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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2010/04/17

책들을 월요일까지 반납해야 하니 어서 정리를 마쳐야 하는데

으으... 귀찮다 -_- ;

<코끼리를 쏘다>를 가지고 긴 포스팅을 하고 나니 좀 질리나보다 ;;

아 술땡겨..블로그 말고 음주가 하고 싶어..ㅠㅠ

요즘 한창 열올리고 있는 신데렐라 언니에 나오는 참살이 탁주도 그렇고

블로그 메인에 진달래 띄운 탁배기 사진도 날 더욱 힘들게 한다..윽.

 

암튼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자전소설이라고 표지에 적혀있는데

뒷부분에 실린 서평에 보면 모든 것을 실제 있었던 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나온다...

그래서 자전 소설이라고 제목을 붙인걸까. 암튼 ..

말그대로 파리와 런던에서 밑바닥 생활을 했더 수기인데, 글을 쓰기 위해 일부러 그런 생활을 시작했다는 점은 명확하게 밝히지 않고 시작한다.

파리의 어느 여인숙의 아침 풍경 - 쌍욕이 오가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구경하는 사람들, 왁자한 소란, 지저분한 풍경 같은 것들로 글은 시작한다.

그리고 비슷한 풍경의 반복이다.

파리에서는 이 여인숙에서 저 여인숙으로, 영국에서는 이 구빈원에서 저 구빈원으로 정처없이 돌면서 옷을 저당잡히거나 허드렛 일을 하거나, 가끔은 구걸 비슷하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이야기들이다.

조지 오웰은 자기 이름을 숨기고 말투도 꾸며낸다. 물론 가끔은 신사 대접을 받기도 하지만 대체로는 부랑자들과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한다.

 

지저분하고 배를 곯기 일쑤이고, 일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실직 기간 때문에 몸과 마음이 무기력해져 한치 앞을 준비할 수 없는 사람들.. 조지 오웰 또한 불편한 잠을 자고 굶주리고 구걸하는 과정에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가 된다. 다만 그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해둘 따름이다. (실제로 집에 돈을 쌓아둔 부자도 아니고 타지에서 체험 글쓰기??를 하고 있으려면 진짜 돈이 없기도 했을 것이다;;)

 

파리에서 그는 영어 교습이 끊기자 접시 닦이 일을 시작하게 된다. 큰 호텔의 지하 주방에서 일하는 것과 빚쟁이 사장이 빚으로 만든 상류층을 겨냥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 두 가지가 나오는데

전쟁터나 다름없이 혼란스럽고 바쁘고 고된 일터에서 정신 없이 일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생활을 하는 것은 비슷하다. 그마저 일이 없으면 굶기 때문에 일을 하긴 하지만 한번도 일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가져볼 수는 없을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러다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일자리를 부탁하고 런던으로 넘어가는데 취직이 지연되면서 구빈원을 전전하게 된다. 파리에 있을 땐 영국을 그리워했지만 영국이라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재미가 없다'는 점에서 그는 다시 파리를 살짝 그리워하기도 한다.

 

그의 여정은 영국에서 정신 박약아를 돌보는 일에 취직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마지막 장의 그의 말이 많은 것들을 정리해서 이야기 해주는데, 사실 수기의 긴긴 내용 중 이런 식의 '논평'이나 느낌을 디테일하게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그저 묘사함에 그치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서 부랑자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그것도 그리 길지는 않다. 하지만 그간의 묘사된 내용들을 읽다보면 그의 이렇다 저렇다 논평이 없더라도 그와 비슷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내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난다. 변변찮은 이야기일 뿐이고 그저 여행 일기가 주는 흥밋거리쯤은 되었기를 바랄 따름이다. 혹시 무일푼이 되면 당신에게 이런 세계가 기다린다는 것 정도만은 말할 수 있겠다. 언젠가는 그 세계를 더 철저히 탐구하고 싶다. 우연한 만남이 아닌 허물없는 사이로서 마리오, 패디, 동냥아치 빌 같은 사람들을 알고 싶다. 접시닦이, 부랑인, 강변 둑길 노숙자의 영혼 속에는 정말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를 이해하고 싶다. 현재로서는 가난의 언저리까지밖에는 보지 못한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돈에 쪼들리면서 확실히 배워둔 한두 가지는 짚어낼 수 있다. 나는 두 번 다시 모든 부랑인이 불량배 주정꾼이라고 생각하지 않겠고, 내가 1페니를 주면 걸인이 고마워하리라 기대하지 않겠으며, 실직한 사람들이 기력이 없다고 해서 놀라지도 않겠고, 구세군에는 기부하지 않을 것이며, 옷가지를 전당 잡히지도 않겠으며, 광고 전단지를 거절하지도 않겠고, 고급 음식점의 식사를 즐기지도 않으련다. 이것이 시작이다.

