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22/12

[코뮤니스트 16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또 다른 단계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합병은 세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한 또 다른 단계이다

-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성명 -

 

photo_2021-01-11_09-03-50.jpg  

 

우크라이나에서의 핵 러시아 룰렛...

 

9월 21일, 푸틴은 우크라이나 반격의 압력으로 연설에서 두 가지 주요 발표를 했다. 첫 번째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한 예비군 30만 명의 '부분 동원' 선언이었다. 이것은 러시아를 지배하는 억압의 분위기에서 그 규모, 기간, 지리적 확장에서 주목할 만한 시위를 불러일으켰다. 이 전쟁은 이미 그렇게 해온 부유한 소부르주아지보다 나라를 떠나는 것이 더 힘든 러시아 노동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두 번째 발표는 도네츠크(Donetsk), 루간스크(Lugansk), 케르손(Kherson), 자포리지아(Zaphorizhia) 등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가 부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4개 영토에서 러시아 합류를 위한 국민투표 선언이었다. 일주일 만에 러시아 지배계급이 사이비 국민투표를 했고, 놀랍게도 압도적으로 다수가 가입에 찬성하는 결과가 나왔다! 일주일 더 지나서 러시아에 합병되는 지역에 대한 모든 공식적인 조약이 러시아와 러시아가 임명한 그 지역의 수장들이 서명하고 비준했다.

 

푸틴의 연설이 러시아 지배계급이 전장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점을 인정한 것과 별개로, 러시아의 이러한 영토 병합은 분쟁의 일반화와 잠재적인 핵전쟁을 향한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러시아의 군사 교리는 국가의 생존이 위태로울 때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으며, 러시아 영토는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보호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푸틴은 연설에서 러시아의 군사 교리가 해당 지역에 적용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이를 분명히 했다. 푸틴의 세력 내에 있는 러시아 지배계급의 다른 구성원들은 훨씬 더 분명히 했다. 메드베데프(Medvedev)와 라브로프(Lavrov)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필수불가결한 부분이라고 주장함에 따라 우크라이나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전략적 핵무기"를 사용하여 그 영토를 방어할 수 있음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핵 위협을 가하는 것과 동시에 나토 국가들은 일반화된 전쟁과 핵전쟁을 향한 준비를 하고 있다. 침공이 시작된 이래 유럽은 군사화되었고, 나토 휘하의 종전 4만 명에서 3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난 병력이 비상경계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토의 벨기에에 대한 전술적 핵 공군 훈련은 위협이 끔찍한 실질적인 선택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독일을 포함한 모든 주요 나토 국가에서 군사 예산이 확대되었다. 바이든과 행정부는 미국 경제가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해 왔다. 이러한 이유로 그들과 노동조합은 10만 명의 철도 노동자들의 계획된 전국적인 파업을 방해하고 성공적으로 (일시적으로) 중단시켰다. 젤렌스키는 사이비 국민투표가 시행되는 와중에 나토에 우크라이나의 나토에 대한 긴급한 밀착을 요구하는 요청서를 보냈고, 이는 거의 확실하게 분쟁을 일반화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불길한 것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러시아에 대한 보복을 위해 자체 핵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핵무기를 사용할 때 어떻게 할 것인지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David Petraeus) 예비역 장군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흑해에 있는 모든 병력을 파괴함으로써 러시아와 재래식 전쟁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세계적 위기를 겪고 있는 자본주의는 핵전쟁의 길을 열었다.

 

 

... 더 넓은 전쟁으로 세계를 위협하다

 

분쟁 초기부터 언급했듯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두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니다. 대신, 그것은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러시아와 미국의 두 경쟁 제국주의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쟁이 과거의 제국주의적 분쟁(2010년대 시리아 등)과 다른 점은 현재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가 너무 심각해서 경쟁 제국주의에 의해 더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러시아 지배계급은 이 분쟁을 그들의 생존에 실존적인 것으로 묘사하는데, 이는 그들이 그것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오래된 '뒷마당'을 미국과 유럽 자본에 완전히 내주는 패배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나 미국과 유럽연합의 꼭두각시 주인도 크림반도를 포함한 모든 점령 지역에서 러시아인을 몰아내는 완전한 승리가 아닌 어떤 것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다. 평화를 대가로 그들에게 영토를 제공하는 러시아와의 협상이 이뤄진 평화 정착조차도 경쟁국(중국 등)에 미국이 주도하는 제국주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이를 위해 보여줄 무언가를 내놓을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다. 미국은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일부 영토나 유익한 정착을 할 수 있다면 주요 제국주의 경쟁자인 중국이 대담하게 대만이나 다른 곳에서도 그와 같은 일을 할 것이라는 우려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미국이 이 분쟁 내내 러시아와 중국을 연결하려고 시도한 이유를 설명해 준다.

 

자본주의 언론과 국가 지도자들은 핵전쟁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분쟁에 대한 준비에 대해 능숙하게 이야기한다. 이는 사건이 전개된 특정한 방식(러시아가 즉각적인 침략자) 때문에 순간적으로 인류, 국제 평화, 이른바 "규칙 기반 질서"(나토 국가의 지배계급)에 호소하는 평화스러운 복장을 하게 되는 지배계급들조차도 러시아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 전쟁을 통해 그들의 이익을 방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제국주의 세계 무질서의 모든 측면의 자본가계급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궁극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강요하는 자신의 논리에 갇혀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은 우리를 모든 생명의 완전한 멸종으로 이끌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전쟁은 우리를 멸종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다. 그들은 핵폭탄과 미사일로 대결전을 가할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삶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 비극과 비참하지만, 우리 노동에서 수확한 자신들의 이윤을 보호하기 위해 대결전을 가할 힘을 가지고 있다.

 

대안이 있고, 그것은 세계 노동계급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가 세계와 인류에게 가할 수 있는 파괴에 점점 더 다가갈 때, 전투적인 국제주의자로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최종 붕괴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비관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노동계급이 투쟁할 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하는 일부 사람들이 택한 길로 가서는 안 된다. 이는 증가하는 반대의 증거를 무시하고 있다. 이러한 경로의 결과는 정치 활동으로부터의 후퇴이거나, 더 나쁘게는 사회민주주의, 스탈린주의 또는 트로츠키주의와 일부 평화주의적 자유주의자들과 같은 부르주아 정치 운동에서 피난처를 찾는 것인데, 이들은 모두 대대적인 계급운동의 부재를 부르주아지 계급지배와 임금노동의 착취에 대한 타협과 지지를 위한 핑계로 사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또한 비판적으로 모두 제국주의 권력을 지지하거나 전쟁을 끝내야 하는 세력으로 노동계급을 보지 않고 대신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제국주의 국가 간의 외교적인 해결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상황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곳의 노동자들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세계적 경제 위기는 그들에게 전쟁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수십 년간의 실질 임금 하락이 전 세계 수억 명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이미 우리는 노동계급이 우리에게 비참함과 떨어지는 생활수준만을 제공하는 체제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초기의 징후를 보고 있다. 미국에서는 7월 이후 거의 10만 명의 철도 노동자들이 파업 직전에 있었는데, 파업을 피하고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국가와 노동조합 형태의 하수인들에 의해서 저지되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 행동을 취하게 하거나 때로는 와일드 캣(비공인) 파업을 벌이기도 한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란 노동자들은 악랄한 국가 탄압과 맞서 싸우면서 와일드 캣 파업을 하고 노동자평의회 구성을 요구하는 독립 조직을 향한 특별한 행동을 해왔다. 에콰도르의 노동자는 전국적인 파업으로 국가를 마비시키고 정부가 에너지 가격을 인하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노동조합만이 노동자들이 더 나아가는 것을 막았다. 미국 제국주의의 착취 공장인 아이티에서 노동자들은 미국이 지원하는 또 다른 독재 정권에 맞서 파업과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 짧은 문서에 기록하기에는 너무 많은 다른 파업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도 민족주의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생활 수준의 급격한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배달 노동자들이 와일드 캣 파업에 참여하고 자신의 투쟁을 조직함으로써 파업과 시위에 대한 전시 금지를 무시하고 있다.

 

우리는 대대적인 계급운동 부활의 시작이 될 수도 있는 시기를 살고 있다. 코뮤니스트로서 우리는 이 운동에 참여하고, 계급이 체제의 공격에 대응하고, 우리의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을 모든 국가의 전쟁 경제에 연결하고, 더 넓은 노동계급이 국제주의적 전망을 갖추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은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계획을 시작했으며, (파업 위원회, 대중총회, 노동자평의회의 창설을 통해) 계급의 독립 조직을 위해 싸우고,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을 하나로 결집하기 위해 지역과 국가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출범했으며 더 많은 위원회가 준비 중이다.

 

우리는 세계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길고 깊은 세계적 위기의 끔찍한 결과에 직면해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인류에 대한 위협이다. 노동계급의 무급 노동에서 파생된 소수의 이윤은 역사의 문제일 뿐이다. 세계 노동계급은 그것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고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로 대체할 때이다. 앞으로 펼쳐질 투쟁 속에서 함께 모여 혁명적 강령을 정립하는 것은 장기적이고 더 큰 그림을 숙고해 온 소수 혁명가의 책임이다. 어떠한 계급운동이라도 계급이 자신의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건설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피를 요구하는 전체 체제를 폐지하는 임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조직은 국제적이어야 하며, 자본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계급 없는 코뮤니스트 사회를 이루기 위한 투쟁에서 타협 없이 싸워야 한다. 그것은 결코 계급 위에 있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 되며, 대신 우리의 투쟁을 안내하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은 이러한 목표를 향해 싸우는 데 전념하는 조직 중 하나이다.

 

이 체제는 벼랑 끝으로 향하고 있다. 문제는 노동계급과 나머지 인류가 그것을 따라갈 것인가이다. 지금은 모든 곳에서 그리고 모든 수준에서 조직할 때이다.

 

2022년 10월 21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출처>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10-22/russia-s-annexations-in-ukraine-are-another-step-towards-global-imperialist-w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5호] ICC는 왜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을 방어하는가?

ICC는 왜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을 방어하는가?

 

 photo_2021-01-06_13-59-41.jpg

 

2021년 11월 프랑스의 온라인 공개회의에서 "자본주의 해체의 심화, 인류에 대한 위험 및 프롤레타리아트의 책임"에 관해 몇몇 참가자들은 ICC가 개발하고 방어하는 자본주의 해체 개념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우리는 이 글을 통해 회의에서 표명된 반대에 대한 우리의 답변을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계속해서 토론하고자 한다.

 

다양한 비판의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공식화된 주요 비판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 비판 : 맑스주의 전통에 없는 혁신이라는 것이다. "맑스주의가 시작된 이래, ICC 이전에는 「코뮤니스트 연맹」도, 제3 인터내셔널도, 과거나 현재 코뮤니스트좌파 그 어떤 조직도, 자본주의의 해체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킨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늘날 ICC 외에는 그 이론을 고수하고 있는 조직은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쇠퇴라는 틀이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할 때 왜 맑스주의와 관련된 이러한 혁신인가?”

 

두 번째 비판: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 "ICC는 해체의 국면이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 중 그 어느 쪽도 자본주의의 역사적 위기, 한편으로 세계전쟁, 다른 한편으로 세계혁명-에 대해 부르주아지나 프롤레타리아트 자신이 대응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회의 기본 계급 간의 교착 상태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가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을 방지할 만큼 충분히 의식이 있어야 하지만, 세계혁명에 대한 자신의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의식이 불충분해 보인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직면한 어려움은 이러한 해체 국면에 자본주의의 침몰로 이끄는 스탈린주의가 붕괴한 시기에 촉발된 코뮤니스트 반대 운동으로 가중되었다. 그러나 역사의 도정에서 주관적인 요소들에 그러한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이 아닌가?“

 

세 번째 비판: 동어반복 비전과 결합한 현상학적 접근법. “ICC는 세계에서 발생하는 재난의 목록을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이를 현상학적 접근법을 채택하여 자본주의의 해체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한다. 이것은 해체를 사건으로 설명하고 사건을 해체로 설명하는 현시기의 동어반복적 시각으로 귀결되며, 결국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상황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맑스주의 전통에 없는 혁신인가?

 

자본주의는 흥할 때나 쇠할 때나, 각기 다른 역사적 단계를 거쳤다. 보기를 들어, 자본주의가 쇠퇴기로 진입을 예고한 제국주의 단계의 경우, 이는 사실이다.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제국주의의 개념이 이론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레닌과 룩셈부르크와 같은 당대의 혁명가들이 자본주의의 삶에서 이 새로운 국면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에 확고히 의존하는 것을 통해서였다.

 

실제로 맑스주의, 즉 과학적 사회주의의 방식이 항상 움직이는 현실을 이해해야 할 때 불변의 도그마에 갇혀서는 안 된다. 게다가 맑스와 엥겔스는 1872년 독일어로 재인쇄한 「코뮤니스트 선언」 서문에서 알 수 있듯이, 필요한 경우에는 수정하여, 항상 불충분하거나 구시대적인 입장을 발전시키고 풍부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선언문 자체가 선언하듯이, “이러한 원칙의 실제 적용은 모든 곳에서 그리고 항상 그 순간의 역사적 조건에 의존한다. [...] 지난 25년 동안의 대규모 산업의 엄청난 진보와 노동계급의 당 조직의 병행적 발전에 직면하여, 실천적 경험에 직면하여, 2월 혁명의 첫 번째, 그리고 무엇보다도 파리 코뮌 전체에서,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두 달 동안 정치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 강령은 여러 곳에서 일시적인 관심사에 머물렀다.“

 

이는 또한 룩셈부르크가 민족 문제에 대해 그 당시에 노동자 운동이 방어한 입장에 맞서 싸웠을 때의 태도였다: “그가 말하고 매우 분명하게 증명했듯이, 1890년에 철두철미하게 방어하기 위해 맑스가 1848년에 폴란드 독립을 지지한 것은 사회 현실이 바뀌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자체를 변형시키고 현실을 연구하는 살아있는 방법을, 건조한 준 종교적 교의로 바꾸는 것이었다.”[1] 우리는 또한 1920년대 이후 코뮤니스트좌파가 러시아 혁명과 코뮤니스트 인터내셔널의 퇴행으로 야기된 새로운 문제들, 특히 과도기 국가의 문제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와의 관계에 대해 행한 모든 비판적인 일을 언급할 수 있다.

