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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전쟁과 노동자계급

환율전쟁과 노동자계급       

 

by 이형로

 

 

 

1. 환율전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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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 규모로 격렬하게 벌어진 환율갈등은 모두 두 차례다. 첫 번째 갈등의 정점은 1971년 8월의 ‘닉슨쇼크’였다.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달러를 금과 바꿔주는 금태환의 정지를 전격 선언해, 전후 새로운 국제통화 질서로 자리 잡았던 ‘브레턴우즈 체제를 무너뜨렸다. 제2차 갈등의 산물은 1985년 9월의 ‘플라자 합의’였다. 주요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뉴욕의 플라자 호텔에 모여 달러화 약세 유도를 결정했다. 두 번의 환율전쟁 직후 달러화는 일본의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공통적으로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그리고 2003년 7월의 ‘G7 두바이 합의’는 앞의 두 차례에 비해 충격 강도가 약해 환율전쟁에 비유하기는 적절치 않지만, 달러화가 엔화와 유로화에 대해 장기간 약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2002년 1월부터 2008년 2월까지 6년2개월간을 ‘제3차 달러약세기’로 부르기도 한다. 2008년 세계 자본주의 체제적 위기가 최악의 국면을 일시적으로 벗어난 직후인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달러 약세가 앞으로 더욱 본격화해서 장기간 지속된다면 ‘제4차 달러약세기’가 되는 셈이다.

 

 

 

2. 환율전쟁의 배경 

 

이번 환율갈등도 마찬가지로 미국이 갈등을 주도하고 있다. 갈등의 주요 배경은 2008년  금융위기를 촉발시켰고 지금까지 그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취약한 미국경제다. 미국이 자국의 경제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기축 통화 국으로서 가장 손쉽게 쓸 수 있는 방법인 ‘달러 가치 떨어뜨리기’라는 충격요법을 제 입맛대로 동원해온 것이, 1970년대 이후 40년간 되풀이되고 있는 세계자본주의 환율갈등 역사의 본질이다.

 

저 성장률, 고 실업률, 주택가격 하락, 은행도산, 재정적자 확대, 대 중국 무역마찰 확대 등 미국경제는 이미  실질적인 경기침체 국면에 빠졌고, 일본을 비롯한 스페인,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 이태리 등 유로 존 역시 성장률이 정체되거나 역성장 하는 등 세계자본주의는 다시 한 번 깊은 침체로 접어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2007년 시작된 최근의 세계자본주의 위기는 이전과는 다른, 자본주의 쇠퇴기의 마지막 국면에 접어들었음을 나타내주고 있는데 환율전쟁은 바로 그 초입부터 시작되었다. 결국 환율전쟁은 이러한 새로운 국면의 진입이라는 근본적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멈출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3. 환율전쟁이 장기화 가능성과 또 다른 결과

 

2008년 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이미 각국의 부르주아 정부들은 쓸 수 있는 사실상의 모든 수단 ‘재정적자와 경기부양 등’ 을 다 사용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침체를 막기 위해 남아있는 수단이 거의 없다. 따라서 ‘양적완화와 환율전쟁’은 부르주아 정부가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카드이기 때문에 이를 쉽게 포기할 수 없다. 자본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맞아 국제공조를 통해 최악의 상황을 잠시 모면했다. 하지만 경제회복세가 지지부진하면서 인내심도 바닥을 보이고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뾰족한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기약 없는 국제공조를 지속하기보다 수출 확대를 위해 자국 통화를 평가 절하려는 ‘나부터 살고 보자’식 전략을 동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번 환율전쟁의 주도세력이 바로 핵심 자본주의 국가(미국 중국, 일본, 대만, EU) 이기 때문에 중재가 쉽지 않고, 이미 국제공조가 깨지기 시작했다. 80년대 일본처럼 일부국가의 경기침체를 환율절상으로 ‘충격 흡수’해줄 여유가 있는 나라가 없고, 특히 중국도 미국의 충격을 흡수해 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모든 사실이 환율전쟁을 장기화로 몰고 가는 요소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과의 이기기 힘든 싸움을 왜 시작하고 나섰을까. 11월2일 중간선거라는 정치적 이슈가 이유 중의 하나인데, 경기침체와 고실업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중국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어렵다'는 식의 선거 전략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국제적인 환율동향을 보면 이 같은 선거전략 이외에 또 다른 이유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13일 뉴욕시장 기준으로 위안화는 달러화와 비교해 올 들어 연 저점 대비 2.47% 절상됐다.

