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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전쟁, 착취, 자본주의 지배: 그들에 맞서는 방법과 이유

전쟁, 착취, 자본주의 지배: 그들에 맞서는 방법과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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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테제를 발전시켰다. 이는 전쟁에 맞서기 위한 행동의 도구로서 근본적인 합의를 찾으려는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논의해서 구체화할 수 있다.

 

1. 제국주의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의 전쟁은 세계 여러 곳에서 끔찍한 현실이다. 지구에서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많은 지역과 국지전이 있었다. 이러한 전쟁에서, 많은 피를 흘렸고, 자본의 이윤 추구에 대한 욕망의 피로 넘쳐났다. 자본은 경쟁 속에서 살고, 그 부분은 적과 맞서는 데 최고의 조건에서 경쟁하기 위해 조직화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형태를 바꾸지만, 내용은 영구적이다. 그것은 자본주의 제국주의의 뿌리이며, 어떤 국가 세력이나 사회계급도 이를 피해 갈 수 없다.

 

2. 이제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자본주의에서 모든 부르주아 분파와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한편으로, 자본주의 국가 사이의 갈등은 무역전쟁, 정치전쟁, 그리고 필연적으로 호전적인 대립과 같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세계 역학의 일부이다. 다른 한편,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착취와 지배를 강화한다.

 

3. 우크라이나 전쟁은 제국주의 블록 형성의 일부이다. 부상하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세계 강대국으로서 중국은 미국의 제1 제국주의 지위에 도전한다. 러시아 블록의 몰락 이후, 미국은 세계의 중요한 부분, 특히, 전(前)러시아 블록의 국가를 지배하려고 노력해왔다. 동시에, 새로운 지역의 강대국들, 즉 유럽의 독일-프랑스, 구(舊)오스만 제국의 터키, 중동의 이란 등은 미국에 저항해왔다. 이런 맥락에서, 중국은 군사적, 경제적으로 러시아와 동맹을 맺었고, 둘 다 다른 나라를 끌어들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러 동맹의 명성을 훼손했다. 미국은 나토(NATO)와 오커스(AUKUS)를 필수적인 동맹으로 하여 반대 블록을 이끌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첫 번째 결과로, 유럽연합 국가,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그리고 다양한 대륙의 다른 동맹국들이 미국 블록에 더 확고하게 통합된다.

 

4.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는 두 신생 블록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첨예하게 분열되어 있다.

 

러시아와의 동맹이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이익에 가장 도움이 된다고 믿는 분파는 우크라이나의 옛 산업 지역인 돈바스에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어는 이 지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이며 민족주의에 활용된다.

 

유럽연합과 나토의 동맹이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이익에 가장 잘 도움이 된다고 믿는 분파 자신을 러시아에 대항하는 미국 전략의 졸로 만든다. 우크라이나어와 그 문화와 역사에 대한 설화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의 핵심이다.

 

"억압받는 민족"의 두 민족주의는 모두 그들의 "완전한 자결권"이 그들에게 가장 적합한 제국주의 자본 블록과 일치되기를 원한다. 민족주의는 국민, 특히 노동자들이 착취자와 억압자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이익과 결부시켜, 미국과 러시아가 조종하는 제국주의 사이 전쟁으로 몰아넣는다.

 

5. 모든 국가의 자본은 반드시 서로 경쟁한다.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고유한 동력은 시장, 영토, 전략적 군사 통제, 원자재와 에너지의 공급, 그리고 노동 흐름의 통제에 대한 분쟁에 기반을 두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것에 반대하는 모든 것이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한 자본과 돈은 우리의 노동력에서 나온다.

 

자본주의 이윤의 기초인 노동(실현된 노동과 무급노동)으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우리 계급에 대한 착취와 통제는 더욱 광범위하고 강렬해진다. 정치적, 군사적 명령에 대한 복종 요구는 더욱 첨예해진다. 다양한 자본주의 분파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중 공작과 총알받이로 이용한다.

 

6.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난한 다수의 농민과 수많은 민간인이 자본주의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있다. 현재, 예멘, 시리아 북부, 이라크 일부, 미얀마, 티그레이-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콩고, 모잠비크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많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런 지역에서 전쟁 중인 군사 기구에 의해 위협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7. 정치, 노동조합과 사회세력은 우크라이나 또는 다른 나라의 전쟁에서 한쪽을 방어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들 중 일부는 평화주의에 기반을 둔 '전쟁 반대'를 내걸고 무해한 광경의 시위로 민주 시민운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전쟁의 결과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긴장을 유도한다. 우선 인플레이션이다. 동시에 수많은 다른 전쟁이 은폐되거나 조금만 알려진다. 그러나 이러한 평화주의자들이 노동계급에 부과하는 것은 활동적이든 실업자이든, 이른바 '사회적 평화'이다. 자본이 우리를 압박하고 공격하는 동안, 계급으로 구분되어 있는 우리는 선을 지키면서 가만히 앉아서, 일터와 거리에서 우리의 입장을 방어하지 않은 채 우리의 입장을 고수하고, 기껏해야 투표와 집회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개량주의적 변화의 지평을 지니고 있는, 이러저러한 정치적 선동가 집단, 노동조합, NGO, 그리고 부르주아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여타 집단을 지지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는 평화가 있을 수 없고, 있었던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8.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 이해관계와 세력에 대한 예속과 단순한 불신의 태도에서 자신을 해방함으로써 대응하거나,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착취와 군국주의적 행진이 강화되어 여러 조건이 충족되면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그동안 세계에서 수많은 전쟁이 일어나고 자연환경의 심각한 파괴로 치달을 것이다.

 

9. 어떻게 해야 할까? 프롤레타리아트의 광범위하고 자기 조직화한 급진적 방어 투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의 공공연한 군국주의 표출이나 일상의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대항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경쟁자에 맞서 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능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모든 국가, 자본주의 세력과 그 연합체가 노동계급으로부터 점점 더 많은 잉여 가치를 짜낼 필요가 있다. 제국주의는 자신의 지위와 이윤이 침해되는 것을 감수하면서 이 일을 멈출 수 없다. 그것이 바로 국가 사이의 모든 전쟁이 자본주의-제국주의인 이유이다. 모든 국가는 군사적 수단으로 자신의 위치를 방어하고 이러한 보호를 위해 적절한 파트너와 함께 조직해야 한다.

 

◾전체주의와 독재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억압받는 국가들'이 자결권을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세력과의 연합을 구축하기 위해 이러한 자결권을 사용하는 자본 세력과 그들의 안보와 지위를 향상시키는 세력 간의 투쟁의 틀 안에 있다.

◾그들은 국가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 동맹을 맺고 자신의 입장을 개선하기 위해서 싸우고, 투자 유치, 무역 독점, 전략적 영토, 육지와 해역을 통제하고, 자체적으로 원자재를 확보하는 것은 민족 부르주아지의 자유다.

 

국가의 자유란 자본이 노동력을 착취하여 노동계급과 사회 전체에 대한 독재를 행사할 수 있는 자유이다. 민족부르주아지는 적에 대해 무기를 사용하고, 전문 군대와 징집군에 자금을 제공하고, 군사적 징수를 할 수 있는 자유와 함께 생산 및 유통 수단을 통제한다. 그들은 각자의 주장에 따라 경제와 사회를 군국화하며, 이것에 대한 비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불해야 한다. 지금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와 도처에서는 대유행 위기의 타격에 이은 인플레이션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부채 수준, 재정 및 통화 조작, 실업,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 조건과 노동 조건 악화의 증가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자본이 존재하는 한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더러운 속임수를 쓰고, 그들의 교활함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또한 그렇게 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계급관계, 삶과 물질적 부를 생산하는 그들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심층적으로 공격해야 할 뿌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준, 방법, 조직이 필요하다.

 

10. 따라서 자본주의의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필요한 것은 국제주의적 혁명적 패배주의의 방어를 촉진하는 것이다. 즉, 모든 부르주아지 측, 국가, 세력에 대항하여, 무엇보다도 우리를 국가적으로 착취하고 지배하는 모든 부르주아지를 패배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전쟁 전선과 직장, 거리에서 대응하고, 전쟁에 협력하는 모든 군사적 이익과 구조를 보이콧하고, 국가, 민족, 그리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모든 종류의 분열에 맞서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국제적 연대를 방어하기 위한 국제적인 통합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쟁 전선에서, 병사들이 그들의 장교와 지휘관을 향해 그들의 무기를 겨누게 하는 것이지, 전선 반대편에 있는 병사에 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의 모든 면에서 군사적인 손, 범죄자를 굴복시키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 전선은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군사 전선에서 우리는 한편으로는 많은 직업군인을 발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끔찍한 권위의 조건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가정, 직장, 거리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이웃에서,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중에서 가장 많은 착취와 최악의 대우를 받는 열악한 부분의 상황을 완화하기 위해 계급적 요구를 제기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후방과 전 세계에서 자본을 거부하고 저항하는 문제이다. 시민권 법령과 방법에 집착하지 않고, 파업, 대중 총회, 집회 등을 통해 계급적 요구를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끌어내 광범위한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급진적인 변혁을 지향하고, 그것을 위해 우리 자신을 조직하는 동시에 이것이 보여주는 엄청난 문제를 인식하는 문제이다.

 

11.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이러한 계급투쟁 없이 자본주의는 전 세계적인 행진이 초래한 끔찍한 결과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계급과 환경을 더욱 악화시키고, 국가와 블록 간의 분쟁을 악화시키며, 우리를 복종시키기 위해 고안된 미신과 속임수를 퍼뜨리고, 효과를 내기 위해 광범위하고 명료하며 국제적이어야 하는 항의 시위를 제거할 것이다.

 

노동계급이 표적이다. 자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고와 피로의 일상에서 우리를 자본에 종속시키는 애국적 요구와 알리바이에 반대해야 한다. 우리는 약간의 부스러기를 대가로 '사회적 평화'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거부해야 한다.

 

12. 비판적인 비난에서 자본주의의 이해관계와 세력에 대항하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발전하는 운동은 가능성에 달려있다. 이론적, 실천적으로 노동계급 스스로의 해방을 위한 급진적인 국제 역학에 반응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모은 세계적인 조직, 그리고 계급, 국가, 민족, 화폐, 자본주의 기업, 억압과 착취가 없는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 사회를 위해, 토지, 공기, 물, 천연자원과의 적절한 관계를 정립하려는, 방어와 연대를 위한 조직, 계급의 부름에 응하는 조직이 그 가능성이다.

 

2022년 4월 21일

프레도 코르보, 아니발, 마테리아(Fredo Corvo, Aníbal and materia)

Leftd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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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leftdis.wordpress.com/2022/04/21/war-exploitation-and-capitalist-domination-how-and-why-confront-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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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우크라이나 제국주의 전쟁의 중요성과 그 결과에 대한 테제

우크라이나 제국주의 전쟁의 중요성과 그 결과에 대한 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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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혁명이냐 전쟁이냐」 다음 호를 기다리지 않고 다음의 글을 출판한다. 그러나 그것은 즉각적으로 개입하려는 전단이나, 공동 성명서도 아니지만, 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사실, 상황의 심각성, 유럽에서의 전쟁, 그리고 그것이 모든 수준에서 야기하고 있는 격변은 부상하고 있는 폭풍 속에서 기준점과 방향을 우리가 가능한 한 빨리 수립할 것을 요구한다. 전쟁 앞에서 충격, 불신, 무력감은 혼란, 방향성 상실, 공황의 요인으로, 이는 사기 저하와 절망, 심지어 계급적 입장까지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문서는 몇 가지 주제의 형태로 제시되며, 그 자체로는 매우 소박하고 제한적이지만, 이를 글과 참고 방향으로 제시하고 모든 사람의 비판을 수용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이 경우, 그리고 우리 세력이 아주 약하고 - 프롤레타리아 진영 전체가 이 정도 수준에서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그들은 "당의 방식과 일"을 발전시키려고 한다. 끝으로 이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고 러시아군이 아직 키예프(Kyiv)에 진입하지 않은 상태에서 작성되었다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이 전쟁의 미래와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새로운 상황과 다가올 전체 기간을 나타내는 몇 가지의 교훈과 이정표를 도출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고 또한 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오늘날 지배적인 자본주의 계급 전체가 제국주의 전쟁의 필요를 위해 필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계급 간의 대규모 대립에 맞서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가 가야 할 길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원칙에 충실한 모든 코뮤니스트 세력에 대한 성찰과 비판에; 그리고 모든 정치 집단과 고립되고 어쩌면 혼란스러운 전투적인 개인을 위한 기준과 지향점 일부로서- 이글을 제출한다.

 

“사회주의자들은 항상 국가 간의 전쟁을 야만적이고 잔혹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부르주아 평화주의자와 아나키스트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우리는 전쟁과 국가 내 계급투쟁 사이의 불가피한 연관성을 이해한다는 점에서 전자와 다르다; 우리는 계급이 폐지되고 사회주의가 실현되지 않는 한 전쟁은 폐지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다.” (「1914~915년의 사회주의와 전쟁에 관한 기본원칙」, 레닌)

 

1) 혁명이냐 전쟁이냐의 역사적 대안, 정세의 주요 요소

 

코뮤니즘의 주제- 스탈린주의 또는 마오주의 방식으로 한 국가에서 모든 형태의 사회주의를 부정하는 코뮤니즘은- 자본주의는 전쟁이라는 원칙이 현재 현실화하고 있다. 극적인 현실. 그것은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과 수만 명의 러시아 청년 징집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사람들의 경제에 파괴적이며, 이미 그 위기에 부과되고 있는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에 대한 희생으로 무거운“구대륙”의 일반화된 재무장에 대한 비용을 지급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럽에서 전쟁의 결과는 모든 대륙에서 더 일반화된 불행과 함께 자본의 경제 위기를 악화시킬 것이다. 레닌의 1915년 글을 우리는 오늘날 다시 살펴본다.

