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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1년,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1년,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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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되었다. 전쟁은 대규모 파괴와 학살의 확대라는 야만으로 고착되며 장기화하고 있다. 지난 1년 동안 양국의 사상자 수는 수십만 명에 이르고, 민간인 사상자도 2만 명에 육박했다. 이번 전쟁은 특히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최대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우크라이나 인구의 1/3인 1,300만 명이 피난길에 올랐고, 그중 800만 명이 해외로 떠났다. 전쟁은 막대한 인명피해만이 아니라 영토의 황폐화와 생태계 파괴 등 환경 피해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유럽 분쟁이며, 전쟁의 본질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 전략적 입지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전 세계에서 수십 년 동안 계속된 대리전쟁 끝에 나왔다. 이 전쟁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핵무기 사용을 위협한 핵 강대국 러시아가 직접 참전하고 유럽의 중심부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나라 국민의 재앙을 넘어 제국주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결과 전 세계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푸틴은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과 긴밀한 동맹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한편으로 미국과 외교 군사적으로 오랜 적(敵)인 이란과도 가까워졌다. 미국과 다른 나토 국가들은 젤렌스키 정부에 무기와 훈련을 공급하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나토 가입을 결정했고,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발트 3국에는 서방의 군대가 전진 배치됐다. 미국은 독일과 같은 일부 동맹국을 자국의 외교 정책에 더 부합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독일은 “시대 전환”을 공표하며 전후 70여 년 동안 자제했던 “군사력 강화”라는 길로 접어들며 미국,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국방비를 쏟아 붓는 나라로 바뀌고 있다. 일본도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군비 지출을 늘리고 있고, 특히 중국의 군사 공격을 배제할 수 없는 대만에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대규모 파괴, 기존 자본의 평가절하, 수천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전쟁과 분쟁은 거의 끊임없이 일어났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가난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본주의 이윤을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황폐해지고, 전쟁 중인 군사 기구에 의해 위협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이 전쟁들은 몇몇 광적인 지도자들이 만든 결과도 아니라 자본주의의 정상적인 작동 결과였다. 이 체제는 이윤율 저하와 치열한 경쟁으로 이어지는 내부 모순으로 전쟁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제 위기, 기후 위기, 팬데믹에 이어 전쟁이라는 거대한 재앙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이미 전 세계를 휩쓴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군사비 지출 증가로 인한 경제 위기는 새로운 무역 전쟁으로 이어졌고, 세계 생산과 무역의 분열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며 새로운 공급 부족을 일으켰다.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생활 수준이 급격하게 하락하거나 심각한 생계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 위기는 수십 년 동안 전체 자본주의 체제를 괴롭혀 왔고, 전쟁 파괴를 통한 자본 가치의 대규모 평가 절하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낮은 이윤율의 더 깊고 해결할 수 없는 위기이다. 물론, 지배계급은 그들의 자본을 평가절하하기 위해 전쟁에 나서지 않는다. 그들은 적의 자본을 파괴하고, 원자재에 접근하고, 이윤율을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위치와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전쟁에 나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승전국에서도 자본의 일반적인 평가절하를 초래한다. 그래서 오늘날 노동계급의 진정한 선택은 "자본주의 생산체제의 전복이냐, 죽음과 폐허의 전쟁이냐"이다.

 

세계 지배계급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희생을 노동계급에 강요하고 있다. 그들이 부과하는 희생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전쟁에서 어느 쪽도 지지해서는 안 된다. 양쪽 모두는 노동자 착취를 통제하기 위해 경쟁하고 싸우는 지배계급이기 때문이다. 푸틴의 “반(反)파시스트 십자군”이나 젤렌스키의 “민주주의 수호”는 노동자가 피 흘리며 싸울 가치가 전혀 없는 지배계급을 위한 전쟁이다. 노동계급이 싸울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착취자들에 대한 전쟁, 우리의 생존과 생활 수준에 대한 일상적인 공격에 대한 전쟁인 “계급전쟁”뿐이다. 노동계급이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시도는 사유재산, 임금노동, 화폐와 국가의 존재로 특징지어지는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더 넓은 운동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우리는 소수를 위한 이윤이 아닌 모두의 필요에 따라 생산이 이루어지는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제기해야 한다. 국가와 국경은 사라지고, 생산이 협력적이며, 노동계급이 만든 독립적인 기관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집단으로 다룰 수 있는 세계 공동체를 건설해야 한다.

