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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가 재미 없는 이유

 

 베스트 셀러는 읽지 마라! 라는 금언을 나는 믿지 않는다. 재미있는 상업소설이 주는 감동과 카타르시스는 고전을 읽을때의 그것 과는 질이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B급에는 B급 나름의 미덕이 있음을 믿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물론 언론과 출판업계의 '뻥'일수도 있다) 덴 브라운의 다빈치코드는 그러한 미덕들을 찾기가 쉽지 않은 소설이다.

 '예수의 또 다른 삶'이라는 이제는 식상할 법도 한 논쟁적인 소제를 끌어다가 X-파일 적인 음모론과 에코적인 비밀종교풍을 그럴듯하게 섞어 놓긴 했지만 상투적인 에필로그를 보는 순간까지도 그저그런 스릴러물에 머무르고 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다빈치코드가 소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추리소설에도 나름의 원칙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원칙중에 하나는 소설속의 탐정이 알고 있는 단서는 독자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추리소설의 끝트머리에(김전일이 용의자를 불러모아놓고 '범인은 이 안에 있어!'라고 외치는 그 순간 말이다) "사실은 범인의 지문이 권총에 남아있어어!" 라고 독자가 알지 못했던 증거를 외치며 탐정이 미스터리를 해결해 버린다면 독자들은 얼마나 맥이 빠질 것인가?

 다빈치 코드는 시종일관 이러한 느낌을 받게 하는 어설픈 추리소설이다. 주인공 랭던의 소임인 암호화된 메시지를 해독해나가는 작업은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 단지 해박한 기호학지식의 소유자인 랭던이 이 암호는 이러이러한 뜻이 숨어있는 암호이다 라고 주장하면 독자들은 그걸 믿어야 한다. 다빈치 코드를 이끌어 나가는 큰 축이 사실 추리소설로 봤을때 어설프기 그지없는 트릭으로 채워져 있다면 스릴러로서의 가치를 감안한다고 해도 그 안에서 지적인 유희를 기대하는 독자들의 요구에 절대로 부응할 수없을 것이다.

 

 가장 훌륭한 추리소설은 독자 자신이 바로 탐정이 되는 소설임을 간과한 다빈치코드의 추리소설 점수는 그리 높게 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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