 

"비교적 평화로운 자본주의의 시대는 지나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제국주의는 노동계급에 계급투쟁, 빈곤, 실업의 유례없는 격화, 더 높은 생활비, 그리고 모든 나라, 심지어 가장 자유로운 나라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군국주의에 대한 신뢰,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억압의 강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레닌, 「침머발트 좌파 결의안 초안」[1], 1915)

 

제국주의 긴장이 고조되고 군국주의화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계속 무시했던 모든 사람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유럽 전쟁은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의 현실과 그것이 인류에게 제공하는 미래, 즉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베일을 벗게 했다. 2020년은 역사적으로 단절된 해로, 위기의 악화-그리고 경제 경쟁의 악화로- 제국주의 긴장과 양극화의 가속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위기와 그에 따른 자본의 교착상태가 도달한 수준은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역동성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은 그때까지만 해도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 만일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 간접적인 역할을 하는 관점일 뿐이었는데, 오늘날 각국 정부와 제국주의 열강의 정책, 결정, 자본주의 계급의 반영에 대한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요소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모두에게 먼저 명확하고 명백한 예시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정부가 관심을 두고 정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그래서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항하여 각 부르주아지가 실행하는 정책의 직접적인 요소가 되며, 따라서 모든 프롤레타리아트에 관한 관심과 계급투쟁에 있어서 추가로 직접적인 요소가 된다.

 

유럽에서의 전쟁은 대부분의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조직에 의해 방어되고 이행된 또 다른 근본적인 주제를 확인시켜준다.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자본가 계급의 독재에 종속된 인류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대안 : 국제 프롤레타리아혁명 또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게 된다.

 

2) 유럽 제국주의 전쟁의 실제

 

"유럽의 심장부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너무 희박해 보였다."

(독일 신문 「슈피겔」, 2022년 2월 25일)

 

제국주의 전쟁은 유럽의 중심에서 발발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중심지인 유럽, 그리고 역사적으로 아주 경험이 많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분파를 직접적으로 타격하게 된다. 지난 몇 년간의 실제적인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중국-미국 중심 제국주의의 양극화는 제국주의와 혁명 모두를 -계급투쟁― 구 유럽 대륙은 소외되고 뒤편으로 밀려나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으로-이동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것이 가져올 결과는 국제적으로 그리고 특히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에 (...) 제국주의 전쟁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유럽을 역사적인 상황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는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프롤레타리아트에, 그들의 육체를 포함하여 직접적으로 접촉할 뿐만 아니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에도 매우 빠르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봉쇄 이후 세계 생산의 -이미 고갈되고 있었던-회복 후 불과 몇 달 만에. 이번에는 위기의 악화가 단지 전쟁 때문에 직접적으로 촉발되었다.

 

지금 가속화하고 있는 소용돌이 속에서, 위기와 전쟁이 서로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오늘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사람들에 의해서, 실제로 직접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쟁 사이의 관계는 자본주의 위기와 마찬가지로 직접적이며, 따라서 상황과 역사적 과정의 부류와 하나의 요소가 된다. 전쟁과 직접 대치하고 있고,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역사적 경험으로 인해,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형성되고 있는 대규모 대결에서 특히 중심적인 책임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3) 유럽의 핵전쟁 위협의 실태

 

"2월 8일 에마뉘엘 마크롱과의 회담 후 [푸틴]은 핵무기 사용에 대한 위협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우리는 나토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당일인 2월 24일 그는 "우리를 방해하려고 하는 자들은 러시아의 대응이 즉시 그리고 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것임을 알아야 한다."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에 대해 "블라디미르 푸틴도 대서양동맹이 핵 동맹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답했다.” (프랑스 신문 「르피가로」, 2월 24일)

 

세계 자본주의 역사의 중심지를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제국주의 전쟁은 구대륙에 핵전쟁의 위협을 가져온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시대처럼 억지력의 무기가 되는 것부터 동유럽과 소련의 붕괴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나토, 프랑스 그리고 영국의 핵무기 보유는 이제 위협적인 무기가 되고 있다.

 

행동 범위가 짧고 결과가 단순한 소위 전술 핵폭탄의 존재는 재래식 전쟁에서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핵보유국 중 하나가 그것에 의지할 수 있도록 '허가'할 수 있는 전체적인 범위와 사용 과정을 제공하기 때문에 더욱더 가공할 만한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두려운 존재이다. 인류 전체를 파괴하는 재앙적인 단계로 가는 길은 바로 그때 시작될 것이다. 유럽에서 핵무기 사용의 금기는 이렇게 없어졌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한 군 관계자는 "우리는 완전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라고 말한다. “재래식 전력뿐만 아니라, 핵 억지력에 대한 우리의 원칙도.” (「슈피겔」, 위 기사)

 

프롤레타리아트에 제기되는 문제는 따라서 일반적으로 제국주의 전쟁과의 관계가 아니라, 일반화되고 핵심적인 제국주의 전쟁과의 관계이다; 일반화된 전쟁을 수행하는 관점과 사회적 세력, 즉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국가의 기구들로부터 시작하는 자본의 세력과의 관계이다.

 

4) 증가하는 제국주의 양극화의 역동성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전쟁을 일으킨 지 나흘째 되는 날인 2월 27일 일요일에 이미 두 가지 업적을 달성했다. 그는 나토의 존재 이유를 상기시켜 주었고, 유럽연합(EU)이 외국에 군사 원조를 제공할 수 있는 조직으로 변모하도록 이끌었다." (프랑스 신문 「르몽드」, 2월 28일 사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진행 중인 제국주의 동맹을 확인시켜주고 강화한다. 서방 강대국의 만장일치를 고려할 때, 러시아는 이번 기회에 유일한 (상대적) 지지자인 중국과 더 가까이 지낼 수 있을 뿐이며, 특히 미국과 나토[2]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아사드(Assad)의 시리아나 이란을 제쳐두고, 공동의 경제적, 지리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이미 맺은 동맹을 강화한다. 또 다른 핵보유국인 인도의 신중한 중립성 또한 중요하다. 그것은 또한 세계 제국주의, 즉 동서양 양극화의 대립을 완화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미 해군은 즉시 대만해협에 군함을 파견하여 중국에 경고해야 함을 느꼈고, 유럽에서의 전쟁에도 불구하고, 미 제국주의 세력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3]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유럽의 독립국을 매우 선호하거나,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뚜렷하게 구별되는 서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영국 편에 서도록 강요받거나, 프랑스와 같은 나라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깃발 아래 행동하도록 강요를 당했다는 점이다. 군사적, 정치적 그리고 이념적으로 - 동양의 "자유를 제한하는" 또는 심지어 독재에 대항하는 서구 민주주의 국가 -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러한 계속되는 양극화를 강조하며, 따라서 유럽의 자치에 대한 즉각적인 열망이나 심지어 미국과의 거리도 차단한다. 제국주의 동맹의 미래를 예단하지 않고, 현재의 양극화 동력은 점차 가속화되어, 일반화된 전쟁을 향한- 특히 중요한 추가적인 순간-발걸음을 구성한다.

 

유럽에서의 전쟁이 이미 양극화의 일반적인 동력의 가속화로 이어졌다면, 유럽 열강의 서열에도 전환점을 불러일으켰다. 프랑스를 포함한 나토 내에서 미국에 밀려서 자리한 이 전환점이 단기적인지 또는 장기적인지 파악하기는 아직 너무 이르다. 비록 그것이 단기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 증명된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직면하여 현재의 양극화는 일반화된 전쟁을 위한 제국주의 블록의 구성을 향한 동력의 중요한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는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는 이 과정이 결코 선형적이지도 않고 확정적이지도 않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독일과 소련 조약- 또는 리벤트로프-몰로토프(Ribbentrop-Molotov) 조약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불과 며칠 전인 1939년 8월 25일에야 체결되었으며, 반(反)파시즘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의 프랑스 및 영국과의 동맹 정책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기적으로 유럽의 제국주의 극단이 마침내 등장하여 일반화된 전쟁을 목적으로 중-미 양극화를 중심으로 조직된, 오늘날 가장 가능성이 큰, 또 다른 구성을 제안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제국주의의 구성과 그 균열선에 따르면, 각각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미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유럽인이든 다른 대륙 출신이든 친자본주의적이고 반(反)프롤레타리아적인 성격은 같지만, 그 강도, 용어, 근거는 차별화된 공격을 받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것이 '구대륙'에서 촉발하는 러시아에 대한 양극화는 전쟁의 전선인 대륙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일차적 책임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또는 서유럽 출신인지에 따라 뚜렷한 지분과 가능성을 내포한다.

 

5) 유럽 부르주아지의 딜레마

 

"독일과 유럽의 이러한 극적인 반전은 장기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문 앞에서 전쟁의 비극에 직면한 유럽은 마침내 지정학적 강대국으로서 행동할 수 있는 수단을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을 공고히 하는 것은 회원국들에 달려있다: 그들에게 그것은 매우 필요한 것이다." (같은 글)

 

전쟁이 발발하기 전, 유럽의 주요 열강들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양극화로 인해 협공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러시아의 침공이 진행되자, 유럽연합 국가들은 나토 내에서만 미국의 배후에 결집할 수 있었다. 미국에 의존하지 않는 유럽 주권을 가장 열망하는 프랑스는 푸틴 대통령과 대화하면서 핵 공격으로 위협하는 러시아에 대해서 단호하게 말하였다. 프랑스는 지난 1월부터 유럽연합(EU) 의장직과 나토 신속대응군 사령부를 맡아 군사적 조치의 선두에 서서 유럽 동맹국들에 일정한 지도력을 담보하려고 한다.

 

당분간 우크라이나 전쟁은 유럽이 옛 동유럽 국가들과 반(反)러시아·친(親)나토, 서방 국가 사이 차이를 극복하고 단결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미국과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미국 주변의 서구 민주주의를 동원하기 위한 기존의 이데올로기의 주제인 이른바 자유가 제한되는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 간의 양극화의 동력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강화된다. 러시아의 군사적 진전과 위협 앞에서 유럽의 모순, 특히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역사적 역할을 맡는 것을 주저하는 독일의, 즉 주로 군사적 차원에서의 모순은 극복되는 과정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부르주아지가 앞으로 몇 달 동안 취해야 할 성찰과 선택은 미국과 유럽의 관계, 제국주의 체제에 그리고 (...)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에 중대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서유럽 부르주아지의 어려움 중의 하나는, 즉. 자본주의 역사의 중심지에서, 위기 그리고 또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 경험이 가장 많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분파에, 전쟁으로 나아가는 데 필수 불가결한 복종의 정도를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한 특별한 역사로 인해서, 이 부분이 또한 독일 부르주아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주요 어려움이다. 그러나 다른 유럽 열강들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이러한 국가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참함과 자본주의 착취의 악화, 그리고 전쟁 경제와 다른 전쟁 노력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희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즉각적인 방법과 첫 번째 결과로서,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는, 특히 난방의 필수 요소인 가스, 에너지 가격의 상승, 심지어 더 강력한 가격의 부활과 임금의 효과적인 하락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즉각적인 이해관계는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러한 즉각적인 빈곤에 대하여 일어서고 대응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능력에 달려있다.

 

6) 독일 제국주의의 재무장

 

“일요일에 불과 30분 만에 올라프 숄츠(Olaf Scholz) 독일 총리는 수십 년간의 전통적인 외교정책을 폐기했다. 그의 독일 의회 연설은 획기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슈피겔」, 2월 28일)

 

1945년 이후 독일 제국주의 정책의 기초와 결별하기로 한 가차 없는 결정은 불과 며칠 만에 이루어졌다. 유럽의 군사 강국을 위한 길을 열어달라는 프랑스의 압력에 맞서는 것을 꺼리고 그 결과에 대해 주저하며 특히 예산의 상당 부분을 무기 지출에 할당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독일 부르주아지의 결정을 재촉했다. 2월 25일, 독일 일간지 「슈피겔」은 이미 "군사적 그리고 정치적 재앙: 독일의 러시아 정책의 재앙적인 오류"- 라는 제목을 붙였다.[4] 같은 날의 사설에서 "유럽 역시 군사력을 강화해야만 한다고 옹호했다. 유럽의 공동 방위 정책은 오래전에 기한이 지났고, 또한 우리가 미국의 보호를 덜 받도록 만들었다. (...) 유럽인들은 이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전략적 자율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발전시켜 스스로 방어해야 한다." 그리고 단지 3일 후에야 독일 자본주의를 재무장하기로 한 결정이 채택되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23일(현지 시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하여 독일의 국방비는 나토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에 이르게 될 것" 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원 회의실에서 "우리는 앞으로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국방비에 투자할 것"이라며 "독일군은 수년간 장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고 말했다.(「라디오 프랑스 인터내셔널」, 2월 27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더욱더 결정적인 방법으로 독일 부르주아지가 제국주의자의 책임을 더 단호하게 떠맡을 의무를 지게 한다. 국제 언론이 금기라고 부르는 것을 깨고, 독일은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직접 무기를 보내고 대전차 로켓과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을 보내기로 했다. "독일의 이번 결정은 정치적 단절을 보여준다. 베를린은 최근 몇 주 동안 우크라이나 당국으로부터 무기 전달을 거부했다는 비난을 많이 받아왔다. 독일 정부는 전쟁 이래로 자국에 이어진 제한정책을 발동해 분쟁지역에 대한 '살상' 장비의 수출을 금지하는 등 항상 방어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 군대가 이 나라를 침략한 이래로 이러한 입장은 정치적으로 점점 더 잘 지켜지지 않았다”[5]

 

따라서 그 균열과 결정은 독일의 자본에 역사적인 것이다. 독일의 경제력이 역사가 부여한 제국주의 지위를 유지함과 동시에 두 번의 세계대전 때문에 박탈당한 실질적인 군사력을 빠르게 획득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일 재무장관은 이미 많은 의문과 새로운 모순을 제기하고 있다: 나토 그리고 나토 주변에서 독일의 위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번 결정이 프랑스가 원하고 추진하는 나토나 유럽의 전략적 자율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무기 산업의 선택은 유럽이나 미국 중 어느 쪽인가? 독일과 프랑스의 무기 산업은 유럽이 일반화된 전쟁을 준비하는 데 있어서 각각 어떤 위치에 있는가? 미래의 전투기와 탱크, 주로 독일- 프랑스 유럽 프로그램인- SCAF와 MGCS 프로그램은 어떠한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독일 재무장관은 반드시 자체 핵무기 개발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며, 그 누구도 그것을 매우 빠르게 획득할 수 있음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독일이 재무장한다는 발표는, 만약 그것이 확인된다면, 필연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제국주의적인 기둥의 전망을 높일 것이고, 따라서 장기적으로는 후자에 대한 경쟁자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동맹의 구성과 일반화된 전쟁의 관점에서 결정되고 자라난 양극화의 관점에서 보면, 유럽과 독일의 재무장으로 인한 전쟁 복귀는 유럽을 제국주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계급투쟁 측면에서도 다시 한번 세계의 중심에 올려놓았다. 왜냐하면 우선으로 독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의 새로운 제국주의와 군사 정책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7)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쟁