 

반면 맑스주의와 관련된 진정한 "혁신"은 반(反)혁명 와중에 보르디가가 정교하게 기술한 "1848년 이후 맑스주의의 불변" 이론과 「국제코뮤니스당(ICP)」의 보르디가주의자들. 그리고 이 개념은 역사 유물론의 시작에서부터 존재하지만, 「국제주의코뮤니스트당(Pcint)」의 데이먼주의자들의 모호한 태도와 심지어 자본주의의 쇠퇴의 개념에 대한 보르디가주의자들의 순수하고 단순한 거부에 의해서도 채택되고 실행된다![2] 게다가 이러한 코뮤니스트좌파의 흐름인 자본주의의 해체의 개념을 비(非)맑스주의로 간주하여 거부하게 만든 것은 맑스주의와 관련된 이와 같은 "혁신"이다.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

 

봉건주의가 쇠퇴하던 시기에 부르주아지는 고유한 생산 방식과 교환 수단을 가진 착취계급으로 마침내 정치권력을 장악한, 계급 이익에 대한 소외된 의식의 기반이 된 봉건 사회에서 성장하는 경제력에 자연스럽게 의존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쇠퇴기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만을 가진 착취당하는 계급으로서 사회의 어떤 경제력에도 의존할 수 없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계급 사이 세력 관계의 필수적인 요소를 구성하는 성숙함, 계급의식과 조직적 능력의 발전에 의존할 수 있을 뿐이다.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코뮤니즘에 의해서 대체할 수 있는 객관적인 조건이 그 쇠퇴기로 자본주의 생산 방식으로의 진입과 함께 충족되기 때문에, 세계 코뮤니스트혁명의 미래는 오로지 주관적인 조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식의 깊고 넓은 성숙에 달려있다. 이것이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의 의식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 필수적인 바로 그 이유다.

 

이러한 측면은 특히 제1차 세계전쟁의 발발로 이어진 사건들에 의해 잘 드러난다. 1914년 7월, 경쟁 제국주의 블록들은 서로 군사적으로 맞설 준비가 되어있었다. 부르주아지에 남은 유일한 불확실성은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태도였다. 그들은 과연 자신들이 국기의 뒤에서 단지 총알받이로 쓰이는 것을 허락할 것인가? 이러한 불확실성은 1914년 8월 4일 사회민주주의의 기회주의 세력이 전쟁 채권에 찬성 투표함으로써 부르주아지 진영으로 확실히 넘어감으로써 사라지게 되었다. 이러한 배신행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머리에 일격을 가하여, 사회민주당과 노동조합이라는 계급의 적에게 최근에 넘어갔던 이전의 노동계급 조직들의 중요한 도움과 함께. 제1차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기 위하여 부르주아지가 즉각적으로 착취했던 계급의식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1914년 마침내 부르주아지가 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키도록 허용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에 대한 타격이었다. 스탈린주의의 붕괴에 따른 반공 캠페인의 타격과 더불어, 1980년대 같이 계급의식이 취약해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세계 코뮤니스트혁명에 대한 자신들의 역사적 전망을 하는 데 방해가 되었고, 이는 쇠퇴하는 자본주의가 해체의 단계로 진입하게 했다. 다시 말해, 노동계급의 전망 부재는 이제 사회 전체의 전망 부재를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인류의 미래를 위한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주관적 요인의 중심성과 결정적 특징을 보여준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이상주의적 접근과는 거리가 먼, 역사의 도정에서 주관적 요소에 주어진 중요성은 그것에 대한 진정한 변증법적 유물론의 접근을 구성한다. 모든 일관된 유물론자들이 그렇듯이, 맑스에게 있어서 계급의식은 물질적인 힘이다. 코뮤니스트혁명은 의식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혁명이다: “코뮤니즘은 이전의 모든 운동과는 달리, 생산과 교역의 모든 초기 관계의 기초를 뒤엎고, 처음으로 모든 자연적 전제를 의식적으로 현존하는 사람들의 피조물로 취급하고, 그들의 본성을 제거하고, 통일된 개인들의 힘에 복종시킨다.”[3]

 

현상학적 접근법과 동어반복적 비전이 결합한?

 

 

쇠퇴하는 봉건 사회는 해체의 요소나 현상의 발생으로 특징지어졌는데, 그중 30년 전쟁을 장식한 잔혹 행위와 도덕적 쇠퇴가 완벽한 보기이다. 즉, 봉건제를 쇠퇴기로 가라앉게 한 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자본주의의 발전이라는 경제적 역동성은 사회 전체가 해체의 국면으로 가라앉는 것을 막았다.

 

그 상황은 쇠퇴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매우 다르다. 성장하는 경제력이 사회를 쇠퇴로 몰아가는 불가피한 상황에 균형을 맞추는 새로운 착취 계급의 성장을 보여주지 않으며, 기존 생산양식을 대체할 새로운 생산양식의 발전도 보여주지 않는다. 왜 그럴까?

 

왜냐하면 구사회의 잿더미에서 나와야 하는 새로운 사회, 코뮤니즘이 바로 “현 상태를 폐지하는 진정한 운동”이기 때문이다. 코뮤니즘은 오랜 자본주의 생산 관계가 파괴되는 것에 기초할 때만 세울 수 있다. 이러한 “현 상태를 폐지하는 운동”이 새로운 사회의 전달자인 계급에 의해 실현되지 않는 한, 쇠퇴기가 진행될수록 축적되고 증폭되는 해체의 요소들은 그들의 표현을 제한할 수 있는 어떤 적대적인 힘도 사회에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죽어가는 자본주의로부터 이어받을 수 있는 생산 방식이 없다면 사회는 서서히 부패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의 쇠퇴를 분석하기 위한 이러한 일반적인 틀로 무장한 채, 우리는 1980년대 이후 발생한 현상을 관찰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을 "그 자체로" 관찰한 것이 아니라 맑스주의의 과학적 방법에 확고하게 의존하면서 관찰했다. 동구권의 해체를 블록 정치의 해체로 규정할 수 있게 한 것은 현상학적인 것이 아닌, 새로운 세계의 분쟁을 향한 자본주의의 행진을 일시적이고 물질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든 이러한 접근이었다. 마찬가지로 스탈린주의의 붕괴를 1980년대 내내 발전해 온 자본주의 해체 진전의 결정적 순간으로 분석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틀이었다. 이 새로운 국면의 시작은 바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중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제1차 세계 대전의 현상에 직면한 혁명가들의 그것과 같은 접근법을 채택했고, 레닌이 말했듯이, "진보적 부르주아의 시대"가 즉, 자본주의의 쇠퇴기에 접어든 "반동적 부르주아의 시대"에 자리를 내준 "전쟁과 혁명의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고 인식했다.[4]

 

그러므로 우리에게 반대한 것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삶에서 이러한 궁극적인 국면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해체로부터의 불가분의 현상의 축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회의 두 기본 계급 사이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분석이다. 여기서 우리의 방법론적 출발점은 환경에 의해 축적된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역사의 원동력”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계급투쟁과 그 동력에 의존하는 맑스주의와 일치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또한 자본주의의 해체가 "자신을 부양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는 특히 자본주의의 해체(자연적인 지구상의 환경과 보건의료 연구 시스템의 파괴 증가, "마스크 전쟁"과 "백신 전쟁"으로 절정에 달한 세계 부르주아 내에서 "각자도생"으로 일반화된)의 산물인 코로나19 대유행 현상과 역시 이와 같은 해체(경제 위기로의 침몰, 부채로의 도피 가속화, 제국주의 긴장 증가)의 경우이다.[5] 그러므로 현실에 대한 이러한 접근법은 동어반복이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의 방법론적 엄밀함을 채택한 것이다.

 

우리는 독자들이 특히 「국제 평론」 117호에 실린 맑스주의적 해체 개념의 뿌리에 관한 기사를 읽고 계속해서 이 주제에 대해 숙고할 것을 권한다. 또한 토론을 계속하기 위해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는 것도 환영한다.

 

2021년 12월 29일

DM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국제 평론」 157호, 동구권이 부상한 후 100년 만에 국가에 관한 질문 (국제코뮤니스트흐름)

[2] 「국제 평론」 118호 참조, 1-쇠퇴 이론은 역사 유물론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1부 (국제코뮤니스트흐름)

[3] 맑스와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846

[4] 「국제 평론」 121호 참조, 4-역사 유물론의 핵심인 쇠퇴 이론 (국제코뮤니스트흐름)

[5] 코로나19에 대한 특별한 기사 참조 : 진정한 살인자는 자본주의이다! (국제코뮤니스트흐름)

 

<출처>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131/why-does-icc-defend-validity-concept-decomposition-capitalis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자본가의 계급전쟁에 대응하는 노동자

자본가의 계급전쟁에 대응하는 노동자

 

photo_2021-01-03_11-30-41.jpg

 

수십 년 동안 노동자들은 실질 임금 하락, 긴축, 고용 불안으로 자본주의 위기의 대가를 치러왔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기본 상품의 가격 인상이 마침내 파업과 시위를 촉발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BT 노동자들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파업을 벌였다. 철도 및 전차 노동자, 공항 및 항공사 노동자, 법정 변호사, 버스 노동자, 지하철 노동자, 수하물 노동자, 우편 노동자, 폐기물 수거 노동자의 추가 파업이 계획되었거나 이미 진행 중이다. 교사, 의사, 간호사, 공무원, 심지어 사무 변호사까지 파업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계급은 더는 자본의 맹공을 참을 수 없다. 10년 이상 긴축과 실질임금 하락을 겪으며 살아온 30대 노동자에게 인플레이션 위기는 가뜩이나 비참한 저축을 다 까먹을 위기에 처했다. 많은 사람이 한계에 다다랐다.

 

자본가들도 알고 있지만, 계급 전쟁의 새로운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야기했으면서도 노동자들이 그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임금을 요구하면 노동자가 작품의 악당(문제의 원인)이 된다. 모든 정당의 통치자들은 인플레이션을 오로지 우크라이나 전쟁 탓으로 돌리고, "푸틴을 물리치기 위한" "희생"을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의 애국적 의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파업을 금지하는 더 많은 법을 약속한다. 한마디로 계급전쟁은 임계점에 도달했다. 계급으로서의 우리의 힘은 우리 숫자에 있으며, 우리의 대응은 전체 노동계급을 아우르는 집단적 투쟁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많은 사람은 당연히 노동조합이 지도력을 갖추기를 바라고 있다. 만약 그들이 아무 대가도 받지 못한다면 무엇을 위해 조합비를 내는 것일까? 위에서 언급한 모든 파업과 투표는 노동조합을 통해 조직되고 있으며, 6월 철도파업은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을 언론의 중앙 무대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우리가 말했듯이, 노동계급 전체(취업자, 실업자, 화이트칼라 또는 노칼라)가 공격받고 있지만, 노동조합 투쟁은 명확히 하자면 부분 투쟁이다. 그리고 오늘날도 분명하듯이, 다양한 노동조합 동시 행동은 계급 전체의 중대한 저항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기 노조원 중 한 집단이 하루 동안 파업했고, 다른 집단이 반나절 파업을 했다. 물론, 이것은 불만의 표시이자 '무언가를 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표시이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자면, 조합원들이 물러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진정한 투쟁을 위해 뭉치고 있다는 것을 자본가에게 보여줄 때, 합법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서 있는 몇 명의 피켓은 자본가에 대한 경고 신호가 아니며, 더 넓은 노동계급 연대에 대한 격려도 아니다.

 

그런데 왜 노동조합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그토록 못하는 것일까? 많은 좌파는 이것이 노동조합 내의 확고한 지도력 부족 때문이거나 1980년대에 도입된 노조법의 엄격한 성격 때문에 노동조합을 나약한 행동으로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노동조합의 특성 때문이다. 자본주의 내에서 그들의 역할은 노동력 판매의 협상자이며, 협상자로서의 이러한 지위는 법으로 성문화되어 있다. 즉, 노동조합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의 일부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삶의 상황, 즉 임금을 받기 위해 일하거나 정부 지원금으로 존재할 필요성에 기반을 둔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계급 연대이다. 우리의 다양한 삶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인 정체성에 신경 쓰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피착취계급으로서 우리가 공유한 조건으로 단결한다. 자본주의적 이윤을 창출하는 것은 우리가 하는 '잉여'노동, 즉 우리의 임금을 충당하는 것 이상으로 투입되는 무급노동이다. 뼛속까지 썩어가는 것은 바로 이윤 체제이다. 자본주의가 지구상의 생명을 완전히 파괴하기 전에 우리는 그것을 끝장내야 한다.

 

우리는 시작할 수 있다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조합과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규칙을 넘어서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해관계를 표현하고 우리가 직면한 고립과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직접 조직해야 한다. 부분파업이 아닌 대대적인 파업이 필요하다. 대중 집회에서 선출되고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대표자로 구성된 투쟁 위원회가 조정하는 파업이 필요하다, 만약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통제한다면, 단기적으로는 승리할 기회를 얻고, 무엇보다 노동자 자기조직화에 소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목표를 단순한 생존을 넘어 생산과 유통을 통제하여 인간이 사회의 필요를 직접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계급 직접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투쟁위원회와 대중 집회의 경험은 자본주의 이후의 세계에서 인간 사회 조직의 기초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하게 말하자. 그런 세상이 오기 전에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정치적 투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정치 조직을 의미하는데, 자본주의가 세계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세계의 노동자들에게 제시할 명확한 강령을 가진 세계 혁명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 강령은 일종의 혁명적인 '싱크 탱크'의 산물이 아닐 것이다. 사실 그것의 기초는 노동자 투쟁의 전체 역사와 자본주의 자체가 도달한 역사적 막다른 골목에서 끌어낸 교훈에 이미 존재한다.

