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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선거가 아닌 계급투쟁으로!
 
 
자본주의 대선에서 노동계급은
선거에 이용당하지 말고, 생존권을 위한 파업을 준비하자.
투표소가 아닌 투쟁의 현장에서 연대하고 행동하자!
생존권 투쟁 전면화!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투쟁!
 


 

-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노래  : 우창수,  영상 : RA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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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계급이 주도하는 6월 항쟁, 제2의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발전시키자!!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6월 항쟁, 제2의 7,8,9 노동자 대투쟁으로 발전시키자!!
-부르주아 민주항쟁을 뛰어넘는 노동계급의 대투쟁으로 여름을 뜨겁게 달구자-

 

 

 

<17년 전 글을 다시 게재하며>

2008년 가두투쟁(광우병 촛불) 이후 17년이 지난 오늘, 노동자 투쟁은 여전히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과 선거 전술에 갇혀 있지만, 2008년이나 지금이나 노동자 투쟁과 연대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다양성은 투쟁을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행동을 풍부하게 해주고,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확산하는데 활력소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미조직 노동자,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학생을 포함한 예비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의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지금 가열되고 있는 대중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대중 집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이 건강이나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총체적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서로 토론하는 적극적인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2025년 겨울 항쟁을 2017년 촛불 투쟁으로 되돌리는 부르주아적 한계를 대중 앞에 철저하게 비판하고,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가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길이, 노동해방의 새 세상을 여는 노동계급의 임무임을 전 세계 노동계급에게 당당하게 선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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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19,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6월의 가두현장에서
 
2008년 5월31일 밤 11시부터 5월1일 새벽6시까지 나는 청와대 입구 큰길가에서 수천 명의 시위대와 함께 있었다. 수많은 가두 현장에 참여했지만 그날의 경험은 지난 50년의 우리 역사를 뒤돌아보는 계기가 되었고 앞으로 한국의 노동계급이 나아가야 할 거대한 투쟁의 방향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었다. 1960년 4월19일 18세의 고등학생으로 경무대 앞까지 진출하여 이승만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 역사의 현장에서, 그리고 1987년 강단 맑스주의자로서 6월 항쟁의 가두투쟁을 거쳐, 나는 48년 만에 다시 사회주의 활동가로 이명박 퇴진을 외치는 대중과 함께 밤을 지새웠다.
 
5월31일의 촛불집회는 그 이전의 집회와 몇 가지 점에서 성격을 달리하고 있었다. 수천 명의 대학생들의 조직적 참여,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조직적 참여, 이랜드 비정규직 노조를 포함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참여가 있었고, 행진하는 시위대의 구호는 “고시철회”, “협상무효”에서 “이명박은 물러가라”로 통일되었다. 또한 행진의 목표인 청와대를 향한 끈질긴 돌파로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청와대 근처가 8시간 동안 ‘해방구’가 되었다.
 
이명박 정권이 본격적인 자본가 정권으로 등장한지 100일 만에, “이명박 퇴진”을 가두에서 공공연하게 외쳐대는 2008년 시위대의 모습은 놀랍다. 그리고 시위에 참여하는 대중의 다양성과 창발성은 더욱 놀랍다. 하지만 50년 동안 변하지 않는 가두투쟁의 한계와 부르주아 권력에 대한 정치투쟁의 한계를 한꺼번에 깨닫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2. 가두투쟁과 대중의 계급적 성격
 
4.19,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6월에서 대중이 외친 구호는 똑같다. “독재타도”와 “정권퇴진”이다.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이승만 정권 타도, 체육관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자는 “호헌철폐” 요구, 그리고 국민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고 쇠고기 협상을 한 이명박 퇴진 요구는 모두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식과 절차의 적법성을 따지는 초보적 요구이다. 물론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촛불 대중의 요구는 단수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차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건강권을 넘어선 미국의 축산자본의 이해, 육류소비와 관련된 계급불평등이 복합적으로 연동되어있다.
 
그러나 여전히 주권의 문제로 보는 민족주의적 관점, 건강의 문제로만 보는 인권주의적 관점, 소통의 문제로 보는 민주주의적 관점에 빠져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에 머물러 있는 대중에게 만일 이명박 정권이 재협상을 포함한 획기적 민생대책을 내놓는다면, 촛불의 열기는 가라앉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다양한 계층의 대중의 가두 투쟁이 가지는 근본적 한계이다.
 
