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기전에 소설을 읽었다.

 

음.. 재미있게 읽었다.

차근차근 접근해가는 게, 그리 비현실적이지 않았다.

 

//

 

소설 전반에 대해서보다,

'신용'에 대해 좀 이런저런 생각들이 있었는데,

 

데이비드 하비는, 자본주의는 애초에 생산과 소비에 시차가 있기 때문에 미래의 팽창을 담보로 부채는 필연적이라고 설명한다.(자본주의를 끝장내기 위한 투표, http://blog.jinbo.net/neoscrum/524)

저 역자 블로그 말미에 달려있듯이, 부채의 책임을 누구에게 전가하느냐는, 계급 역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를 실물영역에서 이윤율 저하 때문에, 금융부문으로 자본이 집중되는 것으로 설명하곤 한다. 미래를 담보로 부채는 계속 늘어가는데, 실물영역이 뒷받침되지 못하니, 그만큼 거품은 가속화되는 것. 그 과정에서 '강탈에 의한 축적'. 일본은 버블이 꺼지면서, 한국보다 10년일찍 그 과정을 겪은거고, 소설은 그 시기가 배경이다. 팽창한 부채를, 개개인-그러니까 노동자계급에게 책임을 넘기는 게, 또 하나의 핵심. 

 

그러니까, 화차에서 다른 이의 신분을 뺏었던 그 사람의 동기를, 행복해지고 싶었다,라는 일반적인 욕망, 혹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외로운 투쟁으로 접근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이지 않나. 더욱 역사적, 경제적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드는건데,

그냥 소실이니까, 싶기도 하고..;;;;

 

 

 

화차
화차
미야베 미유키
시아출판사,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