 

이러한 접근법에 따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은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과 공통의 강령을 공유한다. 우리는 세계 혁명당은 아니지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투쟁에서 새로운 정치적 요소가 등장하여 혁명적 정치 노선에 있는 이들과 힘을 합칠 것이라는 확신 속에서 노력하고 있다. 지금이 우리와 함께하기에 가장 좋은 때이다!

 

2022년 8월 29일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출처> 

이 글은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 기관지 오로라(Aurora) 최신 호(60호) 에서 발췌한 것이다.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22-08-29/workers-respond-to-the-bosses-class-wa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5호]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Ⅱ

 

 photo_2021-01-03_13-59-54.jpg

 

내전과 제국주의 개입

 

낙후된 농민 경제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을 먹여 살리는 문제에 대한 레닌 초기 해결책은 곡물 독점이었다. 6월 27일 전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자본주의 상품 교환에서 사회주의 생산물 교환으로 점진적 이행을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의 하나이다.” (R.W. 데이비스 「사회주의 공세」 2쪽에서 인용)

 

1920년 말 내전이 끝났을 때도 레닌은 곡물의 강제 몰수는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기근과 1920~1921년 겨울 농민 불만과 노동자 파업 증가는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레닌 자신이 인정했듯이 볼셰비키는 경제 전선에서 “퇴각”을 선언해야 했고, 노동계급 투쟁 급증이 그들을 구할 때까지 버티려고 노력해야 했다. 신경제정책(NEP)은 농민 생산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곡물의 자유(자본주의) 시장을 복원하려는 의도였다. 이른바 “전시 코뮤니즘” 시기 비상 정책(화폐폭락, 배급에 의한 분배)이 사회주의를 향한 발걸음이라는 희망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그리고, 부하린은 레닌이 따뜻하게 평가했던 책, 「이행기 경제」에서 이것을 주장했다), 근본적으로 볼셰비키가 러시아 생산양식을 사회주의로 전환하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1917년 레닌이 러시아 경제 일부를 국유화 하고자 요구했을 때,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사회주의 ‘도입’에 전혀 해당하지 않는 조치...”1)

 

사회주의의 하향식 도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기는커녕, 레닌은 사회 변혁은 노동계급 대중이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때”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이해했다. 이것은 단지 기존 자본주의 정치 질서를 전복보다 훨씬 더 어려운 문제였다. 여기서도 레닌은 볼셰비키가 블랑키스트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소수가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거나 장악해야 한다고 믿지 않았다. 이것이 레닌이 1917년 7월 크론슈타트 수병 반란을 시기상조라고 반대했던 이유다. 볼셰비키가 프롤레타리아 권력의 중심인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 소비에트에서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 1917년 9월 이후에야 레닌은 케렌스키 정권의 전복을 주장했다.

 

그리고 혁명가들이 1917년 11월에 수립된 체제를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또는 “노동자 국가”라고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은 무장 노동자평의회에 기반을 둔 소비에트 체제의 주권 강조이다. 그러나 노동자 국가의 수립이 사회주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사회주의는 법령으로 시행될 수 없기”(레닌) 때문이다. 레닌은 혁명이 사회주의에 도달하려면 국제적으로, 그리고 러시아 노동자 계급의식 측면에서 확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쪽 전선에서 1917년의 혁명적 희망은 1921년에 깨질 것이었다.2) 국제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볼셰비키가 군사적으로 승리한 내전으로 인해 그들의 프롤레타리아 기반이 무너졌다. 크론슈타트 반란은 어떻게 소비에트가 빈껍데기가 되는지를 보여준 하나의 상징일 뿐이었다. 1921년까지 1917년 공장 노동자의 57%가 붉은 군대에 입대에서 싸우거나 아니면 시골로 돌아가기 위해 공장을 떠났다. 이때 레닌이 말했듯이

 

“우리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계급의 대표자이다.”

 

그 자리에 코뮤니스트당이 생겼다. 1917년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당에서 이제는 거대한 관료기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수천 명의 당원이 있을 때조차도 야코프 스베르들로프(Jakob Sverdlov)와 두 명의 비서가 한 사무실에서 운영한 혁명당은 점차 국가기구를 장악하고 있었다. 1919년 스베르들로프의 사망은 한때 혁명적이었던 당의 통치기구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그것은 이미 저항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1922년 스탈린이 당 총서기가 되었을 때, 진정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당 독재로 넘어갔다. 내전은 또한 상황을 바꿔 놓았다. 그것의 악랄함은 소비에트 실험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단순히 옛 혁명가들이 무자비한 국가 관료가 되도록 강요했다. 아무도 이 오염을 피하지 못했다. 제10차 당 대회의 분파 금지 결정은 콜론타이(Kollontai)와 슐라프니코프(Shlyapnikov)의 「노동자 반대파」와 같은 코뮤니스트 좌파 반대파, 사프르노프(Sapronov)와 오신스키(Ossinsky)와 같은 민주 중앙집중주의자, 그리고 미아스니코프(Myasnikov)의 「노동자 그룹」과 같은 다른 그룹들을 겨냥했다. 이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당의 진정한 양심이었다. 미아스니코프는 이미 당을 떠났고 다른 사람들은 그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1921년~1928년 사이에 분파 금지가 실제로 실행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1921년의 결정은 스탈린이 독재자로 부상할 수 있도록 나중에 사용할 또 다른 무기를 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부 볼셰비키는 당이 나아하는 방향에 분명히 관심을 보였고 혁명적 노동계급(지금은 소수가 됨)에서 당의 뿌리가 상실되는 것에 대해 걱정했지만, 지노비예프(Zinoviev)와 같은 다른 볼셰비키들은 심지어 “당 독재”가 좋은 일이라고 선언했다.3) 이러한 차원에서, 스탈린의 기관 통제는 그가 총서기를 맡았을 때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말년에 레닌은 혁명의 퇴보와 스탈린의 부상 위험을 어렴풋이 인식했다. 그는 노동자․농민 감독관인 라브크린(Rabkrin)을 체제에서 “최악의 운영” 조직 중 하나로 비판했다. 이 조직의 수장은 스탈린이었다. 마찬가지로 레닌의 마지막 저술에서 그는 스탈린이 총서기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다. 레닌의 추가 쇠퇴와 죽음만이 스탈린을 구했는데, 1924년까지 트로츠키를 권력에서 제거하기 위한 당내 투쟁으로 지노비예프가 중앙 위원회에서 그를 옹호하면서 레닌의 요구는 무시되었다. 레닌은 말년에 관료화 과정이 1917년 초기의 혁명적 희망을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코뮤니스트당은 더는 혁명적 노동계급의 전위가 아니었다. 그 계급은 이제 수천 명의 출세주의자로 부풀려졌고 그들 중 대부분은 차르의 전직 관료였다. 내전 동안 러시아에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당은 그들을 받아들였다. 레닌은 1922년 3월(제11차 당 대회에서) 러시아 코뮤니스트당에 보낸 마지막 생전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그 거대한 관료 기계, 그 거대한 무더기를 취한다면 우리는 누가 누구를 지휘하고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코뮤니스트들이 그 무더기를 지휘하고 있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는지 나는 매우 의심스럽다. 사실대로 말하면, 그들이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받고 있다.”

 

코뮤니스트당이 이제 사실상 국가 기구였기 때문에 레닌은 기본적으로 심각한 위험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스탈린을 총서기에서 해임하라는 그의 유명한 요구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레닌은 일반적으로 당에 기여한 사람들에게 집착했다(공안질서수호국[Okhran] 요원 말리노프스키[Malinovsky]가 문서를 보여줄 때까지 경찰 스파이였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았다).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 또한 볼셰비키가 1917년 10월에 케렌스키를 타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세상에 알린 것도 용서받았다. (주로 레닌이 말했던 “파업 파괴”에 대한 많은 지지를 받았던 볼셰비키는 무관했기 때문에) 하지만 스탈린을 제거하라는 요구는 총서기직에서 그를 해임하라는 요구였다. 왜냐하면 그를 정치국에서 제거하지 못할 만큼 그는 과도한 권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닌은 마지막 유언에서 여전히 혁명이 처한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집단지도체제 구성을 바랐다.

 

그러나 지노비예프가 트로츠키에 맞선 분파를 만들기 위해 당에 레닌의 충고를 무시하라고 요청하면서 분열은 이미 일어났다. 스탈린은 지역 당서기를 임명하여 중앙위원회에 누가 선출될지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기구가 지도부를 선출함에 따라 레닌이 경고했던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스탈린은 여전히 소수의 대의원만을 통제했기 때문에 때를 기다려야 했지만, 과반수를 차지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경제

 

만약 반(反)혁명이 정치영역에서 진행 중이라면, 경제에서도 긍정적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우리가 앞서 언급했듯이, 볼셰비키가 생산양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심지어 “전시 코뮤니즘” 기간에도 노동계급은 더는 자신의 기구를 통제하지 못했다. 이른바 1918년 공장위원회 탄압은 사실 생산을 더 잘 조정하기 위한 더 강력한 집중화에 대한 그들의 제안이었지만, 1인 경영(정부가 임명한 경영자를 이용한) 부활, 미국에서 노동력 착취를 강화하는 테일러주의 경영 관리법 채택, 부르주아 전문가에 대한 임금 인상 등은 모두 심각한 후퇴 증거였다. 확실히 이러한 후퇴는 계획적인 오류라기보다는 상황의 산물이었지만, 그런데도 후퇴로 남아있다. 1920년에 이르러 하향식 장치가 되어 트로츠키 자신이 “노동의 군사화”를 제안했을 때 백군과 제국주의 지지자들에 맞서 내전에서 승리한 방법을 사용할 것을 주창했다. 이 모든 것은 1921년 3월 적어도 1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기근이 신경제정책을 채택하도록 강요하기 전에 일어났다. 신경제정책 골자는 소부르주아 생산에 대한 양보였다. 볼셰비키 지도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도 무지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경제정책이 정확히 “후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농업국가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미래에 사회주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조건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당시 소련의 분위기는 스탈린 시대와 달랐다. 볼셰비즘의 지지자가 아닌 알렉 노브(Alec Nove)는 1920년대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1920년대는 지적으로 흥미진진한 시기였다. 볼셰비키 지도자들과 지식인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는 뛰어난 웅변과 재치 있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볼셰비키가 아닌 사람들이 상당히 독립적인 발상을 제안했다. 국가계획위원회(GOSPLAN)와 인민경제최고위원회(VSNKh) 전문가에는 많은 옛 멘셰비키가 포함되었는데, 훗날 음모 및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로만(Groman), 바자로프(Bazarov), 긴츠부르크(Ginzburg)와 같은 사람들은 정책토론에 크게 기여했다. 보기를 들어 저명한 경제학자 콘트라티예프(Kondratiev), 농업 전문가 차야노프(Chayanov), 첼린츠셰프(Chelintsev)와 같은 옛 인민주의자들과 전 사회혁명당원(SR)또한 활동했다. 리토스셴코(Litoshenko)와 커틀러(Kutler)와 같은 비(非)사회주의자들조차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다. 일당(一黨) 국가가 있었고, 조직과 반대의 법적 수단은 없었지만, 조건은 획일적인 1930년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련 경제사」, 펭귄 출판사, 1992, 131쪽)

 

1920년대 볼셰비키당원들 사이의 논쟁을 연구하는 사람은 비극의 목격자이다. 정권이 세계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버텨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설과 글이 넘쳐났지만, 고립이 가중되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코뮤니스트 개인의 의지는 크게 흔들렸다. "원시적 사회주의 축적"을 가장 열렬히 지지했던 프레오브라젠스키(Preobrazhensky)조차 외부 자본 없이는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우리가 돌이켜 보면(즉, 그들의 경험)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현실은 역사가 가만히 있지 않고 한 번의 후퇴가 곧 다른 후퇴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항상 스탈린은 당의 완전한 지배를 확립하기 위한 계책을 부렸다. 그가 행한 수단 중 하나는 세계혁명이라는 원래 목표를 포기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계획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신경제정책 아래에서 소규모 공장은 개인 소유로 돌아갔지만, 주요 변화는 곡물 시장의 재건이었다.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농민의 바다에 둘러싸인 작은 프롤레타리아트로서 소비에트 정부는 많은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었다. 레닌은 공개적으로 그것을 후퇴라고 묘사했지만, 이 늦은 단계에서도 세계혁명이 이 상황을 구할 것이라고 여전히 기대했다. 몇 달 후 그는 혁명의 물결이 끝났고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가 고립에서 벗어나기까지 몇 년, 심지어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결론지었다. 대신 신경제정책은 국가자본주의 제도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레닌은 "국유화"와 "사회화" 라는 용어의 혼동을 비난했지만, 레닌이 "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 사이에서 제기했던 이전의 반대 또한 모호해지기 시작하면서 두 용어는 동의어가 되었다. 오늘날 코뮤니스트 강령을 부활시키려는 사람들에게 이 혼란은 핵심 쟁점이다.

 

러시아혁명이 러시아의 생산양식을 바꾸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말하기가 항상 어려웠다. 일부 사람들에게 "전시 코뮤니즘"(1918-21) 동안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것은 소농의 소유가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크게 확대되었을 때였다. 자본가들은 모두 도망쳐서 공장을 프롤레타리아트(그들이 사회화하기 시작한)에 버렸을지도 모르고, 화폐는 그 가치를 잃어서 배급과 물물교환이 일반적인 교환수단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체제가 생존하기 위한 이러한 긴급조치가 사회주의 건설 시도라고 추정하는 것은 착각이었다. 사회주의는 생산력이 물질적 풍요를 창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을 때만 올 수 있다. 1918년 러시아 경제의 붕괴 상태는 너무 심각해서 한 역사가는 적어도 1347년의 흑사병에 비유했다.