 

"러시아의 실질적인 경제적 고립은 인플레이션 증가, 성장률 하락, 금융시장 동요의 대가로 불가피하게 유발될 것"이며 "우리가 희생 없이 러시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대, 지도자와 민간인들이 러시아 침략자에게 영웅적 저항을 하는 가운데 유럽의 정치지도자들은 연대의 가치를 분명히 직시하고 이에 대한 공론화를 준비해야 할 때가 왔다." (「르몽드」, 2022년 2월 26일 자 사설)

 

특히 이들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노동계급과 정면으로 그리고 대규모 대결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러한 전쟁, 그 결과와 의미 따라서 앞으로 다가오고 준비될 전쟁에 대한 대가를 지급할 것이라는 발표가 이미 있었다. 그들의 육체를 포함하여,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미 그것을 지불하고 있다. 이미 위기라는 핑계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에, 코로나바이러스 앞의 폐쇄 기간과 관련된 생산 마비로 악화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의 향후 침략을 방지하고, "독재자 푸틴에게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방어하고 국가 통합을 위한 러시아의 향후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서 “우크라이나 국민”과의 연대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희생, 과잉 착취와 비참함을 강조하는 부르주아지에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만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위기와 각 국가 자본에 부과되는 전쟁 준비의 필요성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유럽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최전선에 서게 되는 것이다. 임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위기의 영향과 군비와 기반 시설의 비용 증가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의 역동적인 투쟁의 시작은, 증가하는 인플레이션, 실질 임금의 하락,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채울 수 있는 거대한 국가 적자의 심연에 의해 구체화 되며, 전쟁의 첫 번째 결과, 즉 난방과 휘발유, 에너지 가격의 상승 앞에서 확인될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첫 번째 반응은 유럽에서의 전쟁 발발과 핵 위협에 대한 충격과 불신, 그리고 11월 말 스페인의 카디즈(Cadiz)에서 금속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그랬던 것처럼, 비(非)애국적, 이기적, 심지어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하는 것을 포함한 전쟁 시기 국가의 연대에 대한 요구 때문에 억제될 것인가? 이것이 바로 현재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달려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 문제는 계급투쟁에도 직결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또한 잠재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의식과 투쟁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 의미는 세계정세의 의제인 계급 사이의 대규모 대립의 한 요소가 되고 있다.

 

특히 유럽의,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전쟁의 발발로 인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서 다시 투쟁의 길로 나가는 데에는 다소 지연될 위험이 있다. 이는, 특히 우크라이나인 학살 앞에서 적법한 감정을 자극하는 인도주의적 질서와 민주주의와 전쟁 이념에 대한 언론의 과장 때문에 아주 가능성이 큰 가설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통과된다면, 전쟁으로 인해 가속화된 위기의 악화는 각 국가 부르주아지가 자신의 프롤레타리아트를 공격하고 억제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구할 수 없으므로, 그 어떤 휴식이나 공간을 남겨두는 것 없이 계급 간의 대규모 대립을 불러오게 된다. 제국주의 전쟁과 그 준비는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체 인구의 총체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통제와 복종을 강요한다.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국주의 전쟁은 대규모 계급 대립을 촉발할 것이다.

 

8) 전쟁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월 20일 전단에서, 전쟁에 대한 프롤레타리아의 즉각적인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는 프롤레타리아들, 그리고 심지어 더 광범위하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보이는 반전 감정이 "만약 일어난다면 군사적 대립을 멈추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불행하게도, 이는 그 경우였다. 이 나라가 침략당하는 바로 그 순간, 러시아 탱크와 공군이 방해되는 모든 것을 부수고, 우크라이나 사회에 민족주의 저항이 발생할 때, 만일 이러한 저항이 “러시아 괴물에 대항한 작은 닭”이 성공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우크라이나 자체의 프롤레타리아트 반응은 거의 불가능하다. 적어도 가까운 미래에 그리고 전쟁이 지속되는 한. 그런데도 우크라이나의 프롤레타리아트 구호는 그들이 현재에 저항할 수 있고 그 순간에는 잘 들리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는 나머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구호와 같게 유지된다. 민족적 단결을 거부하고 우크라이나 국가의 방어를 거부한다는 구호는 적어도, 그리고 이미 우크라이나에서 프롤레타리아트를 각성시키는 이정표다.

 

비록 글을 쓸 당시에는 가능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단기간을 포함하여, 러시아에서는 다를 것이라는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만일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난 수십 년 동안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선진적인 분파로 출현하지 않았다면, 푸틴 일족을 앞세운 러시아 부르주아지 스스로 시작한 모험은 이러한 전쟁의 수행에 정신을 차리고 직접적으로 개입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저항 때문에 지속된다면 그것을 늦추거나 푸틴에게 멈추도록 강요할 수도 있다. 확실히, 만일 그 나라가 앞으로 며칠 내에 완전히 침략당하고 군사적으로 패배할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면,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 자체에 개입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 상황과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고려할 때 푸틴 대통령은 상당한 무장력과 사실상 그 지역에 대한 점령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전쟁은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깨어나고 개입할 수 있는 조건은, 근본적으로 전쟁 노력과 그 결과에 따라 불가피하게 더욱 악화할 자신의 생활과 노동 조건의 방어로부터 뿐만이 아니라, 부르주아지 자체를 약화하고 혁명적 패전주의의 코뮤니스트 원칙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쉽게 될 것이다.

 

이미, 그리고 비록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반응이 아니더라도, 폭력적이고 체계적인 억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도시의 거리에서 동원하고 시위할 수 있는 수천 명의 평화주의자의 능력은 최소한 전체 인구 중에서, 러시아 국가 기구의 약점과 열정의 부족을 보여준다. 그리고 간접적으로, 지배계급을 관통하는 망설임과 분열.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열정적인 시위를 벌였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는, 아무도 없다. 푸틴과 러시아 부르주아지, 적어도 푸틴 일족과 현 과두제 주변에 모인 분파들은 그들이 평가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규모로 위험한 모험에 착수했다. 글을 쓰는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침공은 -서방 군대와 전문가들을 포함하여-적어도 예기치 않은 만남, 모스크바의 힘을 약화하는 군사적 저항과 지나가는 것은 매일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쟁이 시작된 지 7일 만에 러시아 군인 1,000명이 사망했다는 발표가 사실인지 사실이 아닌지 파악하기엔 너무 이르다. 하지만 사상자가 늘어나고 전쟁이 장기화하면 러시아의 상황은 순식간에 폭발적으로 변화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이 있는 이러한 가설에서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참한 생활 조건에 있으며, 그 생활 조건의 방어를 위해 투쟁할 그리고 속도를 늦추는, 마비되지는 않더라도 부르주아지 스스로 무장하고 유혈의 손을 늦추는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의 군사 공격이 시사하는 것과는 달리, 반대하는 것을 포함하여, 제국주의를 연결하는 사슬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푸틴의 러시아가 되었다.

 

9) 전쟁에 직면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코뮤니스트 구호

 

오늘날, 만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가 우크라이나 전쟁, 더 넓게는 제국주의 양극화와 전쟁 일반화의 동력을 즉시 막을 힘이 없다면, 그래도 여전히 그것은 부르주아지가 해결해야 할 방정식의 일부이다. 제국주의 전쟁과 핵 위협이 비참함과 자본주의 착취의 악화에 대한 분노와 반란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표출되는 바로 그 순간에 파업하게 되는데, 이러한 투쟁은 확실히 아직도 너무 소심하고 제한적이다. 위기와 전쟁이 동시에 발생한다. 이런 식으로 부르주아지는 1918-19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희생의 대가로 평화주의를 발전시키려 한다면, 혁명적인 물결에 맞서기 위해 다른 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1939년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대가로- 번영 → 대규모 실업의 종식. 자본과 부르주아지가 취약한 역사적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다. 이러한 역사의 약점을 인식하는 것은 국가권력 강화의 현실과 오늘날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대응과 동력의 약화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반대로 자본과 대립하는 이러한 역사의 교착상태는 지배계급이 최악의 경우를 포함하여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의 계급 권력을 지키겠다는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할 뿐이며, 씁쓸하고 유혈의 대립을 계급투쟁으로 만들 수 있다.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동력을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위기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전쟁을 향한 행진의 의미-이다. 우리가 말했듯이, 즉각적인 방법으로, 러시아의 전쟁 노력과 서구 열강의 경제 제재는 이미 심각하게 악화한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을 더욱더 악화시킬 것이다. 만일, 글을 쓰는 시점에서, 러시아에서 특별한 투쟁의 동력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어느 순간에 드러낼 수 있는 반(反)푸틴, 반독재 정권 반대의 민주적 근거로 이탈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부르주아지 내부를 포함하여 그리고 심지어 국가기구 내에서조차 우크라이나의 침략 앞에서 러시아 사회 내에 나타나는 분열, 노동자 투쟁의 폭발을 선호할 수 있다.

 

중심 구호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희생과 전쟁 노력에 반대! 전쟁으로 인한 물가 폭등 앞에서 대대적인 투쟁과 파업! 폭탄 아래 우크라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의 연대!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 1917년 2월의 파업과 시위를 기억하라! 자신의 부르주아지가 이끄는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혁명적 패전주의!

 

유럽에서는? 위기와 일반화된 전쟁 준비로 부과된 희생에 반대한다! 유럽 재무장을 위한 희생에 반대한다! 인플레이션, 비참함, 과도한 착취, 현재와 미래에 맞서, 대중 노동자들의 투쟁! 유럽에서의 전쟁과 핵 위협에 대항하여, 투쟁과 파업의 연장과 국제주의의 일반화!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과 푸틴의 러시아 독재에 대한 잘못된 대안에 직면하여, 오직 한 가지 대안, 즉 코뮤니즘의 혁명적 관점!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만세!

 

자본주의는 우리를 제국주의와 핵전쟁으로 이끌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오직 국제 노동자들의 투쟁과 코뮤니즘의 관점만이 이를 반대할 수 있다.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이란의 석유 화학 노동자, 또는 미국의 켈로그(Kelloggs) 또는 존 디어(John Deere)의 보기를 따라야 하며, 계급 요구를 위해서 파업을 하고 모든 부문으로 확대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우리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지키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 기업이나 부문, 인종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민주주의 방어의 이름으로든 국민 통합의 이름으로든 우리에게 부르주아지와의 동맹이나 단결은 없다! 투쟁의 확장과 전면화!

 

10) 유럽전쟁과 코뮤니스트당의 필요성

 

유럽에서의 전쟁의 발발은 이미 새로운 혁명 세력의 각성과 이미 존재하는 세력 내부의 정치적 그리고 호전적인 부분을 더욱더 자극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에 도달하는 데 성공한 혁명 진영,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그 자체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혁명적 패전주의로 확장하는 조직, 서클, 개인들, 그리고 노동자들의 반란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권력의 행사에 이르기까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들의 혁명적 정치적 약속과 신념에 대한 검증 그리고 전쟁과 역사적 상황에 직면하여 그들의 정치적 입장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을 경험하고 있고 또한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미 프롤레타리아트 진영, 특히 코뮤니스트좌파 내에서는 혁명이냐 전쟁이냐, 그리고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을 거부하는 흐름과 집단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여 스스로 아주 무기력해지고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당분간, 그들에게 남은 것은 국제주의 원리에 대한 추상적인 긍정뿐이다. 근본적인 맑스주의 원칙의 망각으로 인한 모순은 내부의 위기, 또는 심지어 폭발, 또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질 것에 대해 어느 정도의 빠른 고뇌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은 여전히 역사적 대안, 심지어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관점, 심지어 제3차 세계대전의 관점에서도 여전히 모호하고 망설이며 완전히 확신하지 못하는 코뮤니스트좌파의 세력을 만회하게 하고 현 상황의 이해관계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유럽에서의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 의식의 한 요소이며 또한 코뮤니스트 조직의 정치적 명확화의 한 요소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 진영 내에서의 주문과 선택 과정이 열리게 되는데, 이는 프롤레타리아 국제 정당 구성에 필수적 전제조건인, 그것의 재구성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이다. 당을 위해 싸우는 세력, 레닌이 그들을 호명하는 친(親)당 세력, 반(反)당 세력 사이의 분열 노선은 그리고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대안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혁명 또는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그것을 외면하거나,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에 따라 원칙적 입장을 계속해서 방어하려는 반대 노선과 겹친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

 

프롤레타리아 진영 대부분의 조직이 강조하는 것처럼,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가 투쟁의 조건, 시기와 땅의 수준뿐만 아니라 삶의 조건과 착취의 수준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노동자 투쟁의 당면한 요구와 목표는 전쟁의 문제, 국가적 노력과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의 요구 앞에서, 그리고 일반화된 무장의 필요성과 전쟁 경제의 부활로 직접적으로 결정될 것이다. 이제 구체적인 답변, 투쟁의 방향 및 적응된 구호, 그리고 그들이 제시하는 투쟁의 가능성에 따라 이러한 요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직접적인 힘의 관계에 대한 평가는 투쟁에서, 파업에서, 집회에서, 시위에서 그들을 운용하고 방어하기 위해; 다시 말해서, 유럽의 전쟁이 시작되고 확인된 시기에, 즉 계급들 사이의 대규모 대결의 시기에. 그들을 정의할 수 있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소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유럽에서의 현재의 전쟁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와 반(反)파시즘의 함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늘에 이르기까지- 코뮤니스트 소수 그리고 코뮤니스트 강령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경험에 가장 많은 애착이 있는 다른 사람들 이상으로 여지없이 많이 알고 있는, 즉, 전쟁의 전선과 혁명의 전선에서 가장 많은 역사적인 경험을 가진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분파에 대한 "구대륙"의 지배계급은 오직 노동계급에 대해서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다.

