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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라고는 하지만

3월 13일 금요일 

정리 : 잇을 

 

 

 

내가 길을 헤매다가 늦게 들어왔다. 바람이 무척 불어서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문이 스르륵 열렸다. 공룡이 물을 가스렌지에 올려뒀다. 잠시 후 깅과 지각생이 떡볶이 재료들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만두를 반쪽씩 나눠 먹다가 네오가 두 번을 먹었다고 모두 질책한다. 사람이야? 그러고는 다들 반쪽씩 더 먹고.

이웃 해방라이더는 떡이 익는 사이 들어와 이윽고 같이 둘러 앉았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윗집’ 구성원들 사이에서, 또 ‘빈동네’ 안에서 어떻게 소통할까 하는 고민이 시작이었다.

 

 

 

 

지각생 : 일의 분배문제도 있다. 농사팀이 해온 농작물을 다른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먹을 것이냐 하는 부분만 생각하더라도 일의 분배문제를 슬기롭게 풀어가지 않으면 서로 감정이 쌓여가지 않을까 싶다.

 

네오 : 할 수 있는 한 긴밀한 소통의 방법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지각생 : 개개인의 속내나 느낌을 읽어내기가 힘들다.  

 

공룡 : ‘윗집’의 경우에도 구성원에게서 회의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그렇다면 ‘윗집’의 의미는 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모두가 시간을 내어 모이는 거잖아. 

 

나비 : 우리가 공동체로서 있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하면서 상을 만들어가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리 : 우선 ‘윗집’ 안에서도 의견을 모으고 상황을 고려할 수 있는 자리, 공간이 필요한 것 같다.

 

지각생 : 내가 ‘빈집’에 살게 된 건, 덕 좀 보자는 생각?(웃음)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또 공동체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빈집’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또 내가 배워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네오 : 빈집에 사는 것이 개인화되면 하숙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각생 트름)

 

모두 : 음. 아직까지 단합적이고 그런 건 없어도 살다보면?

 

공룡 : 나는 공동체에 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다. 자본에서 독립된, 그렇다고 폐쇄적인 것이 아닌 열려있는 공동체. 귀농도 생각했었는데 그것보다는 도시 안에서 현명하게 살 수 있는, 자립할 수 있는 것을 꿈꾼다. 그런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빈동네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화되면 참 재밌고 정치적인 색깔도 띨 수 있고, 뭔가 상황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빈집에서 가장 좋았던 건 불편하더라도 설거지 물을 모아서 변기에 버리는 것이었다. 이처럼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같이 만들어가고 싶다. 빈동네에 대한 구상들을 듣고 싶다. 

 

네오 : 나는 원래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 혼자만 살아왔기 때문에 몇 달이나 갈까 싶기도 했다. 근데 와서 살다보니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없고 잠자리도 견딜만했다. 전에는 많이 게을렀는데 같이 사니까 내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게으르지는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웃음) 이제 목적성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하게 된다. 뭔가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빈동네라는 것이 더 위험한 동네였으면 하는 생각이 있다. 이 사람들이 사회를 바꾸고 싶어하는 생각을 공유한다면 그 공동체도 사회를 바꾸는 틀이 되어야 하지 않나. 그렇게 되면 사회에서 허락하지 않는 위험한 공동체가 된다. 

 

나비 : 위험해질 수 있는 단초들은 많이 가지고 있다.(웃음) 

  

네오 : 지금은 덜 위험하지 않나 싶다. ㅅ공동체는 초기에는 투쟁공동체였다. 싸우면서 만들어진 것인데 이 사람들이 어느 순간 좋은 마을 만들기로 넘어가버렸다. 지금은 보통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대안학교와 문화 시설을 만들어서 다른 이들이 쉽게 들어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중산층 가족공동체들의. 

 

모리 : 일단 고엽제 전우회를 먼저. 촛불 플랑을 막 찢어놨더라.

 

지각생 : 음. 우리는 장기 투숙객들만의 뭔가가 아니라 오픈된 공간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해방라이더 : 이미 위험하다.(폭소) 옥상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는 게.(폭소)

  

지각생 : 위험성을 달리 생각한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 같다. 어디론가 떠나서 정착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집을 오픈하면 바로 ‘빈집’이 되는 식이다. 그런 게 쌓이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낙관적인 생각이지만 십 년 뒤에는 이 일대가 모두 ‘빈집’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주 어려운 결단을 내리지 않아도 이것이 가능한 것이 증명된다면 구조가 정착이 되지 않을까?

  

네오 : ㅅ공동체를 많이 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기들은 좋다고 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자기들만 좋은 것일 수 있다. 자기들이 동네 모든 것을 관여하다보니 더 이전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이 이들과 단절되거나, 밉보이지 않을까 염려해 발언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그런 고민도 해야 하는 것 같다. 아니면 처음부터 목적을 공유하거나.

 

나비 : 근데 지금은 처음에 목적을 공유하는 게 아니다. 확실히 하는 것이 좋은 것 같기도 하다.

