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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22/05/23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와의 전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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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이 전쟁에 돌입했다. 이것은 193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대학살 이후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초, 구(舊)유고슬라비아를 전쟁이 휩쓸어 14만 명이 사망했고,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카(Srebrenica)에서는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민간인 대량학살을 저질러 청소년을 포함해 8천 명의 인명이 냉혹하게 살해되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이제 막 발발한 전쟁은 아직은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결국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서는 구(舊)유고슬라비아 전쟁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크다. 오늘날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은 민병대나 작은 국가들이 아니다. 현재의 전쟁은 각각 1억 5천만 명과 4천 5백만 명의 인구를 갖는 가장 큰 유럽국가 사이에서 일어났고, 러시아에서 70만, 우크라이나에서 25만의 거대한 병력이 동원되어 있다.

 

더욱이 강대국들이 이미 구(舊)유고슬라비아 대결에 가담했다면, 그것은 간접적인 방식이거나 유엔 휘하의 “개입군”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러시아와 맞서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라 나토에 속한 모든 서방국가다. 서방국가들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보내기 시작함과 동시에 러시아에 대한 중대한 경제 제제를 가했다.

 

그래서 이제 막 시작된 전쟁은 무엇보다도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에 매우 중요한 극적인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이미 수천 명의 양측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전쟁은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거리로 내몰았다. 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을 야기해 추위와 굶주림을 증가시킬 것이다.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착취당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생활 조건의 붕괴를 겪고 있다. 늘 그랬듯이 세계 주인들의 전쟁 행동에 가장 큰 대가를 치르는 것은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계급인 노동계급이다.

 

이 전쟁, 이 비극은 지난 2년간의 전 세계적 상황, 즉 대유행, 경제 위기의 심화, 환경 재앙의 증가 등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세계가 야만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명백한 징후이다.

 

전쟁 선전의 거짓말

 

모든 전쟁에는 대대적인 거짓 캠페인이 수반된다. 국민, 특히 착취당하는 계급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끔찍한 희생, 즉 전선에 보내진 군인에게는 생명의 희생, 그들의 부모, 파트너, 자녀들의 애도, 민간인들의 공포, 궁핍과 착취의 심화를 받아들이도록 그들의 머리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채울 필요가 있다.

 

푸틴의 거짓말은 조잡하고 정치경찰과 첩보조직인 KGB 장교로 경력을 시작한 소련 정권의 거짓말을 반영한다. 그는 “대량학살”의 희생자인 돈바스 주민들을 돕기 위해 “특수 군사작전”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제를 구실로 언론에 “전쟁”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한다. 그에 따르면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는 “나치 정권”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고 싶어 한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러시아어권 주민들이 종종 나치 정권에 향수를 느끼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민병대에 의해 박해를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대량학살은 없었다.

 

서방 정부와 언론의 거짓말은 일반적으로 더 교묘하다.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 미국과 동맹국들, 이른바 "민주주의적"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많은 동맹국은 2003년 이라크 개입을 사담 후세인의 손에 든 “대량살상무기”라는 완전히 꾸며낸 위협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팔았다. 그 개입으로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2백만 명의 이라크인 난민이 발생했으며 수만 명의 연합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늘날, "민주주의적" 지도자들과 서구 언론은 ‘악한 괴물’ 푸틴과 ‘착한 소년’ 젤렌스키 사이의 싸움이라는 우화를 우리에게 전한다. 푸틴이 냉소적인 범죄자라는 것을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것에 어울리는 외모까지 갖고 있다. 젤렌스키는 푸틴과 같은 전과가 없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인기 있는 희극배우(결과적으로 조세회피처에 큰 재산을 소유한)였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코미디 재능은 이제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피난을 떠나는 것을 금지하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조국’을 위해, 즉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와 과두 체제를 위해 죽을 것을 요구하는 군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활기차게 몰입해 있다. 왜냐하면, 집권당의 색깔이 무엇이든, 연설의 어조가 무엇이든, 모든 국가는 피착취계급과 다른 민족 부르주아지와의 경쟁에서 무엇보다 착취계급, 민족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하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 선전에서, 각 국가는 ‘침략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해야 하는 ‘침략의 피해자’로 자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사실상 강도들이기 때문에 결산에서 어떤 강도가 먼저 발포했는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늘은 푸틴과 러시아가 먼저 발포했지만, 과거에는 나토가 미국의 지도 아래 그 자체의 진영으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전에 러시아가 지배했던 여러 나라를 통합해왔다.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강도 푸틴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함으로써 그의 나라의 과거 권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20세기 초반부터 영구 전쟁은 그것이 초래하는 모든 끔찍한 고통과 함께 자본주의 체제와 분리될 수 없게 되었다. 자본주의 체제는 기업 간의 경쟁과 국가 간의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상업 전쟁은 무장 전쟁으로 이어지고, 경제적 모순과 위기의 악화는 훨씬 더 많은 전쟁과 같은 충돌을 일으킨다. 이윤과 생산자에 대한 가혹한 착취에 기반을 둔 이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땀으로는 물론 피로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2015년 이후 세계 군사 지출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이 전쟁은 이 과정을 노골적으로 가속했다. 이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상징으로 독일은 2차 대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무기 구매와 조달에 자금을 지원한다. 그리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의 결단과 파괴력을 증명하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했다.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끝낼 수 있을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지라도 현재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그리고 러시아 자체에서도 러시아의 개입에 반대하는 많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행위를 끝내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시위가 아니다. 역사는 자본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피착취계급, 즉 부르주아계급의 직접적인 적(敵)인 프롤레타리아트임을 보여주었다. 1917년 10월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했을 때, 그리고 1918년 11월 독일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정부가 정전협정에 서명하도록 강제했을 때가 이런 경우였다. 만약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맞서 수십만 명의 군인을 보내 죽게 만들 수 있다면, 만약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오늘날 ‘조국의 수호’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세계의 이 지역에서 노동계급이 특히 약하기 때문이다. 1989년 ‘사회주의’ 또는 ‘노동계급’이라 주장했던 체제의 붕괴는 세계 노동계급에 잔인한 타격을 주었다. 이 타격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같은 나라에서 1968년부터 1970년대까지 열심히 싸웠던 노동자들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1980년 8월에 대대적으로 그리고 대단한 결의로 투쟁해서 정부가 억압을 포기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제했던 폴란드의 노동자들처럼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우리가 전쟁의 희생자, 민간인 그리고 총알받이로 변한 군복 입은 프롤레타리아들인 양측의 군인들에게 진정한 연대를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은 "평화를 위한" 시위가 아니다, 다른 국가에 대항하여 한 국가를 지지하기로 선택함으로써가 아니다. 유일한 연대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를 규탄하는 것, 이런저런 국기 아래 모일 것을 요구하는 모든 정당, 평화와 국민 사이의 ‘좋은 관계’라는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세력을 규탄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연대는 세계 도처에서 대대적이고 의식적인 노동자 투쟁을 전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투쟁은 점점 더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야만과 전쟁에 책임이 있는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의식해야만 한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1848년 코뮤니스트 선언에 나타났던 그 슬로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현안이 되었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전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투쟁의 발전을 위하여!