또 하나, 가두투쟁을 중심으로 한 부르주아 민주주의 투쟁의 한계는 그것이 철저하게 생산현장의 계급투쟁에 기반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생을 중심으로 한 4.19혁명은 부르주아정치세력에게 정권을 물려주었으나 노동계급이 주도하는 혁명투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5.16쿠데타 세력에게 무력으로 권력을 강탈당하게 되었다. 87년 6월 항쟁도 직선제라는 부르주아 선거의 환상에 민중의 폭발적 투쟁요구를 빠뜨림으로서 6.29 기만선언에 굴복하게 만든 뼈아픈 역사가 되었다.
 
5월에 시작하여 6월을 달구고 있는 촛불시위 역시 현장의 노동계급의 투쟁에 기반 하지 않고 있다. 수십만의 대중이 다양한 표현의 방식으로 그들의 요구를 펼친다하더라도, 그것이 “헌법 제1조”를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80년대 운동가요를 함께 부르는 방식에 갇혀 있는 한 가두의 축제나 부르주아정치로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역사를 20년 전, 아니 50년 전으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87년 6월 항쟁의 한계를 극복하고 7,8,9 노동자 대투쟁의 정신을 되살려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3. 한국자본주의 발전과 노동계급의 투쟁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으나, 5.16쿠데타로 박정희 군부파시즘 체제가 한국자본주의 발전을 개발독재로 이끌었다. 군부 파시즘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었고, 세계자본주의의 재편과정에서 제3세계의 자본축적 전략의 일환이었다. 60년대에는 노동집약적 수출 주도산업을 중심으로 자본축적이 진행되었다. 섬유와 전자기기가 대표적 보기였고 공해산업인 비료, 화학, 정유 산업은 다른 축을 형성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박정희 체제의 경제 성장 전략은 노동계급을 유혈적으로 착취, 억압하는 반노동계급적 전략이었다.
 
그리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철저한 탄압 속에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하루에 12시간에서 16시간에 이르는 장시간 노동과 비인간적인 노동조건 속에서 신음했다. 그러나 1960년에 200만이던 노동자는 1971년에 400만으로 두 배가 되었다. 노동탄압 속에서도 청계피복, 원풍모방, 동일 방직 등에 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이는 1970년대 여성중심의 민주노동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국가자본주의 국가 발전 과정의 일반적 경향처럼, 한국자본주의는 1970년대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조선, 종합제철, 섬유 화학 산업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72년에 43.9%, 1978년 55.2%로 늘었다. 중화학공업에서 일하는 남성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착취와 억압 속에서도 그에 맞서는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였다. 1971년 9월 한진상사 노동자 투쟁, 400여명의 KAL 방화사건, 1974년 9월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자 2,500명의 투쟁, 1980년 4월 사북탄광노동자 투쟁, 동국제강, 인천제철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85년 대우자동차 파업투쟁으로 이어져 87년 7,8,9 노동자대투쟁으로 이어진다.
 
노동쟁의 건수를 보면 1969년 130건에서 1971년 1656건으로 급증했고, 1974년에는 666건에 이른다. 1970년대의 노동계급의 투쟁은 유신체제 아래에서 계급투쟁적 성격을 갖지 못하고 임금인상이나 노동조건 개선에 머무는 개량주의적이고 조합주의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1970년대 중반 오일 쇼크 이후 세계공황의 조건 속에서 한국경제는 1978년부터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공장가동률이 떨어졌으며 물가가 폭등했다. 노동자들은 이에 맞서 근로조건 개선, 체불임금 지급, 민주노조 건설과 노조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벌였고, 1980년 광주항쟁 이후 노동쟁의 건수는 1979년의 열배에 이르는 2,168건이나 되었다.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도 1984년 대구 택시 노동자 투쟁, 대우어패럴 노조결성, 그리고 1985년 6월 구로동맹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최초의 지역 노동자 연대 파업의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였다.  

 

 
4. 87년 6월 항쟁의 한계와 7,8,9 노동자 대투쟁
 
역사적으로 노동계급이 중심이 된 계급투쟁 없이 시민과 다중의 항쟁이 혁명을 이루어낸 적이 없다. 1987년을 말할 때 우리는 군부파시즘의 억압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승리를 말한다. 수많은 열사의 죽음을 딛고 일어선 “군부독재 타도”의 구호는 직선제로의 직접선거를 통한 정치민주화를 의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군부파시즘이 기반하고 있는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의 전복 가능성을 내장하고 있었다.
 
