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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 유럽 학생·노동자 투쟁 지지!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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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학생·노동자 투쟁 지지!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유럽 ​​전역에서 긴축 정책과 전쟁 추진에 대한 반발로 동시다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태어난 이후로 위기는 끊이지 않았다." "군대에는 60억(유로)을 쓰면서 학교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는다"라는 말로 요약되는 프랑스 학생 투쟁에 대해 전 세계에서 연대의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도 유럽의 학생·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며, 국제주의자의 연대를 보낸다.

 

이러한 청년들의 분노에 정부가 내놓는 유일한 대응은 잔혹한 탄압뿐이었다. 프랑스에서는 노동계급 출신의 학생들이 열악한 학교 환경에 항의하며 거리로 나왔지만,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한 학생이 눈을 잃었고, 또 다른 15세 학생은 손을 잃었다. 벨기에에서도 프랑스의 상황에 고무된 노동자와 학생들이 긴축 정책과 치솟는 교육비에 항의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벨기에 리에주(Liège)에서는 시위가 금지되었음에도, 5만 명이 브뤼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스페인에서는 87세 노인의 강제 퇴거 및 사망 사건을 계기로 주요 도시에서 수십만 명이 치솟는 임대료와 주거난에 항의하는 시위에 나섰다. 알바니아에서는 수개월간 지속된 부패 반대 학생 시위가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며 점점 더 폭력적으로 변하고 있다. 독일과 네덜란드에서는 정부의 군비 증강 및 징병제 재도입 움직임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대규모 반전·징병 반대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다. 이탈리아 역시 학생 시위의 물결에 휩싸인 가운데, 의료 및 운송 부문에서 파업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남부 지역에서는 트럭 봉쇄가 계속되어 물류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고 있으며, 제노바 공항을 포함한 여러 곳에서 점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투쟁들은 전 세계 노동계급 전반에 퍼져 있는 불안감과 불만의 표현이다. 스페인의 에어버스 공장에서부터 교육 부문, 파리의 대중교통 체계(RATP), 벨기에와 아르헨티나의 사회적 지출 삭감에 맞선 투쟁, 그리고 인도 파리다바드(델리)의 섬유 노동자 파업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은 세계 어디에서나 생활 조건의 악화와 전쟁 준비라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모든 국가가 천문학적인 부채에 허덕이는 가운데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이탈리아의 GDP와 맞먹는 규모이며, 2026년에는 무려 3조 2,9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군비 경쟁은 부채를 증가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모든 사회 복지 예산을 고갈시킨다. 전 세계적으로 수억 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어가거나 하루 한 끼를 간신히 해결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생활비가 계속 상승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도 지배계급은 계속해서 부를 축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식료품조차 살 수 없지만, 정부는 GDP 증가를 자랑하고 있다. 프랑스 역시 국채 시장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이자 상환으로 더욱 심각한 재정난에 처할 수 있다. 한국도 AI 수요로 인한 반도체 호황으로 1인당 명목 GDP 4만 달러 돌파를 예상하지만, 비정규직 규모와 임금 격차는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고 청년 실업률도 최대 폭으로 상승했다.

 

프랑스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에서나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은 노동계급 출신이다. 이들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싸우고 있다. 그 미래가 지금, 해결될 수 없는 경제 위기와 전쟁, 그리고 기후 재앙으로 위협받고 있다. 이번 청년들의 투쟁은 국제적 차원에서 사회적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거리와 광장에서 낯선 이들이 모여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투쟁을 이어갈지를 논의하고 있다. 총회와 시위 현장에서 사람들은 수년 만에 처음으로, 두려움 없이, 혁명에 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투쟁에 뛰어든 새로운 세대는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지만, 동시에 과거의 무거운 짐(스탈린주의 붕괴 이후 이어진 반공 캠페인이나 정치 혐오 분위기)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투쟁이 일어나는 것 자체가 아니라, 투쟁을 노동계급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다. 만약 청년들의 투쟁이 전체 노동계급으로 확산하지 않는다면, 투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주의-노동자 희생 거부!


파업위원회 건설! 생존권 투쟁 전면화!


이번 투쟁에서도 기성 노동조합들은 늘 그래왔듯이 운동을 억제하려 한다.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총파업을 제안하고, 특정 부문만의 파업을 벌이며, 조합주의적 구호를 내세우며 무기력한 시위를 벌인다. 결국, 투쟁을 공동의 요구와 구호로 통합하지 않고, 노동계급 전체와 분리해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따라서 투쟁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반동적인 노동조합 밖에서, 총회와 파업위원회를 조직하여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연대를 강화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거리와 광장의 시위를 모든 작업장으로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고, 국경을 넘어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전쟁과 야만의 시대, 한편에서는 AI 혁명 시대를 찬양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벌이는 계급전쟁은 격화하고 있다. 전 세계 모든 국가에서 (좌파든 우파든) 모든 정부는 노동계급의 뼈를 깎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으며, 자본의 이윤율 회복만이 그들의 목표이다. 자본주의 위기와 일반화된 전쟁 추진과 밀접하게 연관된 생활 및 노동 조건의 악화에 직면하여,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의 공격에 전면적으로 저항해야 한다.

 

스페인의 에어버스 노동자들은 몇 달 전 볼리비아와 인도의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본에 협조적인 노동조합에 맞서 싸우면서 노동자 투쟁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계급투쟁의 부활이 더디고 한계가 있더라도, 이는 혁명적 계급으로서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의 야만과 전쟁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계급임을 보여준다.

 

한국 노동자들도 잠재 성장률 하락 위기 극복과 국가경쟁력을 명분(이른바 3대 메가프로젝트 등)으로 노동자 희생을 강요하는 정부·자본의 공세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자들이 투쟁하지 않는다면, 그동안 이재명 정권이 내세운 모든 노동 정책이 결국 자본의 이익으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또한, 여전히 노동자 투쟁을 교란하고 후퇴시키는 조합주의·민족주의·계급협조주의 세력과 단절하고, 그들이 추진하는 사회적 합의주의를 거부해야 한다.

 

지금 노동계급에 가장 시급한 일은 이재명 정부에 대한 모든 환상을 걷어내는 일이다. 우리가 방어해야 할 것은 자본가정권과의 “계급협조”를 통한 개혁이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의 생존권과 노동 조건이다.

 

자본가정권이 좌파로 바뀌든 우파로 바뀌든, 자본주의 체제가 지속하는 한, 경제위기, 전쟁, 기후 위기, 착취와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쟁과 야만의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과학 기술(발전)이 이윤 추구가 아닌 삶의 질 향상, 노동시간 단축, 창의적인 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 즉,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한 코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뿐이다.

 

- 유럽의 학생·노동자 투쟁을 지지한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확산시키자!

- 조합주의·계급협조주의 세력과 단절하고, 사회적 합의주의 거부하자!

- 3대 메가 프로젝트 등 모든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생존권 투쟁을 전면화하자!

- 형식적인 총파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계급적 연대와 단결을 통한 실질적 총파업을 조직하자.

-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투쟁과 미래를 결정하는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를 건설하자!

 

오늘 투쟁하지 않으면 내일은 구걸하게 될 것이다.

오늘의 생존권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계급전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2026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위원회((NWBCW KOREA)

 

□ 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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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6년 24호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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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026년 24호

 

 

 

차례

 

 

「코뮤니스트」 24호를 내면서  

□ 코뮤니스트 정치
▸ 유럽 학생·노동자 투쟁 지지!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 3대 메가프로젝트, 초광역특구법, 이재명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다  
▸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기후정의는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  
▸ 2026년 북미 노동절 : 자본주의의 잔혹함이 심화하고 있다  
▸ 세계 자본주의는 우리를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간다  
▸ 자본주의의 파산과 혼돈에 직면하여 : 계급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  
▸ 세상은 불타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대안은 있다 

□ 특집. 유럽의 학생·노동자 투쟁
▸ 전쟁 경제, 긴축 정책, 그리고 억압에 맞서: 노동계급이 투쟁을 주도해야 한다  
▸ 유럽에서 진행 중인 투쟁에 관한 국제 성명   
▸ 주거와 노동 조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다!  
▸ 프랑스 고등학생 시위: 계급적 대응을 조직하자!  
▸ 프랑스 고등학생 탄압: 자본주의 국가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공포 그 자체다!  

□ 특집. 인공지능(AI)과 노동계급
▸ 인공지능(AI)에 관한 기본 관점  
▸ '인공지능(AI) 거품' 분석  

□ 국제
▸ 에어버스(Airbus) 파업: 노동계급은 노조의 족쇄를 단번에 완전히 끊어내야만 승리할 수 있다!  
▸ 거듭되는 공약: 노동계급을 겨눈 미래의 공세  
▸ 네팔: 붕괴하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논리  
▸ 유럽 폭염: 치명적인 새로운 일상  
▸ 유럽 폭염: 생태 재앙의 원흉은 자본주의다! 
▸ 베네수엘라 지진 : 재건에 대한 자본의 갈망은 희생자들의 피로 물들어 있다  

□ 노동시
▸ 연대기  
▸ 돈벌이  

□ 특집. 자본주의 이념과 노동계급의 대안
▸ 민족주의와 포퓰리즘 우파, 또는 자본가계급이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  
▸ 해체되어 가는 자본주의 체제의 썩은 이념들  

□ 코뮤니스트좌파 진영 쟁점
▸ 강령 테제(Barbaria, 두 번째 부분)  

□ 문화
▸ 축구가 “세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을까?   
▸ [신간] 부르주아 운동과 코뮤니스트 운동: 좌우 민족주의를 넘어선 국제주의의 길  

 

"자본주의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고통을 가중하는 것이 본질이며, 이러한 고통은 개인적으로는 생활 및 노동 조건의 악화를 통해 느끼며, 집단적으로는 지배계급이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때 느낀다. 계급전쟁은 현실이며, 우리는 매일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하기 위해 조직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는 국제주의자들이 이를 실천할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와 함께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 전쟁과 억압, 착취가 없는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조직 활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 가격 :  20,000원 

□ 구입문의 : communistlef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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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메가프로젝트, 초광역특구법, 이재명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다

3대 메가프로젝트, 초광역특구법, 이재명정권의 본질을 드러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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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이재명 정권의 3대 메가프로젝트(반도체, 인공지능 데이터센터, 피지컬 인공지능)를 뒷받침할 ‘메가특구특별법’(메가특구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의 명칭을 ‘초광역특구법’으로 바꿔 10월 20일 발의했다. 최대 쟁점인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고소득 연구·개발직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적용 제외 특례)은 초안에 포함하되, 노동계 등과 논의를 더 거치기로 했다.

 

민주당이 발의한 특별법은 두 종류이지만, 본질은 노골적인 노동력 착취를 통한 이윤추구이다. △기간제 사용기간 4년으로 연장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기간 6개월로 연장 △소득 상위 3% 노동자에 대한 법정노동시간 한도 무력화 및 연장·야간·휴일노동 한도와 가산수당 폐지를 포함한 근로기준 무력화 △외국인투자기업 파견대상 업무확대 및 파견기간 연장, 유급휴일 무급화 등 대대적인 노동착취를 담고 있다.

 

비판

 

이재명 정권의 3대 메가프로젝트는 엄청난 전기와 물을 소비한다. 전기와 물을 공급하기 위해 화석연료발전, 핵발전이 추가로 건설된다. 지역의 재생에너지발전은 반도체 산단과 데이터센터에 우선 공급된다. 이를 위하여 전 국토를 가로지르는 송전선이 건설된다. 매년 가뭄이 반복되어 물이 점점 부족해지는데 반도체 산단과 데이터센터는 하루 수백만 톤의 물을 소비해야 한다. 이처럼 막대한 국가 재정과 전력, 용수를 투입하면서도 생태적 한계와 기후위기 대응을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정권은 속도전을 강조하며 자본에 세금 감면과 보조금, 전력·용수·부지까지 국가가 마련하겠다고 한다. 노동자와 지역주민의 삶과 건강, 환경은 자본의 이윤 앞에서는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이다.