 

이론적이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당의 존재와 그 방향과 상황에 맞는 구호, 그 지분에- 특히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계급 간의 세력 관계를 만들기 위한 능력은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책임지고 실현해야 하는 실질적인 정치적 문제가 된다. 그리고 무력과 분쟁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패배, 육체적이고 유혈의 정치적, 이념적 패배를 촉발하고, 일반화된 홀로코스트를 향해 고속도로를 넓게 개방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하자 : 키예프(Kiev), 하리코프(Kharkov) 또는 돈바스(Donbass) 의 도시가 있는 테러와 폭격,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유혈의 학살은 모든 인류의 표준이자 공통의 운명이 될 것이다.

 

유럽의 전쟁은 당의 강령을 위해 싸워야 하는 세력의 경사 조건과 그 조건을 규정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이 투쟁을 최우선으로 한다.

 

2022년 3월 2일

「혁명인가 전쟁인가」 20호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주>

 

[1] https://www.marxists.org/archive/lenin/works/1915/aug/20.htm

[2] We refer and call our readers to read the ICT article on this question : http://www.leftcom.org/fr/articles/2022-02-16/ukraine-et-taiwan-points-chauds-d-un-monde-imp%C3%A9rialiste-troubl%C3%A9

[3] "알레이 버크급 유도탄 구축함인 USS 랄프 존슨호가 토요일 대만해협을 항해했다." (2월 26일, 중국 신문 「글로벌 타임」 : https://www.globaltimes.cn/page/2202/1253246.shtml).

[4]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a-military-and-political-disaster-the-calamitous-errors-of-germany-s-russia-policy-a-c8b9818e-4bc2-4eb2-ac55-39e5790b29b2

[5] RTL info Belgique (https://www.rtl.be/info/monde/europe/invasion-de-l-ukraine-l-allemagne-donne-finalement-son-feu-vert-a-la-livraison-d-armes-a-l-ukraine-1359929.aspx)

[6] As the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for ins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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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 이명수

 

<출처> http://igcl.org/Theses-on-the-significance-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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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만연한 전쟁 위기와 전망? 오직 한 가지 해답 :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만연한 전쟁 위기와 전망? 오직 한 가지 해답 :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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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은 특히 노동계급에 암울한 시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한 과도한 사망률 추정에 근거하자면, 세계보건기구(WHO)가 2020년 2월, 대유행을 선언한 이후 거의 정확히 2년 만에 2천만의 인구가 사망했다(2월 13일부터, 95% 신뢰구간은 1,400만 ~ 2,310만 명)[1]. 이 시기 동안, 지구상 가장 부유한 10명의 재산이 2배가 되면서[2], 불평등 수준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따라서 국제통화기금(IMF)이 대중적 불안을 전망하며 경고해 왔던, 현재의 부의 축적을 앞으로의 시기에 불안정의 주요한 추동력 중 하나로 본다는 것은 가당찮다. 이 자본주의 테크노크라트(과학기술 전문가)들은 지속되는 자본주의의 축적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의 관점에서 이러한 우려를 서술한다. 그 어떤 인도주의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이것은 포퓰리스트 우파의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맥락이다. 이들은 대유행의 현실을 부정하고, 백신 접종과 비(非)약물적 처치를 개인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거부한다. 미국 산업안전보건청 또한 동류로, 이들은 이 정책을 독재적 전횡의 대표적인 보기로 본다.[3] 그들은 자본가 개인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가능한 제약이 없길 바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밀집된, 환기 시설이 열악한 일터의 노동자에 대한 의무적 백신 접종에도 반대할 뿐만 아니라, 실내 상업 지역에서의 모임에 가해지는 어떠한 제약도 반대한다. 우리는 백신이, 비약물적 처치 또한, 호흡기 감염을 줄이기 위해 환기 시설을 개선하거나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는 것, 또는 모기 매개 질병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물이 고이는 것을 막도록 하는 배수 시설의 개선과 같이, 개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모든 종류의 유행병과 대유행은 사회적으로 다뤄야만 하는 사회적 문제이다. 다른 한 편, 코로나19 대유행의 진짜 현실을 거부함으로써, 이 우익 포퓰리스트 이데올로기는 자본가계급이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사회적 살해로부터 손을 씻도록 허락해주는 데 기여한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폭발하는 상황과 그것을 결정하는 타협할 수 없는 계급 적대 맥락에서, 제국주의 열강 미국과 러시아를 이끄는 두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세계 전쟁의 전망을 토론한다. 그 전쟁이 거의 확실하게 핵 대결과 상호 파멸이라는 결과에 이르게 될 것임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결과는 재앙일 것이다; 가장 낙관적인 경우라고 해 봐야 인류가 몇십 년이 지나도 회복하지 못할 진정한 인구의 병목 현상일 것이다. 우리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와 전혀 다른 조건에 처해 있다. 그 때의 전쟁은 진행이 상대적으로 느리고, 군사 작전 또한 참호전과 포병의 엄호 아래 보병이 진군하는 데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오늘날 국가 간 전쟁은 제병 연합부대의 전투이며, 제공권 장악, 전자전, 그리고 압도적인 화력에 의존한다. 만약 그런 전쟁이 핵 열강, 말하자면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전쟁을 가상으로 생각하고, 어떤 편이든 패배의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가정하면, 전통적인 전투는 전장 또는 적측의 공군기지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전술 핵무기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일단 전쟁의 규모가 확대되는 단계에 이르게 되면, 어떤 군사 전략가들도 그 결과가 핵 홀로코스트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게 된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와 NATO의 동쪽으로의 확장과 관련된 현재의 위기가 매우 위험한 이유이다. 이 특수한 위기가 즉시 3차 세계대전의 기폭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나, 상호 적대하는 제국주의 블록의 통합이라는 결과로 나아갈 가능성이 있다. 만약 보기를 들어 친러시아 지역인 돈바스(Donbas, 도네츠 분지)를 우크라이나 무장 군대가 점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도록, 미국이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자극했다면, 미국은 서유럽 경제를 러시아로부터 분리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될 것이다. (이 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작성되었다. <편집자>) 러시아가 그들의 탄화수소를 미국 달러로 판매할 수 없게 된다면, 서유럽이 미국에 보다 더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러시아는 중국의 영향권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역동은 우크라이나 위기에 대한 미국/영국과 독일/프랑스의 분위기의 차이를 설명한다. 보다 잃을 것이 많은 독일/프랑스는 러시아에 대해 가혹한 경제 제재를 가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체 그림인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일반화된 제국주의 전쟁의 전망에 대해 노동계급이 줄 수 있는 유일한 반응은 노동계급 자신의 즉각적이고 역사적인 이해관계를 위한 보편적인 투쟁이다. 실제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즉각적인 이해와 역사적인 이해 사이의 대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혁명적 주체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역할은 자본주의 아래 착취 받는 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즉각적인 조건이 작동한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노동계급의 사람들에게 생활비와 관련된 걱정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명목 임금이 상승하지만, 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구매력을 잃었다. 이는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데, 생활비의 상승에 반대하는 저항이 있었던 영국도 그 중 하나다.[4] 비록 노동당과 연계된 압력 집단이 조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비 상승이 부채질한, 증가하는 불만을 지표이다. 국민 보험료의 상승과 결합한 구매력의 상실은 영국의 30% 이상의 가구가 생필품을 구매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5]. 상황은 러시아보다 더 낫지 않았는데, 러시아 가구의 처분 소득은 2013년에 비해 평균 10% 낮았다[6]. 그러나 예상대로 이 진짜 문제(글자 그대로 많은 이들에게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미디어는 거의 무시했다. 대신, 우리는 전쟁을 도발하는 끊임없는 합창에 노출될 뿐이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전쟁에 맞서 지켜야 하는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다. 그것은 전 세계의 수백만의 사람들의 즉각적인 필요에 부합하는 혁명적 정책이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계급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해 연대해야만 한다. 이란과 카자흐스탄의 대중파업은 상당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메트로폴리스의 노동자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주요 강대국에서 대중파업의 조건은 무르익었다. 이미, 여전히 제한되기는 하지만 노동자 투쟁과 파업의 국제적 역동은, 특히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파업의 주요 목표는 구매력의 감소에 대응한 높은 임금이다. 필사적인 계급투쟁의 단계는 마련되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세계 전쟁과 야만으로 나아갈지, 전 세계적 프롤레타리아혁명으로 갈지 결정할 것이다.

 

혁명적 소수는 미래의 인터내셔널의 뼈대 건설을 시작할 책임이 있다. 다양한 흐름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진정한 세계당으로 통합하는, 토론과 명확화의 과정을 필연적으로 포함할 것이며,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은 노동계급 투쟁의 발전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터내셔널이 단일한 혁명적 흐름의 기반 위에 형성된다면 역사적으로 전례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단순히 흐름들 사이의 진정한 차이를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 그리고 계급투쟁에서 증명을 통해 토론하고 명확화한다는 의미이다. 현대의 혁명적 조직은 단일한 덩어리가 아니다. 마치 단일한 것처럼 구는 것은 이러한 조직 사이에 존재하는 진정한 차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고, 이는 재결합에 대한 객관적인 분파주의적 방해물이다.

 

약 100년 남짓 전, 제3 인터내셔널 건설을 계속했던 혁명가들은 중요한 차이를 크게 갖고 있었으나, 특정한 근본적인 정치적 입장을 공유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혁명적 패전주의 노동계급 투쟁에서의 당 지도력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이다. 노동조합주의, 의회주의 등에 대한 많은 문제들이 역사적으로 해결되는 동안, 위의 세 가지 근본적인 입장은 계속해서 국제적 재결합의 의식적인 토대가 되어 왔다. 이 세 가지 입장은 중요한 입장일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것이 확실하다.

 

현재 상황은 더 이상 높을 수 없을 정도로 고조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해방을 위한 주요한 도구, 전 세계 혁명가들의 원칙에 입각한 통일의 기반인 국제적 혁명당의 형성이 점점 더 시급히 필요해지고 있다.

 

2022년 2월 13일

「혁명인가 전쟁인가」 20호, 코뮤니스트좌파 국제그룹(IGCL)

 

 

<주>

[1]https://www.economist.com/graphic-detail/coronavirus-excess-deaths-estimates

[2]https://www.cbsnews.com/news/billionaires-double-wealth-covid-pandemic/

[3]The same is true for all national state health agencies.

[4]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2/feb/12/uk-cost-of-living-protesters-demonstrate-peoples-assembly

[5]https://www.theguardian.com/business/2022/feb/09/national-insurance-rise-could-mean-1m-destitute-households-in-uk-says-thinktank

[6]https://www.themoscowtimes.com/2022/01/13/russias-2021-inflation-more-than-double-official-target-a76025

 

<출처>

http://igcl.org/Crisis-and-Perspective-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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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105년 전 러시아 전쟁 반대 투쟁을 이끈 국제여성노동자의날

105년 전 러시아 전쟁 반대 투쟁을 이끈 국제여성노동자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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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5년 전인 1917년(구력 2월 23일/현재 3월 8일) 국제여성노동자의날, 공장과 가사 노동 중이던 여성노동자들이 페테르스부르크의 거리로 나섰다. 그때도 지금처럼 러시아는 죽음, 기아와 참상만을 가져온 재난의 전쟁 속에 있었고, 경찰국가의 무자비한 권력으로 통치하고 있었다. 정치 단체가 말하는 이른바 여성노동자는 너무도 시기상조인 나머지 파업을 벌일 만큼 충분히 조직화 되지 못했다.

 

종전 2년 반 이후, 페트로그라드로 주문한 음식이 절반만 도착했던 2월 초에 시작된 빵 공급의 중단과 함께 여성 노동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섰다. 역사가인 부르츠할로프(Burdzhalov)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식료품점과 빵집 앞으로 긴 줄이 뻗어있었다. 전례 없는 고통을 가져다준 겨울이었다. 거리는 얼음으로 뒤덮였고, 가정집의 지붕과 거리, 도시의 다리까지도 눈 더미로 뒤덮여 있었다. 누추한 옷차림의 젊은이들, 여성들, 그리고 노인들이 추위에 떨며 수 시간 동안 빵을 기다렸으나, 빈번하게 맨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식량 부족은 대중들 사이에서 더욱 심각했는데, ... 긴 행렬은 그 권력이 혁명적 회담, 수만 장의 혁명 전단와 맞먹었다. 거리는 정치적 클럽이 되어버렸다.”

 

행동을 개시한 경우는 대부분이 여성들이었다. 직물 공업의 여성노동자들이 기본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슬로건을 식량 문제에 국한하지 않았다. “빵”을 외치는 소리가 “전쟁을 중단하라!”와 “차르는 물러나라!”와 경쟁했다.

 

 

1914년의 1차 세계대전으로 25만이 넘은 여성들이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가 되었는데, 이는 공장 프롤레타리아트의 40%, 전체로 약 1만을 이루었다. 상황은 분명 여성에 대한 것이었다. 남성이 전방에 징집된 후, 다수가 군수산업체에서 장시간 노동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돌보아야 했으며, 자유 시간이라고는 고작 빵과 석유를 기다리는 긴 행렬에서일 뿐이었다. 「국제여성노동자의날」 이전의 여러 날 동안 빵 가게는 추방당했고, 돌팔매질을 당했는데 지금 이들 빵 폭동은 여성노동자들의 “폭풍적” 대중 집회의 개최로 변모했다. 전통적 시위를 능가하기를 원했던 거다. 한 공장의 기계를 다운시키기로 결정, 다른 공장으로 달려갔으며, 때로는 노동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창문에다 눈덩이(간혹 너트와 볼트도 있었다!)를 던지기도 했다. 여성과 남성은 공장에서 쏟아져 나와 시위대로 집결했다. 그날 모두가 들었다. 8만과 12만 명의 노동자 사이에서 다수의 여성이 빵과 평화, 그리고 차르주의의 종식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사실을.