개발독재의 국가자본주의 체제가 이미 강력하게 형성시켜 온 거대한 노동계급이 살인적 억압 착취의 사슬을 끊고 권력의 주체로 나설때 만이 온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절차도 쟁취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부르주아 선거라는 정치 개혁을 통한 가두투쟁이 먼저 진행되었고, 바로 그것이 6월 항쟁으로이어 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87년 6월 전국의 가두를 달군 집회와 시위는 그 폭발적 전투성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부르주아 선거판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인을 선택하는 길이 정치 민주화의 길이라는 환상에 휩싸이게 했다.
 
계급투쟁의 역사에서 노동계급의 경제투쟁이 선행했을 때, 뒤 이은 정치투쟁의 올바른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 6월 항쟁이 소부르주아가 주도하는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계급적 한계를 보인 것이 사실이고 노동계급 주도의 자본주의 체제 전복의 혁명적 길을 열지 못한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 동안 투쟁해왔던 노동계급에게 정치적 공간을 열어 주었고, 투쟁의 확신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7월부터 9월까지 전국적으로 파업의 물결이 넘쳐 하루 40건이 되는 파업이 일어나 전국적으로 3,327건을 기록하였다. 파업 참여 노동자는 122만 명에 이르렀는데, 노동자 10명 이상 중소사업체 333만 명의 37%, 노동자 1,000명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 가운데 75.5%가 파업에 참여했으며, 3개월 동안 파업 건수는 그 이전 10년 동안 일어난 전체 파업 건수의 2배를 넘었다. 파업이 일어난 사업장의 55%가 노동조합을 결성했으며, 1,162개의 새로운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대중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노동자대투쟁은 한국자본주의 발전의 필연적 결과였고, 그 주체는 그 이전시기 경공업 중심의 중소기업 여성노동자로부터 중화학공업 중심의 대기업 남성노동자라는 특성을 지녔으며, 그들의 요구는 인간적 대우, 임금인상, 민주노조 쟁취였다.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노동법 상의 절차를 무시하고 현장점거를 통한 파업농성을 한 뒤 협상을 요구하는 ‘불법파업’을 벌여 위력적인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또한 이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조합원 대중의 참여와 결정에 따르는 총회 민주주의를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 투쟁과 함께하고 방향을 제시할 혁명적 정치세력은 없었다. 뿐만 아니라 6월 항쟁의 성과를 부르주아 정치세력에게 빼앗김으로써 더 높은 단계로 계급투쟁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자본과 국가권력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5. 현 정세에서의 노동계급의 대투쟁 방향
 
앞에서 보았듯이 4.19, 6월 항쟁, 그리고 2008년 6월에 보이는 가두투쟁과 부르주아 민주쟁취의 요구는 비슷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항상 현장에서의 노동계급의 대대적 투쟁에 앞서 부르주아 정치투쟁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 정권의 교체를 통해 솟구치는 노동계급의 권력 쟁취를 지연시키고 더 높은 단계로 발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부르주아지에 종속시켰다. 4.19가 5.16 쿠데타에 의해 미완의 혁명으로 끝나고, 87년 6월 항쟁이 20년 넘게 부르주아 보수정치세력에게 노동자의 권력을 위임하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예기치 않은 대중의 가두투쟁을 만나고 있다.
 
이러한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2008년 전혀 다른 주객관적 정세 속에서 계급투쟁의 폭발적 가능성을 감지하고 있다.
 
첫째, 지금의 정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의 쟁취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던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의 40여년의 역사와 달리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파국적 위기에 직면한 대공황 직전의 시기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노동계급의 삶이 보다 가혹한 억압, 착취를 통해 비인간적인 야만으로 추락하는 정세이다. 한국 사회는 늦게나마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진전을 위한 투쟁의 성과를 어느 정도 보전한 채, 본격적으로 이명박이라는 자본가 정권을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한국사회는 자본과 노동사이의 계급투쟁을 희석시킨 민족주의 및 급진적 민주주의와 결별하면서, 노동계급의 생존과 승리를 위한 역사적 투쟁의 시기에 진입하였다. 유가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인상, 물가폭등, 달러화 약세, 부동산 거품 등은 세계자본주의 위기의 징표이며 공공부문 사유화, 구조조정, 계급의 양극화는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려는 자본의 마지막 몸부림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쇠고기를 둘러싼 정세는 단순한 의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총체적 위기가 모든 노동자의 삶의 영역에서 관철되는 복합적 정세이다.
 