 

노동계급이 이 전쟁을 끝낼 방법은 전선과 국경을 넘어 계급적이고 우호적으로 연대하여 전쟁 기계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임금과 생활수준 하락에 저항하고, 전선 양쪽에서 야만적 학살에 연루된 모든 자본가 정부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행동을 지지하고 방어하면서 국제적으로 계급투쟁을 확산해야 한다. 오늘날 노동계급은 전쟁의 원인인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전쟁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국가와 지배 이데올로기에 묶여 분열되고 세력이 약해져 있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한쪽을 지지하거나, 전쟁을 계급전쟁으로 전환할 것을 거부하는 세력 또한, 노동계급을 자본주의 체제에 더욱 단단히 묶어두는 역할을 해왔다.

 

반면,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서로 간에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일관되게 이 전쟁이 제국주의적이며, 자본의 이익에만 봉사하는 전쟁이라며 반대했다. 코뮤니스트좌파와 지지자들은 모두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것을 전제로 성명을 발표하고 국제 행동을 벌여왔다. 이렇게 제국주의 분쟁에서 어느 편도 들지 않는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코뮤니스트좌파가 20세기 초부터 방어해 온 입장의 초석이자 오늘날 그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모든 단체의 기본이기도 하다.

 

지금은 비록 세계 노동계급의 투쟁이 방어적이고 국제적 계급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투쟁의 물결이 세계적 규모로 확장되고 있고, 생계비 투쟁 등 계급영역 기본투쟁으로 진전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영국에서 계속되는 파업 물결, 프랑스의 대규모 시위, 미국과 유럽의 여러 부문에서 일어난 파업, 이란의 노동자 투쟁 등 모든 움직임은 노동계급이 자신감을 되찾고 장기적으로 잃어버린 계급 정체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그동안 코뮤니스트좌파 진영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단기적인 대응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망으로 노동계급 투쟁의 독립성을 촉진하고 옹호하며, 세계 노동계급의 근본적인 문제를 위해 대응해 왔다. 지배계급의 자본주의 위기 전가와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에 직면하여 계급의 당면한 요구를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와 연결하고, 일회적인 반격이 아니라 체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계급전쟁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원칙으로 투쟁한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전쟁에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제국주의 국가의 어떠한 "덜 나쁜 악"도 지지하지 않는다.

● 지배계급 간의 평화협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전복을 향한 국제적인 계급투쟁만이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다.

● 현재의 전쟁과 앞으로의 전쟁이 노동계급에 가할 경제적, 정치적 공격에 맞서기 위해 계급전쟁을 전면화해야 한다.

● 계급전쟁은 노동계급의 자기 조직화한 투쟁, 즉 독립적인 파업위원회, 대중 집회, 노동자 평의회 건설을 통해 확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

● 우리는 모든 착취와 억압, 차별이 근본적으로 철폐된 사회! 생산수단이 더는 자본가나 국가의 손에 있지 않고 사회화된 사회!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 세상을 위해 투쟁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1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노동자에게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위원회를 결성하여 제국주의 전쟁을 멈추게 할 국제적인 계급투쟁에 나설 것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는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과 모든 전쟁에 대한 노동계급의 대답이며, 우리의 목표는 쇠퇴하는 자본주의 체제를 혁명적으로 전복하고 유혈 낭자한 제국주의 전쟁을 영원히 끝장내기 위한 세계 노동계급의 정치적 저항을 구축하는 것이다.

