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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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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스트는 2006년 12월부터 2007년 11월까지 발표된 작품들을 대상으로 책임 있는 비평과 공동체적 운영을 지향하는 음악비평모임 '보다'가 정직한 방식으로 선정한 것입니다. 음표 사이사이에 마음을 담는 음악인들과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들이 여전히 많음을 압니다. 비평의 독자적인 가치와 소통의 의미가 옅어지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다양한 취향의 음악애호가·비평가들이 뜻을 모은 '보다'는 열린 소통을 위한 독립된 공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느 해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음악적 결실이 있어줬기에 첫 걸음이 가볍습니다.
음악비평모임 '보다' : 김민규, 김윤하, 김창현, 김학선, 나도원, 단편선, 문정호, 서성덕, 서영진, 서정민갑, 최준하, 최훈교, Da20ill
음반 결산 참여 : 김윤하, 김학선, 나도원, 단편선, 문정호, 서성덕, 서영진, 서정민갑, 최준하, Da20ill
1. 할로우 잰(Hollow Jan) [Rough Draft In Progress]
세상에는 좋은 음악이 있고 안 좋은 음악이 있다. 그리고 그런 차원을 떠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음악이 있다. 이 음악이 바로 그렇다. (김학선)
마치 어느 인상주의 화가의 스트로크 같은, 과잉된 사운드의 흐름, 이곳저곳 피투성이의 스크리밍과 더불어 할로우 잰은 그들의 미美를 지속적으로 재구성 해나간다. (역설적으로, 그들의 스크리밍은 잔뜩 내향적이며, 동시에 자멸적으로 들린다.) 관건은 과연 그들이 미의 경계를 넘어 숭고sublime으로 돌입할 것인가? 레이첼스의
이렇게 잘 만들어진 앨범을 들으면 언제나 평상심을 잃는다. 게다가 음악 자체도 그걸 부채질하는 성향이니 말 다 했다. 근데 평상심을 잃게 만드는 음악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 중요한건 그날 이후다. 달빛 받으며 그적거린 글이 자고 일어나면 부끄러워지는 것처럼 당장은 평상심을 잃게 만들더라도 그것이 귀만 즐겁게 해주는 종류였다면 평상심을 되찾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Rough Draft In Progress]는 대체 무엇이기에 하룻밤도 모자라 1년이 지나도록 평상심을 잃게 만드는 것일까. 시간이 꽤 흘렀지만 지금 이 기분은 달빛 받으며 그적거린 그 밤 그대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굳이 설명하려든다면 이 앨범이 귀가 아니라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음악들로 채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처음 앨범을 꺼내들었을 때부터 알았다. 귀는 그저 매개체일 뿐 이것이 향한 곳은 처음부터 가슴이었다는 걸. 시작과 동시에 가슴 한쪽을 때리더니 이내 전체가 먹먹해진다. 그렇게 함께 지내면서 별꼴 다 당하니 몸이 가르쳐준 게 딱 하나 있다. 눈물 흘리기 싫고 소리 지르고 싶지 않다면 절대 눈을 감지 말라는 거. 눈을 감으면 좀 편해질까 싶어 감으면 그땐 정말이지 가슴 속 뜨거움이 목구멍으로 그리고 감은 눈 사이로 터져 나오는걸 막을 수 없게 된다. 쌍팔년도 헤비메틀 앨범 속지를 자주 채웠던 감동의 눈물 어쩌고 하는 글을 볼 때마다 배 터지게 웃었던 입장에서 이 글이 얼마나 평상심을 잃은 상태에서 쓰였는지 모를 리 없다. 그러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유치함에 배 붙잡고 뒹굴어도 아무 상관없다. 그런 게 이 글을 부끄럽게 만들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 저 달은 더더욱 아니다. 이 글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는 건 오로지 [Rough Draft In Progress]가 내 곁에서 멀어지는 날뿐이다. (문정호)
샤우트와 디스트로 가득하지만 조성적 기대감을 가져도 좋다. 보컬은 야수처럼 기타는 자수처럼 서로 반대되는 특성을 강조하는 도안미가 있다. 대조적인 되풀이의 아름다움과 정념(passion)이 느껴지는 음반. (서영진)
2. 몽구스(The Mongoose) [The Mongoose]
자신감, 실력, 시대와 타이밍 모두의 아귀가 정확히 들어맞은 2007년의 풍운작. (김윤하)
(어느 거대한 권력의 최신-표어) Talk, Play, Love? 그것은 표절 아닌가? 내 기억에 그것은 이미 몽구스에 의하여 먼저 선취되었으니까. 굳이 거대자본과 매스미디어의 세례 속에서 대화하고, 움직이고, 사랑할 필요 없다. TV는 꺼라, 그리고 (오디오의) 볼륨을 높여라. 몽구스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할 것. 몸을 맡기고, 하나- 둘- 셋- Talk, Play, Love! (단편선)
몽구스의 진보란 다름 아니다. '뭐니, 쟤들?' 하고 좀처럼 다가서지 못했던 사람들을 점점 자기들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 그것이 이들의 진보이며 [The Mongoose]의 성과를 대변해준다. 이들은 첫 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을 'Early Hits Of The Mongoose'라 지었을 만큼 과장스러운 존재였다. 단지 그게 마음과는 달리 앨범에 정확히 녹아들지 못했을 뿐이다. 그랬던 것이 [Dancing Zoo](2005)를 지나 [The Mongoose]로 오면서 얼마나 달라졌나. 이제는 굳이 현장을 찾지 않더라도 앨범만으로 사람들을 날아다니게 만든다. '젊음 있는 가정마다 한 장씩!' 같은 홍보 문구가 'Early Hits Of The Mongoose'와 비슷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음에도 예전처럼 어리둥절하지 않은 이유가 다 있다. 원더 걸스 이전에 몽구스의 음악이 거리거리 집집마다 울려 퍼졌더라면 무척 낭만적이었을 테지만 정작 그 원더 걸스조차 '젊음 있는 가정마다 한 장씩'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노라고 토로하는 현실이라 그러지 못해 공허하단 말은 차마 못 꺼내겠다. (문정호)
시골 교회 소년들의 눈부신 성장은 드디어 세 번째 앨범에서 폭발해버렸다. 앨범을 플레이 하자마자 질주하는 속도감의 광휘. 음악은 고뇌의 반영이며 동시에 세계에 대한 찬미임을 보여주는 낭만의 세계관은 2007년 한국 대중음악의 복고 열풍을 이끈 키워드였지만 몽구스만큼 날렵하고 댄디한 음악을 들려준 밴드는 드물었다. 운율감 가득한 노랫말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몽구의 독특한 바이브레이션처럼 설레는 청춘의 절정을 음악으로 옮겨 닮는데 성공했고 몽구스의 3집을 2007년 한국 팝 최고의 성취로 기록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편곡과 프로듀서를 맡은 김성수의 이름 역시 반드시 기록해두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샘플링한 곡에 기획된 소녀들의 춤이 아니라 이처럼 충만한 낭만의 힘이다. 판매량과 인지도의 차이가 정작 박수를 받아야 할 사람들조차 가려버리고 있지만 2007년 복고 열풍의 진정한 챔피언은 몽구스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서정민갑)
3. 허클베리 핀(Huckleberry Finn) [환상... 나의 환멸]
스트레이트, 그리고 클린 히트. 결코 에둘러 가지 않았다. 허클베리 핀은 그들이 믿고 있는 것, 곧 그들의 '신앙'을 최대한 간명하게 기술해 나간다. (현재진행형인 혁명의 꿈, 그 전야제인 것이다!) 요컨대, 허클베리 핀에게 록은 메시지message다. (단편선)