 

환경파괴뿐만 아니라 노동력 수탈은 아주 노골적으로 들이대고 있다. 초광역특구법의 노동 특례 항목들은 노동시간 제한, 연장노동 수당, 파련 허용업무 제한, 선택적근로시간제 정산기간 1개월 등을 무력화하며 노동시장 전체로 확대할 기세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이그젬프션은 노동계 등과 논의를 더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메가특구 노동특례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 실무협의체 5차 회의가 열리는 바로 그날, 민주당은 초광역특구법안을 발의했고, 정부는 “대화 결과를 심사에 반영하겠다”라고 했다. 노동개악 입법 절차에 착수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그 수위를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정권의 의도는 너무 뻔하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동계급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 정권의 노동관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중국의 ‘996’(아침 9시부터 밤 9시까지, 주6일 노동)을 보기로 들며 “일할 자유 막아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하는 일할 자유란 노동자 입장에서의 노동권이 아닌 자본의 이윤추구에 걸림돌을 치워주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정권의 본질과 AI(인공지능)

 

윤석열의 친위쿠데타는 노동자대중이 막아냈지만, 그 열매는 지배계급의 다른 분파인 이재명 정권을 탄생시켰다. 자유민주주의의 화려한 수사로 반(反)노동적이고 친(親)자본적 성격을 일시적으로 감출 수는 있었다. 하지만 친자본적 본색은 이미 취임 전부터 시작되었다. 자본주의에서 AI 산업은 생산수단의 고도화와 평균이윤율 저하와 맞물려 자본에는 일시적으로 이윤의 증가를 가져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도 AI 서비스를 생산하는 자본은 막대한 투자 규모에 비해 이윤율은 낮고, AI 산업 전반에서 투자 과잉에 더해 부채 의존성이 강화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도 AI 산업과 기반이 되는 반도체에 국가가 투자하는 이유는 자본의 무한 이윤추구를 통한 성장주의 때문이다.

 

AI가 노동자를 대체하는 것은 기계가 “일자리를 원하기” 때문이 아니다. 기업들이 AI를 도입하는 이유는 경쟁 심화로 인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노동 생산성을 높이며, 이윤을 증대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에 따라 AI를 다르게 경험한다. 어떤 이들은 가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지만, 어떤 이들은 교섭력을 잃는다. 많은 노동자가 강화된 감시, 더 엄격해진 성과 목표, 그리고 높아진 업무 강도에 직면하게 된다. 동시에 사회는 AI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 필요한 지식을 갖춘 고학력 노동자, 즉 엔지니어, 전기기술자, 연구원, 프로그래머, 기술자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 된다. 이는 모순을 일으킨다.

 

AI는 인류의 기술적 역량을 확장하는 동시에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 지적 재산권을 장악한 소수의 기업에 경제적 권력을 집중시킨다. 따라서 노동착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의 노동 개악을 저지하려면 AI 거품론과 사회적 대화를 넘어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AU 시스템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 사용 방식은 누가 결정하는가?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혜택은 누가 받는가? 일자리가 사라지거나 노동 조건이 악화할 때 누가 그 비용을 부담하는가?

 

답은 명확하다. 자본과 자본의 총체로서 국가를 넘어서지 않는 한 3대 메가프로젝트는 화려한 수사와 업종을 바꾸며 제2, 제3의 시리즈로 이어지며 노동자 착취를 강화할 것이다. 사회적 대화(합의)는 자본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진다. 노동계급이 투쟁 없이 국가, 자본과 대화만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자본의 먹이사슬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자본은 위기(평균이윤율 저하)를 극복할 능력도 이해도 없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종식하고, 과학기술을 이윤추구가 아닌 인간의 필요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사용하는 세상, 착취와 억압이 철폐된 세상, 국가와 계급이 없는 세상, 코뮤니즘을 건설할 수 있다.

 

사회적 대화는 자본의 필요! 노동자 투쟁 없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자본가 정권의 노동착취 강화, 생존권 위기에 맞서 계급투쟁을 전면화하자!

 

2026년 11월 6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 윤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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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와 노동 조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다!

주거와 노동 조건 문제의 원인은 바로 자본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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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식료품, 주거비가 곳곳에서 치솟고 있다! 또한, 대규모 해고와 실업, 고용 불안이 만연하고 있다! 하지만 좌파든 우파든, 사회주의든 자유주의든 포퓰리즘이든, 어떤 정부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든 국가가 천문학적인 부채에 허덕이는 가운데도,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에 달한다! 이러한 군비 경쟁은 부채를 증가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모든 사회 복지 예산을 고갈시킨다.

 

마드리드에서 소형 투룸 아파트의 월세는 최소 1,000유로에 추가 비용이 더해지고, 원룸의 평균 월세는 550유로이다. 식비와 교통비 등 다른 생활비까지 고려하면 (게다가 물가가 급등한 점도 더하면),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가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유연근무제, 하청, 임시직,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가 만연하면서, 앞으로는 내 집 마련은커녕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은 착취당하는 모든 이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9월 27일, (10월 7일 별세한) 87세의 마리아 카르멘 아바스칼(María Carmen Abascal)의 강제 퇴거에 반대하는 주거난 시위 이후, 세입자 연합은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광장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 이후로 이 광장은 단순한 시위를 넘어 교육 및 사회 부문 투쟁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분노와 연대를 표하기 위해 광장으로 모이고 있다.

 

노동계급 연대의 힘

 

제대로 된 주거 환경을 위한 투쟁은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 개선, 물가상승률에 따른 임금 인상, 정리해고 반대, 교육 및 의료 분야의 사회 복지 예산 삭감 반대를 위한 투쟁의 일부이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는 연금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높은 임대료(연금 소득의 두 배) 때문에 쫓겨날 위기에 처한 노인들과 인턴십이나 불안정한 일자리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있다.

 

이러한 푸에르타 델 솔(Puerta del Sol) 운동에 새로운 활력이 생기고 있다. 이 운동은 2022년 영국 노동자들이 전방위적 탄압에 맞서 "더는 참을 수 없다!"라고 외치며 대규모 투쟁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수년간 꾸준히 탄력받아 왔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주거난 해결을 넘어, 자본주의 이윤 추구와 전쟁 비용 지출이라는 명분으로 노동자의 전반적인 생활 조건이 악화하는 것에 맞서는 투쟁을 의미한다. 이 운동은 국제적인 움직임으로, 현재 유럽 여러 국가에서 동시에 전개되고 있다. 프랑스와 벨기에 학생들의 예산 삭감 반대 투쟁은 푸에르타 델 솔의 상황과 맥을 같이한다.

 

프랑스에서는 ‘탄압받는 학생들과 연대’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으며, 학생들은 "과밀 학급과 부족한 교직원으로 고통받는 저임금 교사들을 지지한다"며 "우리에게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사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라!"라고 외치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 프랑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노동계급의 정체성을 "일반 시민" 속에서 희석하는 연대에 빠지거나, 더 나아가 우리를 착취하는 세력과 연대하는 것은 함정이다!

 

노동자 투쟁은 '시민 투쟁'이 아니다.

 

주거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문제는 주로 노동계급에 영향을 미친다. 지배계급, 고위 공직자, 기업주와 임원들이 주거 문제를 겪는다는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된 주거 환경을 위한 투쟁은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를 시민운동으로 포장하려 한다! 시민은 어떤 사회 계급에도, 더 나아가 계급투쟁에도 소속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국가와 법률에 신뢰를 두는데, 사실 그것이 그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동자 투쟁은 계급투쟁이다. 노동자 투쟁은 “국가를 우리를 착취하는 지배계급의 도구”로 인식한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시민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조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시민들은 분노와 불만을 투표로 표출하려 하지만, 투표로는 지배계급의 공격 자체를 바꿀 수 없고, 단지 공격이 표현되고 실행되는 방식만 바꿀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위에서 외치듯이 노동계급이다! 우리의 연대는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공격에 맞서 싸우겠다는 공동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선거 투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파와 좌파 모두 노동계급이 직면한 주거 위기에 책임이 있다! 11월 29일 조기 총선이 공표되기 전부터 '가장 진보적인' 정부는 주거난 시위를 선거 운동에 이용하려 했고, 산체스(Sánchez) 총리는 이를 거부한 우파와 지역주의 정당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 막판에 주택 보호 법령을 발표했다. 그러나 마리아 카르멘 사망 직후, 솔 광장에서 의회까지 행진한 시위대는 "가장 진보적인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라며 항의했다. 이 항의에는 집권 사회노동당(PSOE) 외에도 포데모스(Podemos), 좌파연합(IU)도 포함된다. 한편, 국민당(PP)은 복스(Vox)의 도움을 받아 농성장을 최대한 빨리 해산하고 세우타 사태(1)로 돌아가려 한다. 그들의 목표는 계급 갈등을 일상적인 의회 논쟁의 장(서커스 무대)으로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주거 위기에 대한 책임은 우파와 좌파 모두에게 있다! ’우파‘ 국민당(PP) 아스나르(Aznar) 정부가 부동산 거품을 한계까지 부풀렸지만, 그 거품은 같은 ‘경제 성장’ 정책을 이어간 ‘좌파’ 사회노동당(PSOE) 사파테로( Zapatero) 정부 시절에 터졌다. 마찬가지로, 2008년 금융 위기에 대한 우파와 좌파의 대응 정책도 유사했다. 긴축 정책과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 악화로 많은 노동자가 집을 잃고, 주택담보대출 상환을 위해 빚더미에 앉게 되었으며, 임금은 동결되었다. 2013년부터는 관광 산업의 성장에 힘입어 주택 시장 투기가 통제 불능 상태로 과열되었다. 실제로 스페인 자본의 최근 '경제 기적'은 긴축 정책과 이주노동자로 인한 노동력 비용 절감과 더불어, 관광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과 2023년부터는 포데모스(Podemos), 좌파연합(IU), 코뮤니스트당(PC)이 이러한 정책에 ‘가세’(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은 없다)하게 된다.

 

노동계급의 주거 위기 문제는 우파나 좌파의 정책(게다가 둘은 매우 유사하다) 탓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위’로부터의 총파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대적 파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거난 시위 진영에서 다양한 투쟁과 요구가 한데 모이면서, 스페인 양대 노총인 노동자총연맹(UGT)과 노동자위원회(CCOO)는 대부분 노동조합과 의회 밖 좌파 세력의 지지를 받아 11월 11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사용자 단체 회장인 가라멘디(Garamendi)는 총파업은 임금 문제에 한정되어야 한다고 반응했다. 이는 그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노동계급 내부의 분노와 엄청난 투쟁 정신이 이러한 시위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의 생활 조건이 악화하는 상황에 맞서 단결과 저항의 토대를 마련할 잠재력을 간과하는 것이다.

 

양대 노총(CCOO, UGT)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에게 총파업이라는 함정을 파는 것이다. 총파업은 단결의 장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가 자기 부문에서 ‘자기만의’ 투쟁에 매몰되는 장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투쟁을 조직하는 장이 아니라, 의사 결정권과 행동 촉구, 협상 권한을 노동조합에 넘겨주는 장이 될 것이다. 에어버스 투쟁 당시, 처음에는 회사 측 제안을 지지했다가, 나중에는 정부의 중재를 지지하며 노동자 총회를 반대했던 그 노동조합들 말이다!

 

이러한 노동조합 전략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곤살레스(González)와 라호이(Rajoy) 정부 시절의 여러 노동 개혁(악)에 반대했던 총파업, 곤살레스(González) 정부의 청년 고용 계획 반대 파업, 아스나르(Aznar)의 실업 수당 삭감 '법령‘ 반대 파업 등은 사실상 투쟁을 무산시키고 단결과 자기조직화를 향한 기세를 꺾어버렸다!

 

노동계급의 힘은 대중의 단결된 집회 안에서 토론하고 결의하는 데 있으며, 투쟁을 노동자 스스로 주도해야 한다. 모든 부문에 공통된 요구를 옹호하고, 다른 부문에 대표단(언제나 소환할 수 있는)을 파견하여 운동을 확장하며, 단결된 시위와 집회를 개최해야 한다.

 

전망은 무엇인가? 어떻게 투쟁을 계속해야 하는가?

 

노동자의 길은 고난과 함정으로 가득하지만, 투쟁 정신과 연대는 엄청나다! 지금 프랑스와 벨기에에서는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의 투쟁이 노동자에게까지 확산하려 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영역에서, 우리의 생활 조건을 위해 싸우는 것은 프랑스와 벨기에 동지들,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을 실어준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모이는 것은 단결의 힘이 되어야 한다. 마드리드뿐 아니라 모든 도시에서 학생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광장 집회를 열고, 시위를 조직하여 운동을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해야 한다. 우리의 힘은 노동자로서 단결하여 투쟁하고, 힘의 균형을 이루어내고, 탄압의 구실이 되는 함정과 도발을 피하는 데 있다.

 

광장에서 단결하고 자기 조직화한 집회를 열자!

운동을 모든 부문으로 확대하자!

프랑스와 벨기에의 학생, 노동자와 연대하자!

