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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과거에 사람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소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이오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 여자에게 이 말을 할 거요
사랑하오
만약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서유기 2 선리기연(1995)> 中
주성치, <서유기 2 선리기연>의 기억
박종윤
1. 심심한 추석
유달리 긴 한가위 연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나 역시도 일주일 간 주욱주욱- 늘어진 오후의 연속이었다. 친척들과의 즐거운 시간, 송편 만들기, 전 부치기, 그리고 모처럼의 연휴를 만끽하는 것도 하루이틀이다. 늘 쫓겨 살아온 탓일까, 긴 휴가는 오히려 날 지치게 만든다. 그렇게 풍성한 한가위가 심심한 추석으로 바뀌어 갈 때쯤, 내 손에 잡히는 것은 추석 특선 영화 편성표가 담겨있는 며칠 전 한겨례 신문 쪼가리. 문득 명절마다 온가족이 앉아보던 특선 영화들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영화들은 영화관에서 본 영화들보다 오히려 명절날 보았던 영화들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아직도 가족들과 명절만 되면 “명절에는 역시 짱깨영화”라며 이번 추석에는 어떤 영화가 하나 꼼꼼히 살펴본다. 늘 그래왔듯이. 한국 영화가 더욱 많아진 요즈음과는 다르게 어릴 적에는 정말 많은 중국(그리고 홍콩) 영화를 티비에서 볼 수 있었다. 임청하의 <동방불패>, 이소룡의 <정무문>, 장국영과 왕조현의 <천녀유혼> 등 굵직굵직한 영화들이 방영되었지만, 사실 명절 영화의 왕좌는 역시 성룡과 홍금보가 지키고 있었다. 성룡이나 홍금보 둘만 나와도 박장대소하는데 둘이 같이 출연하는 <쾌찬차>같은 작품을 방영할때면 정말 행복했다. 어린 날 티비를 하나놓고 네 가족이 키득대는 모습은 영락없이 명절의 풍경이었다.
하지만 간혹 성룡과 홍금보가 나오지 않아도 눈길을 잡아채는 영화가 있었다. 주성치, 그리고 오맹달이 출연한 작품들이 그랬었는데, 영화에 담긴 정서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종종 등장하는 슬랩스틱한 개그들만 해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 때는 그 뿐, 주성치를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 대학 들어온 그 해 여름의 이야기이다.
2. 주성치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면 대부분의 관객이 호평을 하는 영화가 있고, 대부분의 관객이 욕을 하면서 - 가끔은 영화 보는 도중에도 나가는 영화도 있고, 관객들의 호불호가 ‘취향’의 차이에 따라서 끔찍하게도 갈리는 영화들이 있다. 헐리우드의 흠잡을 데 없는 웰메이드 블록버스터가 첫 번째 경우에 속한다면, 두 번째 경우에는 정말 완성도가 낮은, 예로 들기는 미안하지만 조인성이 주연을 했던 <남남북녀> 같은 영화들이 속하지 않을까 한다.(최근작이었던 <비열한 거리에서의 연기와는 다른 모습이다.) 마지막 범주에 속하는 영화들은 작가주의적(이라 편의상 통칭하는) 영화들이 그러한데, 우리나라로 치자면 홍상수,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이 이 범주에 속할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입김이 깊이 들어간 영화들은 감독의 특정한 정서가 영화들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또한 변주되기 마련이다.(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개중 가장 반복과 변주에 천착하지 않나 싶다.)
특정한 정서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까닭에, ‘코드’를 가지지 못하였거나 혹은 맞지 않는 관객들에게 이러한 감독들의 영화를 보여주는 행위는 폭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그 나름의 맛을 알게되면 (통상적으로 개봉관이 적기 때문에) 찾아서 보지 않으면 보기 힘든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꼭 인사동 좁은 골목의 허름한 어느 술집 들어가듯 찾아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어떠한 팬덤이 형성되게 되고, 이 팬덤은 그 크기가 작던 크던 작가주의적 영화를 만드는 감독에게 큰 힘이 된다. 그렇게 창작 활동을 하고 또 피드백을 받는 행위를 통해서 그 특정한 정서는 주욱- 유지되기 마련이다. 감독이 (소위) 변절하지 않는 이상은.
주성치가 출연하거나 연출하고 있는 일련의 영화들 역시 그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주성치는 홍상수, 김기덕 등 감독의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 못한 것에 비하면 정말 중국의 대중적인 영화인이라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특유의 마니아적인 특성은 거의 원본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매력은 살아있다.