어떤 일이 터지고 나서야 그에 대해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게 보통이지만 이미 예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들이 있다. 그중 가장 가까이 있었던 게 '환상... 나의 환멸' 같은 문구다. 처음 허클베리 핀의 앨범 타이틀로 그 문구를 봤을 때는 전에 없이 무척 직접적이었음에도 그게 어떤 건지 퍼뜩 와 닿지 않았는데 이제와 다시 보니 조만간 벌어질 우리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는 망상이 들 정도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이기용은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고 음악적으로 그걸 반영하는 것과도 전혀 거리가 멀다. 아이러니한건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악기 사용 하나하나와 단어 선택 하나만으로도 이전과 극적인 차이를 이끌어내는데 무척 용이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어느 미치광이의 태양을 올랭피오의 별로 교정한 결과물과 [환상... 나의 환멸]이 어감상의 차이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차이가 명확한걸 보면 본인들 스스로가 이를 잘 활용하면서 정확하게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앨범의 시작을 알리는 <밤이 걸어간다>를 들으면서 처음으로 허클베리 핀의 음악에 멋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소영이 들어오고 나서 여러모로 음악에 치장이 가해진 것과 달리 멜로디 자체는 너무 정직해서 부분적으로 마치 옛날 만화 영화 주제곡처럼 들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점도 거의 사라졌다. 그게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는데 그만큼 빈틈을 찾기 어려운 탄탄함으로 무장됐다는 의미다. 그전에 발표된 싱글 <낯선 두 형제>의 서늘한 아트워크를 처음 봤을 때의 기분과 [환상... 나의 환멸]로 이어지는 흐름은 2007년에 음악을 들으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문정호)
무성의할 만큼 노란 색깔로 채워진 단순한 디자인의 자켓.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음악은 네 번째 앨범이라고 믿기 힘들만큼 극한에 닿을 듯 당겨진 에너지가 팽팽하다. 전쟁과 자본의 시대를 응시하는 냉철한 시선은 혁명의 예감으로 불온한 음악의 불을 지피고, 화르륵 타들어가는 가슴에 엉기는 리프는 한없이 거칠어 더욱 도도하다. 뛰어난 예술가는 뛰어난 예언가임을 보여줄 만큼 세계 속으로 불이 되어 뛰어들면서 동시에 냉정하게 돌아서는 하드보일드한 서사. 게다가 앨범의 면면에 배어나오는 지적인 절망과 오만에 가까운 자존감은 허클베리 핀이 얼마나 스스로를 괴롭히며 작업에 임했는지를 짐작하게 하기 충분하다. 이 긴장감이 다음 앨범에서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지만 이로써 6장의 수작을 연이어 상재한 이기용의 옹골찬 창작력과 일취월장한 이소영의 보컬, 그리고 루네의 돋보이는 코러스가 빛나는 득의작임은 분명하다. (서정민갑)
당대의 음악적 조류로부터 고립된 면이 있다는 지적은 분명 타당하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 [환상... 나의 환멸]은 뛰어난 곡과 탄탄한 연주로 이루어진 훌륭한 '록' 앨범이다. 지금까지 허클베리 핀의 앨범 중에서 곡의 질과 연주, 앨범의 완결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훗날 우리 다음 세대의 누군가가 허클베리 핀이라는 밴드에 대해 물어온다면 난 주저없이 이 앨범을 권할 것이다. (최준하)
4. 그림자 궁전 [그림자 궁전]
인간이 시계를 갖게 되었다는 건 얼마나 신기하고, 또한 무시무시한 일인가. 계량화된 시간은 창작에도 영향을 미쳐왔다. 그러나 1990년대를 경험하고 2000대를 지켜봐온 세대는 장르에 대한 편견과 주류·비주류에 대한 의식적인 경계를 허물었다.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 설령 무거운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재미있게 표현하는 창작활동이 왕성해졌고, 그림자궁전에 이르러 유머를 겸한 한국형 싸이키델릭이 태어났다. 과거에 대한 오만으로부터 자유로운 이 데뷔작은 한국음악 재발견과 인디음악 성장이라는 토대에서 가능했다. 해외의 추세를 따라가고자 하는 조급함이 아니라 자연스러움을 통한 예스러움과 세련됨의 조화를 통하여 해외의 추세와 맥이 닿도록 했다. 이렇게 탄내와는 거리 먼 날 것의 소리와 사이키델릭, 그리고 성적 은유와 농담으로 시간과 지역을 넘나드는 통로를 만들었다. (나도원)
산울림+디어후프=그림자 궁전. 그림자 궁전은 두 밴드의 차이가 드러나는 좁은 틈새에 자리를 잡는다. 그 공간을 들여다보자. 현재로 소환된 과거가 노이즈를 한껏 머금은 그 궁전 안. 이곳과 저 곳의 경계가 희미하고 지금과 그 때가 서로의 꼬리를 물은 채 뒤엉킨 그 곳은 지금껏 국내 씬에서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공간이다. 산울림과 소닉 유스가, 디어후프가, 신중현과 벨벳언더그라운드가 한데 어울려 뛰노는 싸이키델리아 스페이스. (Da20ill)
5. Various Artists [빵 컴필레이션 3: History Of Bbang]
트랙마다 조그만 편차들이 있을 수는 있으며, 실제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이 컴필레이션이 동시대의 인디 록(혹은 록 외부의 것들)을 가장 적극적인 방식으로 포착하고 있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는다. 10년도 넘은 클럽 빵이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정들을 담은 작은 음반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녹음한 세 장의 컴필레이션을 보아도, 이것은 충분히 가치 있다. (단편선)
1999년 빵에서 나온 첫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은 이제와 조금 다른 의미로 남아있다. 당시 빵은 클럽 자체의 위치 때문인지는 몰라도 변방 같은 이미지였다. 참여 뮤지션의 면면도 한창 발표됐던 다른 인디 컴필레이션 앨범과 비교할 수 없었고 그들이 이후 자기 앨범으로 반향을 일으키며 회자된 것도 아니었다. 또 지금이야 어감이 참 좋지만 그때는 빵이란 이름도 왠지 장난 같아서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관심이 생긴 건 그곳에 가면 슈게이징을 들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이하 생략하고 더 이상 기피 클럽이 아닌 빵에서 발표된 [Lawn Star](2003)는 가장 마음에 드는 인디 컴필레이션 앨범 중 한 장이었다. 수록곡들이 각자의 정규 앨범을 기대하게 만들만큼 우수했다는 게 일차적이었지만 정감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유도 있었다. 앨범의 흐름을 떠나 여백의 미랄까 틈틈이 비어있는 구석이 좋았다. 그에 비하면 더블 앨범인 [History Of Bbang]은 외견상 지나치게 빡빡한 감이 있다. 그러나 방법론적으로만 보면 그 어느 때보다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완성되었고 무엇보다 곡들의 함량이 매우 뛰어나다.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강아지/고양이 이야기]와 [12 Songs About You]는 인디 입문용, [History Of Bbang]은 최소 중급 이상 고급 리스너용처럼 되어버린 꼴이 좀 답답하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지금 당장은 스쳐지나갈 뿐인 이 곡들이 하나씩 깊게 파고들 날이 반드시 오리란 확신이 있다. 그 재미를 알아차린 순간 이 앨범은 더 이상 빡빡한 더블 앨범이 아닌 날마다 새로움을 주는 보물 창고로 변해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것은 누군가의 보물 창고를 넘어 기념비적인 결과물이 될 공산이 크다. [History Of Bbang]이 발표되기 전 이미 자체 결과물을 통해 주목받은 뮤지션들과 이후 추가적으로 공개된 앨범들이 벌써부터 그걸 예견해주고 있지 않나. (문정호)
6. 슬로우 쥰(Slow 6) [Reverse]