 

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으로!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2023년 2월 24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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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미국 대법원의 노동계급 여성에 대한 공격 :

오직 노동계급의 투쟁만이 여성의 출산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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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의 번복은 노동하는 여성의 출산 자유에 대한 자본주의 계급전쟁의 가장 최근의 공격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미국 자본가계급이 점점 더 여성 노동자를 착취할 새로운 노동자를 만들고, 필요하다면 제국주의 경쟁자들에게 던져줄 새로운 총알받이로 보는 세계적인 전쟁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노동계급 여성을 억압받는 임금 노예의 상태로 더욱 종속시키기 위해 이른바 '전통적인' 가치를 다시 도입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지배계급 자유주의자들은 이 판결을 모든 여성에 대한 공격으로 묘사하려 하지만, 이는 부르주아 여성이 아니라 노동계급 여성에게 주로 영향을 미친다. 매우 반동적인 임신 중지 반대법이 있는 국가에서도 부르주아 여성은 여전히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가서 임신 중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적은 임금으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휘발유와 식료품 같은 기본적인 상품의 가격 상승으로 억압받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그것은 익명의 유출자 덕분에 대법원이 로(Roe) 판결을 언제 번복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한 일이 발생한 후 거의 두 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평소와 같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가짜 연대의 트위터를 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은 로(Roe) 판결이 번복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는 현재 11월의 선거에서 노동자의 투표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슈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단 민주당에 투표하면,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평범한 게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민주당은 출산의 자유를 위한 여성 노동자의 투쟁에 실제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지 노동자 여성들을 목 졸라 죽이는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하고, 이러한 문제들을 이용하여 권력을 장악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우리는 여성 노동자와 모든 노동자의 분노가 민주당과 협동하는 기계로 다시 유입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우리는 그들이 2020년에 경찰의 인종차별적인 조지 플로이드 살해 사건을 저질렀던 일을 지금 그들이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우리의 투쟁은 공화당이나 정부의 어느 한 부처에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투쟁은 지배계급의 모든 정당, 전 세계 프롤레타리아 여성들의 착취당하는 노동과 억압된 삶 덕분에 사는 이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모든 정당에 대항하는 것이다! 우리의 세계적인 계급인 남성, 여성, 그리고 모든 성별과 성적 정체성을 가진 프롤레타리아는 프롤레타리아 여성의 삶과 노동에 기생하는 자들에 대항하여 조직적이고 원칙적인 투쟁을 해야 한다!

 

투표함이 아닌 직장과 거리에서 투쟁하자! 성차별적 자본주의 체제가 그들에게 가장 큰 타격을 주는 곳, 그들의 이윤을 타격하자! 착취당하고 무급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없다면, 이 체제는 중단될 것이다!

 

단순히 체제를 중단시키는 것 이상으로, 우리는 그것을 전복해야 하며, 모든 노동자가 여성 노동자 억압의 악몽을 끝내기 위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 오직 자본주의를 전복한 세계에서만 여성 노동자가 모든 것의 가장 기본적인 자유, 즉 자기 몸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 모든 성별의 노동계급은 지배계급에 맞서 함께 투쟁해야 하며, 스스로 권력을 장악하고 자본주의 국가를 전 세계적으로 전복할 목적으로 투쟁에 나서야 한다. 전체 계급을 혁명적으로 이끌고 안내하기 위한 국제 혁명조직을 건설하는 것은 계급의식을 가진 노동자들에 달려 있다.

 

국제주의노동자그룹(Internationalist Workers' Group)은 노동계급의 미래 정당을 건설하고 세계 노동자평의회 체제를 위한 자본주의 전복에 헌신하는 혁명적 노동계급 정치조직인 국제주의코뮤니스트경향(ICT)의 미국 지부이다.

 

2022년 6월 25일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

 

이 글은 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국제주의노동자그룹(IWG)과 지지자들이 시위 중에 배포한 전단이다.

 

 

<출처>

https://www.leftcom.org/en/articles/2022-06-25/scotus-attacks-working-class-women-only-a-struggle-by-our-class-can-sec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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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방비 폭탄 -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난방비 폭탄 -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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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에너지 파동은 자본 축적 위기의 또 다른 모습

 

북극권의 초강력 한파에 이은 난방비 폭탄이 북반구의 겨울을 덮쳤다. 환경위기, 기후위기의 도미노는 물가상승과 맞물려 에너지 가격 폭등을 더욱더 부추기고 있다. 에너지 가격 폭등 원인으로 지목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기보다는 자본 위기의 산물이었다. 그런데도 세계 지배계급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산업 적자라는 명분으로 가격 폭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윤석열 정권 역시 이번 기회를 통해 공공요금 인상을 예외 없이 진행하고 있다.