 

2022년 2월 28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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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3호]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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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자본주의는 치명적인 위기에 처해 있다. 감염병 대유행, 장기적인 경제 위기, 제국주의 대립과 전쟁 위기, 기후 위기,.. 세계 부르주아지의 온갖 처방에도 불구하고 위기는 더욱 악화하고 있고, 그 부담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에 무겁게 떨어졌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자본주의 주요모순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윤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를 바탕으로 한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자본주의 쇠퇴기 장기적 위기 상황에서의 대유행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전쟁과 야만인 자본주의의 지속인가 아니면 계급전쟁을 통한 코뮤니스트혁명인가의 선택을 다시 한번 제기하고 있다. 이제 코뮤니즘은 유령이 아니라 현실에서 반드시 필요한 노동계급 투쟁의 무기이자, 해방된 인류의 미래로 제시되고 있다.

 

1917~1921년 세계 노동계급의 혁명적 투쟁이 패배한 이후 노동계급은 오랜 기간 암흑의 침체와 반(反)혁명 시대를 거쳐 1968년 역사의 무대에 다시 등장하였다. 노동계급은 1970년대 초 제국주의적 긴장과 격렬함이 세계전쟁으로 확산하는 것을 멈추게 할 만큼 세계 곳곳을 휩쓸며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부활하였다. 하지만 수십 년간 볼 수 없었던 전투적 투쟁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자기해방의 전망인 코뮤니스트혁명으로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자본주의는 진보적인 생산양식이기를 멈추고, 인류에게 두 차례에 걸친 위기와 세계전쟁 그리고 파괴와 재건, 다시 새로운 위기를 반복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1차 대전까지 계속 확장되었고, 그 이후 파괴의 시기(1914-1945)를 지나 더 높은 생산 수준으로의 재건의 시기가 있었으나, 다시 새로운 위기가 발생했고 세계적 축적조건을 재구축하려는 시기를 거쳐 왔다. 세계 자본주의는 영국이 주도하던 축적국면을 지나, 미국이 세계자본주의를 주도하면서 80년대 이후 쇠퇴의 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2007~2008년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자본의 최대위기는 단순한 ‘주기적’, ‘순환적’ 의미의 경기침체를 넘어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으로부터 생겨난 피할 수 없는 ‘위기와 파국’을 맞이했음을 보여주었고,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이 방아쇠를 당겨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한편으로 부르주아지의 무능과 분열을 보여주는 현재의 위기는, 2007년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작과 더불어 우연히 출현한 것이 아니다. 이미 쇠퇴에 빠진 자본주의 경기침체가 40여 년 전부터 1974, 1981, 1991, 2001년에 차례로 있었다. 수십 년간 실업은 사회의 지속적인 현상의 하나가 되었고, 그동안 노동계급은 생활 수준과 생존 자체에 대한 공격이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경험해왔다.