 

2026년 10월 11일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역자 주>

1. 세우타(Ceuta) 사태는 2026년 7월 말 스페인의 북아프리카 자치령 세우타에서 발생한 난민 위기 사태이다. 모로코 청년층의 경제난과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약 7만~8만 명에 달하는 인원이 한꺼번에 국경을 넘은 대규모 월경 사건이다. 세우타 사태를 계기로 국민당(PP)과 극우 성향의 복스(Vox) 등 야권은 산체스 정부의 퇴진과 반(反)이민 기조 강화를 전면에 내세우며 정치적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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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진행 중인 투쟁에 관한 국제 성명 (2026년 10월 10일)

유럽에서 진행 중인 투쟁에 관한 국제 성명

(2026년 10월 10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3주 동안 프랑스에서 벌어진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위는 고립된 반항의 표현이 아니다.

 

교실에는 쥐들이 뛰어다니고, 낡은 지붕 조각이 학생 머리 위로 떨어진다. 겨울에는 난방이 작동하지 않고 단열이 안 되는 건물은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오븐처럼 뜨거워진다. 특히 노동계급 거주 지역의 학생들은 교사가 결근해도 대체 교사가 오지 않아 제대로 된 수업을 받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이 화약고에 불을 붙인 격이다. 여기에 잔혹하고 대대적인 경찰의 진압은 불길에 기름을 부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중 대다수가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공감하고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위는 자본주의가 프랑스를 비롯한 모든 사회에 강요하려는 방향에 대한, 특히 임금 노동자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는 불만과 불안감의 표출이다. 한편으로는 빈곤이 만연하고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급증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 준비를 위한 군사 예산 역시 급증하고 있다.

 

이번 시위는 프랑스의 나머지 민중과 동떨어져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동떨어져 있지 않다. 같은 유형의 시위가 벨기에 왈로니아(Wallonia)의 주요 도시 거리에서 몇 주 동안 계속되고 있다.[1] 10월 9일 금요일, 노동조합 행동의 날에는 5만 명의 시위대가 브뤼셀(Brussels)에 모여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최근의 긴축 정책에 항의했다. 이 시위는 경찰과의 충돌로 끝났다.

 

같은 시각, 스페인에서는 불과 2주 전 수만 명의 시위대가 주요 도시 거리로 나와 임대료가 300%나 인상되어 집에서 쫓겨난 87세 여성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마리아카르멘(Maricarmen)으로 알려진 이 여성은 이후 세상을 떠났고, 이는 다시금 분노와 감정을 불러일으켜 수만 명의 사람을 거리로 나오게 했다.

 

실제로 자본주의가 대규모 전쟁을 준비하며 현대 산업 문명의 파괴와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환경의 황폐화를 초래할 위험에 처한 바로 이 순간, 모든 국가에서 빈곤과 착취가 급증하고 있다. 분노와 반란이 모든 나라에서 폭발할 기세이다.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준비하고 있는 미래는 암울하다. 누구나 이를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다.

 

비록 부모, 교사, 그리고 노동자들의 개별적인 지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시위는 독자적인 노력만으로는 결국 일시적인 반향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는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다. 스페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치솟는 임대료에 항의하는 시위도 같은 맥락이다.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집단적인 노력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부를 생산하는 전체 계급, 즉 노동계급, 임금 노동자,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러한 저항을 주도하고 투쟁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당면한 생활 조건 악화에 맞서는 투쟁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시키는 투쟁의 목표를 가져야 한다. 빈곤과 전쟁이라는 두 가지 현실에 직면했을 때, 다른 길은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랑스와 벨기에의 고등학생들, 스페인의 시위대, 그리고 대부분 대륙에서 터져 나오는, 이른바 ‘민중 봉기’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에 경종을 울리며,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책임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프랑스와 벨기에 모두에서, 우리는 가장 투쟁적인 프롤레타리아트에 고등학생과 대학생의 시위와 집회에 동참하고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아래로부터 힘을 모아 ‘투쟁위원회’나 대중 총회 그 밖의 어떤 형태든 적극적인 투쟁 단체를 결성하여, 시위와 집회에 집단으로 개입하고, 가능한 한 폭넓고 단결된 요구를 바탕으로 투쟁과 파업에 나설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촉구한다. 특히 교사들에게는 단순히 학생들을 지지하는 데 머물지 말고, 본질적으로 학생들의 요구와 일치하는 자신들의 요구를 내걸고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한다.[2]

 

자본주의는 핵무기로 무장한 제국주의 블록 사이의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는 전체 민중에게, 특히 프롤레타리아트에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희생과 고통을 강요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모든 국가에서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모든 국가에서 노동계급과 거대한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우리는 바로 그 지점에 도달했다.

 

2026년 10월 10일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주>
[1]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https://www.ilfattoquotidiano.it/2026/10/07/occupazioni-scolastiche-italia-proteste-francesi-notizie/8531059/

[2] 프랑스에서는 10월 13일과 17일에 예정된 노동조합 주도의 시위가, 노동계급의 주요 부문들이 참여하는 공개적이고 집단적인 대응을 시작하는 실질적인 계기로 전환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출처>
https://igcl.org/International-Communique-t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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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22호] 강령 테제(Barbaria)와 우리의 논평

강령 테제(Barbaria)와 우리의 논평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우리는 최근에 혁명 그룹 「바르바리아」(Barbaria)가 공개한 강령 테제를 읽고 토론을 진행했다.1) 테제는 이 그룹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고 또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있다. 우리는 「바르바리아」 그룹에 비판적 논평을 보내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생각했다. 논평은 그 자체로 ‘매우’ 비판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분명 우리는 주요한 계급적 입장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이 강령은 우리가 우리의 ‘정치 강령2)’에서 선언하듯이, 자신들을 ‘계급의 첨병’으로 명백하게 단언하지 않고 있어, 우리는 ‘처럼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접근법과 방법론에서 그리고 거기서 비롯하는 강령적·이론적 틀에서 뚜렷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 테제는 역사적 유물론, 즉 맑스주의 방법론에 고유한 역사적 차원을 무시하고 있다. 제시된 정치적·계급적 입장은 계급투쟁에 대한 유물론적 이해보다는 혁명적 의지 또는 심지어는 혁명적 감정에 기초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가 제거하고자 하는 두 가지 주요한 취약성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아나키즘’이라고 묘사하곤 하는 접근법 그리고 계급투쟁과 혁명적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이 테제의 핵심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망각은 아닐지라도) 현저한 과소평가이다.

 

이 그룹 자체는 아니라도 그룹 성원 중 일부는 예전 「국제코뮤니스트그룹」(IGC-GCI)에 영향받은 사람들임을 알고 있다.3) 또한, 우리는 바르바리아 그룹이 창립 이래로 이 경향과 단절하고 좌익 코뮤니즘, 특히 이탈리아 좌익 코뮤니즘을 습득하기 위해 재차 노력해 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룹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좌파’를 향한 이러한 동력과 그것을 회복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아주 명백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이바지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노력이고 이러한 이론적-정치적 투쟁이다. 이 테제와 우리의 비판을 공개하면 우리 두 그룹과 그들의 상호 해명을 훨씬 뛰어넘는 관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전체 혁명 진영에 이 형제애적인 ‘토론-투쟁’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세계 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조건을 가장 잘 마련하는 데 있어 강령적 입장의 대립은 필수적이다. 곧 펼쳐질 역사적 드라마에 직면하여 시간이 부족하기에 더욱 그렇다.

 

우리는 비판의 형식이나 표현을 내부 토론을 위해 발표했던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따라서 바르바리아의 테제를 그대로 게재하고 주석 형태로, 괄호와 굵은 글씨로, 우리의 비판적 의견을 덧붙였다. 이 방식은 테제별로 각각의 비평을 쉽게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자가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부분적인 답만 제시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으며, 강령 테제 자체와 우리의 비판 양쪽 모두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위험도 있다. 하지만 독자와 활동가들이 이 글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바르바리아에 의견을 전달한 것도 이러한 형태이다. 테제와 논평의 길이를 고려할 때 한 호에 모두 게재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 첫 번째 부분에 이어서 「혁명인가 전쟁인가」 다음 호(30호)에 두 번째 부분이 게재될 예정이다.

 

2024년 11월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1. 역사적 유물론

 

혁명에 대한 열망은 직관적이다. 다양한 형태로 이 체제의 폭력을 경험하고, 일시적으로든 의식적인 결단을 통해서든, 사태의 급진적 변혁에 대한 필요성을 기획해 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반면에 혁명가로서 행동하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다. 이 체제를 종식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종식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전도된 것처럼 보이는 사회적 현실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회의 기능을 해석하는 데 사용하는 방법이 근본적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역사적 유물론은 생산양식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사회의 진화를 이해한다. 다시 말해, 한 사회가 물질적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사회가 사용하는 수단과 구성원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 자신을 조직하는 방식―을 통해서만 그 사회와 그 제도와 그 문화적·종교적·이데올로기적 표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요컨대 사회적·역사적 존재가 의식을 결정한다.

 

생산양식이 사회적 총체를 정의한다. 그 내재적 모순이 사회의 역사적 발전을 특징짓는다. 자본주의에서 생산력과 사회적 생산관계의 충돌로 종합된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무능력으로 인해, 상승과 쇠퇴의 곡선을 따르거나 점진적인 방식이 아니라, 파국적인 방식으로 다음 생산 방식인 코뮤니즘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갑자기 출현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전환은 역사적 토대, 즉 그 출현 조건이 사전에 잉태되지 않고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소외된 생산 방식인 자본주의는 그럼에도 코뮤니즘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한다.

 

[역사적 유물론에 관한 주장은 그 자체로 환영받을 만하다. 역사적 유물론의 적용은, 방법론적 수준에서 항상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형이상학의 압력을 받는 모든 코뮤니스트 조직에 영구적인 투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이 주장은 모든 혁명 그룹에 필수 불가결하다.4]

 

유감스럽게도 이 테제의 설명은 역사적 유물론의 접근법과 방법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것은 “혁명가로서 행동하는 것은 직관적이지 않다”라는 개인의 관점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많은 정치적 결과를 초래하며, 무엇보다도 문서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둘째이자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첫 번째 테제에서 사회 세력, 즉 계급에 대해서는, 특히 착취당하며 혁명적인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적 유물론에 기반을 둔다고 주장하는 강령 문서는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이 역사의 원동력”임을 주장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혁명적 계급이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는 한, 이 테제는 자본주의로부터 코뮤니즘으로 기계적 또는 자동적 이행―비록 “파국적으로”일지라도―의 가능성에 대한 의견 또는 “생각”을 포기하지 않는다.

 

역사적 유물론에 대한 이 테제는 강령적 텍스트로 보기에는 기껏해야 너무 모호하다. 모든 명제를 계급투쟁의 지형에 고정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유물론이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이론임을 확언함으로써, 개인이 아니라 계급이 사회의 근본적 토대라는 관점에서 출발해야 했을 것이다.]

 

2. 자본주의

 

자본주의는 계급 사회 중에서 오늘날 지구 곳곳에 존재하는 궁극적인 생산양식이다. 자본주의는 단순한 경제적 착취 체제가 아니며, 인종, 젠더 또는 기술-산업주의와 같은 다른 지배 체제를 수반하거나 그것들과 교차한다. 자본주의는 상품 생산에 기초하여 사회가 모든 측면에서 삶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방식이다. 욕구 충족을 위한 재화의 생산이 아니라 상품 생산이 사회의 목적이라는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닌데, 동일한 원리가 작동함으로써 사회적 관계가 사물의 형태를 취하고 생산물의 움직임이 생산자의 움직임과 삶을 결정하는 오토마티즘(automatism)이 유도되기 때문이다. 현실은 전도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상품 물신숭배이다.

 

자본주의의 국제적 성격은 세계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경쟁국들과 그에 따른 정치-군사적 우위로 표현된다. 다시 말해, 세계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착취한 잉여가치의 더 많은 몫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민족 부르주아지들로 표현된다. 다른 투쟁과 마찬가지로 강대국과 약소국이 존재한다. 자본주의의 국제적 차원은 파편화되고, 위계적이지만, 이것이 피억압 국가와 억압하는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글로벌 경쟁에서 다른 국가들보다 더 나은 성과를 내는 국가들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지형은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자본주의의 구조적 특징으로 만든다. 또한 모든 국가를 제국주의 국가로 만들고 국가 간의 전쟁을 체제의 필수적이고 영구적인 산물로 만든다.

 

자본주의는 마지막 계급 사회다. 그리고 이전 사회에 대해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사유재산과 사회 계급의 출현은 가부장적 재생산 구조를 요구했는데, 그 기본 세포는 가족에 있고 거기서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통제가 핵심이다. 계급 사회로서 자본주의는 여전히 가부장적 구조로 되어 있지만, 상업적이고 추상적인 논리―이것은 생산과 재생산, 공적 공간과 사적 공간을 분리하고, 생물학적인 것을 무한한 가치 생산에 걸림돌이 되거나 기껏해야 감당해야 할 비용으로 만든다―에 따라 가부장적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상품으로 전락시킨 생산양식이 자연환경에 조금이라도 덜 파괴적일 수는 없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생산 능력은 증대되고, 노동력은 더 많이 추방되고, 생산에 더 많은 원자재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된다. 간단히 말해, 자본주의의 발전은 사회적 불행(잉여 인구)의 증가와 자연계의 급속한 파괴를 동반하며, 따라서 한 종으로서 우리 존재의 근간을 약화한다.