 

파업 다섯째 날, 차르주의는 시위대를 짓눌렀으며, 사망자는 이후 1천 3백을 넘었다. 이 사건 이후, 수천, 수백 만의 남성들도 참가했지만, 닷새째까지 중요한 역할을 지속한 것은 여성들이었다. 1905년 혁명의 경험에서 그들이 알게 된 것은, 요충지에 대한 승리가 핵심 과제라는 것이다. 정직하게는 3월 9일, 연화 과정이 시작됐다. 비록 기병 코사크(역주 : 러시아의 경찰 기동대)의 대부분이 초기에는 명령을 따르기는 했으나, 노동자에 대한 동정의 징후들이 한두 곳에서 발생했다. 총검으로 무장한 군부대로 나아간 이들은 이번에도 주로 여성이었다. 그들에게 빵이 부족하며, 남성들이 전방에 있다는 사실 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군 부대원들에게 자신들이 맡은 역할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려는 게 그들의 목표였다. 이는 꽤 효과가 있었는데, 군인들 무더기가 점차 혁명 쪽으로 넘어오게 된 것이다.

 

오늘날 러시아는 서쪽 국경에 또 다른 제국주의 전쟁을 일으키는데, 불과 2주밖에 되지 않았다. 이의 경제적, 사회적 결과가 아직 체감되진 않지만, 적어도 1만 명의 사람들이(유아부터 시작해서 노년층까지 포함하여) “전쟁 반대”를 요구한 혐의로 이미 체포되었다. 1917년으로 돌아가면 이 분위기는 더욱 강력했다. 단지 전쟁에 반대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양산한 사회 체제에 반대한 것이다. 1917년 2월의 시위와 파업은 사실 전쟁을 종식하지 못했다. 노동자혁명이 현재의 러시아 제국주의 목적에 맞서서 싸우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용되었고, 이는 얼마간 이른바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새롭게 재건된 소비에트의 사회주의자들을 포함했다. 그러나 노동자 대중은 여전히 평화를 원했으며, 하나의 사회주의당으로 점차 흘러갔는데, 모두가 전쟁, 모든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저항을 요구했다. 1917년 8월혁명은 3월 8일 시작된 과정의 중단뿐만 아니라, 결국 제국주의 대량 학살로 마감하게 된 일련의 봉기에 대한 전조였다. 불행히도 이들 봉기는 자본주의와 임금 노예의 전복을 알리진 못했다. 러시아 노동자들은 고립된 채 남아있었는데, 혁명은 1921년까지 일련의 새로운 제국주의 적들과 투쟁하게 된다. 이 적들과 직면한 혁명은 결국 그것이 노동자혁명이기를 완전히 그만둘 때까지 노동계급보다는 국가통제주의였다.

 

1세기 전의 전쟁을 인식하는 오늘, 우리 역시 1917년에 창설된 혁명의 영감을 되새겨본다. 오늘, 일반화된 전쟁으로 결정적인 방향을 잡은 또 다른 제국주의 갈등의 가운데에서 같은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인플레이션, 식량 부족, 생활 수준의 하락, 사망. 이 모든 것이 체제가 양산한 것이다. 증대된 긴장 자체는 자본주의적 위기에서 촉발된 것과 같은 경제적 경쟁의식에서 초래된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노동계급의 반응이 지난 수십 년 전보다 현재 더욱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우리는 105년여 전의 노동자들을 보기로 들 수 있다. 이 전쟁은 유산계급의 전쟁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언급했듯, “노동자에게 국가가 없으며, 노동자에게서 없는 것을 빼앗을 수는 없다.” 모든 배외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착취라는 공통의 조건에서 단결된 국제 노동계급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기반 위에 사회를 재건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조직화해야만 가능하다.

 

“... 혁명가들은 미리 정해진 운명에 의해서든 신들의 변덕에 의해서든 단순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위기가 확산하면서 경제, 사회적 상황을 연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혁명적 코뮤니스트는 계급 사이의 권력 균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의 변화를 알릴 수 있는 같은 권력관계의 갑작스럽고 예상치 못한 변화와 조화를 이루어 혁명을 위한 주관적 조건을 만들어 낼 임무가 있다. 혁명가들이 지향해야 할 주관적 목표에는 계급 사이 관계에 변화가 없는 국제 코뮤니스트당(인터내셔널)을 건설하는 것이며, 계급투쟁의 재개는 자본주의의 대안을 이루는 데 있어서 일상적인 전술이나 전략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여전히 모든 위기와 전쟁의 원인이 되는 똑같은 비극적인 자본주의 고랑을 갈고 닦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도 10월혁명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볼셰비키당이 없었다면, 수천만 명의 농민과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이 어떠한 혁명적 해결책도 외면하고 신비로운 민족주의 풍토에 다시 흡수되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것은 “혁명과 반(反)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의 일부분이다. 오늘날 우리는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에 승리를 안겨 준 과거의 교훈에서 배우고, 패배를 가속화 한 불리한 조건과 그에 따른 오류를 확인하면서 ”전쟁이냐 혁명이냐“에 직면해있다.” (‘금융위기 후 10년’, 파비오 데이먼,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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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자본가들은 '정상으로의 복귀‘를 원한다!

자본가들은 '정상으로의 복귀‘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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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가와 국가는 경제 위기의 희생을 노동계급이 치르게 할 작정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지 않고 '전례가 없는' 임금률을 강요하고 있다는 다급한 그들의 앓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실제 임금은 물가 상승에 직면하여 전반적으로 하락한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실제 평균 임금이 대유행 이전 수준(실제로 Fed는 가스와 난방 가격을 인플레이션에서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감소 폭은 더 크다)보다 0.5% 감소했지만, 캐나다에서는 1.6%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실제로 실질임금은 1970년대 중반 이후 전반적인 노동조건이 크게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정체되어 왔다. 게다가 자본가들은 대유행 속에서 노동계급을 위험한 노동환경으로 몰아넣고,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작업의 속도를 높이려고 한다. 이러한 공격은 파업이 증가하고 일반적인 전투력의 상승에서 알 수 있듯이 노동계급이 방어하도록 만들었다.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가한 압박은 캔자스주 토페카(Topeka)에 있는 프리토레이(Frito Lay)의 노동자들의 사례가 잘 보여주고 있다. 토페카 공장의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12시간, 7일이라는 –강제적인 초과근무- 힘든 조건과 정체된 임금 속에서 "항상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잔디를 깎거나 빨래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고용주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 프리토레이 노동자들은 조립 라인에서 여러 명이 사망한 후에도 계속해서 일해야 했으며, 눈보라가 치는 동안에도 작업 중에 몸을 녹일 수 있는 등유 램프만 지급되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들은 지역 사회 내의 다른 노동자들의 지원을 받아 7월에 20일간의 파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 일부 양보를 얻어냈지만, 노조가 작성한 협약서에는 여러 가지 주의사항이 담겨 있었다. 보기를 들어, 현재는 주 6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만일 프리토레이 노동자들은 주중에 하루라도 초과 근무를 거부하면 7일째 근무하도록 할 수 있다. 앨버타주 국경 북쪽, 대유행 초기, 카길(Cargill) 육류 포장 노동자들은 수십 년 동안 악화하여온 건강과 안전 기준 때문에 바이러스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동자들이 점점 더 좁은 공간에 몰려들면서, 그 공장은 당시 바이러스가 아주 많이 발생할 정도로 무르익었다. 1년 후, 카길의 사측은 협약 협상 도중에 노동자들을 봉쇄해서 이러한 고통을 인식하게 했다. 이러한 보기는 특히 터무니없지만, 우리 계급의 많은 부분에서 "새로운 정규성"을 띠고 나타난다.

 

직급제는 오랫동안 자본가들이 임금을 낮추고 그들이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을 분할함으로써 수익성을 보장하는 오래된 방법이었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위험을 무릅쓰고 노조가 추진한 제도였다. 보기를 들면, 제너널 모터스(General Motors)는 2019년에 온타리오주 오샤와의 공장을 수익성 유지를 목적으로 임금과 복리후생을 삭감하는 훨씬 더 불안정한 계층을 도입하기 위하여 1년간 전략적으로 폐쇄했다. 노조는 부문별 전망에 사로잡혀 이윤을 보장하기 위해 회사의 생존 능력에 얽매여 노동력의 일부만을 보호하는 아주 하찮은 협상을 받아들였다.

 

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일반적인 공격을 하는 동안에, 국가는 자본가를 대신해서 준비되어 있었다. 대유행 이전에, 선출직 고용주의 대표들은 공공 서비스와 정의의 힘을 통해 자본주의적 착취의 강화로 야기된 계급 간의 투쟁을 '조정'했다. 2018년 캐나다에서 트뤼도(Trudeau)는 소포 증가로 인한 업무상 재해 증가에 맞서 우체국 직원들이 파업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선언했다. 같은 해 대서양 건너편에서, 스페인 경찰은 같은 물건을 포장하는 아마존 노동자들을 잔인하게 폭행했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계속되는 동안 자본은 생산과 유통이 중단되는 것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 몬트리올 항만 노동자들의 파업은 이러한 불안감이 한계에 이르게 밀어붙였다. 최대 19일 연속으로 일하는 가혹한 노동시간으로 항만노동자들은 2020년부터 파업을 추진하기 시작했지만, CUPE 노조는 계급 평화를 위해 모든 파업을 7개월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향후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마련하고 추가적인 압력을 가하기 위해 유통망을 임시로 준비하면서 사장들이 그들의 이후 조치를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한 행동은 특히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전체 자본을 위한 항구의 중요성을 반영한다. 만약 자본이 거대한 상품 집합체로 보인다면, 항만과 다른 유통 인프라가 그 흐름의 동맥이 될 것이다. 국가는 자본이 활력 있게 작동하도록 하기 위해 어떠한 악랄함에도 의존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더 큰 노동계급의 전투성 속에서, 노동조합의 역할은 노동계급 주도성을 억제하고 약화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례의 전형은 노동 조합기구에 의해 분열되고 파편화된, 퀘벡 전역의 보육원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보육 노동자는 직장의 조건을 동일하게 악화시키는, 식료품점에서 동일한 가격 상승과 임대료 상승에 직면했지만, 3대 노조인- CSN, CSQ 및 FTQ-는 서로 독립적으로 파업 활동을 조절했다. 비록 보육(CPE) 노동자들이 같은 주에 파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른 날에 파업했고, 그에 따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힘을 약화시켰다. 게다가, 노조가 취한 전술은 스스로 고립, 사기 저하, 재정적으로 고갈시키고 스스로 패배를 자초해 왔다. 노조는 다시 한번 '아니오'라는 말을 듣고선 필사적으로 협상 테이블로 가기 위해서 지연 전술을 추구했다. 비록 파업 명령이 8월에 투표로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조처를 하는데 시간을 들였다. CSN은 전투적 행동의 출현에 무관심했으며 FTQ는 상점을 기반으로 노동자를 나누었다. 이러한 전술은 수십 년 동안 노동조합이 해왔고 노동조합이 주장했던 '필요성'의 가면을 찢어 버렸다.

 

노조의 질식에 대한 해결책은 노동자 자신의 조직화여야 한다. 우리는 FTQ의 보육노동자들과 함께 이 디딤돌이 발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노동자들과의 대화에서,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선전물에서 인식했던 "일반화된 위기는 일반화된 투쟁이 필요하다"는, 그들 스스로 노동조합 행동의 한계와 그것을 넘어서야 할 필요성을 알게 되었다. 이는 CSN이 자신들의 주도성을 입증하기 위해 서로 소통했을 때 입증되었다. 게다가, 미니스트리 드 라 파미유(Ministere de la Famille) 앞의 CSQ 피켓팅에서, FTQ 노동자들은 CSQ가 정한 제약 조건을 깨고 다른 노동자들을 거리의 투쟁으로 이끌었다. 노동자 자신이 취하는 자발적인 행동은 파업위원회와 같은 실제 노동계급 구조의 조직을 통한 자기 조직화에서 확고해야 한다. 그러한 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들의 주도권은 그들의 독자적인 지형에서 능동적인 창의성과 투쟁의 일반화를 위한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다.

 

노동자들 스스로 조직화와 독립적인 활동의 중요성은 오늘날 국제 노동계급의 심장부로 우뚝 서 있는 이란 노동자들의 투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조의 지배와는 대조적으로 이란의 석유 노동자들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란 국가와 그 조직 노동의 하수인, 이슬람 슈라(Islamic Shuras)의 공개적이고 잔인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조직위원회를 만들고 대중 총회를 계급 권력의 진정한 기관으로 만들었다. 노동자들의 연대와 투쟁의 산물인 이 조직위원회를 통해 노동계급의 광범위한 계층은 부문별 분열에 반대하는 공동의 주체를 찾았다. 노동계급 자체의 진정한 산물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조직 구조는 노동계급의 계급적 성격과 일치한다. 폭넓은 의사결정과 적극적인 주체의 원칙에 따른 그들의 독립적인 조직화는 '의무'를 수행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대표자'와 대비된다.

 

이란 노동자들의 경험은 노동자들의 독립적인 조직이 계급의 생명줄이며 투쟁 자체가 사회주의의 학교임을 보여준다. 자본주의의 세계적인 위기가 모든 대륙 노동자의 조건을 공격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코뮤니스당의 필요성은 명백하다. 그러한 기관은 만일 우리가 계급으로서 자본의 국제적 위기와 사회의 혁명적 변화에 대항하여 국제적으로 통일해야 한다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 이러한 당은 기다리는 정부가 아니라 과거와 오늘의 투쟁을 계급투쟁의 논리적 결론, 즉 임금노동의 폐지와 이윤과 착취가 아닌 사회적 필요를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와 연결할 수 있는 조직이다. 이 당은 단순히 지적인 단체나 선전 세포의 집합체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계급 내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해야 하며 전투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

 

2022년 3월 24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이 기사는 계급투쟁(Klasbatalo)의 기관지 「반란」(Mutiny) 최신호에 실린 글이다.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3-24/the-bosses-want-a-return-to-normal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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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5호] “귀하의” 국가를 위해 싸우지 마라!