 

만일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수많은 사람이 견딜 수 없는 빈곤에 빠지고 기아에 직면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충분히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판매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품은 넘쳐나지만, 세계인구의 절대다수는 생산된 상품을 살 구매력이 없다. 그동안 자본은 이러한 위기 상황을 인위적인 시장의 창출을 통해 잠시 비켜 가곤 했으나, 부채에 의지한 위기의 탈출은 신용의 대대적인 상환의 시기가 오자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장기적으로 지속해온 경제 위기는 부르주아지가 대유행에 대해서도 부적절하고 무질서하게 대응하도록 내몰았고, 봉쇄와 생산 중단은 경제 위기를 더욱 악화시켰다. 대유행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과잉 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고질적인 위기로 인한 지속적이고 가속적인 환경 파괴에 있다. 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사회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시장과 이윤을 위해 생산하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위기는 이러한 자본주의 법칙이 바로 체제의 재앙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대유행에 따른 보건 위기에 대한 지배계급의 부적절한 대응은 각 나라 내부에서 부르주아지와 국가가 사회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을 점점 더 상실해 가는 경향을 드러냈다. 더욱이 자본은 이러한 위기 대응 실패를 오히려 노동계급에 전가하며 더욱 깊은 공황의 나락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치명적인 불치의 병에 걸려 진정한 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의 노동계급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아래, 감염병 대유행 재앙 속에서 심각한 경제적 고통에 짓눌리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아직 이에 맞서 적극적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는 계급 역관계의 커다란 불균형 상태에 머물러 있다. 생산과 분배에 대한 자본의 실질적 지배는 전체 사회정치적 관계에 대한 총체적 지배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불행하게도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부르주아지뿐 아니라 그들과 자본주의 국가를 함께 구성하고 있는 노동/진보/사민주의 정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통해서도 노동계급에 이미 깊숙이 스며든 상태이다. 이들은 그동안 자본주의에 비판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부르주아지가 노동자 투쟁을 억누르는데 실질적 도움을 주었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를 유지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제 자본은 자신이 만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는 것에만 머물지 않고, 방역을 빌미로 한 봉쇄와 탄압으로 저항하는 노동계급의 투쟁을 싹부터 잘라내려 하고 있다. 하지만 쇠퇴기에 접어든 자본주의 절체절명의 위기는 노동계급에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를 깨고,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할 가능성을 다시 한번 열어주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자본주의 세계는 온갖 종류의 사회적 반란과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있고, 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위기는 계급 대결의 새롭고 전례 없는 가능성과 경로를 열어주었다. ‘코뮤니스트혁명이냐 아니면 야만이냐’의 의제가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에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지금보다 훨씬 자주,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다.

 

이것은 대대적인 계급투쟁의 파고가 갑작스럽게 일어날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이며, 혁명당은 이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다시 계급투쟁의 주도권을 잡고 부르주아지에 맞서 전면전을 시작할 때, 혁명당은 모든 자본주의 수호 세력에 맞서 정치적, 조직적 전투를 벌일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모순은 코뮤니스트혁명 이전에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자본주의 모순이 사라지지 않은 한 억압받는 계급의 저항과 투쟁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다만 자본에 맞선 모든 투쟁은 오직 코뮤니스트 강령이 계급 속으로 깊이 뿌리내릴 때만 비로소 혁명을 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자본주의 아래서 노동자들이 일상적 투쟁의 과정에서 얻게 된 계급의식은 혁명적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지만, 투쟁의 시기가 지나면 다시 후퇴할 수도 있기에, 노동계급에는 계급의 모든 역사·이론적인 성과와 경험을 온전히 담아내는 강령을 가진 혁명당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계급에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교훈을 얻게 하고, 미래의 혁명적 투쟁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혁명당의 과업이다. 혁명가/코뮤니스트는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고 일반화하는 일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또한, 혁명가들의 개입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정치적 전망을 설정하고 혁명적 무장을 준비하는 데 필수적이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 투쟁으로 나타나지만, 투쟁 물결이 지구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 계급영역 내의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 공세가 인종주의, 민족주의 외피를 쓰고 노동계급의 심리와 의식을 왜곡시켜 부르주아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 여기에 코뮤니스트와 혁명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저항, 혁명운동의 방향을 제시하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와 함께 전쟁, 억압, 착취의 고리를 끊어내고, 자유로운 개인이 연합하는 코뮤니스트 세상을 세계혁명으로 만드는 길이 코로나19 대유행이후 시대의 역사적 임무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이 모든 투쟁의 순간에 구체적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계급투쟁의 장이 열리고 있는 것은, 코뮤니스트혁명의 실재적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혁명가들은 전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과 통일을 위해 반드시 혁명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것은 세계혁명을 위해 세계적 수준에서 개입하여 전 세계의 혁명진영을 재규합하는 혁명적 인터내셔널 건설의 과정과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우리 코뮤니스트는 새로운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 건설을 위해 투쟁하며,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혁명당을 건설하고자 한다. 우리는 모든 혁명적 사회주의자/코뮤니스트들과 전투적 노동자 동지들에게 코뮤니스트 강령과 혁명당 건설의 기초가 되는 「코뮤니스트 정치원칙」을 제안하며 코뮤니스트혁명의 길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한다.

 

2021년 5월

국제코뮤니스트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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