 

공룡 : 같이 사는 것이니까 생활 속에서 하나씩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

 

지각생 : 나는 게스트하우스로서는 목적에 동의하는 사람들만 오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 와서 보고 좋아서고 또 오는 그런 게 되었으면 한다. 와서 보고 포스에 짓눌리는 것이 아니라. 라면을 먹느냐 하는 것도 내 스스로 갈등이 생긴다. 혼자서만 하기 힘든 점이 있고 누군가가 신경 쓰이기도 하고.

 

공룡 : 라면을 먹더라도 그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것이 행복하지 않을까? 친구가 똥물에 빠지면 같이 빠져서 놀다가 ‘친구 이제 나갈까?’ 라고 묻는 것이 좋은 친구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네오 : 그래서 공룡이 라면을.(친구가 라면을 먹으면 같이 먹으면서 그만 먹자고 한다는 우정의 우화.)

 

지각생 :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라면도 그렇게 될 것이고. 우리가 공동체라고 하지만 이상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보니 서로에 대해서 많은 기대, 이런 것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짐작으로 소통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긋나는 점이 생기는 것 같다.

 

모리 : 그런 이야기를 소통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눈치 보지 않고.

 

네오 : ‘빈집에서 뭘 바라나’에 대해서 축적이 되었으면 좋겠다. 방향과 목적의식적인 것까지. 축적이 되어서 더 깊은 논의가 되면 좋겠다.

 

지각생 : 나도 그러면 좋겠는데 안 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해소되지 않는 지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모두 다 한 번 후련하게 이야기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네오 : 같이 살지만 와 있는 이유가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싼 하숙집으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반자본의 기지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것들을 다 포괄하는 것이 ‘빈집’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여기서 혁명의 꿈을 꾸고 누군가는 생활의 꿈을 꾸는 것이다. 모두가 같은 꿈을 꿀 수는 없지 않은가? 최소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한다면 회의에 못 오는 것은 문제가 안 되지 않을까? 

 

공룡 :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청소는 하고 싶은 사람이 할 수 있는데, 회의는 것은 시간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고 중요하다.

 

나비 : 모두가 물리적으로 만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소통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모리 : 공룡과 비슷한 생각이다. 모두가 먼저 회의 시간에 합의를 했다면 그런 것은 지켜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네오 : 난 처음에 활동가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가볍게 생각하고 들어왔다. 어떤 곳이다, 어떤 의무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렇게 들어왔는데 왜 그런 의무를 안 하냐고 하는 것은 힘들 것 같다.

 

공룡 :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 섭섭함을 어떻게 풀어나갈까 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같다. 잡기장이나 게시판이나.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는 방법. 어떻게 살 것인지.

 

모리 : 블로그를 집별로 카테고리를 만들어도 좋겠다. 구성원끼리 보면 좋겠다 싶은 글은 비공개로 쓸 수 있으니까. 그것은 로그인하는 성의와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볼 수 있지 않나. 뭔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을 만들면 좋겠다. 왜 들어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말할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바로 다음 날이, 아니 그 날이 ‘윗집’에서 <정치의 전복> 세미나가 열리기로 한 날이었다. 내일 어떡하지?

차 시간이 아슬아슬하여 모리와 깅이 가야 했다. 글은 내가 정리하기로 하고 모두들 박수를 쳤다.

 

 

지각생 : 온라인 소통공간이 있어도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은 필요한 것 같다.

 

나비 : 블질 수다를 떨고 싶다.

 

공룡 : 나도. 

 

잇을 : 마음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걸 봤다며 기사 따위를 올릴 수도 있고. 서로의 상태를 알고 필요한 이야기도 하고 정보도 나누고.

 

 

 

이때 이완이 딸기와 키위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모두가 환호하는 가운데 키위를 깎는 이완. 깅과 모리는 이야기를 덜 하고 집에 갈 뻔했다며 자리에 앉았다. 냠냠. 딸기가 혹시 물러지면 잼을 만들어야지.

날씨가 왜 이리 춥냐며 떠는데 네오가 지구온난화 이야기를 꺼냈다. ‘소의 한이 오존층을 뚫는다’고 말하자 나비와 공룡이 매우 호응해준다. 지구온난화는 가축이 죽는 것과 깊은 인과관계가 있는 것 같다. 

샤인 도착.

 

 

 

잇을 : 사실 ‘빈집’ 아니면 갈 데가 없다.

 

공룡 : 몇십 년 후엔 독거노인. 네오도 공감하지?

 

네오 : 독거노인이라니.(충격)

 

잇을 : 어울린다.(폭소)

 

지각생 : 반이다 갔나. 반이다가 얼마나 좋은 사람들인지. 참.

 

깅 : 잇을 방금 그 말 복덕방에 올려줘요.

 

 

 

 

바야흐로 이때는 지각생의 생일 하루 전이었다. 

아뿔싸. 한 달 전부터 열심히 딴 약속을 잡았건만 모여들어 잔치를 열고 말 줄이야. ‘빈동네’ 다 모여 꽹과리 치고 기타 튕기며 우리는 내일도 즐거웠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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