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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천사의 시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

인간을 사랑한 한 천사의 여정

  지구 위에 서서는 지구가 둥글다는 걸 느낄 수 없듯이 자신이 선 자리에서만 진리를 구한다는 건 무모한 짓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런 사실을 느끼는 순간 인간은 진리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나곤 했다.
  오래 전 성현들이 ‘고행(苦行)’ 그 자체가 진리를 얻는 길이라고 했던 것처럼 많은 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구원을 얻고자 길을 떠났다. 아마도 출발과 다다름 그 사이의 모든 것이 답이고 진리이고, 여행은 존재에 대한 회피라기보단 ‘도전’일 것이다.

  영화인들에게도 ‘존재 속에 숨쉬는 갈망’을 ‘길’과 ‘길을 따라 가는 여행’ 속에서 풀어 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고대 신화 속의 숨가쁜 여정들은 1940~50년대 흔했던 모험활극 영화에서 펼쳐지고 이후 ‘길’과 ‘여행’은 작품의 보조적인 소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이야기되는 ‘길’의 시대가 도래하여 ‘로드 무비(Road Movie)’라는 새로운 영화 장르가 형성된다.
  독일의 거장 빔 벤더스는 꾸준히 ‘길 위에서’ 인간의 문제를 탐구해온 로드 무비의 대표적인 주자이다.

길 위에서 인간을 탐구하는 로드 무비
  1987년 작 ‘베를린 천사의 시’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던 빔 벤더스의 대표작이다. 한 천사의 천상에서 인간 세계로의 여정을 담아낸 이 영화의 원제는 ‘베를린의 하늘(Der Himmel Ueber Berlin)’이며, 그 ‘하늘’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의미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천사 다미엘과 카시엘은 베를린의 하늘에서 사람들을 살펴보고 기록하는 임무가 있었다. 다미엘은 그렇게 베를린 시민들 사이에서, 때론 그들의 마음도 어루만지며 그냥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다미엘은 서커스에서 가짜 날개를 달고 공중곡예를 하는 여인을 발견하곤 깊은 연민과 사랑을 시작한다. 이 여인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천사’같은 인간 마리온이었다. 천사 다미엘은 천사였다가 인간으로 환생한 영화배우 피터 포크를 만나게 되고, 결국 다미엘은 천사로서의 생명을 끝내고 한 인간으로서 마리온을 찾아간다.
  이 영화는 독일의 수도이자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을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감독 빔 벤더스가 바로 머리 위 베를린 하늘에 구원을 바라는 침묵의 기도를 보내듯 천사 다미엘 역시 그 하늘에서 이 음습한 잿빛 도시를 사랑했다.
  영화 속의 그 우울함과 그늘은 빔 벤더스 감독에게도, 천사 다미엘에게도 헤어나기 힘든 굴레인 것만 같다. 신은 베를린 하늘의 천사들이 수 차례의 사악한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로 그들을 불신한다. 독일인들은 신이 그들의 조국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두렵다. 베를린 하늘을 배경으로 다미엘이 올라서 있던 ‘승리의 여신상’은 독일의 많은 전쟁을 기리는 ‘전승기념탑’이었다.
  수차례의 전쟁과 2차 대전의 패배가 개개인에게 준 현실적인 고통은 심각했다. ‘천사’인 다미엘이 고통 받는 베를린 시민을 어루만질 때 그것은 그저 아무도 듣지 못하는 무의미한 독백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되어 그들 속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처럼 진심을 드러내고 진정한 위로를 주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천사가 불멸도 버리는데 인간이 인간을 해치고 죽이는 것에는 과연 어떤 명분이 있겠는가.
  천사이기를 저버리고 인간이 된 다미엘이 패전의 상흔 같은 베를린 장벽을 따라 걷는 것은 그가 앞으로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불멸을 포기하게 한 인간애
  ‘베를린 천사의 시’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자체를 드라마로 느껴지게 한다. 젊은 시절 빔 벤더스 감독은 로드 무비만 찍는 감독으로 알려질 만큼 그는 여행자와 길, 여정, 도착지와 출발지 그 자체를 영화 속에 담아냈다.
  이 영화에선 천사의 발걸음(?)을 따라 베를린이란 도시와 그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베를린 시민들을 그렸다. 통일 전의 베를린은 독일국민에게 그리 편한 장소가 아니었고, 감독에게도 심각한 고민이 담겨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군국주의, 나치, 전쟁, 분단, 이념대립 등등.
  감독은 시공을 초월한 천사가 그 초월성을 포기하고 인간 세계에 구속되면서 베를린을 해방하는 모습을 그리고 싶어했던 것 같다. 안주할 수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길임을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감독은 이 영화에서 ‘나’ 아닌 다른 사람, 더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구현하는 과정으로서의 ‘여행’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베를린은 영화 속과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브란데부르크 문’은 프러시아 군국주의 시대의 개선문이었고, 독일 통일 후 지금은 동서 화합의 문으로 다시 태어났다. 좀 억지스럽긴 해도 말이다.

과거를 극복하고 진보하는 베를린
  이런 독일 역사의 상징인 베를린은 문명화된 문화 도시로의 의미도 지니고 있다. 국립박물관, 독일역사 박물관, 페르가본 박물관, 보데미술관 등, 그 다종다양한 독일 역사의 ‘실재(實在)’를 품고 있다.
  또 현대의 역동성 역시 같은 곳에서 숨쉰다. 포츠담 광장을 중심으로 우람한 소니 센터를 비롯해 시네마 쿠프, 비즈니스 센터, 그리고 메르세데스 센터 등의 현대적 문명이 함께 어울린다. 빔 벤더스 감독이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표현한 베를린을 어떻게 받아들이던 현재는 또 다른 진보와 발전의 그림을 확실히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 나오던 기차역과 다리 등 많은 장소가 사라지고 현대적인 건물이 들어선 걸 가지고 ‘옛날이 좋았다’고 운운하는 건 감상이다. 이 곳의 현대화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결과이긴 하지만 그걸 마땅치 않게 보는 건 ‘보는 이’의 더 못난 욕심이 아닐까. 어쨌든 천사 다미엘이 안타까이 바라보던 그 때에 비해 발전된 희망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의 성지(聖地)가 된 베를린의 하늘 아래에서 인간 다미엘은 또 어떤 구원을 꿈꾸며 기나긴 여행을 계속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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