 

난방비 폭등에 책임 있는 정부와 부르주아 정치권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책임회피를 위한 네 탓 공방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이는 지배계급이 에너지 자원과 환경/기후위기에 대한 원인진단과 대책을 내놓을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지배계급은 오로지 생존과 축적에만 관심을 둔다. 2000년대 이후 지속된 세계 경제 대공황을 대자본은 오히려 집적과 집중의 기회로 이용했고, 노동계급에는 노동강도 강화,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임금 감소, 생계비 위기의 고통을 떠넘겼다. 따라서 자본 축적 위기를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과 착취로 해결하려는 지배계급에 에너지 자원에 대한 근본 대책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전 세계적인 환경/기후 위기는 자본 축적 위기의 또 다른 모습으로 인플레이션, 실질임금 하락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의 단적인 사례가 난방비 폭등이다. 난방비 폭등으로 드러난 국내 LNG 직도입 자본(GS에너지, SK E&S, 포스코에너지, 한화에너지, 발전사 등)은 천문학적인 영업 이익과 당기 순이익을 올렸지만, 노동계급은 삼중의 고통 속에서 추운 겨울을 버틸 수밖에 없었다.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

 

앞서 말했듯이 난방비 폭등은 노동계급에는 재앙이지만, 자본에는 이윤 창출 기회이기도 하다. 에너지 자원의 폭등 현상은 환경/기후위기가 일반화된 자본주의 쇠퇴기에 언제든 나타난다.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지배계급은 이러한 자본 축적의 지속적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고,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향해 계급전쟁을 선포하며 선제공격을 하고 있다.

 

에너지 위기에 맞닥뜨린 지배계급은 얄팍한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면서도 본질에서는 자본 축적의 기회를 창출하고 보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윤석열 정권의 에너지 빈곤 가구에 에너지 바우처 지원 확대와 민주당의 횡재세 논의 모두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생색내기 처방이다. 특히 윤석열 정권은 에너지 위기가 핵발전에 대한 저투자에서 기인한다며, 핵발전 확대안을 제시했다. 이것은 기후위기와 에너지 자원에 대한 자본의 시각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이다.

 

이처럼 지배계급은 자본주의 이윤 추구 체제에서 비롯된 환경/기후위기 상황에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면서도 위기를 이윤 창출 기회로 활용하는 데에만 몰두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자본축적과정이 위기라는 점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작용하는 자본구성의 고도화와 평균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는 자본 축적 과정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그 결과 에너지 대란에서 나타나듯 이윤을 위한 자본주의 생산과 사회의 기본적 필요를 만족시키는 생산의 근본적 필요성 사이의 모순은 더욱 격렬해진다.

 

앞으로도 빈번하게 발생할 에너지 대란에서 이윤이 목적인 생산체제에서 국가와 자본에 대책을 요구한다고 해결책이 나올 리는 없다. 그것은 오직 자본 운동을 정지시키고 파괴해야 가능하다. 에너지 가격통제와 에너지산업 국유화, 공공주도의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또한 근본적 대안이 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공공주도는 자본 주도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려는 목표가 아닌 체제 내에서의 국유화와 가격통제는 철저하게 자본주의 방식으로 작동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착취 체제를 전복하지 않고서는 환경/기후위기, 에너지 대란과 노동자 희생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생산과 분배가 인류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코뮤니즘만이 인류와 지구를 구할 수 있다.

 

노동자 희생을 거부하고 계급전쟁으로

 

대공황, 팬데믹, 제국주의 전쟁, 기후위기 속에서 자본 축적의 위기를 노동계급에 전가하면서 노동자들은 난방비 폭등과 물가 폭등으로 실질임금 감소와 생계비 위기의 고통을 겪고 있다. 윤석열 정권은 대자본에 대한 세금은 인하해주면서 복지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예산은 삭감했다. 자본가 정권은 노동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본 위기에 대한 비용을 치르기를 거부할 때마다 노동자에 대한 공격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잉여노동을 착취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자본이 더 많은 잉여노동을 착취하기 위한 경쟁으로 전쟁, 환경 파괴와 기후위기를 일으키면서도 모든 위기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려 공격에 나서는 것이다. 지배계급이 계급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이제 노동계급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본주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 원인인 자본주의 자체를 넘어서기 위해 계급을 조직하고 싸워야 한다. 현재의 모든 위기는 자본이 초래한 위기이기 때문에 노동계급에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국가를 넘어 노동계급의 국제연대로, 이윤을 위한 생산이 아닌 사회적 필요에 의한 생산을 건설해야 한다.