 

다른 사람들은 스탈린이 계획경제를 시작할 기관(국가계획위원회, 국영은행 및 인민경제최고위원회가 보다 직접적인 국가 기구로 전환된 시기)이 작동하기 시작한 신경제정책 시기(1921-8)를 지적한다. 그러나 신경제정책은 많은 볼셰비키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의 새로운 착취"로 불리지 않았다. 신경제정책 아래에서 실업률은 대략 노동계급의 약 25%로 증가했고, 임금은 물가 상승에 따라 하락했다. 농민들이 곡물을 팔기 전에 내야 했던 "현물세"가 화폐세로 대체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화폐개혁이 수반되었다. 국영은행은 이제 새로운 질서의 독점 금융자본가가 되었다. 다시 한번 이것의 주요 희생자는 노동계급이었다. 이 시점에서 사회주의와 국가자본주의의 차이가 가장 명백하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동계급은 실제로 지배적이고 정치적으로 통제한다. 소비에트가 확장하고 기능하던 1918년에도 어떤 의미에서도 이것은 러시아에서 단일 국가(따라서 볼셰비키가 국제주의를 고집한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일국사회주의"와 같은 슬로건 채택은 분명히 맑스주의자들이 항상 이해해왔던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모든 시도의 폐기를 의미한다. 건설해야 할 것은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혁명에 대한 진정한 전망이 희미해지면서 소련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의문은 점점 더 심각해졌다. 볼셰비키 지부의 많은 사람이 신경제정책이 계속된다면 러시아는 소부르주아 자본주의 생산자들이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하린과 같은 다른 사람들은 경제의 생산 부문(농민)에 대한 과세를 통한 국가자본의 느린 축적만이 이후 산업발전의 기초를 제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후진성이 논쟁을 지배하면서 핵심 질문이 바뀌기 시작했다.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가 아니라 러시아를 어떻게 산업화시킬 것인가로.

 

스탈린은 진지한 공헌자로 간주되지 않았기 때문에 논쟁에서 거의 글을 쓰지 않았다. 그는 1924년 「레닌주의의 기초」라는 강연에서 “일국사회주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처음 제기했다. 이 작업은 레닌 사상을 단순화한 것이지만, 세계혁명 이외의 사회주의는 불가능하다는 생각 또한 담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당 전체가 처한 혼란을 반영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여전히 세계혁명의 미래와 러시아 발전에 대한 논쟁에서 거의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가 한 일은 모든 분파 사이에서 중심에 서는 것이었고, 항상 다른 분파를 “좌파”, “우파” 또는 “통합파”, 반대파”로 묘사했다. 지노비예프와 같은 사람들이 한때는 격렬하게 반(反)트로츠키였다가, 다음에는 친(親)트로츠키였기 때문에, 스탈린이 자신을 분파 위의 당원으로 묘사할 수 있었고, 또한 점점 더 징계 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때까지 소비에트가 공식적으로 노동계급을 대표한다는 생각은 당 국가에서 실권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먼 기억이 되었다. 당이 더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위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이론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관료적 통제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우선 지노비예프가 도입한 것이다. 심지어 트로츠키조차도 “누구도 당에 맞설 수 없다”라고 외쳤는데, 이는 스탈린이 청중들에게 좋은 “레닌주의” 방식으로 당이 실수하리라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게 한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당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었다.

 

1920년대 후반, 대부분 무시되었던 분파 금지에 관한 1921년의 결의안은 스탈린에게 도움이 되었다. 스탈린은 중앙위원회의 대의원에 대한 지배가 커짐에 따라 모든 반대자는 정치국에서 투표권을 박탈하고, 정치국을 오르조니키드제(Ordzhonikidze), 카가노비치(Kaganovitch), 몰로토프(Molotov) 및 미코얀(Mikoyan)과 같은 자신의 사람으로 교체할 수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AD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이형로

 

<주>

(1) 「선집」 2권(모스크바 1977) 51쪽 인용, “우리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

(2)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1호, “1921년 : 반(反)혁명의 시작” 참조

(3) 이 주제의 확장은 「혁명적 전망」 28호, “러시아혁명의 쇠퇴와 당 숭배” 참조

 

<출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22호

http://www.leftcom.org/en/articles/2003-08-01/stalin-and-stalinism

 

 

<이전 글> 스탈린과 스탈린주의Ⅰ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4&document_srl=34287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스리랑카의 사회적 긴장

스리랑카의 사회적 긴장

 

 photo_2021-01-07_12-05-14.jpg

 

스리랑카는 2021년 말 이란(1), 2022년 초 카자흐스탄(2)처럼 사회, 계급적 갈등이 극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피착취계급은 광범위한 부패와 족벌주의 정치 체제 아래에서 높은 생활비와 비싼 연료비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저항의 원인은 생필품과 연료비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특히 공급이 부족한 휘발유와 경유는 상황이 심각하다. 현지 목격자들은 경찰과 군대가 유통업자들을 보호하는 동안 차에 연료를 주입하기 위해 최대 13시간 동안 줄을 섰다고 보고했다. 몇 달 동안 정전이 계속되었다. 연료 소비를 줄이고 자급자족 작물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공공부문에 2주간 귀가 명령을 내리고, 이후 3개월 동안 주당 노동시간을 4일로 줄였다(대량 정리해고의 전조).(3) 동시에 국내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송금을 보장하는 이민을 장려하고 있다.

 

스리랑카는 1948년 독립 이후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식량, 연료, 의약품을 수입하는 데 필요한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되고 있다. 5월까지 인플레이션은 40%를 넘었고, 식료품 가격은 60% 이상 올랐다. 2,200만 인구 중 최소 500만 명이 앞으로 몇 달 안에 식량 공급 부족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4) 세계식량계획은 이미 수도 콜롬보에서 임산부 2천 명에게 식량을 배급하기 시작했다.

 

국가는 심각한 부채 위기를 겪고 있다. 지난해 가을, 중국에 빚을 갚지 못한 기업들은 매각을 강요당했다.(5) 외채가 500억 달러 이상이고 그중 절반이 단기 만기와 고금리(6) 금융시장에서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올해 스리랑카는 70억 달러의 부채와 이자를 상환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현재 외환보유고는 5억 달러에 불과하다.(7) 다가오는 세계적인 금리 상승과 함께 상황은 더 악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섬에 대한 경제적 통제권을 놓고 경쟁하는 인도와 중국 모두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이 나라는 곧 파산 선언을 하고 부채를 재조정해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리랑카는 이미 대유행 기간 빚을 갚지 못한 수리남, 벨리즈, 잠비아, 에콰도르와 같은 나라들과 같은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이웃에 있는 파키스탄과 같은 상황이 예상된다. 이는 곧 스리랑카 노동자들이 공공부문 구조조정(노동자의 50~70% 감축이 거론되는 곳)과 임금, 연금, 서비스, 보조금, 소비세 인하 등의 가혹한 긴축정책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은 이윤을 늘리고 IMF가 부채를 재조정하고 새로운 대출을 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이다. 그들의 계급적 대응이 그러한 공격의 심각성에 부응할 것인가? 우리가 곧 보게 되겠지만, 그 전제는 부분적으로 가능성이 있다.

 

사마기 야나 발라웨가야(Samagi Jana Balawegaya: SJB), 야나타 비묵티 페라무나(Janatha Vimukthi Peramuna: JVP), 타밀 민족 동맹(Tamil National Alliance: TNA), 전선 사회당(FSP)의 주요 야당 세력은 이들에 대해 공개적 또는 침묵으로 사실상의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먼저 우리가 국가를 붕괴로부터 구하고, 적어도 정부를 교체한 다음 ... 우리는 보게 될 것”이라는  두 가지 정치적 메모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우리는 여기서 개량주의 세력이 항상 체제 보존의 편을 든다는 것을 보게 된다.

 

어쨌든, 이러한 극적인 상황은 중요한 시위의 발발로 이어졌다. 수도 콜롬보에서는 3월 31일 노동자, 빈농, 중산층, 학생들이 정부 관저 앞에 자발적으로 모여 생계비, 토착 부패, 족벌주의, 국가 부실에 항의하며 고타바야 라자팍사(Gotabaya Rajapaksa) 대통령과 그의 형인 마힌다 라자팍사(Mahinda Rajapaksa) 총리의 퇴진을 요구했다. 4월 9일 콜롬보(70만 명의 도시)에서 10만 명 이상의 시위가 벌어진 후, 시위대는 해산 대신 의회 건물 앞에 있는 유명한 갈레 페이스(Galle Face) 해변에 캠프를 조직했다.

 

이 캠프는 “고타 퇴진 마을(GotaGoGama)”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점령은 2011년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Tahrir Square), 2013년 이스탄불의 게지 공원(Gezi Park)처럼 일반적으로 이 운동의 집결지가 되었다.

 

고타고가마(GotaGoGama)에서는 타밀, 무슬림, 기독교 소수민족에 맞서 다수의 싱할라 불교도를 선동하는 라자팍사가 지원하는 인종과 인종 분열에 반대하는 메시지가 강력하게 통과된 수백 개의 자발적인 집회가 발생했다.

 

점령은 근본적으로 민주적이고 대중적이며 계급 간 특성을 가졌으며, 정치적으로 중산층과 비폭력이라는 이름으로 억압 세력과 친교를 요청한 비현실적인 개혁 사상을 발전시킨 학생들이 지배했다. 이것은 혁명적 관점에서 볼 때,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노동계급 운동이 없는 경우 부르주아 민주주의 세력은 항상 모든 운동을 자본주의가 정한 한계 내로 끌고 간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노동계급의 참여도 노동조합이 파업 결정을 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다.

 

노동조합은 결국 총파업을 선언했다. 그들은 거의 확신 없이 그렇게 했지만, 4월 28일과 5월 6일에 노동자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5월 9일, 마힌다 총리는 대통령에 희생되었고 사임했다. 그러나 라자팍사는 마지막 행동으로 많은 가족 지지자들을 모집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모아 술을 많이 마시게 하고 몇 루피를 쥐여주어 경찰과 군대의 지원 아래 수도와 주요 도시의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해 시위대에 폭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최루탄, 물대포, 심지어 총성으로 고타고가마를 소탕하려는 시도(8)는 실패했고, 노동조합은 5월 9일부터 11일까지 지속된 파업을 다시 한번 요구해야 했다. 노동조합은 가난한 노동자와 농민의 커져가는 분노를 덮고 단순히 정권교체를 요구하는 제도적 궤도로 되돌리기 위한 유일한 목적으로 뒤늦게, 확신 없이 파업을 선언함으로써 그들의 본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위대는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었고, 라자팍사 가문의 역사적인 집과 다른 여러 장관과 전직 장관들(최소 20명)의 집을 공격하고 불을 질렀고, 다른 시위대는 공항으로 가는 길에 여러 검문소를 조직하여 마힌다가 탈출한 것을 확인하고, 그가 트린카 해군 기지로 피신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곳을 포위했다. 체포된 사람들을 태운 여러 대의 승합차가 공격받아 파괴되었다. 최소 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당했다. 따라서 이 운동의 구호는 급진적으로 변하여 "고타는 떠나라"라는 구호에서 국회의원 총 의석을 나타내는 "225는 떠나라"로 전환되었다. 게다가 그 순간까지 운동을 특징지었던 비폭력의 이데올로기는 지상에서의 힘의 균형이라는 단순한 유물론에 굴복해야 했다. 반작용의 힘이 이러한 폭력의 기초를 만든다. 다음 날, 통행금지와 수도의 군사화가 뒤따랐다. 상황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섰지만, 이 글의 앞부분에서 서술했던 운동을 야기한 모든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추가 긴축정책이 시행되면 운동 자체에 다시 불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9)

 

2022년 6월 26일

로터스

코뮤니스트 투사(Battaglia Comunista)

 

<주>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10-31/the-struggle-of-the-iranian-oil-workers-goes-on

(2)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1-08/kazakhstan-the-working-class-attempts-to-find-its-voice

(3) https://www.aljazeera.com/news/2022/6/14/crisis-hit-sri-lanka-allows-govt-workers-4-day-week-to-grow-food

(4)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6/the-social-tensions-in-sri-lanka

(5)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9-18/china-iran-accords-the-silk-road-and-some-other-imperialist-manoeuvres

(6) https://www.dw.com/en/sri-lankas-foreign-debt-default-why-the-island-nation-went-under/

(7) https://thenextrecession.wordpress.com/2022/04/03/the-submerging-market-debt-crisis/

(8)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jun/19/sri-lankan-troops-open-fire-to-contain-unrest-over-fuel-shortages

(9) 이 기사를 작성한 이후, 새 총리는 이미 스리랑카 경제가 붕괴 상태에 있다고 세계에 발표했다.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2/jun/23/sri-lanka-prime-minister-economy-completely-collapsed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6/the-social-tensions-in-sri-lanka

 

 

 

photo_2021-01-07_13-27-08.jpg

 

스리랑카 노동자와 빈농의 투쟁에 부쳐

 

높은 생활비, 높은 연료비, 그리고 매우 심각한 경제 위기에 맞서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다!

코뮤니즘은 프롤레타리아트다!

혁명이 길이다!

 

몇 달 동안 스리랑카 사람들은 높은 생활비와 범죄자 라자팍사(Rajapaksa) 가족에 맞서 투쟁해 왔다. 투쟁의 형태는 중요했다. 평화적 시위와 노동조합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탄압에 맞서 싸울 힘이 생기고 장관들의 집과 정부 사무실에 대한 공격이 있고 난 뒤에 전국의 모든 노동자가 참여하는 총파업이 일어났다. 힘과 폭력의 지형을 강요하는 것은 부르주아지이다.

