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생각없이 보러갔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것에 비해 좋았다.
내 이야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쳐졌다.
관계의 많은 부분은, 나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그러진다.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하지만, 정작 자신은 공허하고 외로워지는 것.
내 관계는 그러기 십상이었다. 특히나, 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을 때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아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쉽게 던질 수 있고. 그만큼 더 공허해진다.
용서받지 못할 일들에 괴로워하는 것도.
결국 용서하는 건 나라는 것을, 나도 모르지 않으나.
용서하고 싶지 않은 것을. 용서하는 것이 합리화가 되는 것 같아 두려운 것을. 용서받을 만큼 충분히 괴로워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해야하나.
현상유지를 위해 나를 무너뜨려왔다는 말이 아프게 남는다.
무너져야 다시 세울 수 있는 것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붙잡기만 했던 수많은 관계들.
이제와 반성과 후회가 남지만, 앞으로 되풀이하지 않으리라는 자신은 없다.
네 발로 중심을 잡고 서는 것.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생각하는 것.
명상을 하거나 프로그램을 참여하면, 어디에서나 한번도 빠짐없이 들었던 말이다.
나 같은 인간은, 머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만큼 힘든 게 없는데.
사람마다 각각 타고난 업이 다르니 어쩔 수 없다고, 접어두고 있다. ㅎ
아무튼, 내가 나를 아끼게 된다면, 삶에 균형이 좀 생긴다면, 나도 그것을 깨트리는데 겁이 날 것 같다.
이제껏, 만남들은, 언제나 비상 속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니, 쉽게 다가서곤 했지만.
상 속에서의 비상이면 어떨까.
한편 이 영화같은 류의 얘기들이.
자신의 욕망을 긍정하고, 자신을 찾으라는 담론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다.
외려, 찾을 나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텐데.
해탈은,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데 있는 것일텐데.
극중에서 피폐한 줄리아 로버츠와 빛나는 줄리아 로버츠는 참 멀리 있었는데.
분장 덕인지, 연기 덕인지. 그저 신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