“귀하의” 국가를 위해 싸우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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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모두가 싫어한다. 사람들 대부분은 타인을 전장에서 죽으라고 내보낸다. 그들은 전쟁을 혐오하지만, 이를 어쩌나, 상대편으로 인해 전쟁이 강제된다. 우리의 전통 사냥터를 침범하고 있는 것은, 상대편이다. “주권” 국가를 침해하고 있는 것은, 상대편이다.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방어해야만 한다... 당신은 “우리”의 어느 쪽인가? 양측의 무자비한 선전이 모두에게 어느 한 편을 선택하도록 압박한다. 전쟁의 적극적 참여자가 되거나 치어리더가 되라고 말이다. 왜냐면, 상대편이란 진정으로 무자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변함없다.

 

러시아 군대는 전범(戰犯)으로 비난받고 있다. “전범”, 이라는 이상한 용어. 참으로, 쓸모없는 말이다. 전쟁이 범죄로 정의되다니. 그것도 극악한 범죄로.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수단은 언제나 대량 살상과 파괴다. 극악무도한 대학살이 없는 전쟁이란 없다. 전쟁에 무게를 재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하는 용어가 있다. 문명화된 전쟁과 범죄형 전쟁이다. 만약 둘 사이에 차이가 없는 거라면, 그건 군사 기술로 사전에 제거되었을 것이다. 20세기 초 이래, 전쟁 중 시민 사상자 비율은 꾸준히 증가해왔다. 19세의 미국 내전 중, 전체 전쟁 사망자 중 90% 이상이 군인으로 집계됐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시민 사상자가 전체의 59%였다. 2차 세계대전에서는 63%로 증가했고, 베트남전에서는 67%로 증가했다. 1980년대의 여러 전쟁에서는 74% 올랐으며, 21세기에는 90%로 올랐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전쟁으로 사라진 적이 없다. 전투원과 민간인의 차이, 군사와 비군사적 표적 간의 차이가 동시대의 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각 진영이 전개하는 전투력이 강할수록, 민간인에 대한 “이차적 피해”가 더욱 커진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더욱 심화할수록, 평범한 이들의 삶은 더욱 파괴된다. 국가는 더욱 폐허로 변한다.

 

전범으로의 간주 여부는 견해의 문제가 된다. 모든 분쟁에 대해 모두가 상대방을 비방하는 저급한 욕설이 되어버린 “테러리즘”과 마찬가지로, 그것은 비난으로 위장한 변명이다. 대중매체와 정치인이 모든 악 중 최악으로 정의한 “테러리즘”에는 모든 수단으로 그것을 억압해도 좋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리하여 그것은 테러 자신의 목적에 대한 무미건조한 변명거리가 된다. 마찬가지로, ‘전범’이라는 비난은 ‘우리 쪽’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매체가 거의 언급한 적도 없고, 때로는 전혀 그런 적도 없는 것이다. 예멘을 보기로 생각해보면, 그곳에서 사우디 군대는 러시아 군대가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저지른 것 이상으로 훨씬 심각하게 폭격을 가했으며, 시민들을 굶겼다. 사우디 공군은 영국 및 미국의 군사적/기술적 원조와 무기 공급이 없었더라면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이것도 “민주주의를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이러한 잔혹 행위가 지금 자행되고 있다. 미디어의 조명이 닿지 않는 곳에서. 자리를 옮겨도, 볼만한 것이 없다. 여기서 전범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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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전쟁

 

전시 중에는 선전과 보도의 경계를 인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자주 본다. 러시아 군대가 키예프(Kyiv)에 텔레비전 타워에 (실패한) 미사일 공격을 가했을 때, 서구 언론은 그것을 전범이라고 일컫는다. 그러나 나토가 1999년 베오그라드(Belgrade)의 라디오 및 텔레비전 타워에 (성공적으로) 폭탄을 투하했을 당시, 그것은 “합법적인 군사적 표적”이었다.

 

러시아 군대의 “특별한 군사 작전”이 범죄라는 사실은 그로즈니(Grozny)와 알레포(Aleppo)에서 충분히 입증되었다. 최근 폐허로 변해버린 도시의 극단적인 사례를 들자면 말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 여기까지 이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침략의 구실이 우크라이나가 해방되어야 할 형제 같은 이들이라는 사실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군사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러시아는 전쟁을 강화하는 한편, 월등한 파괴력으로 “형제”들을 압도해야만 한다. 전쟁 논리는 러시아 침략이 대대적 파괴에 속도를 높이도록 몰아간다.

 

이것이 러시아의 현상인 척하지는 말자. 걸프전에서 미국은 바그다드의 은신처에 폭탄(벙커를 파괴하도록 설계되었다.)을 투하했고, 결국 수백 명의 시민이 사망했다. 1991년에는 “죽음의 고속도로”에서 도망가는 병사들에게 공중에서 대학살을 자행했을 때, 더욱 많이 죽었다. 서방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전쟁에서는 38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사망했다. 미합중국 군대가 수행한 무자비한 드론 공격 역시, 전투원과 비전투원 간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워싱턴의 가장 충직한 봉신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일은 말한 것도 없다. 그들 모두가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전쟁이다.

 

전쟁은 시민에 대한 국가의 통제를 강화하는데 이상적인 프레임이다. 이제 그것은 러시아에서 자명해졌다. 그곳은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른다면 징역 15년에 처할 수 있는 곳이다. 반전 항의가 야만적으로 억압되는 곳이다. 크렘린 궁전의 대변자가 아닌 모든 매체는 침묵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정권의 약점이라면, 노골적인 억압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의 경우만은 아니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젤렌스키를 지지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아는 한 그렇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서구 매체와의 여러 인터뷰에서 전쟁에 관하여 반대한다거나 혹은 의심하는 표현도 듣지 못했다. 비록 우리가 사회적 매체나 우리가 가진 자료로 그들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매체에 따르면, 모두가 국가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남성이 이 국가를 떠나는 것을 금지하는 조처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고향을 위한 총알받이로 남아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야당을 막고, 모든 텔레비전 뉴스 채널을 “연합뉴스”로 불리는 “전략적 소통의 단일 정보 플랫폼”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가 자유의 수호라는 명목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러시아 바퀴벌레들”을 죽이라고 하는 매체는 그들의 독을 계속해서 뿜어낸다. 서구의 여러 매체 – 심지어는 뉴욕타임즈와 같은 신문까지도 – 젤렌스키의 권위적인 조치를 보도하려 하지 않는다. 타임즈의 유명한 모토는 “인쇄하기 알맞은 모든 뉴스”를 언급한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뉴스는 민주주의를 위한 이 전쟁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거짓말쟁이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 모두 잘못된 정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검열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미꾸라지 같은 주장이다. “전범”, “테러리즘”처럼, 그것은 “보는 이의 각도에 달린 것”이다. 물론, 잘못된 정보는 사회적 매체 그 외에도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누가 그것을 규정하는가? 러시아에서는 누구에게 발언권이 있는지, 침묵해야만 하는지를 국가가 결정한다. 서방국에서 그러한 일은 대개, 매스 미디어 및 사회적 미디어 플랫폼을 통제하는 기업인 개인적 영역으로 외주를 준다. 그러나 그들 역시 정부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럽 의장 우르술라 폰데어라이엔(Ursula von der Leyen)은 ”우리는 유럽연합의 크렘린 미디어 기계를 금지할 것이다. 오늘날의 러시아 국영기업, 스푸트니크(Sputnik)와 그들의 자회사는 푸틴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자신들의 거짓말을 퍼뜨리도록 더 이상 허락되지 않는다. 우리는 유럽에서 그들의 극악한 허위 정보를 막을 도구를 개발하고 있다.”라고 언급했다. 정말이지, 친서방을 따르지 않는 충성스러운 러시아 뉴스 채널과 다른 채널은 더 이상 페이스북에 접근할 수 없으며, 다른 주요 사회 미디어 통로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을 검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이 적이 행하는 바이다.

 

러시아인과 서양인 각각은 전쟁에 관하여 매우 다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들은 거짓말을 하게 되는데, 특히 그들의 미디어가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혹은 아니어야 할지가 그렇다. 보기를 들어, 러시아 시청자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에게 구타당하고 위협받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되고 서방 시청자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꺼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는 남편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작별 인사를 하는 어머니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두 종류의 이미지 모두 진짜이긴 하겠지만, 각국은 그들의 선전 서사에 무엇이 적합한지 보여주기로 선택한다.

 

서방의 이야기는 악당으로부터 자신을 용감하게 방어하는 솔직한 사회적 약자에 관한 것이다. 용감한 영웅을 위하여 우리는 당연히 환호한다. 당연히 그들을 돕고, 노랗고 푸른 깃발을 흔든다. 이는 그만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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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이야기는 매우 정교하지 못하다. 이는 이전 구소련의 천박한 형식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대량 학살 정권인 신나치의 붕괴 속에 신음하고 있다.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우리의 고향에 위협이 되는 나토의 전초기지가 되는 것을 막으려는 것뿐이다. 우리는 나치가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같은 종류의 뻔한 서문과 함께, 러시아 탱크가 부다페스트와 프라하로 동시에 진격했다.

 

모든 선전이 그렇듯, 진실의 일면이 있다. 나토의 압박은 진실이다. 우크라이나 내부에 극단적 민족주의의 기류가 흐른다.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로마어와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이들을 공격하는 그룹, 스보보다(Svoboda), 아조프(Azov) 대대(현재는 우크라이나 군대에 통합되었다.)와 같은 파시스트 그룹이 존재한다. 물론 극우세력이 추악한 고개를 들고 있는 나라는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의 정치 시스템이 파시스트라는 뜻은 아니다. 적어도 러시아에서는 덜 그렇다. 그리고 대량 학살? 러시아 군대가 시리아 및 체첸공화국에서 행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개를 때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막대기를 찾을 것이다. 모든 국가는 그들의 군대가 외부로 향하면 거짓을 말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사담 후세인의 존재하지도 않는 “대량 살상 무기”, 알카에다(미국의 이라크 침략의 전조였다)와의 거짓된 연합을 생각해보라.

 

진실

 

진실은 상호 제국주의라고 불리는 이야기이다. 세계가 아무리 글로벌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경쟁에 기반을 둔 세계이다. 상업적인 경쟁은 상황적 필요에 따라 냉전과 열전과 같은 군사적 경쟁이 된다. 상황이란, 권력의 손실, 경제 위기, 시장의 손실 혹은 잠재적 이득을 말한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와 야만적인 충돌을 일으키는 체제 속에서 살아간다. 시스템은 그 자체로 행성과의 전쟁, 생명과의 전쟁터다. 자본주의 체제를 물리치고 싸우는 것이 이치에 맞는 유일한 전쟁이다.

 

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잠깐 멈춘 것이다. 바르샤바 조약은 사라졌지만, 나토는 그러지 않았다. 러시아도 나토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고 옐친이 제시했으나, 당연히 그것은 불가능했다. 나토의 존재 이유가 러시아를 제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역시 자본주의 민주국가가 된 현재, 나토의 필요성에 관한 격렬한 논의가 이어졌다. 실로 논의에 대한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나토는 애초의 약속을 깨고 러시아 국경까지 진출했다. 전(前) 바르샤바 조약 14국이 반(反)러시아 동맹에 통합되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 미국 미사일 기지가 설치되었다. 우크라이나 점령은 공세 중 가장 최근의 것이었다. 이익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더욱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우크라이나는 아직은 나토의 회원이 아니지만, 서방과 군사적으로 협력하기 시작했다.

 

나토의 확장은 미국(및 다른 서방국)을 위한 거대한 시장의 확대를 의미했다. 새로운 회원국이 그들의 무기를 나토 기준에 따르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에 충족하기 위해 폴란드는 2011년부터 2020년까지 60%, 헝가리는 2014년부터 2020년까지 133%의 군비 지출이 증가했다. 계산대가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토의 확장은 또한, 군사력, 특히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가 아메리카제국에 잠재적인 위협으로 남아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었다. 미국은 여전히 반(反)전면적 파괴의 위협 없이 전쟁을 치를 수 없는 유일한 나라다. 냉전 시기를 그대로 닮았다. 그리하여 그것은 끝나지 않았다. 견제.-워싱턴 전략은 그대로다.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함이다. 영향력을 낮추기 위함이다. 러시아와 직접적 충돌에 개입하지 않고 힘을 약화하기 위함이다. 냉전 시기에 이러한 충돌은 쿠데타, 민족해방운동으로 드러났다. 이제 우크라이나는 “자유로운 서방”을 위해 열렬히 자발적으로 죽음을 무릅쓰고자 한다. “동정심” 많은, 호전적인 백만장자 젤렌스키로 인해 벌어진 일이다. 마치 쿠바미사일위기 당시의 체 게바라처럼, 필요하다면 세계대전이라도 일으키기를 바란다. 나토와 러시아의 공중전인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요구가 받아들여진다면, 위험해질 것이다. 그는 체 게바라처럼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정면 대결은 금기시되고 있다. 그것이 핵전쟁 이전과 평행선을 그리는 것이 오해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다.

 

적은 더는 “코뮤니스트 위협”으로 설명되지 않지만, 러시아를 우리와 같은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로 만들지는 않는다. 부자들은 우리와 같은 자본가들이 아닌 “집권층”이다. 집권층. 그들은 누구인가? 부패, 착취, 투기로 부자가 된 억만장자들, 화려한 사치 소비로 그들의 재산을 과시하는 이들이다. 다시 말해, 자본가들이다. “막대한 부 이면에는 엄청난 범죄가 있다.”는 격언은 러시아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엄청난 범죄”는 여전히 새롭다. 러시아의 새로운 자본가계급은 대부분이 구 자본가계급, 즉 사이비 코뮤니스트 (구)소련의 공장장, 정당의 의장, 관료였으며 국가 재산이 사유화되었을 때 도적처럼 돌변했던 계급이었다. 특권 계급은 현재의 민간 자본가처럼 특권 계급으로 남았다. 민간 자본가들의 이윤은 현재 푸틴의 손아귀에 확고하게 놓인 국가 기구에 얽혀있고 종속되어있다.