둘째,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대중은 분명한 노동계급적 주체로 규정할 수는 없어도 단순히 부르주아 민주절차의 복원만을 요구하는 소부르주아로 규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중고생이나 대학생은 한국자본주의가 형성시킨 예비노동자이며 이명박에 불만을 품은 자영업자들의 소부르주아는 넓은 의미의 프롤레타리아화되는 불안정한 실업예비군에 포함될 수 있다. 집회에 참여하는 대중들의 요구가 노동계급의 생존의 요구와 결합될 수 있는 가능성은 높다. 이미 이들의 가두투쟁은 이명박 정권을 궁지로 몰고 상당부문의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 그리고 태극기나 애국가 등으로 표현되는 순수한 애국주의도 노동계급의 총체적 삶의 요구를 통해 계급적 요구로 모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이러한 정세 조건에서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모든 노동자는 생산의 현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피폐화시키는 자본과 국가의 모든 조치에 맞서 총파업투쟁을 아래로부터 조직해야 한다. 총파업투쟁이 현장점거를 통해 자본주의적 생산과 유통을 중단시키고, 위력적인 가두 투쟁을 통해 미조직 노동자들과 공세적 대중투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둘째, 모든 미조직 노동자, 실업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학생을 포함한 예비노동자들은 노동현장의 계급적 요구를 가지고 지금 가열되고 있는 촛불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촛불 집회에서 노동자의 고통이 건강이나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총체적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하고 서로 토론하는 적극적인 마당을 만들어야 한다. 총파업 이후 가두투쟁을 하는 조직된 노동자들과 함께 전 계급적 요구로 상승시켜야 한다.
 
셋째, 모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의 총파업과 대중투쟁이 아래로부터 힘 있게 실현될 수 있도록 자본주의 모순과 위기, 그를 극복하는 사회주의(코뮤니스트)적 전망과 대안을 대중에게 선전 선동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요구가 노동계급의 진정한 요구가 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 혁명정당의 부재가 보였던 과거의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면서 계급투쟁의 정치적 기준점 역할을 할 수 있는 혁명정당 건설 투쟁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2008년 우리의 여름 항쟁이, 프랑스의 68투쟁, 69년의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처럼 전 세계 노동계급의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008년 여름 항쟁을 87년 6월 항쟁으로 되돌리는 부르주아적 한계를 대중 앞에 철저하게 비판하고, 자본주의 그리고 자본가 정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길이, 노동해방의 새 세상을 여는 노동계급의 임무임을 전 세계 노동계급에 당당하게 선포하자.

 

 

 
2008년 6월
                                                                                                           Left Communist Group(LCG) ㅣ오세철

*LCG는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창립의 기초가 되었던 한국 최초의 코뮤니스트좌파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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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사회적 긴장

스리랑카의 사회적 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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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는 2021년 말 이란(1), 2022년 초 카자흐스탄(2)처럼 사회계급적 갈등이 극도로 심각한 상황이다피착취계급은 광범위한 부패와 족벌주의 정치 체제 아래에서 높은 생활비와 비싼 연료비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저항의 원인은 생필품과 연료비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다특히 공급이 부족한 휘발유와 경유는 상황이 심각하다현지 목격자들은 경찰과 군대가 유통업자들을 보호하는 동안 차에 연료를 주입하기 위해 최대 13시간 동안 줄을 섰다고 보고했다몇 달 동안 정전이 계속되었다연료 소비를 줄이고 자급자족 작물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공공부문에 2주간 귀가 명령을 내리고이후 3개월 동안 주당 노동시간을 4일로 줄였다(대량 정리해고의 전조).(3) 동시에 국내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보장하는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식량연료의약품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되고 있다. 5월까지 인플레이션은 40%를 넘었고식료품 가격은 60% 이상 올랐다. 2,200만 인구 중 최소 500만 명이 앞으로 몇 달 안에 식량 공급 부족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4) 세계식량계획은 이미 수도 콜롬보에서 임산부 2천 명에게 식량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심각한 부채 위기를 겪고 있다지난해 가을중국에 빚을 갚지 못한 기업들은 매각을 강요당했다.(5) 외채가 500억 달러 이상이고 그중 절반이 단기 만기와 고금리(6) 금융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스리랑카는 70억 달러의 부채와 이자를 상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현재 외환보유고는 5억 달러에 불과하다.(7) 다가오는 세계적인 금리 상승과 함께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섬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인도와 중국 모두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이 나라는 곧 파산 선언을 하고 부채를 재조정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렇게 함으로써스리랑카는 이미 대유행 기간 빚을 갚지 못한 수리남벨리즈잠비아에콰도르와 같은 나라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이웃에 있는 파키스탄과 같은 상황이 예상된다이는 곧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공공부문 구조조정(노동자의 50~70% 감축이 거론되는 곳)과 임금연금서비스보조금소비세 인하 등의 가혹한 긴축정책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이 모든 것은 이윤을 늘리고 IMF가 부채를 재조정하고 새로운 대출을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이다그들의 계급적 대응이 그러한 공격의 심각성에 부응할 것인가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그 전제는 부분적으로 가능성이 있다.