챔피온즈를 마지막으로, 델리 스파이스로부터 시작되는 홍대 앞 모던 록 1세대를 조심스레 정리할 시점이 오고 있는 것 아닐까. 1세대가 소유하고 있던 가치들은 거의 다른 곳으로 이양되었으며, 새로운 밴드들이 새로운 모던 록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긍정적인 몇몇 지향들, 이를테면 청량한 기타 톤, 맑은 보컬 등은 현상적으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고 보인다.(더 이상 모던 록은 낯설거나, 새로운 팝이 아니다. 모던 록은 충분히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다.) 슬로우 쥰은 그들의 요소들을 자신의 것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체화시킨 뮤지션 중 한명이다. 그가 작법 상에서 어떤날 류의 모던한 포크 음악들 혹은 90년대 초 가요들의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나아갔다'고 볼 수 있는 까닭은 그가 또한 모던 록의 기치들을 충실히 자기 것으로 내재화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두 번째 음반은 다소 로파이 했던 첫 음반에 비해, 좀 더 밝고 명징하며, 사랑스럽다. 듣는 내내, 삶 구석구석에 쌓인 먼지를 털어주는 듯- 기분 좋다. (단편선)
앞으론 '하나뮤직'의 음반을 들을 때마다 '슬로우 쥰'이 떠오를 듯. 라이트모티브적 기능성까지 갖춘. 이모션, 기대, 예상감(리듬, 선율, 화성)을 배반하지 않는. 요구하면 해결해 주는 리스크 없는 디스크. (서영진)
7. 브로콜리 너마저 [앵콜요청 금지]
동시대를 살아감에 있어 브로콜리 너마저는 '루저loser'를 체현하고 있거나, 혹은 '루저인 것the loser(?)' 그 자체이다. 나는 그들의 작업물이 일종의 매뉴얼이자, 필수요소라 본다.(요즘 말로 must have!) 어떤 이들은 현재에 있어 '아마추어리즘'이 아직도 유효한 지를 물을 것이다. 답은 EP, [앵콜요청 금지]에 있다. 분명한 것은, 한 해를 통틀어 그들의 작업만큼 마술적이며, 낭만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든 것이 '경제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이 곳, 이 시점(심지어 '~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유행어라니!)에서 "역방향으로 튀어!"라고 제안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브로콜리 너마저는 그것을 제안한 것이다. 나 역시 한명의 루저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제안을 해준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으며, 덕분에 이번 한해 역시 부러지지 않고 곧바르게 걸어갈 수 있었다. 그것이 가장 고마운 일이다. (단편선)
루저나 찌질 같은 홍보용 언사로 정리하기에 이들에게 그보다 좋은 것들이 많다. 챔버 팝과 한국 록 고유의 정서, 그리고 튀는 곳 없는 한국어 가사의 결합은 이 땅에서만 볼 수 있는 오래된 음악적 정서를 꺼내 놓는다. 그리하여 이들의 아마추어리즘은 사전적 (혹은 市場的) 의미 이전에 산울림과 지금과는 달랐던 가요제들의 맥락 위로 흐른다. (서성덕)
8. 전자양 [숲]
[숲]을 들으면 해외의 인디 음악을 들었을 때나 발견할 수 있는 흐름이 보인다.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한마디로 하자면 '이것은 해외 인디 앨범을 대상으로 결산한 연말 리스트에 가장 근접한 대한민국 인디 앨범이다' 정도로 요약이 가능하다. 대부분은 그런 걸 떠나 국내 여건에 보다 맞는 음악들로 채워지길 원했겠지만 개인적으론 드물기 때문에 더 좋았다. (문정호)
좀 더 촘촘하고 균일하게 채워진 밀도. 정서는 변했지만 전반적인 전자양의 기조를 그대로 가져간 명민한 변화. 전자양 음악과 비견될 수 있는 특정 고장의 이름을 딴 장르가 실은 무국적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듯 이번 앨범이 그러하다. 바깥의 흐름을 뮤지션 내부의 개성과 융화시킨 시부야K의 관점에서는 현-재(,-지)의 어떤 뮤지션보다 성공적인 결과물. (Da20ill)
9. 이승열 [In Exchange]
(3년 전에 했던 코멘트를 거의 그대로 재활용하자면) 이 앨범은 잘 만들어진 어덜트 컨템포러리 음악이지만, 불운하게도 한국의 어덜트들은 원더 걸스를 좋아한다. (김학선)
사실 이승열은 복귀했을 때부터 전에 없이 노래로만 얘기되어지는 경향이 강했다. 본인 스스로도 단출한 편성이나 노래가 부각되어지는 것에 열의가 생겼을 테지만 상당히 안배된 게 보였다. 유앤미 블루에서 이승열이 부른 노래들은 잘 부르고 못 부르고를 떠나 혼자 따로 부르기 용이한 게 거의 없었다면 솔로 활동을 하면서부터 부른 노래들은 곧잘 부르게 된다는 것이 그 증거다. 그런 곡들이 [In Exchange]에 와서 더 많아졌고 가사는 들리는데 의미는 잘 모르겠던 것도 상당 부분 사라졌다. 부를 바엔 차라리 그냥 앨범을 꺼내 듣는 수고가 훨씬 편했던 때와 사뭇 다르다. 그런 것들과 더불어 전체적인 멜로디, 인상적인 훅에 대한 요구가 전혀 불필요하다고 여긴 입장에서 이 앨범은 오히려 심심한 편이지만 이승열이 어디 가겠나. 그는 여전히 가장 안정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뮤지션 중 한명이고 기본적으로 앨범의 완성도에 대해 신뢰를 준다. 속된 말로 본바탕이 다른 뮤지션 아닌가. (문정호)
10. 굴소년단 [Laughing Aah~]
종합(혹은 정체성identity)에 대한 반격. 굴소년단은 cliche들을 적당히 먹음직스러운 크기로 잘라,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다시 재-배열하는 중이다. 그것은 당황스러운, 어쩌면 쓸모 없어 보일 수도 있는 몽타쥬이다. 일종의 열린 결말? 당신이 준비된 만큼, 향유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이 거부하는 만큼, 멀리 달아날 것이오. 나는 전자의 case이다. 그들의 인상적인 싱글, <오늘밤은 영원히 기억될 밤>은 개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결과물이다. (단편선)
앨범 디자인에서 풍기는 이미지나 소년이 들어가는 이름을 봤을 땐 예쁜 음악을 할 거 같았다. 근데 막상 레게도 나오고 분위기를 몽환적으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어서 좀 의외였다. 또 대놓고 소녀 취향은 아니더라도 팝적인 색채가 있어서 참 다채로웠다. 나중에 공연을 봤을 때 느낌은 좀 더 강했는데 이렇듯 배경을 달리할 때마다 항상 예상과 빗나갔지만 음악 자체가 생소한건 아니다. 예를 들어 사토 신지의 기일에 있었던 모임으로부터 밴드가 출발됐다는 얘기를 들어서인지 흔히 굴소년단을 말할 때 나오는 복고적임에 대한 것보다는 피쉬만즈의 영향 같은 것이 우선적으로 떠올랐다. 레게를 활용하는 방식도 그렇다. 차이가 있다면 특정한 부분 그러니까 노래나 악기의 톤만으로 만들어지는 심상에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이 보다 극적이고 자유롭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재료를 과감히 쓰는데 주저하지 않는 태도를 보면 앞으로도 이들의 음악을 말할 때 연상과 비교가 주요 화두처럼 떠오를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Laughing Aah~]에서 보여준 버무리는 솜씨는 참신했다. 무엇보다 확실히 기억에 남는 몇몇 싱글을 보유했다는 건 뮤지션으로서 큰 강점이다. 그것이 정규 앨범까지 이어졌으면 한다.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의심으로부터 신인 뮤지션을 보호해주는데 그만한 방패도 없을 테니까. (문정호)
11. 이적 [나무로 만든 노래]
먼 길을 돌아온 그가 살 냄새 나는 노래를 시작했다. 그와 우리의 정착지가 이곳이 되어도 좋겠다. (김윤하)
메이저/마이너의 구분을 굳이 따르자면, 메이저에서 가능한 것들이 있고, 마이너에서 가능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반대로 메이저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고, 역시 마이너에서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물론 이 구분은 언제나 유동적이기 때문에, 어떤 사건들에 역전되는 경우들을 나는 종종 보아왔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라는 것 정도는 이야기 할 수 있다.) 굳이 안 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그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제대로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적은 (김진표와 함께) 패닉으로, 공중파에서 먼저 데뷔하기는 하였으나 그 초기에는 분명 마이너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 보인다. 지금의 이적에게, 예전의 패닉 초기에서와 같은 무언가를 바라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간혹, 최근의 곡들에서도 예전의 그것들을 활용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말마따나, '활용'이며 그래서 표피뿐이라 느껴진다.) 이적은 이번 음반에서, 좀 더 솔직해졌다. 그가 예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그도 이제는 인정하는 단계라 보인다. 다만 그는, 지금의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단편선)