 

난방비 폭탄, 물가 폭등, 실질 임금감소, 생계비 위기, 복지 축소, 노동강도 강화, 노동자 운동 공격... 이 모든 것을 계급전쟁이라고 부르자! 이제 노동계급이 이 전쟁에서 반격할 때이다. 노동계급은 부르주아 정치와 선거에 의지하지 말고 독립적 조직인 파업위원회, 대중집회, 노동자평의회를 구성해 반격해야 한다.

 

난방비 폭탄: 자본주의가 원인이다!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서 생존권 투쟁 전면화!

노동자 희생이 아닌 자본가계급과의 계급전쟁으로!

 

2023년 2월 14일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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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시리아 지진] 재앙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 오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재앙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 오직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연대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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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우리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에 대한 튀르키예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 동지들의 성명서를 소개한다. 끔찍한 재앙 앞에서 신속하게 대응하고, 이 "자연적" 재앙의 본질과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와 투쟁을 호소한 동지들에 경의를 표한다.

 

 

지난 2월 6일 카흐라만 마라슈(Maraş)에서 발생해 이웃 지방과 시리아를 강타한 지진의 파괴적인 영향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미 언론은 만 명 이상의 사람이 잔해 아래에서 사망했고, 수만 명이 부상했고, 만 채 이상의 건물이 파괴되었다고 발표했다. 지난 이틀 사이에 일부 도시와의 통신이 끊겼다. 도로, 다리, 공항이 파괴되었고, 이스켄데룬(Iskenderun) 항구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지역에서 전기, 수도, 천연가스 연결이 끊겼다. 지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현재 혹독한 겨울 환경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고 있다. 튀르키예의 군사 점령하에 있는 시리아의 지진 지역에서도 매우 심각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연달아 발생한 두 차례의 대지진은 확실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지배계급과 그 정당들의 주장과는 달리 지진으로 인한 파괴가 정상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야당과 집권 자본가정당 모두의 "국민 통합"에 대한 역겨운 요구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길 수 없다. 자본주의와 국가가 이 파괴의 주범이다.

 

1.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계급으로서 지진 지역에서 집을 잃고, 부상당하고, 친척을 잃은 사람들과 행동으로 모든 종류의 연대를 보여줄 것을 알고 있다. 수백 명의 광산 노동자들이 이미 지진 지역에서 수색 및 구조 활동에 자원하여 참여했다. 이미 전 세계에서 생존자들을 돕기 위해 노동자들과 수색 구조대가 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가장 큰 무기 중 하나인 이 연대는 필수적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서로를 제외하고는 믿을 사람이 없다. 우리는 지배계급과 국가로부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계급적 단결을 통해서만 해방을 기대할 수 있다.

 

2. 튀르키예의 과거 지진 경험은 자본의 사회적 재생산을 목표로 발전한 도시화의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영향의 증거이다. 지진 부적합 건설, 사람들이 지진 지역의 다층 건물과 인구 밀집 도시에 밀려드는 유일한 이유는 수도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20년 전(마르마라 지역)에 발생한 괴뢰크(Gölcük) 지진과 뒤체(Düzce) 지진 이후, 이번 지진은 국가가 취한 모든 '조치'의 미흡과 지배계급이 흘린 악어의 눈물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이 지진과 그 영향은 이미 국가의 존재 이유가 빈곤층과 프롤레타리아 인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임을 고통스럽게 증명하고 있다.