 

대중의 힘은 어떤 목표도 달성할 수 있지만, 큰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고타는 떠나라”와 “225(국회의원)는 떠나라”는 요구는 위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주장이다. 새로운 선거로 탄생한 새 정부나 국민통합정부는 노동자와 빈농에게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 외에는 스리랑카의 심각한 위기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스리랑카의 위기는 전 세계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에게 닥칠 위기를 예고하는 것일 뿐이다.

 

해결책은 다른 정부와 민주주의가 아니라 착취, 계급 분열, 이윤과 전쟁을 영원히 쓸어버리는 혁명을 통해 생겨날 새로운 사회조직과 완전히 다른 사회다.

 

전쟁은 경제 위기의 다른 면이기 때문이다. 위기와 전쟁은 서로 공생하며 인류를 새로운 세계 대전의 야만으로 몰아넣는다.

 

노동자와 빈농만이 대안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스리랑카와 같은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의 입장을 취하면서, 자신들만의 혁명적 총회 조직을 구축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여러분의 문제는 우리가 곧 직면하게 될 문제와 동일하며, 계급투쟁은 전 세계적으로 행진을 재개하려고 한다. 그 길은 한가지이다. 노동조합과 정당을 믿지 말고 스스로 투쟁하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모든 환상에 맞서 투쟁하며, 우리의 당면한 이익을 위한 투쟁을 모든 노동자,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전망으로 지금 통합해야 한다.

 

2022년 7월 19일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로마위원회

 

 

<출처>

 

https://www.leftcom.org/it/articles/2022-07-19/con-i-lavoratori-e-contadini-poveri-in-lotta-in-sri-lanka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코뮤니스트 15호] 자본주의와 그 불만: 좌파주의의 여러 얼굴들

자본주의와 그 불만: 좌파주의의 여러 얼굴들

 

 photo_2021-01-03_20-06-53.jpg

 

오늘날 누구도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경제와 국제 관계의 영역뿐만 아니라 인류와 자연의 관계에서도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점점 더 많은 노동자, 특히 젊은이들은 현재 상황 속에서 더는 자신의 미래를 찾지 못한다.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에 대한 오래된 탐구를 자연스럽게 다시 한번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 용어의 의미는 항상 정치적 전쟁터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그렇다.

 

유토피아에서 과학적 사회주의로

 

19세기 초 자본주의가 아직 유아기였고 노동계급이 아직 무시할 수 없는 세력이 되기 전, 유토피아 사회주의는 이미 당대의 지배적인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상에 대한 이념적 도전을 하고 있었다. 로버트 오웬(Robert Owen), 앙리 드 생시몽(Henri de Saint-Simon),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와 같은 사람들이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었다. 산업화의 공포에 대한 대응으로, 그들은 협동조합, 공동체, 신용조합, 상호원조 등을 통해 사회를 조직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당장 그곳에서 사회주의 원칙의 우월성을 보여주고 지배계급도 같은 관행을 채택하도록 설득하고 싶어 했다. 노동계급의 행동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이상에 기반을 둔 그러한 개혁주의적 실험은 내부 압력으로 붕괴하거나 단순히 자본주의 질서에 다시 흡수되는 등 얼마 가지 못했다. 그러한 초기 메시지는 자본주의의 기본 법칙이 여전히 적용되는 한 실질적인 또는 다른 어떤 것도 건설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칼 맑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최초의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이 기존 사회를 향해 쏟아놓은 다양한 비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사회주의에 대한 보다 확고한 기초를 제공하고자 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자신들의 이상주의적 과거를 받아들이면서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코뮤니스트 선언」, 1848)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역사 유물론이라는 개념의 기초가 되었다. 자본가계급인 부르주아지가 봉건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어떻게 일어섰는지를 묘사한 후, 그들은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폐지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특별한 계급이 수행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 없이 독특한 위치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임금을 받기 위해 노동력을 판매하여 살아가고 있는데, 이는 결코 자본가가 획득한 새로운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착취가 모든 자본주의 이윤의 원천이다. 사회주의는 더는 미래 사회를 위한 종교의 종파적 환상이나 개인의 청사진 영역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지식에 기반을 둔 의식적 표현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동시대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해 코뮤니즘, 또는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해방 시킬 수 있는 조건을 의식하도록 만들기 위해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설명하는 데 그들의 삶을 바쳤다. 따라서 사회주의가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관한 그들의 선언은 대부분 제한적이고 부정적인 성격 :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들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연합체로서,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며, 국경, 국가, 임금 체계, 사유 재산 및 계급 구분이 폐지되며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각자의 필요에 따라"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이다.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그들이 분명히 밝힌 것은 오직 "현존하는 모든 사회적 조건의 전복"을 통해서만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848년에 노동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는 이 일을 할 만큼 충분히 많지 않았고 또한 조직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후 20년 동안 과학적 사회주의의 관점은 현대 산업 프롤레타리아트 발전에서 확실한 근거를 찾았다. 1871년 파리 코뮌에서 그 역사적인 임무를 구현해 내었다. 비록 72일 동안 지속되었고, 한 도시에 국한되었지만, 하늘을 강타하는 최초의 프롤레타리아(비록 엄밀히 말하면 아직“사회주의”는 아니었지만)의 시도였다. “노동계급이 기존에 만들어진 국가기계를 단순히 붙잡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활용할 수 없다”는 혁명사상을 확인한 것이다. (「프랑스 내전」, 1871년) 코뮤니스트 사회의 창조를 향한 혁명 운동의 일환으로 국가는 파괴되어야 하는 것이었다(1).

 

맑스와 엥겔스는 노동계급에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굉장한 비판을 제공했을지 모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시대마다 지배적인 사상이 지배계급의 것이었다면, 노동계급은 그들 자신의 착취 경험이 그들을 새로운 세상을 위해 정치적으로 싸우도록 이끌었을 때 비로소 이를 뒤집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코뮤니스트 연맹」, 제1 인터내셔널, 그리고 후에 독일 사회민주당(SPD)이 될 조직에 크게 기여를 한 이유이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맑스의 유명한 말은, 때때로 주장하듯이, 노동자는 정치적 조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단언은 아니었다. 이 말은 결국 제1 인터내셔널의 초안(1867년)에 있다. 이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분파의 어떤 영향권 밖에서 독자적인 정치조직을 가져야 한다는 직설적인 설명이다. 맑스와 바쿠닌의 추종자들 사이의 분쟁으로 분열된 제1 인터내셔널은 붕괴하였다. 그 자리에 맑스주의를 고수하는 사회주의 조직이 국가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1889년 그들은 제2 인터내셔널을 결성했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은 이제 수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유물론적 역사 개념, 경제, 정치, 심지어 문학, 예술, 철학 등의 학문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체적인 대중 정당과 노동조합을 만들고 있었다.

 

모호한 사회민주주의의 경로

 

유물론적 사상에 기반을 둔 혁명적인 정치 운동이 이제 노동계급을 아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이는 것과 같지는 않았다. 당시 많은 이들이 알지 못했던 맑스와 엥겔스는 비밀에 부쳐졌고, 독일 당 지도부의 검열까지 받았지만,(2) 그들은 대부분 사적인 편지와 미발표 원고로 좌절과 비판을 표현했다. 1878년 이후 독일의 반(反)사회주의 법은 개혁파가 법의 테두리에 맞게 사회주의 강령을 수정할 수 있는 구실을 제공하였다. 에두아르드 베른스타인 같은 사람들은 노동자들이 이제 시민이 되고 경제 위기의 본질적인 경향은 없으며 자본주의는 단순히 사회주의로 진화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의 필요성을 부정하기까지 했다. 노동조합과 협동조합은 경제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동안, 당의 역할은 정치민주주의로 나아가도록 작업하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수정주의는 블라디미르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로 대표되는 제2 인터내셔널의 혁명파에 의해 도전받았다. 그들은 노동계급의 정치권력 장악이 사회주의 변혁의 전제조건이라고 주장했다. 사회 개혁을 통해 순수하게 자본주의를 종식하는 길을 찾는 것은 같은 목표로 나아가는 더 느리고 평화로운 길이 아니라 그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었다.(3)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내부의 목소리가 국제주의 원칙 포기를, 식민주의에 대한 핑계를 대거나, 제국주의의 한 블록이 다른 것보다 "더 진보적"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을 때, 레닌과 룩셈부르크는 주적(主敵)인 부르주아지가 국내에 있다고 되풀이해서 강조했다. 그들은 사회민주주의가 계급투쟁을 통해 전쟁에 반대하도록 결속시킨 제2 인터내셔널 대회의 결의를 방어했다.

 

1914년까지 제국주의 긴장, 경제적 압력, 노동계급의 전투성으로 인해 세계 전쟁이 지배계급이 선호하는 선택지가 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의 궁극적인 시험대가 될 예정이었지만, 비참하게 실패했다. 제2 인터내셔널의 가장 크고 가장 영향력 있는 정당인 사회민주당은 카이저 전쟁 신용채권투표에서 찬성했고, 노동조합은 전쟁 활동에 대항하는 파업을 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이 운동의 혁명파가 다시 뭉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첫 번째로 차르를 몰락시킨 1917년 러시아혁명 덕분이었다. 그런 다음 노동자평의회가 권력을 장악하여 마침내 제3 인터내셔널이 설립되었다. 볼셰비키는 국제주의 원칙을 고수하고 혁명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 몇 안 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중 하나였다. 1905년 러시아 노동자들이 소비에트 사상을 발견한 이후, 그들은 자본주의 의회의 가짜 민주주의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안으로 그들을 선전했다. 10월혁명 이후 첫 6개월 동안 그들은 소비에트의 수를 늘렸고, 선출된 대의원을 언제든지 소환할 수 있는 노동계급 원칙을 도입했으며, 노동자들의 생산 통제를 장려했다. 그것은 전 세계 혁명가들이 따라야 할 모델이 되었다.

 

소련의 유산

 

러시아혁명은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그 보기를 따라 전 세계에 혁명의 물결을 일으켰다. 노동자평의회와 코뮤니스트당은 단결하고 조직하며 투쟁을 주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독일, 헝가리와 핀란드와 같은 나라의 노동자들이 직접 권력을 잡으려 했으나 폭력적으로 탄압받았다. 소련은 자본주의 유산인 경제 위기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었고, 국제 자본이 부채질하고 자금을 지원한 잔혹한 내전에 휘말려 들었다. 볼셰비키는 승리했지만, 상처뿐인 승리였다. 경제 위기의 시기에 전쟁을 해야 할 필요성이 소비에트(그리고 실제로 당)의 통제 밖에 있는 적군과 비밀경찰 체카에게 무장한 노동자평의회의 민병 제도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소비에트는 선거를 실시하지 않았고 종종 집행위원회로 대체되었다. 1921년까지 혁명은 1917-18년의 희망적인 부분에서 벗어난 일당 국가가 점진적으로 등장하면서 교착상태에 빠졌다. 코뮤니스당 안팎에서 다양한 반대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훨씬 더 많은 퇴보가 의제에 올랐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소련이라는 명칭을 붙였을 때, 초기의 혁명적 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제3 인터내셔널의 존재 이유가 소련의 방어로 추진되고 있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사회민주주의가 이미 "사회주의"의 의미를 자본주의 복지국가의 동의어로 변형하기 시작했다면, 1930년대에 소련은 "코뮤니즘"의 개념을 굴락(강제노동 수용소)에 연계시켰다. 독일혁명이 사회학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노동자정당"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회민주당에 의해 주로 격렬하게 짓밟힌 것이나, 스탈린의 숙청 기간 오랜 기간 혁명가들이 하나씩 제거된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시즘은 "국가사회주의"라는 미명 아래 자본주의 질서를 옹호하기 위해서 등장했다. 그때는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의 대규모 산업화한 학살로 왕관을 쓴 세기의 자정이었다. 러시아혁명에서 출현한 것은 맑스와 엥겔스가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공동체"로 이해한 "사회주의"가 아니었다. 19세기 말에 열린 제국주의 시대의 모든 국가에 내재한 국가주의 경향은 이미 더 새로운 중앙집권적 형태를 채택했다. 국가의 무장력은 체제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었고, 대중정당과 노동조합은 민족국가 배후의 계급을 더 효과적으로 동원하거나 억제하는 데 이용되었다. 스탈린주의 변종에서 자본주의의 어떤 범주도 근절되지 않았다. 이제 고용주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임금 노동은 계속되었다. 변함없는 것은 무급 노동의 지속적인 전용을 바탕으로 이윤과 성장을 도모하는 자본주의 생산의 목표였다. 그것은 사회주의도 코뮤니즘도 아니었지만, 스탈린은 그것을 코뮤니즘으로 가는 단계인 "현실 사회주의"라고 교화시켰다.

 

이 거짓말은 전후 호황이 펼쳐지면서 소련에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1945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미국)과 “코뮤니즘”(소련)으로 나뉘어졌다. 소련은 이제 두 번째로 강력한 제국주의 블록의 선두에 서 있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거의 완전한 국가 소유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 발전의 대안적 비전은 다양한 정권의 부르주아지, 특히 자본주의 주변부에 영감을 주었다. 이 가운데 중국과 쿠바는 소련보다 오래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한 나라에서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가장 두드러지게 심어주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감옥과 망명지에서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이라는 역사적 강령을 보존하면서 시류에 역행한 극소수, 그 중 코뮤니스트좌파의 이전 세대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스탈린주의 거짓은 20세기에 국가, 임금체계, 사유재산 폐지, 또는 계급 분열 없는 세계적인 협동적인 연방으로서 사회주의와 코뮤니즘의 비전을 진압하는 데 대체로 성공했다.

