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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드미스 다이어리(2006, 김석윤)
그대로 있어주는 '미자'의 미덕 / 박종윤
현재의 팬덤 문화는 문화 상품에서의 근대적 대량 생산-소비 패턴이 형성된 이후로 쭈욱 존재해왔지만, 최근에 한국 영상물에서 나타나고 있는 팬덤의 형상은 이전까지의 한국에서의 팬 문화와는 분명 다르게 보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을 하이퍼 텍스트로 이루어진 가상현실로 초월하는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쌍방향적 매스미디어(매개체)'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어느새 상품을 소비하는 것 뿐만 아닌 다시 재생산하는 역할까지를 맡게된다. 마케팅 계에서는 이미 프로슈머(Prosumer = Producer + Consumer)라는 개념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알려지기 시작한 개념이다.
이는 2006년 초 개봉당시 역대 흥행 순위 1위를 달성했던 이준익 감독의 [왕의 남자]에서도 기운을 감지할 수 있는데, 당시 그다지 많은 개봉관을 잡지 못한, 그리고 프로모션 활동에도 같이 개봉했던 타 영화들보다 우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점차 개봉관을 늘려가고, 결과적으로 흥행 순위 1위를 달성할 수 있게된 기저에는 [왕의 남자]의 열성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9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도 위력을 떨치고 있는, 오빠 부대로 일컬어지는 10대 중심의 팬 층과는 다르게, 최근 영화에서의 팬덤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을 가졌으며 사회 전반의 문화적 흐름을 주도해가는 20대 중반 이상의 여성들이 그 중심이 됨으로서 기초적인 입지 자체를 달리한다. 기존의 아이돌 스타의 팬덤이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형태를 기본으로 한다면 최근의 한국 영화 팬덤은 자신들만의 문화로 남기는 것이 아닌, 보다 적극적이고 실물적으로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는 데 주력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러한 팬덤은 주로 대기업들의 투자가 이루어지고 수십억대의 제작비를 쏟는 소위 블록버스터 영화들보다는 주로 작은 영화들에서 생겨난다.
굳이 영화의 예를 들었지만, TV에서의 드라마, 시트콤, 코미디의 경우도 이러한 팬덤을 형성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최근 종영한 [환상의 커플]이라던지, 노도철 PD의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 메이트], KBS의 신설 개그 프로 웃음충전소의 [타짱]들이 그러한데, 방송 자체의 시청률과는 그다지 큰 관계없이 붐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역시 팬덤의 힘을 감지할 수 있다. 김석윤 감독의 [올드미스 다이어리(올미다)] 역시 이러한 적극적인 팬덤을 토대로 삼아 시트콤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영화화가 결정된 케이스이다. 둘째 할머니 역을 맡은 배우가 작고한 탓에 서승현 씨로 교체된 것 이외에 나머지 출연진은 동일하고, 감독 역시 같다.(물론 방송 때는 PD 직함이었지만.) 즉, 영화판 [올미다]는 237회 짜리 시트콤 [올미다]의 가지치기이다.
시트콤 [올미다]가 누렸던 인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판 [올미다]는 현명한 전략을 택한다. 제작진은 237회의 시트콤이 일상적인 소재들로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었다는 바를 비록 매체가 영화로 옮겨졌을지언정 잊지않는다. 짧으면 90분, 길어봤자 120분 정도되는 영화는 그래서인지 큰 욕심을 가지지 않는다. 매체가 이동하면서 텍스트는 일상적인 에피소드의 나열에서 비교적 로맨틱 코미디에 가까운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거대한 사건보다는 일상의 연속에서 관계의 변증법적 발전을 꾀하고 있다는 점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영화는 흔히 말하는 '낙오자' 혹은 '루저'의 정서로 가득차 있지만 그 표현 양식에 있어서 비루하기보다는 오히려 귀엽다. 보는 우리야 즐겁지만 등장인물은 행복과 불행, 현실과 망상,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계속 줄타기를 한다. 이런 그들을 귀엽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 중간중간에 엿보이는 삶의 긍정들 때문이라지만, 실질적으로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미자(예지원 분)의 슬랩스틱 연기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이는 간과할 수도 있는 측면이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나왔던 수많은 영화들이 흔히 '재미'가 없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였기에 훌륭한 코미디를 보여주는 여배우 예지원은 분명 영화 속에서 가장 의미있는 존재이며, 다른 출연자들과 함께 시트콤에서의 탁월한 호흡을 다시끔 재현해낸다. 전작이었던 김수현 감독의 '귀여워'에서도 탁월한 연기를 선보였던 예지원은 여전히 가장 비루한 모습에서 가장 귀여운 순간을 인상적으로 연출해내고 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그래서 과연 이 영화는 시트콤에 울고 웃었던 수많은 '언니'들을 만족시킬 수 있을까. 일단은 성공적으로 보인다. 이송희일 감독의 [후회하지 않아]의 컬트적인 팬덤에 비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언니'들은 나름대로의 자기 역할은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치상으로 흥행하고 있다고는 볼 수 없으나, 이곳 저곳에서 좋은 소문이 많이 들려오고 있는 것은 영화 역시 공감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한다. 물론 시트콤의 열렬한 애청자들이 모두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원작과의 다르게 로맨스에 너무 치중한 것이 아닌가'부터 '영화치고는 너무 많은 에피소드를 구겨넣어 산만하다'는 평가까지. [올미다]가 긍정적인 면만을 가지고 있는 영화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 우리네 같이 '현실이 쉽지 않은' 언니 이하 청춘들에게 '미자'는 그저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하나 바램이 있다면 이런 귀여운 '미자'가 마치 누구처럼 입소문을 타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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