 

3.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왜 재난이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자체 생산 인프라를 파괴하는 데도 영구적이고 견고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않는 것일까? 자본주의하에서 건물, 도로, 댐, 항만, 요컨대 인프라 투자는 일반적으로 영속성이나 인간의 필요를 염두에 두고 건설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인프라 투자는 국가가 하든 민간 기업이 하든 수익성과 임금노동 체제의 지속을 목표로 구축된다. 밀집된 인구는 살기 힘든 도시로 몰려든다. 지진이 없더라도 기껏해야 100년을 버틸 수 있는 건강에 해로운 콘크리트 건물들이 도시와 농촌을 가득 채운다. 지난 40년 동안의 끔찍한 자본주의 도시화는 튀르키예 전역의 도시와 마을까지도 그러한 콘크리트 무덤으로 만들었다. 잉여가치 생산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는 가능한 한 많은 살아있는 노동력, 즉 프롤레타리아트를 고용하고 고정 자본 투자, 즉 인프라를 최소한으로 유지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건설은 지속적인 활동이며, 건물의 영속성, 환경과의 조화, 인간의 필요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무시된다. 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약한 자본주의뿐만 아니라 선진 서구 자본주의의 규칙이다. 자본과 국가의 유일한 사회적 목표는 계속 증가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를 영구화하는 것이다.

 

4. 자본주의 질서는 자신의 착취 질서를 재생산할 수 있는 해결책조차 내놓을 처지가 못 된다. "자연" 재해 앞에서 자본은 무모할 뿐만 아니라 무기력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국가의 통제하에 있는 구호 조직들의 조정 부족과 긴급 구호 분배에 대한 국가의 무능력에서도 이러한 무력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쇠퇴하는 자본주의의 영향이 더 깊은 튀르키예와 같은 나라뿐만 아니라 2년 전 홍수 앞에서 무력했던 독일이나 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하여 홍수로 도로와 다리가 무너진 미국과 같은 자본주의 중심 국가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5. 부르주아 야당의 일부 분파가 국가가 지진 피해자를 "돕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은 국가의 본질에 대한 기만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국가는 구호 기관이 아니다. 국가는 소수 착취 계급의 집단적 폭력 기구이다. 국가는 자본의 이익을 보호한다. 확실히, 재난 지역에서의 혼란의 통치는 지배계급의 약점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본 자체의 재생산을 방해하기 때문에, 국가는 최소한의 "지원"을 조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최소한의 지원조차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다. 재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무엇이든, 그 주요 기능은 프롤레타리아트를 통제하고 국가 자본의 이익을 위해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경쟁하는 것이다. 국가는 자본 축적을 돕는 이념적, 물리적인 기계이며, 노동자들을 치명적인 콘크리트 관(棺)집으로 밀어 넣고, 재난 앞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는 상황의 수호자이다.

 

6. 우리가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하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받은 감염병, 기근, 전쟁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지진이 발생하기 전에 그 순간을 예측할 수는 없지만, 지진 단층선과 가능한 규모는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이 모든 재앙에 책임이 있는 주체는 자본주의와 민족국가, 즉 잉여가치와 임금노동의 착취를 중심으로 사회를 조직하고 군국주의-민족주의 경쟁을 심화시키며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기존의 지배계급 전체이다. 자본주의가 계속 지배하고, 인류가 민족국가와 계급으로 계속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재앙은 계속 일어날 것이며, 점점 더 치명적이고 파괴적이며 빈번해질 것이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고갈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징후이다. 전 세계적으로 지배계급은 인류를 전쟁, 끔찍하고 살기 힘든 도시, 기아와 기근, 거대한 세계 기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마라슈와 그 주변에서 발생한 지진은 지배계급이 인류에게 제공할 긍정적인 미래가 없다는 마지막 구체적이고 고통스러운 증거이다. 그러나 이것이 비관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번 지진에서 우리 계급이 보여주고 앞으로 보여줄 연대는 우리에게 희망을 주어야 한다. 재앙이 참혹한 것은 해결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아직 세상을 바꾸고 자본의 재앙으로부터 인류를 구할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인류와 지구의 자원은 우리를 재난으로부터 보호할 영구적이고 안전한 주거지와 정착지를 건설하기에 충분하다. 이를 향한 길은 해방을 위해 세계의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자신감을 키워 부패한 자본가계급으로부터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세계적인 투쟁에 참여할 때 열릴 것이다.