 

우리는 다시 모두가 사회주의자다…

 

비록 자본주의의 전후 붐은 1970년대 초에 끝이 났지만, 1991년 스탈린주의 소련의 붕괴는 미국이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던 자본주의의 대안이 이제 없다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2008년의 금융 붕괴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것은 "역사의 종말"과 최종적인 자본주의 승리에 대한 모든 서사를 잠재웠다. 그것은 자본주의와 자본주의의 잠재적인 대안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었다. 코로나바이러스 대유행은 부채에 허덕이는 이 연약한 체제의 위기를 악화시켰을 뿐이다. 그것은 전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들로부터 전쟁 기간과 다를 바 없는 신속한 대응을 해야 했다. 수조 달러를 시장에 투입했다. 그리고 특정 부문은 국유화되었으며, 노동자들은 해고되었고, 국경은 폐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다가오고 있는 환경 파괴의 위협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가중할 뿐이다. 따라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사회주의"를 그 해결책으로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모두가 이제 사회주의자다"라는 것이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사회주의의 의미는 종종 국가 통제, 노동조합주의, 노동자자주관리, 그리고 세계의 서열에서 덜 강력하다고 여겨지는 다양한 정권에 대한 "반(反)제국주의" 지지로 축소된다.

 

한편으로 유토피아 사회주의가 남긴 자국이 있다. 오늘날 낡은 것의 껍데기에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는 것은 이른바 '예상하는 정치'를 이끄는 동기로 남아 있다. 그것이 작은 사회 중심이든, 스쿼트(squats:무단거주)이든, 협동조합이든, 또는 더 큰 자치 공동체(사파티스타, 로자바 등)이든, 좌파 자유주의와 특정한 형태의 아나키즘은 임금체제나 자본주의 국가를 제거하지 않고, 억압받는 소수가 그 체제 내에서 자신의 틈새를 개척하면서 세상이 점진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환상을 퍼뜨렸다.

 

그 다음에 동구권 붕괴 후 바로 태어난 세대가 주도하는 스탈린주의의 부활이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적 감수성을 뒤엎는 것을 목표로 한 급진주의의 유치한 캐리커처로 봉사하는지, 아니면 "현실 사회주의"라는 군사적 그리고 산업적 "업적"을 더 심각하게 방어하는 것인지 여부는 여기서 중요하지 않다. 그 결과는 전체 역사에서 많은 노동계급 운동을 분쇄했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노동 착취에 기반을 둔 정권들에 대한 선전이다.

 

심지어 사회민주주의는 수치심에 죽지 않았다. 혁명적 노동자 학살을 도왔던 끔찍한 과거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여전히 노동자들을 위해 점점 더 인간적으로 불평등해지는 자본주의를 관리하려는 추구에 의해서 이끌리는 "실용적인" 추종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사실 동일한 정치에서 선거 기반을 찾기 위해 노동계급(노동자들이 충분히 투표하지 않음)을 대부분 포기했으며, 그것은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구·신좌파 정당들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더욱 절박한 좌파들은 현재의 위기가 공공 지출에 대해 제레미 코빈과 버니 샌더스 같은 사람이 옳다는 것을 적어도 증명했다고 위안으로 삼는다.

 

이론적으로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 양자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트로츠키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것의 모집 전략, 입당주의, 그리고 다양한 국가들의 방어를 통해 그들이 “변형된” 또는 퇴보한 “반(反)제국주의” 양자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왔다. 사실, 트로츠키는 스탈린 치하에서도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사회주의로 향하는 진보적인 조치(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에 대한 비판적 지지)라는 견해를 항상 고수했다. 그 부분에서 유일하게 잘못된 것은 그것을 관리하는 개인이었다. 전쟁의 참모 총장으로서 트로츠키는 다른 볼셰비키들보다 더 많이 진정한 노동자 운동의 무장 단체인 민병대를 대체하는 상비군을 기반으로 한 국가의 창설을 장려했다. 그리고 대중 운동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모색은 트로츠키주의가 정직하지 못한 사회민주주의 조직으로 진입을 시작하게 했던 1930년대 그의 유명한 "프랑스 전환"으로 그를 다시 사회민주주의로 이끌었다.

 

조직화한 좌파의 영역 밖에는 다양한 좌파,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와 마오주의 그룹이 아직 존재한다. 다양한 학계, 대안 매체와 인터넷 개인들로부터 무작위로 빌린 생각을 재현하는 더 많은 가상 영역이 존재한다. 리처드 울프(Richard Wolff), 마이클 파러티(Michael Parenti), 자코뱅(Jacobin), 노바라 매체(Novara Media) 또는 랜덤 유투버와 같은 것을 여기서 면밀히 분석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단순히 과거의 아이디어들을 재활용하고 쇄신한 것이라고만 말해두자. 그리고 자본주의 위기는 이러한 빠른 해결책을 위해 수익성 있는 분야를 제공한다. 이 정당에 투표하고, 이 조직에 가입하고, 이 탄원서에 서명하고, 이 제품을 구입하고, 이러한 대의에 기부하라, 등.

 

노동계급이 핵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코뮤니스트좌파가 사상이라는 시장에서 또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라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투쟁과 그 부속물을 통해 통합할 수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이러한 모든 좌파의 흐름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그들 자신을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발표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원인이나 운영방식이 아닌 그 영향에 대해 크게 의문을 제기하는 오늘날의 금융화된 그리고 투기적인 자본주의에 대한 대응인, 현 국가 내의 대안이다.

 

우리는 자본의 좌파와 토론을 통해 그 추종자들이 우리 대열에 합류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그것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핵심은 임금노동자들 스스로 집단적인 저항을 조직하는 계급투쟁의 부활이다. 우리가 지금 그런 부활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일반적으로 구(舊)자본주의 심장부에는 아직도 노동조합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노동계급이 있는데, 노동조합은 공정한 하루의 노동에 대해 공정한 하루의 임금조차 우리 모두에게 제공할 수 없다, 게다가 기껏해야 우리 중 일부는 "덜 나쁜" 단기간의 해결도 할 수 없다. 한편 자본주의 주변에서 우리는 폭발적이고 때로는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대체로 자발적인 성격의 집단적인 투쟁을 목격하고 있다. 여기서 주요한 보기에 해당하는 나라는 아마도 이란으로, 수년간의 파업과 시위에 이어 노동자들은 이제 진정으로 스스로 투쟁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인 "투쟁조직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란이 계급의식을 가진 반(反)자본주의 운동의 도화선이 되든 아니든 간에, 어떤 운동이든 다른 여타의 세계의 국가를 위한 등불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직 형태(1905년 러시아의 소비에트처럼)뿐만 아니라 더 넓은 정치적 목표(비록 즉시 달성할 수 없고, 소수만이 목소리를 낼지라도), 정치적 도약이 있어야 한다. 기존 질서에 대한 이러한 도전 없이는 코뮤니스트 강령은 여전히 국가 통제가 코뮤니즘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라는 환상에 의해 지배되는 "흥미로운 사상"의 영역으로 밀려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방어하는 사상, 즉 지난 2세기 동안의 투쟁에서 얻은 교훈의 연속적인 공통의 주제는 미래의 운동에 복무하기 위해 그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모든 독자를 초대하는 국제적인 차원의 집단적인 토론이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가 무엇에 맞서 싸워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일관성 있는 집단행동은 있을 수 없다.

 

2021년 12월

다이즈버즈(Dyjbas)

 

 

 

<주>

 

(1)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1-03-18/1871-2021-vive-la-commune

 

(2) 많은 보기가 있다. 마지막은 1895년 엥겔스가 폴 라파르그에게 항의하는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 독일어판 도입부를 새로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였다.

 

“…리프크네히트가 방금 나에게 멋진 속임수를 썼다. 그는 맑스의 1848-50년 프랑스에 대한 저작 중 내가 쓴 서문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무력과 폭력에 반대하는 평화 전략을 지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것을 인용했다. 특히 베를린에서 강압적인 법이 준비되고 있던 당시에, 그는 얼마간 이를 설파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전술들을 단지 오늘의 독일을 위해서 설파하고 있으며, [그들은] 내일이 되면 적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맑스-엥겔스 저작선」, op. cit. p.461, 원문에 강조)

 

자세한 내용은 우리의 팸플릿 「계급의식과 혁명조직」 4장(위의 추가 읽기 목록 참조)을 참조

 

(3) 베른슈타인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그들은 당시 "맑스주의의 교황"으로 여겨졌던 카우츠키의 지지를 받았지만, 카우츠키는 사회주의의 승리는 "불가피한" 것이기에 자본주의가 붕괴할 때까지 노동자들은 개혁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독립사회민주당에서 연합하였다. 그들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로 보지 않았고,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때까지 전쟁에서 평화주의를 옹호했다

 

(4) 우리는 이것에 대해 수많은 기사에서 다루었지만, 최근 1971-2021년에 다음과 같은 기사를 썼다: 「미국이 브레튼우즈를 배신한 지 50년」, 「브레튼 우즈의 종말 : 동시대의 분석」

 

2022년 3월 3일 재발행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옮긴이 : 이명수

 

<출처>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3-03/capitalism-and-its-discontents-the-many-faces-of-leftism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실천 복간 5호]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주의자 행동: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과 국제주의자 행동: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photo_2021-01-11_19-49-47.jpg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00일이 넘었다. 과거 다른 제국주의 충돌과 마찬가지로, 이 전쟁도 혁명가들의 국제주의 신념을 시험하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혁명적 패전주의를 방어한 사회주의자들은 수백만 노동자들의 사회주의 의식을 일시적으로 잠식시킨 거대한 쇼비니즘의 물결에 맞서 굳건히 서 있었다. 전쟁의 진정한 결과가 제국주의 분열을 가로질러 노동자들에게 돌아오기까지 2년이 걸렸다. 그것은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이 차르 체제를 전복하고, 1917년 혁명을 훔치려 했던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였다. 그리고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는 1918년 11월, 마침내 제국주의 학살을 종식한 노동자 대중 봉기로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은 오늘날의 혁명가들에게 중요한 교훈과 영감을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제국주의 전쟁 참화가 벌어지고 있는 지금,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서로 간에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원칙을 굳게 고수하고 있다. 코뮤니스트좌파와 지지자들은 모두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회의를 개최하고 공동대응을 시작했다. 이러한 공동대응 중 하나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국제 행동이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1)에서 제안한 이 행동에 한국의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2)도 참여하고 있으며, 유럽과 북미,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만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자’라는 국제 행동에 나서고 있다.

 

반면, 우리가 ‘자본의 좌파’라고 부르는 스탈린주의자, 트로츠키주의자, 마오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거나, 대부분의 트로츠키주의자는 여전히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 위해 ‘덜 나쁜 악’에 매달리고 있다. 아나키스트 그룹들도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다행히 러시아 아나코-생디칼리스트 그룹 「크라스」(KRAS-IWA의 지부)3)와 체코의 「계급전쟁」(Třídní Válka)4)과 같은 그룹은 전쟁에서 양측 모두를 규탄하고 ‘혁명적 패전주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 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면한 국제주의자들의 국제 행동으로 제안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소개하고 함께할 것을 요청하는 글이다. 이 글에서는 제안 배경과 참여 (국제주의) 원칙, 그리고 각 나라에서 발표한 성명과 회의 결과를 요약하여 소개한다. 중복되는 내용을 생략했는데도 국제주의자의 공통된 인식은 반복해서 강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이 글의 결론이다.

 

제안 배경: 혁명이냐 전쟁이냐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유럽 분쟁이며,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야만적인 전쟁의 진짜 근거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 전략적 입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이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주요 군사 강대국 중 하나가 직접 관여하고 있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쐐기를 박고 독일이 재무장에 동의하도록 강요하면서, 더 광범위한 갈등을 위한 동맹을 공고히 했다. 동시에 우리는 러시아와 중국의 독재정권과 달리 의회 민주주의, 민족주의, 주권의 미덕은 죽을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을 듣고 있다. 이것이 우리를 더 넓은 전쟁을 위한 총알받이로 모집하는 데 사용될 이데올로기이다. 바이든이 지난 3월 바르샤바 연설에서 서방 동맹국들에 수십 년간의 전쟁에 대비하라고 경고한 것은 이를 위한 것이었고, 보리스 존슨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기 위해 희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은 대규모 파괴, 기존 자본의 평가절하,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이 전쟁들은 자본주의의 순조로운 작동에서 예측할 수 없는 방해물이 아니었다. 또한 전쟁은 몇몇 광적인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결과였다. 이 체제는 이윤율 저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내부 모순으로 전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자본가들이 이에 맞서는 두 가지 주요 방법은 단기적 조치인 노동자의 임금을 낮추는 것과 장기적 해결책인 기존 자본의 평가절하이다. 후자는 지난 세기에 세계대전으로 두 번 정도 발생했다. 물론, 통치자들은 그들의 자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적의 자본을 파괴하고, 원자재에 접근하고, 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위치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승전국에서도 자본의 일반적인 평가절하를 초래한다. 오늘날 진정한 선택은 자본주의 생산 체제 전복이냐 아니면 우리가 사는 곳에 폭탄이 쏟아질 것이라는 전망 중 하나이다. 한마디로 ‘혁명이냐 전쟁이냐’이다.

 

자본주의를 전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세계 노동계급의 단결된 힘이다. 그 첫걸음은 이른바 ‘국익’을 고려하지 않고 노동계급 이익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다. 국익은 다른 모든 것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부르주아지 이익에 불과하다. 이미 임금은 인플레이션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일부 빈곤 국가에서는 극적으로 하락했고, 이 전쟁은 생활 수준을 더욱 떨어뜨릴 것이다. 세계 부르주아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프롤레타리아트에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부과하려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싸우는 범죄자 집단(또는 과두정치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침략자든 방어자든 지배계급을 위한 싸움을 멈추어야 한다. 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 즉 노동계급 자신을 위한 전쟁을 강화해야 한다. 이것만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이다.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자!