기본적으로 주성치는 코미디 배우다. 주성치의 팬 카페(물론 한국 팬 카페지만)에도 가입하여 거의 모든 주성치의 영화 리스트를 섭렵한 내가 접할 수 있었던 주성치의 영화는 물론 멜로, 액션, 심지어 스포츠적인 면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극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작용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실상 코미디라는 큰 범주의 장르로 모두 묶어낼 수 있었다. 주성치의 코미디는 기본적으로 다소간의 슬랩스틱, 엉뚱한 상황 전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패러디에 기반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매력을 잘 살린 작품군은 <파괴지왕>, <녹정기>, <식신>등 주성치 코미디의 초중기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주성치가 슬랩스틱, 패러디로만 승부하는 것은 아니다. 주성치 영화의 표면적 매력이 그러한 코미디적 요소에서 나온다면 그 내면의 정서적인 기반에는 ‘힘없고 약한 사람’에 대한 연민과 관심, 묘한 동질감과 그러한 약자들이 결국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영웅 신화’의 이데올로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줏어 들은 말이지만 중국에서 주성치의 영화들이 큰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가 약자의 정서에 호소하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다.) 웃기고 재치있는 주성치 영화의 이면에는 채플린의 영화들이 그랬듯 나름의 페이소스가 있다.(물론 주성치의 영화가 거의 해피엔딩으로 가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순수 희극의 영역을 넘어간 주성치의 영화들은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등 여타 요소들이 강조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중 대표적인 영화가 굉장히 모던한 느낌이었던 <희극지왕>, 그리고 서유기의 주성치적인 재해석, <서유기 1 월광보합(이하 월광보합)> 과 <서유기 2 선리기연(이하 선리기연)>이다.
3. 선리기연
<월광보합>이 주성치가 그 전까지 가져오던 시종일관 웃음짓게 만드는 코미디의 미덕을 서유기의 인물들로 재해석한 1부라면, <선리기연>은 주성치의 코미디적 요소는 대폭 축소된 멜로적 성격이 강한 드라마를 가진 2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선리기연>은 <월광보합>보다 ‘덜’ 웃기지만 결과적으로 정서를 뒤흔드는 파장은 전에 없이 크다. 하지만 주성치식 유머는 슬픈 드라마에도 곳곳에서 빛나고 있다.
주성치의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중 가장 명대사를 뽑으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은
“난 과거에 사람을 앞에 두고 아끼지 못하고 잃은 후에 큰 후회를 했소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이오
하늘에서 다시 기회를 준다면 그 여자에게 이 말을 할 거요
사랑하오
만약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이라는 무척이나 긴 대사를 뽑을 것이다.(심지어 필자와 같이 외우고 다니는 사람도 종종 있다.)
이 대사는 <선리기연>을 통틀어서 두 번이 나오는데, 첫 번째는 지존보(주성치 분)가 영화에서 자하(주인 분)에게 죽을 위험에 쳐해 있을 때 거짓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리고 두 번째는 지존보가 실지로 자하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우마왕에게 잡혀간 주인을 구하기 위해 손오공으로 환생하면서 속세와 인연을 끊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이 중 주목해야 될 전제는 사실 이 대사의 원 주인이 주성치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면 나의 사랑은 만년으로 하고 싶다.’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가 나오기 전해 나온 왕가위 감독의 아름다운 영화, <중경삼림>의 대사이다. 금성무의 나레이션으로 처리되는 이 대사는 많은 이들에게 잊지 못할 우울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 진지한 대사를 주성치는 통째로 따다 패러디 해버린다.