 

사마기 야나 발라웨가야(Samagi Jana Balawegaya: SJB), 야나타 비묵티 페라무나(Janatha Vimukthi Peramuna: JVP), 타밀 민족 동맹(Tamil National Alliance: TNA), 전선 사회당(FSP)의 주요 야당 세력은 이들에 대해 공개적 또는 침묵으로 사실상의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이러한 정책은 먼저 우리가 국가를 붕괴로부터 구하고, 적어도 정부를 교체한 다음 ... 우리는 보게 될 것”이라는  두 가지 정치적 메모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여기서 개량주의 세력이 항상 체제 보존의 편을 든다는 것을 보게 된다.

 

어쨌든이러한 극적인 상황은 중요한 시위의 발발로 이어졌다수도 콜롬보에서는 3월 31일 노동자빈농중산층학생들이 정부 관저 앞에 자발적으로 모여 생계비토착 부패족벌주의국가 부실에 항의하며 고타바야 라자팍사(Gotabaya Rajapaksa) 대통령과 그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4월 9일 콜롬보(70만 명의 도시)에서 10만 명 이상의 시위가 벌어진 후시위대는 해산 대신 의회 건물 앞에 있는 유명한 갈레 페이스(Galle Face) 해변에 캠프를 조직했다.

 

이 캠프는 고타 퇴진 마을(GotaGoGama)”이라는 이름을 얻었다이 점령은 2011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2013년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Gezi Park)처럼 일반적으로 이 운동의 집결지가 되었다.

 

고타고가마(GotaGoGama)에서는 타밀무슬림기독교 소수민족에 맞서 다수의 싱할라 불교도를 선동하는 라자팍사가 지원하는 인종과 인종 분열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통과된 수백 개의 자발적인 집회가 발생했다.

 

점령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고 대중적이며 계급 간 특성을 가졌으며정치적으로 중산층과 비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억압 세력과 친교를 요청한 비현실적인 개혁 사상을 발전시킨 학생들이 지배했다이것은 혁명적 관점에서 볼 때정치적으로 독립적인 노동계급 운동이 없는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항상 모든 운동을 자본주의가 정한 한계 내로 끌고 간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노동계급의 참여도 노동조합이 파업 결정을 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다.

 

노동조합은 결국 총파업을 선언했다그들은 거의 확신 없이 그렇게 했지만, 4월 28일과 5월 6일에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5월 9마힌다 총리는 대통령에 희생되었고 사임했다그러나 라자팍사는 마지막 행동으로 많은 가족 지지자들을 모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술을 많이 마시게 하고 몇 루피를 쥐여주어 경찰과 군대의 지원 아래 수도와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해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했다그러나 최루탄물대포심지어 총성으로 고타고가마를 소탕하려는 시도(8)는 실패했고노동조합은 5월 9일부터 11일까지 지속된 파업을 다시 한번 요구해야 했다노동조합은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커져가는 분노를 덮고 단순히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제도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뒤늦게확신 없이 파업을 선언함으로써 그들의 본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그러나 시위대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고라자팍사 가문의 역사적인 집과 다른 여러 장관과 전직 장관들(최소 20)의 집을 공격하고 불을 질렀고다른 시위대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여러 검문소를 조직하여 마힌다가 탈출한 것을 확인하고그가 트린카 해군 기지로 피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곳을 포위했다체포된 사람들을 태운 여러 대의 승합차가 공격받아 파괴되었다최소 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따라서 이 운동의 구호는 급진적으로 변하여 "고타는 떠나라"라는 구호에서 국회의원 총 의석을 나타내는 "225는 떠나라"로 전환되었다게다가 그 순간까지 운동을 특징지었던 비폭력의 이데올로기는 지상에서의 힘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유물론에 굴복해야 했다반작용의 힘이 이러한 폭력의 기초를 만든다다음 날통행금지와 수도의 군사화가 뒤따랐다상황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섰지만이 글의 앞부분에서 서술했던 운동을 야기한 모든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추가 긴축정책이 시행되면 운동 자체에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9)