 

우리는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유혈 낭자한 제국주의 분쟁을 종식하기 위한 계급전쟁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위해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면서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라는 기치 아래 국제 행동을 시작했다. 이 행동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와 국제주의자를 하나로 모아 더 넓은 노동계급에 반격의 필요성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photo_2021-01-11_19-56-05.jpg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행동 호소

 

1.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발적인 행동이 아니다. 이것은 1945년 이후 볼 수 없었던 방식으로 더욱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직면한 제국주의 경쟁의 새로운 시대 시작이다.

 

2. 오늘날 자본주의 체제 밖에 있는 나라는 없다. 제국주의 경쟁 심화는 수십 년 된 자본주의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경제 위기 산물이다. 그동안 자본주의는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경제 위기를 관리하기 위해 많은 수단에 의존해야 했다. 이것이 세계 노동계급에 가져온 것은 더욱 강도 높은 착취, 더욱 큰 고용 불안정, 그리고 그들이 생산하는 부에서 노동자 몫의 지속적인 감소이다. 이 체제는 전쟁을 부를 뿐만 아니라, 끝없는 이윤 추구는 지구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3. 그러나 세계화, 금융화, 그리고 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이윤율 하락에 대한 모든 반응은 2008년 세계 투기 거품의 극적인 붕괴로 끝났다. 그들은 위기를 모면했을 뿐, 해결하지 못했다. 체제 모순은 증가하고 있고 어떤 국가도 그것을 면할 수 없다.

 

4. 가장 두드러진 모순 중 하나는 1980년대에 서유럽이 저임금 경제로 투자를 이전한 것이다. 가장 큰 수혜자는 중국이었다. 중국은 서유럽 노동자들의 소득 감소에 대한 압력 완화를 위해 저임금 노동력의 대규모 착취를 통해 값싼 상품 공급하면서 경제를 구축했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경제적 편의 결합이 파경에 이르고 더욱 명백해지면서 이미 존재하는 체제 모순은 깊어졌다.

 

5. 양적 완화는 전반적인 위기를 해결하지 못했고, 착취를 비인간적인 수준으로 강화하지도 않았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것은 기존 자산을 탕감하는 것을 넘어 자본의 대규모 평가절하이며, 이는 일반화된 전쟁이 필요하다. 세계 지도자들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점점 줄어들면서 '국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타협의 여지가 점점 적어지고 있다. 그들이 더 절박해질수록 인류 미래를 위협하는 대량 파괴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진다. 사실 세계전쟁 위협은 점점 더 위기에 처한 체제에 의한 자연 자원 고갈과 환경 파괴의 가속화로 인해 이미 발생하고 있는 환경 재앙과 관련이 있다.

 

6. 이 재앙과 전쟁 전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세계 노동계급이다.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은 먼저 전쟁을 마비시킨 다음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다. 전 세계 임금노동자는 착취자 손에 들어가는 세계 부의 창조자라는 공통의 물질적 위치를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국가도, 국익도 없다. 그들만이 국가가 없고 생산이 협력적이며 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를 충족하도록 설계된 새로운 계급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사람들이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받는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의 세계 공동체를 위한 조건이 존재한다.

 

7.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동계급은 조직화하거나, 재조직화할 필요가 있다. 임금 삭감 등에 반대하는 일상적인 투쟁에서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합하기 위해 모든 노동자가 선출하고 소환할 수 있는 파업위원회를 결성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본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모든 파업위원회는 기존 국가를 정복하는 과정을 시작할 수 있는 더 넓은 계급 운동으로 단결해야 한다.

 

8. 이 과정에서 일부 노동자가 자본주의 존재의 막다른 골목을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인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9. 인도주의적 재난의 현 상황에서 역사가 새로운 절박한 국면을 맞이하더라도 우리는 계급 운동이 당장 일어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는 착취와 전쟁에 맞선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위기가 어떤 미봉의 협상으로 끝나더라도 이것은 다음번 제국주의 충돌의 씨앗을 뿌릴 뿐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미 러시아를 중국 품으로 끌어들이고, 나토와 EU를 미국과 그 목표 주위로 결집했다.

 

10. 자본주의는 전쟁을 의미하며 멈춰야 할 것은 자본주의다. 따라서 우리가 어디에 있든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설립할 것을 제안하고, 모든 민족주의에 반대하며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자본주의와 피비린내 나는 제국주의 충돌을 끝장내기 위한 계급전쟁이라는 것을 인식한 개인과 그룹에 참여를 요청한다. 이것은 오늘날 흩어져 있는 혁명적 소수가 힘을 모으고 더 넓은 노동계급에 우리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할 것이다.

 

11.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국제적인 계획이지만, 인터내셔널(세계혁명당)은 아니다. 그것은 계급전쟁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전복할 수 있는 운동으로 발전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이 운동은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 할 '덜 나쁜 악'이라고 규정해 하나의 제국주의 또는 다른 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편들거나,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필요성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를 지지해 노동계급이 스스로 투쟁하는 것을 교란하고 무장 해제시키는 모든 사회민주주의, 트로츠키주의, 스탈린주의 정치를 거부하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혁명가들에게 정치적 나침반을 제공한다.

 

12.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것이 평화주의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평화주의는 기본적으로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탄원일 뿐이다. 문제는 ‘정상’에 관한 것이다. 전쟁으로 이끄는 세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이다.

 

위 내용에 동의하는 동지들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할 것을 호소한다.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의 동지들

 

 

 photo_2021-01-11_19-56-08.jpg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리버플 성명)5)

 

전쟁, 빈곤, 위기와 질병: 자본주의 체제의 진정한 얼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는 폭발 일보 직전에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한번 전 세계 노동계급은 우리가 얻을 것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충돌에서 한 편을 들도록 요청받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소련 붕괴 이후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반면에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자기 영향력 안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EU) 국가들이 미국 뒤에 집결하고 러시아가 중국으로 눈을 돌리는 등 제국주의 결속이 굳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일반화된 전쟁으로의 확대를 의미하지만, 현재 우크라이나는 유일한 전쟁터가 아니다. 그곳이 시리아든, 예멘이든, 팔레스타인이든 자본가계급은 전 세계에서 노동자들을 서로 싸우게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재정 수입, 원자재, 값싼 노동력을 찾기 위한 것이다. 분열과 통치 이데올로기의 무기인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우리가 아닌 다른 목적을 위해 죽이고 죽도록 요구한다.

 

또한, 기후 위기를 상기하자. 홍수, 화재, 극단적인 기상현상으로 점차 지구 전체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자, 코로나19를 발생시키고 확산해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본주의 조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미래의 감염병 위협이 크게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모든 노동자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여러 전선에서 일어나는 전쟁이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 우리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사유재산, 임금노동, 화폐 및 국가 존재를 특징으로 하는 현재 생산 체제인 자본주의가 문제의 근원임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우리는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 국가와 국경이 사라지고 노동계급이 만든 독립적인 기관(노동자평의회)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단으로 해결하기 시작할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 사회적 질문과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

 

이 분쟁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은 전쟁에 대한 지원을 의미한다. 이 악몽을 끝내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 계급적이고 우호적인 연대로 전쟁 기계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민족주의 선전을 믿지 말자!

 

이것이 우리가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를 주장하는 이유이다. 지배계급은 이미 우리와 지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대안을 만드는 것은 전 세계의 노동자, 즉 그들이 없으면 모든 것이 중단되는 절대다수의 노동자에 달려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세계 자본주의는 장기적이고 심화하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 우리를 일반화된 전쟁의 길로 이끌고 있다. 오늘날 60개 이상의 국지전이 벌어지고 있다. 서로 다른 갱단들이 통치권을 위해 투쟁하는 동안. 이들 모두는 우리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한다. 이러한 전쟁 대부분은 주요 제국주의 강대국의 고객 사이에서 발생한다. 그들은 공개 무역전쟁과 함께 더 넓은 세계 분쟁의 전조인 대리 제국주의 전쟁이다. 전쟁 책동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작동 결과이다. 그것은 일부 미치거나 나쁜 자본주의 지도자들에 의한 결과가 아니며, 자본주의 체제 전복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우리가 직면한 진정한 대안은 ‘전쟁이냐 혁명이냐’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지지자들은 노동계급에 의한 자본주의의 혁명적 전복과 새로운 전 지구적 생산 체제 창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의 필요를 직접적으로 충족시키는 공유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체제를 지향한다. 이것은 노동자평의회를 통해 노동계급이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이다. 이윤을 위한 생산과 국가와 국경은 사라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 지구 오염은 역전될 것이며 인류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계획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세계적인 규모로 조직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 필요성에 대한 이해와 그것을 달성하는 방법에 대한 의식을 확산해야 한다.

 

필요한 출발점은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 방어를 강화하고, 지배계급이 우리에게 지원을 요구하는 전쟁을 포함한 지배계급 의제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모든 전쟁은 자본 일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다.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이른바 '민족해방' 또는 '반(反)제국주의' 전쟁은 위장한 제국주의 전쟁일 뿐이다! 그들은 모두 자본가 체제에 들어가 있고 평화와 전쟁에서 그것을 지지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우리가 나서서 부르주아 전쟁과 긴축에 맞선 계급투쟁을 전면화하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리버플

 

 

 photo_2021-01-11_19-56-11.jpg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한국 성명)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다.

 

2006년 한반도에서도 전쟁 위기가 고조되었고, 당시 한국에서 최초로 열린 「코뮤니스트 국제대회」에서는 ‘전쟁 위협에 대항하는 국제주의자 선언’이 있었다. 이 선언은 ‘국제주의 원칙 방어’와 제국주의 전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노동계급의 전 세계적인 투쟁임을 밝혔다. “자본주의 아래 인류를 엄습하는 야만주의와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핵 파괴의 위협을 영원히 끝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들의 전 세계적인 투쟁임을 선언한다."

 

국제주의자 선언 이후 15년이 지났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은 지속되고, 자본주의 경제 위기는 제국주의 충돌을 격화시켰고, 유럽에서 또 하나의 전쟁을 불러왔다. 이러한 위기에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방어와 전쟁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의 혁명적 전복을 위한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는 더욱더 중요해졌다.

 

2008년 투기 거품 붕괴 이후 해결되지 못하고 장기간 지속해온 자본주의 위기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더욱 가속화되었다. 이제 자본주의 세계는 경제 위기 심화, 감염병 위험, 환경 재앙의 증가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 위협이 고조되고, 세계 곳곳에서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푸틴의 돌발적인 행동이 아니며, 장기간 경제 위기 속에서 일반화된 전쟁 위기에 처한 제국주의 충돌의 새로운 국면을 의미한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는 동유럽으로 계속 영향력을 확대했고, 러시아는 다시 제국주의 강대국의 지위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지배권 다툼이 전쟁을 불러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나토와 유럽연합(EU)을 미국 주위로 결속시키고, 러시아를 중국의 품 안으로 끌어들여 광범위한 제국주의 전쟁의 무대가 열렸다.

 

지배계급의 이해관계에 따른 전쟁의 피해는 모두 프롤레타리아트에 비참하게 떨어졌다. 이미 수천 명의 우크라이나 민간인과 양측 군인이 희생되었고, 수십만 명의 피난민을 거리로 내몰았다. 전쟁은 에너지와 곡물 가격의 추가 상승을 불러와 세계 노동자들의 생활 조건 악화와 빈곤을 가중할 것이다. 이렇게 노동계급의 삶을 파괴하는 전쟁에서 이익을 얻는 자들은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지배계급이다. 그들은 경제, 정치, 군사적 지배력과 이익을 위해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와 전쟁 선전 기계를 통해 노동계급끼리 죽고 죽이게 만든다.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인류에게 고통과 죽음, 그리고 더 심한 파괴만을 초래했다. 이러한 전쟁에서 그동안 민족해방을 위한 투쟁 결과는 제국주의 약화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세력의 대체로 나타났다. 이것은 이른바 '민족해방 투쟁'이 노동계급에 자신을 지배계급 일부와 동일시해야 하는 투쟁, 즉 지배계급의 한쪽이나 제국주의의 다른 쪽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기 때문에 '반(反)제국주의 투쟁'과 거리가 멀다는 것을 증명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는 것은 지배계급을 지지하는 것이며, 제국주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것을 거부하는 평화주의는 계급투쟁을 무력화시킨다.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위기와 고통, 전쟁의 치명적인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민족주의를 비롯한 모든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노동계급 공동의 이해관계를 위해 국제적으로 연대하여 투쟁하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 계급전쟁뿐임을 인식하고 국제적인 계급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본주의의 깊고 오래된 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인류 전체의 위기는 전쟁만이 아니라 빈곤, 감염병, 환경 파괴를 통해서도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갈수록 더 위험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인류를 파멸로 이끌 제국주의 전쟁을 근본적으로 끝장내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계급전쟁을 통해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새로운 체제인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의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에서 지배계급이 주도하는 모든 전쟁과 평화의 논리를 거부하고 자기 계급의 입장을 가져야 한다. 또한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덜 나쁜’ 제국주의 한쪽 편들기에 맞서, 자본주의 체제를 바꾸는 운동과 결부되지 않은 모든 평화주의 반전 운동의 위선에 맞서 국제주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구호 아래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게 할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나설 것을 호소한다.

 

비록 지금은 국제주의 노동자들이 소수이고, 100년 전과 같은 혁명적 운동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운동은 계급투쟁의 부활과 노동계급 자신의 방식 창출, 그리고 새로운 주체 출현에 이바지할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으로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혁명을 통해 평화로!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photo_2021-01-11_19-56-13.jpg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터키 성명)6)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계급 전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노동계급에 이 세계는 더욱 위험한 곳이 되었다. 자본주의 위기는 이미 우리 모두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지만, 우리는 이제 그것이 인류를 더 큰 전쟁으로 끌고 갈지도 모르는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편 러시아는 나치를 우크라이나에서 제거한다는 구실로 잃어버린 땅을 되찾으려 하고 있고, 나토는 우크라이나를 볼모로 삼아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다. 이는 제국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상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벌인 전쟁이다. 그들은 우리가 어느 한 편을 지지할 것을 기대하지만, 전쟁의 파괴적인 결과는 노동계급에만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나토도 러시아도 지지하지 않는다!

