를 한다. 리더인 '한다'는 후세의 손에 모젤 C96 권총(2차 대전 당시 구 독일군의 권총)을 쥐어주며 케이를 죽일 것을 명한다. 케이는 공안부를 누를 비장의 카드지만 그들이 케이가 우리 편에 있다고 믿게 하는게 중요할 뿐 그녀의 생사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빼앗길 위험을 없애려면 남은 방법은 이 뿐이다. '인간과 인연을 맺은 짐승 이야기의 결말을 지어라, 네가 늑대로 남아있을 동안에...' 후세의 뒤에서 케이는 동화의 마지막 구절을 담담한 어조로 읊는다. '소녀가 옷을 벗고 침대에 다가가 보니 엄마는 두건을 얼굴까지 내려쓰고 이상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죠.' 후세의 품에 안기는 케이는 울음을 터뜨리면서 뒷 구절을 잇는다. 괴로움에 일그러지는 후세의 얼굴.

 

'엄마, 왜 귀가 이렇게 커요?'

'엄마, 왜 눈가 이렇게 커요?'

'엄마, 왜 손톱가 이렇게 커요?'

'엄마, 왜 이가 이렇게 커요?'

 

한 방의 총성이 울리고 케이는 쓰러진다. 허탈해 하는 후세의 표정. 무언가 자신이 기댈 곳, 의지하고 싶은 것, 소중한 것을 상실한 자의 그것일까. 아니,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짐승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인간과 짐승사이에 있는 자의 그 것일까? 조직의 논리에 따라 개인의 것을, 스스로의 것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한 소시민의 모습인가. 친구도 연인도 배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무리의 일원인 한 마리의 늑대이고 무리 전체의 뜻을 따른다. 그러지 않으면 무리에서 쫓겨나고 무리에서 쫓겨나면 생존할 수 없다. 그것이 전체주의의 논리다. '한다'는 마지막 구절을 책 읽듯이 말한다. '그리고 늑대는 빨간 두건을 잡아먹었다.' 물 웅덩이에 버려진 빨간 두건 이야기의 독일어 판본.

 

 

인랑을 보고 나서는 한동안 망연히 앉아있게 된다. 나는 자유로운가. 나에게 소중한 것은,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지금 있는 이 장소를 벗어나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인랑이 주는 여운의 바탕은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은 영화가 보여주는 배경인 1960년대 자체가 주는 두려움이 아니다. 잊혀진 가상의 과거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며 머잖아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직감에 기반한 두려움이다. 그리고 관객 자신이 인간 아닌, 짐승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근대 국가의 성립이래 인간은 도시라는 구조의 정형속을 흐르는 모나드(단자)로서 살아가게 되었다. 더 이상 개인은 독자적 개체로 존재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국가, 사회, 단체 등의 집단을 통해 번호, 이름을 부여받는다. 그런 통과 의례를 거쳐 '정상'으로 선별되면 한 덩어리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며 존재 의의를 갖는다. 규정 이외의 행위는 현상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반드시 제재를 받게 된다.

 

니부어가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국가'에서 말했듯 개인의 선한 노력은 전체의 비도덕성에 의해 와해되기 쉽다. 사회라는 것은 한 사람의 미약한 힘만으로 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개인이 바뀌면 세상이 바뀌는 게 아니라 돌아가는 구조라는 것이 있다. 전체의 질서, 구조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고, 설령 명시된 질서가 인간성을 말살할 여지가 있는 것이라도 따를 수 밖에 없다. '비정상'을 도시의 음지로 축출하는 메커니즘은 무리에서의 추방에 대한 공포로 작동한다. 순진한, 천진난만한 빨간 두건이 엄마를 만나기 위해 쇠옷을 문지르는 행위는 도시 시스템을 탈출하려는 개체의 몸부림이자 이단이며 늑대(인랑 - 후세)는 시스템의 이단을 처리하기 위한 직,간접적 권력의 작동이다. 본질적으론 엄연히 파시즘에 속한다.

 

흔한 말로 '세상이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선한 기질이 얼마든지 있는데, 사회가 이를 악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않으면 승진하지 못하거나, 사기치지 않으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없다는 풍조가 널리 퍼진 상태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결국 그러한 믿음을 사회에서 삶 속에서 실천하려면, 자신을 찾고 싶으면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 도시라는 구조의 본질이 바뀌어야 하며 여기엔 모순을 해결하자는 뜻에 공감대가 형성된 새로운 대안 집단이 필수적이다. 케이는 자유를 위한 투쟁이나 이탈을 위한 동료를 만들지 못했기에 실패했고, 후세는 소속된 곳을 극복하지 못했기에 인간 늑대(人狼)가 되어야 했다. 우리는 인간인가, 늑대인가? 도시에서 인간의 얼굴을 되찾기 위한 회의, 이 괴로운 문제의 해답을 찾는 여정은 이제 막을 올렸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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