 

2023년 2월 8일

튀르키예의 국제주의 코뮤니스트 그룹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310/name-disaster-capitalism-only-proletarian-class-solidarity-can-sav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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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운동가 윤웅태 동지 7주기 추모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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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해방운동가 윤웅태 동지 7주기 추모제

 
● 박일수 열사 19주기 추모제와 합동으로 진행
● 일시|2023년 2월 11일(토) 오전 11시
● 장소|솥발산열사묘역(하북면 삼덕로 288)
● 이동편|운영위원들이 차량을 운행할 예정이므로 동승 가능합니다.
● 문의|010-5135-7957
● 참가신청| bit.ly/윤웅태7주기
 
직접 참가 못하셔도 위 링크에서 윤웅태 동지를 기억하는 메시지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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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뮤니스트 16호]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국가 통합을 위해 봉사하는 자본주의의 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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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은 반동적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나 자유주의적인 가디언(Guardian)의 기사에서든, 가장 우파적인 토리당 정치인이나 가장 좌파적인 노동조합 지도자 입에서 나오든, 국가 통합의 '서비스'에서 '의무, 희생, 회복력'의 중요성을 거듭 반복하면서 부르주아지 전체가 선전의 광란으로 자신을 채찍질하는 신호였다. 캔터베리 대주교부터 지역 교구장에 이르기까지 영국 교회는 같은 곡조로 노래하고 있다. 대중의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사람, 지배계급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거나 그러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 즉 학자, 소설가, 역사가, 예술가, 배우, 스포츠맨, 신문 칼럼니스트들은 이 열흘간 긴 슬픔의 카니발에 그들 자신의 작은 공헌을 추가하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겉치레만큼 독립심이 강한 마음이 아니라 왕실의 제복을 입은 보병만큼이나 멍청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의 눈사태는 계급의식이 있는 노동자에게 유익한 교훈을 준다. 많은 부차적인 분열과 갈등에도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없는 국가 방위에 직면하여 지배계급과 국가기구의 모든 부분, 좌파와 우파, 자유주의자와 포퓰리스트, 왕당파와 노동조합주의자들이 하나로 뭉친다.

 

이 캠페인을 노동계급 타파를 위한 클럽으로 활용하는 것은 여왕 사망이 발표된 직후 현재 영국의 파업 물결에 관여하고 있는 3개의 노동조합인 RMT(철도), CWU(우편)과 TSSA(교통)가 국가 애도 기간 계획된 파업 활동을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한 직후에 강조되었다. RMT의 "급진적" 지도자인 믹 린치(Mick Lynch)는 “RMT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전국에서 동참한다. 9월 15일과 17일에 계획된 철도 파업은 중단한다. 우리는 그녀의 가족, 친구, 그리고 나라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의 총지도부인 TUC(노동조합 총연맹)는 파업을 조정하는 척하려던 회의를 10월이나 11월로 연기했다.

 

1914년 제국주의 전쟁터에서 노동자들을 모집하기 시작한 이래로 위기 시에 국가 통합에 대한 존중이 노동조합의 특징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계급투쟁의 '중단'도 결코 예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노동당은 항상 우파에서 좌파로 입헌군주에 충성을 맹세해왔다.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다른 좌파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야당인 노동당 전 좌파 지도자 제러미 코빈은 2017년 "군주제 폐지는 자신의 의제가 아니다"라고 선언했고, 며칠 전 여왕에 대한 공식적인 조공을 하는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나타났다.

 

부르주아지는 위기에서 이익을 얻을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며 찬송가와 설교, 행렬, 경례, 감동적인 조공 등으로 투쟁적 노동계급이 국익, 즉 이윤과 제국주의 전쟁을 위해 중요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을 주입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 사회가 기반을 두고 있는 계급 분열을 감추기 위해 이 캠페인을 사용하려고 하는 반면, 그것은 또한 영국 자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포퓰리즘 부상과 브렉시트 재앙으로 증폭된 제국주의적 입장의 깊은 균열 중 일부를 덮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에 대한 위협과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관계가 붕괴될 위기에 직면하여, 애도 주간의 침울한 의식은 여왕의 관이 에든버러(Edinburgh) 거리를 행진하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새로운 왕의 첫 번째 임무는 북아일랜드의 힐스버러(Hillsborough)성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계 부르주아지, 즉 영국과 치명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의 지배계급인 그들은 왜 이 애도의 가면을 쓰고 조기를 게양하는 가장무도회에 참가하는 것일까? 심지어 블라디미르 푸틴조차 애도를 표했다.