 

2022년 6월 26

로터스

코뮤니스트 투사(Battaglia Comunis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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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10-31/the-struggle-of-the-iranian-oil-workers-goes-on

(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1-08/kazakhstan-the-working-class-attempts-to-find-its-voice

(3) https://www.aljazeera.com/news/2022/6/14/crisis-hit-sri-lanka-allows-govt-workers-4-day-week-to-grow-food

(4)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6/the-social-tensions-in-sri-lanka

(5)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9-18/china-iran-accords-the-silk-road-and-some-other-imperialist-manoeuvres

(6) https://www.dw.com/en/sri-lankas-foreign-debt-default-why-the-island-nation-went-under/

(7)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2/04/03/the-submerging-market-debt-crisis/

(8)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jun/19/sri-lankan-troops-open-fire-to-contain-unrest-over-fuel-shortages

(9) 이 기사를 작성한 이후새 총리는 이미 스리랑카 경제가 붕괴 상태에 있다고 세계에 발표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jun/23/sri-lanka-prime-minister-economy-completely-collapsed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6/the-social-tensions-in-sri-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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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노동자와 빈농의 투쟁에 부쳐

 

높은 생활비, 높은 연료비, 그리고 매우 심각한 경제 위기에 맞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다!

코뮤니즘은 프롤레타리아트다!

혁명이 길이다!

 

몇 달 동안 스리랑카 사람들은 높은 생활비와 범죄자 라자팍사(Rajapaksa) 가족에 맞서 투쟁해 왔다. 투쟁의 형태는 중요했다. 평화적 시위와 노동조합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탄압에 맞서 싸울 힘이 생기고 장관들의 집과 정부 사무실에 대한 공격이 있고 난 뒤에 전국의 모든 노동자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일어났다. 힘과 폭력의 지형을 강요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이다.

 

대중의 힘은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있지만, 큰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고타는 떠나라”와 “225(국회의원)는 떠나라”는 요구는 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주장이다. 새로운 선거로 탄생한 새 정부나 국민통합정부는 노동자와 빈농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 외에는 스리랑카의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스리랑카의 위기는 전 세계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닥칠 위기를 예고하는 것일 뿐이다.

 

해결책은 다른 정부와 민주주의가 아니라 착취, 계급 분열, 이윤과 전쟁을 영원히 쓸어버리는 혁명을 통해 생겨날 새로운 사회조직과 완전히 다른 사회다.

 

전쟁은 경제 위기의 다른 면이기 때문이다. 위기와 전쟁은 서로 공생하며 인류를 새로운 세계 대전의 야만으로 몰아넣는다.

 

노동자와 빈농만이 대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스리랑카와 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의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들만의 혁명적 총회 조직을 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의 문제는 우리가 곧 직면하게 될 문제와 동일하며, 계급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행진을 재개하려고 한다. 그 길은 한가지이다. 노동조합과 정당을 믿지 말고 스스로 투쟁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모든 환상에 맞서 투쟁하며, 우리의 당면한 이익을 위한 투쟁을 모든 노동자,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전망으로 지금 통합해야 한다.

 

2022년 7월 19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로마위원회

 

 

<출처>

 

https://www.leftcom.org/it/articles/2022-07-19/con-i-lavoratori-e-contadini-poveri-in-lotta-in-sri-lan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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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 정권에 경고한다. 대우조선하청노동자 탄압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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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을 이끈 동지들에 대한 휴대폰 압수수색이 진행됐습니다. 
 
윤석열 정권과 자본은 거대한 투쟁의 의의를 없애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의 기세를 꺾기 위한 보복에 들어갔습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을 함께 방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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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권리 투쟁: 자본주의 폭력기구의 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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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지난 6월 20일, 투쟁하는 장애인 단체 활동가들에 대해 "지구 끝까지 찾아가서 사법처리하겠다"고 했다.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펼친 전장연 활동가들이 14일 경찰에 자진 출석했다. 그러나 정작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활동가 네 명은 3층 조사실로 이동할 수 없었다. 
 
공공기관에 기본적인 장애인 편의시설조차 마련되지 않은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에 해당한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조사실로 올라갈 수 있도록 경찰서에 엘리베이터부터 설치하라”면서 장애인을 차별하는 범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을 수 없다며 되돌아왔다.
 