그동안 이적하면 진심보다는 기발한 발상이나 관조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얘기됐었다. 솔직하기보단 멋있어야 했다. 그래서 그게 좋든 싫든 정작 노래 자체가 언급되는 일이 드물었는데 이번엔 본인이 직접 나섰고 난 그게 수치로 환산된 결과와는 상관없이 통했다고 생각한다. 잘 얘기되진 않았지만 노래의 맛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고 노래의 맛을 아는 사람들에게 통했다. 통했다는 표현이 적절한건 이런 시도가 있었을 때 보통 나오는 대중적인 접근에 대한 수식을 대부분 피하고 있다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문정호)
청각적으로 조형된 멋진 표제. 인상적이다. 그러나 정작 이 앨범에서 '나무로 만든 노래'는 들리지 않는 게 문제. 그나마 이적의 문체라도 읽혀서 다행이다. (서영진)
12. 배장은 트리오 & 퀸텟(JB Trio & Quintet) [Mozart & Jazz]
솔로 연주와 트리오 연주가 나올 때 이 앨범은 좋은 재즈 앨범이 되지만, 퀸텟 연주가 나올 때 이 앨범은 하나의 훌륭한 익스페리멘틀 앨범이 된다. 점점 확장돼가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이미 재즈만의 것이 아니다. (김학선)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뮤지션들과 국내 뮤지션들의 경쟁, 해외 뮤지션의 내한 공연, 대형 재즈 축제의 성공등과 맞물려 한국 재즈는 10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완성도 높은 음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미 2006년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하며 한국 재즈계의 중심으로 등극한 피아니스트 배장은 역시 한국재즈의 중흥을 이끌고 있는 뮤지션 가운데 하나. 모짜르트 음악을 재해석한 이 음반은 클래식의 거장이 가진 무게감에 짓눌리지 않고 배장은의 따뜻한 질감으로 풍성하게 모짜르트를 재창조했다는데 아름다움의 비밀이 숨어있다. 앨범에 담긴 11곡 모두가 균일한 완성도를 유지하기에 한곡 한곡을 들을 때마다 가히 메인 디쉬를 맛보는 듯한 감동에 젖게 되지만 이 풍성한 싱글들을 직조해 하나의 거대한 성찬을 차려낸 완급의 조절도 놀랍기만 하다. 원곡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면서도 관성에 빠지지 않는 과감한 창조성을 더해 현재의 언어로 재현해낸 이 작품은 2007년 한국 재즈의 가장 빛나는 성취이며 한국 재즈의 진화를 증명하는 첫 번째 사례로 기록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편곡과 연주 모두가 훌륭하지만 특히 오종대의 세심하고 감각적인 드러밍에 대해서는 각별히 언급할 필요가 있다. (서정민갑)
13. 갤럭시 익스프레스(Galaxy Express) [To The Galaxy]
표면적으로 [To The Galaxy]만 드러냈지만 여기엔 [Ramble Around]에 대한 지지도 겹쳐있다. <불타는 하늘아래> 같은 곡이 있고 [To The Galaxy]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주요 트랙들이 상당 부분 포개져있음을 감안하면 [Ramble Around]를 앞세우는 편이 나았겠지만 개인적으로 [To The Galaxy]의 아트 워크가 더 마음에 들어서 이걸로 꼽았다. 농담이고, 2008년을 멋지게 수놓을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확인해둘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본인의 음악이 무엇을 근원으로 하고 있으며 동시에 사운드스케이프를 어디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지 폭발력 있게 설파했다. 그런 맛을 느끼게 해주는 이름들이 이전에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박력에 있어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무작정 따라가고픈 충동이 생겼고 바세린, 게트 밤즈 출신의 구성으로 이런 음악이 나왔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이제 남은 건 이 무지막지한 에너지를 정규 앨범에서 완성도 있는 곡들과 함께 담아내길 기다리는 것뿐이다. 난 그것을 꽤 희망적으로 봤기에 풍년이라 할만한 2007년을 의식하지 않고 높은 순위에 올렸다. 화끈하게 미리 좀 앞서가고 싶어서. (문정호)
음악에 두 종류가 있다면, 지금 청자의 감정과 상황에 걸맞아 떨어지는 것으로 즐거움과 위안을 주는 것이 하나. 청자의 그것을 무시하며 다른 것을 잊게 하는 것이 또 하나.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보여주는 좋은 의미에서의 원초성이란 후자에 해당할 것이고, 이는 장르의 남성성과는 다른 것이다. (서성덕)
14. 바세린(Vassline) [Permanence]
하드코어가 오해받던 때부터 스스로 개념을 정립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한 하드코어 크루는 활발한 상호작용을 통하여 씬을 키워왔다. 그다지 크지 않은 씬에서 근사한 신인들의 등장이 잦은 이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강한 자극이 된 바세린은 헤비뮤직의 중심이 정통적인 헤비메틀에서 하드코어로 넘어가고, 그리고 다시 연대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할로우 잰이 감정에 충실함으로써 형식의 한계선을 돌파했다면, 양편의 충실한 조화를 꾀해온 바세린의 [Permanence]는 헤비메틀의 유산과 하드코어의 에너지가 자연스레 융합되고 있는 헤비뮤직의 현황을 대변한다. 전작들의 신선한 쾌감은 다소 줄었지만 씬의 두께와 협력이 낳은 앨범으로 충분히 그 이름에 값한다. 바세린은 씬에서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씬을 확장하고 있다. (나도원)
잘 벼려진 면도날 같은 리프와 처절함을 물씬 풍기는 보컬은 왜 바세린이 한국 헤비니스 씬의 1인자인지를 명확히 증명한다. 그러나 사운드가 더욱 격렬해진 대신 특유의 비장미는 줄어들었다. 이런 변화가 청자에 따라 앨범의 호불호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그 이전에 기본적으로 좋은 헤비니스 앨범이다. 특히 익스트림 계열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최준하)
15. 이상은 [The 3rd Place]
이상은과 동시대에 시작했거나 인기를 누렸던 사람들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나 살펴본다면, 그녀가 '이상은의 음악'을 계속 하고 있다는 사실은 감사할 따름이다. 그녀는 생계형 버라이어티에 종속된 현실에서 그나마 민망과 부끄러움을 덜어주는 보루이니까. [The 3rd Place]를 포함하여 앞으로 나올 이상은의 앨범들이 이전보다 더 좋은 음악을 담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 것은, 그녀가 보다 중요한 무엇인가를 체현하기 때문이다. (서성덕)
[공무도하가]의 놀라운 성취나 강한 자의식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자신의 작업을 정리하여 청자에게 부드럽게 건네는 것이 이 앨범의 진정한 의도할 수 있으며 결과는 충분히 성공적이다. 세상에는 과감한 실험이나 강렬한 자의식으로 충만한 앨범이 아닌 그저 양질의 곡으로 듣는 이에게 편안한 감상을 선사하는 앨범도 필요한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The 3rd Place]는 충분히 가치 있는 앨범이다. (최준하)
16.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우리는 깨끗하다]
우리는 어떤 것들을 '저질스럽다'고 규정함으로써 우리의 '저속함'을 살짝 가려둔다. 들키지 않도록. 싱글 <도시생활>을 들으며, '이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자문하다 순간- 그 눅눅한 현실에 그만 무너져버린다. 사실 '도시생활'이란 그렇게, 치졸하고 시궁창 같은 것 아니었나? 짠하다. 솔직하잖아. 그들은 명백히 키치-지향적이다. 다만, "너희도 사실 똑같아"라며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키치. 자본의 키치가 아닌, 급진적인 키치-되기. 그들은 (다수의 관점에서) 수용 가능한 형식이 아니기에 의미 있어진다. 조만간 그들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단편선)