 

그 근저에는 가치의 고갈이 있다. 이 체제가 도달한 고도의 사회화와 생산 능력의 발전은 자본주의의 특정 범주(가치, 상품, 임금노동)뿐만 아니라 계급적 생산양식의 중추였던 범주들(사유재산, 가족, 국가)도 역사적으로 쓸모없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고갈은 새로운 생산양식을 향한 점진적인 쇠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고수하는 데 따른 파국적인 결과를 증폭시킨다. 이는 생산력은 성장을 멈출 수 없으므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즉 점증하는 사회적 생산과 생산물의 사적 전유 사이의 모순―이 점점 더 격렬해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죽임으로써 죽는 자동 기계이며, 기존의 사회적 관계를 혁명적으로 전복하지 않는 한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에 관한 이 두 번째 테제는 실제로 몇 가지 문제를 다소 산만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테제는 계급 적대감을 글과 방법론의 핵심에 두지 않은 이전 테제의 접근 방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로 인해 좌파 이데올로기와 그 정치적 입장 중 일부, 특히 페미니즘과 관련된 입장에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1) 계급투쟁 원리에 대한 과소평가

 

첫 문단에서 자본주의가 “계급 사회 중에서 …… 궁극적인 생산 방식”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좌파, 따라서 부르주아적이고 반(反)혁명적인 이데올로기, 특히 페미니즘이나 “교차성(intersectionality: 차별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용어-옮긴이)”과 자신을 “구별하는데”에 주로 관심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원동력으로서 계급투쟁”이라는 원칙―반복하건대, 불행히도 무시되거나 적어도 과소평가하였다―을 긍정하는 것만으로도, 좌파·반(反)혁명적 교차성 이론과 연결된 “부분적 투쟁”과 여타 “사회운동”에 대해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을 거부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좌파적 지형과 틀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 접근법이 탄생했다. 좌파적 지형에 대한 이러한 화해적 접근법은 자본주의의 “가부장적 구조”에 다시 초점을 맞춘 세 번째 문단에 반영되어 있다.

 

2) 역사적 방법 무시

 

이 테제들을 전개하기 위한 역사적 준거와 틀이 부재하고 “역사적 유물론”의 특징인 역사적 방법이 부재하기 때문에, 그런 지형이 가능하고, 심지어는 좌파적 입장―가부장제와 인종주의는 자본주의에 “구조적”이라고들 한다―이 부분적으로 침투할 가능성이 있다.

 

역사적 유물론은 이것이 가족과 가부장제의 근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설명한다. “오직 피억압 계급, 즉 오늘날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에서만 … 고전적 일부일처제의 모든 토대가 제거된다. 여기에는 모든 재산이 완전히 부재한데, 그것의 보호와 상속이 일부일처제와 남성 지배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남성의 지배를 주장할 아무런 자극도 없다.”5) 가부장제의 잔재, 무엇보다도 성차별 그리고 여성과 동성애에 대한 여타 형태의 차별은 “왕위에 대한 신적 권리에 의한 통치만큼이나 죽은 과거의 반동적인 잔재”이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잔재는 “인민에게 해로운 강력한 이해관계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지속되고 있다.6) 그렇다면 미국에서 트럼프의 선거 유세 때 다시 본 것처럼, 이 잔재들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의해 육성되며, 특히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후진적인 부분에서 널리 육성된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요한 프롤레타리아 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러한 “반동적 후유증”은 노동계급의 가장 후진적인 계층과 개인을 포함하여 여성에 대한 순수한 성차별, 마초주의, 경멸, 심지어 폭력으로까지 악화하며, 무엇보다도 인종주의-반(反)인종주의, 페미니즘-가부장제라는 비(非)계급주의적 대립을 강요하는 지점까지 악화하는데, 이것들은 투쟁을 통해 그리고 투쟁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방해하고 공격할 수 있을 따름이다.

 

자본주의에 “구조적”인 것으로 제시된, 인종차별에도 같은 것이 적용된다. 하지만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그리고 급여 노동자, 프롤레타리아로서, 모든 프롤레타리아를 비슷하게 만들어 피부색, 젠더, 출신 같은 개개인의 고유성을 부정할 정도에 이르게 만든다. 그리고 반(反)인종주의는 어떤가? 부르주아지는 인종주의와 반(反)인종주의 정서를 프롤레타리아 투쟁 발전의 기능이면서 그 발전을 가로막는 기능으로 완벽하게 이용하고 조장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코뮤니스트 강령 문서가 확언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계급투쟁의 원칙과 역사적 유물론의 방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 테제의 나머지 부분과 관련하여, 두 번째 문단은 제국주의의 발전을 매우 명료하게 밝히고, 민족 해방 투쟁과 제국주의 전쟁의 부르주아적이고 반혁명적인 특성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 같다. 이 민족 해방 투쟁 문제에 대하여, 만약 이 글에서 드러나는 견해―오늘날 이러한 민족 해방 투쟁이 반혁명적이라는 것―이 실제로 바르바리아 견해라면, 우리는 바르바리아와 같은 편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시 한번, 역사적 방법의 부재와 주제에 대한 정밀성 부족은 동일한 계급적 입장을 공유한다는 것이 동일한 이해와 동일한 전투적인 접근법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실제로 특정 조건에서 프롤레타리아가 민족 해방 투쟁을 지원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고, 전쟁이 제국주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는 다르게 프롤레타리아의 입장을 결정할 수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바르바리아가 이러한 견해를 공유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가치의 고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코뮤니즘

 

다음 생산 양식인 코뮤니즘은 소련이나 마오주의 중국 또는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쿠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반(反)혁명이 코뮤니즘이라고 제시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특히 파리 코뮌의 위대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투쟁―으로 출현한 「코뮤니스트 동맹」과 IWA에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맑스와 엥겔스가 이론적으로 종합한, 혁명적 강령을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반(反)혁명이 혁명의 탈을 쓰고 코뮤니즘이라는 용어를 하나하나 뒤집어 놓는 것보다 지금까지 우리 혁명 운동에 더 나쁜 것은 없었다. 우리는 제2, 제3 인터내셔널 내의 기회주의와 스탈린주의 반(反)혁명에 맞서 물리적·강령적 투쟁을 벌였던, 그리고 세기의 한밤중에서 우리 계급의 다음 혁명적 공격에 필수적인 교훈을 끌어냈던 그러한 동지들을 요구한다. 우리는 특히 이탈리아 코뮤니스트좌파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볼셰비키와 레닌, 로자 룩셈부르크와 독일-네덜란드 좌파의 초기 기여,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제4 인터내셔널과 결별한 국제주의자들―나중에 FOR를 설립한 무니스(G. Munis), 그리고 아지스 스티나스(Agis Stinas), 응오반후옛(Ngo Van Xuyet) 등―의 입장도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제시되고 우리가 공유하는, 이제는 원칙이 된, 두 가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입장이 있다. 소련에서 쿠바, 중국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적 성격, 그리고 제2, 제3 인터내셔널 내에서 좌익 분파의 투쟁에 관한 주장이 그것이다. 이 주장은 코뮤니스트 강령의 강령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있어 기본이며, 혁명적 그룹이 그 정교화에 참여할 뿐 아니라 당을 위한 투쟁과 계급투쟁의 정치적 “지도력”을 위한 투쟁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기본이다.

 

너무 까다롭게 보일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우리는 동지들의 요구―“그러한 동지들을 요구한다.”―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이는 좌파의 정치적 흐름에 대한 요구(테제에서는 “언급”으로 축소되었다) 대신에 개인들―그들이 아무리 존경스럽고 칭찬할 만하더라도―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비판은 첫 번째 테제의 첫 번째 문단에서 우리가 관찰한 것을 다시 언급한다. 유물론적―맑스주의적―이며 코뮤니스트적인 접근법의 출발점은 개인일 수 없다. 혁명적 개인, 즉 조직된 투사들일지라도 안 된다. 출발점은 계급과 그들의 정치적 표현, 프롤테타리아트와 그 혁명적 소수자, 조류, 그룹, 그리고 정당일 수 있을 뿐이다.

 

“사회적 결론을 도출하고 사회적 청사진을 구성하기 위해, 심지어는 사회를 부정하기 위해 개인 단위에서 출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7)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코뮤니스트 동맹, 제1 인터내셔널, 제2 인터내셔널, 제3 인터내셔널, 그리고 내부 기회주의에 맞서 싸워 코뮤니스트 강령의 역사적 연속성을 떠안은 모든 좌익 조류와 분파의 “전투를 요구”한다. 투쟁을 요구한다고? 다시 말해, 취해진 입장 자체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입장이 취해진 순간과 상황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맑스주의 좌파가 참여한 정치적, 이론적, 조직적 등의 여러 바리케이드나 연속적인 투쟁에서 맑스주의 좌파와 같은 편에 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도 우리의 역사적 요구와 주장을 확립하기 위해 맑스와 엥겔스를 필두로 한 가장 저명한 투사들을 “언급”할 수도 있다.]

 

코뮤니즘은 화폐, 상품, 사유재산이 없는 사회이며, 따라서 사회 계급, 가족, 국가가 없는 사회이다. 이러한 범주를 폐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국경이 허물어지고, 구성원들의 다양한 능력에 기초하여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계획되며, 노동의 산물이 구성원들의 필요에 따라 분배되는 세계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가치의 영구적인 증가를 목표로 하기에 생산을 위한 생산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와 달리, 코뮤니즘은 현재와 미래 세대의 인간적 필요를 목표로 하므로 반(反)생산주의적이다. 코뮤니즘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생산의 감소와 변형, 그리고 이 체제에서 나타나는 소비의 영구적인 낭비―그 핵심 요소 중 하나는 도시와 시골의 분리이다―를 제거하는 일을 수반한다.

 

[우리는 여기서 표현된 코뮤니즘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코뮤니스트 개념―그것은 계급 원칙에 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을 공유한다.]

 

코뮤니즘은 바람직하고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시의적절하다. 우리가 갈수록 더 많이 경험하고 있는 사회적·생태적 위기, 즉 가치 고갈의 원인은 바로 인간의 발전이 더는 사유재산과 그 논리적 파생물(상품, 화폐, 임금노동, 사회 계급, 가족, 국가)의 존재를 유지할 수 없다는 고백이다.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우리는 가치 없는 돈에 둘러싸여 있으며, 자본가계급은 점점 더 비인간적이 되고, 가족은 영구적인 위기에 처해 있으며, 국가는 내부에서는 민족주의 세력에 의해 그리고 외부에서는 국제 자본의 강압으로해 주권을 도전받고 있다. 자본주의 자체가 자신의 사회적 범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어떤 생산양식도 무에서 생겨나지 않고, 이전 생산양식의 모순을 기반으로 한다. 코뮤니즘은 한 세기 넘게 가능했지만, 오늘날 그 현실성은 명백하고 엄연하다.

 

[우리는 민족주의 세력, 즉 “극우” 세력이 국제 자본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주권에 “도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제국주의는 가장 약한 자본주의 국가의 주권조차 가장 강력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약화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자유론자 등을 포함한 극우파는 국가를 강화하는 데 관여하고 있으며, 국제 자본, 즉 끊임없이 경쟁하는 자본은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민족 국가가 필요하다.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국가의 경우가 그렇지 않은가? 그리고 미국과 경제 정책에서 국가의 역할―보기를 들어 바이든의 경제 정책―이나 국가의 지원과 공공 명령 덕분으로만 발전할 수 있었던 일론 머스크(Elon Musk)와 같은 자본가들을 위시하여, 서방의 “자유 시장” 국가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민족주의” 우익을 국가에 도전하는 세력으로 묘사하는 것은 앞으로의 정치적 이해관계, 특히 그들이 집권하게 될 때의 의미를 오해할 위험이 있다.]

 

4. 세계혁명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 내부에서 노동자의 권력을 확대하는 더딘 입법 작업을 통해, 부르주아 국가 내부로부터 기존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협동조합, 생태마을, 불법 점거 시설 등을 건설하는 더딘 사회 활동을 통해, 그 관계가 국가와 나란히 변형될 수도 없다. 자주관리는 “사장이 없으면 착취도 없다”라는 생각으로 자본주의적 착취를 내면화하는 함정이다. 자본주의를 종식할 유일한 방법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의 권력 기관―계급 의회와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을 수립하고 무기를 들고 부르주아 국가를 파괴하여 프롤레타리아 계급 독재를 확립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의회주의에 대한 계급적 입장을 공유한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계급 “경계선”으로서 그것의 성격이 (자기 관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명시적이지 않다는 사실 이외에도, 그것은 역사적 언급 없이 표시된다.