 

구소련의 해체, '중앙지휘부'의 친자본주의 경제의 사유화는 우선 제국 유지에 드는 심각한 비용, 노동자들이 적은 임금으로 더욱 열심히 노동하는 것을 꺼리는 것에서 야기되었다. 그러나 지배계급 구성원의 갈망 역시 중요한 요소였는데, 자본의 관리자뿐 아니라 개인 자본소유자들에게 전 세계 자본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표준생활기준이 돌처럼 가라앉는 동안 경제는 급격히 침체했다. 1998년 러시아의 GDP는 (구)소련의 붕괴 직전 해의 1/3을 조금 웃돌았을 뿐이었다. 산업 생산은 60%로 감소했다. 그러나 1999년을 기점으로, 석유와 가스 같은 러시아의 주요 수출품의 가격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는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며, 빠르게 회복되었다.

 

치안 기구를 중심으로 국가 기구가 통합되었다. 전 KGB 대령이었던 푸틴이 왕좌를 이어받자, 러시아는 회복하기 시작했다. (250만 명 이상의 러시아인을 고용했던) 군수산업이 과잉생산으로 곤란할 지경에 처할 때까지 군사부분이 재정비되었다. 이 군대는 (조지아와 카자흐스탄) 국경 지역의 내륙과 (시리아) 외곽 지역이 “질서”를 유혈로 회복시켰다.

 

그러나 2015년의 산업 생산은 여전히 1990년 수준 이하였다. 유일하게 석유와 가스 영역만이 민영화 이전의 생산 수준을 넘어섰을 뿐이다. 그 해에, 석유 가격이 급하락하여,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입혔다. 2020년 GDP는 2013년 2조 2900억이었던 것이, 1조 4800억으로 하락했는데, 텍사스보다는 낮은 수치다.

 

따라서 러시아 자본의 도전은 여러 가지였다.

 

- 석유, 가스 같은 주요 수출 산업의 시장 지위를 유지할 것:

 

- 그것에 대한 의존을 낮출 것 : 물가 폭등 및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무너진 경제에 대해 그것은 신뢰할 수 없는 목발이다.

 

- 군수산업의 초과생산을 축소할 것 혹은 해당 상품 사용을 증대시킬 것

 

- 노동계급에 제공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숨길 것, 프롤레타리아를 비참한 환경으로부터 주의를 분산시킬 것(생존 조건 파괴에 책임이 있는 외부의 적에 대해 국가적 자부심을 강조하는 캠페인에 개입시키도록 한다.)

 

이는 제국주의 침략의 조건이다.

 

우크라이나는 매력적인 전리품이다. 세계 최대의 철강 산업 보유국이며, 가스 및 기타 광물 자원과 함께 비옥한 토지와 산업, 조선, 항구 ... 또한 러시아와 견줄만한 현대 군수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크라이나는 “무장해제 되어야” 한다고 모스크바가 주장하는 이유이다. 그다음으로는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를 우크라이나를 통해 서유럽으로 이동하는 관이 있다. 물론 러시아가 그것을 통제하기를 바란다.

 

러시아는 이들 관을 통해 유럽의 가스 수입의 45%를 제공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에서 시장을 조금씩 점유해갔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천연가스 생산국이다. 미국이 최대의 가스 산업국이자, 성장 속도가 가파른 데에는 새롭고도, 생태계에 손상을 입히는 (수압파쇄법) 추출방식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과잉생산으로 신규 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하느라 고군분투 중이다. 2018년 이래 대부분의 유럽 연합국 및 영국에 대한 수출은 가파르게 증가했다.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발트해 하부에 새롭게 내장된 노드스트림(Nordstream)2 가스 수송관의 종점이었던 독일은 예외다. 그것은 아직 사용하지 않았고, 지금으로서도 전혀 사용될 것 같지 않다. 이는 독일 자본의 안정적인 비용 효율적인 에너지 공급 및 러시아와의 통상 관계 확대를 위한 희망이었다. 현재 독일은 미국으로부터 액화 가스를 공급받기 위해 새로운 터미널에 투자함으로써 한 편이 되었다. 심각하게 오염된 화력 발전소는 새 시대를 열었다. 유럽연합위원회는 이듬해까지 러시아 가스 수입을 3분의 2로 감소시켜 2027년에는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심지어 그 목표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한다 해도, 방향은 분명하다.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유럽 에너지 시장을 둘러싼 전쟁인 만큼,-또한 그것이 분명한 그림의 일부인 만큼-미국은 이미 승리자다.

 

현재의 전쟁은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다툼은 2008년부터 지속되었다. 2014년, 이 다툼이 전쟁이 된 것이다. 그때부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애국적인 전쟁 선전으로 넘쳐났다. 우크라이나는 모스크바도 워싱턴도 포기하려 하지 않는 살기 힘든 나라다. 두 여성이 서로가 한 아기의 엄마라고 주장했던 솔로몬 왕의 판결을 떠오르게 한다. 솔로몬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아기를 둘로 잘라 각자에게 나누어 주겠소. 진짜 엄마가 주장하기를 “안 됩니다. 아기에게 손대지 말고 그를 그녀에게 주십시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두 엄마는 “자르시오.”라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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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현재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가 너무도 뒤섞여 있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벌어지는 일을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보기로, 2월 27일 “뱀 섬”의 13명의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조국을 위해 죽겠다고 결심했다 들었다. “엿 먹어라.”는 표현은 항복하려면 러시아 숭배를 요구했던 것에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보여준다. 우크라이나와 모든 서방 미디어에서 그들의 영웅주의가 하늘로 울려 퍼졌다. 말하자면, 그들의 조각상이 이미 주문된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저 군인들이 부질없는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였다는 선전에 중독되었단 말인가? 자살폭탄처럼, 사후에 보상이라도 받기를 바랐는가? 그들의 죽음으로부터 이득을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을 영웅으로 추앙도, 애국적 광기의 희생자로 애도해서도 안 된다.

 

불행히도, 군인들은 무엇보다도 지혜롭게 항복한 것으로 상당히 빠르게 드러났다. 어휴. 심지어는 러시아 방송에서 그들의 생존과 안녕이 보도된 이후에도, 서방의 여러 미디어에서는 그것을 보도할 수가 없었다.

 

고향과 싸우는 것이 우크라이나의 인구 대다수의 관심 사안이 아니다. 나토와 유럽연합으로 일치된 국가가 얻는 삶의 이점이 무엇이든, 전쟁의 불이익보다 크지 않다. 몇 주 후, 몇 달 혹은 몇 년 후, 총소리가 잦아들고 폭탄이 터진 도시 위의 연기가 사라질 때, 우크라이나는 폐허와 무덤 더미로 가득히 오염된 도시가 될 것이다. 또한 서방 국가들은 그들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무기보다 재건을 위한 비용에 덜 관대할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사람들이 거기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국가의 영예인가?” “자유인가?” 전쟁이 젤렌스키를 끝장내고 나면, 우크라이나만의 “집권 세력”은 여전히 부유하겠지만, ‘평범한’ 우크라이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뿌리 깊은 비극이다.

 

전쟁에 관해서 우리가 접한 최고의 소식은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들의 무기를 파괴하여 내다 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나 불투명한 일인가. 우리는 무기 유기가 더욱 커지기를 바랄 뿐이다. 양국 모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군인이 서로 화해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신들의 지도자들에게서 무기를 돌리기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이 전쟁 반대를 선언하기를. 국민이 전쟁과 그 모든 결과를 계속해서 인내하고자 한다면, 평화 선언만으로는 전쟁을 멈출 수 없다. 거대한 대중이, 노동계급이 전쟁으로부터 등을 돌릴 때만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은 처음은 1917년 러시아에서, 이듬해 독일에서 노동계급의 전쟁 반대 투쟁으로 중단되었다. 그렇지만 이는 오래전 일이다. 오늘날 러시아에는 대규모 폭동의 기류가 없으나, 전쟁의 파괴적 결과는 잠자는 거인을 깨울지도 모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에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의 격차가 가파르게 벌어졌다. 양국의 “집권 세력”(푸틴과 젤렌스키를 포함해서)은 해외 조세 도피처에 재산을 숨기고, 세금을 거의 지불하지도 않는다. 반면 물가가 급상승한 한편, 12년간 우크라이나의 실질 평균임금은 변동이 없었다. 성공적인 우크라이나 정부가 사회적 비용을 2014년 예산의 20%에서 현재 13%로 축소시켰다. 이미 가난한 우크라이나 인구의 대다수는 전쟁 이후 더욱 빈곤해질 것이다. 지배계급의 관심과 그들의 관심은 같지 않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은 그들이 가진 적대적 이해로 인해 서로를 살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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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라고?

 

이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우리는 모른다. 아마도 양국의 승리를 인정하는 일종의 현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상 이는 다음 전쟁을 예고하는 숨 고르기에 지나지 않는다. 2008년의 “대침체” 이후, 세계 경제는 급격한 위기를 겪었다. 세계의 이윤이 거의 최저 수준으로 하락했다. 화폐를 대량으로 찍어내고 엄청난 금액을 차입함으로써만 붕괴를 피했다. 세기 전환기에, 세계 부채는 84조에 달했다. 2008년 위기가 시작되었을 당시 수치는 173조였다. 2021년에는 71% 상승하여 296조였다. 모든 국가의 연간 총수입을 합하면 353%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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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은 솟구쳤고, 어떤 “정상적” 의미에서든 구덩이에서 나올 계획도 전망도 없다. 세금의 증감, 소비의 진작, 화폐공급의 축소 또는 확대, 성장과 가치 축적에 의존적이지만, 그것을 점점 더 성취할 수 없는 이 체제의 위기에 대적할 수 있는 노동자가 없다. 가치 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세우기 위해서는 존재하는 자본의 가치 하락을 요구한다. 거대한 규모로 “죽은 나무”의 근절을 요구한다.

 

같은 기간에 경제 불안전성의 증대와 희망 없는 위기, 글로벌 군비가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한 것, 무력 충돌 횟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 우연인가? 거의 모든 대륙에서 전쟁이 격렬해지고 긴장이 긴박해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명목상 군비 확충 노력을 가속화 했다. 글로벌 군비는 지난 10년간 경상 달러로 9.3%까지 증가했으며, 현재는 매년 2조를 경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최대 수요는 미국(2020년 7780억, 매년 4.4% 상승)은 러시아(2020년 610억, 2.5% 상승)를 포함한 그 외 국가를 월등히 넘어선다. 2020년 유럽의 총 군비 지출은 2011년보다 16% 높았다. 심지어 대유행으로 촉발된 침체조차 이러한 경향을 멈추지 못했다. 2020년 세계 GDP가 4.4%까지 하락했지만, 글로벌 군비 지출은 3.9% 증가했고, 2021년에는 3.4%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를 가속화하고 있다. 내년이 되면 무기 생산 업체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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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다시 한번 세계의 용광로가 될 수 있다. 지난 세기의 역사적 순간과 비교하여 중요한 차이가 있다. 첫째: 핵 요인이 상승에 제동을 걸고 있다. 두 번째 차이 : 글로벌 경제가 이전보다 심화하고 있다. 이해관계들이 서로 얽혀있다. 자신의 살점을 베지 않고서는 경제적으로 적을 벌할 수 없다. 러시아는 11번째 경제 대국이며, 현재 석유와 가스와 같은 주요 수출품은 제재에서 대부분 제외되었다. 유럽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무기를 대량 보내는 동안,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는 지금도 우크라이나를 통해 유럽으로 흐른다. 이 상호적 의존성이 상승을 제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상승에 대한 이들 억제 사항은 철통같이 보장되지 않는다. 군사 권력이 넘어서서는 안 되는 경계선이, 문제, 특히 패자 측에 대한 해석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러시아는 2020년, “군사적 행동의 촉발을 피하고, 러시아와 다른 동맹국이 인정할 수 없는 조건들에 그러한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잠재적 핵 사용을 줄이는 핵 억제력에 대한 대통령의 새로운 지시를 발표하였다. 화학적 생물학적 무기인 “지저분한 폭탄”(기존의 폭발물에 방사능물질을 결합한다.)을 사용함으로써, 이는 감소되었다. 거기에서부터 전술적 핵무기 증가가 그렇게 큰 진전처럼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더 있다. 그러한 과정을 피하고자 지배계급의 분별력을 신뢰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경제적 이해가 얽혀있는 것이 각각을 보증하지 않는다. 이것이 현 순간을 명확하게 하는 지점이다. 전쟁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의 경제에 치명적이다. 양국의 자본가계급은 결과적으로 이윤이 줄어들 것이다. 따라서 세계 경제 전반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특히 경제 제재의 심각성은 놀라웠다. 그것 모두는 이윤이 되지 않지만, 이윤을 쫒는 것이 그것을 움직이게 한다. 전쟁과 제재가 어떤 식으로든 피할 길 없는 미래의 침체를 가속화하고 심화시킬 것이다. 지금은 그것 때문에 전쟁이 비난받는다. 바이든은 그것을 “푸틴이 일으킨 침체”라고 명명할 것이다. 푸틴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 경제의 전쟁을 비난할 것이다.

 

전후 제재 정권의 강화는 미래의 분쟁을 위한 준비를 뜻할 것이다. 현 자본주의의 변화무쌍함 속에서 이윤은 승전을 위한 희생양이다. 보호주의자가 됨으로써, 제재는 이윤 추구의 세계화 경향에 반대할 것이다. 무역 관계가 무너졌고, 물류의 연결이 단절된다. 그러나 전쟁 경제 속에서 그것들이 인식될 것이다. 제재의 목표는 (러시아, 이란, 북한, 그리고 잠재적으로는 중국이) 공공의 적에 대항해 뭉칠지도 모르겠다. 전쟁에 대한 지정학적인 함축이 또 다른 기사의 표제어가 될 것이다. 요지는, 세계화 속에서 우리는 세계 경제에서 우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는, 과거 이전의 세계대전 순간에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의식에 관한 것이다. 지배계급이 국민에게 전쟁에 총력을 기울도록 필요한 것은, 의식의 파괴이며 개인의 원자화, 그리고 거짓된 국가 공동체 속에서의 통합이다. 푸틴은 아직은 거기까진 가지 않았다. 그는 히틀러와 독일인들처럼 러시아인들을 자신의 호주머니에 담지 않았다. 러시아 내부에서의 항전을 외치는 수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저항은 현재로서는 제한적이다. 그러나 국가에서 많은 이들이 참여하도록 강제된 하나의 대규모 집회를 제외하고는, 푸틴을 지지하는 국수주의적 표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의 군사력을 제외하면, 푸틴은 전쟁을 히틀러만큼 확대할 수 없는데, 그의 이데올로기적 통치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확대해야만 하는 이유라면, 승리 없이는, 포클랜드 패전 이후의 아르헨티나 군사정권처럼 그의 버팀목이 무너져 내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것은, 사회 투쟁의 전통을 가진 대부분의 다른 국가도 이데올로기 통치가 취약한 나머지 국민을 대규모의 전쟁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진행되고는 있다. 우리는 틀에 박혀있다. 우리는 또다시 군인을 영웅으로 숭상하도록 학습한다. 우리는 또다시 전쟁터에서 승리를 응원할 것을 학습한다. 우리는 전쟁의 노력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학습한다. 또한 우리의 어떤 문제에 대해서 국가적 해결책이 없지만, 경제 위기, 기후 파괴, 대유행, 기근, 등 국경을 지키기 위해 전투하는 것, 고향을 위해 죽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배운다.