대한민국 인디도 시간이 쌓이니 해외 인디 앨범의 라이센스 해설지에서나 볼 법한 재미난 탄생 비화 같은 게 자주 들리고 이제는 희한한 이름을 만나더라도 지난날 생겨난 잣대로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도 문득 든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문화권 속 행위는 가고 익숙하지만 요새는 드물어진 정서를 여전히 간직해왔거나 동경한 꾼들이 하나, 둘 고개를 들어주니 너무 반갑다. 또 그런 것들을 어찌나 음악에 잘 담아내는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우리는 깨끗하다]도 그런 종류의 앨범이다. 우리말 어감과 잘 선택되어진 단어 몇 개가 인상적인 노래들이 철지난 댄스 비트 옷을 입고 돌아다닌 거리는 얼마나 정겨운가. 우리 정말 많이 왔다. (문정호)
16. 네스티요나(Nastyona) [아홉 가지 기분]
네스티요나가 EP [Bye Bye My Sweet Honey](2004)로 강한 인상을 남겼음은 모두 익히 아는 바이다. 첫 번째 정규 작에서 한국어로 노래하고 폭넓게 어필할 수 있는 (라운지 팝에 가까운) 송들이 늘어난 것은 전과 다른 점이다. 또 보컬과 피아노가 독특하게 전개되는 록 사운드를 리드하며 만들던 팽팽함은 이번 앨범의 중반부터 클래식과 보사노바 등으로 버무린 느긋함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하지만 (간과되는 것 같지만) 관계와 가족을 중시하는 여성적 화법과 서늘한 사운드의 만남이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기대와 약간 다른 방향이라고 하여, 또는 [Bye Bye My Sweet Honey] 때문에 완성도 높은 결과물이 저평가된다면 부당한 처사일 것이다. 이면에 진면목이 있다. (나도원)
이미 지난 EP에서부터 인디 씬의 비기(秘機)로 주목을 받고 있던 네스티요나의 첫 번째 정규앨범은 비극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귀기서린 보컬과 매혹적인 건반연주가 파괴와 자멸의 욕구를 부추기는 중독성 강한 싱글들로 그득하다. 앨범의 출시가 늦어지면서 전작에 비해 보다 대중적인 어법을 선택한 셈이지만 그럼에도 혀를 낼름거리며 핏방울을 핥아댈 것만 같은 요사스러운 기운은 여전히 강렬하다. 그러나 노랫말을 통해 들여다본 내면은 여려 상처입기 쉬운 내면을 가진 이가 지닌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도드라진다. 선연한 보컬과 멜로디의 단호함에 비해 섬세한 내면의 풍경은 한국의 여성창작자들을 수식해온 '여성성'이라는 말이 인디를 통과하며 새롭게 변종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게다가 유독 라이브에 약한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에 비해 라이브에서도 탄탄한 무대장악력을 보여주며 자신만의 패션과 스타일을 동시에 달성하는데 성공한 창작자 요나가 부실하게 이어지고 있는 한국 여성창작자의 계보를 새롭게 이어나갈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서정민갑)
16. 말로 [지금, 너에게로]
양질(良質)의 비단 위로 촘촘히 박힌 오색 자수가 볼륨감 있게 흐른다. 은은하고 멋스럽다. (김윤하)
'이 시대 모국어로 씌어진 가장 아름다운 음반'이라는 홍보문구는 허투루 하는 얘기가 아니다. '가장'이란 말만 너그럽게 흘릴 수 있다면 위 문구는 거의 참에 가깝다. 말로는 아름답게 노래하고, 이주엽은 아름다운 노랫말을 써냈다. 그리고 말로의 노래를 감싸는 모그의 편곡과 연주 역시 아름답다. 분명하게, 아름다운 음반이다. (김학선)
19. 못(MOT) [이상한 계절]
정돈된 잎맥 위로 변함없이 검은 수액이 천천히 흐른다. 두 걸음 더 내딛은 '못'만이 만들 수 있는 '팝 튠'들도 함께 흐른다. (김윤하)
국내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다층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밴드. 못이라는 이름이 주로 정서로만 환원되어 언급되는 점은 유감이다. (Da20ill)
20. 윈디 시티(Windy City) [Countryman's Vibration]
김반장, 아소토 유니온의 음반도 종종 플레이하고는 했지만, 그때는 단지 '즐기기 좋은 음반'이라 생각했을 뿐인데. 조만간 조금 더 적극적인 방식으로 훵키함을 넘어설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단편선)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 순간 펑키한 사운드와 넘실거리는 그루브가 주위를 가득 메울 것이다. 곧이어 당신의 몸은 느긋하면서도 유쾌한 들썩임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그 들썩임은 요란하면서 휘발성만 강한 Cityman's Vibration이 아니다. 바로 편안하면서 여운 있는 Contryman's Vibration이다. 그리고 김반장의 사회의식이 강하게 드러난 <우리시대>와
guitar, vocal, recording by 박종윤
xylophone, mixing by 허민
recording at 朴귤, 찜통
mixing at 찜통
07 2 21 ~ 07 2 22
불꺼진 창틀 사이로 스미는
하루만큼 지쳐 사라진 시간들
우린 아무런 말도 없이
내 방의 성긴 먼지만 태우다
아직 아물지 않은 틈새를 보네
쌉싸름한 옛사랑
도시의 밤은
흔적도 없이
내가 지나쳐온 모든 것을 지우고
희미해진 등
벗겨진 창틀
이제 나는 어디부터 되짚어가나
하지만 난 이미 아무 것 할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되었다네
몽구스 3집 [The Mongoose]
군대 갈 때가 다 되니 간만에 꽁돈이 좀 들어와서, 그동안 못산 씨디 살 겸 해서 신촌 향뮤직에 가서 몽구스의 3집과 할로우 잰의 신보를 사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루시드폴의 라이브 앨범이 향뮤직에서 나가려는 저를 잠시 머뭇거리게 했으나,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습니다.(한번 싸이월드라든가 네이버 가서 음원을 들어보고 결정해야 되겠어요.) 마침 웨이브에 몽구스 3집 어떤지, 에 대한 글도 있었고 해서 몽구스를 먼저 듣게 되었습니다.(사실 요즘 여기저기서 말이 많은 할로우 잰이 더 궁금했는데 일단 보류~ 했습니다.)
몽구스의 첫번째 앨범은 [Early Hits Of The Mongoose]는 여러 면에서 비평하기 까다로운 앨범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말이 히트송 모음집이지 사실은 지금까지의 데모를 모아놓은 조악한(나쁜 뜻의 조악함은 아닙니다) 앨범을 듣고 몽구스의 진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실지로 몽구스가 "앨범"다운 "앨범"을 발매한 것은 2집 [Dancing Zoo]부터 였는데, 이 앨범부터는 현재진행형의 몽구스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몽구스를 정의함에 있어서 현상적으로 가장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징후는 기타가 없이 키보드가 전반적인 사운드를 조율한다는 점인데, 사실 그 것은 관점에 따라서는 장식적이거나, 표면적인 데에 그칠 수 있습니다. 몽구스의 라이브를 경험해보신 분은 공감하시겠지만 사실상 몽구스가 가지고 있는 (마치 샤머니즘의 영향을 받은 듯한) 의외의 광폭함은 피킹 베이스의 둥둥거림, 그리고 중간중간 폭발적인 오버드라이브 걸린 베이스에서 비롯됩니다.(드럼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드럼만큼 직설적인 악기는 없으니까요. 최근의 드러머 중에서는 개인적으로는 네눈밖이와 코코어의 류광희님의 드럼이 인상깊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2집은 생선 반토막만큼 아쉬운 앨범이었습니다. 라이브에서의 속속들이 박히는 키보드 사운드와 시쳇말로 가슴을 울리는 베이스 라인, 그리고 역시 시쳇말로 어딘가로 우리를 인도해주는 드럼이 조화롭다고 생각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예상치 못했다고 하여야 될까요, 물론 그와는 별도로 [Michael Jackson], [나빗가루 립스틱], [춤추는 동물원] 등의 곡은 인상적이었으며, 또 그 후로도 종종 음반을 듣게하는 원동력이 되는 좋은 곡들이었습니다.