 

프롤레타리아 봉기와 “계급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한 입장은, 비록 “권력 기관”에 대한 제시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근본적이다. 왜 노동자평의회를 봉기와 권력의 기관으로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가?

 

한편 “권력 기관”으로서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 특히 권력 행사에서 당의 역할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어떤 견해를 채택하든, 당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든 없든, 계급 독재가 지구 전체로 확장되지 않는 한, 인터내셔널, 즉 국제적 당이 “권력 기관”이며, 인터내셔널로서 권력을 장악한다고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 질문은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하며, 오늘날에도 필요(요구?)로 한다. 우리는 IGCL 내에서 이 논의를 시작했지만, 아직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 프롤레타리아 진영 전체가 이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지 않는 한, 어떤 영토에서도 가치를 없앨 수 없다. 다시 말해, 어느 한 나라에서도 사회주의는 없다. 같은 이유로 사회 계급의 존재는 종식될 수 없으며 계급 독재가 필요하다. 봉기가 일어나는 영토 안에서 이 독재는 부르주아 반동과 상업 관계의 발전에 맞서 권위적으로 자신을 강요해야 한다. 이는 첫날부터 노동 시간의 최대한 단축과 배분, 기본 생계 수단의 무상 제공, 생산수단 생산에 대한 투자 중단, 그리고 소비 부분으로 생산수단의 전환을 통해서 시작해야 한다. 외적으로, 퇴보하는 과정에 대한 유일한 안전장치로서 인터내셔널은 반드시 자본주의 세계 전체를 포괄하도록 세계혁명의 확장과 국경 없는 계급 독재의 확장을 추진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인터내셔널은 각국 정당의 연합이 아니라, 단일한 강령을 지닌 단일한 세계 정당이 되어야 하며, 그 다양한 부문, 특히 프롤레타리아 봉기가 승리한 곳들은 거기에 종속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혁명이 국제적으로 승리를 거둔 후에, 가치를 종식하고 결국 사회 계급을 종식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계급으로 나뉜 사회를 관리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인 국가는 역사의 쓰레기통에 버려지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코뮤니즘과 이행기에 대한 비전이 분명하게 제시된다. 특히 계급 독재가 설정해야 하는 목표가 제시된다. 우리가 보기에 우선순위는 다음과 같다. 1) 부르주아지에 대한 계급 독재, 2) 혁명의 확장, 3) 프롤레타리아트―생산양식이 전 세계적으로 사라지지 않는 한 피착취계급으로 남아있다―의 생활·노동 조건의 최대 개선, 4) 권력을 장악한 프롤레타리아트가 내전이나 무장 반(反)혁명에 직면할 것임을 인지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생산을 계획. 우리는 특히 러시아의 경험을 통해, 다소 고립된 국가나 국가 집단에서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행사하는 것은, 혁명을 확장하고 부르주아지가 강요할 내전을 치러야 할 필요성과 프롤레타리아의 생활·노동 조건을 방어해야 할 필요성 사이의 모순, 즉 한편으로는 결핍과 전쟁, 심지어 대규모 파괴의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소비를 위한 생산과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방어와 계급 독재 상태 사이의 모순에 직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인터내셔널이 여러 국가 정당의 연합이 아니라 단일한 강령을 지닌 단일한 세계 정당을 기반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견해를 공유한다.]

 

5. 최소 강령과 최대 강령

 

코뮤니즘은 우리가 실현해야 할 최소한이다. 1917년에 시작된 프롤레타리아트의 첫 번째 세계 공격(그 이전에 1848년 혁명과 1871년 혁명이 있었다) 이후, 코뮤니스트 혁명은 전 세계에서 실질적으로 가능했다. 갖가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요구나 개량주의적 요구가 혁명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인데, 그런 요구는 이미 죽어야 했을 체제를 다시 세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최대 강령, 즉 코뮤니스트 투쟁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끝나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요구를 자신들의 최소 강령의 일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입장―최대 강령, 부르주아적 또는 개량주의적 요구 대 혁명―을 공유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날 이러한 문제에 대해 같은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국주의 시대나 자본주의 쇠퇴 시기, 그리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광범위한 시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입장들이 제시되는 비역사적 방식은 역사적 유물론에 반하는 것으로 맑스주의적 비전이라기보다는 “아나키스트적” 비전에 해당한다. 실제로 바르바리아는 1848년 유럽의 혁명적 물결과 1917년 러시아혁명이 촉발한 혁명적 물결을 동일시함으로써 코뮤니스트 동맹과 맑스가 취한 정치적 입장을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시 말해, 1848년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렇든 저렇든 민족 자본 자체의 설립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자체의 출현과 계급투쟁의 발전을 위해 “부르주아 민주주의” 요구에,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참여할 수 있었고 또 참여해야 했다. 당시 아일랜드와 폴란드에 대한 맑스와 엥겔스의 입장은 이 점에서 매우 명확하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추상적이고 비(非)역사적인 접근법은 논증 자체를 약화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에 자신을 새기고 방향을 정하는 바르바리아의 장래의 능력―윤리적 또는 도덕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계급 간 힘의 관계가 변화하는 현실에 따른 전위로서 능력―도 약화한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정의상 새로운 부르주아 국가의 건설을 촉진하고 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인종이나 민족 간의 대립에 그들의 투쟁 기반을 두어,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열시키고, 제국주의 투쟁에서 “그” 부르주아의 이익을 옹호하도록 강요하며, 국제주의를 “국민 사이의 연대”, 즉 저 부르주아에 대한 대외 지원과 혼동하는, 모든 민족 “해방” 운동에 대한 지원에 반대한다.

 

[동일한 관찰과 비판. 즉, 우리는 입장 자체를 공유하며, 오늘날 이 바리케이드의 같은 편에 서 있다. 그러나 이것은 영원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가치를 지닌 입장이다.]

 

자본주의 국가의 가장 특징적인 조직 형태인 민주주의의 수호는 언제나 그 국가의 강화를 수반하며, 언제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에 반(反)한다. 이 민주주의 수호가 의회 참여나 입법 변화를 촉진함으로써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든, 군부나 파시스트 독재에 맞서 “덜 해로운” 방식으로,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든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 반(反)파시즘은 프롤레타리아트에 중대한 패배였다. 그것은 파시즘의 손에 맡겨진 국가를 지키기 위해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와 연합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국제주의를 포기하고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에서 총알받이로 이용되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는 반(反)혁명의 무기로서 반(反)파시즘이라는 바리케이드의 같은 편에 있다.]

 

노동조합주의는 작업장의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동일하지 않다. 노동조합주의는 노동 요구안에서 전투적 활동을 전문화하는 것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소수의 노동자가 상설기구를 건설하도록 이끈다. 소수의 노동자가 나머지 노동자들에게서 자신을 자율화하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면 자신들을 협상 기구―즉 자본과 중재하는 기구―로 건설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는 의미이다. 노동조합을 통해서든 더욱 수평적인 다른 방식을 통해서든, 노동조합주의는 항상 노동자의 당면 이익과 역사적 이해관계를 분리하는 경향을 내포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이러한 분리를 공고히 하는 형태이다. 노동조합의 기능은 노동력의 가치를 자본과 협상하는 것이므로, 노동조합은 자신의 존재 이유인 임금노동에 반대하는 투쟁에는 결코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다. 노동조합이 혁명에 반대한다면, 그것은 노동조합 지도부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되풀이해서 만들어내는 바로 그 활동 때문이다.

 

[오늘날 … 비(非)프롤레타리아적이고 반(反)혁명적인 조직으로서 노동조합에 관한 한, 의심할 바 없이 우리도 같은 편에 서 있다. 그러나 생디칼리즘에 대한 테제의 비판은 그 자체로 다시 한번 비(非)역사적이다. 그들의 반(反)혁명적 기능이라는 것은 그들의 “자율화”, 그리고 노동력의 협상가들로서, 노동과 자본 사이, 즉 계급 사이의 중재자로서 그들의 기능과 연결되는 것일 터이다. 노동조합과 심지어 생디칼리즘은 그것들이 19세기에 시작될 때부터 프롤레타리아 투쟁과 “모순적”인 것이었을 터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맑스와 당시 노동운동 전체가 지녔던 이해와는 완전히 다르다. 맑스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조합은 사회주의의 학교이다. 노동조합에서 노동자들은 매일 자본에 맞선 투쟁을 직접 눈으로 보기 때문에 사회주의자가 된다.”8) 여기서 노동조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에 맞서 싸우기 위한 조직으로 간주했다. 바르바리아의 테제와는 반대로, 맑스는 노동조합이 당면 이익과 역사적 이해관계 사이, 나아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경제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 사이의 분리가 아니라 연결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문제의 이면에는 계급투쟁, 특히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있어서 중요한 차이가 놓여 있다.

 

“노동계급의 계급투쟁은 경제적 투쟁과 정치적 투쟁이라는 두 가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 내에서 자본주의적 착취를 제한함과 동시에 부르주아 사회 자체와 함께 착취의 철폐를 목표로 하는 단 하나의 계급투쟁이 있다.”9)

 

경제와 정치라는 두 차원은 프롤레타리아트 혁명 투쟁의 필수적인 부분이며, 서로를 “강화”한다. 이는 19세기 노동조합 투쟁에서도 이미 사실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이 문제뿐 아니라 노동조합의 “중재”, 즉 계급 간 중재 문제에 대한 이해와 입장은 노동자 투쟁에 대한 혁명적 개입에 중요한 정치적 함의를 지니고 있다.10)

 

오늘날 노동조합은 더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단일 조직이 아니다.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 계급투쟁의 조건도 역사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고 변화해 왔다. 19세기에 지배적이었던 투쟁 조건에서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을 위한 진정한 방어와 투쟁의 기관이었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 때문에 그리고 그 전쟁을 목적으로, 국가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강화되면서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대중 조직의 영구적인 생존과 투쟁의 가능성은,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점진적으로, 그다음 전쟁 자체 동안에는 잔인하게 억압되었다. 대중 파업의 현상은 기업에 의해 노동조합 투쟁이 점점 더 교착 상태에 빠지고 무력화되는 것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대응이었다. 그리고 제1차 제국주의 세계 전쟁의 필요에서 그리고 그것을 위해 노동조합이 국가기구에 점진적으로 통합되는 것에 대한 대응이었다. 대중 파업, 그 현상, 그 동력 또는 과정은, 오늘날, 2024년에, 전반적으로 전쟁으로 행진해 가고 있으며 위기에 처해 있는 상황에서 더욱 절실한데, 적어도 “효과적”이고자 하는, 즉 가능한 한 유리한 세력 균형을 부르주아지에 강요하기 위하여 확대하고 확장하려고 하는 모든 파업이나 노동자 투쟁은 즉시 금지되고 탄압되기 때문이다.

 

“중재하는 노동조합”과 “국가의 정치적 기관으로서 노동조합” 사이의 이러한 차이는 노동자들의 투쟁, 그 자체의 역동성, 노동조합이 수행하거나 심지어 요구하는 행동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그리고 투쟁의 경제적 차원과 정치적 차원 사이 관계의 측면에서―예를 들어, 경제적·정치적 요구에 대해 취해야 할 개입과 자세에서― 구체적인 함의를 지닌다. 실제로 혁명가들은 경제적 요구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니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 세력에 맞서 투쟁을 이끌고, 최대한 많은 프롤레타리아와 작업장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통일된 요구를 제시하여, 투쟁을 확대하고 일반화하고, 그리하여 가능한 한 유리한 세력 균형을 부르주아지에 강요할 의무가 있다. 경제적 요구의 선택은 투쟁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투쟁을 확장하고 통합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가능한 한 가장 통일된 요구를 확립하기 위한 투쟁은 노동계급의 환경에서 부르주아 세력에 맞선, 더 넓게는 국가에 맞선 정치적 투쟁이 된다.

 

“(대중 파업에서) 경제적 요소들을 서로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치 투쟁이 확산하고 명확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서, 경제적 투쟁은 수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똑같이 확장되고 조직화하며 휘말린다. 이 둘 사이에는 가장 완전한 상호 작용이 있다.”11)

 

결과적으로 오늘날 노동조합의 기능은 이른바 중재자로서, 노동력의 가치를 어느 정도 잘 “협상”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동조합의 역할은, 최소한의 정치적(그리고 이데올로기적) 신뢰성과 유효성을 유지하면서, 자본이 노동력의 가치를 영구적으로 낮추는 데 동참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를 계속 관리하고, 필요하다면 투쟁을 방해하고, 어떤 대중 파업의 동력도 막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자본주의 국가의 완벽한 정치 기관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비난받아야 한다.]