 

그것이 여러분을 규정하도록 놔두지 마라. 1915년 칼 리프크네히트가 혁명적 패전주의에 대해 그의 호소를 결정했듯이, “살육은 넘치도록 충분하다! 국내외 전쟁 선동자들을 타도하라! 대학살에 종말을 고하라!”

 

2022년 3월 23일

샌더(Sander)

국제주의자 전망(IP)

 

 

<자료 출처>

군사 데이터 : Sipri, IISS, 루트 레거 시바르.

경제 데이터 : IMF, 세계은행, 블룸버그지, 매크로트렌드

 

옮긴이 : 지나

 

<원문출처>

https://internationalistperspective.org/dont-fight-for-your-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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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주아 선거와 노동계급] 의회주의 비판 - 안톤 판네쿡

 의회주의 비판 - 안톤 판네쿡

 

세계혁명과 코뮤니스트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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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

 

코뮤니즘을 사회민주주의와 구별 짓는 평의회 체제와 독재라는 새로운 원칙에 대한 확고하고 분명한 강조와는 대조적으로, 제3 인터내셔널의 기회주의는 제2 인터내셔널로부터 이어받은 투쟁의 방식에 최대한 의지한다.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의회 활동을 평의회 체제로 대체했고, 공장을 기반으로 노동조합 운동을 건설했고, 서유럽에서 첫 번째 충격은 이 사례를 따르는 것이었다.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은 의회 선거를 거부했고 노동조합으로부터 즉각적 또는 점진적인 조직 분리에 찬성하는 운동을 했다. 그러나 1919년 혁명이 느슨해지고 침체되었을 때, 독일코뮤니스트당 중앙위원회는 의회주의를 선택하고, 산별 노동조합에 반대하여 낡은 노동조합연맹을 지지하는 이전과는 다른 전술을 도입했다. 이 배후의 주된 논거는 코뮤니스트당이 여전히 전적으로 의회주의적으로 생각하고 선거운동과 의회 연설을 통해 가장 잘 도달할 수 있는 대중에 대한, 그리고 조합원 수를 700만 명까지 늘렸던 대중에 대한 지도력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똑같은 생각이 영국 사회주의당(BSP)의 태도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노동당이 제2 인터내셔널에 속할지라도 다수 노동조합 활동가와의 관계를 잃을까 두려워해서 노동당과 단절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제4장

 

의회 활동과 노동조합 운동은 제2 인터내셔널 시대의 두 가지 주요 투쟁 형태였다.

 

제1 인터내셔널인 국제노동자협회의 대회는 자본주의 이전, 쁘띠부르주아 시대에 속하는 초기 개념에 문제를 제기하고, 맑스의 사회이론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의 성격을 정의함으로써 이 전술의 기초를 놓았다. 생존 수단을 위한 자본주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끊임없는 투쟁, 즉 정치 권력의 장악으로 이어질 투쟁으로서. 부르주아 혁명과 무장봉기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이 정치 투쟁은 오래된 민족 국가나 새로 창설된 민족 국가의 틀 안에서만 계속될 수 있었고, 노동조합 투쟁은 종종 훨씬 더 엄격한 제한을 받았다. 따라서 제1 인터내셔널은 해체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할 수 없었던 새로운 전술을 위한 투쟁은 제1 인터내셔널을 파산시켰다. 한편 낡은 개념과 투쟁 방법의 전통은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존속하게 되었다. 제1 인터내셔널은 새로운 전술을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 도처에서 생겨난 노동조합과 사회민주당에 이 새로운 전술을 물려주었다. 제2 인터내셔널이 사회민주당의 느슨한 연합으로 생겨났을 때, 사실 여전히 아나키즘의 형태로 전통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제1 인터내셔널의 유산은 이미 논쟁의 여지가 없는 전술적 토대를 형성했다. 오늘날 모든 코뮤니스트는 당시에 이러한 투쟁 방식이 왜 필요하고 생산적이었는지 알고 있다. 노동계급이 상승하는 자본주의 내에서 발전하고 있을 때, 노동계급은 사회를 통제하고 질서를 정할 수 있는 기관을 아직 만들 수 없었고, 심지어 그렇게 할 필요성을 인식조차 할 수 없었다. 노동계급은 먼저 정신적으로 방향을 잡고 자본주의와 계급 지배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인 사회민주당은 선전을 통해 체제의 본질을 밝히고 계급적 요구를 제기하여 인민 대중의 목표를 보여 주어야 한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은 연단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정당 간의 갈등에 참여하기 위해 부르주아 지배의 핵심인 의회에 대리인이 입성할 필요가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이 혁명의 국면으로 접어들면 상황은 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의회제가 대중의 정부 체제로서 왜 부적절하고, 평의회 체제로 대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수단으로 의회의 활용에 관심이 있다. 의회 활동은 지도자들만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대중 자신은 종속적인 역할을 하는 투쟁의 패러다임이다. 이것은 주요 투쟁을 수행하는 개별 대리인으로 구성된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그들을 위해 싸울 수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대중은 지도자들이 의회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중요한 개혁을 쟁취할 수 있다고 믿곤 했다. 그리고 심지어 의회 의원들이 의회의 행위를 통해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환상도 발생했다. 이제 의회주의가 그 주장에서 더 겸손해지면서 의원들이 코뮤니스트 선전에 중요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듣게 된다. (최근 독일에서는 코뮤니스트들이 의회에 들어가 노동자들에게 의회 투쟁이 쓸모가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잘못된 방향을 택하지 않고 처음부터 올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항상 주요 강조점이 지도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비록 이것이 민주적인 토론과 의회 결의라는 장막 아래에서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전문가들이 정책을 결정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는 구성원 스스로 정책을 결정하도록 이끄는 것에 대한 일련의 실패한 시도이다. 이것은 여전히 프롤레타리아트가 의회 투쟁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 대중이 아직 자기 행동의 기관을 만들지 않는 동안, 혁명이 아직 이루어져야 하는 동안,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이 스스로 개입하고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의회 투쟁의 단점은 압도적으로 커진다.

 

위에서 주장했듯이, 전술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힘을 마비시키는 전통적인 부르주아 사고방식을 근절하는 가이다. 수용된 개념에 새로운 힘을 부여하는 모든 것은 해롭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가장 집요하고 다루기 힘든 요소는 지도자에 의존하는 것으로, 대중이 일반적인 문제를 결정하고 계급 문제의 관리는 지도자에게 맡기는 것이다. 의회주의는 본질적으로 혁명에 필수적인 대중의 자발적 활동을 저해하는 경향이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에 혁명적 행동을 촉구하는 훌륭한 연설이 의회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후자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다는 어려운 필요성에서이다.

 

혁명은 또한 정부를 전복시키는 대규모 공격 이상의 것을 요구하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지도자들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거대한 충동으로부터만 일어날 수 있다. 혁명은 사회 재건을 요구하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창조적 행동에 참여하도록 요구한다. 이는 먼저 전위가, 그다음에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의 책임을 알고, 조사하고, 선동하고, 씨름하고, 노력하고, 반성하고, 평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그에 따라 행동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어렵고 힘든 일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이 높은 단상에서 선동을 이끌거나,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대한 신호를 보내고, 법을 제정하는 것을 자신을 대리하는 다른 사람을 통해 더 쉬운 길을 생각하는 한, 사고의 낡은 습관과 오래된 나약함은 그들을 주저하게 하고 수동적으로 남게 할 것이다.

 

의회주의는 한편으로 대중에 대한 지도자의 지배를 강화하는 반(反)혁명적 효과가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지도자를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 개인의 정치가가 대중의 능동적인 힘이 부족한 것을 보완해야 할 때, 사소한 외교술이 발전한다. 당이 어떤 의도로 출발했든 간에, 법적 기반, 즉 의회 권력의 지위를 얻어야 한다. 그리하여 결국 수단과 목적의 관계가 역전되고, 더는 코뮤니즘을 향한 수단으로써 역할을 하는 의회가 아니라 의회정치를 위한 선전 구호로 서 있는 코뮤니즘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코뮤니스트당 자체는 다른 성격을 띤다. 혁명적 행동을 목적으로 전체 계급의 배후에서 집단화하는 전위 대신에, 새로운 급진적 구호 아래에서 낡은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무대, 그들의 싸움에 가담하여 다른 당처럼 똑같은 법적 지위를 갖는 의회 정당이 된다. 혁명적 노동계급과 코뮤니스트당 사이에는 근본적인 적대감이나 내부 갈등이 있을 수 없지만,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명료한 계급의식과 증가하는 통일 사이의 통합 형태를 구현하기 때문에, 의회 활동은 이러한 통일을 산산이 조각내고 그러한 갈등의 가능성을 만든다. 코뮤니스트는 계급을 통일하는 대신에, 자신의 당수를 두는 새로운 당이 되며, 다른 정당과 결탁하여 계급의 정치적 분열을 영속화한다. 이러한 모든 경향은 혁명적 의미의 경제발전에 의해 틀림없이 다시 한번 단축될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의 첫 시작에서조차 명료한 계급의식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혁명운동을 손상시킬 수 있다. 그리고 경제 상황이 일시적으로 반혁명에 유리할 때, 이 정책은 혁명을 반동의 영역으로 전환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러시아혁명이 위대하고 진정으로 코뮤니스트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것이 인민대중의 활동을 일깨우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하기 위한 정신과 육체의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사실이다. 대중을 이러한 자신의 힘에 대한 의식으로 일깨우는 것은 한 번에 달성할 수 없고 단계적으로만 달성할 수 있다. 독립을 향한 이 길의 한 단계는 의회주의의 폐기이다. 1918년 12월 새롭게 창당된 독일코뮤니스트당(KPD)이 의회를 보이콧하기로 했을 때, 이 결정은 빠르고 쉽게 얻은 승리에 대한 미숙한 환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의회 대표에 대한 정신적 의존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에 대한 필연적인 거부 - 이제 자기 활동의 길은 평의회 체제를 건설하는 데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독일코뮤니스트당(KPD)에 남아 있던 결속된 당원의 절반은 혁명의 퇴조와 함께 의회주의를 다시 채택했다.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두고 볼 것이지만, 부분적으로는 이미 입증되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코뮤니스트들 사이에 의견이 나뉘었고, 혁명이 일어나기도 전에 의회 활동을 자제하려는 그룹이 많았다. 투쟁의 수단으로서 의회의 활용에 대한 국제적인 논쟁은 분명히 향후 몇 년간 제3 인터내셔널 내에서 주요한 전술적 쟁점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어쨌든, 의회 활동이 우리 전술의 부차적인 특징일 뿐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 제2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대중 행동의 무기로만 제국주의를 정복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전술의 본질을 드러내고 피력하는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었다. 제2 인터내셔널은 더는 대중행동이라는 무기를 이용할 수 없었다. 세계대전이 혁명적 계급투쟁을 국제적인 차원으로 만들었을 때 붕괴할 수밖에 없었다. 앞선 인터내셔널의 유산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자연스러운 토대였다. 총파업과 내전이라고 할 정도의 프롤레타리아트 대중행동은 코뮤니스트 공동의 전술적 기반을 형성한다. 의회 활동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국가로 분열되고, 진정한 국제적인 개입은 불가능해진다. 국제 자본에 대항하는 대대적 행동에서 국가 분열은 사라지고, 모든 운동은 그것이 확장되거나 제한된 국가에 이르기까지 단일 세계 투쟁의 일부이다.

 

1920년

안톤 판네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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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읽기>

https://www.marxists.org/archive/pannekoe/1920/communist-tactic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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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7주기]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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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선생 7주기

 

 

노동자가 해방되니 자본가도 해방되어 인간이 해방되는 ‘새로운 사회’가 코뮤니즘(공산주의)이고 사회주의라고 가르쳤습니다. … 

사실상 소련이나 동유럽 나라들은 노동해방의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고 당과 정부의 관료들이 점점 더 인민 대중을 옥죄고 있었던 것입니다. …

 

그 나라들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였다는 것은 맑스의 「코뮤니스트 선언」이나 「자본론」을 조금만 읽었더라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결국 ‘소련식 자본주의’가 내부의 위기 때문에 ‘일반적 자본주의’로 성장 전환한 것이 바로 1990년의 소련 사회의 붕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노동하는 개인들은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 노동력을 국영기업이나 콜호스에, 즉 국가자본에 판매하여 화폐를 얻고 이 화폐로 상품을 사기 때문에, 소련의 상품과 화폐는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상품.화폐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생산수단이 국가 소유로 되었기 때문에 사적소유는 없어지고 사회적 소유로 되었다는 것은 잘못된 추론입니다. … 이 경우 [사회적 소유] ‘사회’는 개인들을 초월하여 자립적으로 존재하는 정치적.경제적.이데올로기적 문제가 아니라, 자각한 개인들의 연합을 가리키거나 연합한 개인들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소련의 생산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사적소유가 폐기되어, 이런 연합한 개인들의 사회적 소유가 만들어졌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국가 소유는 실질적으로 노멘클라투라의 소유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수행, 「마르크스가 예측한 미래사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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