자 그리고 이제 3집, [the mongoose].
전작들의 사운드가 몽구스의 라이브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판단 아래서, 몽구스의 새로운 앨범은 놀랍게도 라이브에서의 사운드를 거의 대부분을 섬세하게 집어내고 있습니다.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한 김성수 분의 힘이 꽤나 크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동명이인이 아니라면) 슈가도넛이라든지, 에브리 싱글 데이에서 좋은 사운드를 선보여준 김성수 프로듀서는 지금까지의 행보 중 가장 엇나가는 듯한 몽구스의 앨범에서도 (이 정도면 정말로) 멋진 사운드를 선사했습니다.
앨범 초반부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몽구스의 지극히 발랄한 댄스 팝의 향연입니다. 좋아진 사운드에 힘입어 지금까지의 앨범 들 중에서 가장 댄서블한 노래들을 선사합니다. 어디선가 조이 디비젼의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 "춤을 추기 위해서 태어났다!"라고 선포하는 듯한 첫 곡 [UFO]로 기분좋게 포문을 열어 젖히고 정신없는 팝은 네번째 트랙인 [Pintos]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덧붙이자면, 앨범 초반부의 끝을 알리는 [Pintos]는 지금까지 몽구스의 작업물 중 마스터피스~! 라고 할만한- 총체적인 트랙입니다. 2집까지의 댄서블한 곡들의 정수만을 모아담은 듯한, 멋진 곡입니다. 저라면 뮤직비디오를 찍어볼텐데...)
하지만 아무리 좋은 트랙들이라고해도 동어반복이 계속 되다보면 서스펜스는 떨어지기 마련, 본격적으로 앨범 중반부로 들어서는 다섯번째 트랙 [나는 알아요]부터 몽구스는 의뭉스러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훨씬 스트레이트한 편이지만, 전작의 [춤추는 동물원]을 연상하게 하는 [나는 알아요]가 지나간 뒤, 엉뚱하게도 키보드 한대와 음울한 목소리만으로 노래하는 - 굉장히 포크적인 [초록빛 휘파람]이 지나고나면 초반의 발랄 댄스팝은 어디 갔느냐고 묻는 듯, 기존의 이미지에서 조금씩 뒤틀린 모습들을 보여줍니다.(후반부에서 정석적인 몽구스 클리세라 부를만한 댄스팝은 [88] 정도입니다. 그나마 [88]도 한국의 88년도를 연상하게 하는 소스들로 범벅이 되어있습니다.) 셔플 리듬에 스탠다드 재즈를 흉내내는 듯한 리듬으로 시종일관 걸어가는 [바람이 우리들]까지 듣다보면 우리가 몽구스에 와있는건지, 아니면 다른 별에 와있는건지 잠시 헷갈리기도 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몽구스의 이러한 시도가 이질적으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몽구스에게서 기대하지 않았던 소스들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곡에서 몽구스는 영민하게도, 좋은 멜로디를 뽑아내고 있습니다. 정말로 몽구스는 댄스팝만이 아닌, 모던록 계를 휩쓸어버릴 생각인걸까요? 후반부의 록킹한 곡들을 들으면서 아하~! 손바닥을 치게 됩니다. 사실 몽구스의 앨범을 구매하면서 누가 이 앨범에서 마치 잘나갔던 때의 '언니네'라던지. '델리'의 완성도 있는 앨범을 듣는듯한 소박한 정서적인 울림을 바랬을까요. 이미 몽구스는 몽구스 클리세를 훌륭히 극복한 듯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기대이상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몇가지 사족을 곁들이자면, 사실 6번 트랙인 [초록빛 휘파람]은 다소 길거나,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몽구스의 자장 밖에 있는 또다른 밴드인, 스타리-아이드와 함께 연주했으면 좀 더 멋진 곡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들. 그리고 기타를 전혀 쓰지 않는 것은 이쯤되면 약간은 꼬장꼬장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이 정도는 (심지어 명반이라 불리는 앨범에서마저도) 어디서나 존재하는 몇가지 사소한 오류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몽구스의 이번 앨범의 홍보 헤드 카피가, "젊음 있는 가정마다 한 장씩!" 이었는데, 100프로 동의합니다. 이 정도의 댄스팝, 혹은 모던락이라면 제 아들, 딸들과도 꼭 함께 듣고 싶습니다.
청춘 2 - 춤 / 회기동 단편선
나는 입맛이 없이 벤치에 홀로 고민하고 있는 개
시계를 밟아 짖이겨봐도 시간은, 나나나
나는 불꺼진 유곽을 괜히 심술궂게 흔드는 지박령
풍선을 하나 터뜨려봐도 아무도, 하지만
춤을 추겠어요
나는 아무도 없는 집안에 홀로 라면을 삶는 아버지
달걀을 두 개 꺼냈다 다시 한 개는, 나나나
나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 자유 낙하를 준비하는 꽃
눈이 그칠 때까지 잠시만 이렇게, 나나나
춤을 추겠어요
커버 아트가 제 취향이 아니라서 향 음악사에서 인디 음반 진열되어 있는 곳에서 나온 것은 보았지만, 그냥 바로 넘겼습니다.(심지어 고찬용 씨의 앨범인 줄도 몰랐습니다. 고찬용 씨가 왜 인디 음반에...) 연말까지도 고찬용 씨의 신보가 나온 것을 몰랐었는데, 결산할 때가 되니 -물론 웨이브에서는 일언반구 없었지만- 이곳 저곳에서 좋은 평가가 쏟아지더군요. 그래서 새해가 밝은 저녁, 향음악사로 달려가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코스모스의 [One and Only]와 함께 두장을 계산하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첫 음반을 플레이 한 후 몇 곡이 지난 후 들었던 느낌은 '좋다'보다는 '당혹감'이었습니다. 90년대의 한국 가요적인 느낌은 강하지만 그 멜로디의 작법에 있어서는 어떤날에서 루시드폴로 이어지는 축이나, 유재하의 축 어느 쪽과도 닮아있지 않습니다.(김현철의 초기 음반들이 간혹 생각나기도 합니다.) 낯선 사람들의 음악들보다도 좀 더 고집있어진 모습인데, 분명 한국적인 도회감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멜로디의 전개가 (관행에 비해) 계속 전복되면서 귀에 꽃히는 트랙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몇 번 더 플레이를 시킨 지금에서야 귀에 들어는군요.
주목할 점은 이 음반의 모든 연주와 노래, 심지어 믹싱까지도 온전히 고찬용 손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연주에 있어서는 전문 세션이 한 것과 그다지 차이가 없을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앨범 전반을 끌어가고 있는 미디 시퀀싱 역시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고, 무엇보다 고찬용에게 딱 맞는 옷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몇몇 문제점도 발견됩니다. 주로 사운드 상의 문제인데, 마스터링을 외국에서 해서 그런지 사운드는 땅땅하고 꽤나 알차긴 하지만 보컬이 다소 작게 들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연주의 큰 볼륨과 특유의 멜로디 작법에 뭍혀 발음 역시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가사가 선명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습니다. 또한 메인 보컬이 작은 데 반하여 코러스가 다소 큰 느낌이라 약간 아쉬움을 보여줍니다. 몇몇 곡에서는 베이스가 조금 더 강조되었으면 좀 더 리드미컬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찬용의 [After ten years absene]이 지금에라도 출시된 것은 반갑습니다.(심지어 앨범명이 10년의 부재라니...) 몇몇 문제점은 그 노래들을 듣다보면 심지어 사소하게 치부할 수도 있는 정도이고, 무엇보다도 들으면 들을수록 귀에 걸리는 곡이 많아집니다. 툭하 앨범의 중반부에 좋은 트랙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물론 초반의 [스물셋]도 참 좋지만, 앨범의 백미는 단연 가장 중앙에 포진되어있는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미디 시퀀싱한 드럼임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팽팽한 것도 훌륭하고, 잘 정제되어있는 듯한 사운드가 이 곡에서만큼은 터져줍니다. 그 뒤로 [값진충고]와 [겨울이 오네]로 이어지는 플로우 역시 나무랄 데 없습니다.(앨범 말미는 다시 앨범 초반부를 듣는 느낌인데, 나쁘지는 않지만 좀 더 나은 대안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듭니다.)