(다음 호에 계속)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혁명인가 전쟁인가」 29호, 2025년

 

 

<주>

 

 

2. http://www.igcl.org/Programmatic-theses-Barbaria#nb1

3. https://archivesautonomies.org/spip.php?rubrique440

4. 변증법적 방법은 형이상학적 방법과 반대된다. 형이상학적 방법은 독단적 계시에 기초한 종교적 개념에서 비롯한, 결함이 있는 사고 형성 방식의 끈질긴 유산으로, 사물의 개념을 불변하고, 절대적이며, 영원하고, 어떤 근본 원리로 환원하 수 있으며, 서로 관련 없고, 일종의 독립적인 생명을 지닌 것으로 제시한다. 변증법적 방법에서는 모든 사물이 움직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움직임 속에서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물의 개념, 즉 우리의 무(無) 속에 사물 자체의 반영조차도 서로 연결되고 관련되어 있다. 형이상학은 이율배반, 즉 서로 대립하는 절대적 용어들에 의해 진행된다. 이러한 상반되는 용어들은 결코 섞이거나 서로에게 도달할 수 없으며, 단지 하나의 존재와 다른 하나의 부재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를 긍정하는 것 외에는, 그것들의 연결에서 새로운 어떤 것이 생겨날 수 없다.

5. Friedrich Engels, The Origin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1884, Marx-Engels, Collective Works, vol. 26.

6. Rosa Luxemburg, Women’s Suffrage and Class Struggle, 1912.

7. The Democratic Principle, Rassegna Comunista, year II, n 18, 28 February 1922.

8. Marx’s interview to the Volkstaat in 1869 republished by La Révolution prolétarienne #26 of1926, translated by us from French.

9. Rosa Luxemburg, Mass Strike, Party and Trade Union, emphasis added by R. Luxemburg (marxists.org).

10. Revolution or War #24 에 실린, 2022년 여름 영국에서 있었던 파업에 대한 ICT와 우리의 논쟁을 볼 것.

11. Rosa Luxemburg, 앞의 책.

 

 

<출처>

http://igcl.org/Programmatic-theses-Barb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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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파산과 혼돈에 직면하여, 계급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자본주의의 파산과 혼돈에 직면하여, 계급투쟁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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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료, 식량, 주택 등 모든 물가가 치솟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해고와 대규모 실업, 불안정한 생활 환경이 만연하고 있다! 곳곳에서 기후 재앙이 발생하고 폭염, 산불, 홍수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고 있다!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 눈앞에서 자본주의는 파괴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온갖 재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지배계급과 그들의 국가 및 정부들은 (좌파든 우파든, '사회주의'든 자유주의든 포퓰리즘이든) 어떤 해결책도 제시할 능력이 없다.

 

극도로 심각한 경제 위기

 

지배계급의 무능함은 자본주의를 괴롭히는 해결할 수 없는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 위기는 1930년대의 위기나 2008년 금융 체제 붕괴 위기보다 훨씬 더 심각할 가능성이 있다. 그 규모는 쇠퇴해 가는 생산 양식의 완전한 실패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동 전쟁은 세계 무역을 교란하고 에너지 가격을 치솟게 해 위기를 더 악화시켰다. 군사적 모험, 관세, 무역 전쟁, 협박 등 "각자도생"의 원칙이 만연하며, 각국 부르주아지는 전 세계적 무정부 상태 속에서 다른 모든 부르주아지와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국제 협력은 무너지고, 세계 시장은 분열하고, 과잉 생산은 심화하고 있다. 모든 국가는 천문학적 수준에 달한 부채에 짓눌려 있으며, 전 세계 군사비 지출은 2조 8,870억 달러에 달한다.[1] 이러한 군비 경쟁은 부채를 증가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모든 사회 복지 예산을 고갈시킨다.

 

노동자들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은 거세지고 있으며,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다. 이것이 현재와 미래의 모든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이다. 실업률은 급증하고 불안정 고용은 확산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과 불안정 고용률은 특히 청년층에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유럽 자본주의의 기치인 독일조차 1945년 이후 전례 없는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에 따라 노동계급은 빈곤으로 내몰리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특히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폭스바겐(Volkswagen)은 2030년까지 10만 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감축할 계획이고, 보쉬(Bosch)는 1만 3천 명을 감원할 예정이고, 메르세데스(Mercedes)는 노동 시간을 30% 또는 심지어 40%까지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고갈된 의료 시스템과 연금에 대한 추가적인 공격이 임박했다. 일각에서는 이미 정년퇴직 나이를 67세에서 70세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투쟁 정신의 부활

 

이러한 암울한 미래와 재무장을 위한 막대한 희생에 직면하여 노동자들의 분노가 고조에 달해 있다. 2022년 "분노의 여름"에 영국 노동계급(실업자, 취업자, 은퇴자, 생산직, 사무직을 막론하고 모든 노동자)은 수십 년간의 무기력함과 체념 끝에 엄청난 투쟁 정신을 보여주며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분노와 투쟁 정신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영국 노동자들이 투쟁을 이어가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연금 개혁 반대 운동(2023년)의 하나로 대규모 시위를 벌였고, 이후 캐나다와 미국(2024년), 벨기에(2025년)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시위가 확산했다.

 

노동계급의 투쟁 정신은 여러 곳에서, (아직은) 산발적으로 표출되고 있으며, 특히 투쟁의 필요성과 수단, 그리고 사회의 전망과 미래에 의문을 제기하는 소수 집단 사이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에서 파업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러한 투쟁 정신은 여전히 산발적이고 주저하는 상태이다. 노동계급은 여전히 무력감을 느끼며 투쟁의 주도권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다양한 형태의 시위가 공존하고 있지만, 공통의 국제적 이익을 수호하는 단일한 계급 운동으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여전히 ​​사회적 합의주의 논리에 취약하며, 직장, 부서 또는 특정 부문 내에서 고립되어 있다.

 

한 걸음 전진

 

그러나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에어버스(Airbus)에서는 2026년 8월 25일부터 9월 4일까지 헤타페, 세비야, 일레스카스, 알바세테, 카디스 등 여러 사업장의 노동자 1만 4천 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이 투쟁은 노동자들 사이의 강력한 연대 의식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노동자들은 대규모 총회를 조직하고, 쟁점을 토론하며, 집단적인 결정을 내리는 등 스스로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에어버스의 투쟁은 고무적이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노동계급은 더 나아가야 하며,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을 포함한 부르주아 세력(자본의 좌파)이 현장에서 조장하는 분열에 분명히 맞서야 한다. 특히 이들은 노동자들을 직장 내에 고립시키거나 선거와 같은 민주주의 제도, 그리고 국가 수호에 관심을 돌리도록 끊임없이 노동 운동을 방해해 왔다.

 

투쟁을 우리 손으로 직접 이끌자

 

함께 투쟁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전체 노동계급이 직면한 과제이다. 노동계급은 자신을 단결된 계급으로 인식함으로써 독자성을 확립해야 한다. 고립된 상태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오히려 총회를 모든 노동자에게 개방하고 다른 부문이 운동에 동참하도록 촉구하여 힘의 균형을 변화시켜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쟁을 초기 단계부터 확장하고, 모든 곳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 소규모 사업장과 대규모 사업장 등 모든 부문의 연대를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자신들에 대한 공격과 열악한 노동 조건에 맞서 싸우면서, 심화하는 위기 속의 착취와 고난에 맞서기 시작했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에 맞선 혁명적 투쟁을 향한 작은 문을 열고 있다. 코뮤니즘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며,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걸림돌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그 길만이 인류에게 미래를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2026년 9월 14일

WH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우리는 또한 환경 파괴로 인한 막대한 비용을 고려해야 한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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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9 기후정의행진] 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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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원인은 자본주의
기후정의는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

 

 

이재명 정부의 '3대 메가프로젝트'는 막대한 전력이 소모되며, 발전소 증설과 온실가스 배출의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자본에는 총력 지원과 막대한 특혜를, 노동자에겐 노동권 파괴와 불평등 심화를 안겨줄 것이다.

 

•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디지털 경제를 아우르는 거대 빅테크 기업들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3%를 배출하는 데, 화석연료를 탐욕스럽게 소비할 뿐만 아니라 4세대 원자력 발전의 대규모 사용을 준비 중이다.

 

• 세계 인구의 10%인 부유층이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절반을 배출하는 반면, 세계 인구의 50%에 달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10%만을 배출한다.

 

• 지난 2년간 세계 최대 기업 722개의 1조 달러 추가 이익 중 25%(2,500억 달러)가 화석연료에서 나왔다.

 

• 집약적 축산업은 전 세계에서 매일 우리 식탁에 오르는 육류, 유제품, 달걀을 생산하는 주된 방식인데, 가장 오염이 심한 산업 분야 중 하나이며, 2024년에는 전체 온실가스의 15%를 배출했다.

 

• 동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에서 기후위기로 인해 1억 1,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 없이 살고 있으며, 식량 불안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모든 전쟁과 분쟁은 인류를 학살할 뿐 아니라 지구 온난화에 크게 기여한다. 군사 활동은 평시와 전시 모두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군사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출처> Il manifesto, leftcom.org, oxfamitalia.org, altreconomia.it

 


기후 변화, 지구 온난화, 그리고 인위적인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가 원인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노동자민중의 몫이지만, 자본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재앙과 고통까지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 

 

약탈과 착취의 자본주의 생산이 지속된다면 인류를 포함한 종 전체가 탈출구 없는 멸종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 기후위기, 경제위기를 비롯한 각종 위기와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키는 자본주의의 폭주를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전 세계의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인류, 생산 및 환경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건설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 자본주의는 이윤을 위해 지구를 파괴하고 노동자를 희생시킨다!
●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노동자 희생과 지구 파괴를 멈출 수 있다!!
● 기후위기, 환경파괴, 전쟁, 경제위기 :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혁명을 통한 코뮤니즘만이 지구와 인류를 살릴 수 있다!!

 


2026년 9월 19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한국위원회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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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노동절: 자본주의의 잔혹함이 심화하고 있다. 해결책은 독립적인 계급투쟁뿐이다.

2026년 노동절: 자본주의의 잔혹함이 심화하고 있다. 해결책은 독립적인 계급투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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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북미 노동절; 올해 역시 노동자 탄압, 파업 금지, 노동조합 방해 공작, 이주 노동자 탄압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자본가계급이 자행하는 이러한 공격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불충분한 이윤이라는 국제적 위기에 대한 대응이다. 문제는 한 명의 악덕 기업주나 정치인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피와 땀과 눈물로 대가를 치르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이다. 그러나 전 세계 노동계급은 오직 단결된 계급으로서만 결정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절은 투쟁적이고 급진적인 5월 1일 아닌 9월 첫째 월요일이다. 이는 노동조합과 자본가정권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온건하고 평화로운 축제의 형식을 띤다. <역자>)

 

노동자 탄압

 

전 세계적으로 자본가들은 노동계급 동지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설립된 미국 국토안보부(DHS)의 예산은 수십억 달러 규모로 대폭 증액되었고, 권한도 크게 확대되었다. 감시 체계의 전면 개편, 개인 정보 접근 권한 확대, 그리고 내부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국내 테러를 진압할 수 있는 재량권 확대는 이 기관의 권한을 크게 강화했다.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동안, 이민세관집행국(ICE), 국경순찰대, 그리고 국토안보부(DHS)는 주요 도시 전역에서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체포하는 잔혹한 단속을 벌였고, 주 방위군과 해병대는 연방 부처의 보안 강화를 위해 동원되었다. 한편, 많은 비난을 받는 지역 경찰은 그 와중에도 노동자 추방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체포했다. 지금까지 4명이 거리에서 살해당했고, 수천 명이 부상당했으며, 이민세관집행국(ICE)과 국토안보부(DHS)의 수용소에서 적어도 52명이 사망했다. 캐나다에서는 카니(Carney) 행정부가 대규모 채용 캠페인의 일환으로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RCMP) 예산을 증액하고, 사법 제도를 개편하고, 정부 기관에 훨씬 더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이러한 현상이 북위 48도 이남 지역이나 도널드 트럼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반(反)이민 운동에 불을 지핀 것은 우연한 비극의 연속이 아니었다. 세계 체제들이 치명적인 민족주의 숭배로 빠져드는 가운데, ‘책임 전가’는 부르주아 국가의 대리인들이 권력을 유지하고 자본주의 모순에 내재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데 가장 유용한 전술 중 하나이다. 이는 부분적으로 권력자들이 국가 자본의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자본주의의 경제적, 사회적 병폐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에서만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민 단속 요원들에게 납치당했다. 어떤 경우에는 소규모 사업체의 직원 전원이 구금되기도 하는데, 이는 개별 소부르주아의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권력자들의 의제를 실현하고 분열을 조장하고 민족주의 감정을 부추기는 수사를 통해 노동계급을 더 분열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값싼 노동력을 착취하면서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를 분열시키고, 이민자 유입을 마음대로 통제하려는 시도는 크고 명백한 모순을 낳는다. 민주주의의 환상이 무너져 내릴수록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전술은 점점 더 잔혹해지고 있으며, 미국과 유럽 같은 곳에서는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추방하겠다는 위협이 현실화하고 있다.