자하가 지존보에게 칼 끝을 겨누는 순간, 영화는 순간 스틸컷으로 전환되면서 지존보와 자하, 그리고 겨누고 있는 칼을 연달아 비추며 마치 만화를 읽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낸다. 명백한 의미에서의 스틸컷이 아닌, 등장인물이 가만히 멈추어 있는 효과로 스틸컷의 효과를 준다. 검이 지존보의 목을 겨누는 순간 장면은 고정되며 지존보의 친절한 나레이션이 시작된다. “그때 검과 내 목과의 거리는 0.01cm 밖에 되지 않았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중경삼림의 패러디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중경삼림의 “우리가 가장 가까이 스친 순간에는 서로의 거리가 0.01cm 밖에 안되었다. 난 그녀를 모른다. 여섯 시간 후, 그녀는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라는 초반부 대사를 패러디해온 것이다.(“....만년으로 하겠소”라는 대사가 중경삼림의 패러디가 아니고, 우연히 겹친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간혹 엿보이지만, 그 앞에 자리잡은 이 첫 대사를 본다면 그 것은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스틸컷은 계속된다. 자하의 화난 얼굴이 다시 비추며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검의 주인이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과장된 지존보의 눈망울, 다시 자하의 눈, 과장되어 보이는 지존보의 이빨, 자하의 귀, 지존보의 다리, 자하의 다리가 정지된 상태에서 계속 넘어가면서 “내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난 많은 거짓말을 해왔지만 이번이 가장 완벽했다.”라며 나레이션은 계속 흐른다. 지존보의 양손이 한번 클로즈업 될 때 한쪽 손은 Fuck you의 자세를 취하고 있고, 자하의 검을 겨누고 있는 손을 비출 때 정지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왼쪽 손으로 오른 손이 간지럽다는 듯이 잠깐 긁고 이내 다시 자세로 돌아간다. 가히 키치적이라 할만한 설정이다.
나레이션이 시작될 때쯤 정지된 사운드는 나레이션의 끝과 함께 슬픈 음악을 내보낸다. 다시 영화로 돌아온 지존보는 “난 죽어 마땅하오, 어서 죽이시오.”라며 저 위의 그 유명한 대사를 읊는다. 자하 역시 대사의 말미 쯤에 가면 같이 울어버린다. 이 곳에서 카메라는 클리셰한 쌍팔년도 멜로드라마같은 방식의 워킹을 보여주는데, 자하와 지존보의 얼굴을 계속 연달아 클로즈업하는 방식이다. 대사 말미에 갈수록 감정이입을 강조하는 듯 점점 더 인물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이 방식은 음악과 더불어 굉장히 저열한 느낌으로 재현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등장인물은 모두 울고 있지만 관객은 웃겨 자빠질 지경이다. 촌스런 시퀀스의 마지막에 자하가 칼을 놓치는 장면을 슬로우 모션으로 찍은 것은 당연한 선택일 것이다.
이에 반해 영화가 말미로 향하기 바로 전, 지존보가 자하를 우마왕에게서 구해내기 위하여 속세와 인연을 끊고 손오공으로 환생하는 장면에서의 패러디는 사뭇 진지하다. 물이 떨어지는 반사동 동굴 앞을 잠시 비추는 것은 지존보가 속세와 인연을 끊는 장소를 보여준다. 동굴 안에는 거대한 여의봉이 세로로 꽃혀있고, 그 밑에는 지존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다. 지존보 주위로 카메라가 패닝하고 지존보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금강원(손오공의 머리띠)를 앞에 둔 지존보를 비춘다.
그 때, 지존보는 다시 한번 중경삼림의 패러디인 대사를 읊는다. 물론 나오는 음악은 전과 같은 음악이다. 하지만 전과 다르게 촬영은 진중한 느낌을 전달하고 ‘돌아올 수 없다’는 전제에서 나오는 슬픈 느낌을 표현한다. 주성치의 수많은 영화 중 가장 슬프지 않을까 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지존보는 금강원을 머리에 쓴다. 금강원을 머리에 쓴 지존보를 앞, 뒤에서 클로즈업하면서 카메라는 다시 우마왕의 거처로 이동한다.
4. 다시 주성치
사실 [선리기연]의 아름다운 장면들은 이 말고도 많다. 우마왕 거처가 태양으로 떨어질 때 자하를 구하려 하지만 금강원이 머리를 조여 결국은 자하의 손을 놓치게 되는 장면, 감옥에 갇힌 삼장법사가 뜬금없이 “only you"를 마음대로 개사해 부르는 장면(극 중간에 뜬금없이 뮤지컬적인 요소가 들어가는 전개 역시 주성치 영화의 반복 중 하나이다.), 극 에필로그에 잠시 등장하는 석양무사의 드라마 등 <선리기연>은 주성치의 영화의 총체 중 하나다.
최근 주성치의 행보는 종전의 B급적인 정서에서 벗어나 발달된 컴퓨터 그래픽을 애용하는 추세이다. <소림축구>로부터 시작된 기술력의 진보는 <쿵푸 허슬>로 이어지고 있고 어쩌면 이제 주성치의 영화에서 예전같은 허접한 특수효과, 인과관계가 부적절한 전개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나름의 정서는 기술력의 진보에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주성치 영화를 사랑하는 한 관객으로서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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