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중노조 위원장 오종쇄에게
해고자 조돈희가 오종쇄에게 쓰는 공개편지  


조합원과 함께 촛불을 들어라

내가 자네에게 몇 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얼마 전부터 자네에게 편지를 한번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야 자판을 두드리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써 본지가 너무도 오래되어서 잘 써질랑가 모르겠다.

내 나이가 자네에 비해서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고 자네와 내가 그리 가까이 지낸 사이도 아니다. 하지만 자네는 내게 ‘형’이라 불러주었고 내가 자네를 부를 때도 하대를 써왔던 관계이기에 편지글에서도 하대를 하기로 하겠다. 이점 이해하리라 믿네.

그럼 편하게 몇가지 하고 싶었던 말을 해 보겠네.

민주주의

어느 나라건 어느 조직이건 할 것 없이 그 조직이 민주화되기까지 많은 노동자 민중들의 피가 배어 있듯이 현중노조 21년 역사도 그렇게 조합원들의 피와 땀으로 일구어져 왔지.

그러나 그렇게 일구어진 현중노조의 민주주의는 악랄한 현중자본의 억압적 통제로 다시 과거보다 못한 상황에 처해 버렸음을 자네도 부인하지 못 할 것이야.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쟁취한 싯점과 현중노조의 민주주의가 그 역사적 출발을 같이 하여 너는 그 선두에 서 있었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민주노조를 건설했지.

그런데 우연찮게 지금 너는 다시 민주화를 쟁취해야 할 투쟁의 과제를 안고 있는 조직의 수장으로 서 있게 되었는데 그 자리가 지금은 1987년에 타도의 대상이었던 어용노조 위원장 그 자리가 아닌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싶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촛불을 든 초등학생에서부터 노인들까지 또다시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국민 자신들이 직접 투표권을 가지고 주권을 행사할 수 있음에도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니 독재정치를 멈추라”며 “명박퇴진”을 외치고 있다. 이들의 외침은 비단 광우병 쇠고기 때문만이 아니다. 국민을 잘 섬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죽음의 벼랑으로 내모는 정책들을 밀어붙이고자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 아닐까? 이 땅 소수 자본가들을 위해서 말이다. 게다가 국민들을 개 패듯이 패대니 종교계까지 나서고 있는 형국아닌가.

현중노조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을까?

현중노조의 주권도 형식적으로는 조합원에게 있으나 실제 그러한가?

자본가들의 이해를 정확히 대변하며 소수 자본가 집단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 민중들에게 독재를 휘두르는 이명박 정부와 현중노조 대의기관과 집행부가 혹시 닮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나?

종쇄야! 넌 국민을 섬기는 정치를 하겠다던 이명박 정부가 취하는 지금의 행태를 어떻게 생각하니?

“조합원을 잘 섬기겠다”고 한 너희들이 조합원들이 진정한 주권을 행사하게 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난 너희들이 ‘조합원들 잘 섬기겠다’고 한 그 표현이 옳은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조합원이 주인행세를 잘 하도록 하겠다”고 표현하고 거기에 걸맞는 활동을 하는 것이 옳지.

현중노조는 현중자본의 비열한 노무관리에 의해 조합원들이 자기 조직 내에서 민주주의를 행세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지금의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버렸다. 종쇄 네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고 너는 노동자들 스스로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기도 한 것을 난 알고 있다. 내가 뭔 말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고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정책과 행동으로 옮겨야 할 것이야.

그런데 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네가 위원장 된 배경이 ‘거시기’ 해서 말이야...

복직과 사고, 그리고 배신감

2002년 윤석이가 위원장 되고 나서 해고자 ‘청산’할 때 넌 복직 대상이 됐어. 그때 네명이 복직했지? 다들 궁금해 한 것이 “오종쇄가 어떻게 복직 대상이 되었을까?”였다. 너는 쪽 팔려했지. 복직 대상에 선정 된 것에 어리둥절하면서 복직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기도 했고. 난 네게 “복직하기 싫으면 나와 바꾸자”고 농담도 던져 봤지. 당시 해고자 네명은 복직했고, 첫 출근하는 날 밖에 내동댕이쳐져 버린 남은해고자들은 정문에서 복직자들을 부러움과 서러움을 동시에 느끼며 배웅했지.

그 뒤 넌 작업장에 다른 업무를 받아 복직한 후 손가락이 문드러지는 중대재해를 당했지.