반면 일본 엔화는 연 저점 대비 13.77%, 한국 원화는 10.68%, 태국 바트화는 10.17% 절상됐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당초 내걸었던 대폭적인 위안화 절상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사실상 '글로벌 달러화 약세'라는 전략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따라서 미국은 대폭적인 위안화 절상이라는 것이 아예 전략적인 목표가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최근 중국 시장의 성장속도를 볼 때 위안화가 대폭적으로 절상되고 이 때문에 중국 경제가 타격을 받는다면 미국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중국 경제를 흔들 만한 대폭적인 위안화 절상 대신 완만한 절상이 애초에 숨겨둔 전략목표였는지 모른다.

 

중국으로서도 최근의 환율전쟁이 불리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완만한, 점진적인 위안화 절상은 중국 경제에 독이 아니라 약이 될 수 있다. 가뜩이나 경기과열과 물가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완만한 위안화 절상은 중국 경제의 연착륙과 경쟁력 강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최근의 국제적인 환율동향 역시 중국이 내심 미소 지을 수 있는 요소다. 미 달러화 대비로는 위안화가 소폭 절상됐지만 미ㆍ중이 싸우는 와중에 다른 나라 통화들이 훨씬 더 많이 절상돼 이들 국가 통화 대비로는 오히려 중국 위안화가 절하됐기 때문이다.

결국 미ㆍ중의 이번 환율전쟁은 계산된 수위 안에서 다투는 '제한 전' 일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실제로는 신흥국 치기가 노림수라고 볼 수 있다. 즉 미ㆍ중이 싸우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실제로는 신흥국을 치는 전략이다. 결론적으로 환율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 등 신흥국이며, 이는 이들 국가의 노동자들에게 실업과 고용불안 그리고, 환율로 인해 떨어진 수출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 고강도의 노동착취, 임금하락의 압력을 가해올 것이다.

 

 

 

 

4. 환율전쟁의 진짜 주역과 노동자계급 

 

환율전쟁은 정부가 앞장서서 전투를 벌이고, 전쟁의 명분은 언제나처럼 자국 제조업체(수출)와 실업으로 고통 받는 자국 노동자들을 위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이 과정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것은 월가 등의 금융자본이다.

현재의 환율전쟁은 정부사이의 정책적 갈등이라는 표현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고, 여기서 정부는 금융자본이 아닌 제조업체들의 수출사정과 국민들의 고용사정을 배려해서 환율전쟁을 벌이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막대한 자금을 움직이는 주체 입장에서 보면, 이는 대부분 월가의 금융자본이고, 이들이 양적완화로 인해 넘쳐나는 달러를 신흥국으로 유입시켜 막대한 환차익, 금리차익, 시세차익을 도모한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이익이 생기면 챙기고 손실을 보면 노동자계급에게 위기를 전가하고 빚을 떠안게 하는 것이 본성이다. 환율전쟁이야 말로 자본의 위기를 다른 나라 노동자계급에게 자연스럽게 떠넘기는 자본의 생존방식일 뿐이다. 여기에는 온갖 애국주의, 노사협조주의, 포퓰리즘 등 악취가 풍기는 자본주의 쓰레기로 가득 차 있다. 이 싸움이 노동자계급에게 더욱 어려운 것은 계급투쟁의 본질은 묻히거나 왜곡되어 있고, 이런 온갖 악취들이 투쟁의 방향을 흐려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의 목표는 분명하다. 노동자계급에겐 부르주아 국가끼리의 환율전쟁이 아닌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계급전쟁이 있을 뿐이다.

 

현재의 소모전과 같은 환율전쟁은 자본주의 금융시스템의 근본을 다시 한 번 흔들어 엄청난 손실과 회복할 수 없는 위기로 몰아갈 가능성을 높여 주고 있다. 여기서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장단에 맞춰 국가를 위해 양보하고 희생한다면, 노동자계급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과 함께 몰락할 것이다. 자본을 몰락시키고 노동자계급이 사는 길, 그것은 국가와 부문을 넘는 노동자계급의 세계적인 계급투쟁과 사회주의 혁명의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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