 

여왕은 영국의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계급의 적인 프롤레타리아와 맞서는 모든 부르주아지의 세계 자본주의 전반을 위해 국가의 연속성, 안정성, 지속성을 대표했다는 것이 그 답이다. 그녀와 영국 왕실은 모든 곳에서 부르주아지 질서의 인간적이고 친근한 겉모습이었으며, 식민지 잔학 행위, 제국주의 대학살, 파괴적인 경제 위기, 노동 대중의 착취와 빈곤화를 "국가 공동체"에 대한 단결과 봉사의 이름으로 모호하지만 조용히 정당화했다.

 

세계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는 시대에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는 근본적인 부르주아지 질서와 연속성의 존재로 상징되었는데, 이는 현재의 생산 방식이 어떻든 간에 계속 생존할 수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은 세계 자본주의 불안정성이 깊어지고, 모든 수준에서 재앙의 눈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상징한다.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봉건적 잔재

 

영국 혁명 당시 영국 부르주아지가 집권했을 때 절대왕정의 대표이자 옹호자였던 찰스 1세 국왕은 1649년 혁명적 의회 의원들에 의해 참수되었다. 그러나 상승기의 영국 부르주아지는 완전히 새로운 국가기구를 통해 그 통치가 유지되고 안정화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군주제는 귀족들의 오랜 외교적, 정치적, 군사적 경험과 함께 다시 가져와야 했지만, 이번에는 헌법에 따르는 부르주아지 의회에 복종하는 것으로 제한되었다.

 

만일 부르주아 국가가 자본주의 지배계급 이익을 위해 통치한다면 그것은 전체 국민의 대표자로 등장해야 하며, 현실에서처럼 비교적 최근에 폭력적인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항상 태초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가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사회가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경쟁 계급의 이익보다 높은 것으로 보여야 한다. 착취당하고 학살당한 사람들에게 착취자와 전쟁 숭배자는 그렇게 보여서는 안 되며, 궁극적으로는 당신과 나처럼 살과 피가 있고 인간의 감정을 가진 가족으로 보여야 한다[1]. 이러한 군주제와 같은 봉건 제도의 보존이 중요한 이유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정한 현금 지급"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임금 노예제는 착취당하는 사람들조차도 국가 가족의 일부라는 환상에 의해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입헌군주제는 3세기가 넘는 동안 이러한 가부장적 통합의 외관을 완성해 왔다. 그러나 세계 자본주의 모순은 겉모습조차 새로울 게 없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죽음에 대해 아첨하는 논객들은 그녀의 후계자들이 그녀의 통치에 대한 환상을 재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웨일즈의 왕자로서 항상 정치에 개입하는 경향이 있었던 새 왕은 부르주아지 특정 부분에서 인기가 있었던 적이 없기에 정치적 분열을 넘어 통합의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국가 통합의 축제는 제국주의 영국이 열렬한 선수인, 우크라이나의 자본주의 간 대학살이 모든 국방과 애국심에 대한 위선과 시대착오를 드러냈을 때 열리게 된다. 미래는 국익이 없는 계급, 국제적 계급, 즉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 달려 있다.

 

2022. 09. 15

코모(Como)

국제코뮤니스트흐름(ICC)

 

<주>

[1] 그러나 우리는 국가 통합의 자본주의 종교가 사상과 감정 조작에만 기반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빨랐다. 런던과 에든버러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군주제를 폐지하라" "나의 왕이 아니다." 등의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던 시위대 2명이 체포되었다. 거리 시위 가능성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2022년 경찰·범죄·양형 및 법원법이 체포를 정당화하기 위해 발동되었다.

 

<출처>

https://en.internationalism.org/content/17249/capitalist-propaganda-service-national-unity-workers-have-no-cou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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