 

영국의 법은 부랑자들이 한 구빈원에서 하루 이상을 머물 수 없게한다. 때문에 부랑자들은 계속 이동을 해야만 하고, 그들에게는 음식이 남아서 버릴지언정 마가린과 빵, 홍차 외에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 것이 방침이다. 연장이 없어서 목수일을 하지 못해 부랑자가 된 어떤 사람처럼 조금의 실질적인 도움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루하루 배급되는 빵과 홍차로만 살아가야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다.

교회나 구빈원에서 나누어주는 식권은 식당 주인이 액수만큼의 식사를 내놓지 않는 방법으로 일정 금액을 떼어먹고, 여인숙은 좁은 공간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을 수용함으로써 큰 돈을 번다.

구빈원이나 구세군 호스텔은 흡연이나 도박, 음주 등을 금지하는 (호텔에서는 먹히지도 않을) 규칙을 가지고 있고 교도소와 다를 바 없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전당포에서는 실제 물건의 값보다 터무니 없는 금액을 주고 물건을 받으며 그마저 불만을 표시하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더 가진 게 없어진다. 

모두가 천하게 여기는 부랑자들을 모두가 뜯어 먹고 있는 구조이다. 그리고 아무도 근본적인 변화, 실질적인 도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관리하고 아무 문제 없이 다룰 것인지만이 제도에 반영되는데 

더 웃긴 것은 그렇게 몸과 마음 모두가 무기력해진 부랑자들을 손쉽게 관리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이 무언가를 파괴하고 거칠게 굴거라는 선입견을 갖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마지막 장에 너무도 간단 명료하게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것이다. 빈곤의 문제는해결할 수 없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해결 가능한 여지들이 너무 너무 명확하게 보이기 때문에..

 

물론 나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지금도 그 편견을 없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전단지...;; 서울에 있을 땐 왜 그렇게 받기가 싫었는지 -_- ;;

중학교에 다니던 무렵 욕실이 방 밖에 따로 있던 집에 살 때, 학교 갔다 와서 욕실에 불이 켜져 있길래 언니인 줄 알고 문을 벌컥 열었더니 안에 낯선 아자씨가 목욕을 하고 있던 적이 있었다.

깜짝 놀라서 방안으로 뛰어들어와 문잠그고 한참을 기다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건이라도 문고리에 걸어 놓을걸 그랬지 ;;

나도 놀랐었지만 그 아자씨의 휘둥그레졌던 눈이 아직도 생각난다..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봤던 브라질의 가라파라는 영화 첫부분에 보면 기아에 대한 두 가지 정의가 나온다. 하나는 먹지 못해 굶어죽는 기아, 하나는 목숨은 연명하지만 만성적인 영양부족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기아....

딱 죽지 않을만큼만-이라니 너무...... -_______-

가라파는 젖 대신 아이에게 먹이는 설탕물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흑백 화면에 오지게 길었던 테이크, 무표정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러다 설탕물을 먹던 어린 딸아이가 토하자 갑자기 북받쳐 오른 젊은 엄마는 울었다.

그게 영화에서 유일하게 누군가가 울었던 장면이었던 것 같다.

 

아, 그리고 과연 조지 오웰은 어쩌자고 이런 일을 시작했을까 하는 의문은 풀리지 않았는데..

괴짜라서? 글쟁이라서? 뭘까 싶었다...

뒤에 실린 서평에 보니 이 체험을 시작하기 전 1927년의 그의 글을 단서로 내놓고 있더라.

이것 참 조금은 의외였고 조금은 수긍이가는...

 

나는 속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청난 죄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이 말이 과장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5년 동안 종사했다면 당신도 나처럼 느꼈을 것이다....

 나는 수면 아래로 잠수해버리고, 억압받는 사람들에게로 내려가 그들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의 편에 서서 폭군들에 대항하고 싶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혼자서만 생각해내야 했던 탓으로 나는 억압에 대한 증오를 비상할 만큼 키워놓았다. 그 당시 나에게는 실패가 유일한 미덕이 것처럼 보였다. 자신의 발전을 꾀하려 한다는 일체의 의혹이나 심지어 일 년에 몇 백 파운드를 버는 수준의 '출세' 마저도 나에게는 정신적으로 추한 일이며 일종의 괴롭힘인 듯이 보였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중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은 식민지 경찰로 일했던 5년이다. 뭐 좀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저런 죄의식은 좀 ... 뭘 하는데 별로 도움은 안되잖아;

저런 마음을 먹고 들어갔는데도 용케 버틸 수 있었다니 참... 엄청 독한 사람이라서 그랬거나, 아니면 들어가서 뭔가가 달라졌거나 했던 게 아니었을까..

저 상태로 그렇게 빡센 곳에서 지내는 건 좀 불가능해 보여..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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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17 21:47 2010/04/17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