난 너의 흉측하게 문드러진 손을 잡으며 내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기억할 게다. 내가 그토록 안타까워 했던 모습을... 어디 나 뿐이었겠냐. 너의 사고 소식을 들은 동지들 모두가 안타까워했지.

그런데 네가 어용화된 현중노조의 위원장이 되었다니...

모두가 실망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선도했던 권용목이 그러더니 너까지...

이제는 달라졌다고 하지만 뭐가 어떻게 달라졌니? 자본의 노동자통제가 더 강화되었고 조합원들의 주권과 노조의 자주성이 말살당하고, 늘어난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더 열악해진 노동조건, 모든 것이 87년 이전으로 돌아가 있지 않니?

그리하여 새로운 전략이라는 것이 노사상생 복지노조란 것인데 네가 거기에 동조하고 있단 말이냐?

조합비 50억, 부동산 투자 중단해라

요즘 조합원들이 현중노조에서 추진하는 휴양소 건립 사업에 50억이란 거액의 조합비를 사용하는 문제에 대해 ‘오종쇄 집행부의 대운하 사업’이라고 비난하며 우려하는 분위기라드만.

노조에서는 ‘조합비를 없애는 게 아니고 부동산 사 놓는 거’라고 하던데, 노조가 부동산 ‘투기’집단이 되어서 되겠니? 그거 그렇게 하지 말아라. 나중에 필히 문제된다. 대의원대회에 권한이 있고 대의원대회가 총회를 갈음한다지만 조합원들에게 직접 물어서 해라. 가능하면 조합원들에게 할 일과 결정권한을 주는 게 민주주의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는 거 잘 알지 않니?

관리자급 조합원들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많다던데 왜 그렇게 밀어붙이는 거냐? 이명박이가 그래서 대중적 저항을 받고 있구만...

너는 이명박처럼 하면 안된다. 조합비는 가만히 놔두고 회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게 해서 조합원 가족뿐만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운영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거 밀어붙이면 넌 진짜 바보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조합비 50억 부동산투자 계획을 즉각 중단하고, 현중노조의 ‘대운하사업’ 휴양소 건립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라.

해고자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마지막으로 해고자 이야기 한번 하고 마칠란다.

네가 위원장이 된 배경이 ‘거시기’했지만 그래도 난 사실 네가 현중노조 위원장 되고 나서 우리 해고자들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화 한 통화 못받았다.

그래도 네가 해고자로 함께 살아온 시간이 얼만데. 해고자 청산 당할 때 너도 분개했잖아. 이건 아니라고...

아직도 현중 울타리 밖에 남아 있는 우리 해고자 네명이 ‘현중해고자’란 이름을 떼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해고 자체에 대한 부당성이며, 노조가 앞장서서 해고자 복직 요구와 투쟁을 포기하고 청산 조치를 일방으로 단행한 것에 대한 부당성과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포기하지 못해서이다.

더우기 우리들의 파업투쟁과 정치조직 활동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되어 그 잘난 국가로부터 명예회복을 받았고 명예회복위원회가 회사에 복직을 권고하기까지 했었단 말이다.

(명예회복위원회의 복직권고에 대해 회사는 노조 조합원총회에서 청산 정리했다는 이유로 복직시킬 수 없다고 답변했었다.)

종쇄야! 네가 어용으로 불리우는 현중노조 위원장이 되어 있지만 나는 네가 최소한 우리 해고자들이 복직하고 싶은 마음을 헤아리고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리하여 2002년 해고자 청산 방식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다른 방안을 논의해 보는 자리를 한번쯤 가져보자고 전화 한번 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사람들이 묻는다. “오종쇄 위원장한테서 연락 한번 없었냐?”고...

네게 의지가 있다하더라도 너의 의지대로 되는 구조가 아님을 안다. 그러나 해고자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해 볼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 전화해라.

원․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투쟁의 촛불을 들어라

오늘 편지에서 사내하청노조 문제를 이야기하려 했으나 필력의 한계와 지면조건상 다 쓰지 못했다. 어용은 나쁜 것이다! 고통받는 조합원들과 사내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파업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라. 언제든지 파업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 모든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제 원․하청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에서 투쟁의 촛불을 들어라!

억압받는 조합원들과 노동자들의 편에 서서 그들과 함께 비열한 사측을 향해 투쟁하는 모습을 보고싶다.

현중노조가 민주화되는 것을 바라는 해고노동자

조돈희(현대중공업 해고자)     2008-07-14 오후 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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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00:45 2008/07/15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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