자본주의 국가기구, 특히 경찰/검찰/군대/정보기관과 같은 폭력기구는 절대 고쳐 쓸 수 없다. 자본주의 국가기구의 완전한 파괴와 노동자평의회를 통한 사회의 통제만이 집회/결사/정치/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모든 차별을 철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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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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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나 동지 투쟁 결의문

 

 

자폐를 최초로 연구한 사람 중 하나인 한스 아스퍼거는 자폐에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말했어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모든것이 반드시 열등한 것은 아니다. 자폐아들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경험으로 훗날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도 있다.

 

한스 아스퍼거는 나치 부역자였습니다. 그는 살 가치가 있는 아이와 없는 아이를 구분하는 일을 했어요. 나치의 관점에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은 장애인, 불치병환자, 자폐를 포함한 정신 질환자 등이었습니다.

 

80년 전만해도 자폐는 살 가치가 없는 병이였습니다. 80년 전만 해도 나와 김정훈씨는 살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지금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의대생이 죽고 자폐인이 살면 국가적 손실'이란 글에 '좋아요'를 누릅니다.

 

그게 우리가 짊어진 이 장애의 무게입니다. 마치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듯 TV 드라마의 주인공의 대사입니다.

 

저는 불행 중 다행으로 엄마의 등골을 팔아 비장애인 사회 구조속에 파고들 수 있었습니다. 엄마의 등에 업혀 초등고를 다녔으니깐요...

 

그리고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3년 동안도 과 동기 선후배들의 도움 없이는 내가 원하는 교양과목도 내가 희망하는 부전공도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 여기며 살았습니다.그리고 전공과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전동휠체어가 생기면서 날개 돋힌 듯 1년을 자유롭게 살았습니다. 물론 전동휠체어가 허락한 공간이 전부지만 그래도 그 때를 생각하면 참 행복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름 '장애인' 우대 조건인 곳에 촘촘히 이력서를 넣었지만 족족이 떨어졌습니다. 처음엔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면접을 몇군데 다니면서 알았습니다. 아 ... 나는 손도 품도 많이 가는 인력이라는 것을...

 

휠체어를 탄 나를 위한 업무환경은 고사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거죠. 시청 공공근로를 하러 간 곳도 기억이 나네요. 버젓이 이력서를 받았는데, 첫출근하는 날 제게 한 첫 질문은 "한글은 쓰실 줄 아세요?" 였습니다. 그냥 어이없는 웃음으로 6개월 동안 도장만 찍었던게 생각이 나네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찾은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울 러시아워 지옥철을 피해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출근을 하였는데, 결국 직장에서 저는 그닥 쓸모 있는 인재는 아니였습니다.

 

장애인 화장실은 하나인데 눈치없는 분들이 한번씩 들어가면 저는 5분도 눈치보며 써야 하는 휴게시간을 10분 이상 써야 하고, 조금만 아파도 '몸이 불편하고 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해서 아픈것도 참았습니다.

 

그렇게 삶이 피폐해질 무렵, 한 겨울 마로니에공원에서 장애인평생교육의 권리를 외치던 천막농성장 노들야학을 만났고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 온기는 지금 생각해도 너무 따뜻했습니다.

 

처음엔 사회복지 실습으로 들어간 강릉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님이 한창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을 무렵, 제게 '강릉시는 이동권 보장하라'는 몸피시를 휠체어 등받이에 걸고 다니면 안되겠냐는 권유에 눈물을 쏟으며 죄송하다고 그것 만큼은 못하겠다고 하던게 엊그제 같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전히 지하철타기 투쟁할 때 벌때같이 경찰들이 저를 둘러쌀 때 두렵고 무섭습니다. 그래도 꿋꿋히 저를 당당하게 만들었던 선배 동지들의 투쟁을 모르지 않기에 용기냅니다. 

 

오늘도 저는 우리의 현실이 무게가 여전히 좋아진 세상이라 이야기하기에 마냥 슬프고 버겁지만, 그래도 전동휠체어를 타고 당당히 도보를 버스를 지하철을 장콜을 타고 갈 수 있는 곳을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사람을 만나고 여전히 부족하지만, 나를 만나 함께 웃는 누군가가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그래도 여기서 만큼은 쓸모 있는 인재로 사람으로 동료로 이웃으로 만날 수 있어서, 그리고 엄마와 딸이 될 수 있어서 오늘의 머리가 아까운 것이 아니라 엄마와 딸이 놀랠까봐 살짝 두렵지만, 사실 거울 속에 제 눈이 더 놀랠까봐, 그래도 꼭 언젠가 오늘이 우리의 현재 삶의 무게를 덜어줄 수 있는 용기였다 믿어봅니다.  