음반을 몇 회 플레이한 지금 갑자기 이런 물음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고생해서만든 음반이 얼마나 팔릴 수 있을까?" 인디 음반을 들으면서도 항상 생각하는 문제이지만, 낯선 사람들을 기억하며, 또 10년 만의 첫 솔로 앨범이라는 고찬용의 신보를 들으면서 유독 저런 생각이 머릿 속을 왔다갔다 합니다. [스물 셋]이나 [길]이라면, 그리고 다른 트랙들 역시 정성이 가득한 것이 눈에 선하고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결과물들일텐데. 같은 낯선 사람들의 보컬 중 한 명이었던 이소라가 솔로 데뷔를 한 후, 고찬용은 그녀를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뱀발. 같이 구매한 코스모스의 2집 [One and Only]는 제게는 오히려 1집의 [Standard]보다 와닿지 않군요. 물론 사운드나 프로듀싱이라는 면에서는 1집보다 훨씬 나은 점이 많기는 하지만... 제가 코스모스에게 기대할 수 있었던 스타일은 [나쁜 피]나 [Starless Man]이라던지의 음악인데... 1집의 사운드는 분명 원치않은 방향으로 보이나 그 곡에 있어서는 오히려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2집도 계속 들어봐야겠군요. 하기는 [나쁜 피]는 정말 좋군요.
[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2006, 김석윤)
그대로 있어주는 '미자'의 미덕 / 박종윤
현재의 팬덤 문화는 문화 상품에서의 근대적 대량 생산-소비 패턴이 형성된 이후로 쭈욱 존재해왔지만, 최근에 한국 영상물에서 나타나고 있는 팬덤의 형상은 이전까지의 한국에서의 팬 문화와는 분명 다르게 보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하이퍼 텍스트로 이루어진 가상현실로 초월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쌍방향적 매스미디어(매개체)'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어느새 상품을 소비하는 것 뿐만 아닌 다시 재생산하는 역할까지를 맡게된다. 마케팅 계에서는 이미 프로슈머(Prosumer = Producer + Consumer)라는 개념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개념이다.
이는 2006년 초 개봉당시 역대 흥행 순위 1위를 달성했던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서도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데, 당시 그다지 많은 개봉관을 잡지 못한, 그리고 프로모션 활동에도 같이 개봉했던 타 영화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차 개봉관을 늘려가고, 결과적으로 흥행 순위 1위를 달성할 수 있게된 기저에는 [왕의 남자]의 열성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위력을 떨치고 있는, 오빠 부대로 일컬어지는 10대 중심의 팬 층과는 다르게, 최근 영화에서의 팬덤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졌으며 사회 전반의 문화적 흐름을 주도해가는 20대 중반 이상의 여성들이 그 중심이 됨으로서 기초적인 입지 자체를 달리한다. 기존의 아이돌 스타의 팬덤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면 최근의 한국 영화 팬덤은 자신들만의 문화로 남기는 것이 아닌, 보다 적극적이고 실물적으로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팬덤은 주로 대기업들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수십억대의 제작비를 쏟는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는 주로 작은 영화들에서 생겨난다.
굳이 영화의 예를 들었지만, TV에서의 드라마, 시트콤, 코미디의 경우도 이러한 팬덤을 형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최근 종영한 [환상의 커플]이라던지, 노도철 PD의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 메이트], KBS의 신설 개그 프로 웃음충전소의 [타짱]들이 그러한데, 방송 자체의 시청률과는 그다지 큰 관계없이 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역시 팬덤의 힘을 감지할 수 있다. 김석윤 감독의 [올드미스 다이어리(올미다)] 역시 이러한 적극적인 팬덤을 토대로 삼아 시트콤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영화화가 결정된 케이스이다. 둘째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가 작고한 탓에 서승현 씨로 교체된 것 이외에 나머지 출연진은 동일하고, 감독 역시 같다.(물론 방송 때는 PD 직함이었지만.) 즉, 영화판 [올미다]는 237회 짜리 시트콤 [올미다]의 가지치기이다.
시트콤 [올미다]가 누렸던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판 [올미다]는 현명한 전략을 택한다. 제작진은 237회의 시트콤이 일상적인 소재들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바를 비록 매체가 영화로 옮겨졌을지언정 잊지않는다. 짧으면 90분, 길어봤자 120분 정도되는 영화는 그래서인지 큰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매체가 이동하면서 텍스트는 일상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에서 비교적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거대한 사건보다는 일상의 연속에서 관계의 변증법적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영화는 흔히 말하는 '낙오자' 혹은 '루저'의 정서로 가득차 있지만 그 표현 양식에 있어서 비루하기보다는 오히려 귀엽다. 보는 우리야 즐겁지만 등장인물은 행복과 불행, 현실과 망상,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한다. 이런 그들을 귀엽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 중간중간에 엿보이는 삶의 긍정들 때문이라지만, 실질적으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미자(예지원 분)의 슬랩스틱 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간과할 수도 있는 측면이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왔던 수많은 영화들이 흔히 '재미'가 없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기에 훌륭한 코미디를 보여주는 여배우 예지원은 분명 영화 속에서 가장 의미있는 존재이며,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시트콤에서의 탁월한 호흡을 다시끔 재현해낸다. 전작이었던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에서도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던 예지원은 여전히 가장 비루한 모습에서 가장 귀여운 순간을 인상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그래서 과연 이 영화는 시트콤에 울고 웃었던 수많은 '언니'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일단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의 컬트적인 팬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언니'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역할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치상으로 흥행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이곳 저곳에서 좋은 소문이 많이 들려오고 있는 것은 영화 역시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시트콤의 열렬한 애청자들이 모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원작과의 다르게 로맨스에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닌가'부터 '영화치고는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구겨넣어 산만하다'는 평가까지. [올미다]가 긍정적인 면만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 우리네 같이 '현실이 쉽지 않은' 언니 이하 청춘들에게 '미자'는 그저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 바램이 있다면 이런 귀여운 '미자'가 마치 누구처럼 입소문을 타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램.
리뷰,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 김경주
외로운 날엔 살을 만진다.
내 몸의 내륙을 다 돌아다녀 본 음악이 피부 속에 아직 살고 있는지 궁금한 것이다.
열두 살이 되는 밤부터 라디오 속에 푸른 모닥불을 피운다 아주 사소한 바람에도 음악들은 꺼질 듯 꺼질 듯 흔들리지만 눅눅한 불빛을 흘리고 있는 낮은 스탠드 아래서 나는 지금 지구의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는 메아리 하나를 생각한다.
나의 가장 반대편에서 날아오고 있는 영혼이라는 엽서 한 장을 기다린다.
오늘 밤 불가능한 감수성에 대해서 말한 어느 예술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무 마리의 담배를 사오는 골목에서 나는 이 골목을 서성거리곤 했을 붓다의 찬 눈을 생각했는지 모른다 고향을 기억해낼 수 없어 벽에 기대 떨곤 했을, 붓다의 속눈썹 하나가 어딘가에 떨어져 있을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 나는 겨우 음악이 된다.
나는 붓다의 수행 중 방랑을 가장 사랑했다 방랑이란 그런 것이다 쭈그려 앉아서 한 생을 떠는 것 사랑으로 가슴으로 무너지는 날에도 나는 깨어서 골방 속에 떨곤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 내 두 눈은 강물 냄새가 난다.