 

현재 대규모 강제 추방, 때로는 "재이주"라고도 불리는 이 주장은 대부분 우파에서 나온다. 그러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민주주의 정부든 자유주의 정부든 모두 집권하면 극단적인 추방 정책을 채택해 왔다. 설령 2028년 공화당 집권이 끝난다고 해도 추방 건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은밀한 방식으로, 마치 관례를 따르는 듯한 행정 방식을 유지하면서도 잔혹한 수준의 강제 추방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과 오바마 행정부 모두 트럼프 행정부에 버금가는 추방 정책을 펼쳤으며, 트럼프의 두 번째 임기 첫해에만 90만 건 이상의 강제 추방이 이루어졌다. 결국, 미국 부르주아 국가의 양 진영 모두 수십만 명의 이주 노동자들의 삶을 뿌리 뽑고 추방해 왔으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파업 금지

 

1926년 제정되어 여러 차례 개정된 미국 철도노동법(RLA) 도입 이후, 의회가 철도 노사 교섭에 개입한 19건의 사례는 모두 파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최근 사례인 2022년에는 노동자들이 이전에 거부했던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강요당했다. 이 법안은 “미국 역사상 가장 친(親)노동자적 대통령”으로 불리는 인물과 “사회주의자”를 자임하는 의원들도 서명하여 통과되었다. 파업 발생 원인 중 하나는 과도한 대기 근무 정책으로 인한 안전 문제였다. 철도 노동자들에게 이 합의안이 강요된 지 두 달 후, 오하이오(Ohio)주 이스트 팰러스타인(East Palestine)에서 열차 탈선 사고가 발생하여 심각한 유독 물질 유출 사태가 벌어졌다.

 

최근 캐나다에서 발생한 파업들은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캐나다 우체국(Canada Post)과 에어 캐나다(Air Canada)의 사례는 파업이 자본가계급에 너무 불편한 상황이 되면, 주저 없이 업무 복귀 명령을 내린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그러한 명령을 거부한다고 주장하더라도, 파업을 주도한 노동조합들은 법적 소송을 제기(파업이 아닌 법적 분쟁)하여 파업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기세를 꺾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퀘벡(Quebec)주에서 '공익에 반(反)하는' 파업을 금지하려는 움직임까지 더해져, 노동계급을 굴복시키기 위한 통일된 전술이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의 법적 테두리 밖에서, 그리고 노동조합의 통제를 벗어나 투쟁해야 한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 계급의 역사는 이러한 방향을 제시하는 풍부한 교훈들로 가득 차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비공인(와일드캣) 파업 물결부터 1970년대 퀘벡(Quebec)의 파업 위원회에 이르기까지, 노동계급은 국가와 그 산하 기관들과 직접 맞서 싸울 때 가장 큰 성공과 투쟁력을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승인 없이 파업 현장에서 독자적으로 파업 전술을 결정하는 것과 같은 작은 사례조차도 우리 투쟁의 주도권을 잡는 데 있어 중요한 한 걸음이다. 이러한 행동이 없다면, 우리의 운명은 밀실에서 변호사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노동조합 대 노동자

 

전 세계적으로 자본가계급은 심각한 이윤율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윤을 얻기는 어려워지고, 노동계급에 전가해야 하는 손실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자본가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노동자들에게 손실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제 교섭은 회사에 불만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다가오는 세계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에 점점 더 많은 (불리한 또는 해로운) 것을 요구할 것이 예상된다.

 

미국과 캐나다의 노동조합들은 수많은 방식으로 국가 체제에 깊숙이 통합되어 있다. 이들은 전미노동관계위원회(NLRB)와 같은 정부 기관을 통해 조직적으로 운영된다. 이러한 기관들은 분쟁이 항상 정부 기관과 분리된 채 진행되도록 보장하고, 부문 간 연대투쟁을 막고 연대파업을 범죄화한다. 따라서 전미자동차노조(UAW) 지도부가 2028년 "총파업"을 인위적으로 선언한 것(이는 자본가들에게 2년이라는 시간을 벌어주는 셈이다. 마치 계약 만기 시한의 문제일 뿐, 노동자들의 실제 투쟁 의지가 극에 달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에서부터 트럭운전사노조(Teamsters)와 항만노조(Longshoremens) 위원장들이 트럼프의 민족주의적 정책을 지지하는 것까지, 노동조합이 자본가계급에 충성하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노동조합은 노동계급을 자본가계급의 여러 분파에 이용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의도적으로 분열·약화시켜 자신들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

 

 

가장 "급진적인" 노동조합 운동조차도 이러한 노동조합주의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자본주의에 맞선 정치적 수사와 투쟁하는 노동계급의 필요성을 주장하지만, 이러한 '급진적 노동조합'들은 여전히 ​​노동력 매매 협상의 틀에 갇혀 있다. 그곳에서의 성공은 결국 그들을 전통적인 노동조합과 유사하게 만들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세계산업노동자연맹」(IWW)조차 '파업 금지' 조항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이를 증명한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기성 체제에 도전하려는 진보-좌파들과 마찬가지로, '급진적 노동조합'들은 노동계급을 권력 장악을 향한 방향성 없이 영구적인 반대 상태에 묶어둔다. 게다가, 노동조합이 자본주의 국가와 맺고 있는 수많은 법적·정치적 유착 관계 때문에, 이들은 결국 대형 노동조합의 모델을 따를 수밖에 없게 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은 노동자들이 제국주의 국가와 그 모든 정치적 목표를 위한 꼭두각시로 전락한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부, 기업, 노동조합을 결합한 "삼자 모델"은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계급 말살이라는 수십 년간의 낡은 전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역시 조국 방어를 위해 노동조합을 총동원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파업 금지와 단체교섭 금지라는 제약 속에서도 생산을 유지하며 전쟁 수행을 지원하고 있다.

 

결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국가 기관에 편입시키고, 조합원들에게 점점 더 불리한 교섭 조건을 강요하는 것처럼, 결국 노동계급을 제국주의 무대에서 국가 자본의 하수인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처럼 노동조합이 계급투쟁을 방해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독립적인 계급투쟁의 절대적 필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국가 주도의 방식이나 법치주의 방식, 또는 비정치적이고 오로지 경제적 성격만을 지닌 모든 노선에 단호히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정치와 코뮤니스트 강령을 의미한다.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이미 파업위원회, 공장위원회, 소비에트, 슈라, 노동자평의회 및 총회와 같이 우리 계급의 영역에서 프롤레타리아 정치권력의 기반이 되는 진정한 계급 전체를 아우르는 기구들을 만들어 왔다.

 

지난 200년 동안 투사들이 얻은 교훈을 되새겨보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 계급으로서 행동해야 하며, 지배계급인 자본가계급이 제시하는 모든 해결책을 거부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배계급은 우리에게 수많은 정당 중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지만, 결국 그 정당들은 노동계급을 공개적으로 공격하면서 이를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그들은 국경 폐쇄를 주장하지만, 금융 자본은 지리적 경계를 알지 못한다. 한편, 개혁주의자들의 해결책은 단지 경비원만 교체할 뿐이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DSA)와 같은 사회민주주의 조직들은 근본적으로 부패한 체제를 개혁할 수 있다는 허황된 희망을 심어줌으로써, 진정한 노동계급의 권력을 저지하기 위한 대안 전략에 불과하다. 캐나다의 경우, 브리티시컬럼비아(British Columbia)주와 매니토바(Manitoba)주에서 집권한 개혁주의 신민주당(NDP) 정부는 노동계급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공약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그 공격을 묵인해 왔다.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답은 자본주의 권력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강령과 정당이 이끄는 가운데, 지배적인 부르주아 질서를 전복하는 혁명에 있다. 혁명적 코뮤니스트의 과제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 노동계급의 모든 구성원과 함께 투쟁에 참여하여 국제적 차원에서 세계 혁명당(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것이다. 세계혁명당은 자본주의에 맞서 코뮤니즘, 즉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로서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국가도 계급도 없는 사회를 위한 혁명 운동을 이끌어갈 것이다.

 

2026년 9월 7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계급투쟁(Klasbatalo)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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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는 우리를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는 우리를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다. 

오직 전 세계적인 계급 운동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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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비롯한 코뮤니스트 좌파 단체들이 몇 년 전 예견했듯이, 해결할 수 없는 경제 위기는 자본주의 지배자들을 경쟁으로 몰아넣고 있으며, 이는 훨씬 더 광범위한 갈등의 전조가 되고 있다. 수많은 “휴전”과 “평화 협정”이 계획되거나 실행되었음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4년이 넘었고, 팔레스타인 전쟁은 거의 3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 이후로 위기는 더욱 심화했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서 전 세계적인 전쟁의 불씨는 새롭고 극적인 국면에 접어들었다. 거의 6개월 동안 중동 전역에 미사일과 드론이 쏟아지면서 수천 명이 사망했고, 걸프 국가들의 에너지 기반 시설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석유, 가스, 비료 등의 세계 주요 무역로 중 하나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봉쇄로, 이어 미국의 봉쇄로, 그리고 다시 이란의 봉쇄로 인해 차례로 폐쇄된 사실이다.

 

제국주의 전쟁은 단순히 군사력뿐만 아니라, 제재, 관세, 기타 금수 조치와 같은 “경제적 무기”를 통해서도 치러진다. 미국은 오랫동안 이란 정권 교체를 시도해 왔으며, 지난 반세기 동안 이란 이슬람 공화국에 제재를 가했을 뿐만 아니라, 해당 제재를 위반하는 국가나 기업에 대해 (자금 접근 및 세계 금융 시스템 이용 차단 등을 통해) 벌금과 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해 왔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주요 제국주의 경쟁국인 중국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한 더 광범위한 제국주의 투쟁의 일환이다. 이란으로부터 중국으로 공급되는 석유를 장악하는 것은 미국에 큰 이익이 될 것이며, 베네수엘라에서 펼쳤던 전술의 재현이 될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 시도가 실패했으며, 이란의 정권 교체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 가운데 “평화 회담”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경제 전쟁에서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강력한 반격 무기를 발견했다. 그러나 이 공격은 전 세계에 미치는 전쟁의 파급 효과를 더 확대하고 있다. 일본 석유산업의 공급 차질부터 아프리카 농부들이 올해 작물 재배에 필요한 비료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그 결과는 참담하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선박들은 움직이는 속도가 더딘데, 이는 온대 해역에 너무 오래 머물러 선체에 해조류와 따개비가 달라붙은 탓도 있지만, 이란 해군에 의해 나포되거나 봉쇄될 위험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 국제 무역의 통로였던 이 해협은 이제 이란의 통행료 징수 해로로 변해가는 듯하다.