 

여전히 불쌍하고 안타깝고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장애인이지만, 언젠간 정말 세상 좋아졌어라 라는 말도 할 필요 없는 그런 세상에서 제 딸이 살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더 이상 죽지 마세요.

그리고 죽이지 마세요.

 

2022년 7월 13일

이라나

 

 

장애인권리예산보장 쟁취 투쟁!

장애인탈시설지원 쟁취 투쟁!

장애인평생교육권 쟁취 투쟁!

 

#장애인권리예산보장  #착취와차별없는공동체_코뮤니즘  #코뮤니스트혁명으로_장애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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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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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
 
 
2022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전동행진_선전영상
 
#서비스지원종합조작표폐기 #23년장애인권리예산쟁취 #발달·중증장애인지역사회24시간지원체계보장 
 
일시 : 2022.06.30~07.01 (목-금, 1박 2일) 
장소 : 서울도심
 
 
[1부. 본대회] 23년 본예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 전동행진 1박2일 투쟁선포 결의대회
○ 일시: 2022년 6.30일(목), 오후 3시
○ 장소: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레미안도곡카운티 아파트 정문(한티역))
 
[2부. 전동행진] ‘예산없이 권리없다!’ 전동행진
○ 일시: 2022년 6.30일(목), 오후 5시 
○ 행진경로 :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레미안도곡카운티 아파트 정문(한티역) → 잠수교 남단 (거리 7.2Km, 소요시간 2시간 30분~3시간)
 
[3부. 추모제] ‘더이상 추모에 멈추지 않는다’
○ 일시: 2022년 6.30일(목), 오후 8시
○ 장소 : 잠수교 남단
 
[4부. 전동행진] 지역사회 살아갈 권리와 자유를 향한 전동행진
○ 일시: 2022년 7.1일(금), 오전6시30분
○ 행진경로 : 잠수교 남단(달빛광장) → 이촌역 → (지하철 이동) → 삼각지역
 
[5부.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T4장례식]_“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 일시: 2022년 7.1일(금), 오전 11시  
○ 장소 : 삼각지역 9번출구 인근
○ 장례위원 함께하기: bit.ly/0701장례위원모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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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 투쟁 힘모으기 <아사히 수요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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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하반기 투쟁 힘모으기
아사히 수요문화제

 

 

2021. 09. 29(수) 늦은 7시
구미 AGC화인테크노 코리아 아사히농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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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으로 망가진 세상에 요구합니다. 고객센터 직접고용! 비정규직 철폐!

경쟁으로 망가진 세상에 요구합니다. 

고객센터 직접고용! 비정규직 철폐! 


<영상보기>

https://youtu.be/f3v-JlYZT58

 

 

 


[국민건강보험 고객센터지부 투쟁기금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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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배제를 깨트릴 한 끼 연대, 불평등을 깨트릴 버스비를 모읍시다!


<투쟁기금 모금계좌>

국민은행 595101 01 682247 (국민건강보험고객센터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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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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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세상

 


우리는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죽고 싶어도 사는 사람들
우리는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이다
살고 싶어도 죽는 사람들


다녀올게요
오늘까지 일하고 나는 죽었어요
저녁부터는 쉬어도 돼요
내일은 깨우지 마세요


어머니는 시커멓게 타버린 나를 낳았어요
꿈도 없는 아버지는 나에게 꿈을 묻지 않았어요
당신은 달아나는 꿈을 얼마만큼 쫒고 있습니까?
당신의 꿈은 누구의 편입니까? 


우리는 탈출하지 못했다
우리는 순식간에 갇혔다
우리는 한꺼번에 죽었다
우리는 보통 떼죽음을 당했다 
우리들의 시체는 여기저기 분산되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본 세상은 불덩어리였다


구급차는 날마다 우리에게 달려온다
우리를 태우고 떠나기 위해 줄지어 기다린다
나도 내 얼굴을 알아볼 수 없다
나는 내가 이렇게 죽을 줄 알았다


살아있는 눈에 뜨거운 노동의 흔적이 그어진다
나도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날이 있으리라
잘 가라, 세상!

 

詩 | 임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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