워크맨은 귓속에 몇 천 년의 갠지스를 감고 돌리고 창틈으로 죽은 자들이 강물 속에서 꾸고 있는 꿈 냄새가 올라온다 혹은 그들이 살아서 미처 꾸지 못한 꿈 냄새가 도시의 창문마다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관의 말뚝에 매인 산양은 왜 밤새 우는 것일까.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표정 하나를 배우기 위해 산양은 그토록 많은 별자리를 기억하고 있는지 모른다 바바게스트 하우스 창턱에 걸터앉은 젊은 붓다가 비린 손가락을 물고 검은 물 안을 내려다보는 밤, 내 몸의 이역들은 울음들이었다고 쓰고 싶어지는 생이 있다 눈물은 눈 속에서 가늘게 떨고 있는 한 점 열이었다.
- 김경주「내 워크맨 속 갠지스」전문
여기서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 하나, 2006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사람에 따라서는 열이 받을 정도로 쓸 데 없는 질문이라는 것은 나도 알고있다. 어떠한 예술품을 이야기 할 때 어느 것의 미학적 가치가 높은가, 라는 답변에는 그나마 대답을 줄 수 잇겠지만 그래서 무엇이 가장 나은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대답하기 힘들다. 그 것은 주관이기 때문이다. 미학은 객관적일 필요성이 있지만 주관의 영역을 배제하는 것은 관념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영화는 순수한 예술품으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누벨바그의 선두에 섰던 장 뤽 고다르는 '영화는 자본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영화를 찍는 데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라 자조했다 한다.(물론 현재는 technology의 발전으로 자본의 제약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기술의 진보란 얼마나 이중적인가!) 즉, 영화는 그 태생부터 상품으로서 기능함을 뜻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물어보자. 2006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답은 괴물.
괴물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하는 것은 평론가들의 몫일 것이다. 나는 그저 괴물의 거친 장면들 중 하나를 길어올리고자 한다. 강두 역을 맡았던 송강호가 말한다. “근데- 사망- 사망잔데요- 사망은 안했어요-”
이는 영화 속 불편한 진실로서 기능한다. 조직과 시스템화에 대한 불신을 기저에 깔고 있는 괴물 속에서 한 거대한 조직 속에서 그런 진실은 마치 ‘없는 일’처럼 위장된다. 즉, 실재에 대하여 부정한다. 존재하는 것에 대한 부정, 그러한 일들은 작금의 시대에서는 이미 흔하게 반복되는 일이다.
시 동인 ‘불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경주의 시는 그렇기에 ‘불편’하다. 시의 모티브는 현실에 강하게 기반하고 있지만 그 수사에 있어서는 대중이 없다. 어디로 갈지 모른다, 는 이유로 우리는 짐짓 초현실주의의 세례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젊은 시인의 시는 또한 지극히 현실적이다.
사족을 하나 띄워보자. 같은 시 동인 불편에서 활동하는 김민정 시인의 글들은 원초적인 폭력성을 띄고 있다. 김민정 시인의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저씨’에 수록되어 있는 짧은 시 ‘내가 날 잘라 굽고 있는 밤 풍경’ 부분을 본다.
소금을 듬뿍 두른 변기솔로 내가 날 구석구석 닦는다 한 입에 한 배꼽에 한 음핵에, 두 눈에 두 귀에 두 콧구멍에 두 젖꼭지에 두 난소에, 꽃삽을 쑤셔박아 내가 날 데코레이션한다 늑막이 터지도록 허리를 졸라매고 고기걸이용 쇠걸이에 목을 찍어 내가 날 옷걸이에 건다 터진 수도관에 입이 물린 고무장갑처럼 살이 불 때까지 내가 날 꼬집어 뜯는다 하키스틱만 한 낫을 갈아 뒤통수부터 엉덩이까지 내가 날 자로 댄 일자로 찍어내린다 폐 한가운데에 식칼을 대고 살 껍질을 훌러덩 뒤집어 내가 날 까버린다 서둘러 군불을 지피고 그 위에 석쇠를 달궈 내가 날 통째로 얹는다 지글지글 내가 날 굽는 냄새가 피어오르자 해골들과 부위 모를 뼈다귀들이 앞다투어 모여든다 석쇠 위에 고여 있던 핏물이 선지로 돌돌 말아 빚은 완자처럼 지져져 더욱 쫀쫀해진 내가 날 엿가위로 한 입 두 입 잘라 굽는다 따각따각 아귀 터지게 턱 벌리는 해골들에게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바싹 태워 먹여준다 오일 바른 상아 같이 매끈매끈한 뼈다귀들이 몸에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파스처럼 붙여준다 불가에 모여 앉은 해골들과 뼈다귀들이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을 먹고 입고 점점 나로 살쪄간다 일곱의, 스물의, 스물일곱의 제각각의 내가 날 쳐다보며 나야 나야 손을 흔든다 내가 날 잘라 구운 살점들을 다 트림하고 나로 자란 그대들이 방방마다 걸린 액자 속으로 걸어들어가 찰칵찰칵 기념촬영을 한다 내가 날 잘라 구워 먹고 난 달궈진 석쇠 위에는 열세 개의 꽃삽만이 꽃게처럼 익어가고 있다
- 김민정「내가 날 잘라 굽고 있는 밤 풍경」부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 극단적인 폭력과 허무의 미학으로 점철된 김민정 시인의 시는 주로 반여성적인 기호를 적극적으로 사용함으로서 남성중심적인 사회에 일침을 놓는, 그런 사회의 실체를 해부하고 접근한다. 말하자면 불편한 진실을 공격적인 어휘로 까발림으로서 그 안으로 과감히 진입을 시도하는 것이다. 물론 그 방법론은 마치 악몽같이 묘사된다. 20세기 초 초기의 초현실주의에서는 정신병자가 거침없이 내뱉는 일반적이지 않은 서사를 가진 언어의 조합을 진지하게 연구하였는데, 어떠한 이성이 제거된 병자만이 실재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믿었기 때문이다. 김민정의 시는 그러한 정신병, 혹은 편집증 환자의 것처럼 재현되기도 한다.
역겨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혐오로 가득찬 김민정 시인과는 달리 같은 ‘불편’ 동인에서 활동하는 김경주 시인은 그 내면으로 침잠한다. 또한 어법 역시 지극히 현실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소재들은 밖에서 찾아지지만 그 주체는 종국에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이를테면 서정시의 다른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
시를 위한 여러 가지 장치들을 제거해보면, 뜻밖에 김경주 시인의 끝은 존재론적인 외로움에 닿아있다. 마치 유화로 그린 그림을 그린듯, 섬세하게 덧칠된 시어들은 그 본연의 결핍을 간절한 색을 입힌다. 근대화 된 사회, 인간의 작용이 없어도 자본과 자본만의 교류로서 존재할 수 있는 현실에서 인간의 소외, 그리고 그러한 결핍을 채우기 위한 욕망은 초월한 세계로의 몽상으로 이끈다. 여기저기 붕붕 날아다니는 이미지, 시인은 그 이미지를 담기만 하면 된다. 김경주 시인의 시 모음을 읽으면서, 문득 우리가 어떠한 미학적 가치를 지닌 예술품을 만드는 근원적인 이유에 대하여 생각했다. 김경주 시인이 그 중에서도 특별한 것은 기호화된 현실과 실재의 경계에서, 어느 곳으로도 쉽사리 미끄러지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관조하지 않으며 잠식당하지도 않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도전이다.
속칭 ‘미래파’라 불리며 문단에 등장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약진은 놀랍다.(물론 김민정, 김경주 등 그 흐름의 주축에 있는 시인들은 평론가 들의 이러한 장르화에 대하여 완강히 부정한다.) 시인 권혁웅이 시집 뒷 표지에 실었던 ‘이 시집은 한국어로 씌어진 가장 중요한 시집 가운데 한 권이 될 것이다.’이란 문장이 정말로 실현될까는 답을 아직은 할 수 없다. 그 것은 시집을 몇 번 더 읽어보고, 그리고 또 시간이 좀 더 지나가면 판단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경주 등의 시인이 현대 시문학 계에서 이끌어가고 있는 그러한 흐름이 훗날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문학을 더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아니, 현재로서도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뜬금없는 질문 하나. 진짜로 2006년 한국에서 개봉한 영화 중 최고의 영화는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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