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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현상 평전 2010/12/14

이현상 평전

페이지를 넘기는 족족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수천명까지. 그 많은 사람들의 목숨값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그 때에는 너무 하찮게 죽었다. 다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방향이 비틀려져 희생당한 사람들과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를 희생시킨 사람들 중 어느편이 더 애닳거나 귀하다 할 수 있을까? 비극과 비참의 차이이겠지. 어느 편이든 감당할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읽는 동안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그이들이 겪었던 역사가 비극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과정들을 겪어야만 세상이 변하는 것인지 자연 물음을 던지게 된다.(비극적 사고는 희생을 딛고 다른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고,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와 정신분석학 등이 공유한다고 누가 말했다. 윤소영이 이야기하는 '혁명적 비극성'도.) 한편 세상을 바꾸기 위해 그 과정을 겪는 게 아니라, 그 과정들은 이미 삶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비극은 필연적이다. 지금 이순간 누구나가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생사가 오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 부딪낀 이들을 떠나보내는 건 어떤 심정일까. 그 추운 겨울, 불하나 편히 피우지 못하면서 산을 누볐어야할 그 이들. 상상만으로도, 포기하고 싶어진다. 그저 숙연하고, 겸손해질 뿐.

 

남한의 국립공원 제1호가 되어 사시사철 등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지리산 구석구석에는 지금도 이현상과 동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토벌대에 쫓기느라 제대로 파묻지도 못한 채, 꽁꽁 언 땅을 숟가락으로 긁어 눕히고 눈과 낙엽으로 덮어놓았던 시신들은 오십 년 세월 동안 부패하여 흙이 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나무 부스러기처럼 산화된 뼛조각들이 발견된다. 그들이 사용하던 식기도구며 등사기의 잔해가 발견되기도 하고 삭아버린 종잇장에 그들의 혼이 담긴 구호들이 희미하게 남아있기도 한다. 조국통일, 민족해방, 노동계급의 영용한 전사들이라는 그 빛바랜 단어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영하 이십 도가 넘는 혹한의 산중에서 보온장비라곤 없이 맨몸으로 총을 끌어안고 졸음을 쫓던 이들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이현상과 동료들의 전쟁은 이제 끝났는가? 아니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가?

 

프롤로그에 적힌 저자 안재성의 말이다. 역사는 기억이며, 기록이라고, 발문에서 김성동씨가 이야기 한다. 기억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없다면, 저 숱한 흔적들은 의미없는 잡동사니가 되겠지. 참 많은 사람이 있었고, 그 사람들이 남긴 제각각의 이야기들이 있을터인데, 알지 못하니 없는 줄 알고 살았다. 50년 너머로 거스르지 않더라도, 10년전 일들은 얼마나 남아있을까.

 

어렸을 적에는 빨치산들이 남한을 전복시키려는 무시무시한 나쁜 사람들이었다고 알고 지냈다. 그런 생각은 벗었더라도, 최근 까지, 전쟁은 자신의 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양측의 소모적인 희생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평화:비평화의 구도로 생각하며, 평화가 아닌 것은 비인간적인 것으로 등치시켰던 것인데, 최근 읽은 글과 책들은 그렇게 받아들여온 내 생각이 결국 우편향적인 교육, 언론 등을 통해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고 깨워준다.(난 주로 태백산맥, 아리랑을 통해 그런 생각을 만들었던 듯 하다) 설사 그 생각이 평화를 지키자는 내용이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중립적인 평화를 가정하며 계급투쟁을 삭제시킨다. 모든 평화주의가 진정한 평화를 향해 나아가지는 않는다.

 

엊그제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봤다. 이번에, 두번째인지 세번째인지 보는 건데, 가슴이 먹먹해지는 건 여전하다. 보고나서 이현상이 떠올랐다. 영화는 "적을 알기는 쉬워도, 왜 싸우는지를 알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소위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 중 태반은 그러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도 언제나 그 경계에 서있다. 역사는 단선적일 수 있지만, 결코 눈에 보이는 대로 단선적이지는 않다. 잘 서술할 수는 없지만, '우연의 필연'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것이리라 짐작한다. 필연의 왕국에서 조직하는 운동은 얼마나 자신감 넘치고, 혁명적인지.

 

평전에 따르면 최소한 이현상은 거기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 극한 상황에서 왜 싸우는지를 견지하는 건, 수도하는 성인이나 다름없다. 이길 수 없는 걸 알면서 싸우는 것 또한.(미래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없는 현재의 운동) 게바라는 "지구상에 단 한 사람의 무고한 죽음에 대해서도 고통을 느낄 줄 아는 감성을 계발하고, 자유의 깃발 아래 떨쳐나설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로자는 인간답다는 것은, "자신의 전 삶을 운명의 거대한 저울에 기꺼이 던져버리는 것", 그러나 동시에 "화창한 날을 맞을 때마다, 아름다운 구름을 볼 때마다 그것들을 즐기는 것"이라고 얘기했다.

혁명의 비극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무뎌지게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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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에서 조정래 씨는 경성콤그룹을 두고, 기층이 다 무너진 상황에서 무엇하러 당재건을 하다 또 잡혀가느냐고 말한다. 모든 시기에 총파업과 혁명을 부르짖는 소아병이나, 모든 시기에 때가 아니니 참아야한다고 부르짖는 이나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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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물려 '잊을 수 없는 혁명가들에 대한 기록' 읽었는데, 찬찬히 좀 더 덧붙여봐야겠다.

 

 

 

이현상 평전
이현상 평전
안재성
실천문학사, 2007
2010/12/14 14:23 2010/12/14 1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