 

수년에 걸쳐 자본주의는 위기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착취 증가와 전쟁 등)을 찾으려고 노력해왔다. 이러한 해결책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해주었지만, 위기를 심화하고 노동계급에 더 큰 부담을 줄 뿐이다. 위기에 대한 다른 해결책이 없을 때, 체제의 지속을 위해 더 일반화된 전쟁이 불가피하게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조직된 노동계급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전쟁은 우리에게 죽음이나 더 많은 착취를 의미한다! 세계 여러 곳에서 자본가들이 벌인 전쟁은 프롤레타리아트를 죽이거나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을 위한 값싼 노동력으로 만들었다. 이미 터키에서 값싼 노동력으로 이용되고 있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프롤레타리아트도 인종차별에 노출되어 공격의 표적이 되고 있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더 큰 이익을 위해 우리 삶을 희생시키기를 원한다. 우리 삶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더 많은 파괴와 고통을 가져다줄 뿐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우리에게 기후 위기를 불러왔지만, 이제 그들은 자신들의 핵무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은 기후 위기보다 지구에 더 즉각적인 위협이 된다.

 

인류를 야만으로 몰아가는 체제는 우리가 "민주주의"라는 거짓말을 믿기를 기대한다. 유럽 언론은 젤렌스키를 ‘민주주의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이 ‘영웅’은 자신의 나라에서 거리에서 고문을 자행하는 세력인 신나치주의를 용인한다. 이 ‘영웅’은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 시민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이런 위선은 자본가들에게 가치가 있다! 그들의 전쟁 비용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불하고 있다. 그동안 친러시아 '코뮤니스트' 정당과 이른바 '독립' 노조들은 푸틴의 변명을 그대로 인용하며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본의 좌파로서 의무를 다한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잔혹한 전쟁을 조장한다! 반면 이란의 파업 노동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전단을 뿌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공항 직원들도 전쟁에 항의하며 ‘인도적 지원’이라는 명목으로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무기를 싣는 것을 거부했다. 하지만 단순히 전쟁에 반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속임수로 이전의 위기를 극복했지만, 장기전을 선택하는 상황에 다시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는 축적의 순환이 거의 끝나가고 있음을 보고 있다. 위기에 대한 다른 해결책을 찾지 못한다면,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은 전쟁뿐이다.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자연스러운 결과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계속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를 야만으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 운동 대신에, 모든 나라 노동계급은 이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하며, 자본주의를 완전히 폐지하고, 화폐와 사유재산과 노동 분업이 없는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다시, 터키에서 노동자들은 파업을 사회주의 학교로 전환하고 반전 입장을 취해야 하며, 이탈리아처럼 전쟁의 지지에 반대하며 제국주의자들의 바퀴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

 

오랫동안,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한 자본주의는 민족주의적 카드를 사용해 왔다. 전쟁이 확산하면서 계급 분열을 위한 방편으로 민족주의가 점점 더 자주 제시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선택, 즉 ‘국가인가 계급인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맑스가 「코뮤니스트 선언」에서 밝혔듯이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노동계급은 조국이 없지만, 조직할 힘이 있다. 이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우리 계급의 힘이다. 전쟁 희생자가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국제적 투쟁을 확대해야 하고, 우리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자본주의 게임을 파괴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다가올 더 큰 전쟁 위협에 대한 우리 대답이다. 우리 목표는 노동계급과 현재 투쟁에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우리 혁명가들은 이 전쟁에서 어느 편도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민주주의라는 거짓말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이 전쟁에 대응하여 우리는 노동계급 이익을 방어하고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위기와 그에 따른 전쟁과 비참함에 계급투쟁으로 대응할 것이다. 우리에겐 쟁취해야 할 세상이 있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터키

 

 

 photo_2021-01-11_19-56-15.jpg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글래스고 회의

 

아래 글은 2022년 5월 7일 Red and Black Clydeside Bookfair에서 열린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회의 소개를 기반으로 작성되었다.

 

국제주의와 우크라이나 전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제국주의 관계의 결정적 전환이지만, 대부분 사람은 이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전쟁은 맑고 푸른 하늘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반세기 동안 쌓인 모순의 결과이다.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설명을 시작하려 한다. 1970년대 전후 호황이 끝난 후 세계 자본주의 체제는 자본 축적을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해 왔다. 이를 통해 경기 침체를 관리할 수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궁극적으로 그 체제는 새로운 축적 주기를 시작하기 위해 기존 자본을 평가절하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그리고 지난 세기 이전의 위기는 자본의 많은 부분을 파괴한 세계적인 전쟁에 의해서만 극복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축적 주기의 쇠퇴는 19세기보다 해결하는 데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전후 호황이 끝났을 때 자본가들의 첫 번째 속임수는 인플레이션을 통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는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 걸쳐 계속되었다.(그리고 다시 한번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돌아오고 있다.) 그것이 강한 저항에 부딪히자, 자본가들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위해 서구 자본을 축소하는 생산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값싼 중국 상품은 1979년 이래로 계속됐던 선진 자본주의 국가 노동자들에게 실질 임금 하락에 대한 부분적인 보상을 해주었다. 그 후 물론 여러 국가, 특히 미국과 영국은 금융권이 모든 종류의 활동에 대한 투기를 할 수 있도록 모든 은행 규제를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7-8년에 터진 거대한 투기 거품을 초래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으로 생산 이전은 공급망이 길어지고 에너지 소비가 증가하여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현재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에서는 낙타조차 생존할 수 없을 만큼 길고 전례가 없는 가뭄으로 2천만 명이 기아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제 위기의 최종적인 결과는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패권에 대한 위협이다.

 

미국의 패권과 서구의 오만

 

미국의 힘의 열쇠는 군사비 지출뿐만이 아니라, 세계 무역에서 달러의 지배력 때문이다. 모든 거래 80%가 달러를 사용하며, 미국 은행 시스템은 많은 국가가 달러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아프가니스탄 국고를 탈레반에 풀어주지 않음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을 굶주릴 수 있게 하며,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위협으로 간주하는 탈레반의 모든 행동에 대한 제재를 가할 수 있게 한다. 이는 또한 유럽 회사들이 그들의 노선을 따르도록 강요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현재 분쟁의 주요 원인이 되었다.

 

냉전이 소련의 붕괴로 끝났을 때, 미국 경제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하룻밤 사이에 서구 자유 시장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경제와 루블화 붕괴로 이어졌고, 적절한 연줄을 가진 사람들이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이는 러시아에서 과두정치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나토의 강대국들은 클린턴과 다른 대통령들의 집권 시에 여러 차례 나토를 러시아 국경까지 확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향해 그들의 영역을 확장했다. 그것은 결국 서구 ‘민주주의’(제국주의라고 읽음)의 ‘역사적 종말’이었다.

 

2004년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서방이 오렌지 혁명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로 승리한 친러시아 성향의 야누코비치(Yanukovich)가 축출되었다. CIA와 미국 공화당의 지원을 받은 조직들의 도움으로, 유셴코(Yuschenko)가 이끄는 친서방 정권이 키이우(Kiev)에 설치되었다. 하지만 여기서 러시아와 차이점이 생겼다. 푸틴이 그의 과두정치를 길들이는 동안, 우크라이나 과두정치는 모두 권력의 경쟁자였다. 그들은 누가 국가의 전리품을 통제해야 하는지를 논쟁을 벌였고, 이번에는 공정한 선거에서 야누코비치가 2010년에 재선될 수 있도록 했다. 그는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014년 유럽연합 합의를 어기면서 친서방파들(그들의 우방인 미국 등의 도움으로)이 마이단(Maidan)을 조직했다. 잔혹한 탄압을 시도하자 민주적으로 선출된 야누코비치는 도망쳤고,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세력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크림반도(1954년 흐루시쵸프 명령에 따라 우크라이나에 주어졌는데, 푸틴 대통령은 항상 불법이라고 주장했다)를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탈환했다. 푸틴과 그의 실로비키(siloviki)는 2008년까지 조심스러웠지만, 남오세티야에서 조지아(또 하나의 나토 가입의 잠정적인 후보)를 격파하고, 시리아에서 아사드와 러시아의 지중해 마지막 온수 항을 구한 후, 러시아인들은 최소한 자신들의 국경에서 더 강해졌다고 느꼈다. 카불에서 나토의 불명예스러운 후퇴는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약점이 있다고 러시아가 생각하도록 부추겼을 뿐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균형에 실제로 영향을 준 것은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군사 원조의 양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가 이 중 일부를 돈바스에 배치했을 때, 8년 동안 계속된 전투로 14,000명이 목숨을 잃었고, 힘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중립 선언하지 않으면 전면적인 침략을 하겠다고 위협했다. 허풍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침략을 위한 실질적인 준비 부족은 러시아군 활약으로 확인되었는데, 나토가 제공한 무기로 재편성된 우크라이나군을 물리치기 어려울 것으로 예측했다. 그 대신 러시아군은 이미 2만 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고, 조지아와 알레포에서 사용된 전술과 같은 방법으로 도시 민간인 지역을 파괴했다. 이것이 바로 현대 제국주의 전쟁이다.

 

전쟁에 대한 국제주의자들의 반응

 

우크라이나 전쟁의 공포는 많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코뮤니스트좌파의 모든 조직은 우크라이나의 주요 희생자인 노동자들을 방어하기 위해 분명하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하고 있고, 아나키스트들은 지역 민병대가 국가로부터 독립했다는 환상 아래 우크라이나의 방어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트로츠키주의자, 스탈린주의자, 마오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계속 주장하거나, 여전히 어느 한쪽을 지지하기 위해 "덜 나쁜 악"을 주장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제3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초기 단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쟁 전에 협상 타결이 불가능했다는 것은 빠른 협상 타결이 현재 의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전쟁은 계속될 것이다.

 

거의 20년 전에 푸틴은 소련의 붕괴를 지난 세기의 가장 큰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불렀다. 그는 왜 그들이 싸우지 않고 제국주의적 입장을 포기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푸틴은 똑같은 압력에 직면해 있지만, 러시아가 싸우지 않고 무너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침공 초기에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그의 위협은 한가한 것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이제 완전히 유라시아 블록으로 내몰리고 있고, 두 나라 모두 미국의 경제적 공격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의 GDP가 이탈리아보다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취약성을 잘 알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미국에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전에는 군비 지출을 늘리는 것을 꺼렸던 나토 회원국들이 이제는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가 무장된 두 개 진영으로 나뉘고 있다는 것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중국,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어떤 종류의 해결로 끝난다고 하더라도(점점 그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그것은 단지 제국주의 학살의 다음 장을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세계 자본주의 위기는 사라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려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어떤 행동가도 움직일 여지가 많지 않다. 현재 나토는 핀란드와 스웨덴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하여 나토 가입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트러스(Truss)나 엘우드(Ellwood) 같은 호전적인 영국 정치인들은 러시아 패배와 크림반도에서 철수를 요구하고 있다.

 

전 세계 노동자들은 생활 수준이 낮아지거나, 전 세계에서 인플레이션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거나, 자본가 이익을 위해 싸우고 죽어 가면서 주요 희생자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이나 다른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오늘날 모든 전쟁은 제국주의 산물이다. 그러나 우리의 요구는 평화주의자의 요구가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은 노동자에 대한 계급전쟁의 한 형태이다.

 

이는 모든 노동자에 대한 다면적인 전쟁이며 인류의 미래를 위협한다. 하지만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 우리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자본주의, 즉 사유재산, 임금노동, 화폐와 국가의 존재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생산 체제가 문제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우리는 이윤이 아닌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 국가와 국경은 사라지고, 노동계급에 의해 만들어진 독립적인 기관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들을 집단으로 다룰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어느 한 집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더 넓은 노동계급 안에서 활동하려고 시도하지 않는 그룹도 확실히 아니다. 이것이 우리가 모든 곳의 혁명가들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만들도록 촉구한 이유이다.

 

우리의 첫 번째 임무 중 하나는 지금까지 흩어져 있는 반전 행동을 모아서 알려내는 것이다. 러시아 시위, 우크라이나에서 명령에 불복종하는 군인, 영국과 이탈리아 선원들의 선적 처리 거부, 벨로루시 철도 노동자들에 의한 전쟁물자 수송 방해 - 이러한 행동은 진정한 반전이 되기 위해 노동계급의 관점을 취할 필요가 있다. 이 분쟁에서 러시아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은 전쟁에 대해서 지원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악몽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어 친목을 도모하고 전쟁 기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민족주의 선전을 믿지 말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또 다른 전쟁의 물결에 압도되기 전에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국제주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을 목표로 조직해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에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NWBCW) 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국제주의자들과 협력하고 있다. 우리가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 즉 프롤레타리아트에 죽음과 비참함만을 가져다주는 자본주의 체제를 종식하는 계급전쟁을 위해서 투쟁하자.

 

코뮤니스트노동자조직(CWO)

 

 

<주>

 

1.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 소개

http://www.leftcom.org/en/about-us

 

2.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소개

http://communistleft.jinbo.net/xe/index.php?mid=cl_bd_01&document_srl=337012

 

3. 전쟁에 맞선 크라스-국제노동자협회(KRAS-IWA) 성명

https://www.iwa-ait.org/content/kras-iwa-against-war

 

4. 「Třídní Válka」 소개

https://www.autistici.org/tridnivalka/

 

5. NWBCW Liverpool 소개

https://nwbcwliverpool.wordpress.com/

 

6. NWBCW 터키의 성명서(영문)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5-03/no-war-but-the-class-war-statement-from-nwbcw-turkey

 

2022년 6월 30일 

정리 ㅣ 이형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