 

산유국들은 석유 수송 경로를 변경하거나 석유 및 가스 수출에 미치는 타격을 완화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라비아반도를 가로질러 홍해의 얀부( Yanbu) 항구로 원유를 수송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석유 수송 경로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탈퇴했다. 이는 해협이 재개방될 때 생산량 감소분을 쿼터 제한 없이 만회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이에 따라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미국과의 관계가 더욱 긴밀해졌다. 인도와 중국 같은 원유 수입국들은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높여야 했다(인도는 미국의 명시적인 승인 아래, 중국은 마지못해). 기반 시설 피해로 인해 무역이 내일 당장 재개된다 하더라도 회복에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 이번 에너지 충격은 2022년 에너지 위기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처럼 인플레이션에 즉각적이고 극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는 결국 노동계급의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질 것이다. 단기에서 중기적으로 볼 때, 석유 및 가스 공급망에 크게 의존하는 식료품과 휘발유 같은 기본 생필품 가격은 계속해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아랍에미리트가 탈퇴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카르텔은 ‘페트로달러’ 체제의 일부이다. 이 체제는 전후 호황이 끝나고 이윤율이 하락함에 따라 미국이 전후 자본주의 질서의 기반이었던 금본위제를 포기하고 달러 본위제로 전환해야만 했던 시점에서, 전후 세계 경제 체제의 주요 축이 되었다. 이로써 미국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달러를 자유롭게 찍어낼 수 있었다. 미국이 이러한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달러가 세계 자본주의, 특히 석유 거래의 주요 통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며, 그 대가는 전 세계가 치렀다. 석유 판매 수익을 달러로 환산하여 미국 금융 시스템에 재순환시킴으로써, 산유국들은 막대한 이익을 얻고, 달러는 세계 기축통화로서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미국이 누리는 "과도한 특권"인 화폐 발행 능력은 미국이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이 군사력은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며 미국과 달러 패권에 대한 모든 위협을 진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적어도 원래 계획은 그랬다. 그러나 실제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방식으로 석유 자금을 재순환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제 석유 최대 수입국은 아시아 경제권이며, 미국은 상당 부분 자급자족하고 있다. 걸프 국가들은 석유 수익을 미국 은행이 아닌 국부 펀드에 투자하는 추세이다. 이란과의 전쟁으로 인해 달러 패권 또한 더 위협받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려는 유조선에 통행료를 달러가 아닌 이란 리알(rial)이나 심지어 위안화(yuan)로 징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제국주의 경쟁국, 특히 중국에는 세계 무역, 특히 석유 무역에서 달러의 영향력을 약화하는 것이 미국의 세계적 패권을 무너뜨리는 핵심 전략이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중국에 원유 대금을 위안화로 결제해 왔으며, 이란 전쟁은 달러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을 가속할 것이다. 스콧 베센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이 6월 양해각서(MOU)에 따라 합의된 원유 판매 대금을 달러로 지불할 것을 이란에 헛되이 요구한 것은 미국의 우려를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 중앙은행은 다른 기관들과 협력하여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스위프트(SWIFT, 국제은행 간 금융통신협회)에 필적할 만한 국제 결제 시스템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스위프트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이 시스템을 통해 미국의 패권에 적대적이라고 간주하는 국가는 물론 중국인 개인에 대해서도 제재가 가해져 왔다. 그러나 위안화는 여전히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 금융 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신뢰성 문제를 안고 있으며, 아프리카와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몇 건의 거래만으로는 달러화의 영향력을 흔들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베네수엘라, 쿠바, 콜롬비아 선거에 ​​개입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위안화는 여전히 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란 전쟁은 미국과 이스라엘 모두에 전략적 실패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양국 모두 이란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역시 우월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헤즈볼라나 하마스를 거점에서 몰아내지 못했다. 미국에 가장 큰 타격은 '세계의 경찰'이라는 이미지가 훼손된 점이다. 만약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그 기반이 되는 무역로 및 공급망을 유지할 수 없다면, 누가 그 역할을 대신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명확하지 않고, 분쟁의 양상 또한 불분명하지만, 이 문제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다.

 

요컨대, 우크라이나와 이란에서 벌어진 전쟁은 모두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세계 제국주의 투쟁의 한 단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쟁 추동력은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경제 위기에서 비롯된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윤율 하락 경향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존 자본의 가치 창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결국 석유나 희토류와 같은 전략 자원은 물론 무역로, 전략적 요충지를 장악하여 경쟁국이 이를 확보하는 것을 막으려는 시도로 이어진다.

 

이러한 전쟁과 세계 경제에 대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식 시장(군수 산업 관련 주식뿐 아니라)은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스페이스X(SpaceX)의 기업공개(IPO)를 통해 세계 최초의 1조 달러 부자로 등극했다. 스페이스X는 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AI 기술과 회사 수익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명확하지 않다. 오픈AI(OpenAI), 앤트로픽(Anthropic), 엔비디아(Nvidia) 등은 모두 가장 낙관적인 수익 전망을 바탕으로 수십억 단위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투기 거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AI 투자자들의 열정은 조금도 식지 않고 있다. 그들이 금전적 이익을 좇는 데 열광하는 이유는 수익성 있는 산업 투자처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이해할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이 과대광고를 믿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것이 대부분 허황된 것이고 AI 사용으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투자 손실을 상쇄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250년에 걸친 미국 역사의 정점은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 그 자체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AI 도구들이 단조로운 일자리를 대체하여 실업률을 높이고, 최적화된 감시 및 무기 시스템을 통해 더욱 억압적인 국가 권력을 강화하는 것 외에 어떤 용도로 사용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한편, 영국에서는…

 

영국은 심각한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지난 10년 동안 일곱 번째 총리가 사임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키어 스타머(Keir Starmer)는 2024년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되었는데, 이는 "망가진 영국"과 지난 13년간 집권했던 보수당에 대한 광범위한 불만을 반영한 것이었다.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은 집권 이후, 변화를 약속했던 이전 정부들처럼 방향성을 잃고 스캔들에 휩싸였다. 복지 혜택과 공공 서비스에 대한 삭감 및 위협은 국민적 반감을 샀다. 스타머가 과거 신노동당의 "어둠의 왕자"이자 제프리 엡스타인(Jeffrey Epstein)의 측근으로 알려진 피터 맨델슨(Peter Mandelson)의 임명에 관여했는지에 대한 의혹은 그의 이미지를 더 실추시켰다. 더욱 강경한 이민 정책 시행 시도, 가자지구 학살 항의 시위대 탄압, 트랜스젠더 권리에 대한 정책 번복 등은 그들의 기존 지지 기반이었던 진보 및 좌파층을 등 돌리게 했지만, 그들이 끌어들이려 했던 우파 비평가들을 만족시킬 만큼 극단적이지는 않았다. 스타머의 후임으로는 그레이터 맨체스터의 전(前) 시장인 앤디 번햄(Andy Burnham)이 선출되었다. 비교적 인기 있는 정치인인 그는 남북 격차 해소를 내세우는 것 외에는 전임자보다 나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올여름에도 영국 전역에서 이제는 익숙해진 인종 폭동이 다시 일어났다(가장 최근에는 북아일랜드에서 전직 준군사조직원들이 ‘불법’ 여부와 상관없이 ‘이민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집과 차량을 불태우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는 영국 자본주의의 심각한 실패로 인해 이민자들이 고통받는 또 다른 사례일 뿐이다. 정치 지형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로, 경쟁 정당인 극우 포퓰리즘 정당 '재건영국당(Restore Britain)'은 소수 민족의 "재이주"를 직접적으로 주장하며 '영국개혁당(Reform UK)'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혹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본주의가 우리를 전쟁과 기후 파괴로 몰아가는 흐름에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하고 있다. 산발적인 저항은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주로 국민보건서비스(NHS)나 대학과 같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어 있다. 이 두 분야의 지속적인 위기는 정부 재정 지원 삭감의 결과이며, 이는 보건 및 사회복지 서비스의 민영화와 교육의 시장화를 부추기고 있다. 그 결과, 직원들의 근무 환경은 악화하고 제공되는 서비스의 질은 점점 더 떨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더 광범위한 저항의 시작점이 될 수 있지만, 극복해야 할 심각한 장벽들이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의사와 강사들 사이에서 여전히 만연한 '자신의 직업만 지키려는' 사고방식이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노동계급이 직면한 과제는 막대하다. 영국에서 나타나는 문제들은 영국만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모든 주요 중심지에서 반복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전 세계 노동계급이 지난 100년간의 반(反)혁명의 무게를 극복하고 자본주의 전복을 향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계급이 자신의 투쟁성을 재발견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힘을 지닌 국제적 사회 세력으로서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이 과정의 일환으로, 우리는 혁명가 조직, 즉 자본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정치적 저항으로 단결하여 진정한 계급적 대응을 조직할 수 있는 가장 계급의식이 투철한 노동자들의 조직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혁명 단체들은 규모가 작고 흩어져 있으며 전체 노동계급과 거의 접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전적으로 우리 손에만 달린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계급 저항의 부활에도 달려 있다. 우리는 전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혁명가로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이다.

 

계급의식을 가진 투사로서 우리의 임무 중 하나는 이러한 혁명적 전망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현재 노동자들은 혁명 단체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며, 설령 안다고 해도 자본의 좌파 정당(각종 노동·진보·좌파 정당) 및 단체들과 우리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설명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노동자가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끼거나 심지어 자본주의가 미래를 보장할 수 있다는 점조차 의심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해답은 사회의 혁명적 재구성을 위한 노력보다는, 운명론으로의 후퇴나 정치적 새로움(신기루)의 추구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역대 구원자들이 우리 모두에게 닥친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음이 드러나더라도, 또 다른 사기꾼이 나타나 자본주의를 구원하겠다는 또 다른 계획을 내세워 대중의 여론을 사로잡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자본주의 중심지조차도 대다수 노동계급은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이 우리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대전으로 치닫는 추세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방식에서 비롯된 산물이며, 오직 자본주의를 전복해야만 또 다른 세계적 대재앙을 막을 수 있다. 오직 세계 자본가계급에 맞선 세계 노동계급의 대대적 운동만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수 있다. 노동계급이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자본주의 전복을 시도한 지 벌써 100년이 넘었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노동계급이 자체적인 대중 의사결정 기구(노동자 평의회, 즉 소비에트)를 창설했고, 한때 세계 혁명을 고수하던 혁명 조직(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주도한 볼셰비키당)이 존재하기도 했다. 이 시도의 실패는 100년간의 반(反)혁명을 낳았고, 이는 다시 국제주의 혁명가들의 분열과 전 세계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저하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혁명가들은 자본주의가 왜곡한 역사적 주장, 즉 모든 노동자 정치 조직이 독재로 이어진다는 허위 주장을 일축해야 한다. 오히려 과거의 교훈을 바탕으로 오늘날 노동계급을 위한 강령을 갖춘 세계혁명당의 필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졌다. 그중 핵심은 노동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과업을 결코 타인에게 위임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심지어 자신의 정당에도 권력을 넘겨주지도 않는다”라는 것과 “사회주의는 소수의 당에 의해 실현될 수 없으며… 수천만 명의 노동자들이 스스로 실천하는 법을 배울 때만 실현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자본가계급은 공개적으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국방비가 증액되고 있으며, 이에 필요한 자금은 사회 복지 지출 삭감을 통해 마련되고 있다. 동시에 영국과 유럽의 지배자들은 징병제를 공공연히 요구하며, 노동자들에게 전쟁을 위해 목숨이나 생계를 희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 모든 전쟁의 궁극적인 희생자는 전 세계 노동계급, 즉 이 체제의 경제적 착취의 기반이 되는 대다수 노동계급이다. 국제주의자들은 전반적인 긴축 정책과 전쟁 추진 사이의 연관성을 밝혀내야 한다. 이러한 메시지를 더 넓은 노동계급에 전달하기 위해 우리는 ‘전쟁이 아닌 계급 전쟁으로(NWBCW)'라는 운동에 참여해 왔다. 이 운동은 다양한 경향의 국제주의자들로 구성된 위원회들이 다음 다섯 가지 원칙을 바탕으로 함께 활동하는 것이다.

 

● 자본주의, 제국주의, 그리고 모든 형태의 민족주의에 반대한다. 어떠한 민족 부르주아지도, ‘덜 나쁜 악’도, 그리고 어떠한 새로운 국가도 지지하지 않는다!

● 국가, 임금 노동, 사유 재산, 화폐, 그리고 이윤 추구를 위한 생산이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세상으로 대체되는 사회를 위하여!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 다가올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맞서 투쟁하자!

● 노동계급의 자율적인 투쟁을 위하여,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 평의회의 결성을 위하여!

● 억압과 착취에 맞서, 노동계급의 단결과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의 연대를 위하여!

 

우리는 모든 국제주의자가 자기 배경에 상관없이 이러한 위원회에서 우리와 함께 활동하거나, (해당 지역에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유사한 모임을 결성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국제주의자들이 (자신을 맑스주의자, 아나키스트, 혹은 그 밖의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우리의 경제 분석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혁명 조직의 본질에 대해 우리와 유사한 관점을 가지고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도구로 삼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투쟁에 개입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전쟁으로 치닫는 경향과 환경 위기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공포를 우리 모두 매일 겪는 일상적인 시련(저임금과 착취 심화, 공공 서비스 축소, 실업, 열악한 생활 환경)과 연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고통을 가중하는 것이 본질이며, 이러한 고통은 개인적으로는 생활 및 노동 조건의 악화를 통해 느끼며, 집단적으로는 지배계급이 더는 운신의 폭을 좁히지 못하고 우리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때 느낀다. 계급전쟁은 현실이며, 우리는 매일 그것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는 저항하기 위해 조직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는 혁명가들이 이를 실천할 방법이다. 자본주의가 우리를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는 데 동의하는 모든 이들에게 우리와 함께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고, 전쟁과 억압, 착취가 없는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조직 활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한다.

 

 『혁명적 전망』 28호(제4권) 사설. 2026년 5월 맨체스터에서 열린 CWO 연례총회에서 논의한 관점들을 요약한 글.

 

2026년 7월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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